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그리스도의 우주성과 삼성론(三性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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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기독론의 새로운 과제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의 핵심적인 두 주제는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라는 그리스도의 인격(the person of Christ)에 대한 질문과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셨는가라는 그리스도의 사역(the work of Christ)에 관한 질문이다. 전자는 성육신론과 양성론(two natures of Christ)으로 전개되어 왔고 후자는 다양한 속죄론 또는 구원론으로 전개되어 왔다.1)
그리스도의 인격론은 니케야회의(325년)와 칼케돈회의(451년)를 거치면서 교리적으로 분명한 발전 단계를 밟아 왔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요 참신이시며, 이 두 본성의 관계는 ‘혼합됨이 없으시며 변화됨이 없으시며 분리됨이 없으시며 분활됨이 없으시다’는 교리에 도달하였다. 양성론에 대한 현대적 재검토가 없지만 전통적인 양성론의 큰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양성론과 달리 구원론은 그 쟁점이 크게 부각되었다. 대속의 그리스도를 통한 개인구원과 해방자 그리스도를 통한 사회구원 넘어서서 우주적 그리스도를 통한 생태적인 구원이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의 새로운 과제로 등장하였다.2) 개인의 회심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복음화’와 사회 구조악을 일소하고 정의와 평화를 이루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인간화’ 못지않게, 파괴되어 가는 생태계를 회복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태계를 잘 돌보고 관리하여 ‘창조의 보전’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신학적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3) “정의․평화․창조의 보전”은 이러한 현대신학의 흐름을 가장 명확하게 반영한 것이다.4)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생태구원으로 확장하고 예수의 존재를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하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의 재검토를 불가피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우주적 그리스도를 통한 생태학적 구원에의 열망은 성서에 특히 골로새서(1:15-17) 등에 나타나는 창조의 근거요 중재자 및 유지자요 그리고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으로서의 우주적 그리스도에 대한 재발견으로 이어진다.5)
1)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다(en autoi extisthe)
2)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다(di autou ekistai)
3)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다(eis outon ektistai)
칼 바르트는 골로새서의 찬양과 관련하여 하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존재와 공동체 안에 있는 그의 존재 외에 우주 안에 존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3의 실존방식”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는가를 질문을 제기하였지만 논의를 더 이상의 전개하지 않았다.6)
본회퍼는 ‘나를 위한’ 그리스도의 현존의 방식과 현존의 장소를 삼중적으로 설명하여7) 그리스도의 삼중적 현존의 방식은 말씀, 성례, 교회이고, 그리스도의 삼중적 현존의 장소는 인간의 중심, 역사의 중심, 자연의 중심이라고 하였다. 오트(H. Ott)는 본회퍼가 제시한 그리스도의 현존의 방식인 말씀, 성례, 교회와 그리스도의 현존의 장소인 인간의 중심, 역사의 중심, 자연의 중심은 각각 예언자직, 제사장직, 왕직에 해당된다고 하여 삼직무론과 관련시며 해석하였다.8) 에벨링(G. Ebeling) 역시 세계의 주로서 그리스도의 우주성을 삼직무론으로 해석하였다.9)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하신 예수는 예언자이며,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인간의 형제인 예수는 제사장이며, 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세계의 주이신 예수는 왕이라고 하였다.
정치신학을 통해 구원의 정치적 세계사적 지평을 강조해 온 몰트만은 구원의 지평을 다시 확대하여 우주적 차원을 포함시켜 생태학적 관점에서 우주적 그리스도를 명시적으로 주장하였다. 따라서 예수는 ‘삼중적 실존 방식’을 지닌 자로서 역사적 실존(인간)이며, 교회공동체로 실존(하나님의 아들)하며, 그리고 우주적 실존(만유)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를 전통적인 삼직무론이나 삼성론과 직접 관련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인성과 신성을 지녔다는 전통정인 양성론(兩性論)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는 신성 및 인성과 더불어 우주성이라는 제3의 본성을 지녔다는 뜻에서 그리스도의 삼성론(三性論)을 명시적으로 주장한 이는 샤르뎅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세 번째 본성(인간의 본성도 신성의 본성도 아닌 우주의 본성)은 신앙인들이나 신학자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10)고 지적하였다. 그리스도의 삼성론에 대한 샤르뎅의 주장은 기독론 역사의 한 획기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최근 카톨릭 신학자 폭스(M. Fox) 역시 바울서신뿐만 아니라 복음서의 역사적 예수에게서도 우주성이 발견된다고 주장한다.11) 그리고 그리스도의 우주성을 배제한 현대 서구 문화는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지만 그리스도의 우주성은 총괄갱신이 뜻하는 바와 같이 만물의 통일과 완성을 목표로 하는 ‘우주적 조화’를 표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 그리스도는 조화의 조성자라고 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샤르뎅이 말한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뿐 만 아니라 제3의 본성으로서 우주성을 지닌다는 ‘그리스도의 삼성론’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신성을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인성을 통한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우주성을 통한 자연(또는 물질)과의 관계를 개인구원, 사회구원, 생태구원의 통전으로 해석하여온 천지인의 신학과 상응한다.
