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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료1

프로이트와 융의 차이점

프로이트와 융의 차이점
자료출처 http://ask.nate.com/qna/view.html?n=6205082
 
프로이트는 철저한 파괴자였다. 그는 니체의 파괴작업을 최종적으로 완성한 사람이었으며, 심리적 영원회귀의 길을 개척한 선구자였다. 그는 기존의 심리학 학설들을 계승 발전시켰고, 그의 의사로서의 통계적 경험에 의거한 독특한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의 학설은 철저히 철학적 영향들로부터 격리되어 있었으며 오로지 그가 의존한 것은 그의 경험이었다. 그는 매우 철저하고 집요한 사람이었으며 그가 무엇의 영향을 받아 그런 초인적인 정열과 업적을 오로지 그의 학설 "인간의 성욕과 그에 대한 억압이 정신질환을 일으킨다"를 증명하는데 쏟아부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는 사실상 한 기술자로서 의사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에 하나의 가치있는 신념을 만드는데에는 무관심했다. 그는 오로지 파괴에 집착했고 그의 심리적 진단을 거친 모든 종류의 종교와 철학들은 "~에 불과함"으로 귀결됐다.
 
융은 프로이트의 가장 절친했던 동료이자 라이벌이다. 그 역시 의사였지만 프로이트와는 달리 매우 종교적이고 철학적이었다. 그의 논문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풍부한 교양과 지식을 갖추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글은 기품에 넘쳐있으며, 현자의 지혜를 담고 있다. 이는 프로이트의 파괴적인 영웅의 이미지와 대비된다고도 할 수 있다. 그의 관심은 파괴된 잔해 위에 다시 빌딩을 짓는 일이었다.
 
그는 프로이트와는 달리 개인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역사적인 영향들 역시 인격의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민족, 국가 자체를 또 하나의 인격이라 주장한다.
 
그는 프로이트가 개인적인 심리적 경험에서 욕망과 억압의 공식을 도출해 냈듯이 융은 국가적 민족적 신화와 역사 속에서 공통된 이미지(내적인 심연을 파고들어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 있어서.. ex)불교, 그리스도교, 조로아스터교, 그 밖의 갖가지 신화에 내재된 깨달음과 통찰들의 공통적 특징들) 을 도출해 냈으며 특히 유럽의 근대적 신화라고도 할 수 있는 연금술에 대한 연구는 대단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프로이트와 융의 이러한 차이점은 둘을 갈라 놓았고 서로에 대한 비판은 끝이 없었다. 프로이트의 추종자들이 내세우는 융에 대한 비판은 말그대로 융의 심리학에서 일컫는 사회적 역사적 경험이 사실 공통되고 보편적이라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고 융의 추종자들은 프로이트적인 해석의 편협성 즉 한 현상에 대해 오로지 개인적 심리학만을 대입하기에는 한 현상을 완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양쪽 모두에게 타당성이 있는 주장들이며 각기 만만치 않은 통계적 경험적 자료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도 어느 누구의 손을 들어주기는 매우 힘들다.
 
또 다른 비판의 논거는 프로이트는 철저히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오직 심리적 사실에만 집착한다면 융은 철학자로서 가치 창조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즉 이 둘의 시선과 심리학에 대한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야기된 문제인 것이다. 프로이트는 철저히 심리학 엔지니어이며 폭파 전문가이며 이론 그 자체에 집착 한다면 융은 철학자, 사상가로서 건물 설계자이며 이론보다는 심리학의 사회적 효용에 그 가치를 둔다. 즉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대해 철저히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고 모든 종류의 인간적 결함에 주목한다면 융은 깨달음의 통로로서 무의식의 효용과 가치를 강조하고 현대 인간의 결함을 단순한 결함이 아닌 깨달음을 향한 진통이라 여긴다.
 
그 깨달음이란 하나의 전체적 인격의 형성을 이룸을 말하며 이러한 전체적 인격의 형성을 단순히 개인적 경험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성찰에 의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한 연역적 논리의 차이점은 서로에게 비판의 논거로 제시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원초적인 제 1의 논리를 서로가 부정하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견해는 사실 약간은 융에 기울어진 입장이다. 프로이트는 그 업적에 있어 융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심리학자의 것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그의 억압이론은 매우 보편적이며 강력한 이론이고 심리학을 미신이 아닌 정신과학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그의 사상가로서 철학자로서의 기량은 의심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의 이론은 철저하지만 효용이 적고 인간의 행동을 주저하게는 하지만 이루지는 못하게 한다.
 
또한 프로이트는 무의식은 나쁜 것, 이성에 의해 억압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표출된 (이전의 그리스도교적인 편견보다는 완화됐지만..) 부적절한 행동을 야기하는 질료라 규정함은 그의 사고가 19세기적 근대를 지향하고 있으며 20세기적 현대와는 맞지않다. 융의 경우 무의식에 대한 편견 즉 부정적인 시선을 극복한 것에 있어 대단한 공로를 세운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의식을 깨달음을 향한 전인격성을 이루기 위해 없어서는 안될 원소라 규정한 것은 심리학사의 또 하나의 극복이다. 
 
프로이트와 융은 근, 현대의 심리학적 철학적 MONSTERS이다. 감히 이 둘에 대해 사견을 내비칠 수는 있을 지언정 그들에 대한 존경심은 지워질 수 없다. 하나의 이론을 세우고 업적을 이루는 것은 더구나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은 지식 이전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어두운 밤거리를 돌뿌리와 절벽을 두려움없이 거닐어 잃어버린 열쇠를 찾는 일인 것이다. 이 둘은 그 열쇠를 찾아 집으로 돌아온 예외적인 고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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