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다원주의의 기독론과 그 문제점
종교 다원주의의 기독론과 그 문제점
고신대학교 신학 심포지움 2001. 9. 19.
이승구 교수(국제신학대학원 대학교/조직신학)
1. 서론: 종교다원주의란 무엇인가?
(1) Descriptive Pluralism vs. Normative Pluralism
Religious Pluralism as a normative pluralism
(2) Copernican Revolution in theology of religions
Ptolemaic View ========> Copernican View
Christo-centric Theo-centric
- 이유: "만일에 예수께서 참으로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시고, 그의 죽음으로만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즉, 믿음]으로만 그 구원을 충용할 수 있다면, 영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기독교 신앙이 된다. 그것은 인류 중의 대다수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 Copernican Revolution: 우리의 "중심에 계신 분은 신이시고, 우리 자신의 종교를 포함한 ...... 모든 종교들은 그를 섬기며 그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이다".
= "종교적 우주의 중심은 그리스도나 어떤 종교가 아니라, 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신이 바로 빛과 생명의 근원인 태양이며, 모든 종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신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3) 신 이해
- the Real, the Ultimate
"궁극적인 것은 그 자체 이외의 것을 초월하면서, 그 자체는 그 자체 이외의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초월되지 않는 추상적 실재이다. 이렇게 이해된 궁극적인 것은 우주와는 그 근원 또는 그것의 창조자로, 우주의 의식적인 부분인 우리네 인간들과는 우리 존재의 원천과 그 존재의 가치 또는 의미의 원천으로 연관된다".
"우리는 실재 자체(the Real a se) 에게 그것이 인격적이라거나 비인격적이라는, 또는 선하다거나 악하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거나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또 본질이라거나 과정이라는, 심지어 하나라거나 많다고 하는 그 어떤 본질적인 속성들도 부여할 수 없다."
-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제약된 현현들(authentic manifestations of the Real):
(1) 인격적 현현들: 여호와, 알라, Krishna
(2) 비인격적 현현들: Dharmakaya, sunyata(空), 道
(3) 비종교적 현현들: in Marxism,
in Humanism
이 각각의 종교에 속한 이들은 "서로 다른 인간적 개념의 '렌즈들'을 통하여 신/거룩한 것/궁극적인 실재를 보며, 그에 상응하는 서로 다른 종교적 경험들의 형태들 속에서 각기 다른 영적 실천들을 통해 그들의 임재를 경험한다. 그러나 그들 모든 종교들은 모두가 모든 것의 종국적 근거와 원천인 궁극적 존재, 즉 실재에 대한 참된 인간적 의식과 반응인 것처럼 보인다."
(4) 구원적 기능
- "우리가 말할 수 있는 한, 모든 전통들 안의 성자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모든 종교는 다 자아로부터 실재에로 전환시키는 데 있어서 동등하게 생산적이다."
- "각각의 (종교) 전통들은, 결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인간의 삶의 목적인 구원적 변혁의 참된 배경임을 나타내 보여 준다"는 것이다.
- "의미 있는 신정론은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의 궁극적 구원을 확언해야만 한다".
2. 종교 다원주의의 그리스도 이해
(1) John Hick의 그리스도 이해
- 힉에 의하면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의식하지도 않았고, 또 그렇게 주장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힉은 이렇게까지도 말한다: "실로 예수는 아마 그가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개념을 신성 모독적인 것으로 간주하였을 것이다!"
- 구약과 고대 근동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종을 지칭했다.
"예수께서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은 문자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문자적으로 참된 것이 아니라, 고대 사회에서 왕에게 돌려지는 신적 아들 됨의 개념의 기능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신화적 개념을 예수께 돌리는 것이다."
- 은유적인 신의 아들에서 나중에는 문자적인 '신의 아들'이라는 형이상학적 존재로 이해되기에 이르렀다.
(2) Paul F. Knitter의 그리스도 이해: Theocentric Christology
Paul F. Knitter, Dr. Theol. (Marburg), 신학 교수 자격(Pontificial Gregorian Univ., Rome)
Xavier University (미국 신시내티 주) 신학부 교수
- relational uniqueness(관계적 독특성)
"다른 독특한 종교들(other unique religions)과 관련하는 - 즉, (다른 종교들을) 내포하고 (그것들에) 포괄되는 - 능력에 의해 정의되는 독특성"
- 본문과 그 맥락은 경험과 의미의 지평 안에서만 이해되는데, 그 지평은 역사를 통해 확대된다.
