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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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의사(구원론)

거듭 남 / J. I. 패커

거듭 남 / J. I. 패커


거듭 남 / J. I. 패커

새로 남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출발시키는 커다란 변화와, 두 어휘로 묶어진 묘사적인 예수님의 말, 곧 ‘새로 남’이라고도 하며 ‘거듭 남’이라고도 묘사되는 변화ㅡ요한복음 3장 3절~8절과 베드로전서 1장 23절과 야고보서 1장 18절을 참조하라ㅡ가 “성령께 속한 일”(요3:6)이라고 자주 말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진실된 일이다.
 
···{중략}···
 
새로 남에 대해 생각하는 우리의 개념들이 너무나 주관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주관적’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개인적이라는 뜻이 아니다.ㅡ그럴 수가 거의 없는 것이다.ㅡ 그것은 믿는 개인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한다는 말이다. 그러한 식의 사고방식은 그릇된 사고방식이다. 그것은 두 가지 나쁜 결과를 가지고 온다.
 
첫째로, 우리가 회심할 때에 가지던 감정적인 체험을 기준 삼아 그러한 것을 다시 기대하게 만드는 일이다.ㅡ죄에 대한 너무 큰 슬픔, 죄인이 살 길을 찾기 위한 너무 큰 고뇌, 그에 따른 기쁨의 극치감 등 그러한 감정적인 체험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다.ㅡ
 
우리는 우리에게 알려진 회심의 이야기들로부터 이러한 기대감을 얻게 된다. 바울이나 어거스틴, 루터나 번연, 웨슬레, 우리 자신이 회심 시에 가졌던 정서적인 체험을 출발점으로 삼고, 그 다음에는 그것을 우리 세대 사람들의 회심의 진위를 판가름하는 잣대로 사용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그것은 슬프고 어리석은 일이다.
 
회심의 체험들이 심지어 돌연한 것이었고 날짜를 기억할 만한 획기적인 것이라 하더라도ㅡ그런 경우는 회심자들 중에 아주 극소수에만 해당하지만ㅡ 그런 것들은 너무 다양해 회심할 때에 일어날 일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에는 합당하지가 않다.
 
그런 것들을 척도로 삼아 회심의 진위를 판단하면, 그 척도에는 맞지 아니했으나 사실 지금까지 회심의 분명한 표증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을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로 착각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반면에 한 때는 그러한 기준에 합격할 만큼 정말로 회심한 반응을 감정적인 수준에서 보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러한 증거를 하나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을 계속해 회심한 사람들로 취급하는 잘못을 함께 범하는 것이다.
 
퓨리탄들이나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 점을 잘 알았다. 사실은 감정적인 상태나 그에 따라 일어나는 어떤 반응이나, 자기도취에 빠져서 만나는 어떤 고립된 체험은 그 어느 것이라 할지라도 새로 난 사람임을 증거하는 명백한 증거 목록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달리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우리는 끊임없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회심한 증거를 삶을 통해 지금 보여주고 있는 사람만이 과거 어느 시점에서 회심했다고 신뢰할 만한 정당성을 갖춘 사람이다.

(자료출처 J. I. 패커 [성령을 아는 지식] 서문 강 역(서울: 새순출판사, 1990) 85쪽~88쪽.)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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