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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슬로우와 뉴에이지 관련성 글

매슬로우와 뉴에이지 관련성 글
 
아래 글은 뉴에이지를 옹호하는 글입니다.
글을 퍼온 것은 매슬로우와 뉴에이지의 관련성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는 이미 뉴에이지 철학자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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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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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장 물병자리 자녀들의 영적 모험
자료출처 http://user.chol.com/~kaplan/data/newage7.htm
 
 뉴에이지 운동은 그리스도교적인 요소로 구성된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태어났다. 그러므
로 그 진행과정에서 그리스도교와의 충돌은 필수불가결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교는
형이상학적이며 종교적인 인간의 갈망이나 기다림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생각
되어 왔다. 이런 문화적인 상황에서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초종교적이고 수많은 종교의 다양
한 예배를 받아들여 현실에 적응시켜 사용하는 윤리적·영성적 인본주의를 제의한다. 뉴에
이지가 주장하는 신적이며 인본적인 세계 종교는 각 종교의 신앙고백을 차별없이 받아들여
선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들은 창조적 에너지 안에서 신을 믿으며 내적인 도덕률에
순종하며 모든 이들이 인식하는 인간 가치에 존경을 표명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나자렛 예수 안에 나타난 인간의 육체를 취한 하느님의 결정적인 계시에 대한 교리를 거부
하고 배척한다. 또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종교를 거부하며 개인 스스로 신비적인 것을 탐구
하여 구원되도록 종용하고있다. 

 1. 체계적인 종교 밖에서 신비에 대한 연구
 퍼거슨은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현실을 초월하는 신비적 경험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
안에 이 신비로운 경험을 조화시키고 있다.
 짧은 순간이라고 하더라도 신비적 경험은 이러한 것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영적인 탐구가
가능하며 타당하다는 것을 보증해 준다." 
 ▣ 영적 모험
 이런 식으로 뉴에이지 추종자의 새로운 영적 모험이 시작된다. 결국에는 뉴에이지 운동 역
시 조직적인 종교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들이 1975년 10월에 열린 국제연합(ONU)의 '영적 지도자의 모임' 연단에서 선포한 선언
서를 보면 뚜렷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맞는 위기는 모든 종교, 문화, 국가의 한계를 초월해 새로운 영적 형태의
세계종교를 태동시키고 있다. 이것은 인간공동체의 하나됨과 새로운 의식을 위한 것이다. 우
리는 이제 우리를 고립시키는 모든 것을 떠나 행성적 의식을 탄생시키기 위해 새영성의 필
요성을 절감하고 이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이 위대한 '깨달음'은 다른
깨달음들처럼 '권위에 의해 주어진 영성(그리스도교)에서 개인의 직접적 경험에 기반한 영성
으로 변화'를 의미한다.

 그래서 의식확장을 통한 새로운 지식의 습득을 강조한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코플로니츠
(Herbert Koplonitz)는 이러한 의식을 '생동하는 단일 사상'이라고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도
교는 우리에게 탁월한 길을 제시하는데, 아주 제한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과거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봄으로써 '깨달음'으로 인간을 초대한다. 융(C. G. Jung)은 그
것을 인간의 의식수준이 발전한 결과로 보고 '초인격적'이라고 부른다. 심리학에서는 가시적
세계의 이면에 있는 본질적인 실재에 도달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신비 상태와 두뇌작용
 이러한 전망 안에서 신비적 상태는 두뇌 작용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 상태는 '주의력을 통제하는 대뇌엽과 림빅(Limbic) 지역, 대뇌피질과 두뇌 조직'의 상호
관계를 통해서 가능하다. 따라서 뉴에이지 추종자에게 신비적인 차원이란 두뇌반구의 생화
학적 작용을 조작함으로써 얻어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뉴에이지에서 영적이며 명상
적인 훈련인 '불교의 선, 요가,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 초월명상, 수피즘, 카발라(Kabala)'
등은 두뇌 작용을 변화시키는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이러한 효과를 더 빨리 터득하
는 방법, '깨달음의 영원한 길로 들어서기 위한 길로서'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마약복용을 권
장한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환각제 사용에 따른 황홀경의 경험은 정신작용을 확장시킨다.
환각제로 말미암은 정신작용에 따르면 '우주를 마치 신적 회기로서 혹은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끝없는 시각으로 여기게 된다.' 이런 전망에서는 참회 역시 두뇌의 변화, 신비적 경험
은 의식을 확장시키는 것, 기도는 두뇌의 조작에 불과하다. 또 영성생활은 정신작용의 과정
이고 하느님은 에너지, 기의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물병자리(아쿠아리오) 추총자들은 20세
기초반의 과학주의와 과거의 실용주의를 거부하지만 위의 관점을 고려할 때 그들이 내세우
는 이론은 과학주의나 과거의 실용주의와 매우 유사하다.

