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를 위해 그리고 구분을 쉽게 하기 위해 저의 글은 파란색으로 쓰겠습니다.
아래의 글은 이희석형제님이 지퍼브에 올린 글입니다. 이 글밑에 제가 덧글을 달았는데 덧글을 새글로 올리기 위해 퍼왔습니다.
이번 성령세례에 대한 이해될만한 좋은글이기에....
이희석 2005.02.24 11:03:46 hit : 17
http://cafe.Godpeople.com/gpub/?B14-4980
순칼지모카페에 올라온 좋은글이 있기에 퍼옴니다. 참고하세요
저도 로이드 존스의 성령세례 책이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가 말하는 성령세례는 기존 칼빈에서 말하는 성령세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서 혼돈할 수 있을텐데요? 로이드 존스가 말하는 성령세례는 지금 현재 개혁교회에서 말하는
성령의 능력세례를 말하는 것이라고 역자 서문에 적혀 있던데요..
즉 로이드존스의 성령세례에 대해 역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성령에 의한 세례(로이드존스)--------중생(공통)-------성령세례(개혁주의)
성령의 생활충만(공통)
성령세례(로이드존스) --------------------- 성령의 능력 세례(개혁주의)
성령의 능력충만(공통)
이렇게 역자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먼저 역자 서문에 알려주고 있습니다.
위의 말이 오해가 될까봐 역자는 말합니다. 오순절이 되기 전에 제자들은 거듭나(중생)있었고 이는 성령의 기본세례
(성령에 의한 세례-로이드존스/성령세례-개혁주의)를 받은 상태이고 개혁주의에서는 이상태를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고 주장하나 로이드 존스는 성령에 의한 세례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역사 서문에..
1. 로마교의 견진성사는 개인의 중생과 성령세례를 분리한다.
2. 오순절교파도 역시 개인의 중생과 성령세례를 분리한다.
3. 로이드 죤스도 역시 개인의 중생과 성령세례를 분리한다.
->(로이드 죤스는 개인의 중생과 성령의 능력세례를 분리한다)-> 개혁주의 문장으로 해석
->(로이드 죤스는 개인의 중생과 성령세례를 분리한다)---> 로이드 존스의 문장으로 기술.
--------------------------------
위의 이 부분이 잘못되었습니다.
로이드 존스는 개인의 중생과 성령의 능력세례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단지 단어 사용을 로이드존스가 개혁주의쪽과 다르게 의미를 두고
사용하기에 오해를 했다고 봅니다.
로이드 존스는 개혁주의의 성령세례의 의미는
성령에 의한 세례라고 불렀고
진정한 성령세례라는 단어는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성령의 능력세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오순절에서 공부한 제가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만 오순절 사람들이 로이드존스를 반갑게 여긴것은
사실이나 로이드 존스는 오순절 사람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의 책을 읽어보면 방언이야기
때문에 오순절 목사들이 로이드 목사님도 저희와 같은 생각이시죠? 하고 신나하는 그들에게 나는 성령세례를
받는 증거로 방언을 해야한다고 하지 않았소! 라며 그들과 함께 치부되기를 싫어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해석을 하는 이유는 그의 책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성경의 가르침으로 판단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가 좋아하는 것으로
출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특별한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너무 고상하여 고상한 것만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은..... 그래서 우리가 만일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좋아하는것, 우리가 경험한 것으로
출발한다면 우리는 이내 잘못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신약성경과 그 교훈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조창훈님과 비슷한 의도입니다. 그렇다면 개혁주의 성령세례론을 지지하는 분의 결론을 볼까요?
솔직히 말해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비록 글의 방법이 전통적인 견해 즉 개혁주의자들의
견해에 따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견해 역시 모두 옳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혁주의자들의 견해를 보면,
첫째로,체험을 너무 무시한다.이에 대해서는 개혁주의 내에서도 많은 지적이 나오고 있고,오순절로부터도 가정 공격을
많이 받는 것 중의 하나이다.
