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발견과 영적성숙-강준민

자아발견과 영적성숙
발행일 : 1999-08-05 148p | ISBN 89-7008-922-5
검색하다보니 좋은 글이 있어서 옮겼습니다.
파란색은 분석해 놓은 글입니다. 참고하면서 읽으시면 됩니다.
자료출처 http://kr.blog.yahoo.com/haegwon/28| 완전히 말도 안되는 이교적이고 성경의 가르침과 완전히 배치되는 글로 가득하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숙을 위해 이런 글들은 안읽는 것이 좋다. 참고도서에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과 같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책들이 있고, 세상적인 가르침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책이다. 세상적인 것과 성경적인 것이 혼합되어 있는 전형적인 타락의 표본이다. 이러한 책을 걸러내지 못하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한국교회의 수준이 한탄스럽다. 예수님은 자기를 발견하라고 하시지 않고 죽이라고 하신다. 자기 안의 가능성(잠자는 거인)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성공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
| 강준민 목사. 서울신학대학 졸업(B. A.) 후 아주사 신학대학원(Azusa Pacific University, M. A./ M. Div.), 탈봇 신학교(Talbot Theological Seminary, Th. M.)를 마쳤다. KOSTA(국제 복음주의 학생 연합회)와 미주 두란노서원의 큐티 세미나 강사로 섬기며, 월드 미션 신학교에서 기독교의 영성과 목회 지도력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미국 LA 소재 로고스 교회에 이어 LA 동양 선교 교회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다. |
| 서문 주님과 만남을 통해서 누린 가장 큰 축복은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 자신 안에 감추어 있던 엄청난 가능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책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자아를 발견하고 자기를 개발하는 길은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포기하고 버려야 하고 떠나야하는 모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을 믿은 후 나의 자아는 십자가에 못박히고 죽은 것으로 말씀하신다. 나의 옛 자아가 죽었는데 무엇을 발견하고 가능성이 있겠는가? 내 안에는 가능성이 전혀 없기에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다. 1부 영성과 자아 발견 들어가는 말 : 참된 배움은 발견하는 것 영적 성숙은 자아 발견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진면모를 발견할 때 성장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된다. 자아 발견은 배움에서 온다. 배움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가 열린다. 배움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가 열린다. 배움을 통해서 자신을 보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배움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배움이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을 만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배움이란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배움이란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 안에 있는 위대함을 발견하고 개발시키도록 도전하는 것이다. 가르침이란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일깨우는 일이다. 자아 발견을 향해 내면 게꼐로 여행을 떠나라. 감추어진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영성 생활의 출발이다. 영적 성숙은 자아를 발견할 필요가 없다. 자아를 죽이는 것이다. 1.영성과 자아 발견은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영성 생활이란 성령님 안에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민과 말씀은 인가을 변화시키고 성숙시킨다. 자신의 진면모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을 보는 것이다. 자신의 죄인된 모습을 알게 된다. 자신 안에 있는 재능, 은사, 가능성, 숨겨진 성품을 알게 된다. 우리 안에 밝은 부분은 없다. 모두 예수님 안에 있다. 은사가 그렇다. 내 안에 가능성이란 없다. 숨겨진 성품도 더욱 없다. 오직 성령님이 드러나는 열매가 있을 뿐이다. 깨달음은 도다. 도는 길이다. 예수님은 꺠달음을 배움의 핵심에 두셨다. 예수님은 깨달음을 최고의 축복에 두셨다(마 16:17). 깨달음이 길이 아니라 예수님이 길이시다. 깨달음이 복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십자가에서 죄를 사해주신 것을 믿는 것이 복된 것이다. 영성 생활의 극치는 자아 발견을 뛰어넘어서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자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영성 개발이란 예수님 안에서 자신을 개발하는 것이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자신의 내면의 음성을 듣게 된다. 자아를 개발할 것이 아니라 자아를 포기해야 예수님이 쓸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내면의 음성이 모두 하나님의 음성은 아니다. 자아를 개발하는 것은 이교도의 가르침이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과 가르침이 자아 개발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것이 있는가? 성공하는 기술보다 성숙한 인품을 배우는 곳이다. 너무 분주하면 하나님을 만날 시간이 없다. 자기를 만날 시간이 없다. 하나님이 고난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참된 자아를 발견하게 하신다. 자기를 만나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참된 자아를 발견하라는 것이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고 회개하도록 하실 뿐이지 다른 무언가를 더 발견하도록 인도하시지 않으신다. 광야를 통과한 사람의 특징은 내면 세계 속에 질서가 있다는 점이다. 자기 위치를 알고 청지기적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 영적 안내자에게 중요한 것은 영적인 감각이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키우는 원동력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킨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아 발견을 위해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내면의 깊은 바다 속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주님의 말씀이며 성령님의 능력이다. 사람의 경험이 이를 이루지 못한다. 이것은 이방 종교에서 도를 닦는 것일 뿐이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없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의 깊은 바다 같은 것은 성경에 없다.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할 뿐이다. 내면의 깊은 바다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귀신의 소리인가 아니면 부패할 뿐이 나의 육체의 소리인가? 주님의 부르심은 우리가 죄인임을 발견하고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사용하시도록 부르시는 것이지 자아를 발견하도록 초청하는 것은 아니다. 2.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자아 발견의 시작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자아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고백했다. 헌신은 강요해서 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 헌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 요한은 영적 성장의 장애물을 첫째 자아, 둘째 사단, 세째 영적안내자라고 했다. 영적안내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인기있는 설교를 하려는 유혹에 직면한다. 이러면서 저자는 스티븐 코비의 글을 인용한다. 이것이 잘못된 영적안내자의 좋은 예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다. 믿는 차원에서 아는 차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지고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기 시작한다. 무슨 특별한 경험이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영적 깊이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모른다면 문제가 있다. 3. 하나님을 만날 때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보게 된다 인간의 문제는 스스로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다.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으로 사람은 변화되지 않는다. 사람들을 율법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에 대한 확신과 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결국은 죄보다 죄에 대한 깨달음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4. 자아 발견이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그늘진 부분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면 우주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당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사람의 마음에 긍정적인 면은 없다. 잠언 4장 23절은 인간의 마음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온다고 인용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한 마음이다(잠4:19-20). 5. 자아 발견이란 자신 안에 있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자유함을 누리게 된다. 치료는 자유함을 경험할 때 오는 것이다. 남과 비교해서 자유해지는 것은 심리학적인 치료일 뿐이다. 이러한 심리학적인 위로는 다시 비교에 의한 열등감이라는 악순환을 겪는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셨음을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치료될 때 자유함을 얻는다. 요셉은 자신을 관리할 줄 알았다. 세상을 정복하기 전에 철저하게 자신을 정복했던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였을 때 그것을 예사로 보지 마라. 비판하지 마라. 요셉이 감옥에서 자기를 관리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동행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해도 영적인 의미에서 비판할 수 있다. 세상의 성공이 영적인 성공은 아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의지할 만큼 충분히 연약한 자를 사용하신다고 했다.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다. 6. 자아 발견이란 자기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부목회자들이 큰 인물이 되려면 자기 위치는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실력이란 자기 위치를 알고 자기 위치에 맞는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요셉은 자기 때가 오기 전까지 철저하게 실력을 감출 줄 알았다. 큰 인물이 되기 위해 비위를 맞추고 있는 것이 겸손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자기 위치와 함꼐를 아는 사람은 겸손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게 된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일은 하나님 만이 하신다. 인간 내면의 변화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일이다. 겸손은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교만은 모든 사람을 역겹게 한다. 7. 영성이 깊다는 것은 영적인 시력이 밝아져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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