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토레이의 성령론
R.A. 토레이의 성령론
박정우 목사
R.A. 토레이의 성령론은 개혁주의 성령론이 아닙니다.
R.A. 토레이의 성령론이 어떤 것인지 참고용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요즘 목회자들이 몰려들고 있는
예수원의 '두나미스 프로젝트'는 R.A. 토레이의 성령론의 성령이 기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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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1. 연구의 동기와 목적
21세기의 초반을 넘고 있는 현대의 교회들은 오랜 전통적인 교파들의 교세가 줄어드는 가운데,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이른바 완전주의(perfectionism)와 오순절주의(pentecostalism) 이 두 가지 운동의 현저한 부흥을 경험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지나간 몇 십년간 많은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켜 왔다. 현대교회사가 배본철 교수가 지적한 대로 금세기 동안의 기독교회사에서 가장 큰 관심거리 중의 하나는 전통적인 교파들 속에서 은사운동(charismatic movement)의 급속한 성장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로만 캐톨릭을 포함하여 실제적으로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에서 오순절적 성령운동의 유산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1)
그렇다면 오순절적 성령운동의 교회사적 위치는 어디이며 또 그 역사적 가치는 어떤 점에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20세기 오순절운동이 19세기 성결운동에 직결된 운동이라면 과연 그 연장선상의 모티브가 되어 개신교 전체 성령운동사에 대한 분석적, 평가적인 시도는 성령운동 이론적인 근저를 제공한 R.A. Torrey에 대한 성령신학적인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대 성령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19세기 미국의 근대 복음주의 성령론이 끼친 영향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2) 이러한 의미에서 19세기 성령운동을 주도했던 토레이의 신학에 관한 배경을 살펴 보고자한다.
성령님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모두 성령의 임재와 능력이 필요하며 우리는 성령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물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전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충만을 받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요, 신앙 생활에서도 큰 유익을 줄 뿐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는데 유익을 준다. 즉 하나님의 영원하신 성령은 신자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고 지속이기 때문에 오늘날 신자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주나 정확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으므로 피상적인 지식 가운데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20세기에 밀어닥친 최대의 충격파인 오순절 운동으로 인해서 한국교회는 기형적 이해와 논쟁과 혼란의 와중으로 들어 가버렸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의 신자들은 많은 혼란에 부딪히고 있다.
이런 성령에 대한 여러 해석은 무엇보다도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적인 문제의 신학적인 근본을 제공한 토레이의 성령신학에 대한 배경을 살펴보고 그의 이론의 주장과 개선 및 계승애야 할 부분을 정리하며 본 논문을 마무리 하고자한다.
1.2. 연구의 방법 및 범위
연구의 방법은 토레이의 성령신학에 대한 주장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가장 민감한 부분 성경에 대한 이해를 한 후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이것을 토대로 오순절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의 상반된 견해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유로 본 연구의 범위는 토레이의 사역의 중심이 된 중생과 성령세례의 관계를 중심으로 글을 살펴보고자 하며 이에 대한 성령신학의 근간의 바통을 이어받은 오순절 계통의 신학적인 현상과 이에 대한 개혁신학적인 입장에서 개선 및 계승 발전해야 할 성령신학의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2. R.A. 토레이의 성령론
우리나라의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개혁파 교회 내에는 신학적인 면과 목회적인 면에 있어서 성령세례 이해에 대한 분명한 이질감이 생기게 되었다. 신학적으로는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의 영향을 받아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으나, 목회적으로 볼 때는 초기 한국교회 부흥운동과 가옥명의 성령론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중생과는 구분되는 성령세례의 경험을 강조하는 경향이 또한 강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전통에 서 있는 외국 목회자들의 저술들이 번역되어 한국교회에 널리 소개되었다.3)
개혁파 계통의 인물들, 특히 케직(Keswick) 계통의 지도자인 머레이(Andrew Murray), 그리고 무디(D. L. Moody)와 함께 동역했던 토레이(R. A. Torrey)의 성령론 관계 서적들이 번역되어 한국교회 성령운동과 신자들의 영성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고, 또 뒤를 이어 로이드존즈(D. M. Lloyd-Jones)의 성령론이 또한 한국교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모두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전통에 충실한 인물들이었다.
케직 운동4)의 지도자로서 19세기 말 영미의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친 머레이의 경건서적이 한국 교계에 여러 권 번역되었다. 그의 글은 성결교회 <활천>에도 창간호가 나온 1922년부터 “신유”를 비롯한 여러 편의 설교가 연재되어 실렸다. 그의 성령론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강조점을 따라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를 강하게 지녔으며, 특별히 그가 지닌 성령세례론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전인적인 통치로서의 성령세례’에 있다.
