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심리학 치료기법인 적극적 명상기법
관상 통해 성숙한 신앙인으로 발전 가능…형식만 흉내 내려는 태도 경계해야
김충렬 승인 2007.05.23 16:09
최근 기독교에서 관상기도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관상기도는 영성의 차원을 향상시키기 위한 좋은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으로 지금까지 양적인 성장을 추구해오던 우리 기독교가 내적인 문제에 공허함을 메우기 위한 일환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변화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관상기도는 필자가 80년대 후반에 독일에 유학할 때 이미 독일 교회에서 시행되고 있었다. 그 당시에 필자는 독일 교회가 피로한 가운데 명상의 측면으로서 동양적인 방법을 기독교에 접목했다는 수준에서 이해하고 말았다. 그런 생각이 필자가 칼 융(C.G. Jung)의 분석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달라졌는데, 그 이유는 '마음의 상을 본다'는 관상(觀像)이라는 용어가 분석심리학에서 사용하는 개념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분석심리학 치료기법의 하나인 적극적 명상기법을 소개하여 관상기도의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1. 환상에서 무의식과 대면
적극적 명상은 분석심리학에서 시도하는 치료기법의 하나다. 분석심리학에서는 분석적 치료기법을 일반적인 기법과 특수적인 기법으로 구분한다. 일반적인 분석기법에는 암시분석기법과 변증접적 대화기법이 있다. 암시기법에서는 암시적인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는 다시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암시분석과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암시분석으로 구분된다. 그 반면에 변증법적 대화분석기법은 내담자가 자기를 발견하려는 과정의 하나로서 치료자와 내담자가 간의 순수한 대화다. 이는 서로간의 순수한 대화를 통하여 입장평행적인 방법으로 분석해나간다.
분석의 특수기법에는 꿈의 해석과 응용기법, 그림분석기법 그리고 적극적 명상기법이 있다. 분석치료는 이러한 기법들을 활용하여 의식과 무의식의 만남과 대결, 이를 소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통합하는 개성화(Individuation)를 달성하고자 한다. 물론 이때의 개성화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중심이다. 분석가는 내담자의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 이를 동화시키려는 목적으로 꿈을 분석하며, 그림분석의 해석을 시도한다. 여기에 적극적 명상은 내담자가 명상을 통하여 무의식을 직접 체험해보는 방법이다. 이런 점에서 분석심리학의 적극적 명상기법은 더 높은 차원의 자기성찰의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적극적 명상에서는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나 환상, 강박관념, 백일몽 등의 내용들을 경계하고 아무런 비판 없이 편안하게 명상에 잠겨야 한다.
적극적 명상에서는 환상(Phantasie)이 중요하다. 명상에서는 환상이라는 방법이 필연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인데, 이 환상에는 두 가지, 적극적 환상과 피동적 환상이 있다. 융에 의하면 적극적 환상(aktive Phantasie)이란 능동적인 성격으로서 직관, 즉 무의식을 인지하려는 자세에 입각하여 행해지는 현상이다. 이때 정신에너지인 리비도(Libido)는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모든 요소들을 직접 사로잡으며, 이에 해당하는 모든 요소들을 연상케 함으로써 고도의 명확성과 인식가능성을 부여한다. 피동적 환상(passive Phantasie)이란 수동적인 태도로서 직관적 자세를 미리 갖지 않는 현상이다. 이 피동적 환상은 정신의 해리를 수반하는, 즉 정신이 갈라지는 일종의 분열적 현상이 어느 정도 일어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때 정신의 해리현상은 의식에 대립되어 나타나는 것이며 병리적이거나 이상한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 환상에서는 수행하는 내담자의 적극적인 참여 자세로 인해 해리상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의식 역시 무의식에 대립적 관계도 아니라 보충적 관계다. 이는 차원 높은 고도의 정신활동, 즉 의식과 무의식의 성격이 통합되는 적극적 환상의 작업이다. 적극적 환상의 작업은 분석가의 지도를 받을 필요도 없으므로 명상 수행자가 자아와 무의식과의 대면만을 목적으로 한다.
무의식과의 대면은 무의식에 대립된 의식의 입장을 요구한다. 융은 이에 대하여 환상을 가진 남성 내담자를 예로 든다.
“그는 마치 그녀의 약혼녀가 강 저편에서 길 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있다. 때는 겨울이며 강은 얼음으로 덮여 있다. 그는 얼음 위로 달려 나오는 그녀의 뒤를 따른다. 그녀는 계속 걸어가고 있고 거기 얼음은 구멍이 나 있었다. 그런데 어둠이 내리 깔렸기에 그는 그녀가 넘어질까 봐 겁을 낸다. 실제로 그녀는 갈라진 얼음구덩이에 빠졌고 그는 그런 그녀를 슬프게 보고 있다.”
