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 심리학과 예술치료
융 심리학과 예술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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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심리학과 예술치료
1. 예술심리치료의 발견
그곳에 가고 싶다.
평생을 축축한 어버이의 눈이 형벌이 되지 않는 곳,
한바탕 울부짖고 나면 반드시 평화가 온몸을 쉬게 하는 곳,
빗물이 따뜻한 곳,
감꽃이 피는 곳,
물고기들이 재미있어 물 위로 뛰쳐나오는 개울가에서 노인들이 담소하고
그곳에서 여윈 내 어버이도 행복해 입꼬리를 떠는......
그들은 이따금 물을 따라 내려오는 생명들을 웃으며 건져 올리고,
삶이 편한 곳,
가고 싶다.
사람들이 넉넉한 곳,
생명이 애처롭지 않은 곳,
습한 내 방안까지 그곳의 햇빛 들고 부드러운 바람 분다.
사랑도 놓고,
연민도 놓고,
칼날처럼 닿는 온갖 기억들도 다 놓고서,
그곳으로 가고 싶다.
(조은, 온갖 기억을 다 놓고서)
이 산문시의 제목은 ‘온갖 기억들을 다 놓고서’였다. 시인의 발언처럼 칼날처럼 닿는 온갖 기억들을 다 놓아 버린다면, 과연 우리는 그곳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일까? 평화롭고 따뜻하고 넉넉하고 삶이 편한 곳으로 ‘건너’ 갈 수 있다는 것일까? 그것은 단순히 공간적인 자리 이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이 갈망하는 내 마음의 상태일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먼저 자신의 삶을 강퍅하게 밀어붙였던 ‘온갖’ 기억들을 모두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이제는 기꺼이 손을 놓아 버릴 수 있는, 내게서 떠나보낼 수 있는 무엇이 또렷하게 떠올라야 한다. 불쑥 찾아온 불청객처럼 예고 없이 내 삶을 온통 뒤집어 놓고 들쑤셔 놓는 것, 마음을 차갑게 응결시키고 초조하게 다그치며 불편하게 만들었던 실체를 알아야 분명한 눈빛으로 단호한 말씨로 그것들을 내 곁에서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마저도 내 육신과 영혼에 머물러 있었던 세월만큼 켜켜이 틈틈이 새겨진 것들이기에 칼로 살점을 도려내듯이 간단없이 떠나보낼 수는 없다. 그들에게도 헤어짐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고, 우리 역시 불가피하게 내 일부가 되었던 이 흔적들을 다독거리며 편안히 보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상처가 무늬로 남는다. 그 모든 혼란이 나를 위한 나의 배려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의 어둠조차도 기꺼운 나의 애도의 시간을 통과하여야 ‘따뜻한 그늘’로 남아, 나를 다시 지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어둠의 실체를 찾아 나서고, 발견된 어둠과 고요히 작별하는 작업을 나는 ‘예술치료’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세계를 몰랐고, 어느 날 집에 찾아온 한 후배가 ‘예술치료’를 공부하고 있다면서, 내게도 이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제안하였다. ‘예술과 치료’라는 두 낱말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 놀라왔고, 나는 이 예술치료라는 분야를 통하여 내가 은밀히 갈망해 오던 것을 한꺼번에 얻을 것 같은 흥분을 느꼈다. 나의 단편적인 기억들을 통하여, ‘예술’과 ‘치료’라는 두 낱말이 갖는 개별적 의미와 두 세계의 통합이 갖는 개인사적 의미를 스스로 따져 묻고자 한다.