둘째로,신자들의 영적인 고통을 너무 도외시한다.오순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그만큼 시원한 대답으로 영적
고통의 문제를 잘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세째로,교회의 영적인 침체이다.영적고통이 개인의 문제라면 영적침체는 현대교회,특히 개혁주의의 고민거리이다.
네째로,성령세례의 유사개념이다.오순절주의자의 성령세례의 의미와 유사한 개념,즉 전통개념의 성령충만보다 더 깊고
뜨거운 영적 체험의 상태를 전통견해자들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이것을 Stott와 홍정길 목사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라고
설명한다.물론 완전하게 인정은 안하지만 은근히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개혁주의의 견해에 몇몇 모순점이 발견되지만 따르게 되는 것은 오순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크기 때문이다.물론 오순절운동이 성령론에 대한 무관심을 깨트렸고,타락되는 교회를 갱생시켰으며 기존 교단의
침체와 무감각을 깨우치는 계기가 된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이론에는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이 뒤따른다.
첫째,오랜 동안의 기독교 역사가 소위 성령세례적 은사와 방언에 의해서 유지된 적은 없다.그것은 방언과 은사가 아닌
보혜사의 인도하심 때문이었다.
둘째,삼위일체중 성령의 사역만을 강조하고 있다.
세째,체험을 너무 강조하므로 유치하고 천박하다.
네째,체험을 강조하지만 자기네 것만 내세운다.
다섯째,성령충만을 감격 일색으로 대치하려 한다.
어느 쪽의 견해가 옳으냐 하는 이 문제가 확실히 해결되자면 많은 연구의 땀을 퍼붓는 다 할지라도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왜냐하면 이 문제의 답은 '연구'보다는 '시간'에 달려있을테니까.아니 어쩌면 주님이 오실 그 때까지도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내게 굳이 한 쪽의 견해를 택하라고 한다면 내 좁은 지식으로 바라보고 연구한 결과 성경에 비추어
볼 때,비록 모순점은 있지만,좀더 성경의 진리에 가까운 전통적인 견해 즉 성령세례는 곧 중생이며 성령충만과는
구별되어진다는 성령론을 택하면서 이 글의 결론을 맺고자 한다.
저도..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그만 두려고 합니다. 생산성이 없어서.. 하여간에 조창훈님의 그 열심있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p.s 존오웬은 중생을 언급할때 성령세례라는 단어를 쓴적도 없군요. 단지 성령에 의한 부으심과
주예수그리스도에 의한 부으심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02.2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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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저희 까페의 바로미라는 윤영상목사의 글입니다.
윤영상목사가 처음에는 존오웬이 중생과 성령세례가 분리된다고 주장했다고 하다가 제가 어디서 그렇게 말했느냐고
하니까 이제는 존오웬이 그러한 단어를 쓴적이 없다고 쓰는군요. 그리고 또 성령에 의한 부으심과 주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부으심을 구별한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어디서 그런가요? 그래야 확인해 볼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글을 쓸때는 근거를 정확히 해야 합니다.
위의 글에 대해.. <1> 성령에 의한 부으심과 예수그리스도에 의한 부으심을 구별한다는 것을 먼저 설명 드리겠습니다.
<2>는 존 오웬이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했는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성령에 의한 부으심과 예수그리스도에 의한 부으심을 구별한다는 것에 대해.
---> 저의 덧글을 복사해왔습니다.
| 바로미 |
존오웬의 성령론의 뒷부분 부록에 있는 글입니다. /보혜사로서의 성령의 역사/ 2. 성령의 기름 부으심. -->
믿는 사람들이란 거룩한 자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다. (요2:27)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과
물건에 물질적인 기름을 부었다. 왕들, 제사장들, 선지자들, 성소, 제단,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기구들 위에
기름을 부었다. 이 모든 것들은 장차 오실 것의 전형적 예표이다. 이것은..... 생략..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기름 부음을 받는다.-너희는 거룩한 자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는다
그래서 예수님을 거룩한 자라고 칭하고 있다(행3:14; 계3:7; 단9:24). 믿는 사람들이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은
성령의 교통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거룩한 자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효과가 있다. 첫째는 우리들 마음 속에 구원받은 영원한 진리의 지식을 알게 되는 것이다. .....