이 글은 샤르뎅의 우주적 그리스도를 통해 주장한 그리스도의 삼성론이 지니는 신학적 의미를 밝히고, 우주적 그리스도를 조화의 조성자요 모든 갈등을 ‘통합하는 틀’로 제시한 폭스의 견해를 빌어 천지인의 삼중적 삼중관계의 조화를 지향하는 천지인신학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려고 한다.
2. 우주적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세 실존양식
현대 그리스도론의 우선적인 과제는 현대적인 상황에서 그리스도론을 변증하고 정립하기 위해 그리스도에 관한 질문의 성격을 현대적으로 재정립하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 기독론의 아주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칼케돈 신조가 말한 하나님과 동일본질이 신 참 하나님이요, 죄가 없으신 것 외에는 인간과 동일하신 참 인간일 뿐만 아니라 ‘만유의 만유이신 그리스도의 우주성’이 성서적 사실을 재인식하게 된 것이다.
칼 바르트는 골로새서의 찬양과 관련하여 하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존재와 공동체 안에 있는 그의 존재 밖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3의 실존방식”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는가를 질문하였다.
“그는 이미 지금 만유의 통치자로, 모든 것에 대한 머리로서, 처음으로 또 마지막으로 홀로 권능 있는 자로서 비록 우주 안에 은폐되어 있고, 그의 공동체가 그를 인식하는 것처럼 그를-아직!-인식하지 못하지만 우주 안에서, 또한 최고의 실재성 속에서 우주 안에서 실존하며 작용하며 창조하며 활동하지 않는가?”12)
여기에서 바르트는 칼빈이 말한 “온 우주 안에서 다스리는 삶의 원리”로서의 성령에 관한 이론을 생각하였으며,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재림 즉, 그의 “하나님의 숨어계심으로부터 나타남”은 “세계의 사건 속에 그의 숨어계심으로부터의 나타남”으로 기다려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몰트만은 만일 바르트가 이러한 생각을 계속 발전시켰다면, 창조와 계약, 자연과 은혜, 신체와 영혼의 바르트적 구분은 그렇게 엄격하지 않았을 것이며 계약과 은혜와 영혼을 위해서 일면적으로 치우치지 않았을 것이다고 평가한다.
몰트만에 의하면 “우주적 그리스도론”에 대한 최근의 신학적 토의는 생태학적 위기가 의식화되기 훨씬 이전 1961년 뉴델리의 세계교회대회에서 루터교회 신학자 요셉 지틀러(Joseph Sittler)를 통해 제시 되었다고 한다.13) 그러나 지틀러는 문제가 진지하게 생각되지 않았으며, 구원에 비하여 창조가 너무 강조되었으며,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종말론적 증언이 결여되어 있으며, 죄인의 칭의를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으며, 그리고 폐쇄된 이레네우스의 우주론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14)
따라서 몰트만은 그리스도의 우주성을 삼중적 창조론과 그리스도의 삼중적 통치 그리고 삼중적 화해의 자리로써 그리스도의 삼중적 실존양식을 주장하였다.