- 특히 인간의 경험이 부족적인 것(the tribal)으로부터 세계적(the global)인 것으로 진보해 갈 때는 본문의 새로운 해석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신약에 충실하지 않은 것이고, 신약 성경이 참으로 의미하는 바를 듣지 않는 것이 된다.
- 예수는 우리에게 기독론을 주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가장 많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자신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종말론적 선지자로 이해하셨다는 것이다.
- 초대 교회 공동체가 예수의 신 중심적 멧세지를 그리스도 중심적인 멧세지로 바꾸었다.
예수를 통해 얻은 계시 경험, 구원 경험으로부터 교회는 다양하게 예수를 표현해 왔다. 이전의 개념들, 유대적 지혜 개념, 희랍적 로고스 개념들을 사용하고 대화하면서(dialogical).
- 그들은 절대주의적 문화 가운데 살고 있었으므로 절대적인 용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이런 절대적 용어를 과학이나 철학, 또는 교의학으로 이해해서는 안되고, 고백과 증언으로 이해해야 한다. 스텐달이 표현한 바 '사랑의 언어"(love language)로 말이다. 그러므로 초기 신자들은 형이상학을 표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와 헌신을 표현한 것이다.
- 부활은 "일어난 것을 사진처럼 진술한 것이 아니라, 변개 경험들을 표현하려는 시도이고 만져질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하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 "예수의 부활은 유일한(one and only) 것이라는 것을 필연적으로 함의하지 않는다."
- 배타적으로 유일한 예수를 갈망하는 것은 불안한(insecure) 기독교 신앙일지도 모른다.
(3) R. Pannikar의 그리스도 이해
스페인인 로마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와 인도의 힌두교도 아버지를 둔 화학, 철학, 신학 분야의 학위를 받은 인도의 천주교 사제요 힌두교 학자: "문화-교차적 인간"
공동의 신비를 기초로 작업
그것은 교리나 개인의 자의식 안에 있은 것이 아니라, 모든 곳, 모든 종교 안에 쉽게 현존하는 것이다.
"정상에 이르는 서로 다른 길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모든 길들이 사라진다면 정상 그 자체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정상은 어떤 의미에서 그에 이르는 경사진 길들의 결과일 뿐이다. ... 실재는 많은 이름들이고(is), 각각의 이름은 각각의 새로운 측면들이다."
왜냐 하면 세계가 변했기 때문이다. 세계가 변화되면 (의미의 지평이 변화한 것이므로) 의미도 바뀌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유일회성과 보편성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재해석해야 한다. ===> "참된 보편적 그리스도론"
- "그리스도는 실재, 즉 신, 인간, 우주의 전체성에 대한 살아 있는 상징이다".
"인간과 신은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다...... 신과 (세계를 포함한) 인간의 두 실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신 혹은 인간 둘 중의 하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실재 그 자체는 신인 양성적(theandric)이며...... 신과 인간은 이를테면 실재를 형성하고 역사를 전개시키며 창조를 계속하는데 가까운 구성적 협력 관계에 있다....... 신, 인간, 그리고 세계는 하나의 유일한 모험에 개입되며, 이러한 개입은 참된 실재를 구성한다....... 신인 양성론은 역설적 형태의 인간의 무한성과 ...... 신의 유한성이다."
그리스도는 이런 역동적인 비이원론적인 통일의 상징이자, 그 본질이다.
그는 "신적인 위치를 잃음이 없이 참으로 인간적이며 세상적이고 ... 두 극을 연결시키는 실재이자 결코 하나로 해소됨이 없는 두 극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 안에 있는 신성의 터전이며, 인간이 처음부터 신의 아들로, 유일한 아들과 동등한 자로 운명지어지도록 부르는 부름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역사적 이름이나 형식도 그리스도에 대한 충분하고도 궁극적인 표현일 수는 없다고 한다.
-구원의 보편적 상징으로서의 그리스도는 객관화될 수 없으며, 따라서 단순히 역사적 인물로 구체화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떠났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말이다.
-기독교의 역사성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 혹은 사건들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 그리스도, 즉 범우주적 신-인 양성론적 사실은 일정한 구체적, 역사를 통해서만 실제적일 수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이름을 가져야 한다. "그 주되심이 무수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이러한 주는 내게 있어서 나사렛 예수와 불가분리적으로 연결되면서 궁극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그러나 예수는 "최고의 이름" 즉 항상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인(골 2:9) 그리스도의 구체적 역사적 이름이다. 모든 이름 위의 이름, 즉 그리스도는 Rama, Krishna, Isvara, Purusha, Tathagata 등의 많은 역사적 이름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수는 ...... 범우주적인 신-인 양성론적 원리의 많은 이름들 가운데 하나로서, 이 원리는 종교성의 참된 형태들이 존재하는 만큼이나 많은 이름들을 구체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나사렛 예수 안에서 역사 안에서의 '유일회적인' 현현을 발견한다."
