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1) 강의 내용 요약(이승구 교수)
조직신학(1) 강의 내용 요약(이승구 교수)
조직신학 I
국제신학 독일분교.
2008년 8월 20-26. 독일 프랑크푸르트.
강의자: 이승구 교수.
정리자: 문정은, 송다니엘.
정리자가 임의로 내용구분을 하고 소제목을 달았다. 이에 주로 벌코프의 책을 참조함.
“성경의 영감”은 원래 신론에 해당되지 않지만, 강의자 편의대로 삼위일체내에서 다룸.
[…] 대괄호 안에 있는 말들은 다른 곳에서 인용된 것이거나 정리자의 의견임
강의는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기본 교과서로 한다.
이승구 교수는 짧은 시간에 개혁신학을 매우 잘 정리하여 강의함. 이 강의를 잘 숙지하면 신앙생활에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조직 신학은 총 4학기에 걸쳐서 강의가 된다.
1학기: 신학서론, 신론.
3학기: 인간론, 기독론
5학기: 구원론, 교회론
7학기: 종말론, 현대신학
이번 학기는 주로 신론을 다룸.
학생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여러 지역에서 왔음. 강의는 조직신학 외에 김태훈 교수의 구약 해석학, 시편 강의가 있었음.
목차:
1부: 신학서론
2부: 신론
I. 하나님의 존재
A. 삼위일체
* 성경의 영감
B. 하나님의 속성
1. 비공유적 속성
2. 공유적 속성
II. 하나님의 사역
A. 작정
B. 예정
C. 창조
D. 섭리
1부: 신학서론
1) 신학의 정의:
Theologieren, doing theology.
희랍어: Theos (하나님) + Logos (말, 이성. Logia는 복수) theologia.
라틴어: Scientia dei 신학 Science of God
하나님에 대해 알 뿐만 아니라 그가 창조하신 세상에 대해서도 아는 것. 하나님과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 연구하는 것. 따라서 신론은 “1. 하나님의 존재, 2. 하나님의 사역” 두 부분으로 나눈다. 하나님 존재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면 추상적인 철학에 빠진다. 신학에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사역을 Oikonomia라고 하는데 경세, 경륜이라는 표현도 사용된다 Economy(경제)
인간은 하나님의 원형적 신학(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것: 하나님이 누구신지는 하나님만이 정확하게 아심)에서 비롯된 모형적 신학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원형적 신학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하려고 애쓴다. 이에 어려움이 따른다.
우리의 신학은 모형적 신학. 세상에서의 불완전한 신학, 길 위의 신학 theology on the way Theologia viatorum. 모든 신자는 신학자이다. 그런데 좋은 신학을 해야 함. 신학자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2) 잘못된 신학
a) 이성 중심 rationalism (이성주의)
- 이성을 강조하는 합리주의.
- 근대 철학의 출발점은 인식론이다. 이성(ratio)에 근거한 신학 시작. 계시를 의심하고 이성으로 판단하기 시작함. 이성적인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 계시를 판단하는 것이 문제. 하나님의 일은 계시로 주어지는 것이 많다. 이것을 이성으로 제단할 수 없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우리는 알 수가 없다.
- 타락 전: 아담의 신학: 원상의 신학 - 완전한 이성. 아담이 눈을 뜨자 마자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았음.
- 타락 후: 사람의 인격을 구성하는 3가지, 이성, 감성, 의지가 동시에 타락. 따라서 이성을 절대화시키는 것은 위험하다(감성도 마찬가지)
- 서구의 이성주의(17세기)는 Descartes (데카르트)에서 시작됨. 그는 하나님에 대해 “명석하고 판명한 개념”을 가지려 하였다 (Clear and distinct idea)
- 따라서 일단 이성을 가지고 모든 것에 대한 의심, 회의를 해봄. (더 명확한 것을 얻기 위해 의심하는 것을 방법론적 회의라고 한다) 그는 소박 실재론 (사과가 책상 위에 있다는 사실) 까지도 의심해 봄. 그런데 그가 “모든 것을 의심할 지라도 의심을 하는 주체는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름. 그래서 cogito ergo sum이라는 말이 나옴.
* Cogito(나는 생각한다) ergo(그러므로) sum(나는 존재한다)
(1) 나 자신이 존재해야 의심이 가능. 내가 아무리 의심을 해도 의심하고 있는 내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 그래서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의 존재를 먼저 확립하고(나는 존재한다)
(2) 다음에 하나님의 존재증명을 함 (존재론적 증명)
(3) 그 다음에 세상의 인식을 확립: 곧은 막대기는 물에 들어가면 굴절됨. 이와 같이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사탄이 속여서 실상을 못 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은 나를 속이지 아니하신다. 따라서 사람은 올바로 세상을 인식을 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이성으로 인식하는 것은 올바르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이야기가 당연한 것 같지만 문제는 인식에 있어서 계시와 이성의 순서를 바꾼 것이다. 우리는 계시가 이성을 가르친다. 그러나 데카르트에게는 이성이 계시를 판단한다. 그는 이성으로 인식하는 것은 옳다고 전제함.
- Cartesian theology: 데카르트의 뒤를 이은 합리주의 신학. 문제는 그들이 이성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 인간은 계시를 받아들여야 한다. 타락한 이성만으로는 올바른 신학이 불가능하다.
b) 칸트 이후의 신학
- 칸트는 데카르트를 수정함. 이는 사람이 이성으로 하나님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함. 그러나 칸트는 순수 이성의 영역에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가 없다고 한다. 즉 우리의 순수 이성으로는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계시는지를 판단할 수가 없다. 그의 저작 “순수이성비판”은 순수이성의 인식의 범위를 정한 것. 그러나 우리의 실천이성은 하나님을 postulate (요청)한다. 인간의 도덕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있어야만 한다. 만약 하나님이 있어서 인간의 사후에 선한자를 상주고 악한자를 벌주지 않는다면 사회는 즉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는 현상계와 예지계를 구분함
phenomena 현상계: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 가능한 영역. 물자체(Ding an sich)를 인식할 수는 없지만 보편 타당한 인식을 할 수는 있다1).
noumena 예지계: 물자체의 세계.
하나님을 이성으로 알 수가 없다면, 그 다음 단계에서는 사람들이 체험을 중시 여기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각자마다 체험하는 것이 다르다. 예를 들어 장님이 코끼리의 일부분을 만지고 전체를 판단하는 격. 체험자체는 옳을 수가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체험을 근거로 이야기 하는 사람은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서 말릴 수가 없다.
3) 올바른 신학.
고린도 전서 2:9-10: 하나님이 자신을 성령으로 계시(revelation)하심.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인간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것을 수납해야 한다.
타락한 인간은 수납(믿음)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문제. 하나님이 성령으로 계시를 주셔서 인간에게 받게 하셨으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비판(계시를 받아들일 태도가 부족)하여 받아 들일 만한 것만 받아들임.
계시에는 항상 걸림돌이 있다. (스칸달론) 걸림돌을 인간의 이성을 가지고 제거하길 원함. (동정녀 탄생 불신). 그런데 걸림돌을 제거하면 계시가 증발되어 버린다. 이것이 이성주의의 문제이다.
계시 의존 신학 thinking after God's thought 성경적 신학.
걸림돌을 인간의 생각으로 제단하여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변형시키면 안 됨.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서 사색해야 한다. 이것만이 올바를 신학이다. 우리는 이성주의 신학, 경험주의 신학을 떠나야 한다.
James Dunn의 예를 들자면:
영국 Durham 대학교수. 그의 저서 “신약성서의 단일성과 통일성”에서 한 이야기: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동정녀탄생의 기록이 없다. 이것은 마태공동체와 누가공동체에서만 동정녀 탄생을 받아들였음을 말하고 있다. 다른 공동체에서는 이것을 받아 들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투지 않고 공존함.
비판: 이러한 신학은 성경에서 동정녀 탄생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다. 여기서 마태공동체란 마태복음이 나온 곳. 자유주의자들은 마태가 마태복음을 기록했다고 믿지 않는다.
중생한 이성과 타락한 이성: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도들이 신약성서를 씀. 우리 입장에서는 성경의 말씀을 계시로 받아들여야 함. 이성과 경험은 도구가 될 수 있으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됨.
중생한 이성: 중생을 한 사람은 타락한 이성이 변하게 됨. 그렇다고 해서 이성이 올바로 회복이 된 것이 아니다. 단지 계시를 받을만한 준비가 된 것이다. 우리는 항상 조심스럽게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
Anselm: fides quarentes intellectum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AA전통: Augustin & Anselm의 태도
신 의식과 자연계시
바울(롬1) "하나님의 알만한 것"/ 칼빈 "sensus deitatis(sensus divinitatis) 신 의식"
신의식은 모든 사람 안에 있다.
자연계시: 롬1:20.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신성이 나타남.
이 두 가지가 있으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경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불의로 신지식을 억누름으로써 신 지식을 가지지 못함.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a) 자연/일반 계시 하나님의 창조물이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구원과 관련 없음.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
b) 특별계시 : 구원과 직접적 관련.
성경; 구전으로 전해지는 도중 발생 가능한 왜곡을 피하기 위해 성문화하여 계시를 보존한 것.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에게 특별계시(성경에 기록됨)를 주심. 성경이 특별계시이다.
- 구약시대는 말라기(나의 사자) 선지자 때 끝. 약 BC 400. 그 후 약 400년 동안 계시가 없었다(신구약 중간기). 그 동안 사람들은 이전의 계시에 근거하며 살면 된다. 믿음으로 산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음.
- 신약시대에는 정경/성경은 닫혀졌다(canon is closed). 더 이상 새로운 계시가 없다. 누가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 그는 이단이다.
-기독교: canon 66권에 근거해서 모든 일을 함 = 성경만을 믿는다. sola scriptura(오직 성경으로)!
-천주교: 외경(66권외의 추가적인 천주교 성경)과 전통을 믿는다. 그 외에 위경(예수님의 소년시절 얘기, 사도들의 황당한 기적)을 참조함. 교황의 칙서(성경과 같음. 권좌에서-ex cathedra-선언한 것은 오류가 없다: 교황 무오설). 영아림보사상 (어린애가 세례 못 받고 죽으면 영아림보에 간다 - 베네딕트16 현직 교황이 부인함.)
-이단 : 정경의 내용을 더하거나 뺌. (여호와의 증인 : 성경 +교주 요셉 스미스의 계시)
요한계시록 22:18-19. 원칙적으로 계시록에만 해당되는 말. 그러나 성경의 다른 책에도 적용할 수 있다.
- 거룩한 공회 the holy catholic church(참 교회)는 성경을 따라간다. 그러나 천주교는 성경 외에 다른 것들도 믿는다. 천주교는 교회가 성경을 결정했다고 함으로써 교회를 성경앞에 세운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 이전에 있었다. 교회는 성경에 따라서 구성되고, 교회는 원래부터 있었던 성경을 찾아서 결정을 한 것 뿐이다.
4) 개혁파 신학 Reformed theology
개혁신학은 성경에 근거한 계시만 의존한다.
그외 여러가지 종파:
1. Roman Catholic: 예수님/마리아상을 중시, 미신화됨. 필리핀, 브라질, 중세. 아직도 마리아가 나타나서 계시함. 신기하게도 신교도에게는 마리아가 나타나지 않음.
2. Greek orthodox 희랍 정교회: 성상 숭배 금지. 그러나 그 대신에 Icon 성부,성자의 그림을 그림 = 화상)
3. 로마 카톨릭을 부정하고 나온 루터파.
4. 그외 영국 Anglican, Methodist(웨슬리: 세계는 나의 교구), Baptist
이에 대한 천주교 입장 표명 : 루터의 종교개혁이 문제의 근원지이다.
Reformed: 칼빈이 루터의 영향을 받고 제네바에서 나름대로 좀 더 개혁함.
칼빈의 가르침을 잘 이어받은 곳: 네덜란드(개혁교회: Dutch Reformed Church)와 스코트랜드 (장로교회). John Knox (1505-1572)가 제네바에서 배움. “그리스도인의 가장 완벽한 신앙을 제네바에서 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에 돌아와서 장로교회를 세움.
