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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의 숨겨진 위험들 - 11장. 속은 자 ... 아니면 속이는 자? [上]

무지개의 숨겨진 위험들 - 11장. 속은 자 ... 아니면 속이는 자? [上]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yoochinw/130108200920


Chapter 11. 속은 자 ... 아니면 속이는 자? [上]
Deluded ... or Deceivers?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사도행전 20:29-31)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태복음 7:15)
 
불행하게도, 뉴에이지 운동의 교활한 미혹은 교회 안에서 상당한 존경과 승인을 얻었다. 심지어 복음주의 교회들조차 "그들은 모든 마을과 기관에서 소그룹들로 뭉쳤다"고 매릴린 퍼거슨의 선언할 때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뉴에이지가 종교단체들 속으로 들어가는 가장 일반적인 수단에 대해 부분적으로 설명하면서 미즈 퍼거슨은 이렇게 말한다:
 
점점 많은 교회들과 유대 회당(시나고그)들은, 개인성장, 전인건강센터, 치유서비스, 명상 워크숍, 음악을 통한 의식 변형, 심지어 바이오피드백 훈련까지를 지원하는 공동체를 포함하게끔 그들의 범위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물병자리 음모, p. 369)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보루여야 하는 것 내부에서조차 이렇게 정통교리가 없어지는 것을 웃어대며 그녀는 계속한다. "이제 이단자들이 강력해지고 있으며, 교리는 권위를 잃고 있으며, 앎이 믿음을 대체하고 있다." 

종종 표면상으로는 기독교적 언어로 포장된, 뉴에이지 운동의 "영적" 측면은 의심치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 심지어 정통종교기관 내부에서도 - 승인되어 왔다. 운동의 정치적 프로그램들 역시 기독교 교단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추천과 옹호를 얻어 냈다.

뉴에이지 운동이 추진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이런 것들이다: 지구 자원의 분배를 다룰 지구적 기관, 세계 부의 재분배, 신세계종교, 체험 종교 (성경적 권위와 전통에 기초한 종교와는 대조적인), 전세계적 과세, 전세계적 징병, 우뇌/전뇌 사고 (직관적이고 주관적인, 그들이 "좌뇌"라고 부르는 것 또는 분석적 사고와 대조적인), 모든 것이 하나의 전체의 부분이라는 교설, 우주적 상호의존에 대한 강조, 제로 인구성장율.

이런 모든 개념들이 복음주의 기독교 서적들과 출판물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일부 교단에서는 이런 사항들의 상당 부분을 "80년대를 위한 어젠다" 속에 포함시켰다.

1982년 8월호 뉴에이지 매거진에 나온 기사에 따르면 매릴린 퍼거슨의 물병자리 음모는 "많고 많은 교회"의 토론 그룹들에 의해 증진되었다.

나의 편집인에게 보내온 최근 편지에서 매릴린 퍼거슨은 이렇게 불평했다:
 
그녀[컴비]가 뉴에이지(와 이에 연계한 나)를 반기독교, 반유대교, 반카톨릭적이라고 고발한 것은 사실상 가소로운 일이다. 나는 카톨릭 대학교와 유대 회당에서 교회 그룹들과 이야기해 왔다. 내 저술의 정신(영)을 반(反)영적(antispiritual), 적그리스도, 등으로 억측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미즈 퍼거슨에게 정중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들은 단지 그녀의 주장들과 맞지 않는다. 또한 그녀가 대화를 나눈 각 교회/기관/단체들이 정통 기독교와 유대교와 일관된 신앙을 가지고 있으란 법도 없다.

그와는 반대로, 메릴린 퍼거슨이 - 수많은 다른 뉴에이저들에게 했듯이 - 이런 대중들에게 그녀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허용되었다는 사실은 예언된 배교가 교회 자체 내에서 힘을 얻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적그리스도의 시험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요한1서 2:22을 보라.) 따라서, 뉴에이지 운동이 "그리스도 의식[意識]"(Christ Consciousness)은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정신의 "더 높은 상태"라고 말할 때, 그리고 예수가 - 세례 시 내려와 십자가에 못박힐 때까지 그에게 머물렀던 - 그리스도 의식을 가졌던 보통 사람이라고 말할 때, 뉴에이지 운동은 그 뒤에 숨은 적그리스도의 영을 드러낸다.

