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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은 성령운동으로 오는가?

부흥은 성령운동으로 오는가? (김남준) 
 자료출처: http://www.ansanluther.co.kr
 
1. 교회는 언제나 쉽게 잠들어 왔다. 그리고 교회가 잠들 때마다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은 생명력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교회가 생명과 능력을 잃어버렸을 때 영혼이 변화되는 일은 그만큼 희박하다.
2. 세상의 다른 모임과 달리 교회는 인간의 불행과 세상의 고통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치기 위하여 부름받은 신적인 기관이다. 그리고 그러한 근본적인 치료는 사람의 영혼이 변화를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지는 데 기초한다. 따라서 교회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곧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하는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3. 교회가 세속적으로 흘러가거나 그릇된 성령 체험에 유혹을 받는 상황은 언제나 복음의 능력과 생명력을 잃어버린 상황을 밑그림으로 하고 있다.
4. 교회가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깊은 침체에 빠져 들어 화석화되어 갈 때, 그리스도인들-전부는 아니더라도 일각에서 그 생명의 근원이 되는 성령의 역사와 충만함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교회가 거룩한 생명의 능력으로 가득 차고, 영혼을 변화시키는 힘을 소유하게 되는 그 원동력은 역시 성령이 교회에 함께하심으로써이다. 타락하여 무감각해진 인간들로 하여금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5. 원래 영성은 영성 자체를 추구함으로써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영성은 영성 자체를 추구한 사람들에 의하여 소유된 것이 아니라, 개인이 하나님을 전인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결과이고, 그러한 결과들이 신앙적인 특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영성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6.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중들을 깨닫게 하는 사역을 통해서 성경의 능력을 체험하게 만들어 주는 성경적인 방법으로 교회의 영적인 회복을 지향해야지, 단지 생기 있는 것처럼 나타나고 사람들이 무엇인가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을 곧 성령의 역사로 받아들이려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신비한 영적인 세계는 다른영의 세계에도 있기 때문이다.
7. 결국 이같은 현실은 우리에게 한가지 교훈을 준다. 그것은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면 생명이 사라지고, 생명이 사라진 교회에는 또다시 생명에 대한 그리움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러한 생명력의 회복을 위한 운동들이 말씀과는 동떨어진 성령 자체에 대한 추구로 이어지기 쉽다는 사실이다.
8. 교회가 약속된 생명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영적인 회복을 위한 접근이 성경에 입각한 것이어야 하고, 그 일이 신약 성경에 제시된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총체적인 회복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모습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자체를 복음에 조명해 보고 모든 성경 말씀으로 살펴보는 말씀의 회복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리고 구원과 영혼의 변화를 위한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은 먼저 그리스도인들의 변화된 신앙의 내용과 관계 있기 때문이다.
9. 교회가 복음으로 돌아가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이 정확한 성경의 진리 안에 세워질 때, 그릇된 성령의 추구로 말미암는 은사 운동의 오류는 방지될 수 있다.
10. 교회가 생명의 회복을 원하는 이유가 단지 예배 속에서 느끼는 답답함이나, 목회의 쇄신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요청으로 말미암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교회에 있어서 생명력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할 때에만 진정한 생명력인 것이다. 잘못 살아있는 것은 죽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한 것이다.
11. 무엇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며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교회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12. “모든 청교도들은 지식 없는 종교적 감정이나 정서는 무익하다기보다 사악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들은 오직 진리를 지각하고 있을 때의 정서라야만 바람직한 정서라고 보았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느끼고 순종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이고, 지식이 없는 감정에 의하여 지배될 때 그것은 마귀가 역사하고 있는 확실한 표적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순종이 없는 지식이 영혼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처럼 지식과 분리된 감정과 어두운 정신이 지각하는 충동 같은 것들도 똑같이 영혼에 파멸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진리를 가르침이 목회자의 제일 과제인 것처럼 진리를 배움은 평신도의 제일 과제이다.” (J.I.Packer)
13. 부흥의 특이함은 반드시 그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 가운데 복음 자체에 대한 뛰어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을 세운다. 부흥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성경의 모든 진리 중 두드러진 복음이 주로 설교되는 이유도 바로 부흥이 주는 복음에 대한 이러한 체험 때문이다.
