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거듭남)_아더 핑크
중생(거듭남)_아더 핑크
아담의 타락한 후예들이 구원에 이르는 길에는 큰 장애물이 놓여있는데 그것은 죄책(죄의 의식과 형벌에 속박당하는 것)과 죄의 권세(죄의 힘과 현존)의 속박이다.
이로인해 인간은 모두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자들이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수 있으리이까!'라고 그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때 예수님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심으로 구원받는 방법을 명확히 하셨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구원을 얻기 위해 죄책과 형벌, 죄의 세력과 현존에서 건짐을 받아야한다. 죄책과 형벌은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통해서, 죄의 세력과 현존은 성령의 효과적 역사에 의해 가능해 진다.
중생한 자는 성화, 영화로의 길을 가지만 사람이 아무리 성경을 철저히 읽고 연구하여 지적인 노력을 기울인다해도 진리의 자그마한 통찰력 밖에 얻을 수 없다.
장님으로 태어나도 꽃을 가르치면 어느 정도 관념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열심히 탐구하면 진리에 대한 자연적 지식은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중생하지 못한 인간은 영이 죽은 자와 같아서 자연으로서는 결코 영적인 일들에 대한 영적인 지식은 얻을 수 없다.
사람은 남은 잘 비판하지만 정장 중요한 자신의 문제에 대면했을 때 그것을 회피하려하듯이 복음의 진정한 도전 앞에서 자연인은 피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새로남이 없다.
복음은 감춰진 비밀이며 인간의 어떠한 노력과 탐구도 헛것이지만 하나님은 죄로 어두워진 인간의 오성에 천국의 빛을 전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하시길 기뻐하신다.
그래서 여러 직분들을 은사로 주신 것이다.
우리가 뿌린 복음의 씨를 하나님이 축복하셔야 열매를 맺게 되며 성령께서 마음에 적용시키셔야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구원은 기적인 것이다.
중생은 내가 구원받지 못했을 때의 나를 조금 고치는 것하고는 차원이 틀리다.
중생은 단순히 행동의 개혁만을 말하거나 마음을 바꾸거나 선한 삶을 살려는 의지가 아니고 완전히 위로부터 새로 태어남인 것이다.
하나님의 초월적 사역이시다.
중생은 바람이 임의로 불듯이 사람이 알지 못한다.
중생의 지점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로 지옥을 떠나는 것이다.
중생의 필요성
중생은 본성의 타락 때문에 필요한데 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죄속에서 살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영적생명의 상태 아니면 영적 죽음의 상태에 속하게 된다.
이제 누구든지 이 둘의 한쪽에 속하게 되어있다.
타락으로 인간은 선한 것과 멀어지게 되었고 선한 것을 꺼리며 아무런 참된 원칙과 목적도 없으며 오직 죄에 물든 생활만 할 뿐이다.
그들은 구원을 얻으려 나오지 않는다. 타락으로 인해 선한 것을 행할 능력을 잃었으며 선을 행할 수도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인간은 사람들의 도덕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하나님과의 어떤 사귐을 가지기 전에 사람속에서의 영적이 변화가 먼저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의 완전한 타락으로 하나님을 알만한 모든 것이 부패해진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구원을 위해 개선을 찾지 말고 전적으로 새로 지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타락으로 인간은 뿌리에서부터 잘못된 것으로 가식뿐이다.
그래서 많은 선행의 열매들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열매의 영양분은 거듭난 자만이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여기서 중생의 필연적 오구와 여러 문제들을 명확히 파악하면 당면하는 문제들의 어려움을 다소 줄일 수 있게 된다.
이런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적 사역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는 우리를 위해 주로 세 가지의 일을 행하셨다.