이것은 우리들이 복음의 모든 근본과 본질적인 진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8). 고
하였다. 따라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기름부음을 받으심으로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한다(사11:3). /...둘째로 믿는 사람들이 왕들과 제사장들이 되는 것이다(계1:5). ......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그들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안정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모든 속임수를 물리치고
진리 안에 서 영구 불변의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 밖의 목적은 없다. ...../
그러면 기름을 붓는 목적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1. 기름부음의 교리의 본질을 가르치는 것은 외적인 교훈과 내적인 교훈, 그리고 성령의 유효적
역사를 가르치는데에 있다.====> 존 오웬의 성령론의 한 부분입니다. 02.22 22:58  |
조창훈 형제님이 책을 많이 읽으신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떠한 식으로 읽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정상적으로 글을 읽었다면 위의 제가 덧글단 것을 읽고도 모르겠다고 하지는 않을텐데요? 위의 글을 읽으시고도
조창훈님은 그동안 덧글로 저와 대화를 나누면서 정리하며 위에서 다시 질문하는 것이 아래와 같습니다.
"그리고 또 성령에 의한 부으심과 주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부으심을 구별한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어디서 그런가요?" |
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저는 분명히 존 오웬이 성령에 의한 부으심과 주예수그리스도에 의한 부으심을 구별하는
존 오웬의 글을 저는 위의 덧글와 같이 그 부분을 분명히 덧글로 올렸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기름 부음을 받는다.-너희는 거룩한 자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는다 그래서
예수님을 거룩한 자라고 칭하고 있다(행3:14; 계3:7; 단9:24). 믿는 사람들이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은 성령의 교통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거룩한 자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 |
저는 조창훈님의 의도와 똑같이 적용하여 다음과 같이 질문하겠습니다. 조창훈님은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로이드 죤스의
해석과 용어가 다르든지 간에, 실제로 결국에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분리한다는 면에서의
동일성만을 말한 것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창훈님의 말도 안되는 이론입니다. 어떻게 개혁주의 해석의 중생과 성령세례가 분리가 됩니까?
로이드존스식 해석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어떻게 중생과 성령에 의한 세례(성령의 기초 세례)가 분리가 됩니까?
그러나 조창훈님은 개혁주의의 시각으로 계속 로이드존스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
로이드존스의 시각으로 읽어보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고, 단지 과연
성령세례라는 단어를 저렇게 바꾸어 사용해도 되는가라는 문제점만을 지적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조창훈님은 큰 실수를 하는 것이
중생과 성령의 충만 가운데 어떠한 특별한 사역을 받는 성령의 능력 부으심을 동일시 하는 결과가 되어 버렸다는것입니다.
조창훈 형제님은 계속적으로 말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중생은 곧 성령세례를 뜻하는 것이다.
누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네 맞습니다. 그것은 로이드존스도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런데 그가 지금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과연 성령세례라는 용어가 합당하냐고 지금 질문하고 성령세례가 성경에서 어떻게 쓰였는지를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뜻으로
"신약 성경을 액면 그대로 취하십시오~" 라며 p19 에서 전제로 하며 들어갑니다.
|
로이드존스(성령세례) |
존 오웬(개혁주의 성령론) |
p22
"성령의 세례란 성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행해지는 어떤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리라" 성령의 세례는 원초적으로 성령의 어떤 사역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 그것은 주 예수님의 사역
곧 그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는 어떤 것 혹은 특수하게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심 입니다.
|
p516-517
믿는 사람들이란 거룩한 자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다.
(요2:27)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과 물건에
물질적인 기름을 부었다. 왕들, 제사장들, 선지자들, 성소,
제단,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기구들 위에 기름을 부었다.
이 모든 것들은 장차 오실 것의 전형적 예표이다. 이것은.....
