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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자

겸손한 노년 이상근 박사 젊은 교수 칭찬에 앞장

겸손한 노년 이상근 박사 젊은 교수 칭찬에 앞장
 
Ⅱ. 보수신학은 죽지 않았다.
                       겸손한 노년 이상근 박사 젊은 교수 칭찬에 앞장
③ 한국전쟁의 정전과 환도 후로부터 「전후시대」의 오랜 세월을 거쳐서 21세기의 「여명기」에 이르기까지 죽지 않았다.
그 무렵의 어느 날 총신에서 오전 강의를 하기 위하여 “사당동 고갯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나보다 몇 십미터 전방에서 이상근 박사가 책가방을 손에 들고 걸어가고 있지 않았겠는가. 빠른 걸음으로 간격을 좁히고 그 옆에 걸으면서 “이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가방을 들어다 드리지요”라고 인사를 하였더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사양하시면서 “박 교수, 수고가 많소”라고 하시고 나서 “요사이 들으니 박 교수가 명강의를 하신다면서요”라고 묻지를 않겠는가.
 
얼핏 깊은 생각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이 박사님, 감사합니다. 칭찬해 주셔서, 그런데 학생들에게 듣기로는 이 박사님은 언제나 명강의를 하신다면서요.” 그리고 나서 아차 실수했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필자보다 나이가 적어도 20년 선배인 아버님 같은 교수님에게 어떻게 지금 막 총신에서 교편을 잡은 “30대의 젊은 풋내기 교수”가 마치 그의 가까운 동년배 교수에게 말하듯이 “명강의를 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그 자체가 실례스러운 일이었음을 당장에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상근 박사는 그와 같은 말에 대하여 전혀 개의치 않으시면서 이런 말과 이야기를 하였다. “박 교수, 고맙소. 나보고 명강의를 한다고 하니 말이야”라고 하면서 이 박사 특유의 웃음을 소리내어 웃으신 다음에 “박 교수, 사실은 명강의의 필요성은 박 교수와 같은 젊은 교수보다 나이가 많은 나 같은 사람에게 더 있는 것 같아요! 나같이 나이 먹고서(50대 후반) 교수를 하게 되면 늘 젊은 교수들과 비교가 되어 학생들에게 학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지요.” 이상근 박사의 그와 같은 대답을 듣고서 두 가지로 은혜와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첫째로는 이상근 박사의 신학강의에 대하여 비록 신학생들의 말을 전했다고 할지라도 “명강의를 한다”고 한 것은 평가하는 뜻이 있었으므로 결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박사는 조금도 언짢게 생각 안하시고 필자와 더불어 대화를 즐겁게 계속하는 그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가짐에 감동을 받았으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이상근 박사가 까마득한 후배 교수인 필자에게 한국의 교수 사회와 학자 사회에서 후배 교수들이 선배 교수들을 존경 안 할 뿐 아니라 학문성이 없다고 업신여기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풍토”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괴로워하는 심정을 진솔하게 털어놓으심으로 큰 교훈을 줄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 미국에서 신학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총신에서 교편을 잡고 막 가르치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필자 역시 그 당신의 “젊은 교수”로서 사당동 초창기에 사역한 총신 원로교수들에 대하여 여태껏 외국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외국인 신학 교수들과 비교하여 학자적인 실력과 능력면에 있어서 많이 뒤떨어진다고 느껴져서 나름대로 마음속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사당동 고갯길”에서 총신을 향하여 함께 걸어가면서 이상근 박사와 더불어 나눈 대화는 “구미 지상주의적인 학문성의 평가의 경향”에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대화는 필자에게 한국 교회에서는 아직도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며 「세계신학」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인정받는 신학자가 못 나오고 있는 까닭은 한국인 후배 신학자들이 한국인 선배 신학자들을 “국제적인 신학자”로 존경하고 추대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이상근 박사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으며 필자 자신이 노교수가 된 지금도 그 존경심은 변함이 없다. 필자가 사당동 초기의 총신에서 “젊은 신학 교수”로서 가르치면서 학자적인 활동을 하던 1960년대와 70년대보다 21세기의 첫해인 작금에 와서는 더욱 한국 교회에서 “세계적 신학자 만들기 운동”이 우리들의 젊은 신학자들과 신학교수들의 손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때보다도 지금의 한국 교회에서 보수와 자유주의를 막론하고 젊은 신학자들과 젊은 신학교수들은 저들이 한국에서 배운 신학사상들과 한국의 신학전통에 대해서는 잊어버렸거나 과소평가하면서 오직 외국에서 박사학위 취득을 위하여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에 저들을 가르친 외국인 신학자들과 신학 교수들의 강의 노트와 저술들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그들을 학문적으로 우상화하는 경향이 날로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한 일이다!본지에서 오랫동안 집필하고 있는 본 논문 중에서 선친 박형룡 박사를 「한국보수신학」의 대변자요 대표자로 그토록 자주 언급하고 강조하는데는 박형룡 박사를 “세계적인 개혁주의 신학자 만들기 운동”을 하고자 하는 목적이 들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서울 사당동의 총신대학교에서는 박형룡, 박윤선, 명신홍, 이상근 등 총신 초창기 신학자들의 “세계적 신학자 만들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며, 서울 방배동의 천안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에서는 김치선, 최의원, 최순직과 같은 방배동 초창기 신학자들의 “세계적 신학자 만들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토착화 신학」이 아니다. 이는「신토불이 신학」인 것이다.
 
박아론(기독신학교 학장)
http://blog.daum.net/kkho1105/2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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