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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다 싱의 신비주의

선다 싱의 신비주의
자료출처http://cafe379.daum.net/_c21_/filefilter_viewer_hdn
 
과    목 : 신비주의 연구
담당교수 : 서정민 교수님
발 제 자 : 통합 5학기 윤상림
발 제 일 : 2007년 10월 24일
 
 
제 1장 들어가며
 
사두 선다 싱이라는 그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그는 평범하지만은 않은 기독교 신자이다. 그의 이름 앞에 붙여진 사두(Sadhu)는 성자, 혹은 수행자, 고행자를 뜻하는 말로, 힌두교에서 쓰는 용어이다. 기독교인이며 동시에 인도인인 선다 싱은 회심 이후, 온전히 복음 전파에 전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사두가 되었다. 회심 이후, 끊임없이 복음을 전했고, 목숨을 내 놓은 전도 여행을 계속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사두의 삶은 복음 전파였지 고행에 있지 않았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사두 선다 싱의 생애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그의 전도 여행과 신앙체험의 모습을 통하여 신비주의와의 관계를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
본 발제를 시작하기 전에 그 동안 가졌던 신비주의에 대한 무수한 정의를 잠시 접어 둘 것을 당부한다. 선다 싱의 전도 여행 중에 계속된 박해와 고문 속에 그가 살아난 일들은 기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며, 그는 말 그대로 ‘신비’한 신앙 체험을 많이 한 사람이다. ‘신비 체험을 많이 했다’기 보다는, 회심 이후 신비 체험은 그에게 일상적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일상의 어휘들로는 온전히 묘사할 수 없는 그의 ‘엑스타시(입신 등의 여러 현상)’ 및 환상들을 생각하면, 신비라는 말을 안 할 수 없고, 신비주의의 여러 정의 속에 그를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당부한다. 신비주의의 실로 다양한 정의를 접어두고, 앞으로 그의 생애와 그가 하는 이야기들이 소개 될 때, 그가 삶 속에서 얼마나 현실적․역사적이었는지, 그리고 스스로 기독교 수도자 및 전도자로서 자력 구원의 노력(고행)을 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선다 싱의 신비주의를 살펴보기 바란다.
 
제 2장 선다싱의 생애
 
선다 싱은 1889년 9월 3일에 펀잡주에 있는 람푸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유한 가정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호사스런 생활을 했고,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 속에서 성장했다. 1903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는 혼란 속에 빠졌고, 재학중이던 미션 스쿨에서 많은 말썽을 많이 부리다가, 어느 날 더 이상 거짓을 참을 수 없다며 성경을 불태웠다. 성서를 불태운 삼일 후인 1904년 12월 18일 그는 회심한다. 이 때 그는 자신이 모욕한 예수님을 환상을 통하여 만난다. 그가 회심하여 기독교인이 된 후, 가족의 박해는 시작되었다. 마침내 그는 가족으로부터 의절을 당하고 내쫓기게 된다. 집에서는 가족에게 불명예를 주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독이 섞인 빵을 주어 그를 내쫓는다. 그 빵을 먹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선다 싱은 1905년 9월 3일 16세가 되는 날, 시믈라에 있는 성공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후 그는 바로 기독교인 사두의 삶의 시작한다.1)
1908년 19살에 선다싱은 처음으로 티벳을 방문했고, 이후 티벳은 그의 주요 사역지가 되었다. 그가 티벳을 선택한 이유는 그곳까지 기독교의 전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티벳의 개종은 전적으로 인도교회에 부과된 선교 사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2) 1909년과 1910년에는 라호르(Lahore)에 있는 ‘성 요한 신학교’에서 지냈다. 1911년 그는 부제직에 천거를 받아 설교할 자격을 부여받았으나 성공회에서 성직을 받으면 다른 교파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행동의 제약을 받게 되어 자신의 기독교적 사역 영역이 제한된가는 생각에 부제직을 반환한다. 라호르의 주교였던 레프로이(Lefroy)는 선다가 부여받은 특별한 사역과 선교를 인식하고, 전적으로 승인해 주었고, 선다의 사역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3)
선다의 사두로서의 삶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하나는 그의 40일 금식 시도이다. 이 40일 금식에 대해서, 그가 성공했다 못했다의 말이 있으나 중요한 것은 이 금식이후 영력과 통찰력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는 그 금식이 그의 영성생활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단언하며, 자신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기 위하여 금식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1912년 이 금식 이후 선다싱의 전도 여행은 시작된다. 인도 전역과 히말라야의 불교국가들에서 시작하여, 1918년부터 22년까지는 유럽과 미국, 중곡, 일본, 호주 등을 방문하여 많은 연설을 하며, 복음을 전한다. 1923년 그는 티벳 방문에서 돌아왔고, 이후 저술 활동을 잠시 하다가 1927년 다시 티벳을 간다. 그러나 전도 여행의 고생과 많은 고문 속에 몸이 쇠약해져 있었기에 병으로 티벳 전도 여행 중에 돌아온다. 1929년 그는 다시 티벳을 방문했는데, 그 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전도 여행이 중요한 것은 선다 싱이 힌두교 사두의 삶을 택했지만 은둔하지 않았으며, 박해와 고문 속에서도 끊임없이 복음을 전했다는 점이다.
 