머레이는 성령세례가 예수님 사역의 절정이고 영광일 뿐만 아니라, 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며, 더 나아가서 거듭난 신자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신자의 믿음을 통하여 명확한 성령세례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입장을 계승한 로이드존즈가 한국교회에 끼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 그는 누구든지 성령의 세례를 받을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며 또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데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갖게 된다고 했다. 또한 성령세례의 체험은 오순절 날 그러했듯이 여러 은사들을 동반할 수도 있는데,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는 다양성이 있으며 매번 정확히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을 때에 동반하는 은사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가변적인 요소들이라고 보았다.5)
이러한 역사적인 면을 볼때 19세기 케즈윅 사경회는 근대 교회의 성령사역에 있어서 매우 주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수 있다.
19세기 케즈윅 사경회를 주도한 무디, 토레이, A.B. Simpson는 성령의 능력과 사역에 대해서 근대 교회사에 분명한 이정표를 긋는 사람들이었다. 이들과 함께 동일한 선상에서 사역을 했던 토레이 성령론의 가장 주요한논리가 중생 이후 성령의 계속적인 사역에 대한 이정표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그의 여향을 받고 오순절 계통의 신학이 발전하고 있으면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은 교회 성장을 이루는 교단으로 세워지고 있다. 그래서 토레이의 성령론이 교회 성장면에서만 보더라도(비록 지금 우리한국교회의 성장이 퇴보되는 위기상황에서만 보더라도) 우리의 흥미 이상의 주요한 관심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토레이가 주장하는 성령론의 근저를 살펴보고 우리가 얻을 소득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1. 토레이의 성령의 인격성1)
2.1.1. 성령님은 인격이시다
2.1.1.1. 성령님이 인격이시라는 사실은 사람의 지정의를 통해서 성령님의 존재를 알게 하신다
2.1.1.2. 성령님은(고전 2:10절을 인용하여)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2.2. 토레이의 성령 세례에 대한 주장
2.2.1. 성령 세례의 본질
2.2.2. 성령세례는 사람이 이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역력한 경험이다
토레이는 성령세례를 받은 개인 적인 근거에 대해서 “ 어떤 사람이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알고 싶다면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물어보고 그가 확신에 차있으며 겸손히 ‘ 받았다 ’라고 대답하는지 보라고 했다. 2)
그렇다면 아직도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주의 일꾼으로 되기에는 합당치 못한 사람이라는 주장이라면 그가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의 확신이 진실된 믿음에서 나온 것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본인은 오랜 동안 교회 생활을 하던 주요 직분자가 다른 종교로 돌아서버리던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교회를 떠나는 일을 종종 본적이 있다. 그들도 분명히 확신에 차서 성령 세례를 받은 자라고 했던 것이다.
2.2.3. 성령세례는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와는 전혀 다른 것이고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에 덧붙여서 하여 주시는 역사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에 의하여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3)
토레이는 사도행전 1:5에 근거해서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고 하신 말씀을 근거로 사도들이 아직은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것이 분명하였지만, 그 이전까지 사도들은 거듭났었기에 성령세례와 중생(거듭남)은 분명한 시간적인 차이와 구분이 있다는 것이다.
토레이는 사도행전 8장에 있는 사마리아인들 중에서 거듭난 사람이 있었지만 빌립이 세례를 주고서야 세례를 받은 근거를 들며 성령세례와 중생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 거듭난 사람은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구원 받는 것만으로는 아직도 하나님을 섬기기에는 적합하지 못하다” 고 주장하고 있다.4)
토레이는 성령세례의 주요 목적이 하나님의 사업, 즉 전도와 봉사에 그 핵심적인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성령관이 당대 무디와 같은 전도자들과 전도사역에 집중하게 하는 모티브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이 있다. 성령 세례의 목적인 전도와 봉사에 있다면 꼭 전도하지 않는 자들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전도와 봉사에 대한 열심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가능하지만 성령 세례의 결과가 교회내 전도와 봉사에 그 모든 역량이 집중된다면 대 사회적인 활동의 영역은 과연 어떻게 참여 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단지 2005년도를 살아가는 현재 우리 시대에서 바라보는 시대적인 문제라고 판단해야 할까?
2.2.4. 성령의 세례는 주로 주님을 증거하는 일과 주의 사업에 봉사하는 일에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성령의 역사이다.
토레이는 “ 성령 세례의 근본 목적은 우리 자신이 행복하게 되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사업을 하는 일에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성령 세례의 목적이 이 곳에 있음을 기뻐한다 ” 고 했다. 토레이는 성령 세례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목적은 하나님의 사업에 있음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업의 범위가 무엇인지를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토레이가 주장하는 하나님 사업의 범위는 전도와 교회 안에서의 헌신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5)
2.3. 성령 세례의 결과
2.3.1. 성령 세례의 결과로 집약할 수 있는 말은 ‘ 권능 ’이다.
