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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적 삶이 과연 어떤 건지_네이버지식검색에서

실존주의 적 삶이 과연 어떤 건지
 
이해하기 쉽게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ㅜ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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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훌륭하게 답변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제가 특별히 설명할 부분은 없습니다만 약간만 부연하도록 하겠습니다.
 
실존적 삶이란 어떠한 것이냐를 설명하기 이전에 다음과 같은 삶의 방식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일어나 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기위해 숟가락을 들고 또 반찬을 집기 위해 젖가락을 들죠. 하지만 우리는 밥 숟가락을 몇번이나 퍼야 밥 한 공기를 다 먹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하며, 오늘 아침 우리가 반찬을 먹기위해 몇번의 젖가락질을 했었는지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우리의 의식적인 측면에의해 행하여 진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측면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여기에서 무의식이라 함은 우리의 '의지', 즉 선택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무의식은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장소로 행하는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테죠. 학생은 학교로 갈 것이며 직장인는 자신의 직장으로 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움직일 뿐입니다. 왜 그곳으로 이동해야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생활의 축적이 그런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만들었을 뿐이죠. 학생은 매일 등교하면서 지각을 걱정할 뿐, 내가 왜 그곳에서 배워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옳다고 마음속 깊이 정의해두며 무의식에 몸을 맡긴 후 단지 움직일 뿐입니다. '의심'이라는 것이 개입될 소지가 전혀 없는 부분인 셈이죠.
 
이러한 삶을 우리는  '실존적'인 삶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실존한다고 얘기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내가 '실존주의적인 삶을 살고있다'라고 얘기하고 싶다면 '의심'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실존주의적인 삶'입니다.
 
'선택'이라는 것은 항상 '책임'이라는 것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택'이란 자신만의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의 문제역시 자신만의 것이 됩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그렇기때문에 실존할 수 있다.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고 난 후 기계에 의해 인간이 짓밟히던 그 당시에 실존주의자들이 하고싶었던 말은 아니었을런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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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자신의 존재의 문제에 있어서 주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선택권을 가지는 것이죠.
존재는 본질에 선행한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실존주의는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그 어떠한 전제조건도 "무"화 시킵니다.
지금의 이성, 신, 윤리, 선.... 등등의 문제를 일단 그 전제에서 배제시키죠.
예를들어 자동차라는 존재는 자동차를 자동차이게끔 만들어 주는 그 어떠한 것이
없으면 성립이 하지 않습니다.
예를들어... 교통수단, 혹은 엔진, 구조적 특성.... 등이 결합한 효용성이 전제가 되죠.
즉 이러한 존재는 본질에 후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본질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죠.
그러나 "나"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 문제를 다르게 봤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던져져 있으며....
"나"라는 존재의 모든 "나"이기 위한 조건을 보류하고 선택의 기로에 서서
이 모든 문제를 다시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성적인 존재를 선택하면 그것이 이성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고....
내가 "선"이라는 것을 선택하면 그것이 바로 선한 존재가 되는 것이죠.
사르트르는 신을 "무"화 시켰습니다. 비판, 혹은 긍정의 문제에서
완전히 제외시켜 버렸죠.
그것이 실존주의의 삶입니다.
존재는 애초에 "무"의 상태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죠.
그래서 사르트르를 고독의 동반자 라고 많이들 얘기하죠.
오직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 자신만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죠.
사실 실존주의는 고립적인 사상이라는 비판을 피할수는 없다고 봅니다.
존재는 고립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죠.
그 고립적인 상태에서 오는 불안과 함께 선택의 문제에 언제나 당면하게 되죠.
그러나 그것은 또한 다른 가능성을 향한 지향이 되기도 합니다.
 
실존주의가 어떠한 현실적인 이데올로기로 발전하지 않고....
문학이나 기타 예술의 문제로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무"의 형성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실존주의적 삶의 태도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였던
카뮈와 사르트르의 논쟁을 한번 보시는 것도 도움이 되실 것 같군요.
전후에 사르트르는 사상적인 전회?를 보이게 됩니다.
다분히 정치적이고 사회참여적인 면모를 보이게 된 거죠. 대중을 위한 강연도 하고요.
 
네이버지식검색에서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1&docId=52523904&qb=7Iuk7KG07KO87J2Y7KCB7J24IOyCtg==&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gnPz5woi5UNsscMoEh8sss--027486&sid=TPevNvpg90wAADwqH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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