* 제사장직-그의 백성들을 하나님과 화목케함
* 예언자직-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갈길을 가르치고 인도함
* 왕직-백성들 앞에서 한 말을 이루고 하나님과 사귀며 교제할 수 있게 함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미혹을 당하며 스스로 속이고 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의 공로를 통해서 형벌뿐 아니라 권세와 부패에서도 구원을 받게 된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상충(相沖) 때문에 중생이 필요한데 죄인이 거듭나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죄인 사이의 접촉점이 없으며 첫 아담으로 인해 멸망했으니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한다.
그래서 죄를 사랑하는 사람의 성향을 버리고 회복되어져야 한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는 일이 시작되어져야 하며 또한 정한 마음으로 그것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도 중생이 필요하다.
중생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예비하는 것이다. 또한 영적인 일을 사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예비하는 것은 합당한자가 되는 것인데 먼저 성령의 열심히 자유함을 누려야 한다.
이를 통해 정결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형상이 있게 된다.
이 형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해 진다.
우리는 그의 공로뿐 아니라 그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중생과 성화는 분리될 수 없고 중생한 자만이 성화의 길을 가게 된다.
중생의 본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요'라고 하셨다.
중생은 하나님의 역사인데 우리는 여기서 성령의 중생을 설명할때 비유나 말씀들에 국한시켜야하며 그것들을 구체화시켜서 하나님의 말씀위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신생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이 새로운 육체의 어떤 기능을 새로이 부여받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창조시에 완전한 존재로 지어졌고 타락시 어떤 부분도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은 타락으로 영적으로 죽게 되었는데 이것은 기능의 멸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분리된 상태를 의미한다.
거듭나지 못한자의 두려운 상태를 말한다.
인간은 타락시에 죄의 원리를 따라 살았는데 중생을 통해 새로운 원리가 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실체(영화된 몸?,어떤 다른 개체?)가 된 것이 아니라 어떤 질적인 힘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죄악된 성품이 새로운 성품으로 변화되었고, 새로운 행동의 원리를 받게 되었다.
인간의 타락은 기능의 분실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을 위해 살려는 모든 힘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나 중생을 통해서 새로운 영적 원리가 생기고 새로운 성품이 생기고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회복되게 된 것이다.
인격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과 동일하다 다만 죄인은 하나님을 향한 힘을 잃었고 중생한자는 하나님을 향한 힘을 얻은 것이다.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여기서 영은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인 '영, 육, 혼'의 영이 아니다.
이것은 '새로온 성질'을 의미한다.
그리고'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에서 육도 그냥 육체가 아니라 부패한 인간의 성품을 말한다. 따라서 여기서 영과 육은 거듭는 상태의 성품과 거듭나지 못한 상태의 성품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생된 신자에데서도 죄의 원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다만 새로운 원리에 의해서 신자의 기능을 지배하던 힘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는 죄와 싸우게 된 것이다. 무기력한 희생자가 싸운다는 것은 논리학에서 명사의 모순이다. 중생한 그리스도 전혀 무기력하지 않으며 그 마음에 죄를 능히 이길 힘을 부여 받았다.
그리스도인은 이제 새로운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생각한다.
그가 보는 대상도 새 것이며, 그의 목적과 동기가 모두 새것으로 변화 되었다.
여기서 중생은 객관적인 변화가 아니라 주관적인 변화이다.
의인을 객관적 시각이라 한다면 중생은 주관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원리상 두가지 본성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 본성이라는 것이 어디까지난 행동의 원리이며 성품이지 존재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성향과 성질과 경향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중생의 결과
모든 사람은 진노의 자녀로 죄악의 상태에 있으므로 천국에 합당치 못하며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초자연적인 성령의 부르심을 통해 사단의 권세에서 구원받고 중생하게 된다.
이러한 중생의 결과는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부는지(물론 자연적인 것은 알지라도)이해하지 못하듯이 내적 주관적 변화인 중생 또한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말씀과, 경험함으로 알 수 있다.