 ▣ 교의를 부정하는 지식
 뉴에이지에서 사용하는 영적 모험에서는 신앙의 확실성이나 계시의 진리를 기대할 수 없
다. "이것이 지니는 더 큰 위험성은 사람들이 그들이 찾는 것에 대해 해결책을 주는 어떤
확실성에 설득당하게 되면 그 이상의 것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데 있다."
 물병자리 모험가들에게 "영적인 경험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일정한 교의가 없는 지식이
다." 그들이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교의는 이 세상의 어떤 종교도 완전한 진리가 없다는
확신이다. 그리스도교처럼 특별하게 초월적인 계시 위에 설립된 종교라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교의에 휘말려 버리는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 이외의 다른 것을
알아야 하며 모든 종교의 핵심적인 진리를 뽑아 내야 한다."  뉴에이지가 여러 영성에 흥미
를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동양적인 것은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서  예를 들 수 있는 전형적인 사람은 비에(Jean Bi?)이다. 그는 간디의 비폭력과  허
버트(Jean Herbert)의 전통적인 힌두교, 파월스(Louis Pauwels)의 스토이즘, 데자르댕
(Arnaud Desjardins)의 자신을 알기 위한 요가, 길라베르(Emile Gillabert)의 그리스도교적
영지주의를 소개하고 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이 저자들 모두는 믿을 만한 출처에 따라 쳇바퀴가 서로 연결되어 중심을 향해 돌고 있듯
이 모든 존재가 그 곳에서부터 나오며 모든 존재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유일자 자체, 유일한
중심에 대해 알고 있다. 그리고 외부세계란 우리자신의 투사에 지나지 않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좀더 낫게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변화되어야 하
며 진정한 혁명이란 내적인 것, 정신 심리질서에 따른 것이라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
다."

 ▣ 하느님은 우주 에너지, 우주의 기(氣)이다
 뉴에이지의 '신비' 경험의 중심에는 하느님을 우주 의식이나 우주의 영으로 받아들이는 사
상이 있다. 그것은 마치 하느님을 하나의 "유동적이고 통합적인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인간의
삶과 죽음의 영원한 만화경이자 궁극적인 존재로, 존재의 근원이고 웠츠가 정의한 것처럼
모든 소리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침묵으로 생각하고 있다.

 뉴에이지에서는 하느님은 우주의 회기인 릴라의 형태로 나타나는 의식이다.
또 하느님은 물질에 영혼을 불어넣고, 모든 것을 관할하고 조직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체로 설명된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하느님을 체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말은 뉴에이
지가 주장하는 하느님이 범신론적이라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또한 힌두교의 브
라만을 서양의 표현으로 묘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하느님을
'우주 안에 존재하는 의식의 총합체'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공론은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돌
아온 사람들의 경험을 상기하게 한다. 그들의 경험에 따르면 하느님은 사랑과 이해로 표현
될 수 있는 따뜻한 빛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바로 비인격적이며 우주의 영으로 정의되는 뉴에이지의 전형
적인 표현이다.
 물병자리 공모자들은 세상 어디서나 신비적 경험과 영적 방법이 서로 만나고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즉 그들은 현대가 인간 역사의 장이 넘어가는 길목이며 '신적 잠재력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시기라고 주장한다.

 2. 특수한 형태의 영성
 앙드레 말로는 21세기가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시대가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새로운 시대는 외적으로는 단순해지지만 내적인 삶은 아주 풍부해질 것이다."
 사실 물병자리(뉴에이지) 추종자들은 내적인 삶이나 명상, 영적인 연구에 대해 많이 언급한
다.

