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오메가 포인트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오메가 포인트
http://seoulch.kr/11510
2009년 11월 8일
배성산 목사(서울교회 명예목사)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hard de Chardin)은 1881년 5월1일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에서 태어나 18세에 예수회에 입회하고 영국 져지와 헤스팅스에서 1902년 - 1911년 신부가 되기까지 신학 수업을 받고 예수회 교단의 신부로 서품 되었다. 지질학, 고생물학 등을 연구했고 소르본 대학에서 포유류의 진화로 연구 자연 과학부분의 박사 학위를 받고 '파리 가톨릭 연구원'의 지질학 교수 자격도 얻었다.
1929년 북경 주구점에서의 북경 원인 발굴은 고고인류학 분야의 가장 빛나는 업적이다. 세계2차 대전 후 파리로 돌아온 샤르댕은 '파리 과학 연구원 국립중앙연구소장'에 임명 되었으며 1951년에는 인류학 연구기관인 뉴욕 웬느 그렌 재단의 상임 연구원으로 초청받고 1955년 숨을 거두기까지 연구와 집필을 계속했다.
그는 신학자, 철학자이기 전에 지질학자요 고생물 학자였다. 그는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발전 속에 함축된 인간의 의미를 숙고함으로 조화 있는 세계관을 이룩하는 사상가이기도 한다.
이것은 그가 신학적 입장에서 과학적 진화론을 도입하여 과학과 종교의 조화를 구현하고 나아가 우주의 미래를 예시함으로 현대 그리스도교를 예언자적인 신학으로 이끌려 함에 우리 모두를 주목하게 한다. 그는 자연에 관하여 생명의 과거 진화에 관하여 연구할수록 인간의 정신 현상과 신앙 문제, 인류의 미래와 생명 현상의 궁극적 방향과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과 종교, 삶과 신앙, 물질과 정신, 세속적 노동과 예배 행위가 통전되고 문제의 이해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는 전문 신학자는 아니었으나 그의 사후(1955년) 15년 이내에 생전에 금지 되었던 책들이 계속하여 나왔다. '신적 환경' '우주의 찬가' '인간 에너지'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 '인간의 미래' '기독교와 진화' 등의 단행본 및 신학적 논문집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은 "인간 현상"(The Phenomenon of Man 1939)이다. 태초에 우주가 발생하고 태양의 파편으로 부터 나와 형성된 지구는 무기물과 유기물을 구성하면서 생명 현상을 출현 시킨다는 것이다. 그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람만이 사랑하는 '사랑'의 점유적(占有的)인 입장이 아니고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다. 포유류에도 모성애는 있으며 하찮은 미생물에게도 사랑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믿기지 않지만 사랑은 물질의 미세한 분자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낮은 단계로 갈수록 희미하거나 모호하기 때문에 사람은 흔히 사랑이라는 것이 사람에게만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랑이란 나와 타자가 조화롭게 하나가 되려는 욕구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에서 말하는 끌어당기는 힘. 곧 '중력'이란 사물의 바깥에서 본 현상임을 말하고 이에 상응하는 사물의 안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 에너지야 말로 생명의 진화를 가능케 하는 창조적인 힘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샤르댕은 개체의 생명은 개체의 죽음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명'으로 이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는 그 자신의 불안전함을 사랑으로 극복하여 우주적 그리스도를 형성하여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물질의 우연한 진화는 필연적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며 샤르댕이 '생각하는 사랑'은 바로 '그리스도교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나'라는 참 모습을 살리면서 전체와 조화롭게 공존하는 그 정신은 오직 내가 그리스도적 자아와 완벽하게 합일되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즉 나와 하나님이 진정한 하나 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오면 이 세계는 새 하늘 새 땅이 올 것이며 우리 자신도 지금과는 다른 존재로 화(化)하여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분자가 결합하여 개체인 분자 그 자신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세포 하나가 생기듯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진화론적인 과학 사상으로 신학과 철학의 이론에 이른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학문적 근거에는 미비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로 전문적인 과학자의 눈에는 신비적이거나 사변적으로 보일 것이고 종교인이나 신학자의 눈으로는 신학 사상이라기보다는 불경적인 생물학인 진화론에 치중한 것 같을 것이며 철학자의 눈에는 생물학과 지질학과 기독론이 혼합된 것으로 보이기에 학문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사상을 과정사상에 포함시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서 주목되는 점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우주를 보는 관점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이든 그 뿌리는 우주 전체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우주의 모든 관계는 그 어느 것도 따로 떨어져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실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우주에 단 한 번의 핵과 전자가 출현하여 수십억 년을 거쳐 서서히 진화해온 물질은 점점 조직화 되고 복잡화의 단계를 거치면서 지구상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질의 진화 속에서 '얼'(의식) 이라는 것이 항상 내재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의 바깥은 물질의 복잡화로 나타나고 그 속에서 발현되는 사물의 안을 '정신'으로 보는 것이다. 모든 존재의 사물에는 안과 밖을 가지고 있고 사물은 항상 이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총체적으로 이 우주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이다.