창조의 지혜로서 그리스도는 우주의 역사의 끝없는 창조의 근거이며. 동시에 창조의 중재자 일뿐만 아니라 창조의 유지자이다. 전통적 창조의 이러한 다면성을 밝히지 못했다. “창조”를 단지 태초의 창조(creatio originalis)로만 이해하며 계속되는 창조(creatio continua)와 모든 것을 완성하는 창조(nova creatio)로 이해하지 않음에 있다. 이럴 경우 창조와 구원은 분리된다. 창조가 구원의 준비로 격하되거나 아니면 구원이 태초의 창조를 회복하는 것으로 위축된다. 따라서 창조를 그리스도론적으로 재조명할 때, 태초의 창조와 함께 시작하여 창조의 역사 속에서 계속되며 모든 것의 새 창조에서 완성되는 그리스도가 지닌 창조의 중재자 직을 세 단계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15)
1) 모든 것의 창조(creatio originalis)의 근거로서의 그리스도
2) 창조의 진화(creatio continua)의 원동력으로서의 그리스도
3) 창조의 모든 과정(creatio nova)의 구원자로서의 그리스도
몰트만은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왕적 직분의 3중적 통치에 관한 개신교 정교주의 신학의 이론을 받아들여 오늘의 상황 속에서 새롭게 전개한다. 그리스도는 자연의 왕국(regnum naturae)과 은혜의 왕국(regnum gratiae)과 영광의 왕국(regnum gloriae)에서 다스린다. 이와 같이 통합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지금가지 우주적 그리스도론이 지니고 있었던 일면성을 피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16)
무엇보다도 자연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인간이 사려 깊게 자연과 화해라 수 있는 회개를 위한 영적 기초는 기독교 신앙에 의하면 우주적 그리스도론 자체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주적 그리스도론의 그리스도의 주권의 구원의 우주적 차원을 재검토하는 것에서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몰트만에 의하면 구원론적으로 그리스도의 평화는 다차원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인격적 신앙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 깊은 데에서 인지된다. 하나님과 영혼의 내적 평화는 중요하다. 그러나 영혼의 평화는 모든 영혼이 그 자신을 넘어서서 우주의 모든 피조물들의 사귐을 보게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적대관계’를 ‘죽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의 적대관계, 인간상호 간의 적대관계, 인간과 자연의 적대관계, 자연 자체의 힘들 사이의 적대관계. 그리스도의 평화는 우주적이며 모든 창조를 침투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아닐 것이다.”17)
인간이 하나님 자신에게서 그리고 인간 상호간에 경험하는 화해는 그들 자신과 그들의 세계를 넘어서 우주를 보게 한다.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모든 것을 그분을 통해 자기와 화해하게 하셨습니다.”(골 1:20). 모든 창조가 화해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일 수 없을 것이며 모든 것의 근거일 수 없을 것이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고 모든 것의 근거라면,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피조물들을 마치 다른 사람들을 대하듯이 대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피조물은 세계의 화해 속을 이끌어 들이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한 존재이다. 그러나 우주의 화해는 우주의 정의의 회복이 되는 것이다.18)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역사적 실존(인간)이며, 교회공동체로 실존(하나님의 아들)하며, 우주로 실존(만유)한다고 하였다.
“예수는 새로운 인류의 장자이다-예수는 백성들의 사람의 아들이다-예수는 화해된 우주의 머리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십자가에 못 박혔고 부활한 예수의 몸이다-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온 우주이다. 첫째의 경우 그리스도는 나사렛 예수로 실존하였고, 둘째의 경우 그리스도는 공동체로서 실존하며, 셋째의 경우 그리스도는 우주로서 실존한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더 크시다(Christus semper major).”19)
몰트만이 우주적 그리스도의 구원론적이 측면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우주적 실존을 ‘그리스도의 삼중적 실존양식’의 하나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주장하였으나, 이는 본회퍼와 오트(H. Ott) 의해 이미 제시된 교회의 중심, 역사의 중심, 세계의 중심이신 그리스도를 ‘세 가지 실존양식’이라는 용어로 부연한 것이다.20)
나아가서 몰트만은 정통적인 “두 본성의 구분은 그리스도 자신의 특별한 역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세계의 보편적 형이상학에서 온 것이다”21)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역사적 실존은 인성으로, 교회적 실존을 신성으로, 그리고 우주적 실존으로 우주성으로 유비할 수는 있지만, 엄격한 의미해서 예수의 세 실존 양식을 그리스도의 삼성론으로 주장하지는 않았다.
