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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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자

그리스도중심의 성경이해

그리스도중심의 성경이해
 
1장. 개혁주의 종말론 이해의 새로운 전형
인간 문명에 대한 불신, 자연으로부터의 위기감, 외계인 침공과 같은 지구 파멸에 대한 두려움 등의 문화적 종말론과 더불어 ‘때와 시간’중심의 성경적-신학적 종말론과 달리 성경적 종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중심이 핵심이며 모든 것을 예수님께 연결시키고 있다. 즉, 성경적 종말론은 언약적-구속사적-승리의 종말론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따른 변화에 맞추어 성도들과 세상에 일어난 종말론적 변혁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경이 제시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적 특성을 알기위해서는 그분의 하신일과 이로 인한 변혁의 영향을 살펴보면서, 고전15:1-5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하신일로서 복음을 정의하며, 이것은 복음의 근본적 특성과 이어지고, 4가지 동사로 이루어진  구속의 사역을 읽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시공을 뛰어넘는 영적인 이적의 변혁은 종말론적으로 이해한다. 그리스도의 인격은 온 교회적 인격과 만유적 인격으로서 성경 여러 곳에서1) 기록되어져 있고 교회의 모든 성도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하심을 볼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거듭남에 대한 변혁의 축복, 성령론적인 재창조, 종말론적인 변혁이 가능하며 예수님의 인격으로 대표원리, 임마누엘 원리가 쉽게 이해됨을 알 수 있다.
 

성도들은 물론 만유의 종말론적으로 화목의 변혁은 시작되었으며 그러나 최종적 완성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며, 성도는 성령에 의해 믿는 순간에 이미 중대한 영적변혁, 새사람이 회복되는 변혁을 입었다. 이는 하늘에 앉힌자, 영생을 가진자, 세상을  이긴자, 부활의 능력 소유자, 세례요한보다 큰자, 율법을 이룬자 같이 성도를 지칭하는  이름에서  성경적으로는  화목적 특권을 이미 누리기 시작했음을 볼 있다.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온 우주보다 큰 만유적 변화이며 이는 성도는 그리스도 안의 사람으로서 새로이 창조된 피조물이며, 하나님과 만유가 화목되고, 옛것(죄, 사망)이 지나 갔는 변혁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천국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으로 인해 이미 변혁되었고 재림때에는 완전히 세워질 만물의 새 세상 질서로 정의 한다. 이 변혁의 내용으로 하늘에서는 사탄을 쫒아 내시고 보좌의 오른편에 앉으시었고 성도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보좌까지 높아졌으며 하늘의 참된 성소를 새롭게 여시어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며  땅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새 사람으로 연합되는 변혁을 가져왔다.  바른 종말론을 이해함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를 신실히 수행하며 주님의 재림을 고해하고 소망가운데 믿음으로서 열심을 내야함을 지적한다.
 

2장. 신약 경건의 기독론적 이해
 

최근 잘못 이해되고 무분별하게 사용되어지는 경건에 대하여  개혁주의 교회에서의 인식경향을 점검하고 신약이 말하는 경건을 새롭게 규명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신앙적 반응, 즉 신앙 인격적 자세로서의 경건이 오늘날은 영성이란 용어로 대체되면서 신비주의적 측면에서 그 이해를 넓혀 가고 있다. 허나 전통적 개혁교회가 수준에 못 미치기에 새로운 돌파구로서의 노력은 이해되나 기본교리를 비하하고 신비주의가 영서의 요체로 인식하는 점은 바람직하지 못하고 위험하다. 마찬가지로 영성이란 말을 너무 다양하고 광범하게 사용하고 또한 사람마다 주관적이고 그 뜻이 다른 것도 문제점이다. 가장 크게는 영성이 신비주의를 핵심으로 한 성령론이 된 점인데 이는 이를 수용한다면 개혁교회의 신학이 엄청난 변화와 변질을 가져오는데 신학적 지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경건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이해를 근원적으로 새롭게 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리스도 인격중심으로서 경건을 새롭게 이해하고 규명하였다.
 

