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와 에니어 그램....
남현우 | 2006·04·30 17:33 | HIT : 1,417 |
방금 전에 어떤 분이 에니어 그램과 뉴에이지 에서 질문하셨는데,
제가 답글을 달려고 보니 글을 지우셨나보군요...그래서 뉴에이지에 대해 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에니어 그램이 뉴에이지로서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리기 위해 답글로 올리려던 글을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아래는 교황청 문화평의회, 종교간의 대화평의회 에서 2003년에 나왔던 문헌인 '생명수를 주시는 그리스도'에서
일부 발췌하여 정리하였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영적으로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많은 분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에니어 그램의 경우는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분명히 상충되는 것이다.
6) 그 한 예로 애니어그램을 들 수 있다. 9가지 유형의 성격 분석 도구인 애니에그램을
영적 성장의 한 도구로써 사용하게 되면 교리와 그리스도교 신앙 생활에 혼란을 가져온다. " 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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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의 그러한 시도는 그리스도교 계시에 어긋난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특히 서구 문화에서는 '기존과 다르게'(alternative)영성에 접근하는 방식이 강한 매력을 얻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심리적으로 개인을 긍정하는 새로운 형태들이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
심지어는 피정의 집이나, 신학교, 수도자 양성 기관에서도 성행하고 있다.
뉴에이지 사상과 관행은 그리스도교적으로 식별해 볼 때 2-3세기의 영지주의처럼
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해 온 사상들을 요약해 놓은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이른바 뉴에이지를 가장하여
고대 영지주의 사상으로 회귀하는 것"에 대하여 경고하셨다.
우리는 이것으로 종교의 쇄신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이는 단순히 영지주의를 실천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
이러한 정신 자세는 하느님을 깊이 알고자 한다는 미명 아래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그 말씀을 순전히 인간의 말로 바꾸는 결과를 가져온다.
때로는 철학적 운동의 형태를 띠기도 하지만, 흔히는 분명히 종교나 유사종교의 특징을 띠며,
이러한 특징은 명시적이진 않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분명히 상충되는 것이다.
6) 그 한 예로 애니어그램을 들 수 있다. 9가지 유형의 성격 분석 도구인 애니에그램을
영적 성장의 한 도구로써 사용하게 되면 교리와 그리스도교 신앙 생활에 혼란을 가져온다.
각주 6) 요한 바오로 2세, '희망의 문턱을 넘어서'(Crossing the Threshold of Hope), Knopf, 1994, 90.
뉴에이지 사고의 본질적 모체는 18, 19세기에 유럽 지성계에서
상당히 널리 받아들여진 밀교적 신지학적 전통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 가운데에는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칼 구스타프 융도 들어 있다.
제임스는 종교를 교의가 아닌 경험으로 정의하였으며,
인간이 자신의 정신 자세를 바꾸면 자기 운명의 설계자가 될 수 잇다고 가르쳤다.
융은 의식의 초월적 성격을 강조하고 집단 무의식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사실, 융은 “밀교를 심리학적으로 고찰하였을 뿐 아니라
심리학을 밀교 이론의 내용으로 채움으로써 심리학을 신성화하였다.
그 결과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의미하고,
자신의 영혼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신성을 의미하게 하는 이론체계가 나왔다.
영혼이 ‘정신’이고 하느님도 ‘정신’이라면, 하나를 말하는 것은 곧 다른 하나를 말하는 것과 같다.33)
그리스도교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하였다.”는 비난에 대하여 융은,
“심리학은 현대의 신화이며 현대 신화의 관점에서만 우리는 신앙을 이해할 수 잇다.”34)고 대답하였다
융의 심리학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여러 측면, 특히 악의 실재에 맞설 필요성에 관하여(빛을)
밝힌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의 종교적 신념은 그의 삶의 단계마다 너무 달라서
하느님의 이미지에 혼란이 생긴다.
