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도르프 인지학7] '자아(Ich)'의 발견
[발도르프 인지학7] '자아(Ich)'의 발견
자료출처http://pssyyt.tistory.com/106
참고하기 위하여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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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진정한 '나'를 만나는 순간 희망이..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나'는 누구일까?
그녀는 자신 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연을 당했습니다. 매달려도 보았고 울어도 보았지만 그는 다른 여인에게로 떠났습니다.
그녀에게 더 이상 살아야할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마음의 병은 몸으로도 옮겨와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습니다. 그가 없는 삶을 더 이상 이어나갈 힘도 의지도 없어졌습니다.
깊은 잠을 잘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눈을 뜨는 것도 무서운 나날들입니다. 더 이상 이런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깊고 어두운 철창에서 벗어나 새처럼 가볍게 날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지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글을 쓰고,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을 아리게 하는 그 사람 이름으로도 편지를 보냅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 누구도 알 수 없는 곳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자 길을 떠납니다.
이른 아침, 죽음으로의 긴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서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던 옛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는 목발을 짚고 있었습니다. 지난 여름, 휴가를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었고 자신은 한 쪽 다리를 잃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눈물도 말랐다며 담담하게 지난 이야기를 들려준 친구는 그녀를 바라보며 이야기 합니다. ‘난 지금 네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
아, 이게 무슨 말일까요? 친구와 헤어지고 그녀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 녀의 또 다른 그녀는 ‘너는 충분히 다시 행복해 질 수 있어.’라고 말합니다. 용기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이 고통에서 벗어나야 하는지 길이 보이는 것도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그녀 안에 있는 진정한 그녀를 만난 것입니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아래로만 꺼져 내리던 육신은 점점 가벼워지면서 그녀는 이미 내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자아(Ich)’는 인간만이 소유할 수 있는 영혼의 중심
우리는 살면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 상태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자살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실연을 당했다든지, 사업에 실패해서 깊은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든지.
깊고 어두운 동굴 속과 같은 고통과 좌절, 누구하나 손을 내밀어 줄 것 같지 않은 상황이 올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 동굴의 안쪽에는 분명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누군가의 힘이 있습니다.
과연 누구일까요? 그는 바로 나 자신일까요? 아니면 내가 아닌 어떤 다른 존재일까요? 그의 정체는 나이기도 하면서 내가 아니기도 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지학에서 이러한 나를 독일어로 ‘나(Ich)’라고 했습니다. 독일어로 Ich는 외형적인 ‘나’의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Ich를 ‘자아’로 번역하겠습니다.
우리는 무기물인 육신을 나라고도 하고, 생명을 불어 넣은 에터라이브를 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 의식의 세계를 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아'는 바로 영적인 '나'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육체와 정신과 영혼 중 ‘자아’는 주로 영혼의 영역에서 활동합니다.
위에서 자살 직전에 그녀가 만난 또 하나의 그녀는 바로 자신 안에서 이미 함께하고 있던 '나(Ich)'였지요. 그 ‘나’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영혼 안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아는 인간만이 소유할 수 있는 영혼의 중심입니다. 우리의 정신 속에 간혹 일부분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지만 그가 주로 점유하고 있는 부분은 영혼의 세계입니다. 평소에는 잠자고 있던 자아가 흔히 깊은 고독이나 고통 속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낼 때가 많다고 합니다.
‘자아’는 육신이 멸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아
우리의 의식은 잠자는 동안에는 가라앉지만 참나는 잠들지 않고 항상 깨어있습니다. 수면상태에서 자아는 의식에서 빠져나와 먼 우주에까지 뻗어나갑니다. 그러나 잠을 깨면 다시 의식 속으로 들어와 숨어버리지요.
자아는 의식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힘이지만 육체의 순환기능에 따라 활동하지 않습니다. 그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 안에 존재하지만 인간에 의해 수면 위로 떠오를 때까지는 잠자고 있습니다. 스스로 찾아내었을 때 비로소 활동을 시작합니다. 자아는 다른 사람이 찾아 줄 수도 없습니다. 스스로 성찰해야 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자아는 환경이나 의식, 영혼의 세계에서 받은 정보들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면서 모든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고 조종합니다. 또한 무한한 잠재력을 소유하고 있어 전지전능한 영혼의 힘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을 구성하는 육체와 정신은 자아에 비하면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모든 육신과 생명을 주는 아스트랄라이브는 죽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그러나 자아는 육신이 멸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생명으로 옮겨 계속 존재한답니다.^^
자료출처http://pssyyt.tistory.com/106
참고하기 위하여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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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진정한 '나'를 만나는 순간 희망이..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나'는 누구일까?
