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重生)과 회심(回心)의 차이(스테판 차르녹, 마틴 로이드존스)
거듭남(重生)과 회심(回心)의 차이(스테판 차르녹, 마틴 로이드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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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重生)과 회심(回心)의 차이(스테판 차르녹, 마틴 로이드존스)
첫 번째
스테판 차르녹 (Stephan Charnock, 1628-1680) 영국의 장로교 목사
중생은 영적인 변화(change)이며,
회심은 영적인 활동(motion)이다.
중생으로 하나의 힘이 부여되고, 회심은 이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중생에서 우리들에게 전환할 수 있는 원리가 주어지고,
회심은 바로 그 전환하는 것 자체를 말한다.
그 원리로서 우리가 자연의 상태에서 은혜의 상태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며,
회심은 하나님에게 실제로 고정시키는 최종단계(terminus ad quem)로서의
우리의 행동이다.
중생은, 행할 수 있는 능력(posse agere)을 제공하고,
회심은 그렇게 주어진 것에 근거해서 실제로 행하는 것(actu agere)이다.
첫째,
회심은 결과라고 한다면, 중생은 원인과 같다.
생명의 활동이 있기 이전에 생명이 생겨야 한다.
생명이 활동의 원인인 것이다.
언약에 있어서,
새 마음, 새 영, 그리고 그 언약을 맺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영을 불어넣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과는 구분된다.(겔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 36:27)
또한 그것들은,
하나님의 길로 우리가 처음 들어서게 되는 것과도 구분되며,
우리들의 그 이후의 활동의 원인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I will cause you to walk in my statutes).
우리를 새롭게 하심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능력을 주시는 것이며,
우리를 회심시키는 것에 있어서는,
그 힘을 작동하게 하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본성상 죽어 있어서,
그들 위에 무거운 돌이 올려져 있는 상태이다.
중생은 그 돌을
그것이 올려져 있는 마음에서부터 굴려 없애버리는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회심이란,
살아난 몸이 활동하게 되는 것처럼이나 자연스러운 일로서
중생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활동의 원리가 활동을 산출하는 것이다.
둘째,
중생에 있어서는 인간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하지만, 회심에 있어서는 능동적이다.
마치 어린 생명이 자궁에서 처음으로 수태가 될 때에
그 생명의 유입을 위해서 아무런 공헌을 하는 것이 없지만,
생명이 유입된 이후에는,
그 생명이 능동적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활동하게 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들 안에서 우리를 처음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이다.
피조물 편에서의 어떤 그 무엇에도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활성화된 이후에는
우리들이 그 분의 보시기에 능동적으로 또한 자발적으로 행하게 된다.
호세아 6장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를…살리시며…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고 한다.
그러면 우리들은 그 분 앞에서 행하게 될 것이며,
또한 ‘여호와를 힘써 알게 될 것이다.’
중생은, 피조물 안에서 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인 반면에,
회심은, 그 하나님의 활동에 의하여 주어진 첫 번째 원리에 의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하게 되는 피조물의 활동이다.
이 첫 원리에서부터 모든 이후의 행동,
곧 믿는 것, 회개하는 것, 죄를 죽이는 것, 죄를 각성하게 되는 것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행동들에 있어서 사람은 능동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 원리가 주어지는 것에 있어서는 단지 수동적일 뿐이다.
이 모든 행동들은 그 첫 은혜의 유입을 따라서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된,
의지의 작용인 것이다.
회심은 주님께 우리를 드리는 것이다(고후8:5).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고후 8 :5).
우리 자신들을 주님께 드리는 것은,
그 모든 부분에 있어서 전적이며 순전한 것이고,
주님 자신께로 말미암아서 가능한 것이다.
새롭게 된 사람은 성령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는다고 하지(롬8:14)
끌려진다거나 강제를 당한다고 하지 않는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사람의 의지 속에 있는 어떤 경향과 성질을 넣으시는 것은,
그것을 각성시키는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하지만, 그 경향의 힘을 따라서
그 경향이 주어진 의지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은,
자발적인 것이며, 피조물의 활동이다.
마치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잡고 인도해 가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 아버지가 아이에게 생명의 원리를 제공해 주며,
그를 손을 잡고는 인도해서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아이 안에는 이런 움직임의 원리가 있고
또한 그렇게 움직이고 싶은 의지가 있을 때
아버지를 따라 가게 된다.
중생한 날이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주어진 날이며,
그 중생으로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시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 110:3)
그래서, 회심이 실제로 일어나게 될 때 피조물이 능동적이어야 하지만,
그 능동적일 수 있는 힘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이나 자신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생산불능의 자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먼저 영혼 안에 심겨 진 것이다.
스테판 차르녹의 ‘새 탄생 2’(한글판:거듭남의 본질, 지평서원 역간)중에서
두 번째
마틴 로이드존스 (D. Martyn Lloyd-Jones 1899-1981)
“그러므로, 중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찰할 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중생을 회심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자주, 이 둘은 혼동되어집니다.
하지만, 중생은 회심이 아닙니다.
회심은 우리가 하는 것인 반면,
중생은 우리에게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회심은 중생할 때에 우리가 하는 그 무엇입니다.
잠시 뒤 이점을 설명 드릴 것입니다.
회심은 어느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실제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하지만,
중생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회심할 때, 혹은 돌아설 때,
그들은 자신이 중생했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회심은 중생 이후에 옵니다.
사람들 안에서 먼저 위대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들의 외적인 삶과 생활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씨를 뿌리는 것과 그 씨뿌림의 결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중생은 생명의 씨를 심는 것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와는 명백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발생(generation)과 출생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발생은 출생이 있기 오래전에 일어납니다.
발생은 하나의 행동입니다.
특정한 과정이 진행된 후
발생은 실제 출생의 과정으로 종결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으로 이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가 중생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에는
실제로 태어나는 출생이 아니라,
발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효력있는 부르심은 실제 출생시에 발생하며
이것은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됩니다.
부르심은 유효하고 그들은 믿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발생의 과정,
즉 생명의 씨뿌림이 이미 일어났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구분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중생과 회심을 구분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중생과 양자됨을 구분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은 종종 양자됨도 중생과 혼동하는데,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둘은 명백하게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생을 영혼에 새로운 생명을 심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그것이 중생의 본질입니다.
좀더 확대된 정의를 원한다면,
다음의 문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중생은
사람 안에 새 생명의 원리(principle)가 심어지는 하나님의 행동으로써,
그 결과 영혼을 지배하는 성향이 거룩해집니다.’
그리고 실제 출생은
이 성향이 첫 번째로 발휘되는 증거를 보여줍니다.”
마틴 로이드존스의 ‘교리강좌 시리즈(부흥과 개혁사 역간) 2. 성령론, 구원론’중에서
(자료출처 http://lloydjones.org/zbxe/piety03/6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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