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주의를 넘어서(실존주의)
허무주의를 넘어서(실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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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사이어,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허무주의를 넘어서 : 실존주의
실존주의 목표는 허무주의를 넘어서는 것
두 종류의 실존주의 :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자연주의 기생물, 유신론적 실존주의는 유신론의기생물/116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유행
무신론적 실존주의
자연주의 명제를 수용, 물질만이 영원히 존재한다. 따라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는 폐쇄체계 속에서 인과율의 일치체로 존재한다. 역사는 인과율에 의해 연결된 사건의 직선적 연속이나 전체적 계획은 없다. 윤리는 단지 인간에게만 관계된 것이다. ...
실존주의 의 주요 관심은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의미있는 존재가 될 것인가에 있다.
1.우주는 단지 물질로만 구성되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실재가 주관과 객관이라는 두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객관세계(objective world) : 세계들이다...객관적 외부세계들
주관세계(subjective world) : 정신,의식,인식,자유,안정 등의 세계...주관은 결코 과거나 미래가 아니고 그 자체에 항상 현재하기 때문에 시간은 무의미해 진다. 주관은 비아(객관)에 대한 자아의 파악이다. 주관은 비아를 자신의 일부분으로 만든다. 주관은 지식을 받아들이되 병이 액체를 받아들이듯 하지 않고 유기체가 음식을 받아들이듯이 한다. 지식은 인식자로 화 한다.
자연주의는 객관세계를 실재로, 주관세계를 그림자로 간주함으로 두 세계의 통일성을 도모, 빠바니는 ‘간이 담즙을 분비하듯 뇌는 생각을 분비한다’고 했다...그러나 실존주의는 두 세계간의 불일치를 강조, 주관세계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싸르트르는 주관세계를 가르켜, “물질의 영역과 구별된 가치들의 앙상블”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인간이 유일한 주관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우리는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한 표현은 우리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중요성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객관 세계의 사실들에 달린 것이 아니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주관세계의 의식에 달려 있다.
2.단지 인간만이 그 존재가 본질을 선행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을 현재 상태로 빚어낼 수 있다.
싸르트르, “먼저 인간이 존재하고 수평선상에 나타나고 무대에 등장했다.그리고 후에야 자신을 정의했다” /119
소금은 소금, 나무는 나무, 개미는 개미이다. 그러나 인간만은 자신을 만들기 전에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그의 자기 의식과 자기 결정력의 활동을 통해 자신을 인간으로 만단다.
“처음에는 인간은 무(nothing) 이다. 그후에서 그는 어떤 것(something)이 될 것이고 또 그 후에야 자신이 원하는 존재로 자신을 스스로 빚어갈 것이다”
3.인간은 자신의 본성과 운명에 대하여 완전히 자유롭다.
인간은 자신의 주관이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강요받지 않고 행할 수 있다. 그는 생각할 수 있고, 결심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고, 꿈을 꿀수 있고, 이상을 설정할 수 있고, 고려할 수 있고, 숙고할 수 있고, 또한 발명할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주관세계의 왕이다.
4.매우 정교하고 빈틈없이 조직된 객관세계는 인간과 대립관계에 놓여있으며 인간에게는 부조리하게 보인다.
객관세계는 냉정한 거기됨의 세계이다(thereness). 그것이 인간에게는 소외로 생각된다. 자신의 주관을 형성함으로써 자신을 원하는 존재로 빚어가는 인간에게는 객관세계가 부조리하게만 보인다. 그의 꿈, 이상, 소원등 모든 가치의 내부세계는 인간의 소망에 침투할 수 없는 세계와 정면 충돌한다....
객관세계에는 질서가 있다. 몸은 받쳐주는 것이 없으면 밑으로 떨어진다. 주관세계는 질서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주관세계에 나타는 것 - 지금 여기에 있는 것 - 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낯선 땅의 이방인과 같은 존재이다. 121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부조리가 ‘죽음’이다. 인간은 자신의 비존재로서의 경향을 잊어서는 안되며 또한 생에 대한 사랑과 죽음의 확실성 사이의 긴장을 극복하며 살아야 한다.
