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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의사(구원론)

조엘 비키의 '칼빈주의'의 속죄의 범위

조엘 비키의 '칼빈주의'의 속죄의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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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속죄의 범위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보장하기 위해 돌아가신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사람들의 구원을 보장하기 위해 돌아가신 것인가? 이러한 속죄의 범위는 도르트 종교회의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쟁점이었으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논쟁적인 사안이다.

1. 속죄의 구심성
 “속죄하다”라는 것은 ‘하나가 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속죄와 보혈을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이 화목되는 것이다.
 칼빈주의자: 그리스도께서 오직 택한 자들만을 위해 돌아가셨음을 믿는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비구원적이며 간접적인 유익이 저절로 불신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을 부인한다.
 알미니안주의자: 그리스도께서 보편적으로 만인을 위해 죽으셨다고 믿는다.

2. 속죄의 범위에 대한 견해
1) 만인구원론
- ‘무제한적이고도 보편적인 구속’
-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자 모든 사람을 위해 그리스도를 돌아가시게 한 것, ‘보편구원론’, ‘만인구원론’
- 영원한 지옥의 교리 배격. 하나닝믜 거룩한 사랑이 영원한 형벌을 면제시킨다고 주장.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와 그의 제자 오리겐(Origen)이 주장. 오리겐은 심지어 마귀들도 궁극적으로는 구원받을 것이라고 주장.
- 1803년 미국의 보편구원교회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본질상 사랑이신 하나님 한 분만이 계심을 믿는다. … 그리고 그분께서 모든 인류를 거룩과 행복으로 회복시키실 것을 믿는다.”

만인구원론에 대한 반론
- 예수님은 영원한 지옥 교리를 확증하셨다(마 12:32; 13:40-42,49,50; 25:41,46; 막 9:44-48; 눅 12:4,5).

2) 알미니안주의의 보편구원론
- ‘제한적인 보편적 속죄’
- 속죄가 그 계획에 있어서는 우주적이지만 성취에 있어서는 제한적. 즉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셨지만,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믿을만한 충분한 은혜가 주어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않아서 속죄의 유익과 혜택들을 받지 못한다.
- ‘항의자들의 다섯 가지 교리’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과 만인이ㅡ 구속과 죄 용서를 획득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러나 … 신자 이외에는 그 누구도 이 죄의 용서를 실제로 즐거워할 수 없다.”

알미니안주의에 대한 반론
- 레이몬드 블랙키터(Raymond Blacketer)는 이렇게 말한다. “알미니우스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은 그 어떤 사람들이나 단체들에게도 아무런 구원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대신 그것은 오직 구원을 가능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십자가는 결과적으로 인류와 새로운 관계로 진입하는 권리를 가지고 계신 하나님과 관련하여 인간에게 새로운 법적 상황을 가져올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제공해 주신 보편적 은혜를 사용하여 그 믿음의 단계를 취한 각 죄인들에게 달려 있다. 구원의 결정적인 요인은 그 도우시는 은혜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있는 것이다.”

3) 아미랄디안주의의 전제적 보편구원론
- 모이스 아미라우트 (Moise Amyraut)가 주창.
- 그리스도께서 전제적으로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을 잘 아셨기 때문에 몇몇 사람을 믿음으로 선택하셨고 성령께서 그들에게 믿음을 주고 구원을 적용하신다.
- 속죄의 처음 의도와 구원의 적용이 사뭇 다르다.
- 알미니안주의와의 차이점: 아미랄디안 주의에서는 하나님의 선택이 한정적이지만 알미니안주의에서는 믿는 자의 선택이 한정적이다.

전제적 보편구원론에 대한 반론
-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은 체계이다.

4) 칼빈주의의 제한 속죄
- 도르트 종교 회의는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공된 만족과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지만, 그것을 제공받는 대상은 모든 죄인들이나 모든 개인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원부터 선택하신 사람들이다.”
- 성부께서는 택자들의 죗값을 지불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로 보내셨다.
-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범위는 그 의도와 성취에 있어서 구원받을 사람들만으로 제한되어 있다.
-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단순히 죄인들이 구속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죄인들을 구속하시는 것이다.
- “그의 아들의 가장 소중한 죽음으로 다시 살리시는 구원적 유효성이 반드시 모든 택함받은 자들에게 미쳐야 하는 것과, 오직 그들에게만 의롭다 하시는 믿음의 선물을 수여하고 그것을 통해 그들을 통해 반드시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은 하나님의 가장 은혜로운 뜻과 목적이다.” (도르트 신조 제8항 표제 2번)
-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 온 세상의 모든 죄를 속죄하기에 충분할 만큼 무한한 가치와 효력을 지닌다.” (도르트 신조 제3항 표제 2번)
- 도르트 신조는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이 오직 택함받은 자들에게만 유효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만인을 위해 충분한 것임을 확증한다.
-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 자체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충분한 것이지만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신 것은 아니다.

