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적인 그리스도인 비판적 읽기6
강박적인 그리스도인 비판적 읽기6
31페이지부터 강박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말을 한다. 그들의 특징으로 꼽는 것은 다음과 같다. 강한 성취욕, 효율적인 일 추진, 규칙적으로 일을 한다. 삶에 있어서 목적 의식이 분명한 사람. 자신에게 철저하게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잘 완수하는 사람. 삶의 표어는, “해야 한다(should)" 라고 한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사회나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런 사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자. 이런 사람의 역할이 필요한데 강박적인 사람이라고 몰아붙인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렇게 책임감 있게 일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방향성이고 그 당위성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표면적인 증상만 가지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다 강박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그렇게 몰아붙이는 그 사람이 강박적 환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런 자세로 일하지 않고서 가정을 꾸려가고 직장을 나가서 일을 하고 사업을 일구어 나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강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보다 일을, 감정보다 법과 규칙을 중요시 한다고 말한다. 이런 말은 한편으로는 옳은 말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현대사회의 흐름에 대해 조금이라도 분별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오로지 생산성으로 평가받고 있는 세상에서 그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을 헤어리지 못하는 소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감정이 없고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세상은 그 마음과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만들어 가고 있다. 환경 탓으로 돌리자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그 부족성을 드러내는 예가 32페이지 마지막 단락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자녀의 학업 성취에 관해 다수의 부모는 공통적으로 강박적이다. 부모는 자기 아이가 무엇을 배우든지 즉시 그리고 단번에 부모의 기대 수준에 올라서기를 바란다. 여러 번 가르쳤는데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면서 "왜 이걸몰라, 이 쉬운 걸? 내가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어? 내가 말할 때 도대체 무슨 딴 생각을 한 거야?"라고 말하면서 아이의 기를 죽인다. 그러면 아이는 아이대로 눈물을 찔끔거리며 부모의 호통 앞에 고통스럽게 침묵한다.”
과연 위의 글대로 하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마치 이 글을 보면 모든 부모들이 강박증 환자 취급을 받는 것을 금할 수가 없다. 다수의 부모가 그것도 공통적으로 강박적 이라고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강박적 환자란 말인가?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이 말씀대로 살아라고 그렇게 간절하게 요구하시는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강박적인 하나님이 되어 버리고 만다. 모세오경을 읽어보고 성경전체를 읽어보라. 얼마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하여 간절히 언약에 신실하기를 바라시는가, 그리고 명령하시는가를 보라. 그들이 결국 그 말씀이 불순종하여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다. 그러면 하나님은 강박적 성격을 넘어 강박증을 더 넘고 정신분열증으로 가는 것인가? 절대로 아니다.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식을 키워보지 않은 부모처럼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에는 회초리를 들어야할 때도 있으면, 큰 잘못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품어주며 눈물을 닦아 주어야할 때가 있다. 그 상황은 여러 가지라서 부모로서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부모가 완벽하지는 않으나, 자녀에 대해서는 부모가 더 잘 안다.
특히나 말 중에서,“아이의 기를 죽인다”라는 말은 심리학이 관심을 가지는 “자존감”을 아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가 잘못했으면 반성을 해야 하는 일이고 부모가 심하게 야단을 쳤으면 부모 역시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아이의 기를 죽였다고 말하는 것은 이 저자의 의도가 결국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세워주어야 한다는 의도를 드러내어 주는 것이다.
33페이지 중간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아픈 마음으로 눈물 흘리고, "내 아이는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쁜 거야?"라며 실망하는 부모는 부모대로 속이 상할 때, 그 이면에는 성공적인 결과만을 기대하는 부모의 조급하고 강박적인 성격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이 부모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가 자기 아이 공부를 가르치는 그 결과에 만족스럽지 못해서 나오는 말이다. 부모의 안타까워 하는 마음을 무작정 강박적인 성격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러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가르쳐야 하는가?
