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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_융의 분석심리학에 기초한 클림트의 그림소고

융_융의 분석심리학에 기초한 클림트의 그림소고
目 次





Ⅰ. 들어가는 말



Ⅱ. 융의 분석심리학 개론

  1.분석적 이론의 기본 개념

  2.분석적 미술치료

  3.미술치료에서의 융학파의 상징



Ⅲ. 구스타프 클림트의 경우

  1.클림트의 생애

  2.클림트와 빈 분리파

  3.클림트의 그림들 - 아니마와 아니무스



Ⅳ. 나오는 말

Ⅴ. 참고문헌


 



   융의 분석심리학에 기초한 클림트의 그림소고


 

                              

                                                              김 린 주
 
 






Ⅰ. 들어가는 말


 

  십여 년 전부터 ‘음악치료’라는 용어가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기 시작하더니 그 분야가 점점 넓어져 이제 ‘미술치료’라는 용어도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그 만큼 전문분야가 세분화되었고, 또 필요성이 커졌다는 반증이다.


 

 치료라는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therpia'에서 유래하였다.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아픈 곳을 의학적인 수단을 이용하여 낫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미술치료에 있어서 치료의 의미는 상이하게 다르다. 미술이라는 도구로 창작활동을 한다. 즉, 창작활동에 치료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미술은 아름답게, 보기 좋게,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대한다. 하지만 미술치료에서는 보기 좋은, 잘 그린 그림을 원하는 미술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표현하는 그 미술표현 행위에 그 의의가 있다. 다시 말해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미술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활동을 통해 각자 나름대로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승화되는 과정이 진정한 미술치료의 의미라 하겠다.


 

  미술치료는 미술이라는 시각매체를 통해 스스로 억제, 상실, 왜곡된 부분을 발견하고 미술의 상징성과 전체성을 통해 통합시킴으로써 자신의 문제와 인격을 인지하고 발전시켜나가는 작업이다.


 

 특히 미술은 언어표현이 익숙하지 못한 아이들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언어보다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더욱 편안한 도구로써의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미술자체가 정화기능을 가지고 있어 손상되고 불안정한 감정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미술이 친숙하고 편안한 표현 방법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 등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성장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으로 외부세계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미술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과 자기를 인지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작업이 될 수 있다.


 

 정신분석적 미술치료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근간으로 하는 분석가들이 꿈의 해석, 자유연상 등의 기법을 사용하는 미술치료를 말한다.


 

  프로이트는 아동들은 성인에 비해서 자유연상능력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내용을 언어로써 표현하는데 있어 다소 어려움이 있으므로 그림이나 창조적 매개체를 이용하여 표현케 하는 것이 용이함을 주장했다.


 

 꿈과 같은 무의식적 작업을 미술을 통해 의식화시키는 작업이 바로 정신분석적 미술치료인데 꿈의 기능은 억제, 방어되어져 오던 것들이 꿈으로 위장되어짐으로 꿈속에 내재되어진 의미를 알 수 있다.


 

  이런 분석적인 미술을 치료법으로 처음 도입한 사람이 나움버그(Naumburg)이다. 나움버그는 자발적인 미술표현을 통하여 무의식의 이미지를 표출 즉 의식화시키는 것이 치료와 원활한 의사소통에 효과적이라 했다. 또한 치료자는 내담자의 작품에 관한 소재를 분석하여 상징적인 의미로써 작품을 이해하며, 내담자의 그림을 통해 투사되는 상징과 전이를 매우 중시하여 융의 집단 무의식 개념이나 대상관계 이론도 그 치료이론에 통합하였다. 나움버그는 이런 자신의 미술치료가 "역동적인 미술치료"라고 했으며 프로이트의 정신 역동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정신분석적 미술치료에서는 반동현상(상대방에 대한 미움의 감정을 역으로 더 잘하고 친해지려 하는 현상) 투사, 승화와 같은 방어기제들은 무의식과 절대적인 관계로 중요시하며 그림을 통한 무의식의 반영(투사)은 정신분석적 미술치료에 있어 핵심이 된다.


