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_수치심의 심리 역동
프로이트_수치심의 심리 역동
자료출처 http://www.psychoanalysis.co.kr/materials/view.php?board_idx=2072&page=1&article_num=11
저자 : 남기숙
제목 : 수치심의 심리역동
출처 : 숙명여자대학교 창학 100주년 기념 학생생활상담소 학술발표회
인간의 불안과 자기조절 문제 - 정신분석적 이해 -
우리말로 수치(羞恥)라는 말은 국어대사전(1994)에서 ‘부끄럽다’로 표현되고 있는데 1) 자기의 잘못이나 결점 따위를 강하게 의식하여 남을 대하기가 떳떳하지 못하다 2)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서 남을 대할 면목이 없다 3) 스스러움을 느껴서 수줍다 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특징은 크게 ‘잘못이나 결점을 의식함’ ‘남을 대하는 것’ ‘양심’ ‘수줍음’의 네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 것 같다. ‘수치심’은 부끄러움에 해당되는 한자어로, 羞恥心이나 부끄러움 모두 얼굴이나 귀가 붉어지는데서 유래한 문자라고 한다(이호영, 2002). 영어의 shame은 "덮개를 덮다, 숨기다, 가려두다‘라는 독일어계의 “skem/skam"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Jacoby, 1994). 외국 연구에서 ‘shame’은 보통 하나의 정서라기보다 일련의 수치심 정서군(shame family of emotion)을 대표하는 용어로 간주된다(Lewis, 1971, 1987a; Nathanson, 1987). 수치심 정서군에 무엇이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마다 조금씩 다르고 그 안에 포함된 감정과 수치심을 보다 엄격히 구분하는 연구자도 있지만(예, 수치심과 당황; 수치심과 수줍음 등) 대체로 수줍음(shyness), 당황(embarrassment), 창피함(humiliation), 모욕감(mortification), 초라함(indignity) 등이 자주 포함된다. 본 논문에서는 부끄럽다, 창피하다, 무안하다, 겸연쩍다, 낯뜨겁다, 염치없다, 면목없다 등 부끄러움과 관련된 다양한 표현을 대표하는 용어로 수치심을 사용하고자 한다.
Wurmser(1987)는 수치심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첫째는 수치심을 느낄까봐 불안한 마음으로서 이를 수치심 불안(shame anxiety)이라고 한다. 수치심 불안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둘째는 바로 그러한 수치심 상태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반응(shame affect as a complex reaction pattern)으로, 자기에게 향해진 경멸의 정동(affect of contempt)이다. 이 때 개인은 자신이 노출되었다고 느끼며 스스로에게 “한심한 놈!” “꺼져버려!”와 같은 비난을 퍼붓는다. 세 번째는 앞서의 것과 정반대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부끄럽지도 않은가?”라고 할 때의 부끄러움(shame as preventive attitude)이다. 이러한 종류의 부끄러움은 인간이라면 꼭 지녀야할 품위와 격조를 유지시켜주는 것으로서 이것이 없는 것이 오히려 병적이다.
Lindsay-Hartz(1984), Lindsay-Hartz, De Rivera와 Mascolo(1995)는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수치심 경험을 적어내게 한 다음 이를 분석하였다. Lindsay-Hartz 등에 따르면 수치심은 다음의 특성을 갖는다. 첫째, 수치심을 일으키는 상황(situation)으로, 이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상황인데(viewing ourselves through the eyes of another) 이 때 우리는 우리가 원치 않는 사람, 우리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다. 둘째, 수치심이 가져오는 변화(transformation)이다.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이 이전의 이미지에 비해서 쪼그라들고, 타인의 시선 앞에 노출되었다고 느낀다. 단 하나의 특징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것 같고, 가치없는 인간이 된 것 같다. 세계에 대한 시각도 하나의 작은 사소한 부분으로 쪼그라든다. 셋째는 수치심의 기능(function)으로, 수치심은 우리가 되고 싶은 이상(ideal)을 지지한다. 마지막으로, 수치심이 어떤 행동을 지시하는가(instruction) 의 문제에서 수치심은 숨는(to hide) 행동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대인관계 영역으로부터 도망쳐서 다른 사람 앞에 고통스럽게 드러나는 것(exposure)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H. B. Lewis(1987b)는 수치심의 현상학에서 좀 더 심리내적인 변인인 자기(self)의 측면을 중시하였다. 그녀에 의하면 수치심은 자기(self)에 대한 경험인데, 그 초점은 자기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것도 구체적인 실망과 구체적인 평가가 아니라 전체 자기(entire self)에 대한 실망이고 자기가 광범위하게 평가절하되는 것이다.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자기가 광범위하게 평가절하된 결과 자신을 ‘한심하고’ ‘어리석고’ ‘유치하고’ ‘초라하게’ 느낀다. 그리고 자기가 비난하는 자기와 비난당하는 자기로 분할(split)되므로, 자기 전체의 통합력과 응집성이 파괴된다. H. B. Lewis(1987b)는 “어떻게 내가 그럴 수 있지? How could I have done that?”라는 표현으로 수치심의 성격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수치심의 성격은 죄책감과의 비교를 통해 보다 분명해지는데, 수치심이 “어떻게 내가 그럴 수 있지?” 라면 죄책감은 “어떻게 내가 그럴 수 있지? How could I have done that?”이다. Lewis는 죄책감이 행위에 초점이 있는 반면 수치심은 자기에 초점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죄책감의 전형적인 반응은 행동이 야기시킨 결과, 즉 대상의 상태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만회 혹은 복구하려는 노력을 후속적으로 일으킨다. 간단히 말하면 수치심이 보다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 반면 죄책감은 보다 대상에 관심이 있다. 또한 죄책감에서는 구체적인 잘못에 초점을 두고 자기가 좀 더 거리를 두고 평가되므로 자기의 통합성과 온전함이 유지된다.