이 부분은 의식의 태도를 인식하게 만든다. 즉 의식의 태도는 인지적 및 수동적으로 견디게 만드는 상태이다. 이 상태는 환상의 상(像)이 단순하게 보이고 느껴진 상태로서 이른바 이차원적인 것이다. 그 내담자 자신이 환상의 상에 불만족스럽게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환상은 비록 외관상으로 또는 감각적 자극이기는 하나 꿈과 같은 비현실적인 하나의 단순한 상(像)으로 남아 있다.
이런 비현실의 상은 수동적인 상황에서 가능해진다. 내담자 자신이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가운데 있지 않다는 데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환상이 현실이었다면 그는 자살을 수행할 때 자기의 약혼녀를 방어하는 수단으로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쉽게 그녀를 데려올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그녀는 갈라진 얼음 부분을 뛰어넘어 신체적으로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환상에서 취한 태도처럼 현실에서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그는 분명히 정신이 마비된 상태일 것이다. 즉 그녀가 자살을 시도할 때에 거기에 전혀 거침이 없는 공포상태이거나 무의식적 사고의 상태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가 환상에서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태도로 볼 때는 무의식의 활동에 이르는 한 표현이다. 즉 그는 무의식에 의해 매료되고 몽롱해진 상태이다.
그는 현실에서 아무 쓸모없다는 것, 그는 희망이 없는 좋지 않은 유전인자를 보유한 것, 자기의 뇌는 퇴화된 것 등의 모든 가능한 우울한 상상과 확신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은 그가 논쟁할 겨를도 없이 받아들이는 수많은 자동암시와 같은 것이다. 내담자가 지적으로는 그런 자동암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비현실적인 것으로서 인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정적 감정은 계속된다. 그 자동암시는 결코 지적으로 이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자동암시란 지적 및 이성적 기초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의식적 비판에 접근할 수 없는 무의식적이고 비합리적인 환상의 생활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적극적 명상기법의 수행적 태도
적극적 명상기법에서는 상당히 성숙된 자아를 전제로 한다. 이 기법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내담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은 아니다. 그러나 자아기능이 약한 사람은 무의식에 휘말릴 위험도 있어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는 적극적 명상을 시도하는데 어느 정도 성숙된 자아기능이 필요한 이유다. 실제로 적극적 명상은 수행자가 무의식에서 경험되는 여러 현상들과 직면해야 한다. 이때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시각적 환상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며 때로는 청각적으로 듣는 경우도 발생한다. 여기에는 우선 수행자의 자아관조를 통해 환상이 ‘일어나게 만드는’ 현상이 있고, 수행자가 그 일어난 환상이나 환청과 ‘적극적으로 직면하는 것’도 발생한다.
융은 이 방법을 스스로 시도해보았고 제자들에게도 권했다. 특별히 그의 제자 중에서도 한나(B. Hannah) 여사와 폰 프란츠(M.-L. von Franz) 여사 등이 시도하여 이를 임상사례로 발표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한나 여사가 어느 여성을 분석한 인상적인 사례는 유명하다. 심한 환청에 시달리는 이 여성 내담자는 파괴적이고 위험한 소리에 영향을 받았다. 한나 여사는 그 여성 내담자에게 적극적 명상을 시켰다. 내담자는 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져 그가 누구인지, 무슨 이유로 그녀를 괴롭히는지를 질문하며 대화를 시도했다. 이때 파괴적이고 위험했던 소리의 내용은 차츰 감소되고 긍정적인 내용으로 바뀌어 회복되었다. 그 후 그 내담자는 완쾌되어서 결혼하였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적극적 명상을 수행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수행자는 고요한 묵상이나 환상이 ‘일어나도록 함’에 있어서 집중이 가능한 장소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외부영향을 차단시켜 명상에 집중하여 어떤 상(像)이 나타나면, 그 상이 스스로 변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때 수행자는 무의식적 내용을 억압하는 의식의 영향을 약화시키면서 그 상(像)이 어떻게 전개되어 변하는가를 관찰한다. 이때 수행자에게 나타난 상(像)을 인위적으로 지우려고 하거나 거부감을 나타낼 필요가 없이 자연스럽게 직면해야 한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면 그 상은 자유로운 변화를 일으킨다. 만약 뱀이 나타났다면 그 뱀은 그대로 있지 않고 점차 사라지면서 다른 상(像)으로 바뀌게 된다. 이어서 전혀 새로운 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때 수행자는 물론 어둠과 밝음으로 애써 구분하려는 심리적 작용이 수반되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상당한 시간 동안 부정적인 상이 나타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 때문에 수행자는 이런 상을 빨리 지우려고 하는 유혹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때에 필요한 것은 자신의 자아를 더 강하게 인식하는 자세다. 이런 현상을 두고 무의식과의 대면이라고 하는데, 실로 무의식과의 대면은 공포적 대결을 경험하는 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수행자에게 명상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용기와 확신, 그리고 무던한 인내가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자기원형상과 대면
자기원형상과의 대면은 초월적 경험이다. 자기의 원형상이란 자기에 해당하는 특성이 하나의 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자기의 원형상은 개인의 내면, 즉 무의식에 깊이 존재하므로 발견하기에 쉽지 않지만 때로는 그런 자기의 원형상이 하나의 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자기의 원형상은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꿈에서도 나타나고 이러한 적극적 명상을 통하여도 드러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명상의 과정에서 어떤 상을 ‘일어나게 함’이 성공하면 그 상(像)과 함께 행동하고 직면하는 과정에서 신비로운 자기원형상을 대하게 된다. 이를 초월기능의 작용이라 부르는데, 이는 거의 꿈에서 경험하는 것과 같은 유사한 체험이다.