경건은  신자의 신앙 윤리적 주제가 전부가 아니라, 신자들의 모임인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적 주제다. 경건의 비밀2)이 그리스도의 비밀3)이며 곧 그 그리스도를 가르킨다. 또한 예수님이 구속사적 변혁에 따른 성도의 구속사적 변혁을 말하며 고전15:44-46에서 살려주는 영이 되신 예수님이 변혁이며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경건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는 적용 될 수 없는 말이다. 경건은 신자가 선물로 받은 종말론적인 특성이다. 그 마지막 완성은 주님 재림 때 이루어 질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비로운 연합을 하였기에 성도가 신령한자로 변혁하듯 경건도 신령한 자의 것이다.
 

경건은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그러므로 새로 사용하는 영성이란 말도 그리스도 중심으로 합당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3장 박윤선의 성령론
 

‘성경 신학’에 나타난 정암 박윤선의 성령론 중 오순절 성령의 강림은 G.Vos와 H.Ridderbos의 영향을 많이 받아쓴 것으로 편저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는 오순절 성령 강림을 교회를 위하여 신자 개인 심령의 성전화가 이루어 졌고, 제자들에게의 약속을 성취한 것과 동시에 요엘2:28이하의 약속된 성령의 종말론적 도래 및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효과를 신약시대 전체에 걸쳐 시행되는 능력을 보장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단회적 성령강림을 말하였고 이후의 성령의 임함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따르는 결과로 되어진 일이라고 하였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건의 완성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보기는 하였으나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정암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성령세례로 규정하면서 우리들에게는 성령 충만으로 적용하였고 은사를 당시와 구별하였다. 즉 교회시대에는 사도의 증표를 보여 주는 이적은 없다고 하더라도 특별섭리는 있다고 한다. 정암의 방언 은사에 대한 견해는 획기적이라 할 만하며 개혁교회 입장의 변화를 요구한다. 또한 선교운동, 증거운동이 교회의 근본적인 활동이며, 교회의 본질이라고 하였다.
 

또한 놀랍게도 성령강림을 다락방에 모인 정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보았고 이는 정암의 성품대로 그의 성령론이 하나님의 섭리 및 약속과 더불어 인간의 책임을 다같이 강조한다.
 

나아가 발전적 과제로서 몇 가지 측면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오순절 성령강림도 인격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에서 출발해야 하며,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단회적이지만 성령강림은 단회적인 표현을 지양해야 하고. 성령 강림으로 열린 종말론적인 성격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규명해야 한다. 신약시대는 구약의 예언 성취와 예수그리스도 의 십자가 사건 으로 특징지어진다. 말라기 4:5의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신약시대이며 구원과 은혜의 시대인 동시에 심판과 저주의 시대로서 하나님의 언약의 통일성을 엿볼 수 있다.이와 같은 내용은 요엘2:28-32의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날’이 나오며 이사야61:1-2에서는 ‘여호와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이 나온다. 신약의 시대는 구원의 시대인 동시에 심판의 시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순절 강림으로 구원, 생명, 새 세계, 천국, 오는  세상 등은 이미 도래 하였으나 아직 온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나아가 오순절 성령강림이 예수님의 인격(집단적 인격)적 특성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신분적 특성을 우리의 신분적 특성으로 적용시키고 있다. 우리의 정체성은 주님의 신분과 사역으로 결정되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산자로서 이미 우리의 종말론적, 결정적 성화로 ‘이미’ 얻어 놓은 것으로 주님의 재림시 온전히 실현된다. 여기서 우리는 종말론을 기독론의 배경을 정확히 한 바탕으로 성령론을 더 깊이 이해하여야 함을 알 수 있다.
 

정암의 성령론은 신학이 정립되기 전의 한국교회에 성경적인 성령론의 기초를 두었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기억하면서 말씀과 기도의 실천적인 신학자인 정암을 이어가는 과업을 수행하여야 한다.
 