5.객관세계의 부조리를 충분히 인식하고 그에 대해 반대하는 진정한 인간(authentic man)이 반란을 일으키고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예)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underground man
무신론적 실존주의 선과 악의 개념
선은 ‘선택’이다. 주관적 가치의 선택, 악은 그 선택을 회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순간 허무주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두가지 함정에 빠진다.
첫째, 유아론(唯我論). 즉 각 개인만이 가치의 결정자임을 긍정하게 되고 다라서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에 사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은 가치중심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싸르트르는 이러한 반대를 인식하고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상호 인식할 수 있는 주관의 중심을 만나는 것이라고 주장...
두 번째 문제는 악이란 선택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환언하면 우주의 부조리를 인식하지 않고, 즉 부조리를 무시해버리고 다란 사람의 지시를 받으며 살고 자신이 속한 사회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사는 수동성이 바로 악이다.
싸르트르는 언젠가 그에게 상담하러 온 젊은이에게 다음의 충고를 했다 “자네는 자유롭네 선택하게나 즉 창출하라는 말일세”/ 124
까뮈의 페스트 이야기
페스트는 우주의 부조리를 상징
페스트로 인해 오랑의 사람들은 세계의 부조리를 경험하게 되고 이의 반응...죽음의 확실성 이라는 구조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 앞의 반응
아파트 관리자 미셀
쥐가 자기 아파트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 미셀은 우주의 부조리를 인정하기를 거부...죽음
스페인 영감 : 허무주의
꼬다르 : 범법자로 상황을 즐김, 신 없는 세계에서의 죄인
쨩따루우 : ‘신 없는 성자’ 자원봉사대를 조직하여 페스트와 싸우과 위로하는 삶 그러나 한줄기 절망의 기미가 끼엉 lT는 삶, 환상없는 생활의 암울한 불모성을 분명히 체험함...
리우박사, 부조리한 세상에 사는 또 다른 선인의 표본
있는 그대로의 피조세계와 싸워나가는 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삼음.
얼마나 허무주의를 극복했는가?
각 개인을 초월하는 도덕의 준거점을 제공하는 데이는 실패했다. 인간의 가치의 근거를 주관에 둠으로써 그것을 실재와 유리된 영역에 두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허무주의를 넘어 단지 유아론 즉 87년간 존재하다가 사라져 버릴 고독한 자아에 도달했을 뿐/ 130
<유신론적 실존주의의 기본내용?
죽은 교회의 정통주의라는 신학적 허무주의에서 죄렌 키에르케고르가 외친 것
신 정통주의의 계보를 따름...
유신론의 실존주의적 개역은 하나의 분리된 세계관이라기 보다는 유신론 내에서의 일련의 독특한 강조점들
1.인간은 인격적 존재이며 완전한 의식을 갖게 되었을 때 소외된 우주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나님의 존재 여부는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 해결되는 난제이다.
유신론적 실존주의는 하나님을 출발점이 아니라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 이것이 유신론과 가장큰 차이
유실은 인간이 처음으로 자기 의식을 가졌을 대 자신을 발견하는 그 위치를 강조한다.
예)페스트의 빠느루 신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 조차도 아마 우리는 사랑해야할 것”, 이것을 까뮈는 ‘지적자살’이라고 비난...
요점은 이성이 우리를 무신론으로 끌고 갈 수도 이쓴 반면, 우리는 항상 이성에 의해 내려진 결론을 거부하고 믿음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인격적인 것은 가치있는 것이다.