제 3장 사두 선다 싱의 신앙관
 
제 1절 봉사
선다 싱은 성도로서 봉사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그 사랑을 나누는 것은 당연하며, 봉사를 통하여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고 하였다. 어느 날 봉사의 진정한 의미와 그 중요성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선다 싱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봉사는 영적 생활의 활동이며, 사랑으로 말미암은 자연적인 헌신을 의미한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을 돌보시는 활동을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들과 그의 모습과 형상으로 지은 특히 인간들이 게을러지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는 봉사하는 사람 자신을 돕는다는 가장 큰 장점이 있다. 매우 추운 날 티벳에서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업고 가는 동안 몸에서 열이 나서 둘 다 살았다면, 이것이 진정한 봉사의 목적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을 돕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다.”4)
 
선다 싱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자신을 돕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 자신의 영혼 안에 놀라운 만족에 이른다고 하였다. 사람들과 치밀한 관계를 맺으며, 모든 진보는 상호 돕고 봉사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봉사의 원리를 우리들의 삶의 황금률로 삼고, 사랑 안에서 서로를 섬기자, 자기부인이 없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먼저 은밀하신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을 배우고, 주님의 발아래 앉아 있는 동안 사랑의 교훈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밖으로 나가 우리들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섬기자. 그리고 이렇게 함에 있어서 우리들의 삶에서 창조주이시며 주님이신 분의 목적과 뜻을 이루며, 또한 계속해서 영원히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5)
 
선다 싱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는 쉽지만, 그를 위하여 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죽는 데는 한 두 시간이면 되지만,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다는 것은 매일 죽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기독교의 실질적인 특징을 그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인 마태복음 16장 25절,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야기 하곤 했다.
이러한 선다 싱에 대해, 하일러는 “선다 싱은 인도에서 가장 이상적인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마음속에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맨발로 순회한 전도자이며, 그에게서 기독교와 힌두교가 만나고, 기독교가 인도라는 줄기에서 꽃처럼 피어난다“고 말했다.6)
 
