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의 성령론에 관한 문답1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에 관한 문답
이 글은 다음 카페 '청교도를 사랑하는 모임'에 내가 올린 질문과 카페장이신 김 목사님의 답변을 그대로 올린 것이다.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http://blog.naver.com/jtl79/1500312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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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 곳 말고도 다른 개혁주의 클럽에다가도 똑같은 질문을 올렸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론에 관한 것입니다.
흔히 개혁주의에서는 중생이 곧 성령세례(중생=성령세례)라고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개혁주의 신학을 가졌다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께서는 오순절파의 성령론과 일치하는 주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 의하면, 중생은 예수를 믿을 때 한 번 있는 일이고, 성령세례(능력세례)는 그 외의 것이다...라고 하는 듯 합니다.
이것은 제2성령세례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것 같은데, 오순절파의 주장과 완전히 같은 것 아닌가요?
거기다가 오순절 성령강림의 단회성을 부정하는 것도 대부분의 개혁주의자들의 견해와 완전히 다릅니다.
이것 때문에 당시에나 지금이나 엄청난 논쟁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론 견해가 망령된 것이라는 강한 비판도 있습니다.
특히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주저, '성령세례'를 읽어보면 '성령세례를 받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라는 내용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이러한 파격적인 견해와 논쟁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러분들의 견해를 알고 싶습니다.
참고로 저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닌, 많은 견해를 알고 배우려고 합니다.
2008. 2. 1
답변)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론에 대해서도 예전부터 말이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그의 성령론과 로마서 7장의 "곤고한 나"에 대한 해석-- 즉 이사람이 과연 거듭난 사람인가 아니면 거듭나지 않았음에도 히브리서 6장 2절 이하에 나온 성령의 특별역사를 체험한 사람인가 -- 을 포함한 이 두가지는 늘 논쟁의 축에 있어왔습니다.
좌우지간 성령론에 대해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론의 전제에 대해 미리 말한다면,
목사님은 단회적인 성령 세례를 부인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성령론에 대해 쉽게 판단하면서 무조건 비판할 것이 아니라, 자세히 살펴보면, 유익한 부분이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강조점은 성령세례를 오순절파와 같은 맥락이 아닌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이나 오순절파와 같이 성령세례를 어떤 표적의 나타남을 동반한 것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의 1949년의 체험에 근거한 것으로, 이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표적이나 성령의 초자연적인 발생이 아니라,
특별히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관련된 것입니다.
2003년이었던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존 파이퍼 목사님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체험에 대해 특별히 강연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강연에서 아주 잘 정리되어 있었는데, 쉽게 말하자면 이 성령세례는 전에는 알 수 없었던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단지 어떤 뜨거운 체험이 아니라 이전에도 없었고, 어쩌면 앞으로도 없을 엄청난 하나님의 현시와 같은 임재와 사랑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체험은 단지 그 영혼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는 것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그 사람의 영혼에 하나님의 양자됨을 노골적으로 성령을 통해 각인시켜주시는 체험입니다.
이 때 영혼은 크게 기뻐하며, 일종의 엑스터시 같은 천상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 체험은 또한 동시에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진리의 내적 능력과 말씀의 뜻을 더 깊이 더 자세히 깨닫게 해주는 결과도 낳습니다.
개혁주의 입장에서는 성령세례는 오순절 때 이미 부어진 것이고, 그 이후로는 성령의 충만만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 성령의 충만의 극대화를 성령세례라고 명칭하는 것 같습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목사님의 입장은 오순절 날의 성령세례의 "부어짐"의 연속성을 인정하되, 강조점에 있어서 오순절날의 노골적인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의 체험-이것은 곧 능력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써-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어쨋든 목사님이 성령세레를 "제2의 축복"으로 인정한 것은 사실입니다. 표현만 따지고 보면 오순절파의 표현과 ㅏㅌ습니다.
저의 입장은 개혁주의 입장입니다. 성령세례가 부어진 것은 오순절 날에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그 이후에는 또 다른 부어짐이 아닌 충만의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도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강조하신 성령의 "부어짐"의 연속성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도 과거에 목사님의 성령론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어서 여러 자료에 접근해보니 일치하는 것이 있더군요.