그녀는 자신 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연을 당했습니다. 매달려도 보았고 울어도 보았지만 그는 다른 여인에게로 떠났습니다.
그녀에게 더 이상 살아야할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마음의 병은 몸으로도 옮겨와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습니다. 그가 없는 삶을 더 이상 이어나갈 힘도 의지도 없어졌습니다.
깊은 잠을 잘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눈을 뜨는 것도 무서운 나날들입니다. 더 이상 이런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깊고 어두운 철창에서 벗어나 새처럼 가볍게 날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지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글을 쓰고,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을 아리게 하는 그 사람 이름으로도 편지를 보냅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 누구도 알 수 없는 곳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자 길을 떠납니다.
이른 아침, 죽음으로의 긴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서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던 옛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는 목발을 짚고 있었습니다. 지난 여름, 휴가를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었고 자신은 한 쪽 다리를 잃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눈물도 말랐다며 담담하게 지난 이야기를 들려준 친구는 그녀를 바라보며 이야기 합니다. ‘난 지금 네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
아, 이게 무슨 말일까요? 친구와 헤어지고 그녀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 녀의 또 다른 그녀는 ‘너는 충분히 다시 행복해 질 수 있어.’라고 말합니다. 용기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이 고통에서 벗어나야 하는지 길이 보이는 것도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그녀 안에 있는 진정한 그녀를 만난 것입니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아래로만 꺼져 내리던 육신은 점점 가벼워지면서 그녀는 이미 내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자아(Ich)’는 인간만이 소유할 수 있는 영혼의 중심
우리는 살면서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 상태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자살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실연을 당했다든지, 사업에 실패해서 깊은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든지.
깊고 어두운 동굴 속과 같은 고통과 좌절, 누구하나 손을 내밀어 줄 것 같지 않은 상황이 올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 동굴의 안쪽에는 분명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누군가의 힘이 있습니다.
과연 누구일까요? 그는 바로 나 자신일까요? 아니면 내가 아닌 어떤 다른 존재일까요? 그의 정체는 나이기도 하면서 내가 아니기도 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지학에서 이러한 나를 독일어로 ‘나(Ich)’라고 했습니다. 독일어로 Ich는 외형적인 ‘나’의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Ich를 ‘자아’로 번역하겠습니다.
우리는 무기물인 육신을 나라고도 하고, 생명을 불어 넣은 에터라이브를 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 의식의 세계를 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아'는 바로 영적인 '나'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육체와 정신과 영혼 중 ‘자아’는 주로 영혼의 영역에서 활동합니다.
위에서 자살 직전에 그녀가 만난 또 하나의 그녀는 바로 자신 안에서 이미 함께하고 있던 '나(Ich)'였지요. 그 ‘나’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영혼 안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아는 인간만이 소유할 수 있는 영혼의 중심입니다. 우리의 정신 속에 간혹 일부분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지만 그가 주로 점유하고 있는 부분은 영혼의 세계입니다. 평소에는 잠자고 있던 자아가 흔히 깊은 고독이나 고통 속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낼 때가 많다고 합니다.
‘자아’는 육신이 멸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아
우리의 의식은 잠자는 동안에는 가라앉지만 참나는 잠들지 않고 항상 깨어있습니다. 수면상태에서 자아는 의식에서 빠져나와 먼 우주에까지 뻗어나갑니다. 그러나 잠을 깨면 다시 의식 속으로 들어와 숨어버리지요.
자아는 의식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힘이지만 육체의 순환기능에 따라 활동하지 않습니다. 그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 안에 존재하지만 인간에 의해 수면 위로 떠오를 때까지는 잠자고 있습니다. 스스로 찾아내었을 때 비로소 활동을 시작합니다. 자아는 다른 사람이 찾아 줄 수도 없습니다. 스스로 성찰해야 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자아는 환경이나 의식, 영혼의 세계에서 받은 정보들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키면서 모든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고 조종합니다. 또한 무한한 잠재력을 소유하고 있어 전지전능한 영혼의 힘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을 구성하는 육체와 정신은 자아에 비하면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모든 육신과 생명을 주는 아스트랄라이브는 죽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그러나 자아는 육신이 멸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생명으로 옮겨 계속 존재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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