- 하나님과 브라만은 같으며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고, 그가 만물을 유지하고, 만물은 그에게로 돌아간다...... 그리스도는 " 이 세상이 낳은 그것, 이 세상이 그에게로 귀환하는 그것, 이 세상이 유지하는 그것", 곧 브라만이다. 그리스도는 브라만 안에 있고, 여러 사람은 다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
(4) Stanley T. Samartha의 그리스도 이해
인도 출생의 남인도교회 장로
1968년부터 1980년까지 WCC의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 담당자로 일함
-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고, 그들 속에 내재된 신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신앙의 추종자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하여 그의 인격에 대한 교리와 교의와 더불어 교회의 구조 너머로 움직이고 있다."
- 더 넓고 깊은 개념적인 틀: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분리시키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 속에서 결합시켰다. 다른 신앙의 이웃을 적대시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하는 은혜의 대상이라는 더 넓은 공동체의 반려자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종교들이 함께 진리를 추구해야만 함께 정의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1970년대 후반): "신적인 진리에 기초하지 않은 진리치고 영속적인 진리가 없고, 사회 정의의 열매를 맺지 않는 진리치고 참된 신적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 라너 식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논의 등은 이웃에게 자선 행위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만을 유일하게 절대자로 인식하고, 모든 종교들을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될" 종교간의 만남의 모델 추구
"깊이에서 보면 모든 종교적 삶의 본질적인 모습은 그 순례자적인 성격에 있다. ... 도상의 오아시스는 궁극적인 것으로 주장되어서는 안 된다."
"동일한 다원주의 세계 속에서 그들의 이웃 역시도 그들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 신은 성육신에서 자신을 상대화한다.
-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신 중심적이다".
3. 종교 다원주의 기독론의 공통점과 그 함의
3-1. 공통점: 칼시돈적 정통 기독론(Chalcedonian Christology)의 거부
(1) 신화적(은유적) 기독론(mythic Christology, metaphorical Christology)
Hick - 예수가 우리의 충분한, 효과적인, 그리고 구원하는 '신과의 접촉점'임을 전달해 주는 표현(our sufficient, effective, and saving point contact with God)
- 신화는 "문자적으로 참되지는 않으나 ...... 듣는 이들에게 특별한 태도를 야기하는 이야기나 상(像, image)"이라고 정의함.
"나는 신화라는 말을 문자적으로는 참되지 않지만 그 주제에 대하여 성향적 태도를 유발하는 경향이 있는 이야기나 진술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신화의 진리성은 실천적인 진리이다. 즉, 참된 신화는 우리가 신화적인 방식이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는 실재와 우리를 바르게 관련시키는 것이다".
Knitter - 기독론적 언어는 문자적이 아니라 신화적이거나 비유적이다(figurative)
- 철학이나 과학이나 교의학의 언어가 아니라, '고백과 증언'의 언어들이다.
- 사랑의 언어(love language)
- 예수가 유일한 구주라고 피력함에 있어서 신자들은 '형이상학적 원리를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관계"를 나타낸다.
- 행 4:12 같은 구절은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표현하는 '사랑의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
(2) 신의식적 기독론(영감적 기독론, Inspirational Christology) Schleiermacherian?
- "예수의 현존 속에서 우리는 신의 현존 속에 있다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그것은 인간 예수가 문자적으로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영적인 영향에 의해서 그 의식에 관한 어떤 것을 파악할 수 있도록 신에 관해서 그렇게 전적으로 의식했다는 의미이다".
- 예수는 그저 "신의 실재를 강력하고도 넘칠 정도로 의식하고" 있었고, "그의 영은 하나님께 대해서 열려 있었고, 그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계속적인 반응"이었다고 말한다.
(3) 내재적 기독론(immanent Christology)
힉은 "유한한 존재는 무한한 속성들을 가질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골 2:9)라고 말하기보다는, 예수님께서는 유한한 인간적 삶 속에서 표현될 수 있을 만큼의 무한한 신적 도덕성들을 구현하였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고 말한다.
