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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模)의 종교사상 (7) 姜敦求




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模)의 종교사상 (7) 姜敦求
바.종교비판
유영모는 현재 상태의 유교,불교,기독교를 그대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석가,공자,예수의 사상을 나름대로 이해하고,그러한 이해를 근거로 기존의 종교전통들이 교조들의 사상으로부터 일탈해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우선 그는 모든 종교전통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사람 숭배와 기적에 대한 믿음을 철저히 비판하였다. 
예를 들어서 그는 예수,석가,공자,성모마리아를 숭배하는 것을 못마땅히 생각하였으며,예수의 부활같은 기적을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로 간주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기존의 종교전통 가운데 자신의 사상에 부합하는 사상이나 학자,그리고 경전 귀절을 동시에 부각시켰다.
유영모가 불교와 도교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한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유영모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종교는 주로 유교와 기독교이다. 
유교의 경우 유영모는 육친의 아버지에 대한 효(孝)를 강조하는 입장을 무엇보다도 크게 비판하였다.
사람이 하느님에 대한 효(孝)는 잊어버린 지 오래이고 아버지를 하늘같이 아는 것이 효라 한다....부모보다는 하느님 아버지(천부 天父)가 먼저라야 한다. 천명(天命)에 매달린 유교가 망천(忘天)을 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유교가 맥을 쓰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산소 치레나 하고 족보 타령이나 할 때가 아니다. 송장은 안보이게 치우면 되고 선조는 그 이름이나 적어 놓으면 된다”고 하여 유교의 가족주의를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불교에서 「반야심경」을 생각하듯 유교에서는 장횡거(張橫渠)의 「西銘서명」을 알아야 유교를 잘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가족주의가 아니라 대동주의(大同主義)를 보이고 있는 장횡거의 「서명」을 유교의 진수(眞髓)를 나타낸 글로 높이 평가하였던 것이다.
기독교의 경우 유영모의 비판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유영모는 개인적인 영혼불멸은 희랍사상에서 나온 것으로 기독교 본래의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였다.
둘째,그는 “기독교 믿는 자는 예수만이 그리스도라 하지만 그리스도는 예수만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성신(聖神)이다”라고 하여 예수에 대한 기존의 교리를 부인하였다. 
셋째,그는 “예수가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린 것을 믿으면 영생한다고 믿는 것은 나와 상관없다”라고 하여 예수의 대속신앙(代贖信仰)을 부인하였다.
기독교에 대한 유영모의 이러한 비판은 그가 제시한 종교가 기본적으로 ‘구도자求道者의 종교’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서 있는 유영모가 현재의 기독교인들에 대해 “지금 교회에서 믿는다는 이들은 진짜 종이다. 종 노릇만 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유영모의 종교사상을 "다석어록"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다석어록은 1950년대 후반 몇 년간 유영모가 YMCA에서 강연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긴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을 중심으로 그의 종교사상 전부를 이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의 종교사상을 직접적으로 일별할 수 있는 자료로는 현재까지 이 책이 유일하기 때문에 주로 이 책에 의존해서 그의 종교사상을 살펴보았다.
5.유영모,함석헌,그리고 박영호
유영모의 종교사상에 대한 이해는 함석헌과 박영호 등 그의 제자들의 종교사상에 대한 이해를 통해 보완될 수 있다. 왜냐하면 유영모의 종교사상은 그의 제자인 함석헌과 박영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유영모는 함석헌을 가장 아끼는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함석헌도 우찌무라 간조와 함께 유영모를 자기의 두 스승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초 함석헌의 실덕(失德)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유영모는 함석헌을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도 유영모는 끊임없이 함석헌이 다시 제자로서 돌아오기를 고대하였다. 
그러나 이미 유영모와 함석헌은 건널 수 없는 다리를 건너버렸다.
혹자의 말대로 유영모는 소승적인 종교인이고 함석헌은 대승적인 종교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혹자의 말대로 유영모는 완숙한 사상가였고 함석헌은 미숙한 사상가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유영모의 종교사상과 함석헌의 종교사상은 거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석헌은 종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면서 유영모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박영호는 앞에서 지적한대로 먼저 함석헌의 제자였다. 
그러다가 1960년대초 함석헌을 떠나 유영모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비록 비교적 늦게 유영모의 제자가 되었지만 유영모로부터 졸업장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었고,유영모가 일생동안 보던 신약성경을 물려받을 정도로 유영모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현재까지 유영모의 사상을 학계나 사회에 알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혹자의 말대로 박영호의 책을 보면 어디까지가 유영모의 말이고,어디까지가 박영호의 말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의 사상은 동전의 앞 뒤 면과 같다.
여기에서는 유영모의 종교사상에 한걸음 더 접근하기 위해서 함석헌과 박영호의 종교사상을 일별해 보도록 하자.
가.함석헌의 종교사상
함석헌이 죽은 지 수년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학술논문이 이미 여러 편 발표되었다. 이 가운데 金敬宰는 함석헌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언급하였다.