사도행전 1:8에 의해서 “ 누구든지 성령 세례를 받으면 다 권능을 얻게 되는데 그 권능은 곧 하나님에게 부르심을 받은 일을 감당하기 위한 권능이다. ...... 그 사람은 반드시 그의 생활과 하나님의 사업에 봉사함에 있어서 새로운 권능을 얻게 될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토레이는 권능에 있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고린도 전서 12장에 있는 은사의 모양처럼 다른 것이라고 한다. 6)
그는 권능을 해석하는 도중 방언에 관한 내용을 해석하면서 웨슬레, 피니, 무디의 간증을 듣고 성령 세례를 받으면 그분들처럼 방언을 받는 다는 오해에 빠질 뻔 했으나 은사는 각기 다른 모양으로 나타 날 수 있음을 말하는 성경에 근거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7)
2.4. 성령 세례의 필요성
토레이는 성령 세례란 받고 안 받은 것을 알 수 있는 분명한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성령 세례는 거듭남과는 다른 그 윗 자리에 있는 것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성령 세례는 언제나 주님을 중시하는 일과 주의 사업에 봉사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으며 주요한 목적이 증거하는 일과 봉사하는 일에 있다는 것을 그는 확신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권능(=은사)을 부여 받음으로 그것을 반드시 활용해야 함을 강조한다.
2.4.1.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의 자격
토레이는 누가복음 24장 45~49절을 인용하여 “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 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 성령의 세례를 받고 확신 할때까지 결코 하나님의 사역을 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는 “ 여러분이나 나같이 평범한 사람으로 성령 세례를 받아 이를 체험하지 않고 복음 전도 사업을 착수 한다는 것은 절대로 안 될 말이다. 이것은 가장 위험한 생각이다 ”고 주장한다.8) 그는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할 지라도 성령세례를 경험하지 않은 자는 결코 사역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하고 있다.
2.4.2. 누가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토레이는 성령 세례는 모든 믿는 자들의 유업이라고 했다. 그러나 모든 신자가 다 성령 세례의 자기 유업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 유업을 구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성령 세례를 유업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2.4.3. 성령세례론 유형 분석9)
케직 사경회를 통해서 영향력을 끼쳤던 토레이와 당시 성령론자들의 유형이 어떠했고 한국교회에 어떻게 영향을 끼쳐왔는지 배본철 교수의 글을 참고해 보자.
현재까지도 ‘성령세례’에 대해서는 난해하고 다양한 해석들이 소개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주장하는 이들의 신학적 계보도 매우 복잡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교회 성령세례에 대한 역사적 분석의 과정을 통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성령세례론의 여섯 가지 유형을 정리할 수 있었다.
2.4.3.1. 봉사의 능력을 위한 성령세례
봉사의 능력(power for service)에 핵심을 둔 성령세례론은 주로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한 특색이라고 본다. 마한(Asa Mahan)은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봉사와 거룩한 삶에 있어서의 능력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피니(Charles G. Finney)도 역시 성령세례의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인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을 성취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초기 한국교회에 파송되었던 영미 선교사들에게 좀더 친숙했던 성령세례론의 영향은 무디(Dwight L. Moody)와 그의 동역자인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의 사역을 통해서도 많이 나타났다. 무디나 토레이는 신자는 봉사의 능력을 얻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0년대 이전 뿐 아니라 이후에도 한국 개혁파 신학계에서는 성령론에서 있어서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하나의 큰 노선이 있었다. 여기에 ‘봉사의 능력을 위한 성령세례’를 강조하여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설교가로는 로이드존스(D. M. Lloyd-Jones)를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는 성령세례의 주된 목적이 신자들로 하여금 권능과 담대함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토록 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이인한을 필두로 하고 차영배, 박영선, 안영복 등으로 그 계보가 이어지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노선의 학풍은 일반적으로 ‘봉사의 능력을 위한 성령세례’를 지지하고 있다.
2.4.3.2.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
웨슬리(John Wesley)로부터 출발한 완전 성화의 교리는 순간적인 체험을 통하여 신자는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성으로부터 정결하게 씻음을 받게 되고, 이 원동력은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과 봉사의 승리하는 삶을 가능케 해준다고 하였다. 이같은 전통적 입장에 새로운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선구자인 팔머(Phoebe Palmer)를 통해 ‘능력’으로서의 성령세례에 대한 강조가 많이 부가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성결은 곧 능력”이라고 했으며, “정화와 능력은 동일한 것”이라고 했다.
