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만의 심리학으로 성경 읽기"는 성경적인가?
"박성만의 심리학으로 성경 읽기"는 성경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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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만의 심리학으로 성경 읽기
창세기 12장 1~10절 빈손으론 절대 못 떠난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2576
데스크 승인 2010.10.14 18:59:52 박성만 (gana049)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가난한 소 장수 아들이 총리 후보란다. 서민과 소통하려나. 이게 웬일인가. 청문회에서 서민과는 소통할 수 없는 그의 뒷모습이 줄줄이 밝혀지고 말았다. 경남도민들도 기대에서 실망으로 싸늘해졌다고 한다. 그는 청문회를 꼼꼼히 지켜보고 나를 찾아와 노발대발이다. 청렴결백하지 못한 고위 공직자에 대한 불만이다. 난 "그런 시스템에서 당신이 그 자리에 있어도 마찬가질 걸요" 하였다. 그는 얼굴을 붉혔다. 대단할 걸 기대했나. 얻고 나서 떠나지 못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뭐든 얻으면 더 얻으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줄 몰랐나.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란다. 그가 등장함으로 창세기는 원조사에서 성조사의 첫 대문을 열게 되니 대단한 인물인가 보다. 기대를 가지고 열린 문을 뚫어지게 지켜보았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떠나라"하셨다. 유목민의 생활은 이동하면서 사는 것이니 "떠나라"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이다. 그래도 뭔가 달라야지. 홀연 단신으로 오직 믿음만 가지고 떠나겠지. 웬걸. 하란에서 모은 사람· 종· 가축 떼 모두를 챙겨서 뒤뚱 뒤뚱 걷는 무리가 무대에 등장한다.
뿐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갈 땅을 약속해 주셨고 창대케 하리라 강복해 주셨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하리라 특권도 주셨다.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 75세, 175세를 향수하였으니 그 나이는 늦은 청춘이거나 중년이다. 인생의 반전을 시도해 볼 나이이다. 떠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바벨탑 탑끝 신화를 버리지 못해 아직도 마음이 섭섭한데, 아브람의 이야기는 탑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좀 실망스러운가. 그 정도 떠남은 나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 본성을 외면한 허구를 만들지 않은 제사장(P)문서 저자의 정직한 믿음이 존경스럽다. 히브리 문체의 특성상 해석 없이 이야기만 진행한다. 선입견을 버리고 읽자. 그러면 "나도 떠날 수 있다."
여기 특별한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아닌 그의 '특별성'을 존경한다. 그 사람은 타인이 부여한 특별성과 자기를 동일시하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하여 꾸미지만, 가까운 사람은 그의 진짜를 안다. 확대된 그의 모습을 흠앙함으로 자존감을 끌어올리려는 사람이 가엾다. 두 삶은 모두 껍질로만 존재한다. 유아는 생애 초기에 엄마를 대단하다고 본다. 이후 대단성의 허구를 발견하면서 어른이 된다.
심리 치료 초기에 내담자는 무조건적으로 수용해 주는 상담자를 특별한 존재로 본다. 이후 내담자의 자아가 성장하면서 상담자를 특별함에서 내린다. 위니캇은 이것을 "아이에게 현실을 가져다주는 방식"이라고 하였다.
아브람이 광활한 사막을 홀연 단신으로 떠나야 하는가. 동화 속에서나 들어가 살 일이다. 당신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기독교인들의 주변에 신화와 신화에 대한 기대가 너무 많다. 숨통을 조인다. 프로이트의 종교 비판은 종교인들이 신화에 대한 기대에 매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명언, "이드(Id)가 있는 곳에 자아(Ego)가 있게 하라"는 유아적 종교인들에게 "현실을 날라다 주는 것"이다.
그 이상이 있다. 아브라함에게 들려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옆에 있는 사람이 못 듣는다는 점에서 환상이지만 구체적 결단을 내리게 하였다는 점에서 현실이다. 바로 환상과 현실이 만나는 곳, 그곳에 말씀이 있다. 어떤 말씀이 들리는가? "떠나라" 하신다. 떠날 조건들이 갖추어졌으니 현실이고 자기 의지가 아니었으니 환상이다. 위니캇은 종교의 언어를 '환상의 영역에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스라엘이 땅을 소유하고 정착하게 되었다. 축복이다. 할렐루야! 합창하고 머무르려는데 P문서는 하나님께서 "떠나라" 하셨다며 옛 이야기를 회상시킨다. 성조사의 출발은 "떠나라"이다. 백수의 제왕 사자도 혼신의 힘을 다해 사냥하지만 배를 채우면 사냥감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 스스로 익힌 초원의 질서다.
박성만 / 가나심리치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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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에게 들려온 말이 환상이라면
그 말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의 주변에 신화와 신화에 대한 기대가 너무 많다"고 하는 이런 말은
성경을 신화로 전락시키고 오로지 심리학으로 성경을 난도질하는 이성의 추악한 모습니다.
"유아적 종교인들에게 현실을 날라다 주는 것"이 심리학이고
기독교인들이 그런 유아적 종교인이라면
기독교 역시 아무것도 아닙니다.
과연 심리학이라는 것이
환상을 제거하고 현실을 알려주는 것일까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현실을 부정하게 하고 환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심리학입니다.
성경을 "이야기" "환상" "신화"로 조작해서
하나님도 그 말씀도 다 허무는 심리학은 결국 무의식이 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싫고, 인간 내부의 무의식을 하나님으로 올려 놓았습니다.
자아가 신이 된 세상입니다. 이것이 타락이요 배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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