"내면의 하나님: 가장 오래 된 이설"(God Within: the Oldest Heresy)이라는 제목 아래서 매릴린 퍼거슨은 노골적인 범신론('우유는 하나님이었다 ... 원시 자연으로서의 하나님 ... 우주에 있는 의식(consciousness)의 총합' - pages 382-3)을 고의로 증진하는데, 이것은 뉴에이지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녀는 또한, 적그리스도의 모든 성경적 시험을 스스로 충족시키는 "물병자리 복음"(The Aquarian Gospel)을 승인하며 인용한다. 불행히도 기독교 - 특히 주류 개신교 교단의 - 서점들조차 이 책을 취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뉴에이저들은 드러내고 기독교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교묘하게, 적어도 당분간은, 그들은 뉴에이지 개념을 기독교 언어로 덧입히고 또한 - 히틀러처럼 - 이방신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하게 취급하도록 기독교를 손상시키며, 그리스도의 개념을 그들 자신의 필수적인 본질인 것으로 확장시킨다. 그렇다면, 기독교처럼 들리는 이것은 사실상 다른 복음이다.

예를 들어, 매리린 퍼거슨은 나에게 보낸 1982년 6월 17일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에 대한 나의 정의(定義)는 시간이 감에 따라 확장되었다. 예를 들어, 내가 명상에 관여하게 된 이후로, 나는 설교나 교리를 통해 얻었던 것보다 훨씬 생생한 그리스도의 비전(환상)을 체험했다. 뉴에이지 운동이 얼마나 그리스도 의식에 큰 중심을 두는지를 당신이 알게 되면 놀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많은 기독교 교회들은 직접적인 영적 체험이 현대 기독교에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음을 알아가고 있다.
적그리스도의 시험은 명백하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이며(요한1서 2:22),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이다(요한1서 4:2-3). 너와 나를 포함하도록 그리스도를 재정의 하는 것 - 또는 그리스도를 영적 체험으로 바꿔 놓는 것 - 은 확실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인간이 아니라 의식이었다고 가르치고 믿는 것은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뉴에이지 사고의 본질인, 이런 교활한 적그리스도적 아이디어들이 점점 더 기독교 교회 안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만도 너무나도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의 이교의 침식을 기뻐하는 반면에, 매릴린 퍼거슨과 뉴에이지 리더들은 자신들이 참 기독교의 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에 속상해 한다. 카톨릭과 개신교 교회 안에 뉴에이지가 영향을 준 예는 매우 많다. 뉴욕 웨스트나약의 크로스커런츠(Cross Currents)는 교황 피오(비오) 10세[역자주. 카톨릭 교리의 모더니즘적 해석을 거부한 교황]가 경고한 류의 뚜렷한 모더니즘 성향의 카톨릭 출판사이다.
 
유진 폰티넬(Eugene Fontinell)의 종교의 복원을 향하여(Toward a Reconstruction of Religion)를 1979년도판으로 재출판할 때 그들[크로스커런츠]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할 말이 있었다:
 
이와 같은 이해와 종교적 상징의 역할이 주어졌을 때, 끝나버린 기독교 상징들은 어떤 것들이며, 살아남을 수 있는 기독교 상징들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실용적 복원을 고려함에 있어서, 전능, 전지 그리고  불변은 더 이상 크리스천들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상징하는 알맞는 방법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메시지를 보내는 하나님', '율법을 주는 하나님', 그리고 '제도를 세우는 하나님'은 실용주의가 예상하는 세계 안에서 어울리지 않는 상징들이다. 반면에, ' 삼위일체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그리고 '육체를 입은 하나님'은 과정적-관계적(processive-relational) 세계 [역자주. 모든 실재는 (변화)과정 중에 있으며 또한 상관적이라는 의미] 안에서 개발 및 서비스될 풍부한 가능성을 아마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상징이라면,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어떤 추상적인 형태로 상징들을 간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상징들은 공동체의 삶 속에서 이용되어야 하며, 이 삶을 진척시키는 데에 기여했고, 기여하고 있고,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적어도 처음에는, 나타나야 한다. 이 점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입은 사람으로서의 하나님'을 참조하여 설명하겠다.
 