이 성령세례 유형은 성결교회 내에서 김상준, 이명직, 김응조 등의 저술들, 그리고 <활천>, <성결> 등의 정기간행물들을 통하여 그 전통이 계승되었다. 현재 중생 이후의 ‘제 이차적 축복’(the Second Blessing)으로서의 성결 혹은 성령세례, ‘죄성제거설’로서의 성결론, 그리고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 관념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구세군, 나사렛성결교회 등, 한국의 웨슬리안-성결 그룹들의 공식적인 교리로서 채택되어 있다.
2.4.3.3. 그리스도의 전인적 통치로서의 성령세례
이 노선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에 근거를 두었지만, 무디나 토레이와는 달리, 성령세례의 주된 목적을 그리스도에 의한 전인적 통치에 둔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보드맨(William E. Boardman)은 그리스도께 대한 온전한 헌신을 하고 난 후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는 의식적인 증거’를 얻게 되는데, 이를 그는 두 번째 회심으로서의 ‘성령세례’라고 불렀다.
이 외에도 마이어(F. B. Meyer), 머레이(Andrew Murray)와 같은 케직 운동의 지도자들 역시 ‘그리스도의 전인적 통치로서의 성령세례’를 강조하였다. C&MA의 창시자인 심프슨(Albert Benjamin Simpson)도 역시 ‘성령세례’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신자 안에 이루어주시는 성결은 성령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신자 안에 오시는 체험이며, 성결의 체험을 통해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크리스천의 생활에 능력과 승리가 주어진다고 하였다.
2.4.3.4. 중생=성령세례, 이후 성령충만
박형룡의 성령론이 <신학지남>에 실리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인데, 그는 중생한 자는 이미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러자 박형룡의 저술을 필두(筆頭)로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노선의 저술들이 신성종, 김해연, 박형용 등을 통해 한국 신학계에 잇달아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이같은 성령론 노선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외국 신학자들로는 우선 핫지(Charles Hodge)나 워필드(B. B. Warfield) 등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은 성령 은사의 중단성(中斷性)과 중생과 연관하여 성령세례의 단회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카이퍼(Abraham Kuiper), 개핀(Richard B. Gaffin), 스토트(John R. Stott) 등의 영향도 역시 이 노선에 힘을 주었다. 특히 대중적으로 국내에 큰 영향을 끼친 CCC의 브라이트(Bill Bright)나 부흥사 그래함(Billy Graham)도 역시 명확한 ‘중생=성령세례, 이후 성령충만’의 노선을 견지하였다.
2.4.3.5. 방언의 표적을 중시하는 성령세례
파함(Charles F. Parham)은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단 하나의 증거라고 최초로 강조하였다. 그의 영향력은 1901년 Topeka와 1906년 시무어(W. J. Seymour)가 이끈 Azusa 거리의 부흥에서는 물론, 현재까지 방언을 성령세례와 직결시키는 전통 오순절주의(Classical Pentecostalism) 신앙의 전 세계적 확산을 가져오게 하였다. 국내에는 하나님의성회가 ‘방언의 표적을 중시하는 성령세례’를 주장하는 전통 오순절주의의 대표적 교단이다. 이 노선의 가장 영향력있는 저자로서는 조용기를 들 수 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1960년대에 일어난 은사갱신운동은 ‘방언의 표적을 중시하는 성령세례’를 권장하지만, 그 강도가 전통 오순절주의보다는 선택적이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세릴(John L. Sherill), 베네트(Dennis J. Bennett), 맥너트(Francis MacNutt) 등의 저서들이 번역되어 일반 독자들 사이에 친숙하게 소개되었는데, 이들의 저서에서는 방언을 거의 성령세례와 동일시하는 표현이 많이 발견된다.