그가 그의 저작 '인간현상'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물질적 - 물리적 세계와 정신적 - 영적 세계와의 종합이고 과거와 미래의 종합, 다양성과 통일성의 종합과 또한 다(多)와 일(一)의 종합으로 '인간현상'은 3중의 종합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 요약한다. 그의 '인간현상'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생명 출현 이전'에서 사물의 궁극적 기초적 실재가 내포하는 속성들로 복수성, 통일성, 에네르기, 조직, 양, 전체성,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지금 정신계와 물질계로 양분하는 실재의 두 존재 양식이 사물의 기본적인 속성 속에 내재된 내면성과 외면성의 두드러짐이라고 한다.
제2부는 '생명 단계'를 다룬다. 물질 구조가 어떤 임계(臨界)점에 이르면 생명의 출현이라는 창조적 진화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물질 진화의 1단계는 분할할 수도 없고 형체로서도 정의할 수 없는 빛나는 단순성 곧 시원적(始原的) 준원자(準原子)가 있다는 것이며 진화는 가산되는 요소들이 유기적 결합을 가속화해 가면서 단백질과 핵산의 화학 반응과 화학적 중합을 거쳐 생명의 기초 재료인 원형질로 생태가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생명은 다양화하고 유기적으로 복잡화해 가면서 환산되어 간다는 것이다. 여기에 생명 진화의 임계점에서 생각하는 힘인 '의식' 인 곧 반성적인 사유의 능력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제3부는 '사상 곧 생각의 출현'이다. 개체 인간이 인간화해 가고 생물학적으로 인류라는 종(種)이 인간화해 가면서 지구의 표면에 정신권이 형성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 정신권은 자율적 내면 진화를 가속해 가면서 현대 서구 문명에 까지 이르렀다고 본다.
그의 4부는 '생존을 위하여'이다. 반성적 사유 능력의 출현은 곧 인간 출현을 의미하는데 인간의 사유는 집단화, 거대화해 가면서 집단적 초일류를 형성해 가면서 지구라는 생명체는 우주를 인격화시켜 간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랑은 한번 인격화하면서 익어가는 과일처럼 오메가를 지향하는 지구 생명의 최고 에네르기라 한다. 여기에 인간 형성의 본질이 다루어지고 기독교라는 종교 현상의 의미와 진화하는 세계 속에서 악의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악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존재가 아니고 요구되는 주체의 속성의 결여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악을 피조물의 불안전성으로 보며 더욱 고차적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피조물의 불안전성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피조물의 불안전성 때문에 세계 내 악의 존재는 불가피한 것이며 진화의 계속성이 필요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악을 존재로 보는 것이다. 세계의 최종적인 질서가 실현되어 완성을 보게 되는 날 인간이 겪는 모든 악 - 재난, 고통, 죽음, 수고 등과 같은 진화의 필연적 부수물이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악에는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것, 즉 죄악도 있다고 한다. 샤르댕은 물질계(무생물계)에서는 물리적 부조화(분열)로, 생물계에는 재난으로, 자유의지가 작용하는 영역(인간)에서는 죄로서 악의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여기서 인간이 범하는 죄악은 늘 자유가 전제되는 것이고 동시에 인간이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중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불가피한 것이고 죄악은 어느 한 개인만이 저지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 모두가 저지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샤르댕은 그 나름대로 원죄에 대하여 원죄는 역사적으로 존재 하였던 인물, 아담과 하와가 지은 것이 아니고 인간의 진화 과정 중에 만나는 보편적 상황(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는 만일 전통적인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라면 아담과 하와가 역사적인 실재 인물로서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고 그 범한 죄가 후손에게 전수 된다고 하면 그리스도는 우연적인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 계획안에는 그리스도라는 존재가 있지도 않다는 것이 되고 만다. 아담과 하와가 범한 것은 인간 나약성 때문이 아니고 인간이 진화 과정 중에 만나는 자체의 불안전성과 우주의 보편적 상황 때문에 생긴다고 그는 주장하는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 이성은 신앙과 적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과학과 신앙의 관계 역시 이러한 갈등과 긴장의 관계에 서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관념 하에서 바라보는 시각에서 우리는 고 생물학의 최고 권위자로 교회 안팎에서 인정받고 있는 자연과학자이면서 사제인 샤르댕 신부를 알게 된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숙고하게 한다.
그는 자연과학에 위대한 권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초월적 신앙에 평생 삶을 살아온 그리스도교의 신앙인으로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과학과 신앙의 조화에 그 모범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 신학자 서남동교수는 그의 주제에 대하여 '우주적 그리스도' , '새로운 인간성' , '미래의 그리스도' 라는 이름으로 그의 개념을 알게 한다. 사실 샤르댕의 뛰어난 인격과 인도주의적인 성격은 그의 생애나 그의 서적을 통하여 그 생애를 아는 사람이면 두 세계의 최상인 것 곧 진화론과 로마 가톨릭을 겸비하려는 신비가로서의 매력을 알게 된다.
예전에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 상대를 부인하는 적대관계였지만 이제는 과학과 종교가 상호적으로 관계되면서 샤르댕이 이전의 근대성에서 벗어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불러 일으켰다고 보는 것이다. 근대 세계의 인식의 문을 연 과거 데카르트는 인간의 '생각함'을 주제로 내세우면서 중세 신앙이 갖고 있던 사유의 벽을 깨고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는 자연 과학의 발달을 촉발시키는 그 철학적 근거를 세웠던 점을 알게 한다.