5) 책과 신학자 소개
Mdiv(Master of Divinity ? 목회학 석사) 과정 - 과거의 선배들이 생각한 것을 구경하는 것.
1. 조직신학 일반
Herman Bavinck: 19c말 20c초. 화란의 자유대학. Magnalia Dei (Our Resonable Faith, 하나님의 큰 일). 모든 성도들이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쓰여진 책. 상당히 중요하고 좋은 책.
Louis Berkhof: 벌코프. 칼빈 신학대에서 가르침. Systematic Theology (조직신학). 1939초판. 매우 좋은 교과서. 바빙크의 개혁파 교의학(4권)을 거의 요약함. 17-20세기 초까지의 개혁신학을 잘 요약함.
Robert Raymond: “A New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Faith”. 그의 선생 Buswell것 보다 더 좋다. Covenant신대 조직신학 교수. 장로교 신학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다.
Gordon Sykeman: “Reformational Theology: A New Paradigm for Doing Dogmatics”. 좋은 책인데 지나친 면도 있음.
2. 신론
Herman Bavinck: The Doctrine of God. 이승구역. 역주가 많아서 읽기 좋다. 신학사 전체를 연구함.
Lorraine Boettner: “The Reformed Doctrine of Predestination”. 예정론을 정리함.
Gerald Bray: “The Doctrine of God” IVP 조직신학 시리즈. 좋은 책
Millard Erickson: “Christian Theology”. 침례교회 보수. 침례교의 특징이 나타남.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Biblical Doctrine” 벌콥의 책을 현대적으로 읽고 싶은 사람. “지금도 하나님 계시가 있다”는 침례교적인 성향이 있다.
J. Parker: “Knowing God” 경건서적으로 좋다. 꼭 읽을 것.
Cornelius Van Til: “An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원래 화란의 개혁파. Vos의 제자. 두 가지 전통인 화란 개혁교회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신학을 잘 조화시킴.
6) 신학 과목
a) Biblical studies 성경신학.
Exegetical theology: 주경신학. 성경을 주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 조직신학은 주경신학을 바탕으로 한다. 주경신학을 위해서는 히브리어, 헬라어와 신, 구약 배경사(고대 근동의 문화와 역사, 중간사), 성경 형성사등을 배워야 한다.
exegesis: 주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끄집어냄. 성경 안에 있는 그대로를 가져와야 함.
eisgesis: 잘못된 주해. 내 생각을 성경에 집어 넣어서 그것을 다시 끄집어냄.
이 연구의 마지막 과정은 성경신학(구약신학, 신약신학). 특별계시의 역사를 찾아냄. 각권의 특성을 잘 연구하면서도 성경으로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선을 발견하는 것. 벌콥의 서론에 잘 나와 있음.
b) 교회사 (역사신학 Historical theology)
과거의 교회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 어떻게 적용해 왔는지를 배워서 어느 것이 옳은가를 판단함.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 잘한 것을 발전시키고 나쁜 것을 버린다.
우리는 현재 20세기를 거쳐온 교회의 대변인으로 있다.
c) 조직신학 Systematic theology
우리가 믿는 바를 체계적으로 제시함. 과거에 나타난 잘못된 교리의 잘못된 이유를 체계적으로 설명해줌.
d) 실천신학 Practical theology
교회에서 실천에 옮기기 전에 한번 점검하는 것. 하기 전에 검토, 한 후에 검토. 성경에 맞는지를 늘 검토함.
- 우리의 실천에 대한 것을 검토. 설교 비판. 교회에 도움이 되도록 함.
- 실천신학의 예 (그 범위가 갈수록 광대해짐): 과거에는 예배학, 설교학, 전도학, 목회학. 점차로 목회상담학, 기독교교육학, 사이버목회학, 교회행정학 등이 추가됨.
- 재능이 제일 많은 사람이 실천신학을 해야 한다. 실천신학은 신학의 꽃이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에서 실천신학이 점점 세속화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 조직신학
조직신학의 방법: 우리는 종합적 방법(벌코프의 조직신학)으로 공부하는데 과목은 다음과 같이 나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고찰하는 방법이다. 결국 하나님의 인식이 올바로 되도록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물론 조직신학을 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
Prolegomena 서론
Theology proper 신론
Anthropology 인간론, 인죄론
Christology 기독론
Soteriology 구원론
Ecclesiology 교회학
Eschatology 종말론
루터와 칼빈의 비교
1) 루터는 믿음생활에 대한 자유를 강조하고, 그 당시에 대중들의 종교심을 감안하여 상을 모두 없애지 않고 일부분은 허용하였다. [교회에 쳐들어가 상을 파괴시켜서 혼란을 야기했던 과격파들을 멀리함]. 칼빈은 상을 모두 없앴다.
2) 루터는 교회 안의 역할을 Priester 제사장/사제와 Minister 섬기는 사람으로 구분하였으나 두 용어를 혼용해서 사용함. 그러나 후에 루터교에 와서는 제사장의 의미가 강해짐.
cf) Anglican 은 Prister of church 선호. 그러나 개혁파에서는 제사장이라는 말을 없애버림.
한국인들은 목사에 대해 제사장이라는 의식을 가짐(목사의 축복이 필요함)
[루터와 칼빈의 근본적인 차이 몇가지]
루터: 칼빈
하나님의 사랑 강조 십자가 신학 하나님의 영광 강조 하나님의 주권
성경에서 금하지 않는 것은 허용적. 성경에 명기되지 않은 것을 금지함
목사의 역활
1) 설교하는 자리에서는 원칙 중심(성경). 성경의 진리가 가감 없이 선포되어야 한다.
2) 목회적인 접근이 필요: 사목현장에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서 그 신자를 존중하고 수준에 맞춰서 진리의 세계로 인도함(인격의 문제)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내용을 왜곡하면 안된다. 이것은 영원한 말씀이신 예수님을 왜곡시켜 전하는 행위이며, 성도에게도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2부: 신론 (Theology Proper)
I. 하나님의 존재
A. 삼위일체
1. 유대인의 유일신 신앙: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 모세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고 유일신을 강조한 이유
신 6:4 Shema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 이 말씀은 출애굽 후 광야생활 40년이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신신당부한 말씀이다. 그런데 왜 그는 정확하게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다”라고 가르치지 않았을까?
- 그는 한 분 경배에 초점을 두었다. 다른 신(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의미에서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계시를 하셨다면, 이스라엘은 다신으로 이해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유일신이시며 모든 다른 우상을 제거하라고 하셨다.
-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계시 방법을 배운다: 성경의 계시방법은 점진적이다. 점진적으로 계시를 하면서 앞의 계시를 번복하는 것이 아니라 앞의 계시가 점점 명확하게 되는 것이다. 구약에 희미하게 계시된 예수님은 신약에서 완전히 계시되었다.
- 아브라함의 조상까지도 다른 신을 숭배하였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가운데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큰 축복이다.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 이스라엘은 다신론적 이집트에서 빠져나와서 다시 다신론적 사회인 가나안으로 들어감. 그래서 모세가 유일신을 매우 강조함. 유대인들은 왜 우리만 유일신을 섬겨야 하는가 하고 회의를 가질 수가 있음.
- Monotheism: 여러 신들 중에 한 분만 섬김. Poli-Theism 다신론과 반대.
- 유일신론: 신은 하나 밖에는 없다.
- 유일신론의 종교는 3가지 밖에는 없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섬김)
실천적 무신론자
- 실천적 무신론자란, 하나님이 계심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이다. 예: 아담의 타락 직후에 하나님과의 대화에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변명함. 하나님과 대화를 한다고 해서 신앙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가인의 예에서 더 뚜렸하게 나타남.
- 노아 시대의 사람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알지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지 못했다.
- 대홍수 이후에 8명이 살아남음. 그의 후예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고 바벨탑을 쌓음.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생각하지 않음.
- 하나님 말씀에 순종을 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천적 무신론자이다.
- 너의 존재 전체(100%)를 다 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절대(하나님)는 절대(100%)를 요구함.
- 영적인 간음: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 99% 사랑하는 것. 부부관계도 마찬가지 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적은 거의 없다. 가장 심할 때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던 아합왕 때이다. 850 vs 1. 바알 사제와 엘리야의 기도 대결.
- 이스라엘 족속들은 산마다 산당이 있었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면서 다른 신을 함께 섬김.
- 가나안 신화: 가나안의 남신과 여신이 성관계를 맺어 이 땅이 비옥해졌다. 비는 바알이 뿌린 스페르마이다. [거룩한 구약과 이방종교가 너무나 대조적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 vs "가나안의 옛 신들이 이 땅을 지켜줬는데, 우리가 마음을 주지 않으면 화가 올 수도 있다"
-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한 분만 섬기라고 그토록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야훼와 함께 이방신을 섬겼다. 하나님은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가나안 족속들을 모두 다 멸하라고 명하였음. 아이들까지도 다 죽이라고 했음. 이것은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이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을 때에, 그들에게 우상이 들어왔다.
-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들어온 우상을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망한다.
- 신 6:6-9: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라. 항상 자녀들을 위해 교육적으로 생각하며 실천하고, 그를 위해 교육적 환경을 조성해라. 집에 앉았을 때 든지, 누워있을 때든지…
- 그러나 이것이 습관화가 되었을 경우
1) 생활지침 2) 하나님 말씀에 대한 마음이 없이 하는 습관(형식만 존재)
- 기본적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는 것이다. 세속적 신앙. 번영의 신학.
- 한국 목사들의 설교 방법: 하나님을 잘 섬기면, 재물 운은 자연스레 뒤따라온다. 하지만 결국엔 재물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게 되고,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경우가 된다.
- 그러나 그들이 선지자들의 심판예고를 듣지 않자 북 이스라엘은 722, 남 유다는 586에 멸망함. 엘리트들은 전부 잡혀가고 땅의 사람들2)만 남게 됨.
- 그 이후에는 그들이 각성을 하여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고자 함. 한 분의 하나님 신앙이 강조됨. 그리고 성경이 강조됨. 성전이 없어져서 제사를 드릴 수가 없게 되었으므로 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을 필사하는 일이었다. 성경 해석집 탈무드가 등장. 성경을 가르치고 필사하는 사람들인 율법사가 중요하게 됨. 그들은 또한 율법을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 마가복음 2장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에서 유대인들의 신앙이 잘 드러남.
막2:1 가버나움: 갈릴리 사람의 중심지
2:7 참람 = 신성모독. 당시의 유대인들 관념으로는 하나님 한 분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음.
-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주장(가끔 자신이 하나님 이심을 드러내심). 그러나 바빌론 포로의 쓰디쓴 체험이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들은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려고 함. 그들이 만약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몇 분이신가를 의심하게 됨. 사도 바울도 같은 문제를 갖고 있던 것 같음. 우리가 바리새인의 입장을 잘 이해하여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
- 유대인들은 바빌론 포로 이후에 우상숭배를 한 적이 없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성경에 계시된 진정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하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우상숭배를 할 수 있다.
2. 삼위와 일체의 문제
# 서론적인 문제
- 계시는 계속해서 진전하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으면 유대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구약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성자와 성령에 대한 암시가 많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몇 명인가?
- 요14:16에서 성령까지 끄집어 내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듦: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의미 해설:
·또 다른 보혜사(알로스 파라클레토스: 옆에 불림을 받은 자) = 성령
·allos는 다르지만 동질의 것. Hetero는 질이 다른 것. hetero sexual.
·보혜사는 고대의 재판시에 자기를 도와주는 법적인 친구(legal friend)이다. 법률적 지식이 없는 경우 이를 옆에 세워두고 전부 귀속말로 이야기를 해준다.
·이렇게 우리 곁에서 우리에게 예수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다.
- 이단들은 이 교리를 일단은 받아들이고 쉬운 해결책을 택한다. 대표적 이단 교리:
·삼신론: 3명의 신은 하나님-예수님-성령의 위계질서를 가진다.