2.4.3.6. 중생=성령세례, 이후 은사적 성령충만
일반적으로 ‘제 3의 물결’에서는 ‘성령세례’(Baptism with the Holy Spirit) 또는 ‘성령 안에서의 세례받아지는 것’(being baptized in the Holy Spirit)이라는 용어 대신, ‘성령충만’(filled with Holy Spirit) 또는 ‘성령에 의한 능력의 덧입힘’(empowered by the Holy Spirit)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그 이유는 제 3의 물결 운동가들은 대부분 회심과 성령세례가 동시적 경험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중생하게 될 때 성령께서 내주하시지만, 저절로 그분의 능력과 은사들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노선은 ‘중생=성령세례, 이후 성령충만’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개혁주의신학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그러나 반면에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크게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개혁주의신학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앞으로 ‘제 3의 물결’에 대한 개혁주의신학의 평가와 적용이 어떻게 진전될지 기대가 된다. ‘제 3의 물결’은 국내에 잘 알려진 윔버(John Wimber), 와그너(Peter Wagner), 크래프트(Charles H. Craft), 힌(Benny Hynn) 등의 사역과 저서의 영향으로 현재 많은 독자층과 지지자들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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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1. 연구의 동기와 목적
21세기의 초반을 넘고 있는 현대의 교회들은 오랜 전통적인 교파들의 교세가 줄어드는 가운데,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이른바 완전주의(perfectionism)와 오순절주의(pentecostalism) 이 두 가지 운동의 현저한 부흥을 경험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지나간 몇 십년간 많은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켜 왔다. 현대교회사가 배본철 교수가 지적한 대로 금세기 동안의 기독교회사에서 가장 큰 관심거리 중의 하나는 전통적인 교파들 속에서 은사운동(charismatic movement)의 급속한 성장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로만 캐톨릭을 포함하여 실제적으로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에서 오순절적 성령운동의 유산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1)
그렇다면 오순절적 성령운동의 교회사적 위치는 어디이며 또 그 역사적 가치는 어떤 점에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20세기 오순절운동이 19세기 성결운동에 직결된 운동이라면 과연 그 연장선상의 모티브가 되어 개신교 전체 성령운동사에 대한 분석적, 평가적인 시도는 성령운동 이론적인 근저를 제공한 R.A. Torrey에 대한 성령신학적인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대 성령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19세기 미국의 근대 복음주의 성령론이 끼친 영향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2) 이러한 의미에서 19세기 성령운동을 주도했던 토레이의 신학에 관한 배경을 살펴 보고자한다.
성령님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모두 성령의 임재와 능력이 필요하며 우리는 성령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물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전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충만을 받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요, 신앙 생활에서도 큰 유익을 줄 뿐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는데 유익을 준다. 즉 하나님의 영원하신 성령은 신자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고 지속이기 때문에 오늘날 신자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주나 정확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으므로 피상적인 지식 가운데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20세기에 밀어닥친 최대의 충격파인 오순절 운동으로 인해서 한국교회는 기형적 이해와 논쟁과 혼란의 와중으로 들어 가버렸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의 신자들은 많은 혼란에 부딪히고 있다.
이런 성령에 대한 여러 해석은 무엇보다도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적인 문제의 신학적인 근본을 제공한 토레이의 성령신학에 대한 배경을 살펴보고 그의 이론의 주장과 개선 및 계승애야 할 부분을 정리하며 본 논문을 마무리 하고자한다.
1.2. 연구의 방법 및 범위
연구의 방법은 토레이의 성령신학에 대한 주장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가장 민감한 부분 성경에 대한 이해를 한 후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이것을 토대로 오순절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의 상반된 견해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유로 본 연구의 범위는 토레이의 사역의 중심이 된 중생과 성령세례의 관계를 중심으로 글을 살펴보고자 하며 이에 대한 성령신학의 근간의 바통을 이어받은 오순절 계통의 신학적인 현상과 이에 대한 개혁신학적인 입장에서 개선 및 계승 발전해야 할 성령신학의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2. R.A. 토레이의 성령론
우리나라의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개혁파 교회 내에는 신학적인 면과 목회적인 면에 있어서 성령세례 이해에 대한 분명한 이질감이 생기게 되었다. 신학적으로는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의 영향을 받아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으나, 목회적으로 볼 때는 초기 한국교회 부흥운동과 가옥명의 성령론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중생과는 구분되는 성령세례의 경험을 강조하는 경향이 또한 강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전통에 서 있는 외국 목회자들의 저술들이 번역되어 한국교회에 널리 소개되었다.3)
개혁파 계통의 인물들, 특히 케직(Keswick) 계통의 지도자인 머레이(Andrew Murray), 그리고 무디(D. L. Moody)와 함께 동역했던 토레이(R. A. Torrey)의 성령론 관계 서적들이 번역되어 한국교회 성령운동과 신자들의 영성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고, 또 뒤를 이어 로이드존즈(D. M. Lloyd-Jones)의 성령론이 또한 한국교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모두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전통에 충실한 인물들이었다.
케직 운동4)의 지도자로서 19세기 말 영미의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친 머레이의 경건서적이 한국 교계에 여러 권 번역되었다. 그의 글은 성결교회 <활천>에도 창간호가 나온 1922년부터 “신유”를 비롯한 여러 편의 설교가 연재되어 실렸다. 그의 성령론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강조점을 따라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를 강하게 지녔으며, 특별히 그가 지닌 성령세례론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전인적인 통치로서의 성령세례’에 있다.