그의 사상의 중심요소는 태양숭배로서, 거기에서 하느님은 인간 안에 있는 생명 에너지(리비도)이다
심리학과 영성을 서로 바꾸려는 경향은 ....
......동양 종교와 융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자아 초월 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은
과학과 신비주의가 만나는 관상의 여정을 제시한다.
영체성(靈體性)에 대한 강조, 의식확장 방법의 추구, 집단 무의식의 신화에 대한 관심은
모두 인간 ‘내부의 신’에 대한 추구를 부추기는 것이었다.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려면, 자신의 깊은 곳에 있는 신이 되기 위하여 자아(ego)를 초월하여야 한다.
뉴에이지는 동양의 종교 관습을 조금씩 받아들여 서구인들에게 맞게 재해석한다.
죄와 구원이라는 말을 거부하고 , 이를 중독과 회복이라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말로 대체한다.
유럽 밖의 영향에 대한 언급은 때때로 서구 문화를 ‘거짓으로 동양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그것은 참된 대화라고 하기 어렵다.
그리스-로마와 유다-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달가워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동양의 영향이 서구 문화의 대안으로 이용된다.
.... 나아가서, 생태 문제의 정치화도 가이아 가설이나 어머니 지구를 경배하는 문제와 전반적으로 맹백히 관련되어 있다.
뉴에이지와 그리스도교 영성
뉴에이지는 이를 하나의 ‘새로운 영성’으로 장려하는 사람들이 흔히 일컫는 말이다.
고대 종교나 문화에서 수많은 개념을 차용해 온 것에 ‘새로운’(new)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모순이다.
이런 의미의 ‘영성’은, 모든 인간이 느끼는 불완전성과 한계 의식을 치유해 주는 내적 경험,
곧 실재하는 모든 것과 조화와 일치를 이루는 내적 경험을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생명의 핵인 우주의 신성한 힘이나 에너지외 심오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를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완성을 향한 길로 나아갈 수 있으며,
그리하여 자신의 개인 생활과 자신이 세상과 맺는 관계를 구분하고,
우주의 생성 과정 안에서, 또 끊임없이 진화하는 세상의 신기원(New Genesis)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역동적 에너지로 싹트는 우주에 대한 의식에 바탕을 둔 우주적 신비주의가51) 생겨난다.
따라서 우주의 에너지, 파장, 빛, 신, 사랑, 심지어 최고 자아등 이 모든 것은 하나이며
동일한 실재, 곧 모든 존재 안에 현존하는 최초의 근원을 가리킨다.
이러한 영성은 두 가지 뚜렷한 요소인 형이상학적 요소와 심리학적 요소로 구성된다.
형이상학적 구성요소는 뉴에이지의 밀교적이고 신지학적인 근원에서 비롯하며,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형태의 영지주의이다.
신성에 대한 접근은 “표면적인 것 이면의 실재적인 것, 시간 너머의 기원, 덧없는 것 너머의 초월적인 것,
사라질 전통 이면의 근원적인 전통, 자아 이면의 타자(他者), 육화된 개인 너머의 우주적 신성”에 대한
개인적 추구를 통하여 숨겨진 신비를 이해하게 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영성의 심리학적 구성 요소는 밀교 문화와 심리학의 만남에서 비롯된다.(앞의 2.3.2 참조).
따라서 뉴에이지는 종교적 경험과 비슷하게, 개인이 심리적 영성적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 위기가 오랜 영적 구도 끝에 깊은 신비 체험을 통하여 이러한 변화를 겪는다.
또 다른 사람들은 명상이나 일종의 치료법, 또는 의식 상태를 변화시키고 실재의 일치에 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체험에서 이러한 변화를 겪는다.
이런 의미에서 뉴에이지 영성은 그리스도교적이라고 할 수 없으며,
자기 부정을 수반하지 않으므로 불교적이지도 않다.
신비로운 결합에 대한 꿈은 실제로는 단지 가사의 결합에 그치며, 결국 사람들을 더욱 외롭고 허전하게 만든다.