그러나 주체와 객체를 이원적으로 보는 인식의 이러한 흐름은 과학과 종교를 점차 분리시키면서 그 골을 계속 깊어만 가게 했다는 점을 참고해 보면 21세기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 샤르댕은 물질을 말하는 과학의 비 물질성을 또는 종교에서 말하는 정신 에너지(얼)의 물리적 생물학적 작용을 펼쳐 보이며 우주는 정체적이고 불변적으로 정지한 우주가 아니라 진화의 과정상에 있는 역동적인 우주를 알게 한다는 것에 이해를 갖게 한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인간현상' 이다.
태초에 우주가 발생하고 태양의 파편으로 부터 나와 형성된 '젊은 지구'는 무기물과 유기물을 구성하면서 생명 현상을 출현시킨다. 그는 본래 무기물계와 생명계라는 두 세계는 원래 한 몸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단 세포 단계에서는 동물과 식물의 구분이 불분명 하듯이 이것이 낮은 단계에서는 모호하고도 희미한 존재로 있었을 뿐이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이른 생명'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사물의 바깥만을 살피는 자연과학으로 볼 때에 그것이 뚜렷한 현상으로 나타난 것은 적어도 세포가 출현했을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른 생명'이 '생명'을 낳았다고 보는 것이다. 생명은 적극적으로 팽창하여 지금 우리가 아는 계통수의 생물을 번식 시키고 영장류의 진화과정을 거쳐서 '인간현상'을 태동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람이 조용히 등장한다. 그것은 곧 '생각'의 등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을 대상으로 놓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헤아릴 줄 아는 '반성'의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부터 진화의 흐름은 정신의 적극적 진화에 이른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그는 '얼누리'(=정신계)의 형성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사람 이전에 얼은 있었어도 얼누리는 없었다는 것이다.
얼의 보편적인 진화는 이러한 얼을 하나로 수렴하는 양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저마다의 무수한 생각의 알갱이들이 하나의 거대한 생각 덩어리로 합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미래는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라는 진화의 궁극 점에 이르러 '큰 사람'의 모습을 띤다는 것이다. 그것은 개체의 특성을 살리면서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커다란 자율적인 중심을 말한다. '생명'이 낳게 되는 '다음 생명'은 이와 바로 관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라고 한다.
샤르댕은 사랑이라는 것이 사람만이 '사랑하는 것'의 점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사랑이란 다름 아닌 '나'와 타자가 조화롭게 하나 되는 욕구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에서 말하는 끌어당기는 힘, 즉 '중력'이란 사물의 바깥에서 본 현상만을 말하며 이에 상응하는 사물의 안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사랑함으로서 결국은 '큰 사람' 이 될 수 있다. 중력은 사랑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 에너지야 말로 생명의 진화를 가능케 하는 창조적 힘인 것이다. 그러므로 개체의 생명은 개체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명'으로 이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는 그 자신의 불안전함을 사랑으로 극복하여 우주적 그리스도를 형성하는 것이다. 샤르댕이 생각하는 사랑은 바로 그리스도교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나의 참다운 모습을 살리면서 전체와 조화롭게 생존하는 그러한 정신의 합일점이 오직 내가 그리스도적 자아와 완벽하게 합일되는 차원인 것이다.
이것이 나와 하나님이 진정한 하나가 됨을 의미하는 지평이다. 하나님과 사람이 똑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운데서 사랑으로 교통하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이제 그 날이 오면 이 세계는 새 하늘, 새 땅이 전혀 새로운 세계로 태동 될 것이며 우리 자신도 지금과는 다른 존재로 화하여 있을 것이다. 마치 분자가 결합하여 개체인 분자 그 자신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세포 하나를 출현시키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사랑이 존재의 진화를 성숙케 하는 창조적 에너지라는 것을 알게 한다. 한편 이러한 진화를 말하는 그는 지나친 낙관주의에 기울여져 있는 듯 보이지만 인간의 비극적 가능성들을 염두에 두지 않는 낙관주의는 인류의 치명적 독(毒)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곁들이며 말하는 것이다.
샤르댕은 오메가 포인트 성취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에 작동 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거부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오메가 포인트의 성취는 존재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분명히 '자율적인 중심점' 때문에 존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관계적 지평에서 연결되어 인류 전체를 파멸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류의 미래는 나 자신의 책임성과 항상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오메가는 우주가 최초로 진화했을 때 통일과 개성화의 자존적 궁극적 원리인 어떤 중심과 서로 만나는 점이다. 오메가는 인간이 전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불가역전(不可逆轉)의 최고 원리이다. 인류는 어떤 임계점을 지나 오메가와 결합되어 영구적이고 불가역전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샤르댕은 오메가가 자존적인 현실적 존재라는 가정 아래 그것의 속성을 자율, 현존, 불가역전성, 초월성 등으로 규정한다. 오메가는 이러한 속성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메가가 진화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가 오메가에 의존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샤르댕의 오메가 개념은 바로 신 개념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결국 샤르댕의 진화 현상론은 그리스도교의 바울신학과 상통하다고들 말하고 자연과학의 영역을 넘어서 믿음에서 오는 확신에 연결 된다고 한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이론이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믿음의 철학적 연장이고 바로 이 믿음이 자기의 그리스도론을 체계화하는데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의 신학 이론을 대략 살펴보면 창조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무로부터 창조 되었다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거부하고 창조의 알파 점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고 인간은 다만 창조에 있어서 최종 사실들만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다만 창조의 최종 사실은 갑자기 터무니없이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작용에 의하여 점차 진보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창조는 인간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 한다는 점에서 창조는 신의 동시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물의 통일 과정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탄생 및 구속 사건과 창조는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으면서 인간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이해는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창조의 관점에서 재고하고 계시적 사건들을 우주 발생의 차원으로 전환시키는데 있다.