그런 점에서 적극적 명상에서 나타나는 상은 마치 꿈에서 대하는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때로는 수행자 자신이 꿈을 꾸는 것으로 착각될 수도 있다. 그래서 무시무시한 상이 나타나면 그 상을 지워버리기 위해서 재빨리 눈을 뜨고 싶어진다. 실로 명상을 통하여 무의식의 깊은 세계를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체험이 신비하면서도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사람이 신비스런 것에! 직면한다는 것은 희열이면서도 두려움이라는 이중성을 동시적으로 경험하는 특이한 현상이다.
만약 호랑이의 상이 명상에서 나타났다면, 그 호랑이와 대화를 해보아야 한다. 물론 이때 수행자는 공포감을 느끼며 호랑이와 대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대화는 단순히 호랑이와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대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대화를 통하여 호랑이는 다른 상으로 변형되고, 결국 그 상(像)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수행자는 호랑이를 내 자신의 일부로 수용함으로써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를 경험한 것이다. 그 때의 기분은 어떤 것이며 또 어떤 깨달음과 느낌일까?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수행자 본인이 직접 체험하게 되는 느낌과 스스로의 해석이 따르는 경험이다. 이는 이론적인 지식보다는 거의 직감적이고 직관적 작용에 해당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적극적 명상과 관련하여 필자의 경험을 그 사례로 들고 싶다. 7일 단위로 두 번을 시도해보았으나 이를 지면관계상 대략적으로 밝혀야 한다. 첫 번째 7일에서는 조용한 집에서 시도했는데 3일째가 힘들었다. 가족과 격리된 장소에서 본격적으로 물만 마시며 시도했다. 마치 우리 기독교의 금식기도를 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때에 이상한 환상도 보이고 이상한 소리도 들리며 상당한 두려움도 있었다. 뱀의 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표현하기 곤란한 상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등 견디어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3일 후에는 이런 상들이 모두 사라지고 무의식에 깊이 들어갈 수 있어 참으로 고요하고 마음이 평안했다. 이는 진정한 나의 무의식이 나의 자아에 다가옴으로써 새로운 존재의미와 가치를 깨닫는 평안함이기도 했다. 두 번째로는 한적한 바위산에서 시도하였다. 인적을 마주할 수 없는 바위산의 정상에서의 일주일은 마치 무슨 도사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특별히 밤에는 힘들고 어렵다. 밤에 홀로 산에 있다고 생각해보라. 세상을 등진 우주에 홀로 선 외로움, 밤의 적막감, 어두움에 대한 공포, 마음 깊은 곳에서 기대되는 밝은 날에 대한 희망 등이 지배적이게 된다. 이때에 어두움을 혼자서만 대하기에 유난히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여름인데도 춥고 무서웠다. 낮이 주는 평온함과 고요함은 깊은 대지 속으로 들어가는 듯 심오함을 깨닫게 하였다. 그러나 그런 밤에는 명상이 잘 진행되지 않았고 밝은 낮이 훨씬 잘 진행되었다. 물론 밤의 수행은 낮과 밤의 교차로 인한 명상은 현격한 차이가 있어 명상 도중에 신비로운 상념에 이르러 황홀함 마저 느낄 수도 있다. 실로 이 명상작업은 힘들지만 소중한 경험으로 이끄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그 가운데서도 새로운 정신적 에너지와 희열을 맛보는 특이함이 있다.
명상을 밤에 시도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주의를 필요로 한다. 만약 밤에 시도하려면 몇 명이 어울려서 각기 다른 장소를 찾아 하는 것이 수행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필자는 기도원의 야산 금요밤기도(밤 11시∼새벽 4시)를 3년여 세월을 계속적으로 훈련한 경험이 있어 융의 적극적 명상에 대한 경험을 소중히 생각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어야만 한다. 분석심리학의 적극적 명상법은 기독교의 기도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그 차이는 일단 그 대상이 뚜렷이 다른 점을 들어야 한다. 즉 기도는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명상은 자신, 무의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인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 명상에서도 자신과의 대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 뚜렷한 차이가 큰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지만 질적으로 다른 점이라는 점에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확실히 관상의 기도는 우리의 모습을 깊이 관조하는 좋은 방법이다. 이런 기도를 통하여 깊은 내면에의 충만과 희열을 경험하므로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발전할 것이다. 다만 그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채로 형식적 흉내를 내려는 태도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런 노력들을 통하여 시대를 힘 있게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되기를 기대하고 싶다.
김충렬/ 한국상담치료연구소(www.kocpt.com)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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