 

본고에서는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몇 몇 그림들을 대상으로 융의 원형(archetypes)이론에 입각하여 미술치료와의 관계를 조명해보고자 한다.


 


 


Ⅱ. 융의 분석심리학 개론



1. 분석적 이론의 기본 개념 


 

  융은 정신(psyche)이 마음(soul), 의식 과정(conscious process),무의식 과정

(unconscious process)을 모두 합해진 것이라 보고 있다.


 

  융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세계는 무의식과 의식의 두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양극성을 가진다. 융에 있어서 무의식이라 함은 프로이드의 그림자 어둠의 의미가 아니라 정신세계의 전체성을 의미한다.


 

  무의식은 의식을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큰 영역이며 일반적으로 융의 무의식은 개인 무의식(개인적 요소)과 집단 무의식(원형적 요소)으로 구분되어 있다.


 

 개인 무의식은 말 그대로 개인마다 각자 다른 무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사람마다 살아오면서 겪는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개인성을 인정한다. 반면 집단 무의식은 개개인의 경험으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 유전 즉,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 무의식이 개인의 인생에서 억제된 것 억압 된 것이라 한다면 집단 무의식은 인간이 태초부터 갖고 태어나는 것 친자 관계, 출생과 사망과 같이 이탈할 수 없는 영역이라 하겠다. 또한 정신세계에 있어 의식의 영역이 지나치게  많으면 무의식의 영역이 축소되면서 무의식은 더 강하게 반발을 한다.


 

 하나의 예로 엄마의 어떤 태도가 일방적으로 우세하면 아이는 반대로 저항하고자 하는 반발심의 태도가 더욱 강해진다. 이렇듯 의식은 무의식으로부터 분화되어 나온 것이며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범주 안에 일부이다.


 

  융은 우리에게 신체가 성장하고 발달하게 하는 생리적인 힘이 있다면 무의식에는 인간의 전체성을 이룩하도록 하는 정신세계의 자율적인 힘이 있다고 하였다.



2. 분석적 미술치료


 

  1964년 융의 분석적 미술치료는 프로이트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융은 미술을 내담자의 진단을 위한 임상적 자료로써의 가치가 아니라 내담자의 경험과 즉 개인적인 요소와 원형적 요소(집단 무의식)의 통합과 내담자와 치료자간에 상호관계 형성과 통찰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융학파의 치료자들은 내담자들로 하여금 꿈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도록 하였으며 더욱이 융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를 미술활동을 통해 통찰을 얻었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나움버그도 크래머와 마찬가지로 직접 미술활동을 통해 치료의 효과를 확신하여 미술과 치료를 통합한 인물이라 하겠다.


 

  융은 무의식으로부터 나온 심상을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던 능동적 심상화(active imagination)기법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으며 내담자의 작품은 어떤 단면에 치중하여 해석하기보다는 종합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그림을 보는데 있어서는 감정적인 면과 지적인 면을 모두 종합해 여러 시각에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융학파는 미술이 분석가들의 임상적 정보 자료도 아니고 원형적 형상화를 알고자 하는 지적 추구와 관찰도 아닌 인간의 내적 및 외적 실체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을 이끌어 내는 매개체로써 그 근원적인 실체의 상징으로서 심상을 다루고 있다.


 

  융은 심상을 강조하면서 능동적 심상이란 방법을 고안하였는데 그는 능동적인 심상을 표현함으로써 자신도 모르는 내적인 심상을 인지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융은 이와 같은 논리에서 능동적 심상화를 내성법 이라고 정의하면서 무의식적 심상은 인간에게 대단한 책임을 지우고 있다고 했다. 융은 능동적 심상과 꿈을 구분하였는데 능동적 심상은 심상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현재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심상들을 의식으로 충분히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사실 능동적 심상에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토론이며, 융은 능동적 심상과 미술을 구분하여 정의하고 있다. 미술치료의 목표는 미술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숨겨진 자원(근원)을 찾고 이해와 성장을 변형시키는데 있다고 하겠다. 