이 상징을 실용적으로 복원하는 첫 걸음은 이것을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 그리고 오직 나사렛 예수에게만 국한된 것으로 보는 견해를 거부하는 것이다. 육체를 입게 되었던 하나님을 말하는 대신 육체를 입게 되는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 안에 사람과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의 유일하고 불가결한 현현이 있는 것으로 믿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는 과정적으로(processively) 생기는 것으로 보아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상징을 과정적이고 관계적인 면에서 보는 것은 이를 정적이고 실질적인 면에서 보는 것보다 유리한 점이 몇가지 있다. 우선, 이것은 지금 인간의 삶을 특징짓는 사고 및 경험과 더 잘 통한다. 둘쨰로, 그리스도에 대한 이런 과정적 관점은 교회의 사색적인 삶의 초기에 예상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셋째로 이것은, 그리스도와 다른 종교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리스도와 비(非)서양적 문화들과의 관계 면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모든 사람의 단체들과 그의 삶의 모든 면에 새로운 관점과 의미를 부여한다. 왜냐하면, 그의 단체들을 통한 사람의 전적인 관여와 참여 없이는 그리스도의 실재를 완전히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카톨릭 배교가 널리 퍼진 모습을 보여주는 이 보기에 개신교도들이 킬킬대지 않도록 우리도 우리의 문제를 갖고 있음을 그들에게 상기시키자.

무수한 개신교 서적들도 정확하게 똑같은 메시지를 나르고 있다. 지독히 불쾌한 카톨릭 서적들은 기독교 서점들 - 때로는 복음주의 서점들 - 에서 판매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카톨릭 서점들도 뉴에이지 테마를 나르는 것으로 보이는 개신교 서적들을 판매한다. 이 사업 전체의 놀라움은 그 에큐메니즘[종교다원주의]에 있다!

버클리신학연합대학원(The Graduate Theological Union of Berkley)은 에큐메니컬 관점에서의 한 사례이다.

1962년 버클리에서 설립된 이것은 카톨릭, 개신교, 그리고 유대교 참가자들을 일종의 공통된(commonized) 배교 안에 한데 묶었다. 사실, 그들은 너무나 배교적이어서 그들의 신학적 수평선을 힌두교, 불교, 수피교, 시크교, 페미니스트 영성, 뉴에이지 단체들, 오컬티즘, 신 이교주의(neo-paganism) 그리고 마법(witchcraft)까지 포함하도록 확장시켰다. 그들의 활동은 적어도 하나의 중요한 소스인 "신인식 자료집(New Consciousness Sourcebook)"(영적공동체 가이드 No. 5)의 승인에 부합된다. 과거 몇년 동안 이 책의 다른 이름은 뉴에이지 핸드북(Handbook for a New Age)이었었다.

그들이 "창조적 차용(creative borrowing)"이라고 부르는 것에 관여하면서 그들은 기독교를 가까스로 인식할 수 있는 상태로까지 희석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합대학원의 교수 중 한 명인 찰스 S. 맥코이 (Charles S. McCoy) 박사는 존 코브(John Cobb)의 다원주의 시대의 기독교(Christ in a Pluralistic Age)를 추천과 함께 인용한다. 코브는 "그리스도를 재고안(reconceive)하기" 위해 크리스천들에게 불교를 베끼라고 제안했다. 맥코이는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 체험들 속에서의 창조적 트랜스포메이션[탈바꿈/변혁](creative transformation)이며, 또한 역사적 예수나 그 어떤 과거의 교리에 의해서도 제한받지 않는 것으로 재고안되어야 한다"는 코브의 논지를 열심히 지지한다.

맥코이는 이렇게 말한다:
 
지구 곳곳의 다원적 신앙들과, 그리고 모든 문화 속에서 억압당한 사람들의 해방을 향한 쇄도는, 우리 기독교의 지난날들이 우리에게 전달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역사에 대한 제한적 개념을 소멸시키며, 더 넓은 시각과 하나님 안에 숨겨진 (새롭게 떠오르는) 완성을 향해 우리를 열어 준다. (1)
다시 말하자면, 기독교는 하나님에 이르는 다른 길들로 인해 자유롭게 되고 풍요롭게 되어야 한다.

시오도어 M. 헤스버그는 노틀담 대학교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총장이다. 그는 지구시민(Planetary Citizens)의 자문위원장으로 일하기도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지구시민"의 목적은 "월드서버들"(세계봉사자들)을 돕는 것인데, 그들은 다시 "그리스도의 재등장을 위한 선봉"으로서 봉사하도록 되어 있다.

헤스버그 또한 "세계를 살리기 위한 계획" 지구 계획(PI)을 추천하는 사람이다.projection

1972년 헤스버그는 드와이트 해링턴 테리 재단에서 "과학과 철학의 관점에서 본 종교"에 대한 강의를 했다. 헤스버그는 수많은 명예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정치, 종교, 학문 일원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테리 재단에서의 강연으로부터 나온 책은 지구를 위한 많은 뉴에이지 어젠다를 담고 있다.
 