3. 샤르뎅의 그리스도의 우주성과 그리스도의 삼성론
1961년 지틀러가 ‘우주적 그리스도’에 관한 강의를 하기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의 우주성을 현대적 신학의 주제로 제시한 이는 때이야르 드 샤르뎅이다. 샤르뎅은 1955년 저술한 그리스도라는 책에서 명시적으로 그리스도 우주성을 그의 신성과 인성에 이어 제3의 본성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이를 ‘신-니케야 신조’에 상응하는 것으로 밝혔다.22) 이는 기독론의 역사상 주목할 만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1) 샤르뎅은 말년에 쓴 물질의 심장(1950)에서 여섯 살 내지 일곱 살 때 이미 “물질의 핵심 속에서 무언가 ‘빛나는 것’에 이끌리기 시작했다”고 회상하였다.23) “물질과 정신은 결코 두 가지 다른 실체가 아니고, 같은 우주적 재료가 보는 방식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두 “상태”, 두 측면”24)이며, “엄밀히 말해서, 무생명체에 비해 생명체가, 육체에 비해 정신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25) 그 시절 그는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정신-영적이며 동시에 만져지는 현실 속에 더욱 깊이 ‘물질화’하셨다”26)는 사실과 “신이 어디든 파고들고, 무엇으로나 변모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보편화-우주화할 수 있는 특성’을 띠게 되었다.”27)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물질과 육체로 구체화되는 자연과 우주가 정신과 영혼처럼 신비한 까닭은 훗날 성육신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확인한다. 샤르뎅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단지 하나님이 ‘육신의 몸’으로 인간이 되신 사건에 제한되지 않는다. 성육신의 의미는 우주로 확장된다. 그리스도는 성육신을 통해 인류의 일부분만이 아니라 우주의 일부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우주의 몸’(a cosmic body)으로 성육신하신 것이다. 이 그리스도의 우주성은 ‘우주의 충만’(the plenitude of the Universe)이요 전 우주를 채우는 ‘우주의 몸’으로 표현된다.28) 그리스도가 우주의 몸라는 주장은 그의 초기 저서 우주적 그리스도론(1920)과 범신론과 그리스도교(1923)에서도 등장한다.29)
우주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우리 인간도 우주의 일부로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수 있다. 폭스는 샤르뎅의 사상에 의하면 우주만이 거대한 신비이고 따라서 신비주의의 원천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도 그러하다고 한다.30) 이런 의미에서 샤르뎅은 인간의 몸은 제3의 무한 즉 무한복잡의 세계라고 하였다. 우주가 무한소의 세계라면 미립자는 무한소의 세계이고 인체는 무한복잡의 세계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주와 마찬가지로 육체는 경외심의 근원이며 따라서 신비주의의 근원이다.
2) 우주에 충만한 우주의 몸인 그리스도는 우주에 편재하는 우주성을 지니는 우주적 존재이다. 만물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우주적 존재로서 그리스도는 우주 속에 편재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편재는 만물의 힘을 하나로 엮는 그리스도로 표현된다.31) 하나님의 편재(遍在)는 바로 그리스도의 편재(遍在)라는 정식에 도달한다.32)
그리스도의 우주적 힘이 만물에게 미친다는 개념은 샤르뎅이 초기에 쓴 논문에도 나타나 있다. 그가 신의 영역을 쓰기 수년 전부터, 그는 이 우주적 힘을 그리스도의 편재(a universal presence)라고 표현하여 왔다. “강생된 말씀은 마치 우주의 구성요소처럼 만물 안에 깊숙이 현존하고 있다. 그것은 우주의 구성을 속속들이 비추고 있다.”33) ‘이 범 그리스도 사상’(pan-christism)은 만물이 신과 동일하고 신과 융합되어 그 본질을 상실한다는 그릇된 범신론과는 전혀 다르다. 그리스도의 우주적 힘을 “사물을 분리하기는커녕 결속하고, 사물을 혼동하기는커녕 개별화한다.”고 주장한다.34) 그리스도의 편재라는 신앙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안으로 수렴’ 된다는 우주적 원리가 된다.35)
샤르뎅은 그리스도의 몸의 우주적 편재의 원리를 성찬의 신학적 의미에서 새롭게 발견한다.36) 물질 세계의 그리스도에서 ‘성체(聖體)’는 널리 전 우주를 포용하고 변화시키며 생동하게 한다고 묘사되어 있다.37) 사제는 전선에서 쓴 것인데 묵상 기도의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주여, 당신은 사제인 나에게는 지금 면병(麪餠)도 포도주도 제단도 없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손을 이 넓은 우주에 펴서 이것을 송두리째 당신께 제물로 바치나이다. 당신이 변화시키고자 하시는 취후의 면병은 무한한 조물계가 아니니이까”38)