Nathanson(1987)도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를 Lewis(1987b)와 비슷하게 보았다. 그는 수치심이 자기의 특별히 예민하고 사적이며(intimate) 취약한 면이 노출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점에서 수치심이 자기의 질(quality of self)을 문제시하는 경험이라고 하였다. 반면 죄책감은 자신이 한 행동(또는 생각)을 문제시하는 경험이다. 그는 인간이 죄책감을 느낄 수 있으려면 다른 사람 또한 자아(self)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자신처럼 이 사람도 불편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또한 실제로 그 사람이 불편을 느끼고 있는 내적인 상태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임상적으로 우울이 죄책감을 주로 하는 우울과 수치심을 주로 하는 우울로 나뉘어진다고 하였고, 이 두가지 종류의 우울증에 대하여 각기 다른 치료제를 추천하였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자주 서로 비교되는데, 그 논의의 초점은 수치심에 있는 것 같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역사적으로 초기에는 공적 경험-사적 경험이라는 기준으로 구분되었고(Ausubel, 1955; Benedict, 1946), 자아와 자아-이상간의 갈등, 자아와 초자아간의 갈등으로 구분되기도 하였다(Piers & Singer, 1953/1971). 여기에 H. B. Lewis(1971)는 자기 대 행위의 초점으로 크게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를 구분하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수치심이 전반적(global)한 성격을 띠고 죄책감이 구체적(specific)인 성격을 띤다고 한 것은 수치심의 매우 중요한 점을 지적한 것이며 표현은 다르지만 다른 많은 학자들도 이와 비슷하게 보는 것 같다.
Wilson(1987)은 수치심이 전반적이고(global), 원초적이며(primary), 절대적(absolute)이라고 하였다. 그는 수치심이 이렇게 비타협적이고 잔인한 성격을 띠는 이유는 수치심이 전성기기적 발달 단계와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Piers와 Singer(1953/1971)도 수치심이 죄책감보다 더 이른 발달 단계와 관련된다고 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수치심은 자아 이상으로부터, 죄책감은 초자아로부터 유래한다. 수치심은 자신이 자아 이상의 기대에 부응하는데 실패했을 때 발생하는 감정으로, 규범을 위반하여 일어나는 감정이라기보다는 부족함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경험이다. 이에 비해 죄책감은 자아가 초자아가 규정한 규범을 위반했을 때 발생하는 감정으로, 지켜야할 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경험이다. 그래서 수치심이 보다 발달 초기와 관련된다면 죄책감은 외디푸스 단계의 산물로 보다 성숙한 초자아의 출현 및 내재화 과정과 관련된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수치심과 죄책감을 다 느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수치심을 잘 느끼는 경향성이 높은 사람들은 죄책감 경향성이 높은 사람들에 비해 좀 더 원초적인 병리를 가질 수 있다고까지 가정하였다.
Wurmser(1987)는 수치심에서 자아-이상의 중요성을 좀더 명세화한 것 같다. 그는 수치심이 기대(expectancy)와 현실(realization) 간의 차이(discrepancy)에 의해 발생하는 정동(affect)이라고 하였고, 이 정동은 의식적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일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는 내가 보여지고 싶은 것(how I want to be seen)과 실제로 내가 그러한 것(how I am)간의 긴장인데, 자기에 대한 기대가 높을수록, 완벽에 대한 요구가 클수록, 이 차이는 크기 쉽고 자기 비난에 대한 요구는 더 거세진다. 자기에 대한 기대(“이상적 자기ideal self”)와 자기-지각(“실제 자기real self”)간의 이러한 나르시스적 갈등이 수치심으로 느껴진다. 자아 이상의 야망이 보다 웅대하고 절대적일수록 이에 실패한데 대한 상처의 고통이 크고, 자기애적 불안이 보다 광범위하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은 수치심을 잘 느끼기 쉽다(shame-prone). 동시에 그러한 수치심에 대처하는데 있어 시기(envy)나 심술(spite), 노여움(rage)과 같은 나르시스적 정동이 우세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기애적 요구가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자기에게 부가하는 요구가 얼마나 크고 그래서 그로부터 일어나는 내적인 자기-비난이 얼마나 큰지이다.
Wurmser(1987)는 수치심이 전반적(global)인 성격을 띠는 이유는 기대의 성격 때문이라고 하였다. 수치심에서는 이상적인 이미지에 자기를 비교한다. 수치심과 달리 죄책감은 잣대가 이상적 이미지(ideal image)가 아니라 이상적인 행동(ideal action)인데 이는 한계가 있고, 부가적(additive)이지 전반적(global)이지는 않다. 수치심은 일종의 실패로서, 자기의 약점 혹은 결점과 관련된다. 이에 비해 죄책감은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것,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것과 관련된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한계를 설정하는데, 수치심은 사람들이 침범하지 말아야 할 경계(boundary)를 설정하고, 죄책감은 사람들이 위반하지 말아야할 한계(limit)를 설정한다. 사람들은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개인적인 것(privacy)과 친밀감(intimacy)의 경계를 수호하고, 자기의 통합성을 보호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치심이 일차 과정 사고(primary process thought)라고 한다면 죄책감은 이차 과정 사고(secondary process thought)이다.
죄책감이 초자아와 보다 연결된다면 수치심은 자아 이상과 더 자주 연결된다. 자기와 이상의 측면에서 수치심을 논한 사람은 Piers와 Singer(1953/1971)가 최초인데 그들은 자아 이상이 나르시스적 전지전능성에 원천을 두고 있으면서, 부모상에 대한 긍정적 동일시의 총합이기도 하고, 보다 표층에는 사회적 상황에서 개인이 부여한 사회적 역할 및 자기의 가능성과 목표에 대한 자각의 총합이라고 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자아 이상의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을 때, 즉 실패했을 때 수치심이 발생하는데, 수치심은 본질적으로 사랑을 주는 부모상 혹은 그것이 투사된 힘이나 삶을 지속시켜주는 원천이 완전함에 못미친 이 약한 사람을 버리겠다고 하는 위협이라고 하였다. 비유컨대 수치심은 모든 것을 보고 있고 알고 있는 눈, 인간의 모든 부족함을 알고 있는 신의 눈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하였다.
