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_정신분석치료
프로이트_정신분석치료
자료출처 http://www.psychoanalysis.co.kr/psy/psy3.php
인간에로의 길 (Wege zum Menschen)
제작 Ludwig J Pongratz 교수(독일 Wuerzburg 대학교 임상심리학연구소장)
번역 윤순임(서울정신분석상담연구소장)
시리즈 I.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 최초에 카우치가 있었다. " 대담 Tobias Brocher & Ludwig Pongratz
정신분석 치료장면 Tobias Brocher
편집 Hannes Meier
프라이부르그/매랜, 이 집에서 1856년 5월 6일,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Sigmund Freud가 태어났다. 프로이드가 인간의 무의식적 추동력(Triebkr fte)을 발견한 것은 정신의학 역사에서 전환점이 된다.
정신과 환자들은 18, 19세기에 짐승처럼 취급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감금하거나 묶어놓았다. 또한 얼음같이 찬 물이 떨어지는 데서 목욕을 시키거나 원통에 넣고 몇시간 동안 돌리기도 하였다. 프로이드는 Wien의 Josef Breuer와 파리의 Jean-Martin Charcot의 치료법의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치료법으로 최면을 사용했다. 프로이드는 1885년 최면을 통한 히스테리 치료를 파리의 샤코에게서 몇달 동안 공부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의 치료실제에서는 최면술이 항상 원하는 치료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프로이드는 자유연상의 개념으로 작업했다: 카우치에 누워서, 환자는 무의식적인 움직임의 단서가 드러나도록,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모두 얘기해야한다.
1938년, 국가사회주의가 비인에 들어섰을때, 프로이드는 이 도시를 떠났다. 그는 영국정부의 보호하에 런던으로 망명했고, 거기서 1939년 구강암으로 사망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은 처음에 거부되고 저주받기도 하였으나, 오늘날은 전세계에 퍼져있다. 모든 경직된 인습에 맞서는 프로이드의 진리에 대한 용기가 아니었다면, 현대의 정신분석학은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정신분석가 Tobias Brocher는 독일의 Frankfurt의 지그문트 프로이드 연구소, Gie en 대학교, 그리고 미국 Topeka에 있는 Menninger Foundtion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정신분석학을 사회심리학적인 측면에서 확장했다.
토비아스 브로허와의 대담
Pongratz: "브로허씨, 프로이드는 우리 정신역사의 위인에 속합니다. 그는 정신의학, 정신병리, 심리학에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에 자극을 주었습니다. 어디에서 프로이드의 이러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Brocher: "내 생각에는 학문과 예술의 말기인 그러한 전환점에 프로이드가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세계대전과 또 많은 변화와 연관이 되어있지만, -Einstein처럼- 프로이드는 인간이 지금까지 부정한 영혼의 비밀을 발견한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그당시 풍미했던 물질주의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무의식이라는 말은 프로이드 이전에 이미 있었습니다. 그는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자연과학자로서 대뇌해부학자로서 무의식과 대결한 것은 그리고 그것을 처음에는 자기자신에게 그다음에는 환자들에게 적용한 것은 거대한 걸음걸이를 의미했다. 그것은 영혼의 원인때문에 생기는 신체적인 질병에 대해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에 일어났었습니다."
Pongratz: "다른 한편으로 프로이드는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이 윤리적으로 위험스런 것으로 보여졌고 사람들은 그를 범성욕주의자로 비방했습니다. 범성욕주의는 모든 것을 성추동에 환원시킬 수 있다는 것이고 체험과 행동과 태도 그리고 모든 질병까지도. 프로이드는 범성욕주의자가 맞습니까?"
Brocher: "제 생각에는 그게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서 처음 시작과 그리고 프로이드의 견해를 구분해야 합니다. 아주 긴 시간 동안에 쓰여진 프로이드의 글을 본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프로이드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을때 처음에 쓴 것보다는 나중에 쓴 것부터 읽어 나가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프로이드가 정신분석을 발전시키는 과정을 이해하려면, 빅토리아 문화권의 성에 대한 반응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무엇을 억압하고 부정하며 또 이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환경과 더 관계가 있습니다. 프로이드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예를 들면 여성의 성(sextuality)에 대한 문제말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에야 교정이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동시대에 생존했던 Adler가 개별적인 공격성에 역점을 주었었고, 또 그가 Freud를 움직일 수 없었던 것 하고도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프로이는 나중에야 하나의 가능한 파괴적인 그리고 자기파괴적인 힘으로서 공격성을 포함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초창기에 뭔가 추구하는 프로이드와, 서로 영향을 끼치고 서로 융합된 추동을 받아들이는 정신분석학을 발전시킨 프로이드를 구분해야 합니다. 그는 성을 애정과 부드러움 같은 것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넓게 사용하였고, 공격성은 위험한 파괴적인 힘으로서 성을 통해서 부드러워집니다."
Pongratz: "그시대의 걸림돌이었고 지금도 그러한 것은 외디푸스 콤플렉스입니다. 프로이드는 모든 사람이 외디푸스길을 거쳐가고 한번쯤은 외디푸스 갈등을 겪는다고 했습니다. 도데체 외디푸스 갈등이란 무엇입니까?"
Brocher: "제 생각에는 역사적으로 있었던 외디푸스전설이 잘못 해석된 것같습니다. 여기서는 단지 아이들이 어떤 특정한 발달단계에서 같은 성의 부모를 경쟁대상으로 보는 경향성을 나타내는 것외에 다른 뜻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자아이들은 아빠에게 흥미를 가질 때 엄마로부터 돌아서고, 남자아이들은 아빠를 경쟁대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저는 외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드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처럼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처럼 거기서부터 양심 형성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마다 어떤 시점부터 같은 성의 부모에게 죽일것만 같은 노여움의 환상을 가지게 됩니다. 그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원하고 물론 성인들이 생각하는 죽어버렸으면 하는 그런 뜻은 아니지만 여하튼 '뒈졌으면' 하는 그런 마음말입니다. 이러한 소망은 같은 성의 부모와 자신을 동일화함으로써 포기가 되고 남자아이는 남성으로서 여자아이는 여성으로서 동일성이 형성되면서 동시에 부모에 대한 관계도 새로와진다. 어린이들이 다른 방법으로 자라나기 때문에 그런 형태로서의 외디푸스 갈등은 오늘날은 물론 다릅니다. 그들은 이제 프로이드 시대처럼 아버지와 어머니를 분명히 구별되는 상으로 경험하면서 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 역할모델이 그렇게 더이상 고정돼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들은 모성적이 되고 아주 많은 어머니들이 엄격하게 명령을 하고 위협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부모에 대한 체험이 걸림돌이 될 때 나중에 결혼생활에서 자기 부인에게서 지배적인 면이 나타날까봐 항상 불안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전혀 의식되지 못하며 많은 경우에 여성 비하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는 외디푸스 콤플렉스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누구나 거쳐가는 성장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옛날보다는 더 강도가 약하긴 하지만 같은 성의 부모님을 경쟁대상으로서 체험하는 발달단계를 누구나 거쳐갑니다."
Pongratz: "현재 정신분석학에서는 추동이론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Alice Miller라는 한 스위스 여분석가는 거기에 대해서 주목을 끈 여러 책을 썼는데 "영재의 드라마" 혹은 "최초에 양육이 있었다" 혹은 "너는 눈치채서는 안된다" 등과 같은 것입니다. 그녀는 어린이가 외디푸스적 소망을 갖거나 구강기적 항문기적 소망을 억압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개심이나 증오, 좌절 및 불안 같은 감정을 억압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어린이에게 맞지 않는 양육, 즉 가혹하거나 잔인하기 까지한 양육으로 인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앨리스 밀러에 동의할 수 있습니까?"