이와 같이 샤르뎅은 전우주를 제물로 삼는다. 전우주는 성체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 성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축성은 ‘우주적 축성(the universal consecration)’으로 그리고 그 “우주의 축성(祝聖)은 그침 없는 우주의 성찬 의식”으로 조명된다.39) 샤르뎅은 신의 영역(1917)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여! 당신은 ‘이는 내 몸이니라’라고 하였으므로 제대상(祭臺床)상의 빵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영성 생활 및 은총 생활을 위해 영혼을 길러 주는 우주의 만물도 당신의 것이 되고 거룩해졌나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 만물이 신화되고 신화하며 신화할 수 있는 것이니이다.”40)
넓은 의미로 그러나 실제적인 의미로 말하면 “그리스도가 속속들이 침투하여 활기를 불어 넣는 우주가 바로 하나의 성체”41)라는 것이다. 샤르뎅은 그리스도의 구속 활동과 통일 활동이 성찬을 통하여 연장된 것으로 생각하고, 또 “그리스도의 우주적 힘도 바로 성찬을 통하여 인간에게 도달되고” 이에 때라 성찬은 우주적 능력과 실제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주의 축성’의 대상은 정적인 우주가 아니라 진화 발전하는 동적인 우주다. 그러므로 인간의 활동도 우주의 축성과 함께 성화된다고 주장한 것이다.42)
3) 샤르뎅은 그리스도가 우주의 몸 일뿐 아니라 ‘우주의 머리’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성육신과 부활을 통해 우주의 일부분만이 아니라 바로 우주의 지배 원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강생(성육신)은 우주의 모든 물리력과 정신력의 갱신하고 복구하는’43) 능력이요 “부활의 힘으로 그리스도에게 우주의 중심적인 능력”이 주어진 것이다.44) 샤르뎅은 우주적 그리스도에 관한 요한과 특히 바울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두 가지를 긍정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만물은 그분(그리스도)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골로 1:17)라는 긍정과 “그분 안에서 만물은 완성 된다.”(골로 2:10, 에페 4:9)는 긍정이다. 따라서 이 두 긍정은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위에 군림한다”(골로 3:11)라는 말로 줄일 수도 있다고 하였다.45)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만물의 으뜸이요 머리다. 만물은 그분 안에서 시작되고, 통일되고 마침내 완성된다.”46) 따라서 우주의 머리요 우주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자신의 견해는 “그리스도의 물리적인 우주 통치권”(Christ's physical supremacy over the universe)에 관한 바울의 증언에 근거해 있음을 밝혔다.
우주는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창조된다. 그리스도는 만물을 갱신하고 복구하고, 활기차게 하며 성화하고, 통일하고 완성하신다. 만물의 근원인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창조되었고, 만물의 통치자인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계속 창조되고, 만물의 완성자인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샤르뎅의 우주적 그리스론은 창조의 세 측면 즉 태초의 원 창조(creato originalis), 역사적 지속적인 창조(creato contiua), 종말의 새 창조의 완성(creato nova)을 포함하는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샤르뎅의 창조론은 태초의 원창조라는 창조의 일면만을 강조해온 전통적인 창조론의 폐쇄적인 구조가 ‘계속적인 창조’의 개방적인 구조로 바뀌어 창조적 진화론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종말의 새 창조의 완성’이라는 가르침을 통해 우주적 구원론의 확충과 오메가 포인트를 향한 종말론적 지향점을 신학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4) 샤르뎅의 삼중적 창조론은 그의 창조적 진화론의 근거가 되었다. 그리스도는 원 창조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만물의 다스리는 그리스도는 계속적인 창조의 머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완성하시는 그리스도는 우주의 통치자로서 ‘우주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다. 샤르뎅은 그리스도를 ‘알파요 오메가’(계 1:8)로 표상한 성서의 가르침을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는 만물의 시작인 우주 창조의 근원인 동시에 만물의 마지막인 우주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요 완성자가 된다고 하였다. 우주적 그리스도는 창조의 근원이 동시의 진화의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가 된다는 창조와 진화를 불연속적 연속으로 보는 독창적인 창조적 진화론을 주장한 것이다.