뉴에이지에서 영성이라는 말은 전체와 결합된 일치감으로 충만한 의식 상태를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신비주의’는 사랑이 충만한 초월적인 하느님을 만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함으로써 생기는 경험 ,
곧 우주와 하나 된 기분 좋은 느낌, 커다란 존재의 바다 속에 잠기는 느낌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59)
신을 위격으로 보지 않는 이러한 내재론적 종교 체계가 제시하는 기법과 방법들은 ‘아래에서’ 생겨난다.
이러한 방법들은 인간의 마음이나 영혼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도록 하지만,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신성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계획이다.
이것은 흔히 ‘내면의 신’에 대한 해방의 깨달음으로 이해되는 것을 향한 의식 차원의 ‘상승’이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기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 혜택은 영적 ‘특권층’에게만 제한 된다.
내면의 하느님’과 ‘신화’(神化: theosis)
뉴에이지와 그리스도교의 핵심적인 차이가 여기에 있다.
많은 뉴에이지 문확은 ‘외부에는’ 실질적으로 나머지 실재와 구분되는 신적 존재가 없다는 확신에 차 있다.
융 이후 ‘내면의 신’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기류가 있어왔다.
뉴에이지는 우리의 문제는 우리 자신의 신성을 깨닫지 못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우리는 우리의 감추어진 잠채력을 발산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고 지도를 받아서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뉴에이지의 근본 사상은 우리 깊숙한 곳에 ‘신’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이며, 우리는 거짓됨의 껍데기를 벗겨 버림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무한한 힘을 발견한다. 63)
이러한 잠재력을 인식하면 할수록 이 잠재력을 더욱 많이 실현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뉴에이지는 신화(神化), 곧 신이 되는 것,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신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고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신에 대한 이해를 내면화하여야 하는 시대,
곧 외부의 전능한 신에서 모든 존재의 핵심에 있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힘인 신,
곧 영(靈)인 신으로 이해하여야 하는 시대” 64)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뉴에이지에 있어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특성을 더 많이 지니고 있다.
신은 더 이상 세상 너머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안 깊숙한 곳에서 찾아야 한다. 66)
또한 ‘신’이 내 밖에 있는 어떤 존재라 하더라도 조종할 수 있다.
우리 안의 신’, 그리고 전 우주와 이루는 전체적인 결합은 이러한 질문을 강조한다.
고립된 각각의 인격은 뉴에이지(특히 자아초월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병적이다.
그러나 “정말 위험한 것은 전체적인 패러다임이다.
뉴에이지는 전체주의적 일치를 바탕으로 한 사상이기 때문에 위험하다….”71)
좀 더 온건하게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볼’때, 또 우리의 선택과 반응이
우리의 가장 깊은 요구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때,
우리의 행동과 감정 표현이 우리의 인격전반에 드러낼 때, 우리는 진정 참될 수 있다.”72)
인간 잠재력 운동은 인간이 신이라는,
또는 인간은 자신 안에 신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그리스도교에서 구원은 자기 체험이나, 명상이나 직관을 통한 몰아(沒我)가 아니라,
오히려 죄의 용서, 자신 안의 깊은 양면성에서 벗어나는 것,
사랑의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의 은혜로써 본성을 다스리는 것이다.
구원의 길은 단순히 자신이 유도한 의식의 변화에서 발견 되는 것이 아니라,
죄와 그 영향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 사회에 내재한 죄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를 움직여 어려운 이웃과 사랑의 연대를 이루어 나가도록 한다.
심리학과 영성을 혼동하는 경향 때문에 현재 쓰이는 많은 명상 기법들이 기도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어려워졌다.
그러한 기법들은 흔히 마음을 즐겁게 하거나 몸을 편안한 상태로 이끌기는 하지만,
기도를 위한 훌륭한 준비일 뿐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그 경험은 참으로 강렬하지만, 이러한 상태에 머무는 것은 혼자 있을 때만 가능하지 아직 다른 사람 앞에서는 불가능 하다.