생략..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기름 부음을 받는다.-너희는 거룩한 자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는다 그래서 예수님을
거룩한 자라고 칭하고 있다(행3:14; 계3:7; 단9:24). 믿는 사람들이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은 성령의 교통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거룩한 자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 |
위 두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조창훈님은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분명히 두 사람은 성령의 사역(성령께서 부어주심)과 주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주예수그리스도의 부어주심)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아니라고 말하시렵니까? 의미가 다르다고 하실렵니까? 로이드 존스가 말하는 성령세례의
의미는 상관하지 않고 단지 한글단어 "성령세례"에 초점을 맞추셨으니 그러한 관점에서 위의 것도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로이드 존스: "성령의 세례란 성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행해지는 어떤 것이라는 것입니다."
존 오웬: 우리는 성령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거룩한 자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
----------> 무엇이 틀립니까? 아직도 존 오웬이 그런 주장한적이 없다고 하실 수 있습니까?
이 두 사람의 공통된 견해가 아직도 이해가 안되십니까?
저도 얼마든지 조창훈님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로이드 죤스의 해석과 용어가 다르든지 간에,
실제로 결국에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분리한다는 면에서의 동일성만을 말한 것뿐입니다. |
| 두 사람이 말하는 구별이 어떤 의미이건 간에 서로 다르든지 간에,
실제로 결국에는 성령의 사역과 주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구별하는 것을 말하는 것 뿐입니다. |
자 아직도
윤영상목사가 처음에는 존오웬이 중생과 성령세례가 분리된다고 주장했다고 하다가 제가 어디서 그렇게 말했느냐고
하니까 이제는 존오웬이 그러한 단어를 쓴적이 없다고 쓰는군요. 그리고 또 성령에 의한 부으심과 주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부으심을 구별한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어디서 그런가요? 그래야 확인해 볼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글을 쓸때는 근거를 정확히 해야 합니다.
라고 주장하시겠습니까? 확인해 보셨으니 이제 되었습니까? 존 오웬이 같이 로이드존스와 성령의 사역과
주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구별하자 그것이 성령 자체를 말하는 것이라고요?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조창훈님도 로이드존스가 어떤 뜻에서 성령세례를 말했는지 전혀 상관하지 않으시지 않았습니까?
로이드존스가 말하는 성령세례의 뜻이 무엇이고 그것이 무엇입니까?
왜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마치 개혁주의의 관점인 중생을 의미하는 성령세례를
마치 로이드 존스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했다는 식의 오류를 범하십니까?
로이드존스가 언제 성령세례가 중생을 의미한다고 말한 적이있습니까? 그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지금 책을 읽었냐 안읽었냐를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로이드 존스의 책을 읽었다면
그가 말하는 성령세례가 개혁주의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성령세례의 의미와 전혀 다른 뜻이라는 것을 알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상관없다고 하며 결국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했다고 주장합니다.
분명히 로이드 존스는 p 22 에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며 새생명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난 사람입니다" 라고 분명히 말을 하며 p23 중반부에 말하기를 "고린도전서 12:13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한 성령에 의해서 세례를 받아...
물론 우리는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마치 중생이 성령의 사역이듯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세례 받는 것 역시 성령의 사역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다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중생 성령의 내주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어떤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p. 53
"여러분은 성령세례나 성령의 충만함이 모두 화려한 표적들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성령의 초기 세례는 아마 고요하며 무감각했는지 모릅니다. |
로이드 존스는 분명히 말하길 중생 을 성령의 내주 라고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이 성령의 내주를 성령에 의한 세례라고 위에서 말합니다. 그리고
뒤에가서는 중생을 성령의 초기 세례 라고 말합니다.
아직도 정원태 교수가 자기 생각을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조창훈님은 당연히 로이드 존스가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로이드 존스가 중생을 의미하는 성령세례를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까?
<2> 존 오웬은 중생과 로이드 존스가 말하는 성령세례를 구분을 했는가?