 

 인간의 성격(심리)은 필연적인 인과율의 영향 하에 있는 것만도 아니고 자유로운 목적 지향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프로이트는 인간 성장의 유아기의 습관과 발달에 의해 개인의 전 생애가 필연적인 인과율에 의해 지배된다는 주장을 하지만 융은 그처럼 현재가 과거에 의해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목적 의식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고 믿었다. 이처럼 인과율 및 목적론에 의해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의 원리를 ‘동시성(同時性)의 원리 principle of synchronicity’라고 부른다.


 

 그와 동시에 인간의 심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단연 유전적 소인이다.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의 기초는 바로 유전에 의한 것이다. 융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뿐만 아니라 선조의 경험까지도 유전으로 물려받았다고 주장한다.



3. 미술치료에서의 융 학파의 상징


 

 상징의 의미와 용도에 대한 현대적 이론들은 융의 선구적 작업에서 비롯되었다. 융은 '보편적 상징 - 만다라' 같은 깊은 상징을 가진 어떤 이미지들이 되풀이해서 나타나는 것에 주목했다.


 

융은 또한 그 이미지들과 동서양의 종교, 신화, 전설, 제의에 나타나는 상징들, 특히 연금술 같은 비교적 경향에 나타나는 상징들 사이의 유사성에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다. 융은 어떤 상징은 우주적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상징적 표현은 인간의 사고와 노력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심령적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의식은 의지의 통제를 받는 사고와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은 금방 의식 속으로 불러올 수 있는 마음의 능력과 기억인 전의식(前意識), 그리고 개인무의식인데 이 개인무의식은 개인적인 기억들(지각한 것, 체험한 것, 억눌린 욕망)로 이루어진 거대한 저수지로서 그 기억들이 꿈이나 갑작스런 순간적 회상을 통해 의식 속으로 떠오를 적에 우리는 이따금씩 그 저수지로 접근할 수 있다. 인간 사이키의 한층 더 깊은 곳에 묻혀 있는 사고와 태도의 본능적 패턴들(수 천년간의 인간 체험에 의해 형성되어온 그 패턴들을 지금 우리는 정서, 가치관 등으로 인식한다)은 집단무의식이라 한다.


 

 그 원초적 이미지들은 의식 속으로 불러 올릴 수 없다. 그것들은 남자 혹은 여자로 의인화되는 상징적 형태를 통해서 혹은 우리의 마음에 의해 외부세계에 투사되는 이미 지로서만 캐볼 수가 있다. 융은 그러한 원초적 상징들을 원형(archetypes)이라고 불렀고 그것은 모든 남녀가 공통으로 물려받는 것이라고 믿었다.


 

 융은 한 개인이 심리학적으로ꡐ건강한' 것은 의식적 마음과 무의식적 마음이 역동적 균형 을 이루고 있을 때이며 그는 자신의 환자들의 꿈을 분석하면서 그 꿈들을 그들의 심리적 문제에 대한 긴요한 단서로 그리고 회복되어 가는 경과를 보여주는 표시로 보았다.


 

 융의 기법들은 오늘날 심리치료와 미술치료에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스스로 만다라와 목각인형의 경험으로 인한 임상효과를 본 심리학자이며 미술치료학자이다


 

 융이 그의 스승인 프로이트와 결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대체로 상징적 표현에 대한 자 신의 개념들 때문이었다. 프로이트는 인간 마음을 이해함에 있어서의 상징의 용도에 큰 중 요성을 부여하긴 했지만 그 상징을 억눌린 성욕, 혹은 다른 한정적인 마음의 내용물로 보았 다. 예를 들어 곧게 서 있는 것, 곧게 세울 수 있는 것, 또는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뭐 든 남근의 상징으로 간주되었고 뚫고 들어가는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여성 성기의 상징으 로 보았다.