너 공부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그렇게 가르치는 부모는 없다. 내놓은 자식이면 몰라도 그렇게 키우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성적이 안올라서 안타까워 하고 조금만 더 열심히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부모다. 다만 그런 일에 너무 열성을 올리는 부모들이 있다고 하면 되는 일을 마치 많은 부모들 이라고 해서 그 많은 부모들이 부모들 전부를 지칭하는 것처럼 들리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부모된 도리가 잘못된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 이 대한민국에서 교육제도가 현격하게 전환되지 않고서는, 아이들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모르고서는 하는 말이다. 입시전쟁이란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이 책의 저자가 공부했던 시절과 지금과는 더 많이 달라졌다. 그 달라졌다는 말은 입시제도가 더 어려워지고 힘들어졌다는 말이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이 있다. 지금 이 나라의 입시상활을 아는지 모르는지 참 알다가도 모르는 말을 하고 있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잘못되었다고 그들의 부모들이 열성을 부린다고 나무라지 마라. 그들을 강박적성격이 있다고 몰아붙이지 마라. 그렇게 가르친 우리 부모가 잘못된 것이 없다. 심리학으로 안들이밀어도 우리 부모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이고, 그런 하찮은 이론보다 더 깊은 마음으로 자기 자녀들을 키우고 있다. 이 험한 세상에서 돈 벌어 자식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은지 그 아픔을 어떻게 다 말하겠는가? 그런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공부 잘 하라고 한 소리 했다고 해서 강박적 성격의 소유자라고 선언하지 마라. 우리 부모들은 바라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고 귀하신 분들이다. 그 부모 없이 우리가 이 자리에 오지 않았다.
문제를 다룰려면 바르게 다루어야 한다. 이런 입시 위주의 상황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인간의 문제들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죄로 인하여 생겨난 결과들이다.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분석도 해결도 바르게 가야 한다.
심리학은 온 세상 사람들을 정신병자로 몰아간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세상에는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딱 한 부류 밖에 없다. 정신과 의사와 이런 강박적 성격이 있다고 글을 쓰는 계통의 사람들만이 온전하고 나머지는 다 제정신이 아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31페이지부터 강박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말을 한다. 그들의 특징으로 꼽는 것은 다음과 같다. 강한 성취욕, 효율적인 일 추진, 규칙적으로 일을 한다. 삶에 있어서 목적 의식이 분명한 사람. 자신에게 철저하게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잘 완수하는 사람. 삶의 표어는, “해야 한다(should)" 라고 한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사회나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런 사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자. 이런 사람의 역할이 필요한데 강박적인 사람이라고 몰아붙인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렇게 책임감 있게 일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방향성이고 그 당위성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표면적인 증상만 가지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다 강박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그렇게 몰아붙이는 그 사람이 강박적 환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런 자세로 일하지 않고서 가정을 꾸려가고 직장을 나가서 일을 하고 사업을 일구어 나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강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보다 일을, 감정보다 법과 규칙을 중요시 한다고 말한다. 이런 말은 한편으로는 옳은 말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현대사회의 흐름에 대해 조금이라도 분별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오로지 생산성으로 평가받고 있는 세상에서 그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을 헤어리지 못하는 소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감정이 없고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세상은 그 마음과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만들어 가고 있다. 환경 탓으로 돌리자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그 부족성을 드러내는 예가 32페이지 마지막 단락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자녀의 학업 성취에 관해 다수의 부모는 공통적으로 강박적이다. 부모는 자기 아이가 무엇을 배우든지 즉시 그리고 단번에 부모의 기대 수준에 올라서기를 바란다. 여러 번 가르쳤는데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면서 "왜 이걸몰라, 이 쉬운 걸? 내가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어? 내가 말할 때 도대체 무슨 딴 생각을 한 거야?"라고 말하면서 아이의 기를 죽인다. 그러면 아이는 아이대로 눈물을 찔끔거리며 부모의 호통 앞에 고통스럽게 침묵한다.”