머레이는 성령세례가 예수님 사역의 절정이고 영광일 뿐만 아니라, 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며, 더 나아가서 거듭난 신자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신자의 믿음을 통하여 명확한 성령세례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입장을 계승한 로이드존즈가 한국교회에 끼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 그는 누구든지 성령의 세례를 받을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며 또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데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갖게 된다고 했다. 또한 성령세례의 체험은 오순절 날 그러했듯이 여러 은사들을 동반할 수도 있는데,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는 다양성이 있으며 매번 정확히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을 때에 동반하는 은사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가변적인 요소들이라고 보았다.5)
이러한 역사적인 면을 볼때 19세기 케즈윅 사경회는 근대 교회의 성령사역에 있어서 매우 주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수 있다.
19세기 케즈윅 사경회를 주도한 무디, 토레이, A.B. Simpson는 성령의 능력과 사역에 대해서 근대 교회사에 분명한 이정표를 긋는 사람들이었다. 이들과 함께 동일한 선상에서 사역을 했던 토레이 성령론의 가장 주요한논리가 중생 이후 성령의 계속적인 사역에 대한 이정표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그의 여향을 받고 오순절 계통의 신학이 발전하고 있으면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많은 교회 성장을 이루는 교단으로 세워지고 있다. 그래서 토레이의 성령론이 교회 성장면에서만 보더라도(비록 지금 우리한국교회의 성장이 퇴보되는 위기상황에서만 보더라도) 우리의 흥미 이상의 주요한 관심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토레이가 주장하는 성령론의 근저를 살펴보고 우리가 얻을 소득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1. 토레이의 성령의 인격성1)
2.1.1. 성령님은 인격이시다
2.1.1.1. 성령님이 인격이시라는 사실은 사람의 지정의를 통해서 성령님의 존재를 알게 하신다
2.1.1.2. 성령님은(고전 2:10절을 인용하여)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2.2. 토레이의 성령 세례에 대한 주장
2.2.1. 성령 세례의 본질
2.2.2. 성령세례는 사람이 이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역력한 경험이다
토레이는 성령세례를 받은 개인 적인 근거에 대해서 “ 어떤 사람이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알고 싶다면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물어보고 그가 확신에 차있으며 겸손히 ‘ 받았다 ’라고 대답하는지 보라고 했다. 2)
그렇다면 아직도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주의 일꾼으로 되기에는 합당치 못한 사람이라는 주장이라면 그가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의 확신이 진실된 믿음에서 나온 것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본인은 오랜 동안 교회 생활을 하던 주요 직분자가 다른 종교로 돌아서버리던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교회를 떠나는 일을 종종 본적이 있다. 그들도 분명히 확신에 차서 성령 세례를 받은 자라고 했던 것이다.
2.2.3. 성령세례는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와는 전혀 다른 것이고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에 덧붙여서 하여 주시는 역사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에 의하여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3)
토레이는 사도행전 1:5에 근거해서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고 하신 말씀을 근거로 사도들이 아직은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것이 분명하였지만, 그 이전까지 사도들은 거듭났었기에 성령세례와 중생(거듭남)은 분명한 시간적인 차이와 구분이 있다는 것이다.
토레이는 사도행전 8장에 있는 사마리아인들 중에서 거듭난 사람이 있었지만 빌립이 세례를 주고서야 세례를 받은 근거를 들며 성령세례와 중생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 거듭난 사람은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구원 받는 것만으로는 아직도 하나님을 섬기기에는 적합하지 못하다” 고 주장하고 있다.4)
토레이는 성령세례의 주요 목적이 하나님의 사업, 즉 전도와 봉사에 그 핵심적인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성령관이 당대 무디와 같은 전도자들과 전도사역에 집중하게 하는 모티브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이 있다. 성령 세례의 목적인 전도와 봉사에 있다면 꼭 전도하지 않는 자들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전도와 봉사에 대한 열심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가능하지만 성령 세례의 결과가 교회내 전도와 봉사에 그 모든 역량이 집중된다면 대 사회적인 활동의 영역은 과연 어떻게 참여 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단지 2005년도를 살아가는 현재 우리 시대에서 바라보는 시대적인 문제라고 판단해야 할까?
2.2.4. 성령의 세례는 주로 주님을 증거하는 일과 주의 사업에 봉사하는 일에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성령의 역사이다.
토레이는 “ 성령 세례의 근본 목적은 우리 자신이 행복하게 되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사업을 하는 일에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성령 세례의 목적이 이 곳에 있음을 기뻐한다 ” 고 했다. 토레이는 성령 세례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목적은 하나님의 사업에 있음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업의 범위가 무엇인지를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토레이가 주장하는 하나님 사업의 범위는 전도와 교회 안에서의 헌신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5)
2.3. 성령 세례의 결과
2.3.1. 성령 세례의 결과로 집약할 수 있는 말은 ‘ 권능 ’이다.