Brocher: "어느 정도만요. 나는 이러한 논의가 추동이론을 없애지는 못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아동이 분노, 화남, 그리고 공격적인 환상을 경험하는 것은 확실히 부모의 잘못된 행동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추동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아이들은 거부와 실망을 부모와의 관계에서 체험하고 그 관계에서 분노가 생겨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합니다. 나는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소망환상과 쾌락환상이 걸맞지 않은 좌절의 순간에 정말로 화가 나고 노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때 다음과 같은 관계상황이 존재합니다."나는 작고 너는 크다. 너는 힘이 있고, 나는 무력하고 무방비상태다" 그래서 아동은 이런 충동을 억압합니다. 앨리스 밀러는 우리의 양육이 아직도 어린이에게 맞는 양육이 되기에는 멀다는 점에서 확실히 옳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들은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무엇이 일어나는 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가 부모에게 대접받은 대로 항상 그렇게 대접한다는 것입니다. 그점에서는 저 또한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성인들이 아이들과 정말 어떻게 지낼것인지 깨달을 때까지 이 모든 것이 적어도 80년에서 100년은 지속될거라는 생각이 됩니다. 어쨌든 제 경험으로는 오늘날도 이미 인디언들이 그것을 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의 아이들은 모든 성인들과 아이로서 관계를 맺고 있고, 성인들 역시 아이들은 아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들에게 [아이는 아이 ]라는 것이 인정됩니다."
Pongratz: "[꿈의 해석] 역시 정신분석 치료에 속해 있습니다. [꿈의 해석]은 정말로 획기적인 저작이었습니다. 그 책은 바로 세기의 전환점인 1900년에 출판되었습니다. 꿈은 정신분석 치료에서 어떤 역할을 합니까?"
Brocher: "그것은 프로이드가 말했듯이 여전히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입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꿈은 환자 자신은 모를지라도 그자신에게 어떤 무의식적인 과정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주 빨리 알아차리게 해주는 하나의 길입니다. 속어에 "꿈은 거품이?quot;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에 덧붙인다면 거품에도 물론 그것이 원래 어떤 물질로 되어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꿈에서도 비슷합니다. [꿈의 해석]은 무의식의 발견과 더불어 프로이드의 결정적인 저작임이 틀림없습니다. 소위 꿈은 우리가 깨어있는 동안 작업할 수 없어 부담이 되는 갈등을 영적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점에 있어서 꿈은 건강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든 꿈을 기억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신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꿈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꿈은, 물론 우리는 그것을 항상 금방 알아차릴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주기 때문입니다. 프로이드는, 무엇이 무의식으로부터 그에게 말해지고 있는지 전혀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대개는 혼란스러운 겉으로 나타난 꿈의 내용과 원래 그밑에 숨겨진 잠재된 꿈의 내용을 구분했습니다. 꿈에 관심을 많이 두지 않는 분석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석가에게 있어서 꿈은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도움으로 분석가는 분석가와 환자사이에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가를 이해하며, 그리고 또한 꿈에 표현하고 있는 환자의 불안과 소망이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를 이해합니다."
Pongratz: "Brocher 씨, 장의자(couch)를 빼놓고 정신분석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많은 유머거리가 되는 정신분석의 상징입니다. Adler와 Jung은 장의자를 포기하고 안락의자를 사용해서 환자와 치료자사이의 동반자적 관계를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무엇때문에 정신분석에서는 장의자를 그처럼 고수하고 있습니까?"
Brocher: "정신분석에서는 두가지 이유로 장의자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프로이드는 매시간 어떤 사람으로 부터 응시당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이유를 댔었습니다. 그건 프로이드의 합리화이겠습니다만. 실제로는 이렇습니다. 환자는 그자신이 반밖에 알지 못하는 자기 자신과 다른 것들과 어떻게 지내야 될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가 장의자에 누워서 이완할 수 있는 그시간에, 그는 말하자면 홀로입니다. 그뿐 아니라 뒤에 앉아서 보이지 않는 치료자는 원래 환자가 어린 시절에 혼자 두어지게 된 것처럼 홀로 놓아두게 됩니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퇴행과 초기 기억의 회복을 위해 도움이 됩니다.
장의자가 해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저는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모든 해학은 항상 프로이드가 지적한 것처럼 일반 사람들이 뭔가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을 웃음거리로 삼는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당시에 사람들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독일에는 1945년 이후에 처음으로 정신분석에 대한 해학과 만화가 나타난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오랫동안 통신으로 알아보았습니다. 그 해학은 이해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정신분석이 오랫동안 금지돼 있어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죠. 장의자에 대한 농담들은 항상 사람들이 이제 무엇인가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것에 대해서 불안이 없다면 아무런 해학도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프로이드가 [해학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말했듯이 해학은 소위 말하는 불안, 즉 이런 장의자에서 나오게 될 결과에 대해 사람들이 사실 갖고 있는 불안을 우회하는 것입니다. 분석가가 해학의 대상으로 되는 것은 매우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해학의 대상이 되는 다른 직업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분석가 자신이 자기 자신의 직업을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으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한 스위스 분석가처럼 분석가에 대한 만화를 모은다든가 프로이트가 칭한 것처럼 이 [불가능한 직업]의 부조리를 분석가 자신이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유머도 갖지 않은 사람은 이러한 [불가능한 직업]을 전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에서 치료적인 효과가 성공적으로 드러날 때까지는 종종 여러해가 걸린다. 다음은 치료 한회기에서 몇 단면들을 발췌한 것이다.
환 자 : 요즘 저에게는 오래전부터 상당히 나를 사로 잡았던 문제가 다시금 분명해졌어요. 예를 들어 수영장에서 옷을 벗고 수영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면 웬일인지 상당히 불안해져요. 그건 제 가슴이 보통남자들보다 더 많이 튀어 나와서죠. 저는 상당히 위축되고, 그러한 비슷한 기회에는 다시다시 그렇게 되죠. 그럴 때는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제 가슴을 쳐다보고 뭔가 생각할 것같은 상상이 되죠.
Brocher: 형제가 있습니까?
환 자 : 두명입니다.
Brocher: 남자 형제입니까? 아니면 여자 형제?
환자 : 저는 막내예요. 위로 누나와 형이 각각 한 명씩 있어요.
Brocher: 그러니까, 그게 당신의 남성성과 관련있나 하는 그런 생각을.....
환자 : 거기에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데, 의사가 진찰을 하다가 가슴을 보고 그것이 분명히 의학적인 현상으로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우선은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이 의학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누군가 내게 그렇게 정확하게 말해준 것은 처음이었어요. 저는 어쨌든 여자애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아주 나빴어요. 그문제가 큰 역할을 했었죠. 저는 제가 스포츠맨답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많은 여성적인 특성들이 제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지만 저는 아무래도 남성적이지 않은 것같습니다. 근육질의 남자들에게는 사실 전혀 호감이 가지 않습니다. 그것이 제 마음의 모순이며 갈등입니다.
Brocher: 당신의 남성적인 가능성과 여성적인 가능성 간의 갈등말입니까?
환 자 : 네, 다르게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다르진 않게요.외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전형적으로 남성적이거나 지나치게 남성적으로 공격적인 모습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혀 감정이 없는 그런 모습말입니다. 그런 것은 조금도 원하지 않아요.
Brocher: 단지 외모에 관한 겁니까 아니면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남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그런 느낌입니까?
환 자 : 네, 저는 제 몸을 특별히 좋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기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계기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제가 제 부인을 사귈 때 제 신체까지도 받아들여진다고 느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그때는 아마 한번 심각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Brocher: 어린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형님이 맏이라고 그랬지요? 신체 감정이 어땠는지 기억하실 수 있습니까?
환 자 : 사실은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로 체육시간에 느낄수 있었는데요. 제가 항상 꼴찌 중의 한사람이었거든요. . 정말 심각해진 것은 10살 때 김나지움(Gimnasium, 고전어 교육을 주로 하며 국민학교와 대학을 연결하는 독일의 9년제 인문계 중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서는 실제로 24시간 또래들과 함께 지냈고 저녁에 잠을 잘 때나 운동을 할때나 목욕을 하거나 혹은 예를 들어 송구를 할 때에도 전혀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속옷차림으로 밖에서 한팀을 이룰 때 그야말로 저에게는 상당히 불안한 상황이었지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내 몸에 대해서 상당히 강하게 반응했거든요. 그들은 또 비아냥거리거나 놀리기도 했습니다.