·Modalism(양태론): 성부/성자/성령은 서로 다른 mode를 가졌지만, 한 분이시다. 예)H2O: 얼음-물-수증기
- 양태론에 대한 반박: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앉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을 세례자 요한이 직접 경험했다. 양태론에 따르면, 동시에 성부 성자 성령이 역사할 수가 없고, 하나님이 자리를 바꾸면서 서서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성경 본문에는 동시에 일어난 일로 묘사되고 있으므로 양태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 과제: 三 과 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삼位일체(Trinitatis)로 해결함
# 삼위일체
* 하나님의 존재방식
God the Father 아버지 하나님
God the Son 아들 하나님
God the Holy Spirit 성령 하나님
각각은 구별되지만, 모두 다 한분 하나님이시다.
삼위일체가 함께 천지를 창조하심. 하지만 성부, 성자, 성령 안에서(구분가능 = 서로가 서로의 안에 존재).
* 삼위일체란 용어의 의미
1. 일체:
- 일체란 한 본질이라는 의미이다. Homo-ousios(호모우시오스) = 동일 본질의. 호모라는 말은 같다는 의미이고, 우시오스는 우시아의 형용사. 우시아(essentia, substantia)라는 말은 본질이라는 의미이다. 본질이 같으므로 하나이다.
- 문제는 왜 성자가 성부에게 순종을 하는가? 삼위는 권능, 영광, 존재에 있어서 동등하시다. 그러나 사역상 순종이 가능하다 경륜상의 순종. 성자가 순종을 하신다고 해서 성부보다 조금 못하신 것이 아니다.
2. 삼위
- 위격: hypostasis = persona = prosopon (가면). 영어로는 person, subsistance라는 표현을 사용함. 로만 그레코 문화에서 연극을 할때 배우는 등장인물을 나타내는 가면을 쓰고 나타남. 가면을 쓰면 실제로 등장인물이 되는 것과 같다.
- 본질은 같지만 서로 구별된다. 같은 분이 아버지 페르소나, 아들 페르소나, 성령 페르소나로 구분됨.
- 이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페리코레시스(상호 교통, 순환, 점유)라는 표현을 사용함. 구별이 되면서 서로가 서로 안에 존재한다. 요17:5: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 삼위는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일은 모두 같이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성부께만 영광을 돌린다.
- 이 개념이 서지 않으면, 성경이 말한 하나님을 설명할 수 없다(예수님=하나님. 성령님=하나님. 아버지=하나님). 또한 이런 삼위일체의 관계를 이해하면, 양태론을 막을 수 있다. 잘못된 설명을 없애고 되도록 간략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 [삼위일체를 완벽하게는 설명할 수는 없다]
Augustinus: Si comprehendis, non est Deus: 만약 당신이 완전히 이해한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다.
3. 구약에 나타난 삼위일체의 시사들
* 계시의 이해:
- 캄캄한 방에 한줄기의 빛이 들어오면, 물건들이 자세히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대강의 구도는 볼 수가 있다. 이것이 구약시대의 계시이다. 그러나 낮이 되면(신약시대) 분명히 보인다. 성경계시의 특성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명료하게 계시된다는 것이다. 뒤에 오는 계시가 앞에 잇는 계시를 무효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앞의 계시를 더 밝게 자세히 계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계시의 목표이다. 희미한 그리스도의 계시가 신약에 와서 뚜렸하게 나타남.
- 예: 구약의 자세하고 복잡한 정결법은 그리스도의 속죄죽음으로 성취됨. 정결법은 신약에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얼마나 정결해야 하는지를 가르침.
- 계시의 명료성: 그러나 구약의 계시는 구약 사람들에게 희미한 것이 아니다. 그 시대 안에서는 명료하며, 이것은 신약에 비교할 때에 희미하다는 의미이다.
* 하나님의 계시는 교육적(점진적)이다:
- 다신론의 사회에서는 하나님이 한 분임을 강조한다. 구약에서 삼위일체론을 강조했다면 기독교가 다신론으로 갔을 것. 그러나 구약에도 삼위일체의 가르침이 있다. 이 가르침은 애매하지는 않다.
- 예: 성령에 대해서는: 창1:2의 하나님의 신(루아흐 엘로힘)은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요14-16장에서 명확해진다. (운행하신다 = 품고 계신다. 그 위에 펄럭인다)
# 구약에 나타난 성자님
1. 요 1:1: 태초에 계신 말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ν ?ρχ? ?ν ? λ?γο?, κα? ? λ?γο? ?ν πρ?? τ?ν θε?ν, κα? θε?? ?ν ? λ?γο?.
- 여기에서 태초에 계신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한다. 성자도 성부와 같은 하나님이다.
- 그리고 만물이 그(로고스, 말씀)로 말미암아 지음 받았다고 한다. 즉 창세기 1장의 창조가 성부 하나님 홀로 하신 일이 아니고 성자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창세기에 이미 성자 하나님이 계시되었다.
- 성자 하나님을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태초로부터 계신 성자 하나님, 즉 몸을 입지 않은 로고스를 “로고스 아싸르코스”라고 하고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로고스 엔 싸르코스”라고 한다.
- 요한이 창세기 1창을 읽고서 창조에 참여한 말씀이 성자이신 것을 깨달음.
- 요1:1 말씀에서 성부 하나님은 정관사 “호”를 붙여서 “호 테오스”라고 하고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할 때에는 정관사 없는 테오스라고 했다. 그러나 의미는 동일하다. 즉 말씀이 성부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의미이다. 정관사가 없다고 해서 정관사가 있는 하나님보다 낮은 신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 여호와 증인은 테오스를 형용사로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피조물인 신으로 본다. [주신이 다른 신들을 창조. 그리이스 로마신화. 에누마 엘리쉬등 근동의 신화]
- 오리겐은 “테오스”는 “호 테오스”보다 조금 못하다라고 봄.
2. 지혜의 세상창조 (wisdom christology: 지혜기독론)
- 이미 구약시대에도 지혜가 세상의 창조에 관여했다는 시사가 있다.
·잠 8;1 지혜.
·잠 8;20 지혜를 의인화 시킴. 속성을 의인화하여 얘기했다.
·잠 8;22 지혜가 창조 전에 있었다.
·잠 8;30 창조자 아몬.
아몬이란: 1) craft workman(장인) Werkmeister; 지혜는 이 세상을 실제적으로 만드시는 분이다. 2) 사랑받는 사람(Liebling ? 성자)
- 지혜는 요1:1의 말씀과 같다.
3. 여호와의 사자: 말락 아도나이.
(삼위일체의 논거는 되지 않지만 그 암시는 된다)
i) 창16;7 여호와의 사자=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
창16:? 자기가 하나님처럼 하는 사자.
ii) 출14:19: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출13;21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심.
한번은 여호와라고 하고 한번은 여호와의 사자라고 함.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자기가 하나님처럼 하는 여호와의 사자라고 해석하고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13잘과 14장은 다른 자료라고 한다.
iii) 삿6:11-24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는데, 여호와와 대화하는 것처럼 내용이 전개됨. : 11,20: 말락 아도나이. 14,23: 여호와.
iv) 삿13:3: 말락 아도나이 (삼손의 출생 이야기)
삿13:18 나의 이름은 기묘 geheimnisvoll, wonder
v) 말3:1: 내 사자를 보내노니. 언약의 사자. 말락 아도나이가 말락 베릿이 됨.
추론: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성자가 성육신 했다. 장차 성육신 하실 분이 먼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남.
배울점: 옛날에는 예배할 때는 항상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찬양했다. 오늘날 CCM에는 삼위일체가 없다. 오늘날 실천적인 Unitarian들이 많다. 성부 Unitarian, 성자 Unitarian, 성령 Unitarian.
Unitarian ; 삼위일체설을 부인하고 유일 신격(神格)을 주장하여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
4. 창18: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1: 야훼가 나타남. 2 세 사람. 3: 아도나이. 9: 주어가 복수. 10: 주어가 단수로 바뀜. 19장 1: 두 천사가 소돔으로 감.
추론: 세 사람 중 한 명은 성자.
5. 사6: 이사야의 비젼
비전(환상) 가운데서 봤으므로 여섯 날개를 가진 천사로 묘사됨.
성경에 언급된 천사들은 영이고 성이 없으나, 계시로 나타났을 때는 모두 남자의 모습이었다.
천사이름: 가브리엘, 미하엘 (남자이름)
* 우리가 배울점: 예배, 찬송, 기도의 대상은 삼위일체신 하나님께.
- 성경을 중요시하되, 말씀을 통한 성령님과의 살아있는 교제가 있어야 한다. 성경만 중시하고 성령님과의 교제가 없으면 죽은 정통이 된다.
- 환상이나 음성을 듣는 신자들은 문제: 그 경험에 의존하여 성경과 멀어짐. 그들은 사도 바울과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는 수많은 영적체험을 하였으나 그것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현상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우리는 도무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만 나아갈 수 있다(비 기독교적인 생각: 지성이면 감천이다) 주께서 이 기도를 받아 주셨다는 감사가 있어야 한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앞에 뜻을 구한다.
- 다음 중 아무거나 사용가능
1)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다 찾고 기도하기.
2) 영광을 성부 하나님께 돌려드림-전유
3) 우리의 구원을 위한 기도: 성자께.
4) 삶을 인도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분: 성령.
-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도: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 성부, 성자, 성령을 의식하고 알맞은 것들을 돌려드리는 것이 성숙한 예배이다.
# 구약에 나타난 성령님
* 본문
1) 사63;7-11
- 내용: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비유: 아버지-자녀, 왕-백성(남편-아내),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반역함.
- 10,11: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이스라엘 백성 안에 성령(성신)이 거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음.
2) 학2:5: 안약한 말 - 성경, 영 - 성령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3) 시51: "하나님의 신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
다윗이 자기 안에 있는 성령의 존재를 자각함.
- 그렇다면 요7:39의 말씀은 어떻게 이해가 되는가?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임하시지 않음을 말함.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구속사적인 작용이다. 예수님의 성육신, 성령이 오심, 재림은 구속사적인 사건이다. 로고스와 성령은 그 이전에도 사람 가운데에서 활동하심. 그 이전에도 중생, 성화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가운데서 계시다가 이제는 교회공동체에 계심.
* 성령님의 역사와 삼중적 은혜
1) 일반 은총: 모든 일반 사람들에게 역사. 성령님의 힘으로 살지만, 구원과 관계는 없다.
문제: 어떤 이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죄를 짓는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성령의 역사이다.
2) 직임적 임재: 특별 사역. 구원과 관련 없이 사역자에게 은사로 나타날 수 있음. 사울 왕에게 성령님이 함께 하셨다가 후에 떠나심.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님. 고레스왕에게도 “나의 종”이라고 하심.
3) 구원적 임재: 하나님의 참백성에게 영원히 함께 하신다.
문제: 성령님께 순종하지 하고 근심을 많이 끼쳤을 경우; 회개하지 않으면,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임재가 아니다.
* 이적 신앙의 문제:
- 사람이 이적을 경험하는 경우는 성령님의 직임적 임재이다. 이것은 구원과 관계가 없다. 성령을 받지 않고 은사를 받을 수 있다.
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들의 문제점: 주제 넘음, 잘못된 확신.
진짜 하나님 백성에게는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 이들에게는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을 주심.
* 구속사적 사건
[창조 ? 타락 ? 이스라엘의 부르심] - 1) 성육신 2) 십자가 3) 부활 4) 성령이 오심 5) 예수님의 재림.
- 구약시대는 준비단계로 볼 수 있음.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고,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하심. 구약은 이렇게 후에 이루어질 구속사적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해석을 해야 한다.
- 구약시대에는 민족적 특별은총particularism으로 이스라엘 백성만 택하셔서 성령님이 역사하셨으나, 신약시대 이후로는 믿음이 있는 모든 자들에게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두 시대 사이의 성령님 역사의 강도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없다. 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존속함.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역사가 끊어짐.
- 구속사의 역사 주인공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시다. 구약시대에도 성령의 활동이 있었지만 구속사적인 면에는 없었다. 구속사적인 임재는 단회적이다.