Jacoby(1994)는 자기가치감(self-esteem), 혹은 열등감(inferiority feeling)과 수치심을 관련시키는데 여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자아 이상의 완벽에 대한 요구이다. 그는 수치심은 자신의 전 존재(entire being or self)가 가치평가되는, 더 정확히 말하면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상황에서 일어난다고 하였다. 이 때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타인이기도 하면서 자기 자신이라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내부에서건, 외부에서건 자기 자신을 존경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데,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자신이 어떻게 보여졌으면 하는 것에 대한 부분적으로 의식적인 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자아 이상의 완벽에 대한 요구가 클수록 반대로 열등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논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치심은 아주 자주 나르시즘과 연결된다. Morrison(1987)은 근본적으로 나르시스적 문제를 가진 내담자는 자기 그리고 자기의 결함에 대하여 수치심을 핵심 감정(core feeling)으로 가진다고 하였다. 그는 Kohut을 인용하면서 유아가 응집력있는(cohesive) 자기를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사랑받고 싶고 감탄받고 싶은 요구와 부모를 이상화하고자 하는 두 가지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부모가 제공하는 시기적절한 거울 반영은 이러한 두 가지 요구를 지나치게 좌절시키지 않고 아이의 발달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기적절한 자기대상 기능이 유아에게 제공되지 않을 때 유아는 거대성(grandiosity)에 압도되고 이상적 자기와 관련하여 실패한 느낌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유아는 수치심에 취약하게 된다고 한다. 그는 Kohut을 인용하면서 수치심은 자기가 유아적이고(infantile) 분리된 거대성(split-off grandiosity)에 압도되어 있음을 반영한다고 하였다.
Wilson(1987)도 Kohut의 용어로 설명하는데, 그는 수치심이 자기애적으로 불만스러운 상황에서 상대방(counterpart)에게 보여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그 때 상대방은 우리의 자아를, 결점과 함께, 반영해주는 거울 역할을 해준다. 그리고 그 상대방이 우리에게 보내는 이미지에 따라 자신이 가치에 대한 느낌, 자기존중감, 자아와 자아-이상간의 조화가 결정된다. 자신이 가치가 있다는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증거가 이를 통해 얻어진다고 하였고, 이 거울이 아니고는 우리의 내적, 외적 지각이 현실이라는 증거를 어디에서도 얻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표현은 좀 다르지만, Lewis(1987b)도 수치심을 느끼려면 자기와 다른 사람 간에 관계가 있어야 되고 그 관계는 자기가 다른 사람의 평가를 존중하는 관계라고 하였다.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이 중요한 인물일수록,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매료되었을수록,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민감할수록 그 사람은 수치심에 약하다(vulnerable). Lewis는 이것이 사랑에 빠지기 쉬운 것과 마찬가지의 감정 상태라고 하였다. Jacoby(1994)도 수치심이 자신이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볼 때 어떠한지 때문에 야기되는 감정이기 때문에 개별화(individuation)가 많이 되었을수록 수치심이 적다고 하였다. 결국 대상에게 더 많이 지배될수록 수치심에 취약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제까지 자기(self)와 자아 이상, 완벽에 대한 요구와 관련하여 수치심의 심리 역동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수치심의 자각과 경험, 방어와 관련하여 좀 더 살펴보고 논의를 마치고자 한다.
수치심은 자각되어 경험되기도 하지만 자각되지 않을 때도 많다(Lewis, 1987a). Lewis는 많은 내담자들이 자신이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그는 ‘인식되지 않은 부끄러움unacknowledged shame’이라고 하였다. 내담자는 어떤 정서적 괴로움을 의식적으로 자각하고 있고, 원하지 않지만 신체적으로도 얼굴이 달아오르거나 심장이 빨리 뛰거나 땀이 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overt, undifferentiated shame). 그러나 다른 정서로 명명(naming)되면서 부끄러움은 부인된다(denied). 예를 들어 “불안해” “불편해” “상처받았어”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만들어버리거나 “상황이 바보같았어”라는 식으로 내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상황이 바보같았다고 하면서 원인의 소재를 밖으로 투사해버린다(project). 이 경우는 부끄러움은 아니지만 어떠한 정서를 느낀다. 그러나 또 달리는 부끄러움에 상응하는 인지적 내용은 경험하지만 정서로는 아무 것도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부끄러움을 Lewis는 ‘차단된 부끄러움bypassed shame’ '인식되지 않은 부끄러움unacknowledged shame’이라고 하였다. 이 때 내담자는 전혀 정서적인 괴로움을 자각하지 못한다. 아주 잠깐 어떠한 감정을 느끼더라도 곧 이는 차단된다. 이런 상태에서 흔히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안느낀다absence of feeling, feeling neutral, blank, hollow, numb, spaced out”고 느낀다. 그리고 부끄러움 대신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볼까와 같은 강박적인 인지적 활동을 되풀이한다. 첫 번째는 이름을 잘못 붙임으로써(misnaming), 두 번째는 사고의 과잉활동(hyperactive in thought)으로 수치심을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M. Lewis(1992)도 수치심이 인식되지 않을 수 있다는데 동의하면서, 주의 초점의 전환이나 정서 대치, 기억과 같은 인지적 기제로 이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수치심이 발생할 때 수치심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부수적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 때 주의의 초점이 다른 곳으로 돌려지면, 예를 들어 신체 감각이라든지, 결과적으로 수치심이 차단된다. 또는 주의의 초점이 수치심이 아니라 다른 정서에 돌려지거나 (emotional substitution), 혹은 기억 손실(memory loss)이나 망각(forgetting) 등으로도 수치심이 차단된다고 하였다.