Brocher: 형이 있다고 하셨는데, 몇살 위입니까?
환 자 : 6살이요.
Brocher: 그의 외모는 어떠했습니까?
환 자 : 예, 그냥 정상입니다.
Brocher: 형이 체격이 아주 운동선수 같거나 씩씩한 모습이었습니까?
환 자 : 형은 매우 체격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에게서 특히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Brocher: **씨 생각에는 자신을 형과 비교하지 않으셨습니까?
환 자 : 예, 그일은 기숙사에 살면서 일어났습니다. 형과는 거의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Brocher: 형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네요.
환 자: 예, 그는 그 다음부터 항상 어딘가 다른곳에서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아무런 본보기가 될 수 없었죠.
Brocher: 그리고 누나는 몇살이나 위입니까?
환 자: 두살 위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열살에 집을 떠날 때까지 우리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Brocher: 그 시절에 특별히 재미있었던 환상들이 있습니까?
환 자: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는 인형이 살아나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 지금도 기억이 상당히 생생합니다만 - 거기에는 약간 종교적인 요소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충분하게 빌고 굳게 원하면 그때 인형이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형을 밤새 덮어놓았는데,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인형이 살아있지 않은 것을 알고는 매우 실망하였습니다. 그것은 이미 더 이상 인형이 아니라 나중에 가질 아이에 상응하는 것이었습니다.
Brocher: 예, 살아있는 아이는 인형과는 다르죠.
환 자: 예, 그러나 저는 이러한 어린시절의 소망이 정말로 어떻게 해서든지 유지되어 왔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좀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제가 굉장히 낙담했을 때도, 또 제가 불행하게 반했을 때도 또는 어떤 한사람에게 구체적으로 반하지 않았지만, 그랬을때도 그렇다면 ....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을 했더랬죠. 그럴때면 즉시 아빠가 되고 아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상상이 되곤 했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동경과 아이에 대한 동경이 서로 얽혀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부성애적 또는 모성애적 요소라고 부를 수도 있을겁니다.
Brocher: 사실 옳은 이야기를 하셨는데, **씨는 많은 남성들에게 발달되지 않은 특성, 즉 어떤 모성적인 특성을 가졌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문제는 이렇죠: 소위 여성적이라는 것, 혹은 **씨가 여성적 특성이라고 체험하는 것, 그런 것이 다른 것보다도 훨씬 가치없다고 여기는 이러한 심한 괴리를 아직도 강하게 체험하는 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남자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신 것이 틀림없는 것같습니다. 현실적으로 매우 많은 남자들이 이같은 면이 부족합니다. (여성적인 것이 너무 부족해서) 여성들이 그들을 떠나고, 남성들의 감정적인 면은 자신 스스로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할 정도로 미숙합니다. **씨는 아 까 열등감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죠. 도대체 그것을 어디서 잽니까?
환 자: 저는 지금 저의 상태에 그런 개념을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Brocher: 처음에는 그렇게 들렸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군요. 환 자: 예. 제가 옷을 벗고 수영복으로 서 있을때 제삼자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그런 감정은 그렇게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여전히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저를 위축시키고 저에게 부담을 주는 약점일 뿐입니다.
Brocher: 그런데 가끔 꿈을 꾸십니까?
환 자: 꿈이 마음에 걸려서 하루내내 신경을 쓰게 하는 일은 드뭅니다. 꿈은 대개 금방 사라집니다. 저는 최근에 꿈을 하나 꾸었는데, 아직도 저에게 약간 남아있고 그 꿈을 그때에 집사람에게 설명했었습니다. 그 꿈을 자세히 기억할 수 없읍니다만은 다음과 같은 주제였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자살하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를 만류해 보았으나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만류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자신이 그 마음을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더 구체적으로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생각나는 것은 현실과는 아주 반대로, 그 친구와 제가 함께 있었고 그 친구가 자살하려고 하던 것입니다.
Brocher: 현실과 반대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는 그가 아직도 살아있습니까, 아니면?
환 자: 아닙니다, 그는 자살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Brocher: 그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했군요.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나중에 알게 됐습니까?
환 자: 기숙사에서 같이 살았는데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그 문제는 저에게도 역시 매우 시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왜 거기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는지 .... 자주 생각해 보았지만 어려운 질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다고 확신을 했던 것같습니다. 아주 간접적으로 그렇게 얘기한 것같습니다. 어떤 특정한 문제 때문이 아니구요 아주 일반적인 염세감정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저는 저를 그와 상당히 동일시했었고 그때 그것은 저에게 실제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제가 뭐 그렇게 달라서 아직도 계속 살려고 하는지 의문입니다.
Brocher: 그러면 지금은 그 차이를 보십니까?
환 자: 삶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라는 점에서는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순전히 실용적인 차이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필요로 하고 어떻게든 삶에 융합됐다는 것을 보는 것이죠. 그러니까 전에는 제가 완전히 홀로 떨어져 있다고 느꼈었죠. 내가 살지 않아도 아무 일 없을 우주속에 그렇게 혼자라고 느꼈습니다. 현재는 인간관계가 있죠. 아마 그것이 차이일 겁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무엇에 좋은지 결국 뭘 가져올지 아무런 내적 확신이 없습니다.
Brocher: 아들과 부인과 맺는 현실적인 관계가 있지요.
환 자: 저는 이러한 관계가 시간적으로 한계가 있고 어딘가 안정의 공중누각이라고 봅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안정의 한 종류 아니겠습니까. 사람을 버텨주는 끈같은 그런 것 말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언젠가는 모든 것이 단번에 날아들 것입니다. 늦어도 제가 죽어야 할 때. 그때는 완전히 새롭게 질문해 봐야겠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그 친구와 차이가 있는지 확실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Brocher: 거기에는 변화도 포함되는 것이 아닙니까?
환 자: 예.
Brocher: 보십시요. **씨는 방금 어떻게 누나와 인형을 가지고 놀았는지 얘기하셨고, 어떻게 적응하며 살았는지 얘기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긴 생활사 과정입니다. 지금은 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계가 있다고 얘기합니다. 제가 잘 모르겠지만, 죽음에 대해서 얘기하실 떄 그게 **씨가 느끼는 어떤 것 아닙니까: 돌이킬 수 없는 방향입니다. 물론 산 것은 죽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새 것이 발생됩니다. 제 생각에 **씨가 안정에 대해서 얘기하시는 것은 옳습니다. 자신 스스로에 의해서 관리될 때만 관계는 안정이 됩니다. 제가 옳게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삶의 불안전성에 대해서 신학교의 신학적인 영향이 있는게 아닌지........
환 자: 글쎄요. 그게 꼭 신학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인간이 항상 위장안정성만 자기 주위에 세울수 있다는 것은 하옇든 기본 사실이라고 봅니다. 아마도 인간은 이러한 위장안정성으로 얼마만큼은 기분이 좋기 때문에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친구가 자살한 것같은 일이 일어나면, 죽음과 같은 그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잊어버리고 다시다시 떠나 살 수 있다는 것을 갑자기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저는 사실 그게 불만스럽습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고 그것이 인간을 모든 것으로부터 앗아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직도 배경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죠.
Brocher: **씨가 얘기하시는 걸로 보면 사실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같은데요:내가 죽음을 받아들이면 언젠가 일어날 개연성으로서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만 그때 비로소 살 수 있다고요.
환 자: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이미 저에게 사는, 무엇보다도 잘 사는, 좀더 의식적으로 사는 것에 대한 조건입니다.