조창훈님이 제가 로이드존스의 성령의 부어주심과 예수그리스도의 부어주심을 구별하듯이 존 오웬도 구별한다는
본문을 올렸더니 이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 조창훈 |
바로미님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신는지요. 죤 오웬이 말하는 기름부음은
단순히 성령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바로님이 인용하시는 글은 제가 위와
쓴 글과 전혀 상관이 없는 내용입니다. 오히려 로이드 죤스나 오순절파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제가 다시한번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어디서 죤오웬이 중생과 성령세례가 분리된다고
하는 주장을 하나요? 제발 그냥 저의 견해를 반박하려고만 하지말고 또한 논점과 상관없는
주제로 말씀하지 마시고, 정확히 이부분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견을 가지지 마시고,
글 자체와 글 내용을 살피시기 바랍니다. 02.23 12:57  | |
존 오웬이 말하는 기름부음이 단순히 성령자체를 의미한다... 이것이 과연 맞을까요? 영적사고방식에서도 분명 존 오웬이
경고한 것이 제3위 성령자체를 의미하는 것인지, 성령의 능력이나 영향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구분하라고
한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그리고 본 존 오웬의 성령론에서도 이부분에 대해 한 차례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 타이핑을 하지 못해서 저의 글만 읽고 해석한 소리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글 바로 전에 존 오웬은 성령의 내주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즉 성령의 내주와 성령의 기름부음을 따로 구별하여 기술하고 있고 저는 2번째인 성령의 기름부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제가 언급해야 겠습니다. 조창훈님은 제가 한 말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글을 올리셨더군요.
윤영상목사가 처음에는 존오웬이 중생과 성령세례가 분리된다고 주장했다고 하다가 제가 어디서 그렇게 말했느냐고
하니까 이제는 존오웬이 그러한 단어를 쓴적이 없다고 쓰는군요 |
네... 그렇습니다. 한글 단어인 "성령세례"가 액면 그대로 적혀 있어야 조창훈님이 이해를 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로이드존스의 성령세례라는 단어의 의미보다는 그 단어의 위치만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기에 존 오웬이 말하는
성령세례라는 단어를 뜻하는 내용 말하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즉 쉬운말로 하면 조창훈님은 존 오웬의 성령론 책에 "성령세례"라는 의미는 있어도 "성령세례"라는 글자가 없으면
부인하는 그러한 사람으로 저에게는 비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위에서도 언급했습니다.
로이드 죤스의 해석과 용어가 다르든지 간에,
실제로 결국에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분리한다는 면에서의 동일성만을 말한 것뿐입니다.
라고 말한 것 때문입니다.
즉 성령세례라는 단어 없이 중생에 대해서만 책을 쓴다면 조창훈님은 성령세례에 대한 책이 아니다! 라고
치부할 것으로 저는 지금 인식이 되어있습니다.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갑자기 그러한 생각이 들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의 이러한 생각이 빨리 사라졌음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존 오웬의 문장과 로이드존스의 문장과의 유사점을 찾아보겠습니다.
성령세례라는 한글단어를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생에 대해 성령세례라는
단어가 없으니 그럼 성령세례는 중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
로이드 존스 |
존 오웬 |
p22
분명히 누구든지 성령의 내주하심이 없으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분명히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여러분은 신자일 수 있고, 성령을 모시고 있으면서도(내주) 여전히 성령으로 세례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것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일 곧 죄를 깨닫게 하시며 빛을 비추시며 거듭나게 하시는 일 등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사역입니다.
성령의 세례란 성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행해지는 어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중생 성령의 내주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어떤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p 61 우리에게 일어난 어떤 일
약 9시15분 전에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고 있던 그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마음 가운데에 역사하시는 그 변화를 설명하는 동안 나는 내 마음이 왠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구원받기 위해서는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믿어야 한다고 느꼈으며, 또한 그분이 내 죄를 그리고 나 자신조차 옮겨 버리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나에게 주어졌습니다.