수치심은 종종 다른 감정으로 대치된다. Lewis(1987a)는 수치심 대신 가장 많이 느껴지는 것이 우울과 분노라고 하였다. 우울은 자기를 전체적으로 비난한다는 점에서 수치심과 귀인 과정이 같기 때문에도 자주 수치심을 대신한다고 한다. 분노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일어난다. “이렇게 바보같고 한심한” 자신에게 향해지거나, “나를 이렇게 부끄럽게 만든” 다른 사람에게 향해지는 것이다. 분노가 밖으로 향해지면 자신은 비난받지 않아도 되지만 잘못된 것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진다.
Jacoby(1994)는 Erikson이 아동기와 사회[Childhood and Society]에서 이미 수치심이 노여움(rage)을 일으킨다는 통찰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에 의하면 부끄러운 사람은 자신의 부끄러운 상황을 감추기 위해서 세상의 시선을 돌리게 하고 싶어 하는데, 이는 할 수만 있다면 나를 비난하는 세상의 눈을 뽑아버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였다.
Wurmser(1987)도 수치심을 방어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기제 중에서 분노(anger)와 노여움(rage)이 가장 자주 사용된다고 하였다. 그러면 자신이 경멸스럽고 비웃을만한 대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렇다고 느끼게 된다. 수치심에서 중요한 것은 노출을 통해 드러나는 모습(appearance)이기 때문에 수치심의 논리적 귀결은 사라짐(disappearance)이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바로 경멸(contempt)로서 경멸이라는 형식으로 공격성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외에도 Wurmser는 수치심의 방어를 상당히 폭넓게 보는데, 시기심 밑에도 수치심이 있다고 하였으며, 멍한 것(numbness), 돌같이 딱딱한 감정부전증(alexithymia)도 모든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을 통해 깊은 수치심을 방어한다고 하였다. 또한 이렇게 감정을 걸러내는(screening) 방법이 아니라 외재화(externalizing)를 통해 자신이 수치심을 느낄만한 것이 밖에서 오도록 유도한다고 하였다. 그러면 안에서부터 느끼는 수치심은 피할 수 있게 된다. 수치심이 밖으로 투사되어 관계 사고(idea of reference)나 자신이 관찰을 당한다거나 미행당한다, 통제당한다는 각종 망상,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경멸하고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가진다고 하였다. Wurmser(1987)는 정신병 사례를 수치심의 심리 역동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을 보면 그는 수치심을 상당히 폭넓고 수면 깊이에서 작용하는 심리적 기제로 보는 것 같다.
H. B. Lewis(1987a)는 우울이든, 분노든 수치심을 대신할 때는 여하튼 수치심의 고통보다는 이들 감정이 보다 견딜만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수치심이 잠시 다른 감정으로 대치되는 것이 단기적인 시각에서 보면 좋을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좋지 못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비록 우리가 그것을 주목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그 감정은 존재하면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정서를 대치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 기만인데 고통과 불편을 잠시 감소시킬 수는 있지만 상태 자체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Kinston(1987)도 건강한 자존감(self-esteem)은 항상 자신을 좋고 가치있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부적절감, 약한 느낌, 무능력감, 죄책감 등의 감정들을 다루는 능력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에 기초한 경험을 지우려고 하면 자각(awareness)을 전반적으로(globally) 지워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 다른 사람의 감정에 접촉하려하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견디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인데, 이러한 심리 상태는 취약성(vulnerability), 개방성(openness), 민감성(sensitivity), 기꺼이 마음의 고통을 경험하려는 의지(willingness)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 결과 얻어지는 것은 살아있다는 깊은 느낌, 개인이 연속되고 통합되어 있다는 느낌, 감정과 사고와 행동에 있어서 강한 일관성 등이다.
Jacoby(1994)는 머리 색깔이 붉은 것, 키가 작은 것, 뚱뚱한 것, 어느 지방 출신이라는 것, 부모가 어떻다는 것 등등 전혀 자신의 책임이 아니고 운명적인 것에도 사람들은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에 수치심이 매우 대처하기 어려운 감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수치심이 인간이 서로 같지 않음에서 유래하는 감정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서로 같지 않기 때문에 남에게 비밀로 해야 하는 것이 있다. 따라서 수치심은 개인의 정체감과 관련되며 경계(boundary)를 강화하고 이러한 점에서 개별화를 촉진시킨다. 그러나 그는 또한 우리는 부끄럽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 적응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수치심이 한편으로는 개별화를 다른 한편으로는 순응을 촉진시키므로 대단히 복합적인 감정이라고 하였다.