샤르뎅의 창조적 진화론에 따르면 무기체인 물질현상이 생기고, 물질현상의 임계점에서 유기체인 생명현상이 생기고, 생명현상의 임계점에서 인간의 정신현상이 생긴 것은 창조의 단계로 설명된다.47)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간이 그 정점인 정신현상의 임계점에서 다음 단계로 창조적으로 이행한 것으로서 공동 정신현상(co-reflection)이라는 독특한 창조적 진화의 목표를 제시하였다. 인간의 정신은 자아 중심성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임계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 즉 온 인류를 한 형제로 사랑하는 공동정신을 지닌 존재가 창조되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전적으로 새로운 인간이며, 진화의 궁극적 정점(omega point)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도는 우주적 의미(cosmic Christ)를 지닌다고 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와 오메가의 동일성은 사실상 샤르뎅 사상의 초석이 되고 있다. 샤르뎅의 진화 물리학에서 말하는 오메가와 그리스도교 계시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는 동일한 존재다. 우주에 의미가 있고, 인간이 목적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오메가=그리스도)이라는 것이다.48)
이런 의미에서 성육신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육체적 탄생을 통해) 진화의 과정 속에 역사적으로 끼어 들어오심”49)으로 이해된다. 성육신을 통해 단지 그리스도와 물질 사이에 놀라운 합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마침내 확실히 ‘진화자’로 파악된 그리스도와 진화에 실제로 인정된 우주적 초점 사이에도 그런 합치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었다. 우주화한 그리스도의 심장과 사랑화한 세계의 심장은 마침내 하나로 합해질 것으로 본 것이다.50)
진화가 의식의 상승을 의미하는 만큼 반성의식을 지닌 인간은 우주 진화에서 중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창조 마지막에 인간을 만든다. 인간을 자연의 정상에 세우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피조계를 담당하게 한다(창1:28).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되고, 지상만물을 감당하게 한다(시8:1-8). 하나님이 인간에게 우주를 위탁했다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과업을 위해 역량을 발휘하여 세계완성이라는 과업도 요청 받는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따라서 타인과 유기적․인격적 관계없이는 효과적 과업수행을 할 수 없다(창1:27). 개인의 발전은 인격적 친교로 보완되고, 사회발전은 개체의 인격 성장과 상호 섬김으로 보완된다. 모든 피조물은 인간을 위해, 인간은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 우주는 진화의 걸작품이자 절정이며, 하나님께 가장 가까운 존재인 인간을 향해 진화해오다 인간출현 이후 그것은 인간 안에서 인간을 통해 계속된다. 샤르뎅은 “그리스도는 그의 신비한 몸 외에도 우주 전체로 퍼져가는 우주적인 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신비의 그리스도가 아직도 완전을 위해 더 성장해야 하듯이 우주 그리스도도 그렇다”고 믿었다.51)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이신 교회 안에서, 우주적인 당신의 몸 안에서 계속 커져갈 뿐 아니라, “당신이 오실 때까지 우주가 하나님 성삼위의 완전무결 안에서 그리스도화를 향해 계속 진행한다”52)고 하였다. 성육신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우주적 진화론으로 전개한 것이다.
5) 샤르뎅은 성육신과 성찬의 우주적 축성을 통해 우주의 몸으로서 우주에 편재해 있는 우주적 그리스도와 알파와 오메가로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고 완성하시는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의 우주성을 마침내 그리스도의 ‘세 번째 본성’이라고 부른다. 그가 죽기 직전 쓴 마지막 책인 그리스도(1955)에서 그는 그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의 최종적인 체계로서 그리스도의 삼성론을 주장한 것이다. 그것은 우주 그리스도가 4세기 때 공의회에서 정의된 인간이며 신인 그리스도의 본성을 초월하여 인간도 아니고 신도 아닌 우주의 제3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해준다는 의미이다.53) 이 제3의 영역을 그는 그리스도의 제3의 본성이라고 주장하였다.