p77 성령의 충만
성령세례의 첫번째 결과는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우리 위에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에 대한 체험적 증거입니다. 그것이 성령세례입니다. ..... 에베소서에서 우리에게 어떤 것을 행하라는 권고가 있음에 반하여, 성령세례의 각각의 경우에 있어 그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억제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성령 세례를 위해 기도할 수 있지만 여러분 대다수가 알고 있듯이 그것이 발생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선한 생활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산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p 81
하나님의 사랑?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세례입니다. 그것은 선하고 정상적이며 일반적인 사역자였던 무디를 이 나라와 다른 나라들에 있어 하나님께서 그처럼 두드러지게 사용하신 복음 전도자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p 131 제8장
우리는 성령세례의 큰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큰 구원을 증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어 왔습니다. 제가 언급한 바와 같이 저의 큰 관심은 우리가 성령세례에 관련된 이 교훈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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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13 1. 성령의 내주하심
보혜사 성령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첫 번째로 약속을 하셨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믿는 사람들안에 살아계신다는 것이다....
생략..
성령은 샘물 즉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물이 되어 우리 속에 거하시고 또는 내주하신다. 이러한 은혜스러운 사역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p. 516 2. 성령의 기름부으심
믿는 사람들이란 거룩한 자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다.
(요2:27)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과 물건에
물질적인 기름을 부었다. 왕들, 제사장들, 선지자들, 성소, 제단,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기구들 위에 기름을 부었다. 이 모든
것들은 장차 오실 것의 전형적 예표이다. 이것은..... 생략..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기름 부음을 받는다.-너희는 거룩한 자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는다 그래서
예수님을 거룩한 자라고 칭하고 있다(행3:14; 계3:7;
단9:24). 믿는 사람들이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은 성령의
교통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거룩한 자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효과가 있다. 첫째는 우리들 마음
속에 구원받은 영원한 진리의 지식을 알게 되는 것이다. ..... 이것은 우리들이 복음의 모든 근본과 본질적인 진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8). 고 하였다. 따라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기름부음을 받으심으로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한다(사11:3). /...둘째로 믿는 사람들이 왕들과 제사장들이 되는 것이다
(계1:5). ......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그들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안정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모든 속임수를 물리치고 진리
안에서 영구 불변의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 밖의
목적은 없다. ...../ 그러면 기름을 붓는 목적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1. 기름부음의 교리의 본질을 가르치는 것은 외적인 교훈과
내적인 교훈, 그리고 성령의 유효적 역사를 가르치는데에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눈을 열어 주어분명히 그리고 영적으로
놀라운 일들을 보게 하신다. 이 세상에 이같은 교훈이 없다.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영적인 방식을 알게 된다. 영적인
방식을 안다고 하는 것은 요지부동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모든 유혹의 덫을 부러뜨리신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마음의 눈을 뜨게 하셔서 그의 부르심의 소망과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하신다.(엡1:17, 18)
2. 성령께서는 기름 부으심으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다.
이것은 약속이다. ... 이렇게 가르치신 것은 우리의 전
믿음의 생애 가운데 기쁨과 위가 있으며 평안함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3. 이러한 가르침에는 항상 사랑이 동반된다. 사랑이 없이는
교육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에는 기쁨이 수반된다. 기쁨은 순종에서 온다. ... 성령안에서 성령에 의해서 교훈을 받을 때 우리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오게 되고 만족함을 가지게 된다. ......
p. 83. 제5장 성령의 시여 방법
1. 성부 하나님에 의한 성령의 통치
성령을 주시는 성부의 사역은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하나님은 성령을 주심
.... 생략..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우리의 노력에 의한 구매나 공적의 대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신자들은 성령을 받는다.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신다.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실 것이다"(요14:7). .. 중간 생략... '성령을 보내심'은 하나님이 성령을 주시고, 성령을 보내신 사람들 안에서 또한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서만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의 축복된 결과들을 낳게 할 수 있다고 암시하는 것이다. 특별한 사역과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 성령이 보내지기 전에는 성령은 사람들 안에 혹은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다.
그리고 다른 각도에서 볼 때, '성령을 보내신다'는 말은 그의 은혜사들과 은혜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이 은사나 은혜를 받기 원한다고 해서 모두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을 대상을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구별하셔서 성령을 보내시는 특별한 주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성령을 다스리심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사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로서냐 듣고 믿음에서냐"(갈3:5).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성령을 계속적으로 주시고 또한 풍성하게 공급하신다.
