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도르프 인지학9] 삶의 중요한 세가지 의문
[발도르프 인지학9] 삶의 중요한 세가지 의문
자료출처http://pssyyt.tistory.com/108
참고하기 위하여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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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인자는 지옥,
착한 사람은 천국으로 갈까?
‘나’란 존재는 육신의 고깃덩어리일까?
사고하고, 고뇌하는 의식의 주체일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 소녀는 90년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아프가니스탄의 한 빈민가에서 태어났지요. 그녀는 학교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배불리 젖 한 번 먹어보지 못했고, 아이 때는 끼니 거르기를 밥 먹 듯하며 성장했습니다. 영양실조로 자주 앓아누워야 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 들 즈음, 탈리반 점령군에게 여러 번 성폭력까지 당하며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소녀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원망스럽고 미웠지요. 어느 날 그녀는 또 다시 다가올 성폭행의 공포 속에서 떨다가 그들을 죽이게 됩니다. 소녀는 이제 살인자가 되어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같은 시대 한국에서 태어난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건강에 좋은 음식만 골라 먹고 깨끗한 옷을 입고 부모의 관심과 사랑 속에 그늘 없이 밝게 자랍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취미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미술학원도 다니고 수영도 배웠습니다.
주말이면 종종 부모와 함께 놀이공원도 가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소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난히 대학을 입학했지요. 사랑하는 애인도 생겼습니다. 곱게 자란 사람이니 성격도 온화하고 선량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한 번도 깊은 늪으로 빠져 본 적이 없었지요.
일부 종교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이 두 소녀는 불공평하게 태어나서 이렇게 단 한 번의 삶을 살다 가는 것이지요. 한 사람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축복 받은 환경에서 출발하고 다른 사람은 처음부터 울퉁불퉁한 돌길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가 끝내는 제 명대로 살지도 못하고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극명하게 대조적인 상황을 머리로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약간만 깊이 있게 사고하면 무엇인가 분명 우리의 인생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인식은 하지만 ‘그렇다면 왜?’라는 질문에 만족할 만큼 진정 내적으로 답을 찾기는 쉽지 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진정으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나요? 확실하게 ‘나’라는 인간이 존재한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을 ‘나’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이 육신의 고깃덩어리가 과연 나인지, 아니면 끝없이 사고하고, 기억하고, 고뇌하는 의식의 세계를 진정한 ‘나’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인지. 아마 갑자기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자신 있게 ‘나’에 대해 설명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1)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질문에 대한에 대한 물질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고조할머니와 할아버지...... 계속 가족의 계보를 더듬어 올라가야 합니다. 나중에는 유전자에까지 이르게 되겠지요.
일부 종교에서는 육체와 정신을 함께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설명으로도 인간이 태어나기 전의 정신세계를 설명해 줄 수는 없습니다. 종교적 관점에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신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정 나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2) 과연 나는 누구인가?
간혹 이런 의문으로 깊은 고민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과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물질적인 의미에서 인간은 무의미한 존재입니다. 한국에서 유복하게 태어나 부모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많이 배우고 충분히 소유한 위의 소녀도 결국은 물리적인 육체에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그녀가 죽고 나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요. 지금까지 소유하고 만끽하던 사랑도, 행복도 모두 부질없어 지는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 존재했던 모든 것이 과연 진정으로 존재했던 것인지, 아니면 한 바탕 꿈을 꾸고 돌아가는 것인지 우리는 명확히 알 수 없지요. 그렇다면 과연 ‘나’라는 인간은 누구일까요?
(3) 죽고 나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간은 사후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죽고 나면 화장을 하 든 땅에 묻든 우리의 침과 고름과 피, 모든 액체는 물이 되어 흐르고 살과 뼈는 흙이 되어 본래의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일부 종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으로 대별되는 영속하는 사후가 존재합니다. 위에 예로 든 두 소녀를 생각해 봅시다. 사후에 두 소녀가 간 곳은 천국일까요? 지옥일까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자신을 성폭행한 탈리반의 남자들을 살해한 소녀는 지옥으로 갔겠지요. 아무리 고통스러운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발버둥 치는 사람이라도 살인이 허락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인간의 삶은 너무 절망적일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다른 해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종교적 세계관으로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해 루돌프 슈타이너는 사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분명하게 어떤 해답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에 대해서요. 앞으로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관점에서 그 의문을 하나하나 풀어가 보겠습니다.^^
자료출처http://pssyyt.tistory.com/108
참고하기 위하여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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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인자는 지옥,
착한 사람은 천국으로 갈까?