* 창세기 1장의 삼위일체에 관한 해석문제
- 창1:1: 충만의 복수. 동사는 단수를 받음.
- 창1:26 let us create/make …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 '우리'에 대한 해석 가능한 견해들
1) 하나님의 위격의 복수성 시사 점진적 계시. 자체에서는 몇명인지 수는 모르지만, 신약시대에 가서는 삼위일체임을 알 수 있다.
2) 충만의 복수 : 엘로힘이라는 명사는 복수인데, 동사는 단수로 쓰인다.
3) 하나님의 자기 의논의 복수. 중요한 일을 할 때 복수로 자신을 칭하심.
4) royal "we". 왕적인 우리. “우리가 대마도를 치자!”
잘못된 견해들
1) 천상의 어전회의설 - 사람이 천사의 모습으로 되므로 (천상의 어전회의; 하나님이 천사들을 모아놓고 하는 회의.)
2) 헤르만 궁켈: '다신론의 잔재' - 종교의 발생을 진화론적으로 본다.
4. 삼위간의 관계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잘못된 비유; “광열, 광선, 광원”등으로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것.
A. 삼위일체 교리에 있어서의 이단들
1) Arius 파
[4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에서 삼위일체설을 부정하였던 아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 니케아 공의회에서 최초로 기독교의 이단으로 결정되었다]
-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만, 영원 전에는 성부만 계셨다. 성부가 창조계획을 세우실 때에 성자를 만드셨다. 그 다음에 성령이 있다"; 성자는 있지 않았던 때가 있었고, 성부는 영원했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성부가 성자보다 우월하다고 시사한다.
313. 기독교 공인.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 거의 반이 아리우스를 따름.
325. 니케아 종교회의. 황제가 통합을 하고자.
392.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자 공직에 진출하려는 자는 무조건 예수님을 믿어야 했다. 태어나면 유아세례를 받음.
영향: nominal christian. Christentum 기독교권 형성. 유아세례의 의미 변질.
(비교: 이전 상황- 생사의 문제 앞에서도 진실한 신자만이 존재)
- 콘스탄틴의 밀라노 칙령 동기: 콘스탄틴이 막센티우스와의 생명을 건 전투에서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을 믿음. 그는 기독교가 분열되지 않기를 바람.
- 325 니케아 공회; 교회의 교리를 결정하는데 콘스탄틴 황제가 소집함. Homoousios(동질) vs. Homoiousios(유사본질)
- 모인 사람들 1) 아리우스파 2) 아타나시우스파(정통파) 3) 중도파.
- 회의 결정내용: "성부, 성자는 동일한 본질이시다"(이 논란 때문에 모임) = 성부, 성자는 영원하시다. 그러나 아리우스파는 보편교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음.
2) Modalism 양태론(성부 = 성자)
- 한 하나님이 가면만 바꾸어 나타남. 옛날 배우들은 남자가 여자의 가면을 쓰고 나타남.
- 대표자: Noetus. 양태론은 Patripassionism(성부수난설)로 귀착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으므로 하나님 자신이 고난을 당하신 것이다.
- Cleomenes의 반박: 그렇다면 예수님이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 드립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기가 자신에게 영혼을 부탁한 것이 된다.
- 교황들도 초기에는 양태론에 가담함. 교황무오설은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로마의 교황제도에 따르면 베드로가 1대 교황인데, 베드로 본인은 자신이 교황인지 모른다.
B. 과거의 정통파
1) Justin Martyr. 기독교의 변증가
- 당시 기독인이 받은 대표적인 비난:
·무신론자: 로마12신을 믿지 않으므로 무신론자이다.
·피와 살을 먹고 마신다(성찬식을 오해)
·혼음: 교인들끼리 사랑하는 것을 오해했다.
- 저스틴은 이것을 논리적으로 변증함. 기독교는 가장 높은 철학. 플라톤이 모세에게 배웠다고 함.
- 그의 삼위일체에 대한 의견은: 성부 하나님은 안 보이는 하나님이고 성자 하나님은 보이는 하나님.
성부가 성자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시사했다. 동일본질에 어긋남(종속설 잔재)
2) Irenaeus
- 기독교 신학의 좋은 기초를 놓음. 좋은 선생님.
- 성부하나님은 안 보이는데, 두 팔(성자, 성령)을 가지셨다. 성자는 조금 보이심. 종속설이 남아 있지만 성부 중심설로 가는 기초를 만듦.
3) Origen
- 그의 신학은 오류는 많지만 이단은 아니다. 예수님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스스로 고자가 되었으나 나중에 잘못을 인정함. 기독교 교리를 플라톤 주의와 유사하게 만듦.
- 영혼 선재설을 가르침: 우리의 영혼이 하늘에서 이미 타락해서(창3은 이것을 비유) 그 벌로 아기로 하나 하나씩 태어남. 영혼은 육체(감옥)을 떠나는 것이 목표. 빨리 많은 사람을 데리고 하늘에 가는 것.
- 알레고리칼(풍유적) 해석: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기 위해 318명을 데리고 감. 318에서 영적 의미를 찾기 위해 음가를 더하여(고전어는 숫자를 나타낼 때 알파벳을 사용한다) 그리스도라는 말을 찾아냄: “우리를 구원해 내신 분은 그리스도다” 라는 메시지를 끄집어 냄.
4) Tertulian
- 삼위일체 단어 창시. 라틴교부. 이때부터 라틴어가 중심이 됨. 그는 법률가였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위해 일함. 법률가로서 쌓은 지식으로 기독교의 교리를 잘 설명하였다. 나아가서 기독교 신학에도 공헌하였다.
- 그러나 희랍교부들과는 반대로 모든 철학을 버릴 것을 주장: '아테네(희랍철학)과 예루살렘(성경)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반대로 저스틴은 기독교를 최고의 철학으로 봄. 로고스, 합리적 철학.
- 그는 철학을 많이 알고 있었다. Trinitatis라는 말을 만들어 냄(위격은 3분, 존재는 1분). 아테네의 자원을 잘 사용하여 기독교를 잘 설명.
문제점: 성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성자는 아버지의 말씀으로 나오신 성육신의 결과로서 독자적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 불행한 표현. “성육신의 결과”라는 말이 잘못됨.
5) 어거스틴
- 삼위일체론을 거의 완성함. “삼위일체론”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 김광채). 큰 기여를 함.
1. Vestigium trinitatis. 삼위일체의 흔적.
예: 나무는 뿌리, 줄기, 잎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삼위일체를 증명하기에 부적절하다.
2. 심리적 유비: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심.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시도도 역시 부적절함)
예: 성부는 love, 성자는 The Beloved 성령은 Love.
알다: 아는 사람, 아는 대상, 사랑.
Knowing God: Understand
Remembering God: Remember
Loving God: Love
- 어거스틴의 기여: 삼위의 관계성을 잘 설명한 점. 아무도 삼위일체를 올바르게 설명한 사람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삼의일체 교리를 정립하는 데에 기여를 했다.
C: 올바른 설명
- 성부와 성자의 관계는 영원한 관계이다. 인간의 부자관계와는 다르다(아들은 아버지 이후에 존재함). 인간의 관계를 적용할 경우에 Arius주의에 빠진다.
1)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독생자의 영광…”
- 모노게네스: 홀로 나아진 자 "독생자" 유일하게 나아진 자, 성육신 하기 전에도 독생자
- 성부; 한번도 나아진 적이 없었다. agennesia(낳아지지 않음)는 성부에게만 해당.
- agenesia: 시작이 없다(영원함)라는 말은 3위 모두에게 해당된다.
- 오리겐은 성자를 Eternal generation(시작이 없는 영원한 출생)이라고 표현함(관계성이 영원하다). 이것은 오리겐의 큰 기여이다. 그러나 그는 항상 낳아지고 있다는 유출설의 의미로 사용함.
2) 시2: 제왕시(Thronbesteigerung. 왕이 등극할 때 사용하는 시편)
-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왕(기름 부음을 받은 자)을 대적함.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 시 2;2 에서는 이스라엘의 왕을 나타냄.
- 시 2;7 해석
·일차적인 성취; 이스라엘 왕의 등극.
·궁극적인 성취; 2;12 아들에게 입맞추라. 사람의 왕에게 적용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 몇몇 유대인들이 그 아들을 장차 오실 메시아라고 생각함. 멀리서 산(왕)이 하나만 보이다가도 가까아 가면 또 하나의 산(메시아)이 보임. 교부들은 이 이야기를 영원 전에 낳아지신 분(요1)으로 여김.
3) 요15:26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 표현의 문제
- 사용할 수 있는 말: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서는: 낳으신다(generation).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성부와 성자의 구별을 구별을 위해.
·발출, 발생은 은 금지된 표현이다. 기독교 영지주의에서 사용. 성부로부터 성자가 유출한다. 가까운 것일수록 선하고 멀수록 악하다.
- 올바른 표현: 성부는 성자를 영원히 낳으신다. 하나님은 영원히 말씀하신다. 성부는 영원히 숨을 쉬신다(성령).
- 다음의 표현도 사용한다:
·metaphysical fatherhood 형이상학적인 아버지 되심.
·ontological fatherhood 본체론적인 아버지 되심.
·official sonship 직무적 아들 되심. 행2:31.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이것을 adoption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adoptional (성부와 성자의 관계와 다름)
- 낳으셨다 라는 말의 의미에 집착하면, 출발점을 찾게 되고 이는 아리우스주의(아버지가 정하신 영원의 시점 존재를 주장)의 생각과 같아진다. 영원의 세계에서는 시작과 끝의 개념이 없다.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부르신 것은 아버지와 자신을 구별하기 위함이고, 아버지가 더 나으시다는 말을 의도하신 바는 없다. 서로 동등한 관계.
구속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고 나라를 모두 아버지께 바치고(경륜상의 순종) 나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 예수님은 겸손을 나타내시고자 우리들을 형제 자매나 벗이라고 하셨으나(감사해야 할일)
우리들이 좋은 의미로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형제라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그의 종이다.
삼위(세분이 아님)의 관계는 영원함!
5. 삼위일체 교리의 진전사
* 필리오케 논쟁
-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조보다 발전된 Athanasius 신조의 문구: Credimus in Spiritum Sanctum qui a Patre (Filioque는 후대에 삽입) procedit '우리는 아버지로부터 나온 성령님을 믿습니다' (요 15:26: “내가 보내는”: missio, “곧 아버지로 나오는”: processio)
- 톨레도 공의회에서 Filioque(and from the son)를 첨가함. 신조에 무엇을 첨가한 것은 문제가 있으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아들로부터라는 말은 성경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지만 성경적이다.
- 그러나 동방교회(greek orthodox church 희랍 정교회)에서는 Filioque를 거부함.
- 그들은 라틴어로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희랍어를 사용함. 일부가 러시아 정교회가 됨. 결혼한 사제. 머리 속에 성부 우위설이 있다. 성부중심적. 그러나 그렇다고 표현은 안 한다.
- 튀빙엔 교수 Moltmann은 Filioque를 첨가한 것에 반대하고 Eberhard Juengel은 Filioque를 찬성한다.
* 그리스도의 임재
1) Spiritual presence 영적으로 (파루시아). 성령이 보내진 후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고 물리적으로는 우리와 함께 계시지는 않지만, 영적으로는 함께 계신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언급되진 않았으나, 하나님도 같이 계셔야 삼위일체가 성립. 항상 삼위가 함께 하심. 삼위의 교제 속에 우리를 끌여 들여서 우리와 교제하심.
- opera trinitatis ad extra sunt indivisa; 삼위일체의 밖으로의 사역은 나누어 지지 않는다.
2) physical presence: 예수님은 몸과 인성을 가지시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에 올라가심. 영적으로만 세상에 존재하심.
* 본체론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
- ontological trinity: 존재론/본체론적 삼위일체. 영원전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원래 그러시다.
- economic trinity: 경륜/계시적 삼위일체.