예전에 한 영화관에서 초등학교 동창생 부부를 만난 적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십여 년 만에 우연히 마주친 그 친구의 아내는 나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에 걸쳐 남편에게 들어서인지 내가 낯설지 않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내 아내에게도 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어느 대형백화점 다자인실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그의 아내 역시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때문에 빚어진 경쟁 상대였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린 쉬는 시간마다 그림을 그려달라는 -실상 만화에 불과하지만-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 패거리의 많고 적음에 내심 신경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상황 때문인지 졸업할 때까지 정작 우린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였고, 항상 먼발치에 서 있었다. 내 기억에 단 한 번도 개인적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그 친구를 나는, 그리고 그 친구는 서로를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 내 꿈은 화가가 되거나 천주교 사제가 되거나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내게서 멀어지고, 사제의 길과 교사의 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나는 성인이 되었다.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접은 것은 아마도 그 당시의 학력 중심의 사회적 분위기에 따른 사회화 과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삶의 경로가 어느 방향으로 접어들었든 상관없이, 그 일 속에서도 시각매체에 대한 관심은 아예 사라지지 않았다. 사회단체에서 활동할 때에도 사진은 내가 도맡아 찍었고, 한때는 어쩌다 보니 문화예술기획 분야에서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만드는 데 참여하기도 했고, 잡지사에서 편집을 맡았을 때도 유난히 시각적 효과에 얽매였다. 그 무의식적 동기를 그 당시엔 알지 못했다. 다만 직접적인 창작활동을 하기보다 -창작에는 훈련이 필요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다- 타인의 작품을 꾸미고 배열하는 데 머물었다는 점에서 항상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다. 그 아쉬움을 나는 한 장의 사진을 놓고, 그 사진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운문(詩)을 써넣는 데서 심리적 보상을 받았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베트남 호치민대학교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동안 늦게나마 기회가 닿는다면, 호치민 대학 미술학부에 입학하리라 다짐한 적도 있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갈망이란 이렇게 질긴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중학교 때 우연히 참석한 ‘문학의 밤’이 하필이면 당시에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들어갔던 ‘김지하 문학의 밤’이었다. 그 밤에 연단에 서서 시를 읽었던 사람이 ‘만인보(萬人譜)’를 썼던 그 유명한 고은이란 시인이었고, 사회를 본 사람은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호인수 신부였다. 까맣게 잊고 지내던 그 사건은 내 삶의 방향을 예고하는 것이었을까? 그 문학의 밤에 대한 나의 기억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나 같은 까까머리 중학생은 한 명도 없었고, 대학생들로 북적거리는 그 밤의 분위기는 무겁고 심각한 것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까까머리로 도망쳐 나왔던 그 분위기 속으로 들어간 것은 무슨 자력(磁力) 때문이었을까? 십수 년을 사회운동을 한다고 뛰어다닌 것을 생각하면, 인생이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이끌려 가는 것이지, 명석한 두뇌와 의지만으로 엮이는 것이 아님을 실감하겠다.
이 당시에 나는 우리 사회가 불합리하게 거꾸로 서 있었고, 그 안에서 현실적으로 고통 받는 인간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혁명’이란 말에 심장이 두근거렸던 날들이었다. 그런 날들을 뒤로 하고 귀농(歸農)한다고 전라도 무주 광대정이란 산골로 들어가면서 상처받는 것이 사람만이 아니라는 자각을 했다. 그리고 이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만큼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는데 익숙해진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겠고, 이념적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에게로 가서, 그들의 다치고 일그러진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힘을 얻고자 했다. 사실 나를 포함하여 이 세상은 누구라 할 것 없이 통째로 상처를 안고 있으며, 그들은 그 상처를 치유 받을 권리가 있을 것이다.
‘치유자’에게 대한 감각이 발동된 것은 어쩜 나를 둘러싼 종교적 분위기의 탓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고통 받는 이들에게서 느끼는 ‘연민’에 대한 감각이었다. 그런 점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발언 가운데 “어린시절에 나는 고통 받는 인간을 도우려는 어떤 강한 열망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젊은이가 되어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수수께끼들 가운데 몇 가지를 이해하고, 가능하다면 그 해결책에 뭔가 기여까지도 하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을 느꼈다.”는 구절을 읽고 당혹감을 느꼈던 것은 당연하다. 그의 학문적 관심이 결국 심리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해도, 애초의 동기가 가련한 인생들에 대한 연민이나 천명(天命)이 아니었음을 고백하는 프로이트 앞에서, 그의 솔직함이 대단히 높이 평가할만한 미덕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충분히 넉넉하고 자비로운 환경 안에서 성장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아 있다. 종교적 명령이 아니더라도 인간성 안에 깃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우리의 생애를 이끌어가기를 바라는 것은 여전히 아름다운 갈망으로 남는다.