수치심을 느끼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M. Lewis(1992)는 수치심에 대한 대처로 세 가지 기제를 들었다. 첫 번째 기제는 잊는 것(forgetting)이다. 두 번째는 웃는 것(laughter)이다. 예를 들어 자기 스카프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은 여성이 있다고 하자. 사람들이 그녀를 보며 웃어댔을 때 같이 웃는 것은 부끄러움을 당하는 입장에서 부끄러움을 주는 입장으로 변환이 일어난다고 한다. 더구나 웃음은 생리적으로 부끄러움과 길항적(antagonistic)이기 때문에 수치심의 스트레스와 반대된다고 한다. 세 번째는 고백(confession)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가지 기제 이전에 가장 쉬운 방법은 수치심은 느끼며(own it) 시간이 흘러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대단한 것이라도 결국에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담 및 심리 치료와 관련하여 수치심의 문제를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Lewis(1987a)는 수백 시간의 상담회기 동안 어떤 정서가 나타나는지를 기록하였는데, 이 중에 단연 가장 많이 나타난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불안, 자랑스러움, 사랑, 화, 슬픔, 두려움이었는데 부끄러움은 이것들보다도 훨씬 많았다. 그녀에 의하면 부끄러움의 문제는 일상생활에 늘 존재하지만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여기에 새로운 부끄러움을 하나 더 추가한다. 그것은 자신의 부끄러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여야 되기 때문이다. 치료자가 이러한 문제에 매우 예민하지 않으면 내담자는 치료를 통해 부끄러움을 덜기 보다는 부끄러움이 더해질 것이고 이는 결국 관계의 유대를 망가뜨려 치료가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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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http://www.psychoanalysis.co.kr/materials/view.php?board_idx=2072&page=1&article_num=11
저자 : 남기숙
제목 : 수치심의 심리역동
출처 : 숙명여자대학교 창학 100주년 기념 학생생활상담소 학술발표회
인간의 불안과 자기조절 문제 - 정신분석적 이해 -
우리말로 수치(羞恥)라는 말은 국어대사전(1994)에서 ‘부끄럽다’로 표현되고 있는데 1) 자기의 잘못이나 결점 따위를 강하게 의식하여 남을 대하기가 떳떳하지 못하다 2)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서 남을 대할 면목이 없다 3) 스스러움을 느껴서 수줍다 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특징은 크게 ‘잘못이나 결점을 의식함’ ‘남을 대하는 것’ ‘양심’ ‘수줍음’의 네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 것 같다. ‘수치심’은 부끄러움에 해당되는 한자어로, 羞恥心이나 부끄러움 모두 얼굴이나 귀가 붉어지는데서 유래한 문자라고 한다(이호영, 2002). 영어의 shame은 "덮개를 덮다, 숨기다, 가려두다‘라는 독일어계의 “skem/skam"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Jacoby, 1994). 외국 연구에서 ‘shame’은 보통 하나의 정서라기보다 일련의 수치심 정서군(shame family of emotion)을 대표하는 용어로 간주된다(Lewis, 1971, 1987a; Nathanson, 1987). 수치심 정서군에 무엇이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마다 조금씩 다르고 그 안에 포함된 감정과 수치심을 보다 엄격히 구분하는 연구자도 있지만(예, 수치심과 당황; 수치심과 수줍음 등) 대체로 수줍음(shyness), 당황(embarrassment), 창피함(humiliation), 모욕감(mortification), 초라함(indignity) 등이 자주 포함된다. 본 논문에서는 부끄럽다, 창피하다, 무안하다, 겸연쩍다, 낯뜨겁다, 염치없다, 면목없다 등 부끄러움과 관련된 다양한 표현을 대표하는 용어로 수치심을 사용하고자 한다.
Wurmser(1987)는 수치심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첫째는 수치심을 느낄까봐 불안한 마음으로서 이를 수치심 불안(shame anxiety)이라고 한다. 수치심 불안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둘째는 바로 그러한 수치심 상태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반응(shame affect as a complex reaction pattern)으로, 자기에게 향해진 경멸의 정동(affect of contempt)이다. 이 때 개인은 자신이 노출되었다고 느끼며 스스로에게 “한심한 놈!” “꺼져버려!”와 같은 비난을 퍼붓는다. 세 번째는 앞서의 것과 정반대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부끄럽지도 않은가?”라고 할 때의 부끄러움(shame as preventive attitude)이다. 이러한 종류의 부끄러움은 인간이라면 꼭 지녀야할 품위와 격조를 유지시켜주는 것으로서 이것이 없는 것이 오히려 병적이다.
Lindsay-Hartz(1984), Lindsay-Hartz, De Rivera와 Mascolo(1995)는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수치심 경험을 적어내게 한 다음 이를 분석하였다. Lindsay-Hartz 등에 따르면 수치심은 다음의 특성을 갖는다. 첫째, 수치심을 일으키는 상황(situation)으로, 이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상황인데(viewing ourselves through the eyes of another) 이 때 우리는 우리가 원치 않는 사람, 우리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다. 둘째, 수치심이 가져오는 변화(transformation)이다.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이 이전의 이미지에 비해서 쪼그라들고, 타인의 시선 앞에 노출되었다고 느낀다. 단 하나의 특징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것 같고, 가치없는 인간이 된 것 같다. 세계에 대한 시각도 하나의 작은 사소한 부분으로 쪼그라든다. 셋째는 수치심의 기능(function)으로, 수치심은 우리가 되고 싶은 이상(ideal)을 지지한다. 마지막으로, 수치심이 어떤 행동을 지시하는가(instruction) 의 문제에서 수치심은 숨는(to hide) 행동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대인관계 영역으로부터 도망쳐서 다른 사람 앞에 고통스럽게 드러나는 것(exposure)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H. B. Lewis(1987b)는 수치심의 현상학에서 좀 더 심리내적인 변인인 자기(self)의 측면을 중시하였다. 그녀에 의하면 수치심은 자기(self)에 대한 경험인데, 그 초점은 자기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것도 구체적인 실망과 구체적인 평가가 아니라 전체 자기(entire self)에 대한 실망이고 자기가 광범위하게 평가절하되는 것이다.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자기가 광범위하게 평가절하된 결과 자신을 ‘한심하고’ ‘어리석고’ ‘유치하고’ ‘초라하게’ 느낀다. 그리고 자기가 비난하는 자기와 비난당하는 자기로 분할(split)되므로, 자기 전체의 통합력과 응집성이 파괴된다. H. B. Lewis(1987b)는 “어떻게 내가 그럴 수 있지? How could I have done that?”라는 표현으로 수치심의 성격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수치심의 성격은 죄책감과의 비교를 통해 보다 분명해지는데, 수치심이 “어떻게 내가 그럴 수 있지?” 라면 죄책감은 “어떻게 내가 그럴 수 있지? How could I have done that?”이다. Lewis는 죄책감이 행위에 초점이 있는 반면 수치심은 자기에 초점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죄책감의 전형적인 반응은 행동이 야기시킨 결과, 즉 대상의 상태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만회 혹은 복구하려는 노력을 후속적으로 일으킨다. 간단히 말하면 수치심이 보다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 반면 죄책감은 보다 대상에 관심이 있다. 또한 죄책감에서는 구체적인 잘못에 초점을 두고 자기가 좀 더 거리를 두고 평가되므로 자기의 통합성과 온전함이 유지된다.