따라서 예수의 역사속의 삶이 진화과정의 한 부분인 동시에 완성이어야 하고 그리스도론적인 모든 사건은 어떤 형태로든지 진보에 준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신관은 현상계의 진화의 임계점에서 나타난 인간은 스스로 최종적인 완성에는 도달할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은 오로지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이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인간에게 취했을 때만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니셔티브와 인간의 응답이 서로 교통 가능케 하는 분이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그 분은 인간의 역사 현장에 직접 출현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샤르댕의 영성은 인간과 신과의 합일, 즉 성육신이다. 물질은 생명으로, 생명은 정신으로, 정신은 인간으로, 인간은 통일로 진화의 나선형적인 축을 따라 발전한다는 것이 샤르댕의 사상 핵심이다. 그는 인류의 진화 종국은 단순히 진화의 자연적 결과가 아니라 인간적인 노력은 물론 초자연적인 힘의 지배를 받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때 인류의 최대 성숙 점의 도달은 그리스도 재림의 필요요건이 갖추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의 주장은 인간성숙의 궁극 점과 그리스도의 재림은 존재 차원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실재로 동시에 일어나는 단일 사건이라는 말이 된다. 샤르댕의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리스도는 세계가 충분히 진화하고 준비 되었을 때 재림하신다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탄생이 초자연적이듯이 재림도 그러할 것이라는 것이며 시계와 인류의 종말은 파멸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밖에서 전개되는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종말은 변화와 재탄생인 동시에 일종의 죽음(진화의 종국)이며 종말로서 신과 세계는 하나의 유기체적 복합체를 이룰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그 동안 세계사는 인간이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종교적 물음, 즉 인간이 자신에서 출발하여 우주 자연에 대하여 신에 대하여 묻고 찾은 답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진행해 왔다. 신과 자연이 엄격히 구분되지 않는 선사시대나 고대, 정적이고 비판력이 박약하던 중세기에서는 인간의 기원이나 실존, 그리고 미래에 대하여 나름대로 흡족한 답을 가지고 왔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오면서 그런 답은 도전을 받게 된다. 우주에 대한 이해가 전환되고 신과 인간에 대한 이해도 변화가 시작 되었다. 형이상학적인 모든 종교의 교의는 본격적으로 반박을 받게 되었고 후대에 이르러 그리스도교적인 계시의 실재성은 수 없이 추궁 당하였다. 영국을 무대로 성장해온 경험론은 찰스 다윈의 생물 진화론을 나오게 하고 그 진화론은 무신론적 유물론을 급성장 시켰다.
현대에 들어 와서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절대기준이나 가치가 부정하는 가운데 상대주의가 만연에 이른 우리는 미래학에서 던지는 우주와 인간의 미래는 그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게 되었다. 이제 교회가 사회 내지 문화적 변혁에 대하여 어떤 입장이어야 하고 인간의 정신과 사회질서, 그리고 심리, 윤리, 종교상의 변화의 심각성과 위기를 보며 문제를 맞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샤르댕의 사상은 인간의 기원이나 실존, 그리고 미래에 대하여 얼마간의 답답증을 해소하여 준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가르침이 신 중심의 세계 운영에 인간이 수동적이고 현세 도피적인 사고방식을 지향하는 여지가 있었다면 샤르댕의 진화론적 해석은 신과 인간이 함께 이루어지는 세계이기에 인간이 안일한 태도에 머무르려고 하는 것을 용납지 않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샤르댕은 신앙인이기에 신은 신으로서 위치와 역할을 인간은 인간으로서 위치와 역할을 혼동하지 않고 알게 한다. 여기서 샤르댕에 대해 참고로 알 것은 그의 주장에 있어 근거 제시나 사변적 추론 없이 신의 존재를 그가 처음부터 택한 실증적 방법론과는 달리 등한히 신앙에 의탁하고 있는 인상을 갖게 한 점은 그의 주장에 대한 논박에 궁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함에 대한 생각도 갖게 한다.
그러나 샤르댕은 물질의 우연적인 진화는 바로 필연적인 하나님의 섭리가 결부됨을 확실하게 주장한다. 성서문자주의자들이나 창조론자들이 현대과학의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마냥 신앙과 맞지 않는다고 보거나 신을 부정한다고만 생각해 버리는 그 생각과 그 신앙의 판단이 문제 있음을 알게 한다. 이제 이러한 잘못은 근본적으로 과학이라는 편협한 이해 부족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 사르댕의 믿음의 고백이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 하에 있는 우주천체가 하나님의 깃들임 속에서 찾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모든 만물에 내재해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만물을 초월해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라는 말씀을 알게 한다.