예술치료는 예술을 매개로, 또는 예술가로서 인간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내 개인적으로 구원과 같았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배를 통하여 항구에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2. 예술심리치료사의 원형을 찾아서
저 꽃들은 회음부로 앉아서
스치는 잿빛 새의 그림자에도
어두워진다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것들
나는 꽃나무 앞으로 조용히 걸어 나간다
소금밭을 종종걸음 치는 갈매기 발이
이렇게 따가울 것이다
아, 입이 없는 것들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
이른바 중년이 되어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 선택에 대한 의미를 자꾸만 보태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심리치료의 입문은 먼저 ‘자기 분석’ 또는 ‘자기 치료’에서 시작되는 법일 텐데, 내 심중(心中)을 제대로 훑어나가지 못한다면, 타인의 마음을 탐색하는 입구도 그 마음을 치료하는 출구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을 충분히 탐색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은 작업이고, 짧은 시간 안에 성취될 수도 없는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결국 자기를 살피고 타인을 살피는 과정에서, 스스로 혹은 타인을 통하여 어느덧 제 심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예술치료를 공부하면서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우선 어느 배를 빌릴 것인지 살펴보게 된다. 삶이 징역살이 하는 것처럼 가혹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예상 밖으로 많을 것이다. 심리치료를 공부하다 보면 주변에 환자 아닌 사람이 없다. 낯선 그림자만 보더라도 온몸이 먼저 오그라드는 사람들, 소금밭을 맨발로 딛고 가는 사람처럼 일상이 따갑고 견딜 수 없어 안달하는 사람들, 그러나 어찌 표현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람들, 입은 있으나 제 고통을 입에 담아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술치료란 게 있을 법 한데, 예술치료란 하나의 이론, 하나의 기법이 있는 게 아니다. 그 치료적 신빙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쥬디 아론 루빈(Judith A. Rubin)은 예술치료사들이 저마다 어떤 이론을 갖는 데에는 치료사 자신뿐 아니라 그가 주로 만났던 환자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하였다. 심리치료 학파의 창시자들 역시 처음에 관찰한 환자 유형이 달랐기 때문에 특정 이론과 기법을 개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환자를 돌보았고, 설리반은 정신분열증 환자를 돌보았던 것이다. 루빈은 울만과 와데슨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이론가들이 생각을 발전시킬 때 자신의 성격과 작업 방식에 맞는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치료사가 되고자 하면 그 자신의 참된 자아와 화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이지 편안하게 맞지 않는 접근을 고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루빈은 치료사들이 예술치료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내담자들이 모두 확실히 개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특정한 이론적 참고틀을 고정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보았다. 성인 정신병 환자들에게 적합한 이론과 기법이 신경증적 아동에게 잘 맞지 않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방된 정신으로 자신의 임상틀과 이론틀을 다양하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빈은 치료사들에게 ‘적어도 하나의 잘 알려지고 잘 소화된 접근을 가질 것’을 권한다. “치료사는 자신의 재능이 해석하는 것이든 시적인 것이든 직설적인 것이든 간에 자신의 재능에 맞는 이론을 발견해야만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그는 서툰 치료사가 되거나 엉터리 치료사가 될 것이다. 어떤 스타일이 옳을 것이냐 하는 질문은 치료사 자신이 유발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느냐 그리고 그 결과를 기술적으로 직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애초부터 칼 융과 그의 이론에 대하여 친밀감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영적 세계와 종교에 대한 그의 친밀감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나는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성인이 될 때까지 가톨릭교회의 그늘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이 결코 특정종교에 대한 결속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특정 종교의 공동체나 교리가 아니라, 인간의 심성 안에 갇혀 있거나 꽃피우고 있는 거룩한 불꽃, 곧 신성(神性)에 대한 관심을 일컫는 발언이다. 융 본인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불현듯 내게 명백해진 것은, 신이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체험들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가 교회로부터 멀어질수록 그러한 사실이 더 쉽게 다가왔다”라는 주해가 붙어 있었다.