4장. 게할더스보스 성경신학의 발전적 과제
 

존볼트 교수는 개혁주의 성경 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보스 성경신학에 대하여 구속을 개인 영혼구원차원에 한정시키지 않고 피조물의 회복과 종결로 보면서  그의 교리적 인식을 지닌 석의, 성경 신학적 통찰의 결합은 오늘날개혁신학에 의의가 크다고 하면서도 오늘날 개혁주의 성경신학의 과제에 대한 기획선언으로서는 더 이상 충분하지 못하다고 한다. 그는 성경신학은 정경적-본문적 해석 안에 머물러야 하며, 본문 자체의 설명(이야기) 구조에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본문 중심의 접근법을 주장하는 신비평과 입장이 비슷하나 신비평은 한계가 있고 이제는 예수님의 인격에 비추어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것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는 존재보다는 행위에 치우치는 경향과 복음이 윤리와 도덕 차원에 머물러 있는 작금의 신학을 바로잡아야 한다.
 

예수님의 인격을 무시한 본문 해석의 결점의 예로서 예수님의 시험받으신 사건(마4:1-11)을 다루면서 예수님의 인격중심으로 해석한 장점을 요약하면, 칼빈은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에 그 시험을 당하였고 대표성으로 시험을 받았으며 구속자로서 온 교회이름으로 시험에 들어갔고 주님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며 이러한 승리로 우리도 시험중에 확실한 소망을 가져야함을 이야기 했다. 이와 달리 라일은 칼빈의 예수님의 인격적 측면에서 이해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캠벨몰간은 예수님의 하신일을 부각하고 있으나 라일과 거의 비슷한 이해 수준이다. 보스는 이 사건은 성경에 기록된 여러 사건과 연관되어 있고, 주님의 시험의 특이성으로 예수님은 영성을 얻도록 하기위한 적극적 행동을 시작하기 전에 가로 막는 모든 죄를 제거해야 했다고 특이성을 설명하며 시험받으심의 형태별로 설명하지만 이러한 일을 하신 예수님의 모범이 근원적으로 우리에게 계시하는 것의 이해와 더불어 성경은 주님의 하신일을 통한 인격을 올바로 이해함이 필요하다. 이러한 예수님의 인격을 신약성경에서는 마2:15, 행9:4, 갈3:16, 엡2:15을 통하여 보면 예수님의 인격은 온 교회적이며 온 세상적인 인격이기에 신자는 종말론적인 축복이 가능하며 이러한 축복은 모두 예수님의 구속사역으로 이미 우리에게 원칙적으로 이루어진 축복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험도 해석되어야 한다. 이것이 보스의 성경신학을 포함한 신학전반의 긴급한 과제이다.
 

5장. 설교를 위한 성경 연구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윤리와 도덕적 모범 설교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고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역이 역사할 수 없다. 하나님 차원에서 본문을 보아야 하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펼치시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보아야 한다. 설교의 변화를 요구하는 성도의 숫자가 많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설교자는 성경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구속사적 설교를 위한 연구가 필요하고 상당한 신앙적, 신학적 기초훈련이 필요하다. 나아가 그리스도가 성경의 내용이고 목적이며 중심이라는 즉, 성경해석도 설교도 그리스도 중심으로 지향되어야 한다. 본문을 자기 스스로 석의하고 그러한 가운데서 구속사적 위치와 의미를 먼저 파악하여야 한다. 단어의 해석도 의미의 단일성과 단어의 의원에 너무 과대 비중치를 두는 것은 없어야 한다. 성경본문을 내용을 해석함이 우선이다. 즉 본문을 여러 각도에서 접근해야 하며 총괄적 해석을 해야한다. 목회자는 본문의 제일 주된 계시를 파악하는것이 무척 중요하며 이것을 차례대로 교인에게 가르쳐야 한다. 교인은 한 본문에서 다양한 설교가 필요한것이다. 성경연구로 인한 목회자 자신의 변화와 변화된 삶에서 나온 설교라야 생명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6장. 포도원 일꾼 비유의 해석 열쇠
 