<출처: 어둠 속의 불꽃>
http://seoulch.kr/11510
2009년 11월 8일
배성산 목사(서울교회 명예목사)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hard de Chardin)은 1881년 5월1일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에서 태어나 18세에 예수회에 입회하고 영국 져지와 헤스팅스에서 1902년 - 1911년 신부가 되기까지 신학 수업을 받고 예수회 교단의 신부로 서품 되었다. 지질학, 고생물학 등을 연구했고 소르본 대학에서 포유류의 진화로 연구 자연 과학부분의 박사 학위를 받고 '파리 가톨릭 연구원'의 지질학 교수 자격도 얻었다.
1929년 북경 주구점에서의 북경 원인 발굴은 고고인류학 분야의 가장 빛나는 업적이다. 세계2차 대전 후 파리로 돌아온 샤르댕은 '파리 과학 연구원 국립중앙연구소장'에 임명 되었으며 1951년에는 인류학 연구기관인 뉴욕 웬느 그렌 재단의 상임 연구원으로 초청받고 1955년 숨을 거두기까지 연구와 집필을 계속했다.
그는 신학자, 철학자이기 전에 지질학자요 고생물 학자였다. 그는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발전 속에 함축된 인간의 의미를 숙고함으로 조화 있는 세계관을 이룩하는 사상가이기도 한다.
이것은 그가 신학적 입장에서 과학적 진화론을 도입하여 과학과 종교의 조화를 구현하고 나아가 우주의 미래를 예시함으로 현대 그리스도교를 예언자적인 신학으로 이끌려 함에 우리 모두를 주목하게 한다. 그는 자연에 관하여 생명의 과거 진화에 관하여 연구할수록 인간의 정신 현상과 신앙 문제, 인류의 미래와 생명 현상의 궁극적 방향과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과 종교, 삶과 신앙, 물질과 정신, 세속적 노동과 예배 행위가 통전되고 문제의 이해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는 전문 신학자는 아니었으나 그의 사후(1955년) 15년 이내에 생전에 금지 되었던 책들이 계속하여 나왔다. '신적 환경' '우주의 찬가' '인간 에너지'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 '인간의 미래' '기독교와 진화' 등의 단행본 및 신학적 논문집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은 "인간 현상"(The Phenomenon of Man 1939)이다. 태초에 우주가 발생하고 태양의 파편으로 부터 나와 형성된 지구는 무기물과 유기물을 구성하면서 생명 현상을 출현 시킨다는 것이다. 그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람만이 사랑하는 '사랑'의 점유적(占有的)인 입장이 아니고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다. 포유류에도 모성애는 있으며 하찮은 미생물에게도 사랑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믿기지 않지만 사랑은 물질의 미세한 분자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단지 그것이 낮은 단계로 갈수록 희미하거나 모호하기 때문에 사람은 흔히 사랑이라는 것이 사람에게만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랑이란 나와 타자가 조화롭게 하나가 되려는 욕구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에서 말하는 끌어당기는 힘. 곧 '중력'이란 사물의 바깥에서 본 현상임을 말하고 이에 상응하는 사물의 안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 에너지야 말로 생명의 진화를 가능케 하는 창조적인 힘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샤르댕은 개체의 생명은 개체의 죽음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명'으로 이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는 그 자신의 불안전함을 사랑으로 극복하여 우주적 그리스도를 형성하여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물질의 우연한 진화는 필연적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며 샤르댕이 '생각하는 사랑'은 바로 '그리스도교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나'라는 참 모습을 살리면서 전체와 조화롭게 공존하는 그 정신은 오직 내가 그리스도적 자아와 완벽하게 합일되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즉 나와 하나님이 진정한 하나 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오면 이 세계는 새 하늘 새 땅이 올 것이며 우리 자신도 지금과는 다른 존재로 화(化)하여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분자가 결합하여 개체인 분자 그 자신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세포 하나가 생기듯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진화론적인 과학 사상으로 신학과 철학의 이론에 이른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학문적 근거에는 미비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로 전문적인 과학자의 눈에는 신비적이거나 사변적으로 보일 것이고 종교인이나 신학자의 눈으로는 신학 사상이라기보다는 불경적인 생물학인 진화론에 치중한 것 같을 것이며 철학자의 눈에는 생물학과 지질학과 기독론이 혼합된 것으로 보이기에 학문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사상을 과정사상에 포함시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서 주목되는 점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우주를 보는 관점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이든 그 뿌리는 우주 전체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우주의 모든 관계는 그 어느 것도 따로 떨어져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실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우주에 단 한 번의 핵과 전자가 출현하여 수십억 년을 거쳐 서서히 진화해온 물질은 점점 조직화 되고 복잡화의 단계를 거치면서 지구상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질의 진화 속에서 '얼'(의식) 이라는 것이 항상 내재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의 바깥은 물질의 복잡화로 나타나고 그 속에서 발현되는 사물의 안을 '정신'으로 보는 것이다. 모든 존재의 사물에는 안과 밖을 가지고 있고 사물은 항상 이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총체적으로 이 우주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이다.