(4) 정도 기독론(degree Christology) => 보편적 기독론(universal Christology)
- "성육신이란 정도의 문제이다.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거나 그리스도를 닮거나 또는 참으로 거룩한 이들인 한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 속에 성육신하고 계신다."
- "이런 의미에서 성육신은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다른 방식과 정도에 따라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
- "그리고 이런 은유적 의미로, 우리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한, 하나님이 인간의 행위 안에서 '성육신 하셨다', 구현되셨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구든지 몸이나 마음이 병든 사람들, 연약해서 억압받는 사람들, 난민들, 나약한 아이들, 착취를 당하는 가난한 사람들, 사별하여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으로 행한다면, 언제든지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에 성육신 하게 된다".
- "어떤 이가 무사(無私)한 사랑 가운데서 행할 때마다 아가페가 인간의 삶 가운데서 성육신 하는 것이다".
3-2. 함의
(1) 신론의 변화
(2) 구원론의 변화
-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있을 필요성이나 하나님으로 하여금 용서하도록 하기 위한 속죄적 죽음의 필요성에 대한 시사가 없다"는 것이다.
- "그리고 이런 이해[은유적 성육신 이해와 이로부터 나온 신론]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게 되었는 지에 대한 이론이라는 의미에서의 그 어떠한 구속 교리(atonement doctrine)도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어떠한 중재자나 속죄 제물이 없이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며, 구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것을 기대하도록 우리에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 "그것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구원은 ...... 현세에서 시작되는 본성적인 '자아 중심'으로부터 '신/궁극적 존재/실재-중심'으로 새롭게 방향을 전환하는 인간적 변혁이다."
-"현세에서 시작되어 현세를 넘어 완성될 때까지 계속되는 신적인 창조적 과정"의 한부분
(3) 선교와 다른 종교와의 관계관의 변화
- "어떠한 종교적 전통을 가졌든지, 또는 아무런 종교적 전통을 갖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과정[구원/깨닮음/해방의 과정]이 시작되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4. 종교 다원주의 기독론에 대한 개혁파적 반응
(1) 그리스도의 위격 중심의 반응
-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주(主)요 하나님이셨다.
-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30년과 50 사이에 이미 예수께 적용되었다.
(2) 그리스도의 사역 중심의 반응
- Pluralism
- Inclusivism (1) Roman Catholic Inclusivism
(2) so-called Evangelical Inclusivism
- Exclusivism (1) Barthian Exclusivism
(2) Arminian Exclusivism
(3) Reformed Exclusivism
더 깊은 연구를 위한 참고 문헌 목록
1. 종교 다원주의 이해를 위해
(종교 다원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글들)
Dennis L. Okholm and Timothy R. Phillips, eds., Four Views on Salvation in a Pluralistic World (Grand Rapids: Zondervan, 1996), 한역, {다원주의 논쟁}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1).
Andrew D. Clarke and Bruce W. Winter, eds., One God, One Lord: Christianity in a World of Religious Pluralism, eds., Andrew D. Clarke and Bruce W. Winter (Grand Rapids: Baker, 1992).
Richard Lints, The Fabric of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93), 245-59. Ronald Nash, Is Jesus the Only Savior? (Grand Rapids: Zondervan, 1994). D. A. Carson, The Gagging of God: Christianity Confronts Pluralism (Leicester: Appolos, 1996).
Alister McGrath, A Passion for Truth (1996), Chapter 5.
김영한, "현대신학의 종교다원주의 운동" 그리고 "종교다원주의와 그리스도의 유일성", {21세기와 개혁신학 II: 포스트모더니즘과 개혁신학}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13-41, 43-76.
(다원주의에 동감하는 글)
Paul F. Knitter, No Other Name? - A Critical Survey of Christian Attitudes Toward the World Religions (Maryknoll, N.Y.: Orbis Books, 1985), 변선환 역,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6).
John Hick, God Has Many Names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2).
2. 개혁신학 정립을 위하여
(기본적인 교과서들과 함께)
김홍전 목사님의 강설집들
최낙재, 『소요리문답 강해 1 , II』(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9, 2000).
이승구, 『개혁신학에의 한 탐구』(서울: 웨스트민스터 출판부, 1995).
______, 『교회론 강설: 교회란 무엇인가?』(서울: 여수룬, 1996).
______,『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강해 1: 진정한 기독교적 위로』(서울: 여수룬, 1998).
______,『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강해 2: 성령의 위로와 교회』(서울: 이레서원, 2001).
______, 『개혁신학탐구』 (서울: 도서출판 하나, 1999).
http://blog.daum.net/kkho1105/3582
고신대학교 신학 심포지움 2001. 9. 19.