침묵에 도달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말없이 관상하는 것 이라기 보다는 공허함을 가져다 줄 뿐이다.
또한 자신의 영혼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는 신이 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호소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찾고 계신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면 그러한 방법들은 그리스도교의 기도가 될 수 없다.
이러한 경험이 우주의 에너지와 맺는 관계라고 생각할 때에도,
“하느님의 역할이 우리의 모든 요구를 채워 주는 것이라고 보는 ,
하느님과 갖는 그러한 손쉬운 ‘관계’는 뉴에이지의 핵심에 놓여 있는 이기심을 보여 준다.”
뉴에이지에는 진정한 죄의 개념이 없으며 불완전한 지식의 개념만이 있다.
필요한 것은 특정한 심리적-육체적 기술을 통하여 이를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뉴에이지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믿어야 할 것, 하여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에 관하여 듣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실재를 탐구하는 수천 가지의 방법이 있다. 자신의 지성과 직관이 이끄는 곳으로 가라, 자신을 믿어라.” 78)
하는 말을 들을 것이다. 신의 위치에 있던 권위가 자기 내면으로 옮겨 간 것이다.
뉴에이지 사상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개인의 잘못이나 죄가 아니라 전체 우주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그 대책은 전 존재 안으로 더욱더 깊이 몰입하는 것이다.
뉴에이지를 살찌워 온 많은 운동들은 명백히 반그리스도교적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그러한 운동들의 태도는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무력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운동들은 모든 종교의 관점에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전통 그리스도교를 진정 받아들일 수 있는 대안으로 여기지 않는다.
실제로, “참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자리가 없으며,” 때때로
반그리스도교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는 주장들마저도 있다는 것이 자명해지고 있다. 89)
이러한 반대는 처음에는 뉴에이지에 대한 피상적인 집착을 뛰어넘는 한정된 집단의 사람들에게 국한되었지만,
최근에는 특히 복잡다단한 서구 사회에 놀랍도록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 모든 차원의 ‘대안’ 문화에 침투하기 시작하였다.
교황께서는 또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과 맞지 않는 모호한 요소들에 주의하도록 요청하신다.
곧 이러한 동향들은 “계시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으며”, “모호한 세계관에 맞도록 종교의 교리를 상대화하는 경향이 있고,”,
“흔히 하느님께 대한 범신론적인 개념을 제시하며”
“우리의 행위에 대하여 하느님께 져야 할 개인적인 책임을
우주에 대한 의무감으로 대체함으로써 참된 죄의 개념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필요성을 전도시킨다.”
우주의 그리스도
우주적 그리스도는 경쟁, 승자와 패자, 이원론, 인간 중심주의로 가득 찬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의 구속성과 염세성,
그리고 약동하는 우주를 신비와 신비주의를 상실한 기계로 봄으로써 오는 지루함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우주적 그리스도는 지역적이고 역사적이며, 실제로 인류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우주적 그리스도는 옆집에 살고 있을 수도 있고, 가장 깊고 가장 참된 자아 안에 있을 수도 있다.” 58)
이러한 말은 뉴에이지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그 경향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으며, 두 가지 그리스도관이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지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
뉴에이지에서 우주의 그리스도는 여러 사람과 장소, 시간 안에 반복될 수 있는 하나의 모형으로서,
거기에는 엄청난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다. 우주의 그리스도는 궁극적으로는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모형이 아니라
하느님의 위격으로서 그분의 인간적 신적 모습은 모든 사람에 대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의 신비를 역사 안에서 드러 낸다(요한 3,16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생명을 우리와 나누시므로 우리 안에 사신다.
그러나 그것은 강요된 것도, 저절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도.
모든 사람은 그분의 생명을 나누어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살도록 초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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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우주의 그리스도론' 을 주장하는 사람중에 생태신학자인 '매튜폭스'가 있습니다.