‘나’란 존재는 육신의 고깃덩어리일까?
사고하고, 고뇌하는 의식의 주체일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 소녀는 90년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아프가니스탄의 한 빈민가에서 태어났지요. 그녀는 학교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배불리 젖 한 번 먹어보지 못했고, 아이 때는 끼니 거르기를 밥 먹 듯하며 성장했습니다. 영양실조로 자주 앓아누워야 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 들 즈음, 탈리반 점령군에게 여러 번 성폭력까지 당하며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소녀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원망스럽고 미웠지요. 어느 날 그녀는 또 다시 다가올 성폭행의 공포 속에서 떨다가 그들을 죽이게 됩니다. 소녀는 이제 살인자가 되어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같은 시대 한국에서 태어난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건강에 좋은 음식만 골라 먹고 깨끗한 옷을 입고 부모의 관심과 사랑 속에 그늘 없이 밝게 자랍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취미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미술학원도 다니고 수영도 배웠습니다.
주말이면 종종 부모와 함께 놀이공원도 가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소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난히 대학을 입학했지요. 사랑하는 애인도 생겼습니다. 곱게 자란 사람이니 성격도 온화하고 선량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한 번도 깊은 늪으로 빠져 본 적이 없었지요.
일부 종교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이 두 소녀는 불공평하게 태어나서 이렇게 단 한 번의 삶을 살다 가는 것이지요. 한 사람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축복 받은 환경에서 출발하고 다른 사람은 처음부터 울퉁불퉁한 돌길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가 끝내는 제 명대로 살지도 못하고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극명하게 대조적인 상황을 머리로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약간만 깊이 있게 사고하면 무엇인가 분명 우리의 인생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인식은 하지만 ‘그렇다면 왜?’라는 질문에 만족할 만큼 진정 내적으로 답을 찾기는 쉽지 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진정으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나요? 확실하게 ‘나’라는 인간이 존재한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을 ‘나’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이 육신의 고깃덩어리가 과연 나인지, 아니면 끝없이 사고하고, 기억하고, 고뇌하는 의식의 세계를 진정한 ‘나’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인지. 아마 갑자기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자신 있게 ‘나’에 대해 설명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1)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질문에 대한에 대한 물질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고조할머니와 할아버지...... 계속 가족의 계보를 더듬어 올라가야 합니다. 나중에는 유전자에까지 이르게 되겠지요.
일부 종교에서는 육체와 정신을 함께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설명으로도 인간이 태어나기 전의 정신세계를 설명해 줄 수는 없습니다. 종교적 관점에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신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정 나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2) 과연 나는 누구인가?
간혹 이런 의문으로 깊은 고민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과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물질적인 의미에서 인간은 무의미한 존재입니다. 한국에서 유복하게 태어나 부모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많이 배우고 충분히 소유한 위의 소녀도 결국은 물리적인 육체에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그녀가 죽고 나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요. 지금까지 소유하고 만끽하던 사랑도, 행복도 모두 부질없어 지는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 존재했던 모든 것이 과연 진정으로 존재했던 것인지, 아니면 한 바탕 꿈을 꾸고 돌아가는 것인지 우리는 명확히 알 수 없지요. 그렇다면 과연 ‘나’라는 인간은 누구일까요?
(3) 죽고 나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간은 사후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죽고 나면 화장을 하 든 땅에 묻든 우리의 침과 고름과 피, 모든 액체는 물이 되어 흐르고 살과 뼈는 흙이 되어 본래의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일부 종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으로 대별되는 영속하는 사후가 존재합니다. 위에 예로 든 두 소녀를 생각해 봅시다. 사후에 두 소녀가 간 곳은 천국일까요? 지옥일까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자신을 성폭행한 탈리반의 남자들을 살해한 소녀는 지옥으로 갔겠지요. 아무리 고통스러운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발버둥 치는 사람이라도 살인이 허락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인간의 삶은 너무 절망적일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다른 해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종교적 세계관으로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해 루돌프 슈타이너는 사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분명하게 어떤 해답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에 대해서요. 앞으로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관점에서 그 의문을 하나하나 풀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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