그가 그의 저작 '인간현상'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물질적 - 물리적 세계와 정신적 - 영적 세계와의 종합이고 과거와 미래의 종합, 다양성과 통일성의 종합과 또한 다(多)와 일(一)의 종합으로 '인간현상'은 3중의 종합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 요약한다. 그의 '인간현상'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생명 출현 이전'에서 사물의 궁극적 기초적 실재가 내포하는 속성들로 복수성, 통일성, 에네르기, 조직, 양, 전체성,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지금 정신계와 물질계로 양분하는 실재의 두 존재 양식이 사물의 기본적인 속성 속에 내재된 내면성과 외면성의 두드러짐이라고 한다.
제2부는 '생명 단계'를 다룬다. 물질 구조가 어떤 임계(臨界)점에 이르면 생명의 출현이라는 창조적 진화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물질 진화의 1단계는 분할할 수도 없고 형체로서도 정의할 수 없는 빛나는 단순성 곧 시원적(始原的) 준원자(準原子)가 있다는 것이며 진화는 가산되는 요소들이 유기적 결합을 가속화해 가면서 단백질과 핵산의 화학 반응과 화학적 중합을 거쳐 생명의 기초 재료인 원형질로 생태가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생명은 다양화하고 유기적으로 복잡화해 가면서 환산되어 간다는 것이다. 여기에 생명 진화의 임계점에서 생각하는 힘인 '의식' 인 곧 반성적인 사유의 능력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제3부는 '사상 곧 생각의 출현'이다. 개체 인간이 인간화해 가고 생물학적으로 인류라는 종(種)이 인간화해 가면서 지구의 표면에 정신권이 형성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 정신권은 자율적 내면 진화를 가속해 가면서 현대 서구 문명에 까지 이르렀다고 본다.
그의 4부는 '생존을 위하여'이다. 반성적 사유 능력의 출현은 곧 인간 출현을 의미하는데 인간의 사유는 집단화, 거대화해 가면서 집단적 초일류를 형성해 가면서 지구라는 생명체는 우주를 인격화시켜 간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랑은 한번 인격화하면서 익어가는 과일처럼 오메가를 지향하는 지구 생명의 최고 에네르기라 한다. 여기에 인간 형성의 본질이 다루어지고 기독교라는 종교 현상의 의미와 진화하는 세계 속에서 악의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악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존재가 아니고 요구되는 주체의 속성의 결여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악을 피조물의 불안전성으로 보며 더욱 고차적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피조물의 불안전성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피조물의 불안전성 때문에 세계 내 악의 존재는 불가피한 것이며 진화의 계속성이 필요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악을 존재로 보는 것이다. 세계의 최종적인 질서가 실현되어 완성을 보게 되는 날 인간이 겪는 모든 악 - 재난, 고통, 죽음, 수고 등과 같은 진화의 필연적 부수물이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악에는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것, 즉 죄악도 있다고 한다. 샤르댕은 물질계(무생물계)에서는 물리적 부조화(분열)로, 생물계에는 재난으로, 자유의지가 작용하는 영역(인간)에서는 죄로서 악의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여기서 인간이 범하는 죄악은 늘 자유가 전제되는 것이고 동시에 인간이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중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불가피한 것이고 죄악은 어느 한 개인만이 저지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 모두가 저지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샤르댕은 그 나름대로 원죄에 대하여 원죄는 역사적으로 존재 하였던 인물, 아담과 하와가 지은 것이 아니고 인간의 진화 과정 중에 만나는 보편적 상황(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는 만일 전통적인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라면 아담과 하와가 역사적인 실재 인물로서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고 그 범한 죄가 후손에게 전수 된다고 하면 그리스도는 우연적인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 계획안에는 그리스도라는 존재가 있지도 않다는 것이 되고 만다. 아담과 하와가 범한 것은 인간 나약성 때문이 아니고 인간이 진화 과정 중에 만나는 자체의 불안전성과 우주의 보편적 상황 때문에 생긴다고 그는 주장하는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 이성은 신앙과 적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과학과 신앙의 관계 역시 이러한 갈등과 긴장의 관계에 서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관념 하에서 바라보는 시각에서 우리는 고 생물학의 최고 권위자로 교회 안팎에서 인정받고 있는 자연과학자이면서 사제인 샤르댕 신부를 알게 된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숙고하게 한다.
그는 자연과학에 위대한 권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초월적 신앙에 평생 삶을 살아온 그리스도교의 신앙인으로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과학과 신앙의 조화에 그 모범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 신학자 서남동교수는 그의 주제에 대하여 '우주적 그리스도' , '새로운 인간성' , '미래의 그리스도' 라는 이름으로 그의 개념을 알게 한다. 사실 샤르댕의 뛰어난 인격과 인도주의적인 성격은 그의 생애나 그의 서적을 통하여 그 생애를 아는 사람이면 두 세계의 최상인 것 곧 진화론과 로마 가톨릭을 겸비하려는 신비가로서의 매력을 알게 된다.
예전에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 상대를 부인하는 적대관계였지만 이제는 과학과 종교가 상호적으로 관계되면서 샤르댕이 이전의 근대성에서 벗어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불러 일으켰다고 보는 것이다. 근대 세계의 인식의 문을 연 과거 데카르트는 인간의 '생각함'을 주제로 내세우면서 중세 신앙이 갖고 있던 사유의 벽을 깨고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는 자연 과학의 발달을 촉발시키는 그 철학적 근거를 세웠던 점을 알게 한다.