예)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
세계 안에 머물러 있으면 신을 발견할 수 없다. 세계 밖으로 나가도 신을 발견하지 못한다. 온 존재를 기울여 자신의 너를 만나기 위해 나아가고, 세계에 있는 모든 존재를 자신의 너에 게 가져가는 사람만이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135
하롤드 잉글런드(Harlod Englund)가 1960 위스콘신대학에 강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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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주의 |
유실론적 실존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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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
규칙을 깨뜨리는 것 |
관계를 배신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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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
죄를 인정하는 것 |
인격적 배신에 슬퍼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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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 |
죄책의 사면 |
교제를 새롭게 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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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
일련의 전제들을 믿는 것 |
자아를 한 인격에 위탁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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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
법칙들에 순종하는 것 |
인격이신 주님을 즐거워 하는 것 |
3.지식은 주관적인 것이다. 완전한 진리는 종종 역설적이다.
키에르 케고르...
..요점은 나를 위한 진리를 찾는 것, 내가 그것을 위해 기거이 목숨을 바쳐 살아야할 이상을 찾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객관적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될 것인가? /137
사실들이 전혀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누군가를 위한 사실, 즉 나를 위한 사실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138
역설 : 자유와 필연
자유 : 인간의 선택, 필연 : 하나님의 섭리
이 둘의 이율배반성에서 인간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나?
칸트 : 그러나 내가 필연과 자유를 관념의 세계에서 생각하지 않고 신의 앞에 성 lT다고 하는 현실에서 생각한다면 그리고 내가 신의 처분에 맡기워져 있으며 동시에 그 처분은 나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안다면 나는 이 두 개의 조화될 수 없는 명제를 두 개의 분할된 타당성의 영역에 돌림으로서 내가 살아가야 할 역설에서 벗어나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두가지를 도잇에 스스로 취하여 함께 살아야 하며 또한 함께 살때에만 이 두가지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138
역설의 약점은 멈춰야할 지점을 알기 어렵다...
역설들 위에는 우리가 어떤 역설들을 지니고 살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어떤 비모순적 명제가 있어야 할 것, 실존주의의 기독교적 형태에서는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이 그 한계를 정한다...
4.사건의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불확실하고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현재화되고 생활화된 모델,유형,신화 등으로서의 역사는 매우 중요하다.
유실은 유신론 보다 두 걸음 나아갔다. 첫째, 기록된 역사의 정확성을 불신, 둘째, 그것의 사실성에 대한 관심을 없애고 대신 종교적 뜻이나 의미를 강조한 것
고등비평...즉 성경에 기록된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바로 선한 생활에 대한 성경의 모범들과 도덕에 대한 영원한 진리들인 것이다. ...
위대한 신비는 신화로 바뀐다..교리에 대한 역사적 근거들이 경시되고 교리 자체가 역사 밖으로 치워지기 시작한다...
불트만...역사적 사실에 죽은 자의 부활이 포함된다는 것은 도무지 생각도 할 수 없다“..그러나 역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활의 배후에 있는 실재는 제자들이 경험한 그리스도안의 새로운 생활(New life)이다. 창조 구속 몸의 부활 재림 적그리스도 등 초자연적 교리들이 이와 유사하게 ‘비신화화’되었다. 각 교리들은 종교적 의미의 상징이라고 간주되기 시작...
유신론의 비판
첫째, 자연주의 패쇄적 우주 관념, 기적은 없다...
둘재, 신화와 상징이라는 불안정한 모래의 기초위에 세운 신학..
의미가 있으려면 먼저 사건이 있어야 한다. 만일 부활에 대한 전통적 이해대로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면 우리는 무엇인가를 의미할 수 있는 사건을 갖게 된다. ..이런 생각으로 유실은 회의나 믿음의 상실로 귀결되어야 하지만 믿음의 도약으로 인도되었다. 왜냐하면 의미는 주관세계에서 창출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객관적 준거점은 없다/ 144
...아마 실존주의자들이 의미의 근거로서의 사실성을 포기했을 때 그들은 자연히 한 걸음 더 나아가 의미도 전부 포기해버린 것이다. 이것은 그들을 다시 허무주의의 황망한 황무지에 던져 놓을 것이며 다라서 그들은 다른 출구를 찾아 노력해야 할 것이다/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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