3. 알미니안 주의의 보편구원론의 문제점들
1) 하나님의 속성을 훼손한다
- 하나님의 사랑을 훼손한다. 알미니안주의는 실제로 아무도 구원하지 못하는 사랑을 제시한다. 이 사랑은 거절당했을 경우에 증오와 분노로 바뀌는 사랑이며,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불변하는 사랑이 아니다.
- 하나님의 지혜를 훼손한다.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고는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신다는 말인가? 아니면 구속을 계획하고 제공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그의 구속이 받아들여질지 않을지를 아실 수 없다는 말인가?
-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훼손한다.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공로적 국면을 성취하실 수 있는 능력자이시지만 그 적용적 국면은 인간과 그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믿으라고 요구한다. 그러므로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일을 하시고 이제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몫을 해야 한다.”
- 하나님의 공의를 훼손한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형벌을 내리실 수 있다는 말인가? 이중적 형벌은 불의한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신성을 무력화한다
 알미니안 주의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께서 위해서 죽으신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과 유효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을 훼손한다
- 성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부인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로부터 그리스도를 분리시킨다. 그러나 대속적 죽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소죄와 제사장적 중보는 동연적이며 동시적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는데도 오직 몇 사람만을 위해 중보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요17:2,4,6,9,12,20,24)
- 성령의 구원사역을 부인한다. 알미니안 주의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성령의 구원사역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연합과 모순된다.

4) 칼빈주의의 5대 교리를 부인한다
- 전적 타락 교리를 배격한다. 인간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가르친다.
- 무조건적인 선택을 부인한다.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보다 강하다고 가르친다.
- 성도의 견인을 부인한다. 인간이 믿음으로부터 배교하고 떠어져 나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5)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다
 만일 하나님께서 구원에 관한 많은 일을 하시지만 모든 일을 다 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그 부족함을 메우는 인간이 어느 정도의 영광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여 그것이 없이는 구원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완전하고도 완벽한 구원을 제공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은 높임을 받지 못할 것이다. 고린도전서 1장 18-31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구원의 다리를 완성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9).

6)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확신을 훼손한다
 만일 구원이 내가 결단하고 선택한 것이라면 내가 성취한 일에 대해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는가?

7) 복음전도를 왜곡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전도 메시지를 끊임없이 듣는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당신은 그를 위해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참된 복음의 메시지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하여 죽으셨음을 믿으라” 또는 “당신이 택함받은 자 가운데 하나임을 믿으라”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이다.

8) 속죄의 본질적인 유효성을 훼손한다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사역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예수님이 성취하신 완전한 만족을 은혜롭게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알미니우스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의의 보좌에서 은혜의 보좌로 옮겨 가셨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 개의 다른 보좌를 가지고 계시지 않으며, 그분의 의의보좌가 곧 그분의 은혜의 보좌이다(시 85:10).

 존 오웬은 알미니안주의의 견해가 얼마나 궤변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께서는 마땅한 진노를 발하셨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위해서, 또는 어떤 사람들의 모든 죄를 위해서, 또는 모든 사람들의 어느 정도의 죄를 위해서 지옥의 고통을 겪으셨다. 만일 제일 마지막 경우처럼 모든 사람들의 어느 정도의 죄를 위한 것이라면, 모든 사람들은 어느 정도 해결해야 할 죄를 그대로 지닌 것이 되기 때문에 결코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지지하고 확증하는 두 번째 경우라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사람들의 모든 죄를 위해 그들을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고 돌아가신 것이 된다.

 만일 첫 번째 경우라면, 도대체 왜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인가? 아마도 당신은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다. 그들이 믿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불신앙은 죄인가, 아닌가? 만일 죄가 아니라면 그들은 왜 그 불신앙 때문에 형벌을 당하는 것인가? 만일 그것이 죄라면,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형벌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 아니란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왜 유독 이 불신앙의 죄가 그리스도의 죽음의 열매가 그들에게 적용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인가? 만일 그리스도께서 불신앙에 따른 마땅한 형벌을 위해 고난을 받고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모든 죄를 위해 돌아가신 것 역시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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