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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분석으로 성경 읽기 3_아브라함, 그럴 줄 몰랐다"의 위험성

"정신 분석으로 성경 읽기 3_아브라함, 그럴 줄 몰랐다"의 위험성

정신분석으로 성경을 분석하면
인간이 주인이 되어 버리고 인간의 무의식이 하나님이 되어 버립니다.
아래의 기사는 그런 것을 잘 드러내는 반기독교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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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분석으로 성경 읽기 3 
아브라함, 그럴 줄 몰랐다 (창 13:1~13)
데스크 승인 2010.11.22  13:15:32  박성만 (gana049)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지하상가 교회에서 종이와 펜을 들고 두 손을 꼬옥 모았다. 긴장을 쭉 빼고 잡념을 가라앉히니 기도에 몰입된다. 1~45 숫자에서 6개를 조합하여 5세트를 만들었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르쳐 준 조합이라고 할 만큼 영발이 통했다. 결단 기도를 드린다. "주님, 당신의 거처를 곰팡이 냄새나는 지하에서 버젓한 건물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미자립 교회 목회자 자녀 장학 재단을 설립하겠습니다. 결손 가정 자녀들의 생활비를 지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와 가족을 위해서는 정말 최소한의 돈만 사용하겠습니다."
누군가 당첨금을 받아 갈 것이고 그는 자신을 위해서 사용할 것이지만 나는 다르다. 그러니 주님께서 당첨금을 내게 주셔야 한다. 지하 계단을 오르는데 누군가 계속 구시렁댄다. "야, 웃기고 있네. 네가 그 일을 할 것 같으니? 너와 네 가족 앞치레부터 해라."
 
애굽에서 큰 부자가 된 아브람은 벧엘 부근으로 이주해 장막을 쳤다. 그의 식솔이었던 롯도 많은 재산을 모았다. 유목민에게 풀과 우물은 생존과 재산 증식을 위한 매우 중요한 자원이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두 사람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었다. 이 다툼은 전쟁과 같은 것으로 아브람도 다스릴 수 없을 만큼 롯의 기세는 승승장구했다. 혈육이지만 재물을 앞에 둔 사자와 하이에나의 기 싸움이 될 것이다. 애굽 사건으로 미루어 보아 아브람의 기막힌 승부수도 기대된다. 에고이즘인 산물인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법 말이다. 이 상용구의 의미는, 내가 좋음으로 오는 너에 대한 미안함을, 너도 좋게 함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좋은 것이지, 너도 잘되서 좋은 것은 아니다.
 
아브람과 롯이 드디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아브람은 협상에 한 수 한다. 롯도 클 만큼 컸다고 은인인 큰 아버지에게 양보할 기세는 없어 보인다. 한 판 힘겨루기를 할 모양이다. 이를 지켜 본 관중들이 "와! 그럴 줄 몰랐는데…" 하며 한목소리로 감동받았다. 아브람이 롯과의 분리를 선언한 것이다. 자기 때문에 성공한 롯을 수하에 두지 않고 떠나보낸단다. 와! 멋지다. 원금 상환의 권리조차 포기하고 원리금 모두를 돌려주었다. 뿐만 아니다. 물이 풍부한 요르단 분지를 선택할 권리마저 롯에게 내어 주고 자신은 가나안에 머물렀다. 개인적 이익이 아닌 공동체의 평화를 선택한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Cathexis'는 정신 분석 용어이다. 보통 번역하지 않고 쓰이지만 굳이 번역하면 '에너지 방향', '에너지 집중' 정도가 된다. Cathexis가 자기에게 향하면 자기애적 만족을 추구하지만, 대상으로 향하면 관계 맺는 능력이 된다. 사람들은 위기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자기 추구를 함으로 방어적인 자세가 되지만, 심리적 균형을 되찾으면 대상 추구로 개방적인 자세가 된다. 전자는 '나를 위한 너'를 찾고 자기 욕구에 충실하거나 재물을 모으는 형태로 나타난다. 후자는 '너를 위한 너'를 격려하고 양보할 줄 알고 재물을 나눌 수 있다. Cathexis가 안팎으로 자연스럽게 흐름은 건강의 표지이고 유기체의 생존 방식이다. 아브람의 Cathexis가 자기로부터 공동체의 평화로 전환된 것이다.
 
아브람은 넉넉한 성품을 가졌다 한다. 넉넉하다는 것은 에너지가 대상으로 향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부모로부터 나온다. 그의 부모가 아브람에게 '너를 위한 애정'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애굽의 위기를 거쳐 평상심을 되찾은 아브람은 그의 부모가 그를 대하는 방식, 즉 넉넉한 마음으로 롯을 대했다. 롯은 어떤가. 큰 아버지에게 얹혀산 것으로 보아 부모로부터 '너를 위한 애정'을 받지 못했으니 대상관계 의 주 방식은 '나를 위한 너'이다. 은인을 모르고 인색해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부모와 나와의 관계를 대상관계 안에서 재현하고 있다. 하나님 체험은 Cathexis의 전환을 가져온다. 가끔은 "그럴 줄 몰랐는데…"라는 선의를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박성만 / 목사·가나심리치료연구소장 (www.gana6.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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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을 심리적 균형을 이룬 사람으로 보게 되면,
성경의 하나님은 자연히 사라지고 맙니다.
아브라함이 주인이 되고 하나님은 그저 무의식의 표상으로 끝나고 맙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넉넉한 성품이 그 부모로부터 나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롯에게 넉넉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지,
심리적 균형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않았습니다.
 
정신분석으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죽이고 인간을 하나님을 세웁니다.
그런데도 신학교에서 교회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고 상담학을 가르칩니다.
그렇게 교회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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