Brocher: 그렇다면은 물론 생각해 봐야겠는데, **씨 자신이 신체에 가지고 있는 자기감정 그것이 과거로부터 유래하고 그리고 자기자신에게 가졌던 과거의 관점이 얼마만큼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지 혹은 없어지는지 아니면 무관해지는지. 무관해진다는 것 그것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씨 안의 어떤 것이 변화하고 성장함으로써 이러한 (옛) 의미를 무의미하게 탁 놓아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신체적인 열등감과 이 학생의 불안전감과 회의로 뒤덮여진 삶의 감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치료의 과제는 이러한 연관성이 의식에 드러나게 함으로써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전이"와 "저항"과 같은 개념은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토비아스 브로허와의 대담
Brocher: 전이란 비단 정신분석에서만 일어나는게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의 주변환경 속에서 항상 자기가 살아온 것과 같은 감정과 관계를 재조성하려는 경향을 가졌습니다. 그러니까 감정의 차원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무의식적으로) 전가 시킵니다. 그러한 전이현상은 직장에서도 볼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을 좋은 엄마로 어떤 사람은 나쁜 엄마로 또 다른 사람은 나쁜 형제로 여겨집니다. 그러한 전이는 저 절로 일어납니다. 정신분석 과정에서는 어떤 환자든 치료자에게 긍정적 및 부정적 전이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것을 다음과 같이 간략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분석가는 환자가 이것저것 입어볼 수 있는 여러가지 의상을 위한 옷걸이와 같은 것입니다. 때로는 근사한 옷이 걸리기도 하며, 종종 허수아비가 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분석가는 견뎌내야 합니다. 분석가가 그것을 견뎌냄으로써 환자가 그것이 결코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되며, 아하, 그것은 오히려 내가 과거로부터 잘못 끌고 다닌 것이로구나, 내가 편해지려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걸고 싶어 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이라는 것입니다. 정신분석은 전이현상을 다루면서 작업합니다.
저항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저항은 분석되어야 할 어떤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자신을 안주시키는 어떤 특정한 방어형태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이미 성격구조 속에 꽉 자리 잡고서 절대로 도저히 알고 싶지 않은 나에 관한 내용, 그래서 오래 전부터 눌러 없앤 내용을 내가 어떻게 계속 옆으로 밀치고 있는가를 꿰뚫어 보는것에 저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예를 들면, 환자가 와서 자신의 고통을 얘기하고 건강해 지고 싶다고 하고 치료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그는 분석 받고 분석하는 모든 작업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Pongratz: 정신분석은 다시다시 공격을 받아왔고 사람들은 정신분석을 외면했습니다. 새로운 한 방향은 행동주의와 정신분석에 대한 반동으로 제3세력으로서 일어난 인본주의 운동입니다. 인본주의 심리학은 정신분석이 결정론적이고 기계론적이라고 비판하고, 인간 삶의 실제속에서 인간 전체가 아닌 일부만을 본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여 근본적으로 비인간적이다라고까지 말하는데, 정신분석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Brocher: 정신분석은 아주 오랫동안 심지어 정신분석가에 의해서도 그렇게 여겨져 온 것같습니다. 그외에도, 정신분석의 테크닠이 많은 사람들에게 물론 잔인하고 비인간적으로 보여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해석도 양보됨이 없고 사실은 분석가가 환자 스스로가 하고 싶지 않은 일 즉, 알고 싶지 않은 자기를 대면하는 일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에 대해서 어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진실과의 투쟁, 이러한 기억과의 투쟁이 바로 정신분석의 원래 과제입니다. 나중에 개발된 아주 많은 방법들은 인간의 삶을 희석시키고 근본적으로는 인간을 돕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영혼 내적인 경험의 진실을 거스르는 얼마나 깊고 깊은 저항이 뿌리박혀 있는가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분석이 모든 비난과 저주를 받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정신분석의 몰락에 대해서 이미 1928년에 Benke씨가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면 Eeissler가 매개변수(parameter)로 지적한 변화들이 있고 또 이러한 변화들은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변혁을 가져왔습니다. 이 사회는 개인의 행동에 일부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사회적 요소가 (개인 안으로) 들어 오게 됩니다. 그렇지만 정신분석에 가해지는 비인간적이라는 비난은 오히려 소위 "차거운 분석가"라는, 대부분 지금은 쓰고 있지 않은 방법을 아직도 사용하려는 일부 분석가들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예를 들면 고전적인 보수파와 Kernberg 혹은 Kohut사이의 논쟁이 있습니다. 이논쟁은 정신분석이 얼마나 분석가와 환자 사이의 관계에 의존하느냐 그리고 분석가와 환자 사이에 무엇이 움직이고 있느냐하는 것을 명백히 하려는 시도에서 나타납니다. 나도 후자가 좀 더 그럴듯하고 옳다고 봅니다.
Pongratz: Brocher씨, 당신은 많은 책을 쓰셨습니다. 당신은 정신분석이나 심리치료 전반에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 당신은 사회심리학적인 관점에 의해 정신분석의 이론 및 적용에 있어서 결함을 메꾸었습니다. 아마 거기에 대해서 좀 얘기해 봐야겠습니다.
Brocher: 예. 그 점이 정신분석의 부족한 점이었습니다. 그것은 내 생각에는 프로이트와 아들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는 것같습니다. 아들러가 그러한(사회심리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의 아이디어는 개인심리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기본적으로는 K nkel의 초기저서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나는 거기서 정신분석이 모든 것을 심리내적인 갈등으로 보고 현실의 일부를 제외시키려하는 위험에 쉽게 빠질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요즈음 나의 바램과 나의 작업은 원래의 정신분석의 활용에서 개발시킨 사회심리학을 훨씬 더 넓게 활용하려는 데 있습니다. 1920년대에 사회심리학적인 것이 제외됐었습니다. 요즘은 예를 들면 집단치료의 형태로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식, 그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서 그가 고정행동양식으로 반응하게 하고 그리고 그것을 개인분석에만 귀환시킬 수 없다는 그런 의식에서 집단치료 형태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사회적 요소를 - 그것을 대상관계(object-relation) 또는 그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아동기 경험이 성인의 삶으로 어떻게 옮겨가며 성인의 세계를 구성하게 되는가 하는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요소를 통해서 강박적인 것, 오해같은 것이 결혼생활에서 혹은 직장생활에서 공동생활이면 어디에서이건 간에 보유되고 유지됩니다. 이러한 관점은 정신분석의 진실된 의미를 확장하고 명료화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즉 정신분석은 한 개인의 고통을 제거시켜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입니다. 그것이 먼 길일지라도.
Pongratz: 정신분석의 인간상은 어떻습니까? 어떠해야 한다고 봅니까?
Brocher: 정신분석에서 바라보는 인간상은 자유의 상(a picture of freedom) 그러니까 가능성의 자유입니다. 내가 자주 응용해온 한 상을 가지고 설명해 보겠습니다. 사회, 가정, 우리 생활조건이 많은 문화권에서는 단지 감옥을 만듭니다. 인간은 물려 받은 감옥 속에서 내면에는 갑옷을 두르고 그 속에서 숨막혀 죽어가면서 자유를 잃어가는 그런 존재입니다. 정신분석의 과제는 인간을 매달리게 하고 그럼으로써 자유를 앗아간 그 모든 찌꺼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미대륙에서는 이것이 훨씬 간단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거에서부터 매달려 오면서 끊지 못했고 이로써 자유와 창의성을 앗아간 자신의 껍질을 깨기 위해 분석을 받으러 온다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자기이해의 목표일 것입니다. 인간의 자기이해라는 것은 부모와 선생님과 주변환경 그리고 사회가 부과한 것보다도 더 자유롭습니다. 이러한 인간해방의 목표는 정신분석의 원래목표이며 또 여전히 그럴 것입니다. Anna Freud와 오랫동안 친구였던 Willi Hoffer는 분석은 자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장수케한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나도 이 말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묶여 있던 에너지가 갑자기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에너지를 뭔가를 밑으로 누르는데 사용합니다. 나의 원래 스승인 Felix schottl nder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자신의 새끼발가락에서부터 머리털 끝까지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 들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일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습니다. 만약 뭔가 잘못됐다, 나는 좀 더 나아야 되는데, 혹은 왜 나는 그렇지가 않지라고 생각하는 한, 나는 나 자신을 아직 받아 들인 게 아닙니다. 정말 분석의 목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고 거기서부터 변화를 감행하는 것입니다.