과연 위의 글대로 하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마치 이 글을 보면 모든 부모들이 강박증 환자 취급을 받는 것을 금할 수가 없다. 다수의 부모가 그것도 공통적으로 강박적 이라고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강박적 환자란 말인가?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이 말씀대로 살아라고 그렇게 간절하게 요구하시는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강박적인 하나님이 되어 버리고 만다. 모세오경을 읽어보고 성경전체를 읽어보라. 얼마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하여 간절히 언약에 신실하기를 바라시는가, 그리고 명령하시는가를 보라. 그들이 결국 그 말씀이 불순종하여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다. 그러면 하나님은 강박적 성격을 넘어 강박증을 더 넘고 정신분열증으로 가는 것인가? 절대로 아니다.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식을 키워보지 않은 부모처럼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에는 회초리를 들어야할 때도 있으면, 큰 잘못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품어주며 눈물을 닦아 주어야할 때가 있다. 그 상황은 여러 가지라서 부모로서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부모가 완벽하지는 않으나, 자녀에 대해서는 부모가 더 잘 안다.
특히나 말 중에서,“아이의 기를 죽인다”라는 말은 심리학이 관심을 가지는 “자존감”을 아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가 잘못했으면 반성을 해야 하는 일이고 부모가 심하게 야단을 쳤으면 부모 역시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아이의 기를 죽였다고 말하는 것은 이 저자의 의도가 결국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세워주어야 한다는 의도를 드러내어 주는 것이다.
33페이지 중간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아픈 마음으로 눈물 흘리고, "내 아이는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쁜 거야?"라며 실망하는 부모는 부모대로 속이 상할 때, 그 이면에는 성공적인 결과만을 기대하는 부모의 조급하고 강박적인 성격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이 부모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가 자기 아이 공부를 가르치는 그 결과에 만족스럽지 못해서 나오는 말이다. 부모의 안타까워 하는 마음을 무작정 강박적인 성격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러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가르쳐야 하는가?
너 공부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그렇게 가르치는 부모는 없다. 내놓은 자식이면 몰라도 그렇게 키우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성적이 안올라서 안타까워 하고 조금만 더 열심히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부모다. 다만 그런 일에 너무 열성을 올리는 부모들이 있다고 하면 되는 일을 마치 많은 부모들 이라고 해서 그 많은 부모들이 부모들 전부를 지칭하는 것처럼 들리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부모된 도리가 잘못된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 이 대한민국에서 교육제도가 현격하게 전환되지 않고서는, 아이들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모르고서는 하는 말이다. 입시전쟁이란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이 책의 저자가 공부했던 시절과 지금과는 더 많이 달라졌다. 그 달라졌다는 말은 입시제도가 더 어려워지고 힘들어졌다는 말이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이 있다. 지금 이 나라의 입시상활을 아는지 모르는지 참 알다가도 모르는 말을 하고 있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잘못되었다고 그들의 부모들이 열성을 부린다고 나무라지 마라. 그들을 강박적성격이 있다고 몰아붙이지 마라. 그렇게 가르친 우리 부모가 잘못된 것이 없다. 심리학으로 안들이밀어도 우리 부모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이고, 그런 하찮은 이론보다 더 깊은 마음으로 자기 자녀들을 키우고 있다. 이 험한 세상에서 돈 벌어 자식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은지 그 아픔을 어떻게 다 말하겠는가? 그런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공부 잘 하라고 한 소리 했다고 해서 강박적 성격의 소유자라고 선언하지 마라. 우리 부모들은 바라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고 귀하신 분들이다. 그 부모 없이 우리가 이 자리에 오지 않았다.
문제를 다룰려면 바르게 다루어야 한다. 이런 입시 위주의 상황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인간의 문제들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 죄로 인하여 생겨난 결과들이다.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분석도 해결도 바르게 가야 한다.
심리학은 온 세상 사람들을 정신병자로 몰아간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세상에는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딱 한 부류 밖에 없다. 정신과 의사와 이런 강박적 성격이 있다고 글을 쓰는 계통의 사람들만이 온전하고 나머지는 다 제정신이 아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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