그러나 주체와 객체를 이원적으로 보는 인식의 이러한 흐름은 과학과 종교를 점차 분리시키면서 그 골을 계속 깊어만 가게 했다는 점을 참고해 보면 21세기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 샤르댕은 물질을 말하는 과학의 비 물질성을 또는 종교에서 말하는 정신 에너지(얼)의 물리적 생물학적 작용을 펼쳐 보이며 우주는 정체적이고 불변적으로 정지한 우주가 아니라 진화의 과정상에 있는 역동적인 우주를 알게 한다는 것에 이해를 갖게 한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인간현상' 이다.
태초에 우주가 발생하고 태양의 파편으로 부터 나와 형성된 '젊은 지구'는 무기물과 유기물을 구성하면서 생명 현상을 출현시킨다. 그는 본래 무기물계와 생명계라는 두 세계는 원래 한 몸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단 세포 단계에서는 동물과 식물의 구분이 불분명 하듯이 이것이 낮은 단계에서는 모호하고도 희미한 존재로 있었을 뿐이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이른 생명'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사물의 바깥만을 살피는 자연과학으로 볼 때에 그것이 뚜렷한 현상으로 나타난 것은 적어도 세포가 출현했을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른 생명'이 '생명'을 낳았다고 보는 것이다. 생명은 적극적으로 팽창하여 지금 우리가 아는 계통수의 생물을 번식 시키고 영장류의 진화과정을 거쳐서 '인간현상'을 태동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람이 조용히 등장한다. 그것은 곧 '생각'의 등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을 대상으로 놓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헤아릴 줄 아는 '반성'의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부터 진화의 흐름은 정신의 적극적 진화에 이른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그는 '얼누리'(=정신계)의 형성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사람 이전에 얼은 있었어도 얼누리는 없었다는 것이다.
얼의 보편적인 진화는 이러한 얼을 하나로 수렴하는 양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저마다의 무수한 생각의 알갱이들이 하나의 거대한 생각 덩어리로 합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미래는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라는 진화의 궁극 점에 이르러 '큰 사람'의 모습을 띤다는 것이다. 그것은 개체의 특성을 살리면서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커다란 자율적인 중심을 말한다. '생명'이 낳게 되는 '다음 생명'은 이와 바로 관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사랑' 때문이라고 한다.
샤르댕은 사랑이라는 것이 사람만이 '사랑하는 것'의 점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사랑이란 다름 아닌 '나'와 타자가 조화롭게 하나 되는 욕구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에서 말하는 끌어당기는 힘, 즉 '중력'이란 사물의 바깥에서 본 현상만을 말하며 이에 상응하는 사물의 안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사랑함으로서 결국은 '큰 사람' 이 될 수 있다. 중력은 사랑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 에너지야 말로 생명의 진화를 가능케 하는 창조적 힘인 것이다. 그러므로 개체의 생명은 개체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명'으로 이어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는 그 자신의 불안전함을 사랑으로 극복하여 우주적 그리스도를 형성하는 것이다. 샤르댕이 생각하는 사랑은 바로 그리스도교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나의 참다운 모습을 살리면서 전체와 조화롭게 생존하는 그러한 정신의 합일점이 오직 내가 그리스도적 자아와 완벽하게 합일되는 차원인 것이다.
이것이 나와 하나님이 진정한 하나가 됨을 의미하는 지평이다. 하나님과 사람이 똑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운데서 사랑으로 교통하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이제 그 날이 오면 이 세계는 새 하늘, 새 땅이 전혀 새로운 세계로 태동 될 것이며 우리 자신도 지금과는 다른 존재로 화하여 있을 것이다. 마치 분자가 결합하여 개체인 분자 그 자신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세포 하나를 출현시키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사랑이 존재의 진화를 성숙케 하는 창조적 에너지라는 것을 알게 한다. 한편 이러한 진화를 말하는 그는 지나친 낙관주의에 기울여져 있는 듯 보이지만 인간의 비극적 가능성들을 염두에 두지 않는 낙관주의는 인류의 치명적 독(毒)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곁들이며 말하는 것이다.
샤르댕은 오메가 포인트 성취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에 작동 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거부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오메가 포인트의 성취는 존재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분명히 '자율적인 중심점' 때문에 존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관계적 지평에서 연결되어 인류 전체를 파멸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류의 미래는 나 자신의 책임성과 항상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오메가는 우주가 최초로 진화했을 때 통일과 개성화의 자존적 궁극적 원리인 어떤 중심과 서로 만나는 점이다. 오메가는 인간이 전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불가역전(不可逆轉)의 최고 원리이다. 인류는 어떤 임계점을 지나 오메가와 결합되어 영구적이고 불가역전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샤르댕은 오메가가 자존적인 현실적 존재라는 가정 아래 그것의 속성을 자율, 현존, 불가역전성, 초월성 등으로 규정한다. 오메가는 이러한 속성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메가가 진화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가 오메가에 의존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샤르댕의 오메가 개념은 바로 신 개념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결국 샤르댕의 진화 현상론은 그리스도교의 바울신학과 상통하다고들 말하고 자연과학의 영역을 넘어서 믿음에서 오는 확신에 연결 된다고 한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이론이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믿음의 철학적 연장이고 바로 이 믿음이 자기의 그리스도론을 체계화하는데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의 신학 이론을 대략 살펴보면 창조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무로부터 창조 되었다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거부하고 창조의 알파 점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고 인간은 다만 창조에 있어서 최종 사실들만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다만 창조의 최종 사실은 갑자기 터무니없이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작용에 의하여 점차 진보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창조는 인간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 한다는 점에서 창조는 신의 동시적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물의 통일 과정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탄생 및 구속 사건과 창조는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으면서 인간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이해는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창조의 관점에서 재고하고 계시적 사건들을 우주 발생의 차원으로 전환시키는데 있다.