뉴에이지 신학으로인해 교황청과 마찰을 빚기도 한 인물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사상이 이미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참고 => http://222.109.34.30/pds/period/samok/s1999/s9905/%C8%AF%B0%E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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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에서,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은 하나의 사상이나 에너지 또는 집합적 영기(靈氣)의 육화에 지나지 않는다.
앨리스 배일리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새로운 육화가 이루어지도록
모든 신자가 영기를 힘껏 모아야 할 위대한 기도의 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예수는 부처나 모세, 무함마드와 마찬가지로 우주의 그리스도가 깊이 스며들어 있는 영적 스승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의 그리스도는 또한 각 존재 전체의 바탕인 그리스도의 에너지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지니도록 요구받는 이러한 그리스도적 특성을 점차 깨닫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뉴에이지 용어에서 그리스도는 가장 높은 자아 완성 상태를 나타낸다. 96)
각주 96>. Ra 1 Berzosa Martinez, Nueva Era y Cristianismo, 마드리드, BAC, 1996년 참조.
각주-
15> 1977년 후반, 마릴린 퍼거슨은 “물병자리의 음모자들”이라고 지칭한 “사회 변화에 참여하고 있는” 210명에게 설문지를 보냈다. 다음 내용이 흥미롭다. “응답자들에게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든 저술을 통해서든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의 이름을 대도록 했을 때, 가장 많은 응답이 나온 이름은 피에르 데이야르 드 샤르뎅, C.G.융, 아브라함 매슬로우, 칼 로저스, 알도스 헉슬리, 로베르토 아사지올리, J.크리쉬나무르티 등이다. 자주 거명된 다른 이들로는 폴 틸리히, 헤르만 헤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 헤드, 마르틴 부버, 루스 베네딕트, 마가렛 매드, 그레고리 베이트슨, 타르탕 블쿠, 알란 왓츠, 수리 아우로빈도, 스와미 무크타난다, .D.T 스즈키, 토마스 머튼 , 윌리스 허먼, 케네스 블딩, 엘리제 블딩, 에리히 프롬, 마샬 맥루한,벅 민스트 플러, 프레데릭 스피갤 버그, 알프레드 코집스키, 하인츠 폰 포에르스터, 존 릴리, 베르너 에어하드, 오스카 이차조,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 조셉 찰던 피어스, 칼 프리브램, 가드너 머피,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이 있다”: The Aquarian Conspiracy, Personal and Social Transfaormaation in Our Time , 로스앤젤레스, Tarcher, 1980년, 50면과(note 1) 434면.
34> Thomas M. King s.j. “Jung and Catholic Spiritualuty”: America, 1999년 4월 3일자, 14면. 저자는 뉴에이 신봉자들은 “역경(易經)과 점성술과 선(禪)에 관한 부분을 인용하는 반면, 가톨릭 신자들은 그리스도교 신비학, 전례, 화해의 성사의 심리적 가치를 다루는 부분을 인용한다.”(12면)고 지적한다. 그는 또한 명백히 융의 심리학의 영향을 받고 그 가르침에 따르는 가톨릭 인물들과 기관들도 열거한다.
문헌 아래쪽에 애니어 그램에 대해 설명해 놓은 것입니다.---------
애니어그램 : (그리스어로 9를 뜻하는 ennea와 표지를 뜻하는 gramma가 합성된 단어이다.)
이 말은 원주에 삼각형과 육각형으로 연결된 9개의 점을 가진 원으로 이루어진 도표을 가리킨다.
애니어그램은 본래 점을 치는 데에 사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성격을 9가지 표준 유형으로 분류하는 상징 체계로 알려져 있다.
애니어그램은 헬렌 팔머의 책 ‘애니어그램’(The Eneagram)이 출판된 뒤에 유행하였지만, 97)
그녀는 러시아의 밀교 사상가이자 의사인 G.I.구르디에프와 칠레의 심리학자인 클라우디오 나란조,
아리카의 설립자인 작가 오스카 이차조 등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인정하였다.
애니어그램의 기원은 신비에 싸여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수피교도의 신비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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