“전체 그리스도 안에는 (이 점에 관해 그리스도교 전통은 견해를 같이하는데) 인간과 하느님만 있는 것 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 ‘신인神人적’ 존재 속에 창조계 전체를 끌어모으는 분이 또 있다. ‘in quo omnia constant’(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속한다)(골로 l,17). 바울로 사도가 자기 세계관 속에서 그리스도의 이 제3측면 혹은 기능-혹은 한술 더 떠서, 어떤 의미로는 제3의 본성(인간성도 아니고 신성도 아니라 ‘우주적’인 본성인데)이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겠다-에 아주 지배적인 위치를 배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신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이 점에 별 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54)
샤르뎅이 죽기 사흘 전에 남긴 일기에서 명시적으로 우주적 그리스도를 통해 니케야(Nicea) 신조의 양성론에서 ‘신 그리스도교는 니체야 신조의 삼성론’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믿고 있었다.
“내가 믿는 것
1) 중심을 지니고 거기로 향하고 있는 우주 -제3의 무한 속에서
→ 신-인간주의 (월-인간)55)
2) “그리스도는 우주의 중심이다(정신발생 = 그리스도발생)
→ 신-그리스도교(신-니체아)”56)
무엇보다도 샤르뎅이 삼성론을 주장한 것은 예수를 신과 인간 사이에 위치시킨 양성론이 현대인들에게 신에 대한 경배의 욕구를 더 이상 충족시키지 못하며 오히려 감퇴시키고 있다는 현실에서 출발한다고 밝혔다.
“예수를 인간과 신 사이에 위치시킴으로써, 신 관념이 더 이상 발전을 하지 못하고 정지되었을 뿐 아니라 말하자면 위축되고 말았다는 것이, 비신자들로부터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져지는 가장 흔한 비판이었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교는 현대인들에게 신 경배의 욕구를 더 이상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오히려 감퇴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 자신이 얼마나 자주 똑같이 생각했던가.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내게 그렇게 말했던가.”57)
샤르뎅은 우주적 그리스도론이 지니는 구원론적인 차원을 재발견한 것이다. 우주적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대립이 사라지는 구원의 새 차원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참으로 묘하고 놀라운 지점이다. 우주·인간·그리스도, 이 셋이 만나 “중심”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나타나고, 거기에서는 우리 실존의 불행이나 고뇌의 원인이 되었던 온갖 대립들이 사라져 간다.”58)
그리하여 샤르뎅에 있어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만물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된다. 그의 고백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자연 사랑의 일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에 예수께 대한 나의 사랑과 만물에 대한 나의 사랑, 이 둘을 연결하여 다리를 놓아 줄 수 있는 이 극히 그리스도교적인 자세에 대해서 처음에는 별 뚜렷한 의식이 없었다. 그러나 수도생활 초기부터 나는 우주를 가로질러 하느님과 일치한다고 하는 이 적극적 감정에 전적으로 몸을 맡겼다.”59)
그러나 샤르뎅이 지적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세 번째 본성(인간의 본성도 신성의 본성도 아닌 우주의 본성)은 신앙인들이나 신학자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60) 뿐만 아니라 샤르뎅이 주장한 그리스도의 삼성론은 니케야 신조 이상으로 기독론의 역사상 아주 중요한 교리적 주장이요 새로운 전환점이 분명하지만, 이 역시 신학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다.