마20:1-16 나오는 포도원 일꾼 비유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며  20:12은 무슨 뜻일까?일반적으로 교회안에서는 아무리 믿은지 오래되어도 충성하지 않으면 신앙의 추격을 당하기 마련으로 해석한다. 역사적으로 학자들과 교계에서는 일치된 해석을 찾지 못한다. 공통된 경향을 제시하면, J.Jeremias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놀라운 관용을 가르친다고 하며,  H.N. Ridderbos는 천국의 질서와 관련하여  이 세상에서 누렸던 지위와 역할이 바뀐다는 것으로 가르치며, 많은 학자들이 상급과 관련된 문제로 다룬다. 상급은 하나님의 은혜지 공적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즉 예수님을 따름이 큰것이라고 오직 섬김을 말한다. 예수님은 이 비유로서 천국의 일면을 가르치기에 중요한것은 이 천국의 의미 규명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비유해석에서 문맥을 중시해서 해석하여야 한다. 나아가 비유뒤에 이어지는 주님의 고난, 죽으심, 부활의 예언을 다루지 않는것도 많은 학자들의 오류이다.  본문이 속한 큰 단락 문맥의 주제 가운데서 파악해야 한다. 당시의 제자들의 천국에 대한 이해와는 다른 천국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은 어린아이의 설명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바로 천국임을 암시하고, 부자청년의 설명에서는 자신을 떠난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것으로 보여주시며 나아가 주님을 따르는 것은 바로 천국을 맛봄, 즉 천국을 누리는 실재를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분도 변화와 관계성을 이해하며 해석해야 한다.
 

이 비유를 신학적 해석상 고려할 요소는 인접문맥 요소와 천국과 예수님의 구원사역과  관련지어 해석하는것과 나아가 그리스도 중심의 구속사적으로 이해할 수있음을 짐작사는것이 주요하다. 비유의 결론인 20:16이 예수님의 죽으심 및 부활고 밀접한 관계가있음을 이해하고 개인의 구원론적인 해석보다는 경륜적인 변화에 따른 구속사적인 해석을 해야 한다. 
 

나중 된 자와 먼저 된 자의 원천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근본은 구속사역이고 그 다음이 보상이다. 비유는 교육적이 아니고 신학적이다. 쉽게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아닌 구원사적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비유자체도 예수님만이 하실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신분의 변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우주적이 변화에 따른 것, 근본적인 변화, 즉 천국에 들어가는 변화로서의 구원, 재창조를 가르치고 있다.
 

7장. 지옥은 어떤 곳인가?
 

성경의 지옥은 어떤 곳인가? 실제로 존재하는가 등에 관련하여 먼저 용어를 살펴보면 구약의 쉐올이며 무덤, 사망, 깊음과 더불어 음부으로 나타난다. 게엔나도 사용되는데 힌놈의 꼴짜기라는 지명을 말한다. 이는 그 상징성으로 형벌을 받는 것. 죽은 자가 자기의 죄로 인한 영원한 고통을 받는 속으로 ‘악한자들의 종국적 상태’을 말한다.  음부를 묘사하는 경우 특징은 주로 아래의 방향성, 깊은 곳을 나타낸다. ‘음부로 내려간다’등 여러 가지로 묘사된다. 지옥을 신학적으로 이해하면 지옥은 특정한 장소이며 이는 우리가 정확히 알수 없다고 하여 존재를 부인하면 안된다. 핫지는 지옥은 성령의 통치와 통제가 없는곳이나 장소로 말했다. 나아가 음부와 지옥은 하나이다. 지옥에 대하여는 그리스도 중심의 구속사적인 이해를 시도해야 하며 종말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이미 지옥이며 이미 심판이며 근원적으로 기독론임도 확신해야 한다. 천국의 반대 개념으로 보면 쉽게 이해된다. 또한 지옥의 현재성을  인정하며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데서 지옥을 현재적으로 이해하는 면도 있어야 한다.
 