 ▣ 밀법전수적인 영성
 뉴에이지 영성은 트로엘치(E. Troeltsch)나 웨버(M. Weber)의 사회적 분류에 따르면 '밀법
전수적이고 신비적인' 영역에 속한다. 불투명하고 모호한 '신비적인' 뉴에이지의 내면성은
'교회'나 '종파'를 형성하는 확실한 조직들과는 완연히 구별된다. 뉴에이지에 따르면 '신비주
의자'가 신적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보편적이고 관용적인 정신으로 개인적인 탐구에
의해(어떤 종교 집단에 소속될 필요 없이) 알려지지 않은 신비를 벗겨 냄으로써 가능하다.
(그들은 여러 종교들을 혼합하여 자신의 특유한 꿀을 만들어 낸다.)
 그들은 조직적인 종교에 소속되려고 하지 않고 종교의 엄격한 교리에 동조하지 않는다. 또
그들은 하나의 영성이 싫증이 나면 다른 영성으로 쉽게 바꾸기도 한다. 뉴에이지 추종자들
은 종교의 신앙고백보다는 그들이 따르는 사상을 더 중시한다.

 윤리적인 면으로는 교회법을 따르기보다는 양심의 소리에 따르며 내면에 대한 연구, 명상,
우주적 사랑, 완전한 현존에 대한 기분 좋은 감정에 마음을 자유롭게 투자한다. 물병자리 추
종자들은 가시적인 것 뒤에 숨어 있는 실재, 시간 뒤에 있는 근원, 허무 뒤에 있는 초월, 하
루살이의 삶 이면에 존재하는 태고적 전통, 그리고 한 개체로 존재하는 자아를 초월하여 우
주적, 신적 불씨를 가진 존재를 찾음으로써 이곳, 바로 이 순간뿐 아니라 '다른 곳, 다른 순
간'에도 동시에 존재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것은 끊임없이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바람을
나타낸 것이다.

 밀법전수적 영성은 존재들의 구별을 뛰어넘는 유일한 존재에 대한 연구이고, 마치 인간이
잃어버린 완전에 대한 향수와도 같다. 여기서 우리는 영지적 모체를 만날 수 있다. 밀법전수
적인 영성은 물병자리 공모자들에게 전체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사물의 통합을 연구하게끔
하며, 특히 종교 면에서는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초월자를 통합한 '유일 초월자'를 찾도록
하고 있다. 물병자리 자녀들은 역사적 종교들을 다만 영원한 밀교적인 면에서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를 부정하고 역사와 체계에 근거한 모든 영성
을 거부한다. 뉴에이지 추종자들에게 나자렛 예수님은 하느님이 아니며 다만 우주의 그리스
도(우주의 기)가 인간의 육을 취하여 역사적으로 나타났던 여러 영적 스승 중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 식별의 필요성
 유일하고 완전한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시도에서 뉴에이지가 제공하는 기술들은 매
우 다양하다. 어떤 것들은 효과가 있지만, 내적 모험을 찾는 사람들에게 전문잡지들이 제공
하는 여러 상품이나 여러 가지를 혼합시켜 하나로 만들어 제공하는 방법을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면 좌선, 환생의 단계, 차크라의 개방 효과, 수피의 명상법, 라자
요가, 카르마적 점성학을 어떤 비판기준으로 그것들의 가치와 효과를 규정하는가에 대해서
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첫째, 그것들이 현대에 만연한 개인주의 조류와 연관되어 타인에게 개방된 삶을 권하기보
다는 이기적인 자아 도취를 야기시키는 것을 우리는 식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수많은 거짓된 제안들에 휘말려 들어서는 안된다.