과거에 지금 현재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테잎 및 CD와 라디오를 이끌고 있는 담당자인 영국의 Tony Rustin에게도 직접 메일을 통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론에 대해서 재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로마서 7장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비록 읽어보면 충분히 공감할 만하고 매혹적인 해석임에도 불구하고 동의할 수 없는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2008. 2. 6
이 글은 다음 카페 '청교도를 사랑하는 모임'에 내가 올린 질문과 카페장이신 김 목사님의 답변을 그대로 올린 것이다.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http://blog.naver.com/jtl79/1500312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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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 곳 말고도 다른 개혁주의 클럽에다가도 똑같은 질문을 올렸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론에 관한 것입니다.
흔히 개혁주의에서는 중생이 곧 성령세례(중생=성령세례)라고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개혁주의 신학을 가졌다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께서는 오순절파의 성령론과 일치하는 주장을 하는 것 같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 의하면, 중생은 예수를 믿을 때 한 번 있는 일이고, 성령세례(능력세례)는 그 외의 것이다...라고 하는 듯 합니다.
이것은 제2성령세례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것 같은데, 오순절파의 주장과 완전히 같은 것 아닌가요?
거기다가 오순절 성령강림의 단회성을 부정하는 것도 대부분의 개혁주의자들의 견해와 완전히 다릅니다.
이것 때문에 당시에나 지금이나 엄청난 논쟁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론 견해가 망령된 것이라는 강한 비판도 있습니다.
특히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주저, '성령세례'를 읽어보면 '성령세례를 받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라는 내용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이러한 파격적인 견해와 논쟁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러분들의 견해를 알고 싶습니다.
참고로 저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닌, 많은 견해를 알고 배우려고 합니다.
2008. 2. 1
답변)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론에 대해서도 예전부터 말이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그의 성령론과 로마서 7장의 "곤고한 나"에 대한 해석-- 즉 이사람이 과연 거듭난 사람인가 아니면 거듭나지 않았음에도 히브리서 6장 2절 이하에 나온 성령의 특별역사를 체험한 사람인가 -- 을 포함한 이 두가지는 늘 논쟁의 축에 있어왔습니다.
좌우지간 성령론에 대해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론의 전제에 대해 미리 말한다면,
목사님은 단회적인 성령 세례를 부인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성령론에 대해 쉽게 판단하면서 무조건 비판할 것이 아니라, 자세히 살펴보면, 유익한 부분이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강조점은 성령세례를 오순절파와 같은 맥락이 아닌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이나 오순절파와 같이 성령세례를 어떤 표적의 나타남을 동반한 것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의 1949년의 체험에 근거한 것으로, 이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표적이나 성령의 초자연적인 발생이 아니라,
특별히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관련된 것입니다.
2003년이었던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존 파이퍼 목사님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체험에 대해 특별히 강연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강연에서 아주 잘 정리되어 있었는데, 쉽게 말하자면 이 성령세례는 전에는 알 수 없었던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단지 어떤 뜨거운 체험이 아니라 이전에도 없었고, 어쩌면 앞으로도 없을 엄청난 하나님의 현시와 같은 임재와 사랑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체험은 단지 그 영혼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는 것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그 사람의 영혼에 하나님의 양자됨을 노골적으로 성령을 통해 각인시켜주시는 체험입니다.
이 때 영혼은 크게 기뻐하며, 일종의 엑스터시 같은 천상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 체험은 또한 동시에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진리의 내적 능력과 말씀의 뜻을 더 깊이 더 자세히 깨닫게 해주는 결과도 낳습니다.
개혁주의 입장에서는 성령세례는 오순절 때 이미 부어진 것이고, 그 이후로는 성령의 충만만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 성령의 충만의 극대화를 성령세례라고 명칭하는 것 같습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목사님의 입장은 오순절 날의 성령세례의 "부어짐"의 연속성을 인정하되, 강조점에 있어서 오순절날의 노골적인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의 체험-이것은 곧 능력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써-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어쨋든 목사님이 성령세레를 "제2의 축복"으로 인정한 것은 사실입니다. 표현만 따지고 보면 오순절파의 표현과 ㅏㅌ습니다.
저의 입장은 개혁주의 입장입니다. 성령세례가 부어진 것은 오순절 날에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그 이후에는 또 다른 부어짐이 아닌 충만의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도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강조하신 성령의 "부어짐"의 연속성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도 과거에 목사님의 성령론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어서 여러 자료에 접근해보니 일치하는 것이 있더군요.
과거에 지금 현재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테잎 및 CD와 라디오를 이끌고 있는 담당자인 영국의 Tony Rustin에게도 직접 메일을 통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론에 대해서 재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로마서 7장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비록 읽어보면 충분히 공감할 만하고 매혹적인 해석임에도 불구하고 동의할 수 없는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2008.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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