제 2절 구원에 대하여
하드워를 지나던 선다 싱은 바늘 방석에 앉아 있는 사두를 보고,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괴롭게 하는 목적이 뭐냐고 물었다. 그 사두는 육신을 억제하고 죽이는 것이며, 자신의 목적은 구원을 얻기 위해 자아의 욕망을 멸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열여덟 달을 그렇게 해 왔고, 많은 세월과 실로 많은 윤생을 거치면 반드시 목적이 이루어진다는 그에게 사두 선다 싱은 예수복음을 전했다. 고행 중인 사도는 논쟁 없이, “나는 구원은 값없이 얻어지는 것이거나, 짧은 생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통스러운 수행 중에 있는 사두들을 만나면서 선다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러한 삶(구원, 안식과 평안, 대속 등)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이해하거나,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7)
선다 싱은 베나레스(Benares)에서 교육 받은 힌두교 산야시를 만나 대화를 했다. 선다싱은 공로나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사두가 된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방해가 없이 사두의 단순한 길에서 은혜로써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사두가 된 목적이고, 젊고 나이에 생명을 주신 분을 섬기는 것이 옳은 일이 라고 산야시에게 말했다. 이에 산야시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 있겠소? 우리 각자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즐거움, 노여움,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우리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소. 왜냐하면 구원이란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업(業; karma)에 달려 있기 때문이오.”라고 답했다.8)
선다 싱은 힌두교의 성자들에게 말한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고문을 가하려 하기 때문에 성자가 되었으나 선다 자신은 봉사하는 성자이며, 고문을 받기는 하지만, 스스로 고문을 가하지는 않으며, 현재의 세상을 거부하지도 않으며, 세상에 있길 원하지만, 세상의 것이 되고자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9)
선다가 성자의 생활을 택한 이유는 그 생활을 통하여 세상적인 일에 구애 받지 않고, 많은 인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삶을 살라는 소명을 받았다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 3절 금욕주의에 대하여
선다싱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기독교나 힌두교의 많은 신비가들이 매력을 느끼고 있는 금욕주의적 이상을 그는 철저히 거부한다는 점이다. 그에게 있어 신비의 길은 자기 의식적인 단념을 요구하는 “부정의 길(via negativa)이 아니라, 단순한 기도와 자기희생적인 봉사의 경건생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다 싱은 하나님과의 교제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으며, 희귀한 것도 아니며, 일상적인 직업생활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선다싱은 스스로를 신비가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에 대한 오해가 많이 때문이다. 그는 진정한 신비가를 하나님과 함께 생활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선다 싱은 스와미(Swami)라는 말보다는 ‘경건한 사람’을 의미하는 ‘성자’(Sadhu)라 불리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10) 선다 싱은 일반 힌두교 성자와 달리 스스로 공로를 쌓거나 고통을 가하여 완전에 이르는 금욕주의자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전도하는 탁발 수도사”(Preaching friar)라고 말하길 좋아 했다고 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지상에서의 자신의 의무라고 한다. 이 이유가 선다싱이 힌두교의 단념사상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이유이다. 힌두교의 ‘산야시’라는 말은 ‘단념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악하게 보고 세상을 단념하나, 선다 싱은 이 세상을 단념하는 것은 하늘의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지어준 선물을 단념한다는 것이다. 그는 세상을 단념하지 않고, 세상 속의 악을 단념한다고 했다.11)
그에게 여성을 무시하거나 피하는 금욕주의자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성자는 지상에서 여성들이 그리스도에게 보였던 사랑과 봉사를 강조하면서,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주님을 더 잘 이해하고 있음을 넌지시 말하곤 했다. 힌두교의 산야시(sannyasi)는 여성에겐 말조차 건네지 않으나, 사두는 그 보다 덜 엄격하여 가끔 대화를 하기도 하였다. 또한  힌두교의 경전들에서는 여성을 악한 존재, 유혹자, 뱀과 같은 존재로 묘사하여 피하는 것이 덕이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선다 싱은 여성들 가운데 부담 없이 행동했다. 그에게는 서신으로 깊게 교제하는 여자 친구도 있었으며, 특히 그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애정과 존경을 표현했다.12)
 