- 경륜적 삼위일체 때문에 존재론적 삼위일체를 알게 되었다. 따라서 경륜적 삼위일체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인식근거가 됨. 반대로 존재론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의 존재근거가 된다.
* 현대 신학자들의 삼위일체 논쟁
§ Karl Rahner. 대표적 천주교 신학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큰 역활을 함. 칼 바르트의 영향을 받음.]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교수. 논문집으로는 “신학적 탐구”가 있다. 그 중 1권은 삼위일체에 관한 것: 경륜적 삼위일체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이다. 그 역도 성립한다.
- 그러나 보수신학자들의 입장은: 경륜적 삼위일체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인식근거.
§ Karl Barth는 삼위일체론을 20세기에 부흥시킴. 쉴라이어머하를 비판.
- Schleiermacher는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 인간의 감성을 강조. 그의 신학이 19세기를 석권함. 그의 저서 “Christlicher Glaube”: 신앙은 신학이다. 그 시대 사람이 어떻게 믿는가가 신학이다. 신학학은 시대마다 다르다 주관적 신학. 그는 삼위일체를 부록으로 다룸.
- 바르트는 처음에 이 사상에 동조함. 그 후에는 “우리의 신학은 삼위일체부터 시작한다”라고 역설함. 그 이후 조직신학자들이 삼위일체를 근거로 신학을 하게된다. 그의 신학의 문제는 정통신학과 다르다 Neo-orthodoxy.
- 성부, 성자, 성령은 존재양식이다(Seinsweise). 이 말은 마치 양태론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런 의미가 아니다. 몰트만은 이것을 양태론이라고 비판함.
§ 몰트만: 십자가를 중심으로 삼위일체를 이해함. 십자가에서 삼위일체가 계시될 뿐만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삼위일체가 규정되어진다. 십자가가 없으면, 삼위일체가 의미가 없다.
- Doxological Trinity 주장함: 본체론적 삼위일체를 찬양할 수 있다. 이것을 최소한도로 말해서: 역사가 하나님께 영향을 미친다. 궁극적으로 역사가 끝났을 때 하나님은 다르다 Neohegelianism. 헤겔의 역사전개 과정.
§ 에버하르트 융엘
몰트만과 더불어 새로운 십자가의 신학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본질은 고난이며 완전에서 더 완전으로 변한다. 그들의 신학은 오류.
§ Hendrikus Berkhof
- “Christian Faith”: 화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조직신학 교과서. 경륜적 삼위일체만 인정. 그는 삼위일체의 틀 속에서 이야기하지만,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언약관계에 대해서만 거론한다. 그의 생각을 끝까지 좇아가면 예수님은 결국 사람이다. Neoliberalism. 이 세상 역사 전체가 하나님의 역사이다. 삼위일체론이 결국에는 없어짐.
* doxological 삼위일체에 대한 논의
- 몰트만: 십자가에서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하나님은 자신을 예수와 동일시 하면서 구별한다 하나님의 자기소외. 십자가에서 하나님 됨이 드러나심. 하나님으로 규정되심. 그러나 영원 전부터 규정됨. 예배 때에만 송영적으로…
- 융엘: “Gottes Sein ist im Werden”. 유명한 책. 이 책에서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바르트의 동의 여부는 모른다. 바르트는 하나님이 변함이 없다고 했는데 융엘은 바르트가 하나님은 변하는 분이라고 했다고 말함.
신인동형론적인 표현:
Anthropomorphism: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심.
Anthropopathism: 하나님의 후회, 분노. 그분은 감정이 있지만 우리와 같은 류의 감정이 아니다. 그분은 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변하시는 분이다.
* 정리
-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 그 위에 있어서는 셋인데 우열을 가릴 수 없다.
- 성부, 성자, 성령간의 교제가 풍부하셔서 이것에 근거해서 삼위일체적 교제를 반영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는데 가장 첫번째로 교회공동체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교제 속으로 끌어들임.
- 요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를 하되 우리는 창조자인지 피조물인지 구분을 잘해야 한다.
- 독일의 신비주의자: 그들의 목표는 ?물방울이 떨어져 대양 속에 스며들듯이(물이 사라짐) 우리가 하나님으로 들어간다" (하나님의 일부가 된다).
- 하나님은 우리를 끌어올리시지만,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삼위일체의 실천적 의미
- 삼위일체와 교회의 관계성: 요즈음 교회의 큰 테마. 삼위일체(서로가 서로 안에 계심 '페리코레시스")를 모델로 하여 교회 공동체를 만든다. 각자가 성령님과 교제하면서 형제들과 교제함. 이때의 모델이 삼위일체. 구별성이 유지되면서 통일성을 갖춘다.
애매한 이론들
OPEN TRINITY , OPEN HISTORY OF TRINITY(개방된 역사의 삼위일체), SOCIAL TRINITY(사회적 삼위일체). 사용하는 사람마다 의미가 달라진다. 마치 삼위일체의 교제를 사람 셋의 교제와 혼동시킬 수 있다.
하나님과 우리의 구분이 명확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B. 하나님의 속성
- 의미: 하나님에 속하는 성품(Properties, Virtues of God).
-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찾아내려는 시도(잘못된 방법) 철학적 방법.
예) Via causalitatis(인과성의 방도): 원인, 결과를 계속 따져가면 최초의 원인(Prima causa)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 이 최초의 원인이 하나님이다.
* 하나님의 속성을 탐구하는 방법
1) Via negationis(부정의 방도): 제한적인 사람이 갖는 속성의 반대 속성. Aristoteles가 대표.
사람의 속성 하나님의 속성
Mens: immens 연장이 없다. 즉 무한하다.
Corporal: incorporal 몸이 없다.
Mortal: immortal 죽지 않는다. 영원하다.
Comprehensible: incomprehensible. 불가해하다.
Finite: infinite 끝이 없다.
사람이 있는 것을 가지고 부정을 하여 하나님을 정의하게 되는데, 그 하나님은 진짜가 아니다.
2) Via eminentiae(우월의 방도, 우수성의 방도): 최대한으로 우월하게 한다.
omni-scientia 전지
omni-presentia 전재(편재)
omni-potentia 전능
omni-benevolentia 전선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것을 찾아냄. 중세의 신학자들이 이것을 그대로 야훼 하나님에게 그대로 적용. 이런 하나님은 철학자들의 하나님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비슷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일반 은총 가운데 찾아낸 것이지, 성경에 근거해서 찾아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정리할 때는 사용할 수 있으나, 그렇게 찾아어서는 안된다. 야훼 하나님의 속성은 이것과는 다르다.
파스칼: 철학자의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다. (역사를 통하여 계시하시는 하나님, 인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계시의 진전…)
* 하나님의 속성을 올바로 아는 방식
하나님의 속성을 알려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것을 살펴봐야 한다(물론 지금도 행동하시지만, 이것의 해석은 과거의 계시, 즉 성경에 의존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과거 행하신 일을 보여주고 반드시 설명을 해준다. 이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삶 속에서 확증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추상적으로 보이는 말씀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체험 되어야 한다.
시 37: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
이 먹을거리는 살면서 실천해야 한다.
역사, 체험, 경험: 이것을 모두 성경의 가르침에 종속시켜야 한다. 체험에 의존하는 신앙은 위험하다.
사람이 하나님의 속성을 알고 싶은 이유:
1) 하나님을 진짜로 사랑하면 알고 싶다.
구원이 완성이 되어 하늘나라에 있어도 하나님을 알아 나간다.
성 어거스틴: 나는 하나님과 나의 영혼을 아는 것 밖에는 관심이 없다.
세월이 지날수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증진되어야 한다.
2) 배워나갈수록 우리는 피조물의 수준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본 받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완전해 질 수는 없으나 상대적으로 완전해져야 한다.
하나님의 속성
1) 비공유적 속성; 우리하고는 성질이 다르다. 하나님만 가지신 속성.
2) 공유적 속성; 엄밀히 따지면 비교는 안되지만 , 피조물들이 상대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1. 비공유적 속성
1) 하나님의 자존성(스스로 존재하심)
- 인간은 어머니가 낳아야 존재한다. 사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셔야 존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인이 없다. causa sui(철학적 용어):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원인이시다.
-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스스로 있는 자 = (70인역; 나는 그 존재하는 자이다. ?Εγ? ε?μι ? ?ν?=“Ich bin der Seiende”) I am who/what I am. I will be what I will be(미래로도 해석가능).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 나를 규정하려고 하지 말라. 나와 함께 이 구속사건에 참여하면 내가 누군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독립적이다.
-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며, “만물에 대해서 독립적으로, 그러나 만물이 그를 통해서만 존재하며, 모든 것이 자기를 통해 의존하게 하신다3)”. (하나님 사역에 내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은 비성경적이다. 교회에 특정한 사람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 하나님은 스스로 복되신분. 그분은 원칙적으로 인간을 필요로 하시지 않으신다. 그분은 인간의 도움도 받지 않으신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역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나님 모독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을 원하신다.
* 그외 관련 성구(출3:1-14)를 통해 배울 점:
출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인간이 생각하는 불이 아니다.)
출 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여호와의 사자: 성자로 추론됨.
- 네가 선 곳: 하나님 앞에 있는 자리. 사실은 우리는 어디에 있던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디에 있던지 바로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하나님 면전에서 사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 우리는 이제 성지, 성지순례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천주교는 성지가 있으나, 개신교는 신자가 가는 곳이 성지이다. 성지순례는 성경지리 및 문화연수로 바뀌어야 한다. 구약시대에는 성지가 하나님 앞이라 거룩했으나, 신약시대 이후로는 신자가 가는 곳이 성지이다. 청교도는 예배당 뿐만 아니라 상점(속이고 이익을 많이 봐야 함)도 거룩하게 여겼다. 그렇다면 상점에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성직, 성전이라는말도 없다.
출 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출 3:11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 3:13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 여기에서 신인동형적 표현을 사용함.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것. 신인동형적 표현이란, 하나님은 형체가 없으시지만 때때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시거나 인간처럼 말을 하시는 것.
- “내가 내려가서”: 하늘에 계서도 모든 것을 아시고 하늘에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지만,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함. 또한 하나님이 그들을 이끌어 내신다고 함.
2) 불변하심 Immutability
- 정의: 부동성(Immobility)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그리고 목적과 행동의 동기, 약속에 있어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4)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정지하신 분이 아니라 시간, 역사속으로 들어오셔서 인간과 함께 일을 하신다. 하나님(예수님)은 감동도 하시고 눈물도 흘리심.
- 일반적으로 변화란 더 좋아진다거나 나빠진다는 뉘앙스가 있다. 하나님은 발전도 퇴보도 없으시다.
- 범신론: 하나님은 영원히 스스로를 생성해 나가는 분. 무의식적인 절대자가 인간의 의식속에서 의식적인 인격성으로 발전한다(헤겔의 정신현상학). 현대신학자(철학자)들중에 하나님은 변화하시는 분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말 3: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언약관계에 있어서는 불변하심
약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림자는 빛에 따라 변하는 속성이 있다.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다는 말은 변하시지 않는 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믿을 만하다.
시편: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의지하는 요새시로다.
- 질문: 하나님은 후회도 하시는가? 인간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심(창6:5). 주의: 이것은 하나님의 감정을 인간의 감정으로 표현한 것이다(anthropopathic)
- 배울점: 하나님의 신실하심. 죄인에게 대한 사랑, 계획은 불변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에 대한 사랑과 보호하심을 끝까지 신뢰하고 살 수 있다. 절대로 마음을 바꾸지 아니하신다.
3) 무한성 Infinity
정의: 하나님은 모든 제한으로부터 자유하시다: 하나님의 존재나 속성에 대해 제한이 없다5).
a) 시간과 관련한 하나님의 무한성: 영원
- 어거스틴: 하나님은 시간 가운데서(in tempore) 창조하신 게 아니라 시간과 함께(cum tempore)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즉 세상과 시간을 동시에 창조하셨다. 시간도 피조물이다. 시간은 창조 때부터 흘러간다. 그 이전에는 시간이 없었다.
