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_아버지의 이마고와 아니무스(1)
융_아버지의 이마고와 아니무스(1)
http://cafe.daum.net/critic4u
아들로부터 투사되는 요소를 짊어지는 사람은 어머니이고 딸의 경우는 아버지이다.
부녀간의 관게는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융은 이러한 주제에 대해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한다.
여성은 남성적인 존재로써 보상되므로 그녀의 무의식은 이른바 남성적인 징후를 갖는다. 이를 가르키는 아니무스라는 말은 오성悟性, Verstand, 또는 심혼을 의미한다.
"아니마(남성 속의 여성)가 모성적인 에로스에 해당한다면, 아니무스(여성 속의 남성)는 부성적인
로고스에 해당한다."
에로스니 로고스니 하는 것은 단순히 개념적인 보조수단에 불과하고 실제의 의미는 에로스의 맺는
기능을 지칭한다. 관례적인 의견들을 총화하는 '아버지'는 여성의 논쟁에서 큰 역활을 하며 어떤
남성도 아니무스와 함께 자기 아니마에 빠지지 않고 짧은 시간이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니마, 아니무스의 원천은 보다 깊은 인류의 원초적인 조건에 있다. 물론 그 사람의 개인적 생활 환경과
시대적 남성관, 여성관에 관련된 집단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은 니마, 아니무스의 개인적 측면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
가령 남성들이 여성적인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억압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고 여성들이 남자 같은 여자가 되는
것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시대에는 남성이 의식에서 여성적인 특성과 성향이 억압되면 이에 대한
무의식적 요청이 증대되고 심혼의 이마고는 이런 요청을 수용하는 그릇이 된다.
여성의 의식에서 배제된 남성성 역시 심혼의 이마고의 성격을 결정한다.
그런데 이 여성적인 심혼, 아니마상에는 개인적인 일회성이 아닌 초개인적이며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것이 있고, 이것은 마음의 깊은 층에 뿌리박고 있다고 융은 말한다. 그것은 무의식이 유전된 집단적
여성상으로서 우리가 여성원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경험한다고 할 때 경험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융은 "주관적 준비태세의 개입 없이 경험이란 없는 법" 이라고 말한다.
경험한다는 것은 그 경험을 하게끔 하는 선천적, 정신적 구조가 전제되어 있기에 가능하다.
그것이 있음으로서 어떤 것을 경험하도록 하는 마음의 준비태세가 생긴다.
남성이 여성을 경험하고 여성이 남성을 경험하는 데에는 그것을 그렇게 경험하도록 하는 내적인
구조가 있고 반응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성의 전 존재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성을 전제로 한다. 그의 체계는 선험적으로
여성을 향하고 있다. 그것이 물 빛, 공기, 소금, 이산화탄소 등이 존재하는 전적으로 특정한
세계에 대해 준비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부영, <아니마, 아니무스>, 한길사. 2004.
http://cafe.daum.net/critic4u
아들로부터 투사되는 요소를 짊어지는 사람은 어머니이고 딸의 경우는 아버지이다.
부녀간의 관게는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융은 이러한 주제에 대해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한다.
여성은 남성적인 존재로써 보상되므로 그녀의 무의식은 이른바 남성적인 징후를 갖는다. 이를 가르키는 아니무스라는 말은 오성悟性, Verstand, 또는 심혼을 의미한다.
"아니마(남성 속의 여성)가 모성적인 에로스에 해당한다면, 아니무스(여성 속의 남성)는 부성적인
로고스에 해당한다."
에로스니 로고스니 하는 것은 단순히 개념적인 보조수단에 불과하고 실제의 의미는 에로스의 맺는
기능을 지칭한다. 관례적인 의견들을 총화하는 '아버지'는 여성의 논쟁에서 큰 역활을 하며 어떤
남성도 아니무스와 함께 자기 아니마에 빠지지 않고 짧은 시간이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니마, 아니무스의 원천은 보다 깊은 인류의 원초적인 조건에 있다. 물론 그 사람의 개인적 생활 환경과
시대적 남성관, 여성관에 관련된 집단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은 니마, 아니무스의 개인적 측면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
가령 남성들이 여성적인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억압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고 여성들이 남자 같은 여자가 되는
것을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시대에는 남성이 의식에서 여성적인 특성과 성향이 억압되면 이에 대한
무의식적 요청이 증대되고 심혼의 이마고는 이런 요청을 수용하는 그릇이 된다.
여성의 의식에서 배제된 남성성 역시 심혼의 이마고의 성격을 결정한다.
그런데 이 여성적인 심혼, 아니마상에는 개인적인 일회성이 아닌 초개인적이며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것이 있고, 이것은 마음의 깊은 층에 뿌리박고 있다고 융은 말한다. 그것은 무의식이 유전된 집단적
여성상으로서 우리가 여성원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경험한다고 할 때 경험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융은 "주관적 준비태세의 개입 없이 경험이란 없는 법" 이라고 말한다.
경험한다는 것은 그 경험을 하게끔 하는 선천적, 정신적 구조가 전제되어 있기에 가능하다.
그것이 있음으로서 어떤 것을 경험하도록 하는 마음의 준비태세가 생긴다.
남성이 여성을 경험하고 여성이 남성을 경험하는 데에는 그것을 그렇게 경험하도록 하는 내적인
구조가 있고 반응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성의 전 존재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성을 전제로 한다. 그의 체계는 선험적으로
여성을 향하고 있다. 그것이 물 빛, 공기, 소금, 이산화탄소 등이 존재하는 전적으로 특정한
세계에 대해 준비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부영, <아니마, 아니무스>, 한길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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