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모범보인 '박윤선'을 계승하자
개혁주의 모범보인 '박윤선'을 계승하자
이종연 목사, 아틀란타바이블 칼리지
"정암 잊어버리는 것은 개혁주의 포기하는 것"
해마다 6월이 오면 소천한 정암 박윤선 목사님이 생각난다.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과연 우리에게 정암은 누구였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정암 박윤선 소천 20년 지나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온 지 120년 조금 지난 현재 우리나라 교회와 신학은 그야말로 얽히고 설켜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게 보수니 진보니 가르기도 하지만 이른바 보수, 정통, 개혁, 칼빈주의를 서로 자처하다보니 이 말뜻조차 다시 자리매김 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왕정 시대를 풍미했던 조선 시대가 끝나고 대한민국이라는 공화정 시대가 정착하기까지 여러 번 뒤흔들렸던 이 나라에서 그나마 바른 교회가 남아 있는 것도 크나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냉철하고 겸허하게 돌아보면서 과연 오늘날의 교회가 어떤 자태를 추구하고 있는지 분명히 점검해야 할 것이다.
실국 시대의 압제와 광복 이후 벌어진 동족 사이의 전쟁, 혁명, 군사 정권에 이어 오늘의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는 이념 논쟁과 지방색과 빈부 격차 등 참으로 복잡한 형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조차 인격과 소신, 신앙고백을 생명보다 중히 여기기보다는 현실의 안주를 택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개혁신학의 으뜸가는 시금석은 바로 칼빈의 신학 사상이다. 칼빈의 '기독교강요'야 말로 복음에 근거한 개혁주의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학문 세계로 전개한 이는 화란의 아브라함 카위퍼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고 박윤선 박사가 화란 개혁주의 신학을 계승하였다.
개혁주의 선구자 가운데 한 분인 정암은 인격, 순수, 진실, 열정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피난 중에도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4권만을 으뜸으로 간직했다고 하니 개혁주의에 대한 그의 열정이 어떠했는가를 가히 짐작하게 해 준다.
정암은 이 땅에 개혁주의를 심은 하나님의 그릇이었다. 부산에서 고려신학교를 세우는 일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후에 총회신학교를 거쳐 오늘날 개혁주의의 산실인 합동신학교를 세우고 발전시키는 일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우리는 정암의 진실과 인격, 학문에 대한 자세를 먼저 배워야 한다. 정암으로부터 물심 양면 도움을 받았다면 그리고 올바로 그의 본을 받았다면 제대로 한 발짝이라고 내딛어 가는 것이 그에 대한 우리의 보답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그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원조를 밝히면서 칼빈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칼빈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초대 교부로부터 바른 전통을 꿰뚫는 것을 의미한다. 칼빈을 알지 못하고서는 결코 개혁신학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때문에 성도들의 수준이 칼빈과 마주하여 성경과 신학을 논할 정도가 되도록 자라야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교회의 목사는 가르치고 본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개혁 교회상의 하나를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다.
나아가 칼빈으로부터 더욱 올라가 진리의 기둥과 터인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에 든든히 서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시대의 소명과 역사적 사명을 각성하여 그리스도가 앞서 가신 그 길, 선진들이 수놓은 그 길을 계승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교회와 신학을 올바로 개혁함으로써 역사적 개혁신학과 그 신앙을 이어받고 이어주는 시대적 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작금 우리 교단의 주변을 살펴볼 때 과연 우리가 정암의 후예들이라고 자처할 수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암은 학문에 있어 출중함을 나타냈을 뿐 아니라 교수와 목회자로서도 결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 후예들이라고 자처하는 우리들 역시 그의 학문과 목회를 충실히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 사이 정암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정암을 잃었다는 것은 칼빈을 잃은 것이며 개혁주의를 잃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정암의 신학을 계승함에 있어 처음 합동신학교에서 열정을 다해 공부하며 신학을 연마하고 목회에 전념했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이 길이 생전의 정암을 만날 수 없었던 우리의 후배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개혁주의의 참된 모범을 보여주는 척도임을 잊지 말자.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개혁주의 모범을 보인 정암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이들이 많이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단을 가리켜 개혁주의 산실이라고 평하는 원동력이자 미래의 희망이다.