제 4절 인도 교회에 대하여
선다 싱은 고독한 명상을 삶을 동경하는 인도인의 기질이 있으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는 동포들의 구원을 위하여 은둔의 삶을 택하지 않았다. 인도에서 전도 여행을 하면서 그는 인도의 교회가 너무나 서구화 되어 있으며, 서구의 잔에 담아 기독교를 전하기에 인도인들이 이를 더욱 거부한다는 우려를 했다. 그러나 인도 교회가 자립의 상태는 아니니, 선교사를 비롯한 서구 교회 지도사들의 도움을 받아 성장해야 함도 인정했다.
선교사역을 지원해 주던 어느 독일 신사가 인도가 기독교 국가가 된다면, 어떤 형태의 교회 조직이 될지를 선다 싱에게 물었다. 이에 선다 싱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13)
“이 세상에는 완전한 기독교 국가는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도가 기독교 국가가 된다 해도, 서방 세계의 국가들이 기독교 국가인 정도에 그칠 것이오. 세상이 지속되는 한 선과 약, 열심과 무관심은 항상 발견될 것입니다. 만일 인생과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이 변화된다면, 하늘나라가 임했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세상은 세상이 아니라 천국일 것입니다.”
 
제 4장 엑스타시와 환상, 그리고 신비주의
 
선다 싱의 첫 신비체험은 그가 회심한 날일 것이다. 회심하게 된 그날 그는 눈앞에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 생생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때 밀려온 평화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후 선다 싱은 종종 엑스타시와 환상을 체험한다.14) 선다 싱의 환상은 주로 부활과 심판, 그리고 천국과 지옥의 기원과 발전을 조명해 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15) 그리고 그의 환상에서 일정한 배경은 그리스도가 중심이라는 것이다.16)
선다 싱은 엑스타시에 들기 위해 노력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받는 은사일 뿐, 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17) 선다 싱은 엑스타시에 대해서 그 것은 영적인 것들의 밑바닥을 잠수해 가는 것이며, 황홀경(trance)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잠수와 같다는 것은, 잠수부가 숨을 멈춰야 하는 것처럼 엑스타시 중에는 외적 감각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회심 이후, 거의 매일 엑스타시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 때 자신을 억제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보통 기도나 명상을 20분 정도 하고난 후에 엑스타시가 일어난다고 설명한다.18)
자신이 체험한 환상에 대하여 어떤 이들이 강신술(spiritualism)이라고 하지만 선다 싱은 근본적인 한 가지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강신술은 어두움에서 나온 영들로부터 메시지와 상징을 만드는 것이고, 파편적이고 난해하며, 진리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다 싱은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자신이 경험한 환상 속에서 생생하고 분명하게 영의 세계의 영광을 상세하게 본다는 것이다. 볼 수 있는 영계의 상상할 수 없는 밝음과 아름다운 곳으로 성도들과 함께 매우 실재적인 교제를 통해서 들려 올려지는 경험을 하고, 그가 천사들과 성도들에게서 받은 것은 애매하고 허황된 메시지가 아니고, 자신이 괴로워했던 만은 문제들에 대한 이성적이며 분명한 설명이라는 것이다.19)
또한 그는 엑스타시와 요가와 보통의 황홀경과 다름을 주장한다. 엑스타시 후에 그는 언제나 원기와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고 한다. 요가에 있어서 황홀경 상태의 목적은 마음이 아니라 머리의 만족이라는 것이다.20)
 
“엑스타시의 상태는, 요가가 그러하듯이, 자기 최면의 결과가 아닙니다. 저는 결코 그 상태에 들고자 노력하지도 않으며, 요가 수행자들처럼 그 상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한 시간 동안 한 가지 대상을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엑스타시는 일종의 질병이나 환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깨어 있는 상태이지 잠자는 상태가 아닙니다. 엑스타시에서 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문제를 생각하는 동시에, 영들 특히 성령이 제게 하시는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엑스타시 체험에 있어서 선다 싱만이 지녔다고 할 수 있는 점은 엑스타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과 엑스타시 후에는 기진함이 없이 언제나 육체 및 정신적으로 새로운 원기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선다 싱 자신은 엑스타시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이를 얻기에 노력하라고 권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마다 적합한 기도와 명상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다르며, 각자에 맞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생활하지 않거나, 엑스타시 체험의 초기 단계에 있는 사람은 오히려 사탄이 주는 환상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엑스타시의 위험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경고한다. 그는 저급한 영들도 미래를 조금 알기는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환상가들의 예견과 확연히 다름을 강조하기도 했다.21)
 