그의 서문에는 우리가 세상을 "얼마간 신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그가 예상하는 것을 "크리스천 휴머니즘"이라고 부르며 헤스버그는 기독교보다 "휴머니즘"에 더 기울은 성향을 재빨리 드러낸다. 휴머니즘은 신학체계와 신을 갖고 있지만, 그 신은 우리 자신들과 루시퍼이지 개신교, 카톨릭, 그리고 유대교 모두를 위한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단번에 (영원히) 온전한 제사를 드렸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럼에도 헤스버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구속(救贖 Redemption)은 창조의 완전(totality)을 아우른다. 그리고 새 사람과 새 지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시대를 창조하고 있고 아울러 구속 하고 있다. (2)
헤스버그 책의 한 장(章)의 제목은 "에큐메니즘[종교다원주의]의 힘"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일치는, 침례교인, 카톨릭, 장로교인 또는 성공회교인 모두가 시인해야 하는 우리의 주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가 아니다. 그의 에큐메니칼(한) 관심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세계종교 차원에 있다"고 그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는 비기독교 종교에 대한 우리 관심의 공통성에 대해 몇 페이지를 할애한다. 다섯번이나 검열 받았던 예수회[제수이트] 신부이자 뉴에이저의 영웅인 삐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뎅[역자참고<<]은 헤스버그에 의해 "인류의 일치의 위대한 선지자(비저너리)"라고 불렸다.

비록 헤스버그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을 가졌다고 고백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이 이 땅 위의 그분의 인간 창조물을 보살피실 것으로 믿지는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고정된 세계 인구를 위한 제로 인구(증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유럽의 공동시장(Common Market) 국가들의 장점들을 - 포스터 베일리가 루시스 트러스트 출판물에서 사용한 것과 거의 똑같은 언어로 - 극찬한다. 지구시민권(Planetary citizenship)은 "독립선언문"처럼 우리에게 강력히 촉구된다.
 
헤스버그와 매튜 폭스, 폰티넬, 그리고 다수의 "진화한" 또는 "변혁된" 로마 카톨릭 신학자들의 글을 읽어 보면, 교황 피오 10세는 고위 성직자였을 뿐 아니라 선지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곧 수긍하게 된다.

"주님의 양떼를 먹이기"(Pascendi Dominici Gregis)라는 (모더니즘에 관한) 회람에 담겨있는 그 교황의 통찰력 있는 경고는 주의를 받지 못했으며, 이 양의 탈을 쓴 이리들은 카톨릭 하이어라키[고위층] 속으로 자유로이 기어 들어왔다. 똑같은 방법으로 많은 다른 뉴에이지 동조자들이 개신교 신학교들과 강단에  - 심지어 근본주의 일원에서조차 -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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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이 바뀔 때, 신학에 대한 희망 (When Gods Change, Hope for Theology) 찰스 S. 맥코이 저. 맥코이는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 퍼시픽종교대학(Pacific School of Religion)의 로버트 고든 스프라울 신학윤리학 교수이다. 나아가 그는 예일 대학원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그는 주요 버클리 신학자이자 국제 강사로 알려져 있다.
(2) 시어도어 M. 헤스버그의 인간의 의무(The Human Imperative), 서문은 킹맨 브루스터 2세에 의함, Yale University Press. Copyright (c) 1974 by Yale University, second printing 1975, p.11.
(3) (모더니즘에 관해서) "주님의 양떼를 먹이기" 회람에 기초한 J.B. 레미우스 목사(Rev. J.B. Lemius, O.M.I.)의 모더니즘의 교리문답(A Catechism of Modernism)을 보라. 디트로이트 성직자가 내게 준 이 2 달러짜리 책은 - 카톨릭과 개신교 마찬가지로 - 그리스도의 몸에서의 뉴에이저들과 배교자들 양쪽 모두의 방법에 대해 아마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교황 피오10세의 다음과 같은 적절한 발언이 인용된다. "우리는 이제 교회 전체 앞에서 그들의 진상을 드러내고, 이런 나쁜 가장(변장)을 한 사람들을 밝히기 위해 침묵을 깨야만 한다." 이 교리문답은 일리노이 록포드의 탠 서적 출판사(Tan Books and Publishers, Inc.)에서 출판되었으며 1980년에 마지막으로 출판되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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