정암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하지만 우리가 정암을 잊어버린다면 그리고 그의 모범을 우리 후배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바르게 전수하지 못한다면 우리 교단은 유명무실한 하나의 장로교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http://cafe.daum.net/rpress/BoBB/10
이종연 목사, 아틀란타바이블 칼리지
"정암 잊어버리는 것은 개혁주의 포기하는 것"
해마다 6월이 오면 소천한 정암 박윤선 목사님이 생각난다.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과연 우리에게 정암은 누구였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정암 박윤선 소천 20년 지나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온 지 120년 조금 지난 현재 우리나라 교회와 신학은 그야말로 얽히고 설켜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게 보수니 진보니 가르기도 하지만 이른바 보수, 정통, 개혁, 칼빈주의를 서로 자처하다보니 이 말뜻조차 다시 자리매김 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왕정 시대를 풍미했던 조선 시대가 끝나고 대한민국이라는 공화정 시대가 정착하기까지 여러 번 뒤흔들렸던 이 나라에서 그나마 바른 교회가 남아 있는 것도 크나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냉철하고 겸허하게 돌아보면서 과연 오늘날의 교회가 어떤 자태를 추구하고 있는지 분명히 점검해야 할 것이다.
실국 시대의 압제와 광복 이후 벌어진 동족 사이의 전쟁, 혁명, 군사 정권에 이어 오늘의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는 이념 논쟁과 지방색과 빈부 격차 등 참으로 복잡한 형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조차 인격과 소신, 신앙고백을 생명보다 중히 여기기보다는 현실의 안주를 택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개혁신학의 으뜸가는 시금석은 바로 칼빈의 신학 사상이다. 칼빈의 '기독교강요'야 말로 복음에 근거한 개혁주의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학문 세계로 전개한 이는 화란의 아브라함 카위퍼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고 박윤선 박사가 화란 개혁주의 신학을 계승하였다.
개혁주의 선구자 가운데 한 분인 정암은 인격, 순수, 진실, 열정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피난 중에도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4권만을 으뜸으로 간직했다고 하니 개혁주의에 대한 그의 열정이 어떠했는가를 가히 짐작하게 해 준다.
정암은 이 땅에 개혁주의를 심은 하나님의 그릇이었다. 부산에서 고려신학교를 세우는 일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후에 총회신학교를 거쳐 오늘날 개혁주의의 산실인 합동신학교를 세우고 발전시키는 일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우리는 정암의 진실과 인격, 학문에 대한 자세를 먼저 배워야 한다. 정암으로부터 물심 양면 도움을 받았다면 그리고 올바로 그의 본을 받았다면 제대로 한 발짝이라고 내딛어 가는 것이 그에 대한 우리의 보답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그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원조를 밝히면서 칼빈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칼빈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초대 교부로부터 바른 전통을 꿰뚫는 것을 의미한다. 칼빈을 알지 못하고서는 결코 개혁신학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때문에 성도들의 수준이 칼빈과 마주하여 성경과 신학을 논할 정도가 되도록 자라야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교회의 목사는 가르치고 본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개혁 교회상의 하나를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다.
나아가 칼빈으로부터 더욱 올라가 진리의 기둥과 터인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에 든든히 서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시대의 소명과 역사적 사명을 각성하여 그리스도가 앞서 가신 그 길, 선진들이 수놓은 그 길을 계승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교회와 신학을 올바로 개혁함으로써 역사적 개혁신학과 그 신앙을 이어받고 이어주는 시대적 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작금 우리 교단의 주변을 살펴볼 때 과연 우리가 정암의 후예들이라고 자처할 수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암은 학문에 있어 출중함을 나타냈을 뿐 아니라 교수와 목회자로서도 결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 후예들이라고 자처하는 우리들 역시 그의 학문과 목회를 충실히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 사이 정암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정암을 잃었다는 것은 칼빈을 잃은 것이며 개혁주의를 잃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정암의 신학을 계승함에 있어 처음 합동신학교에서 열정을 다해 공부하며 신학을 연마하고 목회에 전념했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이 길이 생전의 정암을 만날 수 없었던 우리의 후배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개혁주의의 참된 모범을 보여주는 척도임을 잊지 말자.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개혁주의 모범을 보인 정암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이들이 많이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단을 가리켜 개혁주의 산실이라고 평하는 원동력이자 미래의 희망이다.
정암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하지만 우리가 정암을 잊어버린다면 그리고 그의 모범을 우리 후배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바르게 전수하지 못한다면 우리 교단은 유명무실한 하나의 장로교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http://cafe.daum.net/rpress/BoBB/10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