융의 견해는 예술치료 입문 초기에 탐독한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이란 책을 쓴 윌리엄 제임스의 생각보다 더 넓고 깊은 것으로 다가왔다. 융은 요한복음서와 괴테의 <파우스트>를 동등하게 평가하였다는데, 특히 이 구절이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런 양피지 책이 무슨 성스러운 샘물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것을 한 모금 마신다고 해서 영원히 갈증을 풀 수 있겠나! 자네의 영혼에서 샘솟은 것이 아니라면 생기를 얻지 못할 걸세.” 이 말은 그가 종교와 심리학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중요한 진술이다. 종교란 인간 마음을 가장 근원적이고 보편적으로 표현한 것 중의 하나이며, 그는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된 종교적 기능을 ‘인간의 체험’을 통하여 탐구하려고 했다. 그가 인간을 통해 신성으로 건너가려고 노력한 것은 틸리히 등 “신학은 인간학이다”라고 발언한 현대 신학자들의 신학이론 속에서 발전되었다. 그는 말한다. “그러므로 심리학적으로 볼 때, 신은 ‘완전한 타자’일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완전한 타자’란 결코 마음과 내밀하게 친숙한 것일 수 없는데, 신은 그와는 달리 친숙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상(神像)에 대한 역설적이거나 모순적인 발언들만이 심리학적으로 볼 때 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성에 대한 입장이 곧 내가 융에게 관심을 갖게 된 첫째 이유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전체성 회복에 대한 그의 심리학적 견해에 조응하는 것이다. 개성화 과정으로 표명되고 있는 자기(Self) 실현을 융 심리학의 목표라고 본다면, 이러한 과제는 프로이트로부터 시작되는 정신분석학이나 정신병리를 다루는 여타의 심리학과 차별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까닭이다. 왜냐하면 자기실현은 유아초기 경험의 문제이든, 성장과정에서 입은 외상이든 그 불균형이 해소된 이후마저도 지속적으로 요청되는 보편적인 삶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이론들을 폄하하거나, 열등하다고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주목하고 있는 지점이 약간 다를 수 있음을, 그리고 삶의 과정 속에서 내가 주목해 왔던 과제가 좀더 영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었음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뿐이다. 아마 이 길을 통하여 다른 길까지 외연을 확장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한국 융연구원 원장으로서 오랫동안 칼 융의 분석심리학을 다루어 온 이부영 교수는, “분석심리학적 정신치료란 단순한 증상의 소실, 고통의 일시적 경감, 작업환경, 학교환경에 대한 현실성 있는 적응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고 인격의 심층을 살피며 인격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켜 보다 성숙한 사람을 만드는 데 그 목적을 두는 치료”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분석심리학은 유일 절대의 이론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만큼 다양한 심리적 치료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융의 말을 빌려 “누구든지 자기의 치료방법을 진실로 믿고, 진지하고도 인내성 있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것을 환자에게 실시할 때 이러한 자발적인 노력과 헌신은 치료적인 작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분석심리학은 치료의 목적이라 해야 할 인간의 개성을 살려가기 위하여 ‘변증법적 방식’을 요청한다. 변증법적 방식이란 내가 아직 모르는 어떤 개인과 ‘나’라는 치료사 개인과의 ‘대화’를 뜻하며, 그것은 치료사 개인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앞에 앉은 내담자의 개성에 대하여 그럴듯한 말을 함으로써 그를 지배하고 영향을 주고자 하는 마음을 모두 버리는 데서 시작된다고 한다. 물론 그러한 대화의 자세를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곧잘 지나친 설득, 선입견에 대한 속단, 점잖은 도사인 체 하는 충고, 이론의 강요를 자기도 모르게 함으로써 환자의 고유한 심리체계를 치료자의 체계로 간섭하거나 지배하기 쉽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부영 교수는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개성(individuality)'이란 환자의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어 합쳐진 하나의 전체이므로 이것을 실현시키는 작업은 처음부터 하나의 ‘암중모색(暗中摸索)’일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치료자는 이미 행동하는 주체가 아니다. 하나의 개인적인 발전과정을 함께 체험하는 사람이다.”
