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이상한 철야기도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5:7)
1. 기도는 단지 간절하게 부르짖는다고 해서 무슨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도의 초점이 삶의 초점과 같을 때 그 기도는 간절히 드려질 수 있고 능력이 나타난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액체의 생애였다. 피로 바친 생애였다. 땀으로 얼룩진 생애였다. 무엇보다도 눈물로 살아간 기도의 생애였다. 그 분의 기도하는 모습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얼룩진 기도였다.
3.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였고 사랑하는 제자들과 하나님께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불쌍함으로 얼룩진 애통해 하는 기도였다. 회개하지 않은 영혼을 안고 살아가는 신자의 특징은 주님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4. 우리의 마음이 마른 땅과 같아서 이 거룩한 십자가의 사랑 아래 살아가면서도,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위대한 보혈의 공로를 인하여 감격하기보다는 이 땅에 썩어질 것들을 위하여 수고하며 이것들을 인하여 염려하고 가슴 아파하고 있지는 않는가?
5. 죄라곤 없으시고 하나님과 항상 동행하셨던 그분이 왜 마치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아 떨어진 자처럼 심히 통곡하며 부르짖어야 했고 애통하는 눈물로 소원을 올려야 했는가? 무엇 때문이었는가? 이 모든 통곡과 눈물은 바로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었다. 자신을 위하여 통곡하며 기도하셨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인하여 대제사장의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우셨던 것이다.
6.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는 흘릴 눈물이 많으나 주님을 위한 눈물은 말랐다. 우리를 위한 흐느낌은 있으나 하나님을 떠나 있는 이 구원받지 못한 비참한 세상을 위한 통곡은 그쳐 가고 있다.
7. 누구든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헌신하기를 원하는 사람마다 세상과 마주해야 한다. 끊임없이 세상은 주를 위해 살려는 여러분의 갸륵한 헌신과 거룩한 섬김을 방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주를 위해 살고자 하는 자마다 통곡함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눈물 흘림으로 아버지의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8.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분은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셨다. 주님께서 다가오는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심한 통곡으로 부르짖을 때에 그것은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건지실 이에게 올리는 기도였다.
9. 이것은 부활을 바라본 기도였다. 그렇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십자가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죽음에서 살리실 부활의 능력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10. 주님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은 단지 기도가 간절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이 하나님을 경외하시는 삶이었기 때문이었다.
11. 주께서 새벽 미명의 시간과 깊은 밤 시간을 기도로 택하신 것은 무슨 특별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낮 시간에 온전히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깊은 밤, 새벽 미명을 택하셨던 것이다.
12. 그분의 기도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방해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시는 우리 주님의 헌신은 기도를 방해하지 않았다.
13. 참으로 주를 경외하는 삶이 동반되지 않는 기도의 간절함은 육체로 흐르기 쉽고 뜨거움은 감정에 흐르기 쉽다.
14. 우리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친밀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 때 우리의 기도는 그분의 임재 앞에서 드리는 기도가 되고, 그 때 우리의 기도는 단지 필요한 바를 하나님 앞에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음성과 응답을 듣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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