 

 남성의 경우에는 교회 첨탑에서부터 당구채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경우에는 동굴에서부터 핸드백에 이르기까지 프로이트는 남성과 여성 생식기 양자를 위한 수많은 상징을 식별해 냈다. 융은 프로이트를 가리켜 ‘프로이트는 상징을 단지 기호(알고 있는 한 실체에 대한 구체 적 표현)' 로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융에게는 남성과 여성의 성적 욕망은 그 자체가 단지 보다 깊은 창조적 힘의 표현일 뿐이고 어떤 상징이 분명히 성적인 것이라고 지성(知性)이 우리에게 말한다 할지라도 그 해석을 넘어서서 그 상징 안에서 더 넓은 다양성과 함축, 그 리고 사이키가 가진 힘에 대한 비유적이고 불가해한 묘사를 발견하는 게 가능하였다.



① 개인 무의식(Personal Unconscious)


 

 한 때 의식하고 있었으나 그 후 억압해버렸거나 잊어버린 경험들로 구성되며 고통스런 느낌이나 생각들은 아직 의식 속에 떠오르지 않지만 억압되고 무시당한 채로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


 

② 집단 무의식(The Collective Unconscious)


 

 과거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무의 식 속에 묻혀 있는 보고이다. 이것은 한 세대에서 다름 세대로 전달되어온 중대한 기억들 (원형)의 근본적인 유산이다. 원형들은 꿈들의 상징적 해석을 통하여 발견되고 집단무의식은 오랜 동안의 지혜를 포함하고 있으며 인간성장의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③ 페르소나(Persona-가면)


 

 사람의 페르소나는 사회상황과 사회관습의 요구에 응답하는 쓰는 가면이다. 이것은 사회가 부과하는 역할이며 사회가 연출하도록 사람에게 기대하는 부 분이다. 페르소나는 공적 자아요, 사람이 세상에 노출시키는 자신의 일면이며 사회적 자아이 다. 원시사회에서 가면을 쓰는 것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불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④ 아니마와 아니무스(Anima & Animus)


 

 인간은 동시에 여성과 남성의 성격들을 갖고 있다 남자의 여성면을 아니마(Anima)라 하며 아니마에 의하여 남자들은 여성을 이해할 수 있다. 여자의 남성면을 아니무스(Animus)라 하는데 이것에 의해 여성은 남성을 이해한다. 아니무스와 아니마가 사이키의 보편적 패턴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은 개인적 체험에 의해 형성되며 또한 스스로 개인적 체험을 형성한다.


 

⑤ 트릭스터(trickster-사기꾼, 협잡꾼, 마술사)


 

 트릭스터는 심리학적 삶에 있는 반항적 에너지로서 기존 상태를 부인하거나 의문시하고 아주 잘 돌아가는 체제에 제동을 걸고 심지어는 한창 승리감에 차 있을 때조차도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것들을 비웃고 미래의 재난을 예언하길 즐긴다. 트릭스터는 아무런 분명한 도덕률도 갖고 있지 않고 무너뜨리고 조롱하고자 하는 충동 외에는 어떠한 일관된 규약에도 매여 있지 않다.


 

⑥ 그림자(shadow)


 

 그림자도 역시 붕괴시키는 에너지이지만 트릭스터와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이다. 그림자는 우리가 수치스러워 무의식 속에 파묻어 버리고자 하는 비천하고 반사회적인 욕망을 나타낸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한 단단한 통제력을 잃기라도 하면 우리를 어두운 행동으로 몰아갈지도 모른다고 느껴지는 내적 공포이다. 이것이 외부로 투사되면 그림자는 희생양을 찾아내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가장 방어력이 없는 사람을 희생자로 만들고자 하는 충동이 된다. 그러나 그것을 또한 긍정적인 역할도 갖고 있어 우리 내부의 긍정적이며 창조적인 긴장을 형성하고 우리에게 삶 속에서 '밀어 붙여야' 할 어떤 것, 극복해야 할 내적 장애물을 만들어 준다.