*지각과 오성의 조명
우둔한자의 마음을 여시고 말씀을 우리 속에 적용하시는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이 영적으로 두려운 상태에 있음을 깨닫고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다. 조금도 성한 것이 없으며 상처뿐임을 발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사람은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빛의 비추임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가 구속자인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런 사람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된다.
*마음의 고양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중생한 자라야 가능하다. 중생된 후에는 그분을 온전히 사랑할 분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한다.
*의지의 해방
본질상 타락한 인간의 의지는 한쪽으로만 자유롭다. 그래서 죄인은 의에 대해 자유하였고 의인의 죄에 대해서 해방된 것이다. 이런 해방된 자는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하게 된다. 그리고 성령께서 내속에 오셔서 하나님의 법을 행하게 된다.
*행동의 교정
중생된 자가 중생되지 못한 자와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변화를 받게 되며 그런 자는 자신의 거룩함의 원리를 경건한 행동으로 드러내게 된다.
항상 하나님의 교훈에 부합하기 위헤 노력하는 것이다.
중생되면 그 마음에 고뇌가 차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거하는 은혜에도 불구하고 내속에 죄를 여전히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죄와 은혜에 동시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죄로인해 죽을 몸에 왕노릇하게 하지 말며 습관적 죄를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은혜는 내안의 육을 제거하거나 정결케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 속의 부패를 괴로워하게 된다. 이러한 고통에서 구출되는 유일한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 자기만족을 버리고 그리스도안에 계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
이것이 내게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안에 있음을 알리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따라서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것은 나를 떠나서 살게 되며 그리스도에 입각해서 사는 것이다. 이모든 필요한 것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것과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의성장의 과정을 인식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시기는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혼이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 고통을 겪으며 내재하는 죄 까닭에 고통 할 때가 가장 크게 성장하는 때이다.
이로 인한 중생의 실체는 동일 하지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나 재능은 가가기 다른 것이다.
은혜와 영광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 같지도 않다.
둘은 불가분 연관된 것인데 은혜는 영화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을 닮은 형상은 성도들이 이 땅에서 어느 정도 소유하게 된다.
이 형상의 완전함을 천국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때 회복될 것이다.
중생의 본질적 요소
중생한자는 그의 일중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행동 목표이며 모든 행동마다 가치를 부여해주는 행동의 목적이 된다.
눈이 나쁘면 몸도 어두운 것처럼 사람의 의도가 나쁘면 죄의 결과만 있게 된다 타락한 인간의 자신만이 최우선의 관심사이거나 자신과 같은 인간만 기쁘게 할 뿐이다.
그러나 중생한 자는 하나님을 위해 기쁘게 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기쁘게 한다.
중생의 본질은 전달, 혁신, 복종으로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거듭난자 안에서 죄의 세력을 제압하신다.
거듭난 자의 마음을 더 이상 다스리지 못하며 그리스도인은 이제 죄를 미워하게 된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미치는 경로와 방법들을 우리는 알수 없지만 성경말씀과 자연의 역사들이 말해준다.
사람의 견해, 동기, 성향, 추구성, 모두가 변화하는데 사람의 어떤 수단도 이런 변화를 이룰 수는 없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모범인자가 말씀에 의해서 크게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것을 신적인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의 말씀으로 신의 형식에 참여하는 자는 그의 형식으로 변화한다.
이것은 영화의 첫 경험으로 항상 변화하며 그의 은혜 안에서 자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키우고 강해지기 위해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
이 중생의 마지막이 바로 영화이다.
사람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영육의 갈들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이 내적 경험은 사단과의 주도권논쟁으로 이어지고 여기서 그리스도인이 깨어서 기도해야할 절대적 필요성이 있게 된다.
중생한자에게 새성품이 죄에서 영혼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는 지속적이고 완전한 공급이 있어서 항상 그에게 나아가고 그의 얼굴을 구하는 자에게는 그의 은혜를 날마다 누리며 성장한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자료출처 http://thevine21.homp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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