IV. 그리스도의 삼성론과 천지인 신학의 페러다임 통합
기독교의 전통적 칭의론(稱義論)과 화해론은 하나님의 구원을 개인주의화, 영성화시키는 데에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그 결과 구원관에 있어서도 인간의 육과 물질의 세계, 자연의 세계는 제외되어 있거나 이차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폭스는 근대에 들어오면서 그리스도의 우주성이 기독론 논의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몇 가지 역사적 원인들을 제시한다. 루터파 교회사학자인 야로슬라프 펠리칸은 계몽주의 탓이라고 믿는다. 그는 “계몽주의 철학이 우주 그리스도를 끌어내렸다”는 지적과 루터파 신학자 죠셉 지틀러가 “17세기부터 그리스도교에 쓰며들기 시작한 합리주의와 경건주의 역시 우주적 그리스도에 대한 비전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한 것을 인용한다.61) 이 시대의 이성주의와 부권주의적 사고방식이 신비주의와 직관과 상상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주론을 몰아내게 되었으며 자연히 우주 그리스도도 사라지게 된 것으로 분석한다. 인간이 우주론 없이도 살아 갈 수 있다면 왜 구태여 우주 그리스도가 필요하겠는가? 인간중심의 문화와 종교의 시대에는 우주 그리스도가 필요치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계몽주의 시대 이래로 지난 2000년을 지배해 온 역사적 예수를 추구하면서 예수의 우주성은 더욱 관심 밖으로 밀려 났다고 분석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자 그리스테 스탕달은 불트만의 인간 중심적인 실존신학의 영향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이나 그분이 창조한 피조물의 운명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고 지적하고, 이것은 “루돌프 불트만의 신학활동의 커다란 실수”라고 비판하였다.62)
폭스는 우주적 그리스도의 약화는 인간과 자연, 정신과 육체, 남자와 여자 등의 갈등을 부추기는 계기 중의 하나라고 보았다.63)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는 서양의 문화가 얼마나 “분열의 문화”가 되었는지를 설명한다.64) 몰트만 역시 개신교가 현대세계의 이분을 받아들여 율법과 복음, 인격과 사역, 정신적 왕국과 세속적 왕국의 종교개혁적 구분을 계승하여 왔다고 분석한다. 현대에 와서 고가르텐, 불트만, 브룬너는 인격과 자연을 너무나 분리시켰기 때문에 인격적 인식과 자연적 인식은 무관한 것으로 여겨졌다고 분석한다.65)
우주 그리스도는 분열의 시대에서 일치의 시대로 안내한다. 신비주의가 없는 시대, 살아 있는 우주론이 없는 사회의 특성인 분열과 분리와 이원론의 종말로 안내한다. 비록 연관성이 일시적으로 사람의 마음과 상상 안에서만, 희망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우주는 언제나 하나의 전체이고, 단일체이며 서로 연관된 상태라는 믿음을 제공한다. 우주 그리스도는 이처럼 정신과 우주를 다시 결합시킨다. 그러므로 신학자 라이트풋이 그리스도가 ‘우주 안의 결합원리’라고 주장한 것은 타당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주 안의 결합원리다. 그는 피조물들의 단일성과 연대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창조를 혼돈이 아닌 [조화로운] 우주로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사물들을 제자리에 고정시켜 주고 움직이는 사물들의 운동에 질서를 부여하는 만유인력의 작용은 그분 마음의 표현한다.”66)
폭스에 의하면 조화의 반대는 혼돈이다. 우주 그리스도는 우리를 혼돈에서 구제한다. 성서에서는 혼돈의 반대가 창조이고 창조에 내재하고 있는 정의다. 따라서 언제나 불의는 혼돈으로 돌아감이다. 우주 그리스도가 우리를 혼돈에서 조화로 옮겨주는 것은 우주적 조화에 대한 희망을 되살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화의 시대로 안내하는 우주 그리스도를 끌어안으려면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차이점이 아닌 일치점들을 추구해야 한다.”67) 무엇보다 우주 그리스도론과 관련하여 에베소서에 나오는 만물을 통일하고 완성한다는 총괄갱신(recapitulation)이라는 주제는 “흩어지고 갈라졌던 부분들을 함께 모은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평화를 이룬다”의 말의 의미이다.68) 성서에 평화는 관계의 개념이고 관계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 이웃과 바른 관계, 자연과 바른 관계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자신 안에 “하늘과 땅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빌 2:9)을 ‘결합시키는 틀’이다.69) 다시 말하면 신과 인간과 우주를 ‘결합시키는 틀’이다. 폭스는 “(성서의) 영적 전통은 우주 그리스도가 ‘결합시키는 틀’이라고 말한다”70)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그러므로 예수가 ‘평화를 위하여 일하라’ 한 명령은 분열된 사회를 “결합시키는 틀”과 “조화의 조성자”가 되라고 부름이라고 해석한다.71) 에베소서는 우주 그리스도의 역사적이고 예언자적인 차원을 강조하며, 교회에 평화와 화해의 장이 되어야 할 임무에 충실하라고 권고한다.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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