빌1:19에서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도우심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추가적인 공급을 의미한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매일 더 많은 성령의 공급이 필요하다. 이럴 때에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성령의 공급되도록 성령을 다스리신다.
(4) 하나님은 그의 성령을 사람들 안에 또는 위에 두신다.
... 생략.. 하나님은 유효적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지성에 성령을 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획하신 사역과 목적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은 성령을 신자들에게 부어주신다.
... 생략.. 붓는다는 뜻은 성령의 은사와 은혜에 대하여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성령의 위와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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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로이드 목사는 성령에 의해서 인것과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인 것 이렇게 둘로 구별하면서
성령에 의한 것은 중생과 성화로 연결을 시켰습니다.
존 오웬의 글에서도 보면 성령에 의한 것과 예수그리스도에 의한 것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존 오웬의 글에서 성령에 의한 사역이 존 오웬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또한 예수그리스도에 의한 것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분명히 존 오웬은 성령에 의한 것이 아닌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것을 2.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라는 주제하에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 성령의 내주하심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내주는 중생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만약 조창훈님께서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성령충만으로 취급한다면 조창훈님 역시 존 오웬의 의도와 다르게
자신의 멋대로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해석들을 성령 충만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로이드존스 목사가 개혁주의의 성령세례를 성령에 의한 세례로 치부해 버린 것.. 혹은 성령의 초기 세례로
단정지은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위의 글은 정원태교수가 로이드 죤스의 성령세례란 책을 번역하면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요약한 것입니다.
특히 정원태교수의 열정칼빈주의라는 책을 요약한 것 내용입니다. 그러나 로이드 죤스의 성령세례라는 책 자체의 1장의
제목자체가 성령의 세례와 중생입니다. 로이드 죤스는 중생과 성령의 세례를 명확히 분리합니다.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번에 몇개의 글을 발췌하여서 올렸는데 저의 발췌를 믿지 못하시면 직접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한17페이지 정도밖에
안되는 내용입니다.
--------> 위에서 제가 언급했듯이 로이드 존스의 글은 처음만 읽어서는 안됩니다. 그의 글은 갈 수록 발달됩니다.
로이드 존스의 목사와 설교를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그는 설교란 클래식음악과 같이 어느 한 부분만을 들어서는
전혀 알수 없다고 하며 사도바울의 글이 그러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역시 그러한 것을 추구한다고 하며
설교자들에게 그러한 것을 요구합니다. 즉 1장 만 읽어서는 안됩니다. 그의 성령세례의 정의는 계속 발달되어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로이드존스 목사의 글의 특징입니다. 그의 로마서 주석이 괜히 많은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위에서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는 것을 성령세례라고 합니다. 또한 성령세례의 목적이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주신 구원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하며 초기 1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나갑니다. 과연 1장만으로 로이드존스가 말하는
성령세례를 결론지어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계속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제가 반복해서 말하지만 끝까지 사람들이 자꾸 개인의 중생과 성령세례가 분리된다는 주장과,
시대적인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을 혼합해서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우 혼동되게 설명합니다.
---------> 혼동된 것은 없습니다. 조창훈 형제님이 개혁주의 시각의 성령세례로 로이드존스의 성령세례를 재해석했기 때문에
혼동하는 것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로이드 죤스는 분명히 중생(믿음)과 성령세례(성령의 세례)를 분리하였다는 것입니다.
---> 분명히 말하지만 성령의 사역인 중생과 주님이 주시는 사역을 분리한 것입니다.
저는 전부터 계속적으로 조창훈 형제님의 오해를 풀기 위해 아래와 같이 질문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답변을 하지 않으십니다.