8장. 사랑이 최고의 은사인가?
 

비 성경적인 정치적 작태와 패꺼리성 행태가 예사로 공공현히 난무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감안하면 차영배 교수의 새로운 성령론은 이야기 하기에 조심스러운 것이지만 새롭게  평가해보아야 한다. 고전13장(사랑장)과 앞의 12:28-31을 석의하여 성령의 은사와 관련하여 사랑을 어떻게 규정하는가를 살펴보면 먼저 이12:28-31은 12장의 결론이다. 즉, 은사의 ‘다양성속의 통일성’의 결론이다. 성도 개인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며, 은사의 다양성이 나온다. 중요한 것은 사랑을 은사로 포함한 곳은 아무데도 없다는 것이다.은사의 열거방식도 은사자보다는 은사자체를 나열하고 있고 서열을 강조하자 않고 성령에 근거한 영적인 은사에도 이지적인 것만 아니라 타고난 재능도 있다.‘영적 은사는 성령으로 힘을 얻어 서 교회의 어떤 사역을 위하여 사용되는 재능’이라는 그루뎀의 정의가 받아들여 진다. 은사는 다 가질 수없다는 점은 은사와 ‘사랑’의 차이를 나타낸다. 이는 사랑는 성도 모두가 예외없이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차이점임을 알아야 한다. 공동체인 교회에서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의미는 남들에게 ‘이해가 되는 모든 은사를 사모하라’는 뜻으로 이러한 은사들이 그 기능을 제대로 하기위한 적절한 틀로서 사랑을 논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13자의 사랑을 강조하는 도입문구에서 사랑을 은사라고 하지 않고  “제일 좋은 길”로 표현한 것이다.영적인 은사들로 인도하는길을 약속하는 것이 아닌 그것들을 능가하는 길을 약속하며 그 길이 사랑으로 인도되는것이 아니라 “사랑이 바로 그 길”이다.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은사들이 오히려 교회를 파괴하는 길이었다. 우리가 보는 사랑을 십자가로 정의되는 사랑이며 적극적인 사랑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은사”이다. 교회의 덕을 세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은사이다. 결론적으로 사랑은 성령의 열매 중 가장 큰 열매이다. 사랑은 성령의 다른 은사들을 시행하는 최고의 길이다.사랑없는 은사는 무용지물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따라 구하고 신령한 것을 사모해야 한다.
 

9장. 마태복음의 구조적 특징
 

한권의 책의 전체 구조를 파악한다는 것은 올바른 해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특히 그러한 경우 성경에서의 기본전제는 성경은 성령님의 작품이라는것 점이며 예수님의 행적을 다 기록한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마태복음은 5대 강화가 종결후렴문구인 ‘예수께서 마치시매’로 마치며 B>W>Bacon은 마태복음은 오경적 구조를 지닌다고 가설을 말했다.  이런 가설의 의미는 마태복음과 구약 사이에 일련의 연관성을 볼 수 있게 하였다. Ned.B.Stonehouse와 J.D.Kingsbury는 ‘이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로소...’구문을 주시하면서 구속사에 연관하여 설명하고 이를 기독론적 구조라고 하였다 이외에 교체 배열구조와 교차대칭구조가 있다. 최신의 마태복음 구조로 Stellenbosche대학교의 H.J.B.Combrink의 이론이다. 요약하면 마태복음은 5대 강화가 있고 4:17과 16:21이 역사적인 분기점이고 설명문과 강화가 일정한 관계 아래서 배열되어 있고 교차대칭구조가 현저한 특징이다.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결코 아무렇게나 기록되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성경해석자의 임무는 이러한 배열과 의도를 깊이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해석의  신비평의 차원을 넘어서 구속사적으로 해석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http://cafe.daum.net/cgsbong/20yi/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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