사도행전 1:8에 의해서 “ 누구든지 성령 세례를 받으면 다 권능을 얻게 되는데 그 권능은 곧 하나님에게 부르심을 받은 일을 감당하기 위한 권능이다. ...... 그 사람은 반드시 그의 생활과 하나님의 사업에 봉사함에 있어서 새로운 권능을 얻게 될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토레이는 권능에 있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고린도 전서 12장에 있는 은사의 모양처럼 다른 것이라고 한다. 6)
그는 권능을 해석하는 도중 방언에 관한 내용을 해석하면서 웨슬레, 피니, 무디의 간증을 듣고 성령 세례를 받으면 그분들처럼 방언을 받는 다는 오해에 빠질 뻔 했으나 은사는 각기 다른 모양으로 나타 날 수 있음을 말하는 성경에 근거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7)
2.4. 성령 세례의 필요성
토레이는 성령 세례란 받고 안 받은 것을 알 수 있는 분명한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성령 세례는 거듭남과는 다른 그 윗 자리에 있는 것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성령 세례는 언제나 주님을 중시하는 일과 주의 사업에 봉사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으며 주요한 목적이 증거하는 일과 봉사하는 일에 있다는 것을 그는 확신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권능(=은사)을 부여 받음으로 그것을 반드시 활용해야 함을 강조한다.
2.4.1.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의 자격
토레이는 누가복음 24장 45~49절을 인용하여 “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 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 성령의 세례를 받고 확신 할때까지 결코 하나님의 사역을 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는 “ 여러분이나 나같이 평범한 사람으로 성령 세례를 받아 이를 체험하지 않고 복음 전도 사업을 착수 한다는 것은 절대로 안 될 말이다. 이것은 가장 위험한 생각이다 ”고 주장한다.8) 그는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할 지라도 성령세례를 경험하지 않은 자는 결코 사역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하고 있다.
2.4.2. 누가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토레이는 성령 세례는 모든 믿는 자들의 유업이라고 했다. 그러나 모든 신자가 다 성령 세례의 자기 유업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 유업을 구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성령 세례를 유업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2.4.3. 성령세례론 유형 분석9)
케직 사경회를 통해서 영향력을 끼쳤던 토레이와 당시 성령론자들의 유형이 어떠했고 한국교회에 어떻게 영향을 끼쳐왔는지 배본철 교수의 글을 참고해 보자.
현재까지도 ‘성령세례’에 대해서는 난해하고 다양한 해석들이 소개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주장하는 이들의 신학적 계보도 매우 복잡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교회 성령세례에 대한 역사적 분석의 과정을 통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성령세례론의 여섯 가지 유형을 정리할 수 있었다.
2.4.3.1. 봉사의 능력을 위한 성령세례
봉사의 능력(power for service)에 핵심을 둔 성령세례론은 주로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한 특색이라고 본다. 마한(Asa Mahan)은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봉사와 거룩한 삶에 있어서의 능력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피니(Charles G. Finney)도 역시 성령세례의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인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을 성취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초기 한국교회에 파송되었던 영미 선교사들에게 좀더 친숙했던 성령세례론의 영향은 무디(Dwight L. Moody)와 그의 동역자인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의 사역을 통해서도 많이 나타났다. 무디나 토레이는 신자는 봉사의 능력을 얻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0년대 이전 뿐 아니라 이후에도 한국 개혁파 신학계에서는 성령론에서 있어서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하나의 큰 노선이 있었다. 여기에 ‘봉사의 능력을 위한 성령세례’를 강조하여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설교가로는 로이드존스(D. M. Lloyd-Jones)를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는 성령세례의 주된 목적이 신자들로 하여금 권능과 담대함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토록 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이인한을 필두로 하고 차영배, 박영선, 안영복 등으로 그 계보가 이어지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노선의 학풍은 일반적으로 ‘봉사의 능력을 위한 성령세례’를 지지하고 있다.
2.4.3.2.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
웨슬리(John Wesley)로부터 출발한 완전 성화의 교리는 순간적인 체험을 통하여 신자는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성으로부터 정결하게 씻음을 받게 되고, 이 원동력은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과 봉사의 승리하는 삶을 가능케 해준다고 하였다. 이같은 전통적 입장에 새로운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선구자인 팔머(Phoebe Palmer)를 통해 ‘능력’으로서의 성령세례에 대한 강조가 많이 부가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성결은 곧 능력”이라고 했으며, “정화와 능력은 동일한 것”이라고 했다.