- 창조 전; 시간이 없는 상태 timelessness 무 시간성 (플라톤과 거의 모든 철학자는 시간과 영원을 대립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시간과 영원을 대립시키지 않는다)
- 종말 이후; 시간은 끝없이 계속 간다. 모든 피조물이 소멸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시간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endlessness. 인간은 부활후에 시간과 함께 영원히 산다.
- Oscar Cullmann 바젤신학자. “Christus und Zeit” 아주 좋은 책. 완전히 옳지는 않음. 플라톤에 대항하여 endlessness를 주장. 창조 전과 세상 끝 이후의 영원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한 사람. “플라톤은 timelessness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endlessness라고 해야 한다”.
- 하나님은 시간 안에 들어오신다. 모든 시간 내에 계신다. 내재하시면서 시간을 초월하신다. “하나님의 존재는 시간으로 나누어질 수 없는 항상 전체이다6)”
- Eternal Now: 이 순간 안에 영원이 들어있다. 왜? 영원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 영원의 3중적 의미: 하나님과 관계해서 영원은 3중적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간(과거, 현제, 미래)이 동시대적이다. 우리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도. 모든 순간이 영원으로 차 있다.
-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모든 사람이 함께 살아 있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동시대적 이면서도 나와 함께 동시대적이다.
Karl Barth: 시간 안에 하나님이 들어오시면 하나님이 유한적 존재가 되신다. 따라서 하나님은 시간을 스치고 지나가셔야 한다. 시간과 접하지 않으면서 접한다. 탄젠트 point. 하나님이 시간에 들어오시면 검증 가능해진다. 예수는 역사
조직신학 I
국제신학 독일분교.
2008년 8월 20-26. 독일 프랑크푸르트.
강의자: 이승구 교수.
정리자: 문정은, 송다니엘.
정리자가 임의로 내용구분을 하고 소제목을 달았다. 이에 주로 벌코프의 책을 참조함.
“성경의 영감”은 원래 신론에 해당되지 않지만, 강의자 편의대로 삼위일체내에서 다룸.
[…] 대괄호 안에 있는 말들은 다른 곳에서 인용된 것이거나 정리자의 의견임
강의는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기본 교과서로 한다.
이승구 교수는 짧은 시간에 개혁신학을 매우 잘 정리하여 강의함. 이 강의를 잘 숙지하면 신앙생활에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조직 신학은 총 4학기에 걸쳐서 강의가 된다.
1학기: 신학서론, 신론.
3학기: 인간론, 기독론
5학기: 구원론, 교회론
7학기: 종말론, 현대신학
이번 학기는 주로 신론을 다룸.
학생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여러 지역에서 왔음. 강의는 조직신학 외에 김태훈 교수의 구약 해석학, 시편 강의가 있었음.
목차:
1부: 신학서론
2부: 신론
I. 하나님의 존재
A. 삼위일체
* 성경의 영감
B. 하나님의 속성
1. 비공유적 속성
2. 공유적 속성
II. 하나님의 사역
A. 작정
B. 예정
C. 창조
D. 섭리
1부: 신학서론
1) 신학의 정의:
Theologieren, doing theology.
희랍어: Theos (하나님) + Logos (말, 이성. Logia는 복수) theologia.
라틴어: Scientia dei 신학 Science of God
하나님에 대해 알 뿐만 아니라 그가 창조하신 세상에 대해서도 아는 것. 하나님과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 연구하는 것. 따라서 신론은 “1. 하나님의 존재, 2. 하나님의 사역” 두 부분으로 나눈다. 하나님 존재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면 추상적인 철학에 빠진다. 신학에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사역을 Oikonomia라고 하는데 경세, 경륜이라는 표현도 사용된다 Economy(경제)
인간은 하나님의 원형적 신학(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것: 하나님이 누구신지는 하나님만이 정확하게 아심)에서 비롯된 모형적 신학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원형적 신학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하려고 애쓴다. 이에 어려움이 따른다.
우리의 신학은 모형적 신학. 세상에서의 불완전한 신학, 길 위의 신학 theology on the way Theologia viatorum. 모든 신자는 신학자이다. 그런데 좋은 신학을 해야 함. 신학자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2) 잘못된 신학
a) 이성 중심 rationalism (이성주의)
- 이성을 강조하는 합리주의.
- 근대 철학의 출발점은 인식론이다. 이성(ratio)에 근거한 신학 시작. 계시를 의심하고 이성으로 판단하기 시작함. 이성적인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 계시를 판단하는 것이 문제. 하나님의 일은 계시로 주어지는 것이 많다. 이것을 이성으로 제단할 수 없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우리는 알 수가 없다.
- 타락 전: 아담의 신학: 원상의 신학 - 완전한 이성. 아담이 눈을 뜨자 마자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았음.
- 타락 후: 사람의 인격을 구성하는 3가지, 이성, 감성, 의지가 동시에 타락. 따라서 이성을 절대화시키는 것은 위험하다(감성도 마찬가지)
- 서구의 이성주의(17세기)는 Descartes (데카르트)에서 시작됨. 그는 하나님에 대해 “명석하고 판명한 개념”을 가지려 하였다 (Clear and distinct idea)
- 따라서 일단 이성을 가지고 모든 것에 대한 의심, 회의를 해봄. (더 명확한 것을 얻기 위해 의심하는 것을 방법론적 회의라고 한다) 그는 소박 실재론 (사과가 책상 위에 있다는 사실) 까지도 의심해 봄. 그런데 그가 “모든 것을 의심할 지라도 의심을 하는 주체는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름. 그래서 cogito ergo sum이라는 말이 나옴.
* Cogito(나는 생각한다) ergo(그러므로) sum(나는 존재한다)
(1) 나 자신이 존재해야 의심이 가능. 내가 아무리 의심을 해도 의심하고 있는 내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 그래서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의 존재를 먼저 확립하고(나는 존재한다)
(2) 다음에 하나님의 존재증명을 함 (존재론적 증명)
(3) 그 다음에 세상의 인식을 확립: 곧은 막대기는 물에 들어가면 굴절됨. 이와 같이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사탄이 속여서 실상을 못 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은 나를 속이지 아니하신다. 따라서 사람은 올바로 세상을 인식을 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이성으로 인식하는 것은 올바르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이야기가 당연한 것 같지만 문제는 인식에 있어서 계시와 이성의 순서를 바꾼 것이다. 우리는 계시가 이성을 가르친다. 그러나 데카르트에게는 이성이 계시를 판단한다. 그는 이성으로 인식하는 것은 옳다고 전제함.
- Cartesian theology: 데카르트의 뒤를 이은 합리주의 신학. 문제는 그들이 이성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 인간은 계시를 받아들여야 한다. 타락한 이성만으로는 올바른 신학이 불가능하다.
b) 칸트 이후의 신학
- 칸트는 데카르트를 수정함. 이는 사람이 이성으로 하나님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함. 그러나 칸트는 순수 이성의 영역에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가 없다고 한다. 즉 우리의 순수 이성으로는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계시는지를 판단할 수가 없다. 그의 저작 “순수이성비판”은 순수이성의 인식의 범위를 정한 것. 그러나 우리의 실천이성은 하나님을 postulate (요청)한다. 인간의 도덕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있어야만 한다. 만약 하나님이 있어서 인간의 사후에 선한자를 상주고 악한자를 벌주지 않는다면 사회는 즉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는 현상계와 예지계를 구분함
phenomena 현상계: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 가능한 영역. 물자체(Ding an sich)를 인식할 수는 없지만 보편 타당한 인식을 할 수는 있다1).
noumena 예지계: 물자체의 세계.
하나님을 이성으로 알 수가 없다면, 그 다음 단계에서는 사람들이 체험을 중시 여기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각자마다 체험하는 것이 다르다. 예를 들어 장님이 코끼리의 일부분을 만지고 전체를 판단하는 격. 체험자체는 옳을 수가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체험을 근거로 이야기 하는 사람은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서 말릴 수가 없다.
3) 올바른 신학.
고린도 전서 2:9-10: 하나님이 자신을 성령으로 계시(revelation)하심.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인간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것을 수납해야 한다.
타락한 인간은 수납(믿음)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문제. 하나님이 성령으로 계시를 주셔서 인간에게 받게 하셨으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비판(계시를 받아들일 태도가 부족)하여 받아 들일 만한 것만 받아들임.
계시에는 항상 걸림돌이 있다. (스칸달론) 걸림돌을 인간의 이성을 가지고 제거하길 원함. (동정녀 탄생 불신). 그런데 걸림돌을 제거하면 계시가 증발되어 버린다. 이것이 이성주의의 문제이다.
계시 의존 신학 thinking after God's thought 성경적 신학.
걸림돌을 인간의 생각으로 제단하여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변형시키면 안 됨.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서 사색해야 한다. 이것만이 올바를 신학이다. 우리는 이성주의 신학, 경험주의 신학을 떠나야 한다.
James Dunn의 예를 들자면:
영국 Durham 대학교수. 그의 저서 “신약성서의 단일성과 통일성”에서 한 이야기: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동정녀탄생의 기록이 없다. 이것은 마태공동체와 누가공동체에서만 동정녀 탄생을 받아들였음을 말하고 있다. 다른 공동체에서는 이것을 받아 들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투지 않고 공존함.
비판: 이러한 신학은 성경에서 동정녀 탄생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다. 여기서 마태공동체란 마태복음이 나온 곳. 자유주의자들은 마태가 마태복음을 기록했다고 믿지 않는다.
중생한 이성과 타락한 이성: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도들이 신약성서를 씀. 우리 입장에서는 성경의 말씀을 계시로 받아들여야 함. 이성과 경험은 도구가 될 수 있으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됨.
중생한 이성: 중생을 한 사람은 타락한 이성이 변하게 됨. 그렇다고 해서 이성이 올바로 회복이 된 것이 아니다. 단지 계시를 받을만한 준비가 된 것이다. 우리는 항상 조심스럽게 이성을 사용해야 한다.
Anselm: fides quarentes intellectum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AA전통: Augustin & Anselm의 태도
신 의식과 자연계시
바울(롬1) "하나님의 알만한 것"/ 칼빈 "sensus deitatis(sensus divinitatis) 신 의식"
신의식은 모든 사람 안에 있다.
자연계시: 롬1:20.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신성이 나타남.
이 두 가지가 있으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경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불의로 신지식을 억누름으로써 신 지식을 가지지 못함.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a) 자연/일반 계시 하나님의 창조물이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구원과 관련 없음.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
b) 특별계시 : 구원과 직접적 관련.
성경; 구전으로 전해지는 도중 발생 가능한 왜곡을 피하기 위해 성문화하여 계시를 보존한 것.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에게 특별계시(성경에 기록됨)를 주심. 성경이 특별계시이다.
- 구약시대는 말라기(나의 사자) 선지자 때 끝. 약 BC 400. 그 후 약 400년 동안 계시가 없었다(신구약 중간기). 그 동안 사람들은 이전의 계시에 근거하며 살면 된다. 믿음으로 산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음.
- 신약시대에는 정경/성경은 닫혀졌다(canon is closed). 더 이상 새로운 계시가 없다. 누가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 그는 이단이다.
-기독교: canon 66권에 근거해서 모든 일을 함 = 성경만을 믿는다. sola scriptura(오직 성경으로)!
-천주교: 외경(66권외의 추가적인 천주교 성경)과 전통을 믿는다. 그 외에 위경(예수님의 소년시절 얘기, 사도들의 황당한 기적)을 참조함. 교황의 칙서(성경과 같음. 권좌에서-ex cathedra-선언한 것은 오류가 없다: 교황 무오설). 영아림보사상 (어린애가 세례 못 받고 죽으면 영아림보에 간다 - 베네딕트16 현직 교황이 부인함.)
-이단 : 정경의 내용을 더하거나 뺌. (여호와의 증인 : 성경 +교주 요셉 스미스의 계시)
요한계시록 22:18-19. 원칙적으로 계시록에만 해당되는 말. 그러나 성경의 다른 책에도 적용할 수 있다.