자료출처 http://www.psychoanalysis.co.kr/psy/psy3.php
인간에로의 길 (Wege zum Menschen)
제작 Ludwig J Pongratz 교수(독일 Wuerzburg 대학교 임상심리학연구소장)
번역 윤순임(서울정신분석상담연구소장)
시리즈 I.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 최초에 카우치가 있었다. " 대담 Tobias Brocher & Ludwig Pongratz
정신분석 치료장면 Tobias Brocher
편집 Hannes Meier
프라이부르그/매랜, 이 집에서 1856년 5월 6일,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Sigmund Freud가 태어났다. 프로이드가 인간의 무의식적 추동력(Triebkr fte)을 발견한 것은 정신의학 역사에서 전환점이 된다.
정신과 환자들은 18, 19세기에 짐승처럼 취급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감금하거나 묶어놓았다. 또한 얼음같이 찬 물이 떨어지는 데서 목욕을 시키거나 원통에 넣고 몇시간 동안 돌리기도 하였다. 프로이드는 Wien의 Josef Breuer와 파리의 Jean-Martin Charcot의 치료법의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치료법으로 최면을 사용했다. 프로이드는 1885년 최면을 통한 히스테리 치료를 파리의 샤코에게서 몇달 동안 공부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의 치료실제에서는 최면술이 항상 원하는 치료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프로이드는 자유연상의 개념으로 작업했다: 카우치에 누워서, 환자는 무의식적인 움직임의 단서가 드러나도록,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모두 얘기해야한다.
1938년, 국가사회주의가 비인에 들어섰을때, 프로이드는 이 도시를 떠났다. 그는 영국정부의 보호하에 런던으로 망명했고, 거기서 1939년 구강암으로 사망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은 처음에 거부되고 저주받기도 하였으나, 오늘날은 전세계에 퍼져있다. 모든 경직된 인습에 맞서는 프로이드의 진리에 대한 용기가 아니었다면, 현대의 정신분석학은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정신분석가 Tobias Brocher는 독일의 Frankfurt의 지그문트 프로이드 연구소, Gie en 대학교, 그리고 미국 Topeka에 있는 Menninger Foundtion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정신분석학을 사회심리학적인 측면에서 확장했다.
토비아스 브로허와의 대담
Pongratz: "브로허씨, 프로이드는 우리 정신역사의 위인에 속합니다. 그는 정신의학, 정신병리, 심리학에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에 자극을 주었습니다. 어디에서 프로이드의 이러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Brocher: "내 생각에는 학문과 예술의 말기인 그러한 전환점에 프로이드가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세계대전과 또 많은 변화와 연관이 되어있지만, -Einstein처럼- 프로이드는 인간이 지금까지 부정한 영혼의 비밀을 발견한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그당시 풍미했던 물질주의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무의식이라는 말은 프로이드 이전에 이미 있었습니다. 그는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자연과학자로서 대뇌해부학자로서 무의식과 대결한 것은 그리고 그것을 처음에는 자기자신에게 그다음에는 환자들에게 적용한 것은 거대한 걸음걸이를 의미했다. 그것은 영혼의 원인때문에 생기는 신체적인 질병에 대해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에 일어났었습니다."
Pongratz: "다른 한편으로 프로이드는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이 윤리적으로 위험스런 것으로 보여졌고 사람들은 그를 범성욕주의자로 비방했습니다. 범성욕주의는 모든 것을 성추동에 환원시킬 수 있다는 것이고 체험과 행동과 태도 그리고 모든 질병까지도. 프로이드는 범성욕주의자가 맞습니까?"
Brocher: "제 생각에는 그게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서 처음 시작과 그리고 프로이드의 견해를 구분해야 합니다. 아주 긴 시간 동안에 쓰여진 프로이드의 글을 본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프로이드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을때 처음에 쓴 것보다는 나중에 쓴 것부터 읽어 나가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프로이드가 정신분석을 발전시키는 과정을 이해하려면, 빅토리아 문화권의 성에 대한 반응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무엇을 억압하고 부정하며 또 이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었습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환경과 더 관계가 있습니다. 프로이드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예를 들면 여성의 성(sextuality)에 대한 문제말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에야 교정이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동시대에 생존했던 Adler가 개별적인 공격성에 역점을 주었었고, 또 그가 Freud를 움직일 수 없었던 것 하고도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프로이는 나중에야 하나의 가능한 파괴적인 그리고 자기파괴적인 힘으로서 공격성을 포함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초창기에 뭔가 추구하는 프로이드와, 서로 영향을 끼치고 서로 융합된 추동을 받아들이는 정신분석학을 발전시킨 프로이드를 구분해야 합니다. 그는 성을 애정과 부드러움 같은 것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넓게 사용하였고, 공격성은 위험한 파괴적인 힘으로서 성을 통해서 부드러워집니다."
Pongratz: "그시대의 걸림돌이었고 지금도 그러한 것은 외디푸스 콤플렉스입니다. 프로이드는 모든 사람이 외디푸스길을 거쳐가고 한번쯤은 외디푸스 갈등을 겪는다고 했습니다. 도데체 외디푸스 갈등이란 무엇입니까?"
Brocher: "제 생각에는 역사적으로 있었던 외디푸스전설이 잘못 해석된 것같습니다. 여기서는 단지 아이들이 어떤 특정한 발달단계에서 같은 성의 부모를 경쟁대상으로 보는 경향성을 나타내는 것외에 다른 뜻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자아이들은 아빠에게 흥미를 가질 때 엄마로부터 돌아서고, 남자아이들은 아빠를 경쟁대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저는 외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드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처럼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처럼 거기서부터 양심 형성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마다 어떤 시점부터 같은 성의 부모에게 죽일것만 같은 노여움의 환상을 가지게 됩니다. 그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원하고 물론 성인들이 생각하는 죽어버렸으면 하는 그런 뜻은 아니지만 여하튼 '뒈졌으면' 하는 그런 마음말입니다. 이러한 소망은 같은 성의 부모와 자신을 동일화함으로써 포기가 되고 남자아이는 남성으로서 여자아이는 여성으로서 동일성이 형성되면서 동시에 부모에 대한 관계도 새로와진다. 어린이들이 다른 방법으로 자라나기 때문에 그런 형태로서의 외디푸스 갈등은 오늘날은 물론 다릅니다. 그들은 이제 프로이드 시대처럼 아버지와 어머니를 분명히 구별되는 상으로 경험하면서 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 역할모델이 그렇게 더이상 고정돼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들은 모성적이 되고 아주 많은 어머니들이 엄격하게 명령을 하고 위협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부모에 대한 체험이 걸림돌이 될 때 나중에 결혼생활에서 자기 부인에게서 지배적인 면이 나타날까봐 항상 불안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전혀 의식되지 못하며 많은 경우에 여성 비하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는 외디푸스 콤플렉스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누구나 거쳐가는 성장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옛날보다는 더 강도가 약하긴 하지만 같은 성의 부모님을 경쟁대상으로서 체험하는 발달단계를 누구나 거쳐갑니다."
Pongratz: "현재 정신분석학에서는 추동이론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Alice Miller라는 한 스위스 여분석가는 거기에 대해서 주목을 끈 여러 책을 썼는데 "영재의 드라마" 혹은 "최초에 양육이 있었다" 혹은 "너는 눈치채서는 안된다" 등과 같은 것입니다. 그녀는 어린이가 외디푸스적 소망을 갖거나 구강기적 항문기적 소망을 억압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개심이나 증오, 좌절 및 불안 같은 감정을 억압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어린이에게 맞지 않는 양육, 즉 가혹하거나 잔인하기 까지한 양육으로 인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앨리스 밀러에 동의할 수 있습니까?"