 
제 5장 결론
 
선다 싱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자신의 개인적인 신비체험, 절대자와의 합일을 위해 굴속으로 들어가 고행과 명상을 하는 수도승이 아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복음 전파에 힘썼으며, 전도 여행 중에는 숱하게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기도와 명상을 중요하게 여겼고, 기도로 삶의 방향을 결정했으며, 기도와 명상 가운데, 그에게 임하는 엑스타시와 환상을 소중하게 여겼다. 실로 헌신적인 봉사의 삶을 살았으며, 성도들에게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희생적인 봉사를 강조했다. 고행을 통해 죄 값을 치룬다거나 구원에 이르는 것을 거부했으며, 힌두교의 세상을 단념하는 금욕주의를 철저하게 거부했다. 선다 싱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지상에서의 자신의 의무이며, 사두가 된 목적은 은혜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엑스타시에 대한 그의 입장은 명확하다. 먼저, 인간 스스로, 자력으로 체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엑스타시에 들기 위해 자신도 노력하지 않았고, 노력을 권고하지도 않았다. 그 것은 주시는 은사일 뿐, 인간이 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선다 싱 자신은 그 은사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는 은사를 값진 진주에 비유하며 자신이 받은 박해와 고통 속에 엑스타시를 누리는 은사가 없었다면, 사두의 생활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으며, 그 은사는 세상과도 바꿀 수 없다고 고백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엑스타시의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조심스러워했다. 이것은 자신의 모국어든 영어든 그 상황을 다 묘사하거나 설명할 수 없으며, 듣는 이들이 차마 이해하지 못하며, 믿지도 못하고, 자신을 이상하게(미치거나 신성시하는) 몰아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발제를 시작하며, 넘치는 신비주의의 정의를 잠시 접어두고, 선다 싱의 현실참여적인 삶과 구원에 대한 그의 신앙관에 주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운둔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고행이나 자해를 통한 인간 스스로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서가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믿었고, 회심의 순간 이후,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선다 싱은 기적을 믿었고, 기적을 경험했으며, 엑스타시와 환상 등의 신비한 신앙 체험 안에서 살았다. 신비하지만, 그는 역사적 책임감을 회피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구원하고자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하지도 않았지만 너무 높고 높고 높아서 낮고 낮아 비천하기 짝이 없는 자신과는 만나기 힘든 하나님이 아니라 늘 내주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했다.  이 볼 때, 우리의 기준으로 그가 신비주의자라는 경향은 박약하다.
 
발제문을 마치기 전에 지난 주 강의 시간의 스펙트럼을 떠올려 본다. 신비주의에서 기독교 신비주의는 우리가 토론하는 두 가지 기준을 다 빠져나간다. 지속적 은총을 강조하는 기독교 신비주의는 여타 신비주의로 오리엔트 되어 있지 않다. 신비주의의 횡적 스펙트럼 안에서 그리고 기독교 횡적 스펙트럼 안에서 선다 싱의 위치를 다시 한 번 그려보길 바란다.
신비
 