 


 


Ⅲ. 구스타프 클림트의 경우


 


1. 클림트의 생애 - 생명의 활력과 죽음의 그림자 사이에서


 

 1862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 근교였던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난 구스타프 클림트. 그의 아버지 아버지 에른스트는 보헤미아 출신의 동판조각사이자 금세공사였고, 모친인 안나는 오페라 가수가 꿈이었다고 한다. 구스타프는 아들 셋, 딸 넷 중 장남이었는데, 그의 바로 아랫 동생인 에른스트는 28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형을 도와 미술계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구스타프의 아버지 에른스트는 8세 때 양친을 따라 빈으로 이주하여 동판 조각사가 되었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은 탓인지 워낙 다혈질이었던 탓이었는지 평소에는 친절하고 다정했으나 종종 격노하여 폭력을 휘두르곤 했다. 클림트는 "어느 해인가는 크리스마스 때인데도 집에 빵 한 조각 없었다."는 여동생의 회고처럼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장녀와 막내딸을 잃은 양친은 남은 다섯 아이를 어떻게 해서든 잘 길러보려 했지만 장남인 구스타프를 김나지움(독일계 학제에서 김나지움은 우리 식으로 하자면 대학진학을 목적으로 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시키지 못하고 공장 노동자나 장인의 삶이 예정된 고등공민학교인 '뷔르거'슐레(슐레는 실업계 직업교육학교)에 입학시킨다.


 

 이토록 극심한 빈곤에 허덕이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의 데생 솜씨를 눈여겨보았던 친척의 도움으로 1876년 '빈 장식미술학교'전문적인 미술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페르디난트 라우프베르거, 한스 마카르트와 같이 당대의 저명한 화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화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뒤를 이어 진학한 동생 에른스트,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주목을 받던 프란츠 마츠와 함께 동인을 결성하여 예술적 이상을 교류하며 링 거리의 교회 창문 디자인, 체코슬로바키아의 칼스바트 온천장의 천장화, 라이헨헤브크 국립극장의 천장화 제작 같은 일들을 주문받아 학비를 조달하기도 했다. 그가 빈 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이미 화가로서 나름의 명성을 얻고 있었다. 이 무렵의 그는 관습적인 주제를 아카데믹한 양식으로 그리는 벽화가였다.


 

 그는 동생 에른스트, 마츠와 함께 '쿤스틀러 콩파니'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이때 구스타프 클림트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국립극장 장식, 피우메의 리예카 국립극장 장식, 빈 미술사 박물관의 대계단 장식 등을 함께 해나갔다. 1890년에는 빈 구(舊) 국립극장의 실내 장식 작업으로 그해 처음 제정된 "황제 대상'의 수상자가 되는 등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1892년 그에게 있어 둘도 없는 예술적 동반자이자 동지였던 동생 에른스크가 젊은 나이에 뇌일혈로 사망하고, 그 얼마 뒤 애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에른스트 마저 뇌일혈로 사망하고 만다. 아직 한창 젊음을 구가해야 할 동생과 아버지의 죽음은 그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고, 남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만든다. 그의 작품 속에서 삶과 죽음의 이미지가 늘 공존하는 까닭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자료출처 http://m.cafe.daum.net/bulkot/IP2l/26?listURI=%2Fbulkot%2FIP2l%3Fprev_page%3D2%26amp%3Bamp%3Bamp%3Bamp%3BnoticeYn%3D%26amp%3Bamp%3Bamp%3Bamp%3Bfirstbbsdepth%3D0001ozzzzzzzzzzzzzzzzzzzzzzzzz%26amp%3Bamp%3Bamp%3Bamp%3Blastbbsdepth%3D0000gzzzzzzzzzzzzzzzzzzzzzzzzz%26amp%3Bamp%3Bamp%3Bamp%3Bpage%3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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