Brocher: "어느 정도만요. 나는 이러한 논의가 추동이론을 없애지는 못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아동이 분노, 화남, 그리고 공격적인 환상을 경험하는 것은 확실히 부모의 잘못된 행동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추동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아이들은 거부와 실망을 부모와의 관계에서 체험하고 그 관계에서 분노가 생겨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합니다. 나는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소망환상과 쾌락환상이 걸맞지 않은 좌절의 순간에 정말로 화가 나고 노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때 다음과 같은 관계상황이 존재합니다."나는 작고 너는 크다. 너는 힘이 있고, 나는 무력하고 무방비상태다" 그래서 아동은 이런 충동을 억압합니다. 앨리스 밀러는 우리의 양육이 아직도 어린이에게 맞는 양육이 되기에는 멀다는 점에서 확실히 옳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들은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무엇이 일어나는 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가 부모에게 대접받은 대로 항상 그렇게 대접한다는 것입니다. 그점에서는 저 또한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성인들이 아이들과 정말 어떻게 지낼것인지 깨달을 때까지 이 모든 것이 적어도 80년에서 100년은 지속될거라는 생각이 됩니다. 어쨌든 제 경험으로는 오늘날도 이미 인디언들이 그것을 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의 아이들은 모든 성인들과 아이로서 관계를 맺고 있고, 성인들 역시 아이들은 아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들에게 [아이는 아이 ]라는 것이 인정됩니다."
Pongratz: "[꿈의 해석] 역시 정신분석 치료에 속해 있습니다. [꿈의 해석]은 정말로 획기적인 저작이었습니다. 그 책은 바로 세기의 전환점인 1900년에 출판되었습니다. 꿈은 정신분석 치료에서 어떤 역할을 합니까?"
Brocher: "그것은 프로이드가 말했듯이 여전히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입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꿈은 환자 자신은 모를지라도 그자신에게 어떤 무의식적인 과정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주 빨리 알아차리게 해주는 하나의 길입니다. 속어에 "꿈은 거품이?quot;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에 덧붙인다면 거품에도 물론 그것이 원래 어떤 물질로 되어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꿈에서도 비슷합니다. [꿈의 해석]은 무의식의 발견과 더불어 프로이드의 결정적인 저작임이 틀림없습니다. 소위 꿈은 우리가 깨어있는 동안 작업할 수 없어 부담이 되는 갈등을 영적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점에 있어서 꿈은 건강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든 꿈을 기억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신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꿈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꿈은, 물론 우리는 그것을 항상 금방 알아차릴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주기 때문입니다. 프로이드는, 무엇이 무의식으로부터 그에게 말해지고 있는지 전혀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대개는 혼란스러운 겉으로 나타난 꿈의 내용과 원래 그밑에 숨겨진 잠재된 꿈의 내용을 구분했습니다. 꿈에 관심을 많이 두지 않는 분석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석가에게 있어서 꿈은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도움으로 분석가는 분석가와 환자사이에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가를 이해하며, 그리고 또한 꿈에 표현하고 있는 환자의 불안과 소망이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를 이해합니다."
Pongratz: "Brocher 씨, 장의자(couch)를 빼놓고 정신분석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많은 유머거리가 되는 정신분석의 상징입니다. Adler와 Jung은 장의자를 포기하고 안락의자를 사용해서 환자와 치료자사이의 동반자적 관계를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무엇때문에 정신분석에서는 장의자를 그처럼 고수하고 있습니까?"
Brocher: "정신분석에서는 두가지 이유로 장의자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프로이드는 매시간 어떤 사람으로 부터 응시당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이유를 댔었습니다. 그건 프로이드의 합리화이겠습니다만. 실제로는 이렇습니다. 환자는 그자신이 반밖에 알지 못하는 자기 자신과 다른 것들과 어떻게 지내야 될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가 장의자에 누워서 이완할 수 있는 그시간에, 그는 말하자면 홀로입니다. 그뿐 아니라 뒤에 앉아서 보이지 않는 치료자는 원래 환자가 어린 시절에 혼자 두어지게 된 것처럼 홀로 놓아두게 됩니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퇴행과 초기 기억의 회복을 위해 도움이 됩니다.
장의자가 해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저는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모든 해학은 항상 프로이드가 지적한 것처럼 일반 사람들이 뭔가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을 웃음거리로 삼는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당시에 사람들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독일에는 1945년 이후에 처음으로 정신분석에 대한 해학과 만화가 나타난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오랫동안 통신으로 알아보았습니다. 그 해학은 이해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정신분석이 오랫동안 금지돼 있어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죠. 장의자에 대한 농담들은 항상 사람들이 이제 무엇인가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것에 대해서 불안이 없다면 아무런 해학도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프로이드가 [해학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말했듯이 해학은 소위 말하는 불안, 즉 이런 장의자에서 나오게 될 결과에 대해 사람들이 사실 갖고 있는 불안을 우회하는 것입니다. 분석가가 해학의 대상으로 되는 것은 매우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해학의 대상이 되는 다른 직업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분석가 자신이 자기 자신의 직업을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으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한 스위스 분석가처럼 분석가에 대한 만화를 모은다든가 프로이트가 칭한 것처럼 이 [불가능한 직업]의 부조리를 분석가 자신이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유머도 갖지 않은 사람은 이러한 [불가능한 직업]을 전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에서 치료적인 효과가 성공적으로 드러날 때까지는 종종 여러해가 걸린다. 다음은 치료 한회기에서 몇 단면들을 발췌한 것이다.
환 자 : 요즘 저에게는 오래전부터 상당히 나를 사로 잡았던 문제가 다시금 분명해졌어요. 예를 들어 수영장에서 옷을 벗고 수영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면 웬일인지 상당히 불안해져요. 그건 제 가슴이 보통남자들보다 더 많이 튀어 나와서죠. 저는 상당히 위축되고, 그러한 비슷한 기회에는 다시다시 그렇게 되죠. 그럴 때는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제 가슴을 쳐다보고 뭔가 생각할 것같은 상상이 되죠.
Brocher: 형제가 있습니까?
환 자 : 두명입니다.
Brocher: 남자 형제입니까? 아니면 여자 형제?
환자 : 저는 막내예요. 위로 누나와 형이 각각 한 명씩 있어요.
Brocher: 그러니까, 그게 당신의 남성성과 관련있나 하는 그런 생각을.....
환자 : 거기에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데, 의사가 진찰을 하다가 가슴을 보고 그것이 분명히 의학적인 현상으로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우선은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이 의학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누군가 내게 그렇게 정확하게 말해준 것은 처음이었어요. 저는 어쨌든 여자애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아주 나빴어요. 그문제가 큰 역할을 했었죠. 저는 제가 스포츠맨답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많은 여성적인 특성들이 제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지만 저는 아무래도 남성적이지 않은 것같습니다. 근육질의 남자들에게는 사실 전혀 호감이 가지 않습니다. 그것이 제 마음의 모순이며 갈등입니다.
Brocher: 당신의 남성적인 가능성과 여성적인 가능성 간의 갈등말입니까?
환 자 : 네, 다르게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다르진 않게요.외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전형적으로 남성적이거나 지나치게 남성적으로 공격적인 모습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혀 감정이 없는 그런 모습말입니다. 그런 것은 조금도 원하지 않아요.
Brocher: 단지 외모에 관한 겁니까 아니면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남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그런 느낌입니까?
환 자 : 네, 저는 제 몸을 특별히 좋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기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계기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제가 제 부인을 사귈 때 제 신체까지도 받아들여진다고 느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그때는 아마 한번 심각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Brocher: 어린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형님이 맏이라고 그랬지요? 신체 감정이 어땠는지 기억하실 수 있습니까?
환 자 : 사실은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로 체육시간에 느낄수 있었는데요. 제가 항상 꼴찌 중의 한사람이었거든요. . 정말 심각해진 것은 10살 때 김나지움(Gimnasium, 고전어 교육을 주로 하며 국민학교와 대학을 연결하는 독일의 9년제 인문계 중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서는 실제로 24시간 또래들과 함께 지냈고 저녁에 잠을 잘 때나 운동을 할때나 목욕을 하거나 혹은 예를 들어 송구를 할 때에도 전혀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속옷차림으로 밖에서 한팀을 이룰 때 그야말로 저에게는 상당히 불안한 상황이었지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내 몸에 대해서 상당히 강하게 반응했거든요. 그들은 또 비아냥거리거나 놀리기도 했습니다.