이승구 교수(국제신학대학원 대학교/조직신학)
1. 서론: 종교다원주의란 무엇인가?
(1) Descriptive Pluralism vs. Normative Pluralism
Religious Pluralism as a normative pluralism
(2) Copernican Revolution in theology of religions
Ptolemaic View ========> Copernican View
Christo-centric Theo-centric
- 이유: "만일에 예수께서 참으로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시고, 그의 죽음으로만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즉, 믿음]으로만 그 구원을 충용할 수 있다면, 영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기독교 신앙이 된다. 그것은 인류 중의 대다수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 Copernican Revolution: 우리의 "중심에 계신 분은 신이시고, 우리 자신의 종교를 포함한 ...... 모든 종교들은 그를 섬기며 그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이다".
= "종교적 우주의 중심은 그리스도나 어떤 종교가 아니라, 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신이 바로 빛과 생명의 근원인 태양이며, 모든 종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신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3) 신 이해
- the Real, the Ultimate
"궁극적인 것은 그 자체 이외의 것을 초월하면서, 그 자체는 그 자체 이외의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초월되지 않는 추상적 실재이다. 이렇게 이해된 궁극적인 것은 우주와는 그 근원 또는 그것의 창조자로, 우주의 의식적인 부분인 우리네 인간들과는 우리 존재의 원천과 그 존재의 가치 또는 의미의 원천으로 연관된다".
"우리는 실재 자체(the Real a se) 에게 그것이 인격적이라거나 비인격적이라는, 또는 선하다거나 악하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거나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또 본질이라거나 과정이라는, 심지어 하나라거나 많다고 하는 그 어떤 본질적인 속성들도 부여할 수 없다."
-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제약된 현현들(authentic manifestations of the Real):
(1) 인격적 현현들: 여호와, 알라, Krishna
(2) 비인격적 현현들: Dharmakaya, sunyata(空), 道
(3) 비종교적 현현들: in Marxism,
in Humanism
이 각각의 종교에 속한 이들은 "서로 다른 인간적 개념의 '렌즈들'을 통하여 신/거룩한 것/궁극적인 실재를 보며, 그에 상응하는 서로 다른 종교적 경험들의 형태들 속에서 각기 다른 영적 실천들을 통해 그들의 임재를 경험한다. 그러나 그들 모든 종교들은 모두가 모든 것의 종국적 근거와 원천인 궁극적 존재, 즉 실재에 대한 참된 인간적 의식과 반응인 것처럼 보인다."
(4) 구원적 기능
- "우리가 말할 수 있는 한, 모든 전통들 안의 성자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모든 종교는 다 자아로부터 실재에로 전환시키는 데 있어서 동등하게 생산적이다."
- "각각의 (종교) 전통들은, 결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인간의 삶의 목적인 구원적 변혁의 참된 배경임을 나타내 보여 준다"는 것이다.
- "의미 있는 신정론은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의 궁극적 구원을 확언해야만 한다".
2. 종교 다원주의의 그리스도 이해
(1) John Hick의 그리스도 이해
- 힉에 의하면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의식하지도 않았고, 또 그렇게 주장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힉은 이렇게까지도 말한다: "실로 예수는 아마 그가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개념을 신성 모독적인 것으로 간주하였을 것이다!"
- 구약과 고대 근동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종을 지칭했다.
"예수께서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은 문자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문자적으로 참된 것이 아니라, 고대 사회에서 왕에게 돌려지는 신적 아들 됨의 개념의 기능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신화적 개념을 예수께 돌리는 것이다."
- 은유적인 신의 아들에서 나중에는 문자적인 '신의 아들'이라는 형이상학적 존재로 이해되기에 이르렀다.
(2) Paul F. Knitter의 그리스도 이해: Theocentric Christology
Paul F. Knitter, Dr. Theol. (Marburg), 신학 교수 자격(Pontificial Gregorian Univ., Rome)
Xavier University (미국 신시내티 주) 신학부 교수
- relational uniqueness(관계적 독특성)
"다른 독특한 종교들(other unique religions)과 관련하는 - 즉, (다른 종교들을) 내포하고 (그것들에) 포괄되는 - 능력에 의해 정의되는 독특성"
- 본문과 그 맥락은 경험과 의미의 지평 안에서만 이해되는데, 그 지평은 역사를 통해 확대된다.