 둘째, 뉴에이지가 사용하는 영적 의식확장을 위한 단순한 기법이나 에너지 명상요법으로
영적인 것을 경박한 것으로 전락시키고 있음을 식별해야 한다. 이것은 소비사회에서 사람들
이 편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나오는 수많은 생활소품을 합치는 것처럼 영성을 하나의 신상품
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결국 서양사회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 없는 과잉한 상품
에 '하나를 더' 보태는 격이 되고 만다.
 사실 뉴에이지 지도자들은 이런 상품적인 것보다는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가에 더 합리적
인 이유를 제공해야만 한다.
 셋째, 뉴에이지 공모자들이 인간을 신비 혹은 하느님 쪽으로 밀어붙이는 갈망은 바로 자신
에게 부족한 공허한 부분을 메우기 위한 것이거나 하느님을 우상이나 상상의 대상으로 여기
고 있다는 것을 식별해야 한다. 이때 하느님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원하는 대로 만들어진
신적인 나부랭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경기장의 선수들이나 가수들이 대중 종교 안에서 영웅이나 신이 되고 있지 않는가? 인간의
갈망은 자신이 느끼는 흥미에 복종한다. 뉴에이지는  '영적'·'신적'·'종교적'이라는 말을 사
용함으로써 공허한 것을 메우려고 하는데, 이것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이 도사리고 있
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명명되는 건축가의 신, 자동차의 신, 법률의 신들은 동양 영성이라
는 가짜이름으로 제공되는 기법에서 얻어진다. 이것은 '신비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영적 위조
지폐와 같은 감정으로부터 나온다. 여러 문화권에 있는 진정한 영적 스승들은 인간을 다른
존재로 향하게 하고 인간 안에 있는 무한성의 표징을 알게 함으로써 사고를 고착시킬 위험
이 있는 상상적인 사물들로부터 해방되도록 도와주는 데에 앞장선다. 감정적인 것과 영성적
인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뉴에이지가 가치를 두고 있는 '절정 경험'은 영적
경험, 신비경험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 절정 경험이 신비 경험인가
 물병자리, 즉 뉴에이지로 들어가는 표징 중의 하나는 인간의 의식변화와 확장의 다양성이
다.
 퍼거슨은 1975년에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미국 성인의 40퍼센트 이상이 기쁨, 평화, 강한 애정 그리고 새로운 세상이 닥쳐오고 있다
는 것에 대한 확신 등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이러한 제
한적인 경험을 '초월적' 혹은 '초인격적 경험'이라고 스스럼없이 규정한다. 그들은 의식의 새
로운 '깨달음', 즉 빛, 사랑, 친교, 에너지, 영원성에 대한 느낌을 원하고 있다. 이런 상태는
두뇌에서 산출되는 물질들의 변화로 측정 가능하다. '의식에 대한 의식집중'이라는 수많은
요법들이 이곳에서 발견된다. 다시 말하면 자생적인 단련, 명상, 환각제 마약 사용, 심리요
법,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것들을 열거할 수 있다. 인간을 순간적으로 자극하는 발작적인 경
험을 신비 경험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두뇌의 생화학적인 조작을 초자연적 경험의 문으
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 내면의 충족을 신비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
는가?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절정 경험을 마치 초자연적 실재에 나아가는 경험이라고 착각하
고 있다.

이러한 연구의 근원은 미국 심리학자 머슬로(Abraham Maslow)가
1956년 절정적 강한 감정이 한 개인의 인격적 삶을 완전히 바꾼
사례를 연구함으로써 시작된다.
사실 이런 탁월한
순간에 신적인 것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는 전형적인 인격유형을 가진 몇 사람
을 인터뷰했다. 행복을 유지한 이들은 여러 환경의 사람들인 스포츠인, 예술가로서 대양과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 사랑이 넘치는 대화로 자신을 실현한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어떤 순간에서 충만한 순간인 절정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이 연구 결과 자기 실현의 최상
의 순간에는 수많은 종교적인 특징이 숨어 있는 것을 알게되었다.

 절정 경험은 위대한 사랑을 만난 것처럼 마치 인간 실존 전부를 재조직하고 구성하는 절대
자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마치 음악을 주관하는 신을 만났을 때 느끼는 영감과 같은 것으로
하늘로부터 거저 주어지는 선물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은 또한 '은총의 상태'처럼 마
음의 평화와 평온, 그리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낳는다. 그리고 우주 전체가 하나로 통
합되는 것과 같은 생동적인 감정을 솟구치게도 한다. 그것은 초월적이고 우주적인 시야를
갖는 느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종교적인', 원천적 상태라고 말하는 데 이의를 제기
하는 사람이 있을까?

 여기에서도 이러한 경험들을 수없이 다룬 영적 스승들의 충고를 들어 보아야한다. 그들은
이런 경험들을 선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위대한 종교의 영적 스승들에 따르면, 이런 경
험은 인간 안에 내재하고 있는 비이성적인 것을 원하는 경향과 자발적인 종교성의 구미를
만족시켜 줄 뿐이라고 말한다. 자연적 종교성은 꿈에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 오늘날 어느 곳
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꿈은 신비적인 것이 아니다. 절정 경험들은 단순히 진한 감정
을 제공한다.

그러나 종교 경험의 진정한 가치는 그 경험의 진한 농도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내를 가
지고 계속 정진하는 것으로 측정된다.