이 성령세례 유형은 성결교회 내에서 김상준, 이명직, 김응조 등의 저술들, 그리고 <활천>, <성결> 등의 정기간행물들을 통하여 그 전통이 계승되었다. 현재 중생 이후의 ‘제 이차적 축복’(the Second Blessing)으로서의 성결 혹은 성령세례, ‘죄성제거설’로서의 성결론, 그리고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 관념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구세군, 나사렛성결교회 등, 한국의 웨슬리안-성결 그룹들의 공식적인 교리로서 채택되어 있다.
2.4.3.3. 그리스도의 전인적 통치로서의 성령세례
이 노선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에 근거를 두었지만, 무디나 토레이와는 달리, 성령세례의 주된 목적을 그리스도에 의한 전인적 통치에 둔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보드맨(William E. Boardman)은 그리스도께 대한 온전한 헌신을 하고 난 후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는 의식적인 증거’를 얻게 되는데, 이를 그는 두 번째 회심으로서의 ‘성령세례’라고 불렀다.
이 외에도 마이어(F. B. Meyer), 머레이(Andrew Murray)와 같은 케직 운동의 지도자들 역시 ‘그리스도의 전인적 통치로서의 성령세례’를 강조하였다. C&MA의 창시자인 심프슨(Albert Benjamin Simpson)도 역시 ‘성령세례’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신자 안에 이루어주시는 성결은 성령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신자 안에 오시는 체험이며, 성결의 체험을 통해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크리스천의 생활에 능력과 승리가 주어진다고 하였다.
2.4.3.4. 중생=성령세례, 이후 성령충만
박형룡의 성령론이 <신학지남>에 실리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인데, 그는 중생한 자는 이미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러자 박형룡의 저술을 필두(筆頭)로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노선의 저술들이 신성종, 김해연, 박형용 등을 통해 한국 신학계에 잇달아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이같은 성령론 노선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외국 신학자들로는 우선 핫지(Charles Hodge)나 워필드(B. B. Warfield) 등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은 성령 은사의 중단성(中斷性)과 중생과 연관하여 성령세례의 단회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카이퍼(Abraham Kuiper), 개핀(Richard B. Gaffin), 스토트(John R. Stott) 등의 영향도 역시 이 노선에 힘을 주었다. 특히 대중적으로 국내에 큰 영향을 끼친 CCC의 브라이트(Bill Bright)나 부흥사 그래함(Billy Graham)도 역시 명확한 ‘중생=성령세례, 이후 성령충만’의 노선을 견지하였다.
2.4.3.5. 방언의 표적을 중시하는 성령세례
파함(Charles F. Parham)은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단 하나의 증거라고 최초로 강조하였다. 그의 영향력은 1901년 Topeka와 1906년 시무어(W. J. Seymour)가 이끈 Azusa 거리의 부흥에서는 물론, 현재까지 방언을 성령세례와 직결시키는 전통 오순절주의(Classical Pentecostalism) 신앙의 전 세계적 확산을 가져오게 하였다. 국내에는 하나님의성회가 ‘방언의 표적을 중시하는 성령세례’를 주장하는 전통 오순절주의의 대표적 교단이다. 이 노선의 가장 영향력있는 저자로서는 조용기를 들 수 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1960년대에 일어난 은사갱신운동은 ‘방언의 표적을 중시하는 성령세례’를 권장하지만, 그 강도가 전통 오순절주의보다는 선택적이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세릴(John L. Sherill), 베네트(Dennis J. Bennett), 맥너트(Francis MacNutt) 등의 저서들이 번역되어 일반 독자들 사이에 친숙하게 소개되었는데, 이들의 저서에서는 방언을 거의 성령세례와 동일시하는 표현이 많이 발견된다.
2.4.3.6. 중생=성령세례, 이후 은사적 성령충만
일반적으로 ‘제 3의 물결’에서는 ‘성령세례’(Baptism with the Holy Spirit) 또는 ‘성령 안에서의 세례받아지는 것’(being baptized in the Holy Spirit)이라는 용어 대신, ‘성령충만’(filled with Holy Spirit) 또는 ‘성령에 의한 능력의 덧입힘’(empowered by the Holy Spirit)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그 이유는 제 3의 물결 운동가들은 대부분 회심과 성령세례가 동시적 경험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중생하게 될 때 성령께서 내주하시지만, 저절로 그분의 능력과 은사들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노선은 ‘중생=성령세례, 이후 성령충만’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개혁주의신학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그러나 반면에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크게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개혁주의신학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앞으로 ‘제 3의 물결’에 대한 개혁주의신학의 평가와 적용이 어떻게 진전될지 기대가 된다. ‘제 3의 물결’은 국내에 잘 알려진 윔버(John Wimber), 와그너(Peter Wagner), 크래프트(Charles H. Craft), 힌(Benny Hynn) 등의 사역과 저서의 영향으로 현재 많은 독자층과 지지자들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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