- 특히 인간의 경험이 부족적인 것(the tribal)으로부터 세계적(the global)인 것으로 진보해 갈 때는 본문의 새로운 해석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신약에 충실하지 않은 것이고, 신약 성경이 참으로 의미하는 바를 듣지 않는 것이 된다.
- 예수는 우리에게 기독론을 주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가장 많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자신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종말론적 선지자로 이해하셨다는 것이다.
- 초대 교회 공동체가 예수의 신 중심적 멧세지를 그리스도 중심적인 멧세지로 바꾸었다.
예수를 통해 얻은 계시 경험, 구원 경험으로부터 교회는 다양하게 예수를 표현해 왔다. 이전의 개념들, 유대적 지혜 개념, 희랍적 로고스 개념들을 사용하고 대화하면서(dialogical).
- 그들은 절대주의적 문화 가운데 살고 있었으므로 절대적인 용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이런 절대적 용어를 과학이나 철학, 또는 교의학으로 이해해서는 안되고, 고백과 증언으로 이해해야 한다. 스텐달이 표현한 바 '사랑의 언어"(love language)로 말이다. 그러므로 초기 신자들은 형이상학을 표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와 헌신을 표현한 것이다.
- 부활은 "일어난 것을 사진처럼 진술한 것이 아니라, 변개 경험들을 표현하려는 시도이고 만져질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하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 "예수의 부활은 유일한(one and only) 것이라는 것을 필연적으로 함의하지 않는다."
- 배타적으로 유일한 예수를 갈망하는 것은 불안한(insecure) 기독교 신앙일지도 모른다.
(3) R. Pannikar의 그리스도 이해
스페인인 로마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와 인도의 힌두교도 아버지를 둔 화학, 철학, 신학 분야의 학위를 받은 인도의 천주교 사제요 힌두교 학자: "문화-교차적 인간"
공동의 신비를 기초로 작업
그것은 교리나 개인의 자의식 안에 있은 것이 아니라, 모든 곳, 모든 종교 안에 쉽게 현존하는 것이다.
"정상에 이르는 서로 다른 길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모든 길들이 사라진다면 정상 그 자체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정상은 어떤 의미에서 그에 이르는 경사진 길들의 결과일 뿐이다. ... 실재는 많은 이름들이고(is), 각각의 이름은 각각의 새로운 측면들이다."
왜냐 하면 세계가 변했기 때문이다. 세계가 변화되면 (의미의 지평이 변화한 것이므로) 의미도 바뀌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유일회성과 보편성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재해석해야 한다. ===> "참된 보편적 그리스도론"
- "그리스도는 실재, 즉 신, 인간, 우주의 전체성에 대한 살아 있는 상징이다".
"인간과 신은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다...... 신과 (세계를 포함한) 인간의 두 실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신 혹은 인간 둘 중의 하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실재 그 자체는 신인 양성적(theandric)이며...... 신과 인간은 이를테면 실재를 형성하고 역사를 전개시키며 창조를 계속하는데 가까운 구성적 협력 관계에 있다....... 신, 인간, 그리고 세계는 하나의 유일한 모험에 개입되며, 이러한 개입은 참된 실재를 구성한다....... 신인 양성론은 역설적 형태의 인간의 무한성과 ...... 신의 유한성이다."
그리스도는 이런 역동적인 비이원론적인 통일의 상징이자, 그 본질이다.
그는 "신적인 위치를 잃음이 없이 참으로 인간적이며 세상적이고 ... 두 극을 연결시키는 실재이자 결코 하나로 해소됨이 없는 두 극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 안에 있는 신성의 터전이며, 인간이 처음부터 신의 아들로, 유일한 아들과 동등한 자로 운명지어지도록 부르는 부름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역사적 이름이나 형식도 그리스도에 대한 충분하고도 궁극적인 표현일 수는 없다고 한다.
-구원의 보편적 상징으로서의 그리스도는 객관화될 수 없으며, 따라서 단순히 역사적 인물로 구체화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떠났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말이다.
-기독교의 역사성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 혹은 사건들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 그리스도, 즉 범우주적 신-인 양성론적 사실은 일정한 구체적, 역사를 통해서만 실제적일 수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이름을 가져야 한다. "그 주되심이 무수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이러한 주는 내게 있어서 나사렛 예수와 불가분리적으로 연결되면서 궁극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그러나 예수는 "최고의 이름" 즉 항상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인(골 2:9) 그리스도의 구체적 역사적 이름이다. 모든 이름 위의 이름, 즉 그리스도는 Rama, Krishna, Isvara, Purusha, Tathagata 등의 많은 역사적 이름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수는 ...... 범우주적인 신-인 양성론적 원리의 많은 이름들 가운데 하나로서, 이 원리는 종교성의 참된 형태들이 존재하는 만큼이나 많은 이름들을 구체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나사렛 예수 안에서 역사 안에서의 '유일회적인' 현현을 발견한다."