 우리가 영적인 것과 감정적인 것 사이의 질적 차이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초기 물병자리(아
쿠아리오) 추종자들이 사용하는 환각제 LSD-25 복용으로 나타나는 '초월' 상태를 연구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 환각제와 신비 경험
 환각제 LSD는 나와 우주가 완전히 일치되었음을 느끼게 하는 강한 의식을 위해 사용된다.
다른 환각제는 주체의 정신을 흐리게 함으로써 신비적·환상적 세계를 보게 하는 데 반해,
LSD 환각제는 주체를 자신에게 집중하여 명상적인 상태를 만들어 낸다. 그 효과는 종교언
어를 사용하여 비유적으로 해석해 보면, 천상적 기쁨의 느낌, 모든 것이 통합된 의식 상태,
시간의 개념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느낌 등으로 나타낼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이것은 벌써 무당이나 수피들의 춤 안에서 볼 수 있는 신비적인 상태로 해
석되기도 했다. 모든 종교는 신자들에게 자신을 봉헌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돕기 위해 음
악, 단식, 침묵, 빛 그리고 어두움 등을 사용한다. 사실 물질을 사용한다는 면에서 볼 때 저
변에 흐르는 사상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목적과 그에 따른 효과는 전혀
다르다. 환각제(LSD)가 일으키는 신비경험은 가끔 다음과 같은 경향을 가져온다.
 1) 자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 자신 안에서 황홀경을 위한 예배의식을 발전시킨다. 반면
진짜 신비주의자들은 자아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에게 개방된다.

 2) 환각제에 따른 경험은 세상에서 이탈을 강조하는 반면에 신빙성있는 종교 경험은 인간
을 사회의 일원으로 사회 안에서 활동하게 하며 그의 일상적인 삶에 활기를 부여한다.

 3) 환각에 따른 경험은 가끔 자연주의자들이 실행하는 예식들을 절대화시킨다. 예를 들면
그리스인이나 이란인들이 소마(Soma)나무를 신성하게 여기듯이 멕시코나 남아메리카 인디
언들은 페요테(peyote)환각제 나무를 신성한 것으로 여긴다. 이 방법은 멕시코 인디언의 주
술사 카스타네다와 함께 뉴에이지의 밀교전수식의 주제가 되고있다. 그러나 확실한 영성에
서 명상이나 봉헌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들은 그 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고 다만 최종 단계를
위한 단순한 도구로서 사용될 뿐이다.

 '절정 경험'의 또 다른 측면은 이 경험을 한 사람들이 이것을 신비적 경험이라고 쉽게 표현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른 언어로는 이러한 상태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절정 경험
을 갖기 이전에 알고 있던 종교용어를 뉴에이지에서는 그들의 경험을 표현하는데 사용한다.
어떤 신비가들은 영적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랑의 언어를 사용한다. 뉴에이지는 이것을
인간의 삭감할 수 없는 종교적인 차원을 나타내는 '신비적'이라는 말로 대치하고 있다.

 ▣ 영적 정진의 개인화
 물병자리(아쿠아리오) 시대의 영성은 뉴에이지 추종자들이 구축하기를 원하는 세계(우주)
종교 영성이다. 그 영성을 깊이 살펴보면 하나지만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각자가 인격의 변
화를 위해 고유한 사다나(Sadhana: 탄트라 불교에서 사용하는 명상을 통한 자기 실현법-역
자주)를 따른다.

 뉴에이지 추종자들에게 환생은 본유의 영적, 도덕적인 발전을 위해 불가결한 것이다. 사다
나의 목적은 바로 의식 확장이나 자아 실현, 그리스도적 의식, 혹은 뉴에이지로의 깨어남이
라고 규정되고 있는 신비적인 깨달음이다. 뉴에이지 추종자들에게 상승의식을 얻는 것은 모
든 실존에 영을 불어넣는 우주 에너지, 겉으로는 다양하게 보이는 것을 통합하는, 형이상학
적인 통합 안에 다시 각성됨을 의미한다.