Nathanson(1987)도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를 Lewis(1987b)와 비슷하게 보았다. 그는 수치심이 자기의 특별히 예민하고 사적이며(intimate) 취약한 면이 노출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점에서 수치심이 자기의 질(quality of self)을 문제시하는 경험이라고 하였다. 반면 죄책감은 자신이 한 행동(또는 생각)을 문제시하는 경험이다. 그는 인간이 죄책감을 느낄 수 있으려면 다른 사람 또한 자아(self)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자신처럼 이 사람도 불편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또한 실제로 그 사람이 불편을 느끼고 있는 내적인 상태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임상적으로 우울이 죄책감을 주로 하는 우울과 수치심을 주로 하는 우울로 나뉘어진다고 하였고, 이 두가지 종류의 우울증에 대하여 각기 다른 치료제를 추천하였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자주 서로 비교되는데, 그 논의의 초점은 수치심에 있는 것 같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역사적으로 초기에는 공적 경험-사적 경험이라는 기준으로 구분되었고(Ausubel, 1955; Benedict, 1946), 자아와 자아-이상간의 갈등, 자아와 초자아간의 갈등으로 구분되기도 하였다(Piers & Singer, 1953/1971). 여기에 H. B. Lewis(1971)는 자기 대 행위의 초점으로 크게 수치심과 죄책감의 차이를 구분하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수치심이 전반적(global)한 성격을 띠고 죄책감이 구체적(specific)인 성격을 띤다고 한 것은 수치심의 매우 중요한 점을 지적한 것이며 표현은 다르지만 다른 많은 학자들도 이와 비슷하게 보는 것 같다.
Wilson(1987)은 수치심이 전반적이고(global), 원초적이며(primary), 절대적(absolute)이라고 하였다. 그는 수치심이 이렇게 비타협적이고 잔인한 성격을 띠는 이유는 수치심이 전성기기적 발달 단계와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Piers와 Singer(1953/1971)도 수치심이 죄책감보다 더 이른 발달 단계와 관련된다고 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수치심은 자아 이상으로부터, 죄책감은 초자아로부터 유래한다. 수치심은 자신이 자아 이상의 기대에 부응하는데 실패했을 때 발생하는 감정으로, 규범을 위반하여 일어나는 감정이라기보다는 부족함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경험이다. 이에 비해 죄책감은 자아가 초자아가 규정한 규범을 위반했을 때 발생하는 감정으로, 지켜야할 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경험이다. 그래서 수치심이 보다 발달 초기와 관련된다면 죄책감은 외디푸스 단계의 산물로 보다 성숙한 초자아의 출현 및 내재화 과정과 관련된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수치심과 죄책감을 다 느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수치심을 잘 느끼는 경향성이 높은 사람들은 죄책감 경향성이 높은 사람들에 비해 좀 더 원초적인 병리를 가질 수 있다고까지 가정하였다.
Wurmser(1987)는 수치심에서 자아-이상의 중요성을 좀더 명세화한 것 같다. 그는 수치심이 기대(expectancy)와 현실(realization) 간의 차이(discrepancy)에 의해 발생하는 정동(affect)이라고 하였고, 이 정동은 의식적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일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는 내가 보여지고 싶은 것(how I want to be seen)과 실제로 내가 그러한 것(how I am)간의 긴장인데, 자기에 대한 기대가 높을수록, 완벽에 대한 요구가 클수록, 이 차이는 크기 쉽고 자기 비난에 대한 요구는 더 거세진다. 자기에 대한 기대(“이상적 자기ideal self”)와 자기-지각(“실제 자기real self”)간의 이러한 나르시스적 갈등이 수치심으로 느껴진다. 자아 이상의 야망이 보다 웅대하고 절대적일수록 이에 실패한데 대한 상처의 고통이 크고, 자기애적 불안이 보다 광범위하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은 수치심을 잘 느끼기 쉽다(shame-prone). 동시에 그러한 수치심에 대처하는데 있어 시기(envy)나 심술(spite), 노여움(rage)과 같은 나르시스적 정동이 우세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기애적 요구가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자기에게 부가하는 요구가 얼마나 크고 그래서 그로부터 일어나는 내적인 자기-비난이 얼마나 큰지이다.
Wurmser(1987)는 수치심이 전반적(global)인 성격을 띠는 이유는 기대의 성격 때문이라고 하였다. 수치심에서는 이상적인 이미지에 자기를 비교한다. 수치심과 달리 죄책감은 잣대가 이상적 이미지(ideal image)가 아니라 이상적인 행동(ideal action)인데 이는 한계가 있고, 부가적(additive)이지 전반적(global)이지는 않다. 수치심은 일종의 실패로서, 자기의 약점 혹은 결점과 관련된다. 이에 비해 죄책감은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것,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것과 관련된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한계를 설정하는데, 수치심은 사람들이 침범하지 말아야 할 경계(boundary)를 설정하고, 죄책감은 사람들이 위반하지 말아야할 한계(limit)를 설정한다. 사람들은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개인적인 것(privacy)과 친밀감(intimacy)의 경계를 수호하고, 자기의 통합성을 보호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치심이 일차 과정 사고(primary process thought)라고 한다면 죄책감은 이차 과정 사고(secondary process thought)이다.
죄책감이 초자아와 보다 연결된다면 수치심은 자아 이상과 더 자주 연결된다. 자기와 이상의 측면에서 수치심을 논한 사람은 Piers와 Singer(1953/1971)가 최초인데 그들은 자아 이상이 나르시스적 전지전능성에 원천을 두고 있으면서, 부모상에 대한 긍정적 동일시의 총합이기도 하고, 보다 표층에는 사회적 상황에서 개인이 부여한 사회적 역할 및 자기의 가능성과 목표에 대한 자각의 총합이라고 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자아 이상의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을 때, 즉 실패했을 때 수치심이 발생하는데, 수치심은 본질적으로 사랑을 주는 부모상 혹은 그것이 투사된 힘이나 삶을 지속시켜주는 원천이 완전함에 못미친 이 약한 사람을 버리겠다고 하는 위협이라고 하였다. 비유컨대 수치심은 모든 것을 보고 있고 알고 있는 눈, 인간의 모든 부족함을 알고 있는 신의 눈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하였다.