이는 쥬디 아론 루빈이 ‘치료동맹’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적절히 이야기했듯이, 치료사와 환자가 오랜 시간 동안 특별한 치료관계를 통하여 협력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치료과정에서 “환자는 새로운 사람과 낯선 모험에 대해 느끼는 불안과 불신을 극복해야 한다. 치료사 또한 공동의 과제를 떠맡기 위해 환자와 환자의 요구, 잠재력을 점차 이해하는 과정을 겪는다. 그러므로 환자와 치료사는 둘 다 불안, 좌절, 낙심, 상대방의 욕구와 잠재성을 점진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동의 과제를 완전히 맡을 수 있다.” 이러한 협력관계는 서로에 대한 높은 신뢰와 약속에 기반을 둔다.
이러한 치료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치료사는 고통의 동반자로서, 치료과정을 통하여 치료사 자신 역시 자기인식의 기회를 얻는다. 이를테면 치료사 자신의 억제된 감정, 불안, 분노, 수치심 등의 자기 표출과 자기 경험, 자기 이해의 과정을 겪는 것이다. 왜냐하면 치료사와 내담자는 각자 거울을 가지고 있으며, 그 거울을 통하여 서로의 의식과 무의식을 비추어 주기 때문이다.
3. 표현예술과 자기실현
칼 융은 <회상록>에서 자신의 생애는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라고 말했는데, 이러한 자기실현 또는 개성화 과정이란 달리 표현하여 자기 인식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으며, 자기 인식이란 무의식의 내용을 인식하는 의식화 과정이다. 이러한 자기실현, 개성화는 참된 치유의 길이며, 개인적 문제점과 결함들로부터 더욱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며, 치유를 필요로 하는 환자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자기 발견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두루 적용된다. 이런 점에서, 잉그리트 리델은 융의 치료구상이 모든 생명체가 가지는 자연스러운 성장 경향, 즉 완성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경향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성장과 자기 발전의 능력, 더욱 분화된 특별한 형상의 계발을 통하여 문제점들을 초월하는 능력, 즉 우리 누구에게나 잠재된 이러한 능력에 치료구상의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칼 융은 무의식의 의식화를 위한 매개로서 조형적 수단을 직접 사용하였다. 취리히 호숫가에 볼링엔 탑을 짓고 직접 석상을 조각하고 비문을 새겼다. 꿈에서 본 영상들을 그림으로 옮기고, 그 숨겨진 의미를 캐물었다. 이러한 적극적 상상을 통하여 내적 동반자로서 그가 ‘필레몬’(philemon)이라고 이름붙인 표상을 발견하였다.
융은 그림이나 조형작업이 주는 효과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환자는 자신의 상태가 나빠지면, 상징적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가 어떻게 비참한 정신적 상황에서 구제되는가를 몇 번만이라도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로 인하여 귀중한 어떤 것, 즉 독립의 시작, 심리적 성인으로 통과하게 된다. 환자는 이러한 방법으로 창의적 독립을 이룰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의 상징들을 자유롭게 나타내는 데 동참하는 무의식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조종하고 시험하고 책임지는 의식을 만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잉그리트 리델은 <융의 분석심리학에 기초한 미술치료>라는 책에서 융 심리학에 기초한 미술치료가 어떠한 과정을 밟아가면서 진행되고, 그 가운데 어떤 치료적 효과를 수행하며 개성화 과정을 지지하는 지 소개하고 있는데, 간략히 살펴보고 넘어감으로써 융 심리학에 기초한 집단 치료 사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A. 형상화 과정
잠복기를 수반한 최초의 탐색 단계에서는 그림의 아이디어를 잉태하고, 해결단계인 아하! 체험에서는 선명하게 나타나는 심상을 구체화하여 형상화하고 심상을 계속적으로 현실화하는 시도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확인과정에서는 그림이 조화로운지, 내적 상상과 일치를 이루는지에 대한 자기 비판적 평가를 다시 한다.