Brocher: 형이 있다고 하셨는데, 몇살 위입니까?
환 자 : 6살이요.
Brocher: 그의 외모는 어떠했습니까?
환 자 : 예, 그냥 정상입니다.
Brocher: 형이 체격이 아주 운동선수 같거나 씩씩한 모습이었습니까?
환 자 : 형은 매우 체격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에게서 특히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Brocher: **씨 생각에는 자신을 형과 비교하지 않으셨습니까?
환 자 : 예, 그일은 기숙사에 살면서 일어났습니다. 형과는 거의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Brocher: 형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네요.
환 자: 예, 그는 그 다음부터 항상 어딘가 다른곳에서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아무런 본보기가 될 수 없었죠.
Brocher: 그리고 누나는 몇살이나 위입니까?
환 자: 두살 위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열살에 집을 떠날 때까지 우리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Brocher: 그 시절에 특별히 재미있었던 환상들이 있습니까?
환 자: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는 인형이 살아나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 지금도 기억이 상당히 생생합니다만 - 거기에는 약간 종교적인 요소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충분하게 빌고 굳게 원하면 그때 인형이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형을 밤새 덮어놓았는데,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인형이 살아있지 않은 것을 알고는 매우 실망하였습니다. 그것은 이미 더 이상 인형이 아니라 나중에 가질 아이에 상응하는 것이었습니다.
Brocher: 예, 살아있는 아이는 인형과는 다르죠.
환 자: 예, 그러나 저는 이러한 어린시절의 소망이 정말로 어떻게 해서든지 유지되어 왔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좀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제가 굉장히 낙담했을 때도, 또 제가 불행하게 반했을 때도 또는 어떤 한사람에게 구체적으로 반하지 않았지만, 그랬을때도 그렇다면 ....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을 했더랬죠. 그럴때면 즉시 아빠가 되고 아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상상이 되곤 했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동경과 아이에 대한 동경이 서로 얽혀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부성애적 또는 모성애적 요소라고 부를 수도 있을겁니다.
Brocher: 사실 옳은 이야기를 하셨는데, **씨는 많은 남성들에게 발달되지 않은 특성, 즉 어떤 모성적인 특성을 가졌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문제는 이렇죠: 소위 여성적이라는 것, 혹은 **씨가 여성적 특성이라고 체험하는 것, 그런 것이 다른 것보다도 훨씬 가치없다고 여기는 이러한 심한 괴리를 아직도 강하게 체험하는 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남자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신 것이 틀림없는 것같습니다. 현실적으로 매우 많은 남자들이 이같은 면이 부족합니다. (여성적인 것이 너무 부족해서) 여성들이 그들을 떠나고, 남성들의 감정적인 면은 자신 스스로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할 정도로 미숙합니다. **씨는 아 까 열등감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죠. 도대체 그것을 어디서 잽니까?
환 자: 저는 지금 저의 상태에 그런 개념을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Brocher: 처음에는 그렇게 들렸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군요. 환 자: 예. 제가 옷을 벗고 수영복으로 서 있을때 제삼자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그런 감정은 그렇게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여전히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저를 위축시키고 저에게 부담을 주는 약점일 뿐입니다.
Brocher: 그런데 가끔 꿈을 꾸십니까?
환 자: 꿈이 마음에 걸려서 하루내내 신경을 쓰게 하는 일은 드뭅니다. 꿈은 대개 금방 사라집니다. 저는 최근에 꿈을 하나 꾸었는데, 아직도 저에게 약간 남아있고 그 꿈을 그때에 집사람에게 설명했었습니다. 그 꿈을 자세히 기억할 수 없읍니다만은 다음과 같은 주제였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자살하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를 만류해 보았으나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만류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자신이 그 마음을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더 구체적으로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생각나는 것은 현실과는 아주 반대로, 그 친구와 제가 함께 있었고 그 친구가 자살하려고 하던 것입니다.
Brocher: 현실과 반대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는 그가 아직도 살아있습니까, 아니면?
환 자: 아닙니다, 그는 자살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Brocher: 그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했군요.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나중에 알게 됐습니까?
환 자: 기숙사에서 같이 살았는데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그 문제는 저에게도 역시 매우 시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왜 거기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는지 .... 자주 생각해 보았지만 어려운 질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다고 확신을 했던 것같습니다. 아주 간접적으로 그렇게 얘기한 것같습니다. 어떤 특정한 문제 때문이 아니구요 아주 일반적인 염세감정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저는 저를 그와 상당히 동일시했었고 그때 그것은 저에게 실제로 충격을 주었습니다. 제가 뭐 그렇게 달라서 아직도 계속 살려고 하는지 의문입니다.
Brocher: 그러면 지금은 그 차이를 보십니까?
환 자: 삶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라는 점에서는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순전히 실용적인 차이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필요로 하고 어떻게든 삶에 융합됐다는 것을 보는 것이죠. 그러니까 전에는 제가 완전히 홀로 떨어져 있다고 느꼈었죠. 내가 살지 않아도 아무 일 없을 우주속에 그렇게 혼자라고 느꼈습니다. 현재는 인간관계가 있죠. 아마 그것이 차이일 겁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무엇에 좋은지 결국 뭘 가져올지 아무런 내적 확신이 없습니다.
Brocher: 아들과 부인과 맺는 현실적인 관계가 있지요.
환 자: 저는 이러한 관계가 시간적으로 한계가 있고 어딘가 안정의 공중누각이라고 봅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안정의 한 종류 아니겠습니까. 사람을 버텨주는 끈같은 그런 것 말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언젠가는 모든 것이 단번에 날아들 것입니다. 늦어도 제가 죽어야 할 때. 그때는 완전히 새롭게 질문해 봐야겠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그 친구와 차이가 있는지 확실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Brocher: 거기에는 변화도 포함되는 것이 아닙니까?
환 자: 예.
Brocher: 보십시요. **씨는 방금 어떻게 누나와 인형을 가지고 놀았는지 얘기하셨고, 어떻게 적응하며 살았는지 얘기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긴 생활사 과정입니다. 지금은 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계가 있다고 얘기합니다. 제가 잘 모르겠지만, 죽음에 대해서 얘기하실 떄 그게 **씨가 느끼는 어떤 것 아닙니까: 돌이킬 수 없는 방향입니다. 물론 산 것은 죽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새 것이 발생됩니다. 제 생각에 **씨가 안정에 대해서 얘기하시는 것은 옳습니다. 자신 스스로에 의해서 관리될 때만 관계는 안정이 됩니다. 제가 옳게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삶의 불안전성에 대해서 신학교의 신학적인 영향이 있는게 아닌지........
환 자: 글쎄요. 그게 꼭 신학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인간이 항상 위장안정성만 자기 주위에 세울수 있다는 것은 하옇든 기본 사실이라고 봅니다. 아마도 인간은 이러한 위장안정성으로 얼마만큼은 기분이 좋기 때문에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친구가 자살한 것같은 일이 일어나면, 죽음과 같은 그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잊어버리고 다시다시 떠나 살 수 있다는 것을 갑자기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저는 사실 그게 불만스럽습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고 그것이 인간을 모든 것으로부터 앗아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직도 배경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죠.
Brocher: **씨가 얘기하시는 걸로 보면 사실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같은데요:내가 죽음을 받아들이면 언젠가 일어날 개연성으로서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만 그때 비로소 살 수 있다고요.
환 자: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이미 저에게 사는, 무엇보다도 잘 사는, 좀더 의식적으로 사는 것에 대한 조건입니다.