예언
 
은수자들
 
sub
 
선다 싱
 
종교개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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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 H. 스트리터, A. J. 아파사미 공저, 황선국 번역, 『사두 썬다 싱』, (서울: 은성, 1993), 18~22.
2) B. H. 스트리터, A. J. 아파사미 공저, 황선국 번역, 『사두 썬다 싱』, 26.
3) B. H. 스트리터, A. J. 아파사미 공저, 황선국 번역, 『사두 썬다 싱』, 28~29.
4) 선다 싱 최대형 옮김, 『사두 선다싱 전집』, (서울: 은성, 2007), 67~68. ; 제 1권 : 주님의 발 아래, 제 4장 봉사
5) 선다 싱 최대형 옮김, 『사두 선다싱 전집』, 260. ; 제 4권 영성생활(The Spiritual Life, 1926), 제 12장 봉사와 희생.
6) 선다 싱 최대형 옮김, 『사두 선다싱 전집』, 13.
7) 선다 싱 최대형 옮김, 『사두 선다싱 전집』, 367~377. ; 제 7권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않는 삶(With and Without Christ, 1928).
8) 선다 싱 최대형 옮김, 『사두 선다싱 전집』, 382.
9) B. H. 스트리터, A. J. 아파사미 공저, 황선국 번역, 『사두 썬다 싱』, 209.
10) B. H. 스트리터, A. J. 아파사미 공저, 황선국 번역, 『사두 썬다 싱』, 79~80.
11) B. H. 스트리터, A. J. 아파사미 공저, 황선국 번역, 『사두 썬다 싱』, 83.
12) B. H. 스트리터, A. J. 아파사미 공저, 황선국 번역, 『사두 썬다 싱』, 213.
13) 선다 싱 최대형 옮김, 『사두 선다싱 전집』, (서울: 은성, 2007), 447.
14) 선다 싱은 14년 전(저술 당시) 코트가르(Kotgarh)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눈이 열려 하늘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본 것이 너무 생생하여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 간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다고 했다. 선다 싱은 그런 환상들이 자신의 생애 전반에 걸쳐 삶을 풍요롭게 해 주었으며, 마음대로 그러한 상태를 불러일으킬 수 없지만, 보통 기도하거나 묵상할 때면 한 달에 여덟 번 내지 열 번 정도 영안(靈眼)이 열려 한 두 시간 정도 천국을 본다는 것이다. ; 선다 싱 최대형 옮김, 『사두 선다싱 전집』, 263.
15) B. H. 스트리터, A. J. 아파사미 공저, 황선국 번역, 『사두 썬다 싱』, 103.
16) B. H. 스트리터, A. J. 아파사미 공저, 황선국 번역, 『사두 썬다 싱』, 107.
17) “만일 받게 된다면, 그것은 값진 진주와도 같은 것입니다. 제가 기아와 갈증 혹은 박해의 고통을 받으면서 지난 14년간 성자의 생활을 하는 동안에 이 엑스타시를 누리는 은사가 없었다면 이 생활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만큼은 온 세상을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B. H. 스트리터, A. J. 아파사미 공저, 황선국 번역, 『사두 썬다 싱』, 101.; 엄두섭, 『신비주의자들과 그 사상』, 239.
18) B. H. 스트리터, A. J. 아파사미 공저, 황선국 번역, 『사두 썬다 싱』, 120. (“거기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모든 일이 현재이다. 입신을 영어로 엑스타시(무아적 황홀경에 들어간다는 뜻)라고 번역하나 이 용어는 입신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못된다. 그것은 불교의 삼매(三昧, Samadhi)엔 해당될른지 모르나 입신의 경지는 그와 다르다. 입신은 바울의 체험(고린도후서 12:3)과 똑같은 것이다. 그것은 자력이나 인간의 요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계시로 나타나는 존귀한 선물이다.” ; 엄두섭, 『신비주의자들과 그 사상』, 239.)
19) 선다 싱 최대형 옮김, 『사두 선다싱 전집』, 264~265. ; 제 5권 영계에 대한 환상(Vision for the Spiritual World, 1926).
20) . H. 스트리터, A. J. 아파사미 공저, 황선국 번역, 『사두 썬다 싱』, 121~122.
21) “강신술사들이 접촉하는 영들은 저급한 영계의 영들입니다. 그런 영들로부터 강신술사들은 흥미 있는 것들을 알 수 있을런지는 모르나 궁극적으로는 그 영들에게 속게 됩니다. 그들이 가르쳐 주는 것들은 아흔 아홉이 사실일지라도 하나는 거짓된 것입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그 거짓된 것들의 비율이 높아지고 진실된 것들의 비율이 낮아져서, 마침내 사람들은 무신론이나 다른 거짓된 입장으로 인도합니다.” ; B. H. 스트리터, A. J. 아파사미 공저, 황선국 번역, 『사두 썬다 싱』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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