따라서 예수의 역사속의 삶이 진화과정의 한 부분인 동시에 완성이어야 하고 그리스도론적인 모든 사건은 어떤 형태로든지 진보에 준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신관은 현상계의 진화의 임계점에서 나타난 인간은 스스로 최종적인 완성에는 도달할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은 오로지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이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인간에게 취했을 때만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니셔티브와 인간의 응답이 서로 교통 가능케 하는 분이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그 분은 인간의 역사 현장에 직접 출현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샤르댕의 영성은 인간과 신과의 합일, 즉 성육신이다. 물질은 생명으로, 생명은 정신으로, 정신은 인간으로, 인간은 통일로 진화의 나선형적인 축을 따라 발전한다는 것이 샤르댕의 사상 핵심이다. 그는 인류의 진화 종국은 단순히 진화의 자연적 결과가 아니라 인간적인 노력은 물론 초자연적인 힘의 지배를 받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때 인류의 최대 성숙 점의 도달은 그리스도 재림의 필요요건이 갖추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의 주장은 인간성숙의 궁극 점과 그리스도의 재림은 존재 차원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실재로 동시에 일어나는 단일 사건이라는 말이 된다. 샤르댕의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리스도는 세계가 충분히 진화하고 준비 되었을 때 재림하신다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탄생이 초자연적이듯이 재림도 그러할 것이라는 것이며 시계와 인류의 종말은 파멸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밖에서 전개되는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종말은 변화와 재탄생인 동시에 일종의 죽음(진화의 종국)이며 종말로서 신과 세계는 하나의 유기체적 복합체를 이룰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그 동안 세계사는 인간이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종교적 물음, 즉 인간이 자신에서 출발하여 우주 자연에 대하여 신에 대하여 묻고 찾은 답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진행해 왔다. 신과 자연이 엄격히 구분되지 않는 선사시대나 고대, 정적이고 비판력이 박약하던 중세기에서는 인간의 기원이나 실존, 그리고 미래에 대하여 나름대로 흡족한 답을 가지고 왔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오면서 그런 답은 도전을 받게 된다. 우주에 대한 이해가 전환되고 신과 인간에 대한 이해도 변화가 시작 되었다. 형이상학적인 모든 종교의 교의는 본격적으로 반박을 받게 되었고 후대에 이르러 그리스도교적인 계시의 실재성은 수 없이 추궁 당하였다. 영국을 무대로 성장해온 경험론은 찰스 다윈의 생물 진화론을 나오게 하고 그 진화론은 무신론적 유물론을 급성장 시켰다.
현대에 들어 와서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절대기준이나 가치가 부정하는 가운데 상대주의가 만연에 이른 우리는 미래학에서 던지는 우주와 인간의 미래는 그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게 되었다. 이제 교회가 사회 내지 문화적 변혁에 대하여 어떤 입장이어야 하고 인간의 정신과 사회질서, 그리고 심리, 윤리, 종교상의 변화의 심각성과 위기를 보며 문제를 맞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샤르댕의 사상은 인간의 기원이나 실존, 그리고 미래에 대하여 얼마간의 답답증을 해소하여 준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가르침이 신 중심의 세계 운영에 인간이 수동적이고 현세 도피적인 사고방식을 지향하는 여지가 있었다면 샤르댕의 진화론적 해석은 신과 인간이 함께 이루어지는 세계이기에 인간이 안일한 태도에 머무르려고 하는 것을 용납지 않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샤르댕은 신앙인이기에 신은 신으로서 위치와 역할을 인간은 인간으로서 위치와 역할을 혼동하지 않고 알게 한다. 여기서 샤르댕에 대해 참고로 알 것은 그의 주장에 있어 근거 제시나 사변적 추론 없이 신의 존재를 그가 처음부터 택한 실증적 방법론과는 달리 등한히 신앙에 의탁하고 있는 인상을 갖게 한 점은 그의 주장에 대한 논박에 궁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함에 대한 생각도 갖게 한다.
그러나 샤르댕은 물질의 우연적인 진화는 바로 필연적인 하나님의 섭리가 결부됨을 확실하게 주장한다. 성서문자주의자들이나 창조론자들이 현대과학의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마냥 신앙과 맞지 않는다고 보거나 신을 부정한다고만 생각해 버리는 그 생각과 그 신앙의 판단이 문제 있음을 알게 한다. 이제 이러한 잘못은 근본적으로 과학이라는 편협한 이해 부족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 사르댕의 믿음의 고백이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 하에 있는 우주천체가 하나님의 깃들임 속에서 찾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모든 만물에 내재해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만물을 초월해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라는 말씀을 알게 한다.
<출처: 어둠 속의 불꽃>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