 우리들이 이미 본 것처럼 뉴에이지의 많은 추종자들은 하느님을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시
키는 원칙으로, 모든 존재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세력과 동일시하고 있다. 또 그들에게 그리
스도교 전통 안에서 나타나는 성령은 내적인 육체 에너지, 기에 불과하다. 반면 뉴에이지의
다른 추종자들은, 정신적인 것이 선하고 육체적인 것은 나쁘다는 이원론적인 견해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물병자리 공모자들에게 인간은 우주 에너지를 흐르게 하는 운하처럼 궁극적 원리가 개별적
으로 외현한 존재이다. 셜리 매클레인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행동하십시오." 또한 초월명상의 마하리시 요기는 제자들에게
"평안히 가거라. 너희들 자신이 바로 하느님이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가 하느님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깨달음에 이른 사람들 
가운데 한 모형에 지나지 않는다. 뉴에이지는 부처, 크리슈나(Krishna)도 특별하게 예수 그
리스도처럼 자신을 그리스도의 차원까지 성취한사람들로서, 그리스도이며 인간 역사 안에
나타나서 인간의 자아실현을 도와준 많은 스승들도 이와 비슷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견해에서 뉴에이지의 전형적인 예식은 여러 영적 스승들이 가르쳐 준 의식변화를
위한 특수한 실행이 동반된 명상법이다. 이것으로는 수피 수도승들을 모델로 들 수 있다. 뉴
에이지는 12월의 성탄이나 하누카(Hannukha) 때 행하는 예배의식을 중시한다. 어떤 뉴에이
지 단체들은 열심히 베일리의 '대주문'을 낭송하면서 뉴에이지 운동을 빛내 줄 다른 신적 존
재의 강림을 기다린다.

뉴에이지 영성의 넓은 범위를 지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운동은 그가 태어난 토양인
그리스도교에 대적하는 것이 많고 특히 그리스도교에 도전하고 있다. 이들은 '하느님의 아
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긍극적인 하느님의 계시를 부정하고 있으며 궁극적 실재에
대해서는 우주적 범신론적인 견해에 입각해 있다. 또 '종교들의 초월적 통합'을 위해 혼합주
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으며 신앙보다 영지를 더 중시하며, 그리스도 본성과 하느님 개념에
대해 그리스도교와는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런 차이점을 잘 알아
차리지는 못하지만 뉴에이지가 우주를 보는 영적 관점과 새로운 영성을 구축하기 위해 새로
운 규칙을 가지고 물고기자리인 그리스도교를 대치하고자 하는 그들의 의도는 금방 알아차
린다. 이러한 의도는 특히 뉴에이지 운동의 선구자들에게서 확실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목적이 오늘날 뉴에이지 운동에 관련되어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중되는 것일까?

 ▣ 몇 가지 빗나간 점들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뉴에이지 운동은 자신들이 나쁘다고 고발하는 소비사회
를 다시 회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에이지는 종교적인 면에서는 가짜 풍자극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것은 영적인 치료나 신비적인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취약성을 노려 염치없이
영적인 것을 상품화하여 상업 행위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대서양을 건너 전세계로
확산된, 뉴에이지의 시장성은 매우 구미를 당기는 것이었다. 뉴에이지 경향의 소책자들은 종
종 과거의 전승 기념물들이 다시 살아난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뉴에이지의 영매들은 세기
초의 접신술을 대신하고 있으며 유체이탈은 18세기의 사람들을 마법이나 최면술로 현혹시킨
메스메리즘(Mesmerism)을 대치하고 있다. 진정한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이것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명상과 적극적인 사고, 신앙을 위한 치유, 새로운 식이요법, 생태학, 신비주의
의 여러 요법들(물론 여기서는 전통 종교의 중요한 원칙들을 빌려 재구성한 요소들도 포함
된다.)을 배합하려고 할 때' 침착하게 사람들을 미궁으로 이끄는 눈먼 수단과 거짓을 구별하
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이와 같은 개념들은 가끔 영적으로 힘든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일시적으로는 완화시킬 수
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마음의 변화에 따른 종교적인 회개와 같은 상태는 결코 얻을 수 없
을 것이다. 뉴에이지의 부족한 점은 바로 계속적인 영적 정진과 훈련이다.

 사실 뉴에이지가 제공하는 것은 사람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는 진
정제처럼 그것이 남용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새로운 마약이나 아편을 가져오게 되
었다. 그리고 진정한 물병자리 자녀들이 주장했던 직관을 나쁘게 변조시켰다. 이러한 전망에
서 우리는 뉴에이지가 과연 인간의 미래를 위한 희망적 언약인가, 아니면 함정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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