<1>
그러나 성경과 초대교부들과 칼빈과 정통개혁주의에서는 개인의 중생과 성령세례를 하나로 본다. ---> 자 조창훈 형제님의 글인데요. 교부들이나 개혁주의자들 혹은 청교도자들 중에서 중생과 성령의 능력세례(성령충만의 상태에서 주어지는 능력-
오순절에 주어진 것)과 동일하다고 주장하신 분이 누구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2>
| 조창훈 |
인용하신 부분은 천주교를 비판하는 부분이 아니라 로마교의 견신례자체는 비판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중생과 성령세례가 분리된다는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입니다. 인용하신 부분뒤에
바로 이어서 그가 계속그렇게 말합니다. 02.20 01:36  |
바로미 |
저는 아무리 읽어보아도.. 그렇게 이야기 한 문장이 안보이는데.. - -? 한번 그 문장을 올려봐
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리고 조창훈꼐서 이해하시는 로이드존스목사가 말하는 성령세례의
뜻을 말해주시겠습니까?
(1) 거듭남 입니까?
(2) 성령의 능력세례 입니까?(성령충만후 받는 능력) | |
되려 제가 위에서 질문한 것에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본인이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을 회피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더 큰 실례가 아닐까요? 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직 들어보지도 않았습니다.
로이드 죤스에 대한 지지를 하기 전에 그분이 주장한 것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의 주장이 객관적으로 분명히 개인이 중생과 성령세례를 분리하였다는 것을 확인해서 말한
것뿐입니다. 그것에 대한 지지나 비판은 차후의 문제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성령의 시대적인 강권적인 역사하심을 결코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로이드 죤스가 시대적인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를 간절히 바라고 있고 부흥의 역사에 대해서 연구하며, 또한 그가 거의 기독교가 소멸되어버린 그의
조국인 영국에 성령의 역사가 충만히 나타나기를 원한 것을 충분히 인정합니다. 그것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것이 결코, 결코,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그뿐만 아니라 우리도 동일하게 이 한국에 또한 세계에 다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중생과 성령세례의 분리를 말하는 것은 성경과 초대교부들과 칼빈과 청교도들과
정통 개혁주의자들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성경과 초대교부들과 칼빈과 청교도들과 정통 개혁주의자들의 주장이 개인의 중생과 성령세례의 일치를 말한다고
하여 개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령의 계속적인 내주와 능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의 내주와 능력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단입니다. 오히려 오순절파나 부흥주의자들같은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이 그들의 책이나 삶을 연구하지도
않고, 근거없이 괘변을 써서 그들이 신자의 체험과 성령의 능력을 부정한 차가운 교리주의자들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은 사실 초대교부들이 있었을때 몬타누스파들이 했던 말이며 거의 그 후의 모든 이단들이 현재의 이단들이
사용하는 말입니다. (특히 현재는 한국에서 김기동과 이재록같은 자들이 자주 사용하며 교회를 비웃으며 사용하는 말이지요)
이것은 저의 주관적인 주장이 아니라 거의 대다수 교회사에 나오는 객관적인 내용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시했던 칼빈과 종교개혁자들과 경건한 청교도들과 개혁주의자들의 삶은 하나같이 외부적으로는 비록 거창하지 않을
지라도 경건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 개혁주의의 오순절 사전은 초대교회의 일회적 사건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고 대표적으로
박윤선 박사가 그런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존 오웬은 그러한 것에 대해 말하는 부분을 이미 올려주셨더군요.
p.43.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성신, 은사, 은혜, 사역이라고 말해지는 것 등은 복음의 초기에만 있었던 것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복음의 초기에는 이런 것들이 분명히 눈에 보였고 놀라울 정도로(p.44)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기록을 생각지 않고 옛날 복음 진리의 기록을 볼 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복음서에는 특별하고도 신비한 역사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성령의 사역을 제한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요 교회를 쓰러뜨리는 행위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고 순종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성령의 교통이 중단된다면 믿음도 끝나고 기독교도 역시 끝장이 나게 될 것이다. |
저는 조창훈 형제님이 다시 한번 로이드존스의 성령세례와 존 오웬의 성령론을 비교 검토하셨음 합니다.
로이드존스에게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친 청교도인이 바로 존 오웬입니다. 이러한 것은 이미 조창훈 형제님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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