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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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가야할길-자아에관하여

사모님께는 말씀 드릴려고 했던 것에 더 정확할려면,
 "무아지경"이네요~
 
지금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대로 말하자면
옛자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자아에 그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생각됩니다만.....,
 
범신론에 있어서,
자아는 나중에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믿는 성도는 천국에서 찬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은 아(我)가 살아 있습니다.
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그 영광을 누리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아(我)가 없어지지 않는거지요.
 
그러나 범신론, 쉽게 말해서, 불교에서는
아(我)를 느끼고 자각하게 될 때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아(我) 되기를 멀리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욕심을 버려라고 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스캇펙이 심리학을 단순한 상담 차원에서 다루고 있지 않고,
자아의 완성에서 무아지경으로 나아가는
종교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아주 진한 범신론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벌써 자신이 신이 되어 있는 듯한 냄새를 풍기면서요...,
 
자신이 가진 것이 있어야 버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我)을 깨달아야 하고, - (자아발견)
아(我)을 성숙시키고 -(자아성숙)
아(我)을 무아지경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무아지경)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 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여기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언약 안에서 삼위하나님과 언약적이고 인격적인 차원에서 하나됨이지
존재론적으로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엄연히 거룩하신 하나님과 존재론적으로 차이가 나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비유합니다.
무아지경은 비가 내려서 그 빗방울이 나중에 태평양 바다에 들어가 그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고,
성도된 우리는 오케스트라에 비유합니다.
천국에 가서도 각자가 자기 역할을 다 하는 것입니다.
각자가 자기 역할을 다 함으로서 하나가 되는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이런 것은 범신론에서만이 아니라 신비주의에서 그 영향들이 나타납니다.
또한 오늘날 기독교에서도 종교다원주의의 영향을 입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상기도는 그런 차원에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의 계급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명상과 관조를 통해서 올라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상을 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피조물은 아무리 명상을 하고 도를 닦는다고 해도
창조주 하나님과의 간격을 좁힐 수는 없습니다.
이 땅에서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에덴동산의 아담하와를 유혹했던 사탄의 속임수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스캇펙은 위험합니다.
그는 상담자들에게 자아를 발견케 하고 성숙시켜서 무아지경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비판한 글에서도 보시듯이,
그는 더러운 삶을 살다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성경에서 아(我)를 문제시 삼는 것은 그것이 "자기 의"로 가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로 간다는 것은 자기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아 천국간다는 것이고,
그러면 십자가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서 아(我)에 대한 문제를 끝까지 추적합니다.
 
로이드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예외 없이 자아, 교만의 문제라는 궁극적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아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 자기 자신이 크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타락이 인간 본성 속에 내재해 있습니다. 타락의 결과로 사람에게 일어난 첫 번째 주요한 일들 가운데 하나는 남자든 여자든 거만하게 되었고, 자기 중심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로마서 강해 중에서)
 
또 이렇게도 말합니다.

어떻게 성령께서 그 일을 행하십니까?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구원의 영광입니다. 성령께서 자아 속에 수반되어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십니다. 새롭게 거듭나게 하시는 것과 새로운 성품을 주시는 방편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십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자아의 난제를 해결하는 오직한 가지 방식입니다. 다른 일은 그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복음은 자아를 수정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듭남, 새로남, 새로운 존재, 새로운 인격의 교리를 가르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이 복음만이 우리의 이 자아와 그 가공할 자아 속에 수반되어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우리가 자아로부터 건짐 받을 뿐만 아니라 다른 무리들과 동질화가 됩니다. 이것은 기이한 일입니다. 우리는 같은 가족의 한 일원이 됩니다. 우리가 같은 한 무리에 소속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됩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으로는 이 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

구역예배가 있어서 이정도로만 우선 올립니다.
참고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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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의견 1

  • 맹감 · 2010-06-25 23:53
    감사합니다. 무슨 뜻인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자아'에 대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더 많이 알기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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