Jacoby(1994)는 자기가치감(self-esteem), 혹은 열등감(inferiority feeling)과 수치심을 관련시키는데 여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자아 이상의 완벽에 대한 요구이다. 그는 수치심은 자신의 전 존재(entire being or self)가 가치평가되는, 더 정확히 말하면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상황에서 일어난다고 하였다. 이 때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타인이기도 하면서 자기 자신이라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내부에서건, 외부에서건 자기 자신을 존경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데,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자신이 어떻게 보여졌으면 하는 것에 대한 부분적으로 의식적인 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자아 이상의 완벽에 대한 요구가 클수록 반대로 열등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논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치심은 아주 자주 나르시즘과 연결된다. Morrison(1987)은 근본적으로 나르시스적 문제를 가진 내담자는 자기 그리고 자기의 결함에 대하여 수치심을 핵심 감정(core feeling)으로 가진다고 하였다. 그는 Kohut을 인용하면서 유아가 응집력있는(cohesive) 자기를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사랑받고 싶고 감탄받고 싶은 요구와 부모를 이상화하고자 하는 두 가지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부모가 제공하는 시기적절한 거울 반영은 이러한 두 가지 요구를 지나치게 좌절시키지 않고 아이의 발달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기적절한 자기대상 기능이 유아에게 제공되지 않을 때 유아는 거대성(grandiosity)에 압도되고 이상적 자기와 관련하여 실패한 느낌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유아는 수치심에 취약하게 된다고 한다. 그는 Kohut을 인용하면서 수치심은 자기가 유아적이고(infantile) 분리된 거대성(split-off grandiosity)에 압도되어 있음을 반영한다고 하였다.
Wilson(1987)도 Kohut의 용어로 설명하는데, 그는 수치심이 자기애적으로 불만스러운 상황에서 상대방(counterpart)에게 보여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그 때 상대방은 우리의 자아를, 결점과 함께, 반영해주는 거울 역할을 해준다. 그리고 그 상대방이 우리에게 보내는 이미지에 따라 자신이 가치에 대한 느낌, 자기존중감, 자아와 자아-이상간의 조화가 결정된다. 자신이 가치가 있다는 아니면 가치가 없다는 증거가 이를 통해 얻어진다고 하였고, 이 거울이 아니고는 우리의 내적, 외적 지각이 현실이라는 증거를 어디에서도 얻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표현은 좀 다르지만, Lewis(1987b)도 수치심을 느끼려면 자기와 다른 사람 간에 관계가 있어야 되고 그 관계는 자기가 다른 사람의 평가를 존중하는 관계라고 하였다.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이 중요한 인물일수록,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매료되었을수록,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민감할수록 그 사람은 수치심에 약하다(vulnerable). Lewis는 이것이 사랑에 빠지기 쉬운 것과 마찬가지의 감정 상태라고 하였다. Jacoby(1994)도 수치심이 자신이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볼 때 어떠한지 때문에 야기되는 감정이기 때문에 개별화(individuation)가 많이 되었을수록 수치심이 적다고 하였다. 결국 대상에게 더 많이 지배될수록 수치심에 취약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제까지 자기(self)와 자아 이상, 완벽에 대한 요구와 관련하여 수치심의 심리 역동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수치심의 자각과 경험, 방어와 관련하여 좀 더 살펴보고 논의를 마치고자 한다.
수치심은 자각되어 경험되기도 하지만 자각되지 않을 때도 많다(Lewis, 1987a). Lewis는 많은 내담자들이 자신이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그는 ‘인식되지 않은 부끄러움unacknowledged shame’이라고 하였다. 내담자는 어떤 정서적 괴로움을 의식적으로 자각하고 있고, 원하지 않지만 신체적으로도 얼굴이 달아오르거나 심장이 빨리 뛰거나 땀이 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overt, undifferentiated shame). 그러나 다른 정서로 명명(naming)되면서 부끄러움은 부인된다(denied). 예를 들어 “불안해” “불편해” “상처받았어”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만들어버리거나 “상황이 바보같았어”라는 식으로 내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상황이 바보같았다고 하면서 원인의 소재를 밖으로 투사해버린다(project). 이 경우는 부끄러움은 아니지만 어떠한 정서를 느낀다. 그러나 또 달리는 부끄러움에 상응하는 인지적 내용은 경험하지만 정서로는 아무 것도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부끄러움을 Lewis는 ‘차단된 부끄러움bypassed shame’ '인식되지 않은 부끄러움unacknowledged shame’이라고 하였다. 이 때 내담자는 전혀 정서적인 괴로움을 자각하지 못한다. 아주 잠깐 어떠한 감정을 느끼더라도 곧 이는 차단된다. 이런 상태에서 흔히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안느낀다absence of feeling, feeling neutral, blank, hollow, numb, spaced out”고 느낀다. 그리고 부끄러움 대신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볼까와 같은 강박적인 인지적 활동을 되풀이한다. 첫 번째는 이름을 잘못 붙임으로써(misnaming), 두 번째는 사고의 과잉활동(hyperactive in thought)으로 수치심을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M. Lewis(1992)도 수치심이 인식되지 않을 수 있다는데 동의하면서, 주의 초점의 전환이나 정서 대치, 기억과 같은 인지적 기제로 이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수치심이 발생할 때 수치심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부수적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 때 주의의 초점이 다른 곳으로 돌려지면, 예를 들어 신체 감각이라든지, 결과적으로 수치심이 차단된다. 또는 주의의 초점이 수치심이 아니라 다른 정서에 돌려지거나 (emotional substitution), 혹은 기억 손실(memory loss)이나 망각(forgetting) 등으로도 수치심이 차단된다고 하였다.