Brocher: 그렇다면은 물론 생각해 봐야겠는데, **씨 자신이 신체에 가지고 있는 자기감정 그것이 과거로부터 유래하고 그리고 자기자신에게 가졌던 과거의 관점이 얼마만큼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지 혹은 없어지는지 아니면 무관해지는지. 무관해진다는 것 그것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씨 안의 어떤 것이 변화하고 성장함으로써 이러한 (옛) 의미를 무의미하게 탁 놓아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에서는 신체적인 열등감과 이 학생의 불안전감과 회의로 뒤덮여진 삶의 감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치료의 과제는 이러한 연관성이 의식에 드러나게 함으로써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전이"와 "저항"과 같은 개념은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토비아스 브로허와의 대담
Brocher: 전이란 비단 정신분석에서만 일어나는게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의 주변환경 속에서 항상 자기가 살아온 것과 같은 감정과 관계를 재조성하려는 경향을 가졌습니다. 그러니까 감정의 차원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무의식적으로) 전가 시킵니다. 그러한 전이현상은 직장에서도 볼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을 좋은 엄마로 어떤 사람은 나쁜 엄마로 또 다른 사람은 나쁜 형제로 여겨집니다. 그러한 전이는 저 절로 일어납니다. 정신분석 과정에서는 어떤 환자든 치료자에게 긍정적 및 부정적 전이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것을 다음과 같이 간략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분석가는 환자가 이것저것 입어볼 수 있는 여러가지 의상을 위한 옷걸이와 같은 것입니다. 때로는 근사한 옷이 걸리기도 하며, 종종 허수아비가 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분석가는 견뎌내야 합니다. 분석가가 그것을 견뎌냄으로써 환자가 그것이 결코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되며, 아하, 그것은 오히려 내가 과거로부터 잘못 끌고 다닌 것이로구나, 내가 편해지려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걸고 싶어 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이라는 것입니다. 정신분석은 전이현상을 다루면서 작업합니다.
저항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저항은 분석되어야 할 어떤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자신을 안주시키는 어떤 특정한 방어형태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이미 성격구조 속에 꽉 자리 잡고서 절대로 도저히 알고 싶지 않은 나에 관한 내용, 그래서 오래 전부터 눌러 없앤 내용을 내가 어떻게 계속 옆으로 밀치고 있는가를 꿰뚫어 보는것에 저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예를 들면, 환자가 와서 자신의 고통을 얘기하고 건강해 지고 싶다고 하고 치료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그는 분석 받고 분석하는 모든 작업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Pongratz: 정신분석은 다시다시 공격을 받아왔고 사람들은 정신분석을 외면했습니다. 새로운 한 방향은 행동주의와 정신분석에 대한 반동으로 제3세력으로서 일어난 인본주의 운동입니다. 인본주의 심리학은 정신분석이 결정론적이고 기계론적이라고 비판하고, 인간 삶의 실제속에서 인간 전체가 아닌 일부만을 본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여 근본적으로 비인간적이다라고까지 말하는데, 정신분석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Brocher: 정신분석은 아주 오랫동안 심지어 정신분석가에 의해서도 그렇게 여겨져 온 것같습니다. 그외에도, 정신분석의 테크닠이 많은 사람들에게 물론 잔인하고 비인간적으로 보여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해석도 양보됨이 없고 사실은 분석가가 환자 스스로가 하고 싶지 않은 일 즉, 알고 싶지 않은 자기를 대면하는 일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에 대해서 어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진실과의 투쟁, 이러한 기억과의 투쟁이 바로 정신분석의 원래 과제입니다. 나중에 개발된 아주 많은 방법들은 인간의 삶을 희석시키고 근본적으로는 인간을 돕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영혼 내적인 경험의 진실을 거스르는 얼마나 깊고 깊은 저항이 뿌리박혀 있는가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분석이 모든 비난과 저주를 받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정신분석의 몰락에 대해서 이미 1928년에 Benke씨가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면 Eeissler가 매개변수(parameter)로 지적한 변화들이 있고 또 이러한 변화들은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변혁을 가져왔습니다. 이 사회는 개인의 행동에 일부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사회적 요소가 (개인 안으로) 들어 오게 됩니다. 그렇지만 정신분석에 가해지는 비인간적이라는 비난은 오히려 소위 "차거운 분석가"라는, 대부분 지금은 쓰고 있지 않은 방법을 아직도 사용하려는 일부 분석가들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예를 들면 고전적인 보수파와 Kernberg 혹은 Kohut사이의 논쟁이 있습니다. 이논쟁은 정신분석이 얼마나 분석가와 환자 사이의 관계에 의존하느냐 그리고 분석가와 환자 사이에 무엇이 움직이고 있느냐하는 것을 명백히 하려는 시도에서 나타납니다. 나도 후자가 좀 더 그럴듯하고 옳다고 봅니다.
Pongratz: Brocher씨, 당신은 많은 책을 쓰셨습니다. 당신은 정신분석이나 심리치료 전반에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 당신은 사회심리학적인 관점에 의해 정신분석의 이론 및 적용에 있어서 결함을 메꾸었습니다. 아마 거기에 대해서 좀 얘기해 봐야겠습니다.
Brocher: 예. 그 점이 정신분석의 부족한 점이었습니다. 그것은 내 생각에는 프로이트와 아들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는 것같습니다. 아들러가 그러한(사회심리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의 아이디어는 개인심리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기본적으로는 K nkel의 초기저서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나는 거기서 정신분석이 모든 것을 심리내적인 갈등으로 보고 현실의 일부를 제외시키려하는 위험에 쉽게 빠질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요즈음 나의 바램과 나의 작업은 원래의 정신분석의 활용에서 개발시킨 사회심리학을 훨씬 더 넓게 활용하려는 데 있습니다. 1920년대에 사회심리학적인 것이 제외됐었습니다. 요즘은 예를 들면 집단치료의 형태로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식, 그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서 그가 고정행동양식으로 반응하게 하고 그리고 그것을 개인분석에만 귀환시킬 수 없다는 그런 의식에서 집단치료 형태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사회적 요소를 - 그것을 대상관계(object-relation) 또는 그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아동기 경험이 성인의 삶으로 어떻게 옮겨가며 성인의 세계를 구성하게 되는가 하는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요소를 통해서 강박적인 것, 오해같은 것이 결혼생활에서 혹은 직장생활에서 공동생활이면 어디에서이건 간에 보유되고 유지됩니다. 이러한 관점은 정신분석의 진실된 의미를 확장하고 명료화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즉 정신분석은 한 개인의 고통을 제거시켜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입니다. 그것이 먼 길일지라도.
Pongratz: 정신분석의 인간상은 어떻습니까? 어떠해야 한다고 봅니까?
Brocher: 정신분석에서 바라보는 인간상은 자유의 상(a picture of freedom) 그러니까 가능성의 자유입니다. 내가 자주 응용해온 한 상을 가지고 설명해 보겠습니다. 사회, 가정, 우리 생활조건이 많은 문화권에서는 단지 감옥을 만듭니다. 인간은 물려 받은 감옥 속에서 내면에는 갑옷을 두르고 그 속에서 숨막혀 죽어가면서 자유를 잃어가는 그런 존재입니다. 정신분석의 과제는 인간을 매달리게 하고 그럼으로써 자유를 앗아간 그 모든 찌꺼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미대륙에서는 이것이 훨씬 간단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거에서부터 매달려 오면서 끊지 못했고 이로써 자유와 창의성을 앗아간 자신의 껍질을 깨기 위해 분석을 받으러 온다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자기이해의 목표일 것입니다. 인간의 자기이해라는 것은 부모와 선생님과 주변환경 그리고 사회가 부과한 것보다도 더 자유롭습니다. 이러한 인간해방의 목표는 정신분석의 원래목표이며 또 여전히 그럴 것입니다. Anna Freud와 오랫동안 친구였던 Willi Hoffer는 분석은 자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장수케한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나도 이 말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묶여 있던 에너지가 갑자기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에너지를 뭔가를 밑으로 누르는데 사용합니다. 나의 원래 스승인 Felix schottl nder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자신의 새끼발가락에서부터 머리털 끝까지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 들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일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습니다. 만약 뭔가 잘못됐다, 나는 좀 더 나아야 되는데, 혹은 왜 나는 그렇지가 않지라고 생각하는 한, 나는 나 자신을 아직 받아 들인 게 아닙니다. 정말 분석의 목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고 거기서부터 변화를 감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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