개신교 역사 100년 만에 함석헌이라는 정신의 최고봉에 도달한 종교사상가를 한국 근대사는 배출하였다. 그는 한국개신교 100년이 낳은 최고의 종교사상가일 뿐만 아니라 동양종교사상을 몸으로 깊이 체득하면서도 서양사상과 기독교사상을 동시에 깊이 체득한 산 혼이다. 동서 종교사상을 한 몸안에 융섭한 위대한 혼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하고 궁금해할 온 세계 종교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연구해 볼 하나의 진주와 같다. 왜냐하면 함석헌이라는 한 큰 마음 안에서 동과 서가 만나고,불교와 기독교가 만나고,노장의 자연주의와 성서적 자연주의가 만나고,종교적 신비주의와 합리적 과학주의가 만나고 있는데 단순한 병존이나 갈등이나 천박한 습합이 아니라 인류 미래 종교의 어떤 방향을 암시하는 실증적 범례를 만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한마디로 말해서 동양과 서양의 종교사상을 융합하여 한국적 기독교를 주창했다는 것이다.
함석헌은 1950년대에 무교회운동으로부터 완전히 탈퇴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함석헌은 1952년에 「흰 손」,그리고 1953년에 「대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이 글들에서 무교회를 포함한 이미 있는 모든 종교들로부터 탈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그는 「말씀모임」이라는 글에서 “오산에 있을 때만 해도 우찌무라의 테두리를 벗지 못했다”고 하여 그가 오산을 떠난 1940년대초부터 이미 우찌무라 간조로부터 멀어져 갔음을 밝혔다.
함석헌의 이러한 언급을 통해서 대체로 그의 종교관은 1940년대까지는 무교회신앙이,그리고 1950년대까지는 유영모로부터 영향을 받고 동양종교에 심취한 것으로,그리고 1960년대 이후에는 퀘이커교에 기울어 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함석헌에 대한 연구가 대체로 기독교 신학계에서 이루어 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함석헌은 기독교적인 사상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가 1960년대 이후 퀘이커교에 몸담은 사실도 그를 기독교적인 사상가로 이해하는 구실을 마련해 준다. 함석헌 자신도 “노자도 있고 장자도 있고 하지만,내가 정말 내 주님으로 택한다면,예수님 내놓고 달리 있을 수 없다”는 고백을 하여 친기독교적인 색채를 띠기도 하였다.
물론 유영모도 “내가 잘못할 때 나에게 잘하라고 責善하는 벗이 意中之人이다. 내게 責善을 하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다. 내가 참으로 마지막까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내게 선생이라고는 예수 한 분 밖에 없다. 예수를 선생으로 하는 것과 믿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선생님이라고는 예수 한 뿐 밖에 모시지 않는다”라고 하여 친기독교적인 색채를 보이기도 하였다. 함석헌의 위의 고백은 유영모의 이러한 고백과 유사하다.
그러나 아래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함석헌을 기독교적인 사상가로만 평가하기에는 그의 사상이 소위 정통 기독교의 테두리를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내게는 이제는 기독교가 유일의 참 종교도 아니요,성경만 완전한 진리도 아니다. 모든 종교는 따지고 들어 가면 결국 하나이다.
이 단계에서 인류가 생각할 것은 다원적으로 하면서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나 하는 것이 우리의 하느님이 원하는 바일 거요. 생명의 목표가 그런 거니까. 그렇지 않고 하느님은 하나 밖에 없는데 이게 무슨 소리냐,노자가 다 뭐냐 한다면 통쾌한 것 같지만 하느님이 너무 조그마 해진단 말이야.
따라서 학계 일각에서는 함석헌을 인도종교 전통과 연관시키려는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유영모가 간디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구태여 구분을 한다면 유영모는 톨스토이를,그리고 함석헌은 간디를 보다 더 선호하였다. 함석헌이 누구보다도 간디를 더 선호하였다는 사실은 그의 사상을 기독교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함석헌의 종교사상에 대해서는 기존의 연구가 많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유영모와 함석헌의 종교사상의 상관성을 보여줄 수 있는 귀절을 하나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새 종교는 어떤 것일까? 이처럼 궁금한 것은 없지만 알지 못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새 종교가 나오지만 그것은 나오는 때까지 알 수 없다....미래의 종교는 절대 알 수 없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해산하는 날이 도적같이 임하여 어머니도 아들도 알 수 없으나 그러나 그것을 槪算을 할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産褥의 준비를 할 수는 있는 것같이 역사에 있어서도 새 종교가 어떤 것이요,언제 어디서 나타나게 될지는 전연 알 수 없으나,그러나 또 그 대개는 추산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것으로 새로 오는 말씀을 받을 준비를 할 수 있다.
미래의 종교에 대한 함석헌의 이러한 견해를 통해서 우리는 다시 유영모의 종교관을 유추해 볼 수 있다.
http://blog.daum.net/ky1002027/658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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