14. 참된 부흥의 결정적인 또 하나의 특징은 죄에 대한 심오한 각성과 슬픔이다. 부흥의 시기에 볼 수 있는 환희와 즐거움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은 확실하지만 그러한 환희와 기쁨은 언제나 슬픔과 탄식 뒤에 온 것이었다.
15. “모든 영적 각성은 사람들이 죄에 대한 깊은 확신을 되찾게 되는 것과 함께 시작된다. 무관심과 무감각한 종교적 형식주의로부터 돌이켜 사람들은 진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이러한 문제에 대한 관심과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데 때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여 일시적으로 육체적인 무너짐을 동반하기도 한다. 예배 도중에 쓰러지거나 죄의식으로 고통하는 가운데 울부짖는 것은 부흥의 시기에 늘 볼 수 있는 일이다.” (Iain Murray)
16.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현상이 아니라 진리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참된 부흥임을 입증하는 것은 단지 열광하는 분위기나 신비한 체험이 아니다.  
17. 성령운동과 부흥이 같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는 그 목표이다. 성령 운동이 교회의 양적인 팽창과 잃어버린 생기의 단순한 회복을 지향하고 있다면, 부흥이 바라보는 전망은 그보다 훨씬 더 광대하다. 진정한 부흥은 교회가 단순히 사라진 생기와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다.
18. 교회가 무엇 때문에 부흥을 사모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답하기에 앞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선택하신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그 백성들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보이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의 성품과 하신 일이 알려지는 곳에 구원이 있고, 구원과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상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커다란 계획이며 궁극적인 구도이다. 따라서 구원에 있어서나 교회의 선택에 있어서나 인간의 행복은 두 번째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19. 부흥의 진정한 추구는 주관적인 정서나 심리적인 만족에 그치는 체험에 머물 수 없는 것이다. 부흥이 체험을 동반하는 것은 사실이나 체험 자체를 추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성경은 오히려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추구하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20. 부흥은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교회 되게 하는 내적인 원동력을 회복하게 만들어 준다. 따라서 교회가 이러한 원동력을 회복하여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다시 말해서 부흥이 필요한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멀어져 있는 때이다. 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그리스도인들이 그 관계를 붙들며 살아가지 못할 때, 그들은 단지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만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믿고,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바라며 기도해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자체가 뒤틀리게 된다.
21. 따라서 부흥은 언제나 이전에 깨닫지 못하던 자신들의 상태를 새롭게 보고, 문제로 삼지 못하며 살아오던 교회의 영적 상태에 깊은 자각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부흥과 죄에 대한 심오한 각성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22. 따라서 그것이 진정한 부흥인가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은 두가지 측면에서 대답될 수 있다. 하나는 무엇에 의한 부흥인가 하는 질문이고, 또 하나는 부흥을 통해서 사람들은 어떤 소망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흥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과 경험한 사람 사이에 관심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23. 부흥의 시기에는 성령의 역사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커다란 영적 전쟁이 재현된다. 사탄과 마귀의 세력들은 광명한 천사로도 위장한다. 그들이 마음먹기만 하면 무지한 사람들에게 참된 부흥과 거짓된 부흥을 혼돈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무엇이 이렇게 부흥을 미끼로 장난치는 사탄의 궤계를 벗기고 그의 못된 발동들을 재갈 먹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진리를 아는 지식이다.
24. 그것이 어떠한 종교적인 체험이든지 간에 그 체험의 중심에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상기함이 있어야 한다.
25. 순수한 영적 부흥이 일어날 때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깨달은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깨달은 말씀을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으며 전해 주는 대언자가 있었다. 그것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자기 시대를 향하여 일관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부흥이다.