- 하나님과 브라만은 같으며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고, 그가 만물을 유지하고, 만물은 그에게로 돌아간다...... 그리스도는 " 이 세상이 낳은 그것, 이 세상이 그에게로 귀환하는 그것, 이 세상이 유지하는 그것", 곧 브라만이다. 그리스도는 브라만 안에 있고, 여러 사람은 다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
(4) Stanley T. Samartha의 그리스도 이해
인도 출생의 남인도교회 장로
1968년부터 1980년까지 WCC의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 담당자로 일함
-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고, 그들 속에 내재된 신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신앙의 추종자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하여 그의 인격에 대한 교리와 교의와 더불어 교회의 구조 너머로 움직이고 있다."
- 더 넓고 깊은 개념적인 틀: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분리시키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 속에서 결합시켰다. 다른 신앙의 이웃을 적대시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하는 은혜의 대상이라는 더 넓은 공동체의 반려자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종교들이 함께 진리를 추구해야만 함께 정의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1970년대 후반): "신적인 진리에 기초하지 않은 진리치고 영속적인 진리가 없고, 사회 정의의 열매를 맺지 않는 진리치고 참된 신적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 라너 식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논의 등은 이웃에게 자선 행위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만을 유일하게 절대자로 인식하고, 모든 종교들을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될" 종교간의 만남의 모델 추구
"깊이에서 보면 모든 종교적 삶의 본질적인 모습은 그 순례자적인 성격에 있다. ... 도상의 오아시스는 궁극적인 것으로 주장되어서는 안 된다."
"동일한 다원주의 세계 속에서 그들의 이웃 역시도 그들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 신은 성육신에서 자신을 상대화한다.
-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신 중심적이다".
3. 종교 다원주의 기독론의 공통점과 그 함의
3-1. 공통점: 칼시돈적 정통 기독론(Chalcedonian Christology)의 거부
(1) 신화적(은유적) 기독론(mythic Christology, metaphorical Christology)
Hick - 예수가 우리의 충분한, 효과적인, 그리고 구원하는 '신과의 접촉점'임을 전달해 주는 표현(our sufficient, effective, and saving point contact with God)
- 신화는 "문자적으로 참되지는 않으나 ...... 듣는 이들에게 특별한 태도를 야기하는 이야기나 상(像, image)"이라고 정의함.
"나는 신화라는 말을 문자적으로는 참되지 않지만 그 주제에 대하여 성향적 태도를 유발하는 경향이 있는 이야기나 진술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신화의 진리성은 실천적인 진리이다. 즉, 참된 신화는 우리가 신화적인 방식이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는 실재와 우리를 바르게 관련시키는 것이다".
Knitter - 기독론적 언어는 문자적이 아니라 신화적이거나 비유적이다(figurative)
- 철학이나 과학이나 교의학의 언어가 아니라, '고백과 증언'의 언어들이다.
- 사랑의 언어(love language)
- 예수가 유일한 구주라고 피력함에 있어서 신자들은 '형이상학적 원리를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관계"를 나타낸다.
- 행 4:12 같은 구절은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표현하는 '사랑의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
(2) 신의식적 기독론(영감적 기독론, Inspirational Christology) Schleiermacherian?
- "예수의 현존 속에서 우리는 신의 현존 속에 있다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그것은 인간 예수가 문자적으로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영적인 영향에 의해서 그 의식에 관한 어떤 것을 파악할 수 있도록 신에 관해서 그렇게 전적으로 의식했다는 의미이다".
- 예수는 그저 "신의 실재를 강력하고도 넘칠 정도로 의식하고" 있었고, "그의 영은 하나님께 대해서 열려 있었고, 그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계속적인 반응"이었다고 말한다.
(3) 내재적 기독론(immanent Christology)
힉은 "유한한 존재는 무한한 속성들을 가질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골 2:9)라고 말하기보다는, 예수님께서는 유한한 인간적 삶 속에서 표현될 수 있을 만큼의 무한한 신적 도덕성들을 구현하였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고 말한다.