- 거룩한 공회 the holy catholic church(참 교회)는 성경을 따라간다. 그러나 천주교는 성경 외에 다른 것들도 믿는다. 천주교는 교회가 성경을 결정했다고 함으로써 교회를 성경앞에 세운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 이전에 있었다. 교회는 성경에 따라서 구성되고, 교회는 원래부터 있었던 성경을 찾아서 결정을 한 것 뿐이다.
4) 개혁파 신학 Reformed theology
개혁신학은 성경에 근거한 계시만 의존한다.
그외 여러가지 종파:
1. Roman Catholic: 예수님/마리아상을 중시, 미신화됨. 필리핀, 브라질, 중세. 아직도 마리아가 나타나서 계시함. 신기하게도 신교도에게는 마리아가 나타나지 않음.
2. Greek orthodox 희랍 정교회: 성상 숭배 금지. 그러나 그 대신에 Icon 성부,성자의 그림을 그림 = 화상)
3. 로마 카톨릭을 부정하고 나온 루터파.
4. 그외 영국 Anglican, Methodist(웨슬리: 세계는 나의 교구), Baptist
이에 대한 천주교 입장 표명 : 루터의 종교개혁이 문제의 근원지이다.
Reformed: 칼빈이 루터의 영향을 받고 제네바에서 나름대로 좀 더 개혁함.
칼빈의 가르침을 잘 이어받은 곳: 네덜란드(개혁교회: Dutch Reformed Church)와 스코트랜드 (장로교회). John Knox (1505-1572)가 제네바에서 배움. “그리스도인의 가장 완벽한 신앙을 제네바에서 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에 돌아와서 장로교회를 세움.
5) 책과 신학자 소개
Mdiv(Master of Divinity ? 목회학 석사) 과정 - 과거의 선배들이 생각한 것을 구경하는 것.
1. 조직신학 일반
Herman Bavinck: 19c말 20c초. 화란의 자유대학. Magnalia Dei (Our Resonable Faith, 하나님의 큰 일). 모든 성도들이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쓰여진 책. 상당히 중요하고 좋은 책.
Louis Berkhof: 벌코프. 칼빈 신학대에서 가르침. Systematic Theology (조직신학). 1939초판. 매우 좋은 교과서. 바빙크의 개혁파 교의학(4권)을 거의 요약함. 17-20세기 초까지의 개혁신학을 잘 요약함.
Robert Raymond: “A New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Faith”. 그의 선생 Buswell것 보다 더 좋다. Covenant신대 조직신학 교수. 장로교 신학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다.
Gordon Sykeman: “Reformational Theology: A New Paradigm for Doing Dogmatics”. 좋은 책인데 지나친 면도 있음.
2. 신론
Herman Bavinck: The Doctrine of God. 이승구역. 역주가 많아서 읽기 좋다. 신학사 전체를 연구함.
Lorraine Boettner: “The Reformed Doctrine of Predestination”. 예정론을 정리함.
Gerald Bray: “The Doctrine of God” IVP 조직신학 시리즈. 좋은 책
Millard Erickson: “Christian Theology”. 침례교회 보수. 침례교의 특징이 나타남.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Biblical Doctrine” 벌콥의 책을 현대적으로 읽고 싶은 사람. “지금도 하나님 계시가 있다”는 침례교적인 성향이 있다.
J. Parker: “Knowing God” 경건서적으로 좋다. 꼭 읽을 것.
Cornelius Van Til: “An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원래 화란의 개혁파. Vos의 제자. 두 가지 전통인 화란 개혁교회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신학을 잘 조화시킴.
6) 신학 과목
a) Biblical studies 성경신학.
Exegetical theology: 주경신학. 성경을 주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 조직신학은 주경신학을 바탕으로 한다. 주경신학을 위해서는 히브리어, 헬라어와 신, 구약 배경사(고대 근동의 문화와 역사, 중간사), 성경 형성사등을 배워야 한다.
exegesis: 주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끄집어냄. 성경 안에 있는 그대로를 가져와야 함.
eisgesis: 잘못된 주해. 내 생각을 성경에 집어 넣어서 그것을 다시 끄집어냄.
이 연구의 마지막 과정은 성경신학(구약신학, 신약신학). 특별계시의 역사를 찾아냄. 각권의 특성을 잘 연구하면서도 성경으로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선을 발견하는 것. 벌콥의 서론에 잘 나와 있음.
b) 교회사 (역사신학 Historical theology)
과거의 교회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 어떻게 적용해 왔는지를 배워서 어느 것이 옳은가를 판단함.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 잘한 것을 발전시키고 나쁜 것을 버린다.
우리는 현재 20세기를 거쳐온 교회의 대변인으로 있다.
c) 조직신학 Systematic theology
우리가 믿는 바를 체계적으로 제시함. 과거에 나타난 잘못된 교리의 잘못된 이유를 체계적으로 설명해줌.
d) 실천신학 Practical theology
교회에서 실천에 옮기기 전에 한번 점검하는 것. 하기 전에 검토, 한 후에 검토. 성경에 맞는지를 늘 검토함.
- 우리의 실천에 대한 것을 검토. 설교 비판. 교회에 도움이 되도록 함.
- 실천신학의 예 (그 범위가 갈수록 광대해짐): 과거에는 예배학, 설교학, 전도학, 목회학. 점차로 목회상담학, 기독교교육학, 사이버목회학, 교회행정학 등이 추가됨.
- 재능이 제일 많은 사람이 실천신학을 해야 한다. 실천신학은 신학의 꽃이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에서 실천신학이 점점 세속화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 조직신학
조직신학의 방법: 우리는 종합적 방법(벌코프의 조직신학)으로 공부하는데 과목은 다음과 같이 나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고찰하는 방법이다. 결국 하나님의 인식이 올바로 되도록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물론 조직신학을 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
Prolegomena 서론
Theology proper 신론
Anthropology 인간론, 인죄론
Christology 기독론
Soteriology 구원론
Ecclesiology 교회학
Eschatology 종말론
루터와 칼빈의 비교
1) 루터는 믿음생활에 대한 자유를 강조하고, 그 당시에 대중들의 종교심을 감안하여 상을 모두 없애지 않고 일부분은 허용하였다. [교회에 쳐들어가 상을 파괴시켜서 혼란을 야기했던 과격파들을 멀리함]. 칼빈은 상을 모두 없앴다.
2) 루터는 교회 안의 역할을 Priester 제사장/사제와 Minister 섬기는 사람으로 구분하였으나 두 용어를 혼용해서 사용함. 그러나 후에 루터교에 와서는 제사장의 의미가 강해짐.
cf) Anglican 은 Prister of church 선호. 그러나 개혁파에서는 제사장이라는 말을 없애버림.
한국인들은 목사에 대해 제사장이라는 의식을 가짐(목사의 축복이 필요함)
[루터와 칼빈의 근본적인 차이 몇가지]
루터: 칼빈
하나님의 사랑 강조 십자가 신학 하나님의 영광 강조 하나님의 주권
성경에서 금하지 않는 것은 허용적. 성경에 명기되지 않은 것을 금지함
목사의 역활
1) 설교하는 자리에서는 원칙 중심(성경). 성경의 진리가 가감 없이 선포되어야 한다.
2) 목회적인 접근이 필요: 사목현장에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서 그 신자를 존중하고 수준에 맞춰서 진리의 세계로 인도함(인격의 문제)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내용을 왜곡하면 안된다. 이것은 영원한 말씀이신 예수님을 왜곡시켜 전하는 행위이며, 성도에게도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2부: 신론 (Theology Proper)
I. 하나님의 존재
A. 삼위일체
1. 유대인의 유일신 신앙: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 모세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고 유일신을 강조한 이유
신 6:4 Shema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 이 말씀은 출애굽 후 광야생활 40년이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신신당부한 말씀이다. 그런데 왜 그는 정확하게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다”라고 가르치지 않았을까?
- 그는 한 분 경배에 초점을 두었다. 다른 신(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의미에서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계시를 하셨다면, 이스라엘은 다신으로 이해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유일신이시며 모든 다른 우상을 제거하라고 하셨다.
-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계시 방법을 배운다: 성경의 계시방법은 점진적이다. 점진적으로 계시를 하면서 앞의 계시를 번복하는 것이 아니라 앞의 계시가 점점 명확하게 되는 것이다. 구약에 희미하게 계시된 예수님은 신약에서 완전히 계시되었다.
- 아브라함의 조상까지도 다른 신을 숭배하였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가운데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큰 축복이다.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 이스라엘은 다신론적 이집트에서 빠져나와서 다시 다신론적 사회인 가나안으로 들어감. 그래서 모세가 유일신을 매우 강조함. 유대인들은 왜 우리만 유일신을 섬겨야 하는가 하고 회의를 가질 수가 있음.
- Monotheism: 여러 신들 중에 한 분만 섬김. Poli-Theism 다신론과 반대.
- 유일신론: 신은 하나 밖에는 없다.
- 유일신론의 종교는 3가지 밖에는 없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섬김)
실천적 무신론자
- 실천적 무신론자란, 하나님이 계심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이다. 예: 아담의 타락 직후에 하나님과의 대화에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변명함. 하나님과 대화를 한다고 해서 신앙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가인의 예에서 더 뚜렸하게 나타남.
- 노아 시대의 사람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알지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지 못했다.
- 대홍수 이후에 8명이 살아남음. 그의 후예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고 바벨탑을 쌓음.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생각하지 않음.
- 하나님 말씀에 순종을 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천적 무신론자이다.
- 너의 존재 전체(100%)를 다 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절대(하나님)는 절대(100%)를 요구함.
- 영적인 간음: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 99% 사랑하는 것. 부부관계도 마찬가지 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적은 거의 없다. 가장 심할 때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던 아합왕 때이다. 850 vs 1. 바알 사제와 엘리야의 기도 대결.
- 이스라엘 족속들은 산마다 산당이 있었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면서 다른 신을 함께 섬김.
- 가나안 신화: 가나안의 남신과 여신이 성관계를 맺어 이 땅이 비옥해졌다. 비는 바알이 뿌린 스페르마이다. [거룩한 구약과 이방종교가 너무나 대조적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 vs "가나안의 옛 신들이 이 땅을 지켜줬는데, 우리가 마음을 주지 않으면 화가 올 수도 있다"
-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한 분만 섬기라고 그토록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야훼와 함께 이방신을 섬겼다. 하나님은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가나안 족속들을 모두 다 멸하라고 명하였음. 아이들까지도 다 죽이라고 했음. 이것은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이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을 때에, 그들에게 우상이 들어왔다.
-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들어온 우상을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망한다.
- 신 6:6-9: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라. 항상 자녀들을 위해 교육적으로 생각하며 실천하고, 그를 위해 교육적 환경을 조성해라. 집에 앉았을 때 든지, 누워있을 때든지…
- 그러나 이것이 습관화가 되었을 경우
1) 생활지침 2) 하나님 말씀에 대한 마음이 없이 하는 습관(형식만 존재)
- 기본적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는 것이다. 세속적 신앙. 번영의 신학.
- 한국 목사들의 설교 방법: 하나님을 잘 섬기면, 재물 운은 자연스레 뒤따라온다. 하지만 결국엔 재물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게 되고,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경우가 된다.
- 그러나 그들이 선지자들의 심판예고를 듣지 않자 북 이스라엘은 722, 남 유다는 586에 멸망함. 엘리트들은 전부 잡혀가고 땅의 사람들2)만 남게 됨.
- 그 이후에는 그들이 각성을 하여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고자 함. 한 분의 하나님 신앙이 강조됨. 그리고 성경이 강조됨. 성전이 없어져서 제사를 드릴 수가 없게 되었으므로 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을 필사하는 일이었다. 성경 해석집 탈무드가 등장. 성경을 가르치고 필사하는 사람들인 율법사가 중요하게 됨. 그들은 또한 율법을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 마가복음 2장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에서 유대인들의 신앙이 잘 드러남.
막2:1 가버나움: 갈릴리 사람의 중심지
2:7 참람 = 신성모독. 당시의 유대인들 관념으로는 하나님 한 분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음.