26. 부흥이 이 땅에 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장 강력한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설교단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설교자들은 언제나 극단으로 치우치기를 좋아했다. 생명과 능력을 탐하여 말씀을 제쳐놓고 은사를 추구하고 성령운동에 뛰어드는가 하면, 주지적인 도그마티즘에 빠져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만족하여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행하고 있는 강단이야말로 진정한 영적 각성과 신앙 부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27. 위대한 부흥이 일어났던 시대의 설교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놀라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를 힘썼고 동시에 그 말씀 위에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자신과 회중들이 진리와 함께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자신을 경험하기를 소원하였다.
28. 오늘날 논의되고 있는 조국교회의 성령 운동과 은사 운동이 가져다 주는 커다란 문제 중의 하나는 성령의 체험은 많은데 기독교 신앙에 대한 신자들의 인식은 변화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릇된 성령운동에서는 체험은 많으나 그 체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하고, 그의 성품을 더욱 분명하게 경험하게 하며, 기독교 신앙에 대한 성격적인 인식을 갖게 하는 일은 드물게 일어난다.
29. “동일한 진리를 문자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하고 인간의 지식과 재주를 기름 삼아 제아무리 공들여 다듬는다 할지라도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다면, 이는 생명이 없고 죄인의 심장이 하나님 말씀에 놀라 뛰도록 만들어 주지 못하며, 혹시 약간의 자극을 준다 할지라도 그것은 차디찬 주검이나 무덤에 감도는 적막함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E.M.Bound)
30. 참된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은 성경 말씀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열리게 되고, 복음의 진리를 드러내는 일에 있어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부흥에 있어서 특이점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다수의 회중들이 동시적으로 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영적인 체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체험은 성경의 이해와 깊은 연관을 갖는다.
31.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신다. 거기에는 기적도 있고 인간의 평범한 세계를 넘어서는 놀라운 일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어느 곳에서도 우리가 단지 성령의 행하신 일을 호기심으로 지켜볼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도 그것은 단지 성령을 통하여 행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주목하게 하시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32. 죄와 심판에 대하여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시며, 의에 대하여 증거하시고, 예수님께서 생전에 남기신 말씀에 대하여, 나아가서는 구약에 언급되고 있는 그리스도를 바라본 진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증거받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기적와 신비한 체험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33. 건전하고 깊은 영적 체험은 반드시 헌신을 불러온다.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이야말로 성경적인 영적 체험의 가장 중요한 결과이다. 이러한 건전한 영적 체험과 광신은 신비 체험의 깊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체험의 심장부에 무슨 지식이 있느냐에 의하여 결정된다.
34. 바울 사도가 다양한 성령의 체험을 경험하였고 신비에 접하였지만, 궁극적으로 그러한 체험들을 통하여 그의 존재 속에 남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하신 일에 대한 이해였다.
35. 하나님의 교회가 그분의 주권 아래서 생명과 신령한 능력과 하늘의 기쁨을 회복할 때 교회에는 성령의 권능이 뚜렷하게 함께한다. 그러나 참된 부흥과 영적 각성의 시대를 살았던 신앙의 선진들은 성령의 은사와 이적과 별스러운 체험 자체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36. 그들의 사역과 삶에는 성령의 놀라운 기적과 역사가 함께하였고, 자신들이 전하거나 듣는 말씀을 충족히 느끼는 풍부한 체험 속에 살았다. 그러나 정작 부흥을 경험하였던 그 사람들의 관심은 자신들이 소유한 능력이나 체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해주신 하나님의 영광에 있었다.
37. 사람들은 방법을 찾아다니지만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오늘날 조국 교회가 방법을 찾아 헤매이는 것과 같은 열정으로 하나님을 찾고자 목말라 한다면 위대한 부흥의 새벽은 멀지 않을 것이다.
38. 순수한 복음 진리를 능력있게 선포하는 강력한 강단의 지배가 없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영적인 체험의 추구는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데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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