잠복기에 자주 일어나기 쉬운 불쾌감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형상화 작업에 성공한 사람은 압박감에서 벗어나 그림이 탄생할 때 강한 정서적 해방감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더 이상 자신을 수동적으로 고통당하는 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자로 느끼게 된다. 그 자신 안에 숨어 있던 창조적 어린이가 다시 활동하게 된 것이다. 이때는 자주 유아기 감정들이 일어나서 다시 바닥에 눕고 장난스럽게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그리고 자유롭고 자율적이며 즐겁게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 시기에 긍정적 모성 원형이나 모성영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성영역은 그동안 망각하고 살았던, 어머니의 한 부분으로서 유아시절에 경험했던 것과 같은 존재의 공간이다. 이 공간은 능력을 따지지 않고 무의식에서부터 치유적 생명력을 일어나게 하여 그림을 그리고 싶은 기분을 불어넣을 수 있는 소속감의 공간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수용된 느낌, 가장 어릴 때 처음으로 경험했던 의식의 기원이다.
이러한 조형작업을 통하여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기분은 자기 파괴적 분노나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든 우울함에서 벗어나 헌신적 자아몰입으로 다가선다.
B. 상징화 과정
조형작업에 뒤따르는 상징화 과정은 먼저 정서적으로 이완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정서, 조화 및 불쾌감, 육체적 고통이나 우리에게 이미 의식된 문제와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서 그러한 것의 이면에 숨어 있는 콤플렉스나 원형을 암시하는 정서의 표상, 요컨대 심상을 보게 된다. 이러한 심상이 그림으로 형상화될 때, 색을 통하여 명백한 정서적 톤이 나타나고, 형태를 통하여 확실한 모습과 눈에 띄는 구조가 첨가되며, 색칠과 구조화를 통하여 구체화되지만 또다시 변화하고 계속 그림이 발전한다. 이를 두고 융은 “창의적 과정은 원형의 무의식적 활기이며, 그러한 활기를 발휘하고 형상화하여 완성된 작품까지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융이 무의식에서 나온 어떤 것을 의식으로 운반하는 상징 기능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정신의 초월적 기능을 표현한 것이다. 상징은 정서를 담는 그릇이다. 발견된 내적 심상과 의식적으로 만남으로써, 이미 형상화 과정 자체만을 통해서도 그림의 이면과 그림 안에 표현되는 정서, 콤플렉스, 위기와 접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더 이상 정서에 의해서 포장되거나 압도당하지 않고 그것들과 만날 수 있고 능동적으로 대면할 수 있다.
불안이 그림에 그려지면 불안은 자신을 담을 그릇을 발견하게 되고, 불안에 떠는 사람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평정심을 되찾게 된다. 알 수 없고 끔찍하기만 했던 불안이 제멋대로 표류하기를 그치고, 그림이라는 제한된 틀 속에서 상징적으로 배열되고 적응함으로써 안정감을 되찾는 것이다. 불안이 일단 감소되면 그 다음에 다른 그림들과 상징들을 계속하여 그릴 수 있다. 또한 그림과 조형은 상황에 따라서 파괴적이고 자기 파멸적인 충동을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충동 쪽으로 인도할 수 있다.
C. 대화 과정과 해석 과정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가 벌써 치료적 효과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융이 지적한 대로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나아가 그림에 대한 지적이고 정서적 이해도 필요하다. 그것을 통하여 그림은 지적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특히 정서적)으로도 의식에 통합된다. 그림들은 종합적인 의미 해석 작업에 연결되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그림을 그린 사람의 내적, 외적 생활사와 관련됨과 동시에 치료적 관계로 연결시킬 수 있다. 그림은 바로 치료사와 환자 사이에 존재하는 제삼자이며, 근본적으로 ‘그들 사이에서 그려진’ 것으로 그들 사이를 왕래하는 보고서와 같다. 이러한 대화는 그림에 이미 드러난 내용과 형태, 색을 관찰하고, 이를 내담자에게 질문하여 해석에 연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것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런 것에 대해 어떠한 느낌이 듭니까?” 이를테면 그림을 그릴 때 무엇이 특히 중요했으며, 어떤 것이 가장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했는지 질문해 보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금방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내담자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충분히 공감적인 태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담자는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동기를 얻게 되고, 자신의 그림을 위한 고유한 언어를 발견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 자체에서 스스로 자신의 무의식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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