(4) 정도 기독론(degree Christology) => 보편적 기독론(universal Christology)
- "성육신이란 정도의 문제이다.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거나 그리스도를 닮거나 또는 참으로 거룩한 이들인 한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 속에 성육신하고 계신다."
- "이런 의미에서 성육신은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다른 방식과 정도에 따라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
- "그리고 이런 은유적 의미로, 우리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한, 하나님이 인간의 행위 안에서 '성육신 하셨다', 구현되셨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구든지 몸이나 마음이 병든 사람들, 연약해서 억압받는 사람들, 난민들, 나약한 아이들, 착취를 당하는 가난한 사람들, 사별하여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으로 행한다면, 언제든지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에 성육신 하게 된다".
- "어떤 이가 무사(無私)한 사랑 가운데서 행할 때마다 아가페가 인간의 삶 가운데서 성육신 하는 것이다".
3-2. 함의
(1) 신론의 변화
(2) 구원론의 변화
-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있을 필요성이나 하나님으로 하여금 용서하도록 하기 위한 속죄적 죽음의 필요성에 대한 시사가 없다"는 것이다.
- "그리고 이런 이해[은유적 성육신 이해와 이로부터 나온 신론]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게 되었는 지에 대한 이론이라는 의미에서의 그 어떠한 구속 교리(atonement doctrine)도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어떠한 중재자나 속죄 제물이 없이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며, 구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것을 기대하도록 우리에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 "그것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구원은 ...... 현세에서 시작되는 본성적인 '자아 중심'으로부터 '신/궁극적 존재/실재-중심'으로 새롭게 방향을 전환하는 인간적 변혁이다."
-"현세에서 시작되어 현세를 넘어 완성될 때까지 계속되는 신적인 창조적 과정"의 한부분
(3) 선교와 다른 종교와의 관계관의 변화
- "어떠한 종교적 전통을 가졌든지, 또는 아무런 종교적 전통을 갖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과정[구원/깨닮음/해방의 과정]이 시작되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4. 종교 다원주의 기독론에 대한 개혁파적 반응
(1) 그리스도의 위격 중심의 반응
-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주(主)요 하나님이셨다.
-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30년과 50 사이에 이미 예수께 적용되었다.
(2) 그리스도의 사역 중심의 반응
- Pluralism
- Inclusivism (1) Roman Catholic Inclusivism
(2) so-called Evangelical Inclusivism
- Exclusivism (1) Barthian Exclusivism
(2) Arminian Exclusivism
(3) Reformed Exclusivism
더 깊은 연구를 위한 참고 문헌 목록
1. 종교 다원주의 이해를 위해
(종교 다원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글들)
Dennis L. Okholm and Timothy R. Phillips, eds., Four Views on Salvation in a Pluralistic World (Grand Rapids: Zondervan, 1996), 한역, {다원주의 논쟁}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1).
Andrew D. Clarke and Bruce W. Winter, eds., One God, One Lord: Christianity in a World of Religious Pluralism, eds., Andrew D. Clarke and Bruce W. Winter (Grand Rapids: Baker, 1992).
Richard Lints, The Fabric of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93), 245-59. Ronald Nash, Is Jesus the Only Savior? (Grand Rapids: Zondervan, 1994). D. A. Carson, The Gagging of God: Christianity Confronts Pluralism (Leicester: Appolos, 1996).
Alister McGrath, A Passion for Truth (1996), Chapter 5.
김영한, "현대신학의 종교다원주의 운동" 그리고 "종교다원주의와 그리스도의 유일성", {21세기와 개혁신학 II: 포스트모더니즘과 개혁신학}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13-41, 43-76.
(다원주의에 동감하는 글)
Paul F. Knitter, No Other Name? - A Critical Survey of Christian Attitudes Toward the World Religions (Maryknoll, N.Y.: Orbis Books, 1985), 변선환 역,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6).
John Hick, God Has Many Names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2).
2. 개혁신학 정립을 위하여
(기본적인 교과서들과 함께)
김홍전 목사님의 강설집들
최낙재, 『소요리문답 강해 1 , II』(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9, 2000).
이승구, 『개혁신학에의 한 탐구』(서울: 웨스트민스터 출판부, 1995).
______, 『교회론 강설: 교회란 무엇인가?』(서울: 여수룬, 1996).
______,『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강해 1: 진정한 기독교적 위로』(서울: 여수룬, 1998).
______,『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강해 2: 성령의 위로와 교회』(서울: 이레서원, 2001).
______, 『개혁신학탐구』 (서울: 도서출판 하나, 1999).
http://blog.daum.net/kkho1105/3582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