수치심은 종종 다른 감정으로 대치된다. Lewis(1987a)는 수치심 대신 가장 많이 느껴지는 것이 우울과 분노라고 하였다. 우울은 자기를 전체적으로 비난한다는 점에서 수치심과 귀인 과정이 같기 때문에도 자주 수치심을 대신한다고 한다. 분노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일어난다. “이렇게 바보같고 한심한” 자신에게 향해지거나, “나를 이렇게 부끄럽게 만든” 다른 사람에게 향해지는 것이다. 분노가 밖으로 향해지면 자신은 비난받지 않아도 되지만 잘못된 것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진다.
Jacoby(1994)는 Erikson이 아동기와 사회[Childhood and Society]에서 이미 수치심이 노여움(rage)을 일으킨다는 통찰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에 의하면 부끄러운 사람은 자신의 부끄러운 상황을 감추기 위해서 세상의 시선을 돌리게 하고 싶어 하는데, 이는 할 수만 있다면 나를 비난하는 세상의 눈을 뽑아버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였다.
Wurmser(1987)도 수치심을 방어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기제 중에서 분노(anger)와 노여움(rage)이 가장 자주 사용된다고 하였다. 그러면 자신이 경멸스럽고 비웃을만한 대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렇다고 느끼게 된다. 수치심에서 중요한 것은 노출을 통해 드러나는 모습(appearance)이기 때문에 수치심의 논리적 귀결은 사라짐(disappearance)이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바로 경멸(contempt)로서 경멸이라는 형식으로 공격성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외에도 Wurmser는 수치심의 방어를 상당히 폭넓게 보는데, 시기심 밑에도 수치심이 있다고 하였으며, 멍한 것(numbness), 돌같이 딱딱한 감정부전증(alexithymia)도 모든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을 통해 깊은 수치심을 방어한다고 하였다. 또한 이렇게 감정을 걸러내는(screening) 방법이 아니라 외재화(externalizing)를 통해 자신이 수치심을 느낄만한 것이 밖에서 오도록 유도한다고 하였다. 그러면 안에서부터 느끼는 수치심은 피할 수 있게 된다. 수치심이 밖으로 투사되어 관계 사고(idea of reference)나 자신이 관찰을 당한다거나 미행당한다, 통제당한다는 각종 망상,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경멸하고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가진다고 하였다. Wurmser(1987)는 정신병 사례를 수치심의 심리 역동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을 보면 그는 수치심을 상당히 폭넓고 수면 깊이에서 작용하는 심리적 기제로 보는 것 같다.
H. B. Lewis(1987a)는 우울이든, 분노든 수치심을 대신할 때는 여하튼 수치심의 고통보다는 이들 감정이 보다 견딜만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수치심이 잠시 다른 감정으로 대치되는 것이 단기적인 시각에서 보면 좋을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좋지 못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비록 우리가 그것을 주목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그 감정은 존재하면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정서를 대치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 기만인데 고통과 불편을 잠시 감소시킬 수는 있지만 상태 자체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Kinston(1987)도 건강한 자존감(self-esteem)은 항상 자신을 좋고 가치있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부적절감, 약한 느낌, 무능력감, 죄책감 등의 감정들을 다루는 능력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에 기초한 경험을 지우려고 하면 자각(awareness)을 전반적으로(globally) 지워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 다른 사람의 감정에 접촉하려하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견디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인데, 이러한 심리 상태는 취약성(vulnerability), 개방성(openness), 민감성(sensitivity), 기꺼이 마음의 고통을 경험하려는 의지(willingness)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 결과 얻어지는 것은 살아있다는 깊은 느낌, 개인이 연속되고 통합되어 있다는 느낌, 감정과 사고와 행동에 있어서 강한 일관성 등이다.
Jacoby(1994)는 머리 색깔이 붉은 것, 키가 작은 것, 뚱뚱한 것, 어느 지방 출신이라는 것, 부모가 어떻다는 것 등등 전혀 자신의 책임이 아니고 운명적인 것에도 사람들은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에 수치심이 매우 대처하기 어려운 감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수치심이 인간이 서로 같지 않음에서 유래하는 감정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서로 같지 않기 때문에 남에게 비밀로 해야 하는 것이 있다. 따라서 수치심은 개인의 정체감과 관련되며 경계(boundary)를 강화하고 이러한 점에서 개별화를 촉진시킨다. 그러나 그는 또한 우리는 부끄럽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 적응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수치심이 한편으로는 개별화를 다른 한편으로는 순응을 촉진시키므로 대단히 복합적인 감정이라고 하였다.
수치심을 느끼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M. Lewis(1992)는 수치심에 대한 대처로 세 가지 기제를 들었다. 첫 번째 기제는 잊는 것(forgetting)이다. 두 번째는 웃는 것(laughter)이다. 예를 들어 자기 스카프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은 여성이 있다고 하자. 사람들이 그녀를 보며 웃어댔을 때 같이 웃는 것은 부끄러움을 당하는 입장에서 부끄러움을 주는 입장으로 변환이 일어난다고 한다. 더구나 웃음은 생리적으로 부끄러움과 길항적(antagonistic)이기 때문에 수치심의 스트레스와 반대된다고 한다. 세 번째는 고백(confession)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가지 기제 이전에 가장 쉬운 방법은 수치심은 느끼며(own it) 시간이 흘러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대단한 것이라도 결국에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담 및 심리 치료와 관련하여 수치심의 문제를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Lewis(1987a)는 수백 시간의 상담회기 동안 어떤 정서가 나타나는지를 기록하였는데, 이 중에 단연 가장 많이 나타난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불안, 자랑스러움, 사랑, 화, 슬픔, 두려움이었는데 부끄러움은 이것들보다도 훨씬 많았다. 그녀에 의하면 부끄러움의 문제는 일상생활에 늘 존재하지만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여기에 새로운 부끄러움을 하나 더 추가한다. 그것은 자신의 부끄러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여야 되기 때문이다. 치료자가 이러한 문제에 매우 예민하지 않으면 내담자는 치료를 통해 부끄러움을 덜기 보다는 부끄러움이 더해질 것이고 이는 결국 관계의 유대를 망가뜨려 치료가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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