-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주장(가끔 자신이 하나님 이심을 드러내심). 그러나 바빌론 포로의 쓰디쓴 체험이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들은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려고 함. 그들이 만약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몇 분이신가를 의심하게 됨. 사도 바울도 같은 문제를 갖고 있던 것 같음. 우리가 바리새인의 입장을 잘 이해하여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
- 유대인들은 바빌론 포로 이후에 우상숭배를 한 적이 없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성경에 계시된 진정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하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우상숭배를 할 수 있다.
2. 삼위와 일체의 문제
# 서론적인 문제
- 계시는 계속해서 진전하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으면 유대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구약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성자와 성령에 대한 암시가 많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몇 명인가?
- 요14:16에서 성령까지 끄집어 내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듦: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의미 해설:
·또 다른 보혜사(알로스 파라클레토스: 옆에 불림을 받은 자) = 성령
·allos는 다르지만 동질의 것. Hetero는 질이 다른 것. hetero sexual.
·보혜사는 고대의 재판시에 자기를 도와주는 법적인 친구(legal friend)이다. 법률적 지식이 없는 경우 이를 옆에 세워두고 전부 귀속말로 이야기를 해준다.
·이렇게 우리 곁에서 우리에게 예수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다.
- 이단들은 이 교리를 일단은 받아들이고 쉬운 해결책을 택한다. 대표적 이단 교리:
·삼신론: 3명의 신은 하나님-예수님-성령의 위계질서를 가진다.
·Modalism(양태론): 성부/성자/성령은 서로 다른 mode를 가졌지만, 한 분이시다. 예)H2O: 얼음-물-수증기
- 양태론에 대한 반박: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앉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을 세례자 요한이 직접 경험했다. 양태론에 따르면, 동시에 성부 성자 성령이 역사할 수가 없고, 하나님이 자리를 바꾸면서 서서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성경 본문에는 동시에 일어난 일로 묘사되고 있으므로 양태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 과제: 三 과 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삼位일체(Trinitatis)로 해결함
# 삼위일체
* 하나님의 존재방식
God the Father 아버지 하나님
God the Son 아들 하나님
God the Holy Spirit 성령 하나님
각각은 구별되지만, 모두 다 한분 하나님이시다.
삼위일체가 함께 천지를 창조하심. 하지만 성부, 성자, 성령 안에서(구분가능 = 서로가 서로의 안에 존재).
* 삼위일체란 용어의 의미
1. 일체:
- 일체란 한 본질이라는 의미이다. Homo-ousios(호모우시오스) = 동일 본질의. 호모라는 말은 같다는 의미이고, 우시오스는 우시아의 형용사. 우시아(essentia, substantia)라는 말은 본질이라는 의미이다. 본질이 같으므로 하나이다.
- 문제는 왜 성자가 성부에게 순종을 하는가? 삼위는 권능, 영광, 존재에 있어서 동등하시다. 그러나 사역상 순종이 가능하다 경륜상의 순종. 성자가 순종을 하신다고 해서 성부보다 조금 못하신 것이 아니다.
2. 삼위
- 위격: hypostasis = persona = prosopon (가면). 영어로는 person, subsistance라는 표현을 사용함. 로만 그레코 문화에서 연극을 할때 배우는 등장인물을 나타내는 가면을 쓰고 나타남. 가면을 쓰면 실제로 등장인물이 되는 것과 같다.
- 본질은 같지만 서로 구별된다. 같은 분이 아버지 페르소나, 아들 페르소나, 성령 페르소나로 구분됨.
- 이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페리코레시스(상호 교통, 순환, 점유)라는 표현을 사용함. 구별이 되면서 서로가 서로 안에 존재한다. 요17:5: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 삼위는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일은 모두 같이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성부께만 영광을 돌린다.
- 이 개념이 서지 않으면, 성경이 말한 하나님을 설명할 수 없다(예수님=하나님. 성령님=하나님. 아버지=하나님). 또한 이런 삼위일체의 관계를 이해하면, 양태론을 막을 수 있다. 잘못된 설명을 없애고 되도록 간략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 [삼위일체를 완벽하게는 설명할 수는 없다]
Augustinus: Si comprehendis, non est Deus: 만약 당신이 완전히 이해한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다.
3. 구약에 나타난 삼위일체의 시사들
* 계시의 이해:
- 캄캄한 방에 한줄기의 빛이 들어오면, 물건들이 자세히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대강의 구도는 볼 수가 있다. 이것이 구약시대의 계시이다. 그러나 낮이 되면(신약시대) 분명히 보인다. 성경계시의 특성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명료하게 계시된다는 것이다. 뒤에 오는 계시가 앞에 잇는 계시를 무효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앞의 계시를 더 밝게 자세히 계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계시의 목표이다. 희미한 그리스도의 계시가 신약에 와서 뚜렸하게 나타남.
- 예: 구약의 자세하고 복잡한 정결법은 그리스도의 속죄죽음으로 성취됨. 정결법은 신약에서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얼마나 정결해야 하는지를 가르침.
- 계시의 명료성: 그러나 구약의 계시는 구약 사람들에게 희미한 것이 아니다. 그 시대 안에서는 명료하며, 이것은 신약에 비교할 때에 희미하다는 의미이다.
* 하나님의 계시는 교육적(점진적)이다:
- 다신론의 사회에서는 하나님이 한 분임을 강조한다. 구약에서 삼위일체론을 강조했다면 기독교가 다신론으로 갔을 것. 그러나 구약에도 삼위일체의 가르침이 있다. 이 가르침은 애매하지는 않다.
- 예: 성령에 대해서는: 창1:2의 하나님의 신(루아흐 엘로힘)은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요14-16장에서 명확해진다. (운행하신다 = 품고 계신다. 그 위에 펄럭인다)
# 구약에 나타난 성자님
1. 요 1:1: 태초에 계신 말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ν ?ρχ? ?ν ? λ?γο?, κα? ? λ?γο? ?ν πρ?? τ?ν θε?ν, κα? θε?? ?ν ? λ?γο?.
- 여기에서 태초에 계신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한다. 성자도 성부와 같은 하나님이다.
- 그리고 만물이 그(로고스, 말씀)로 말미암아 지음 받았다고 한다. 즉 창세기 1장의 창조가 성부 하나님 홀로 하신 일이 아니고 성자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창세기에 이미 성자 하나님이 계시되었다.
- 성자 하나님을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태초로부터 계신 성자 하나님, 즉 몸을 입지 않은 로고스를 “로고스 아싸르코스”라고 하고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로고스 엔 싸르코스”라고 한다.
- 요한이 창세기 1창을 읽고서 창조에 참여한 말씀이 성자이신 것을 깨달음.
- 요1:1 말씀에서 성부 하나님은 정관사 “호”를 붙여서 “호 테오스”라고 하고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할 때에는 정관사 없는 테오스라고 했다. 그러나 의미는 동일하다. 즉 말씀이 성부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의미이다. 정관사가 없다고 해서 정관사가 있는 하나님보다 낮은 신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 여호와 증인은 테오스를 형용사로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피조물인 신으로 본다. [주신이 다른 신들을 창조. 그리이스 로마신화. 에누마 엘리쉬등 근동의 신화]
- 오리겐은 “테오스”는 “호 테오스”보다 조금 못하다라고 봄.
2. 지혜의 세상창조 (wisdom christology: 지혜기독론)
- 이미 구약시대에도 지혜가 세상의 창조에 관여했다는 시사가 있다.
·잠 8;1 지혜.
·잠 8;20 지혜를 의인화 시킴. 속성을 의인화하여 얘기했다.
·잠 8;22 지혜가 창조 전에 있었다.
·잠 8;30 창조자 아몬.
아몬이란: 1) craft workman(장인) Werkmeister; 지혜는 이 세상을 실제적으로 만드시는 분이다. 2) 사랑받는 사람(Liebling ? 성자)
- 지혜는 요1:1의 말씀과 같다.
3. 여호와의 사자: 말락 아도나이.
(삼위일체의 논거는 되지 않지만 그 암시는 된다)
i) 창16;7 여호와의 사자=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
창16:? 자기가 하나님처럼 하는 사자.
ii) 출14:19: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출13;21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심.
한번은 여호와라고 하고 한번은 여호와의 사자라고 함.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자기가 하나님처럼 하는 여호와의 사자라고 해석하고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13잘과 14장은 다른 자료라고 한다.
iii) 삿6:11-24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는데, 여호와와 대화하는 것처럼 내용이 전개됨. : 11,20: 말락 아도나이. 14,23: 여호와.
iv) 삿13:3: 말락 아도나이 (삼손의 출생 이야기)
삿13:18 나의 이름은 기묘 geheimnisvoll, wonder
v) 말3:1: 내 사자를 보내노니. 언약의 사자. 말락 아도나이가 말락 베릿이 됨.
추론: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성자가 성육신 했다. 장차 성육신 하실 분이 먼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남.
배울점: 옛날에는 예배할 때는 항상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찬양했다. 오늘날 CCM에는 삼위일체가 없다. 오늘날 실천적인 Unitarian들이 많다. 성부 Unitarian, 성자 Unitarian, 성령 Unitarian.
Unitarian ; 삼위일체설을 부인하고 유일 신격(神格)을 주장하여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
4. 창18: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1: 야훼가 나타남. 2 세 사람. 3: 아도나이. 9: 주어가 복수. 10: 주어가 단수로 바뀜. 19장 1: 두 천사가 소돔으로 감.
추론: 세 사람 중 한 명은 성자.
5. 사6: 이사야의 비젼
비전(환상) 가운데서 봤으므로 여섯 날개를 가진 천사로 묘사됨.
성경에 언급된 천사들은 영이고 성이 없으나, 계시로 나타났을 때는 모두 남자의 모습이었다.
천사이름: 가브리엘, 미하엘 (남자이름)
* 우리가 배울점: 예배, 찬송, 기도의 대상은 삼위일체신 하나님께.
- 성경을 중요시하되, 말씀을 통한 성령님과의 살아있는 교제가 있어야 한다. 성경만 중시하고 성령님과의 교제가 없으면 죽은 정통이 된다.
- 환상이나 음성을 듣는 신자들은 문제: 그 경험에 의존하여 성경과 멀어짐. 그들은 사도 바울과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는 수많은 영적체험을 하였으나 그것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현상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우리는 도무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만 나아갈 수 있다(비 기독교적인 생각: 지성이면 감천이다) 주께서 이 기도를 받아 주셨다는 감사가 있어야 한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앞에 뜻을 구한다.
- 다음 중 아무거나 사용가능
1)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다 찾고 기도하기.
2) 영광을 성부 하나님께 돌려드림-전유
3) 우리의 구원을 위한 기도: 성자께.
4) 삶을 인도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분: 성령.
-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도: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 성부, 성자, 성령을 의식하고 알맞은 것들을 돌려드리는 것이 성숙한 예배이다.
# 구약에 나타난 성령님
* 본문
1) 사63;7-11
- 내용: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비유: 아버지-자녀, 왕-백성(남편-아내),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반역함.
- 10,11: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이스라엘 백성 안에 성령(성신)이 거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음.
2) 학2:5: 안약한 말 - 성경, 영 - 성령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3) 시51: "하나님의 신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
다윗이 자기 안에 있는 성령의 존재를 자각함.
- 그렇다면 요7:39의 말씀은 어떻게 이해가 되는가?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임하시지 않음을 말함.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구속사적인 작용이다. 예수님의 성육신, 성령이 오심, 재림은 구속사적인 사건이다. 로고스와 성령은 그 이전에도 사람 가운데에서 활동하심. 그 이전에도 중생, 성화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가운데서 계시다가 이제는 교회공동체에 계심.
* 성령님의 역사와 삼중적 은혜
1) 일반 은총: 모든 일반 사람들에게 역사. 성령님의 힘으로 살지만, 구원과 관계는 없다.
문제: 어떤 이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죄를 짓는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성령의 역사이다.
2) 직임적 임재: 특별 사역. 구원과 관련 없이 사역자에게 은사로 나타날 수 있음. 사울 왕에게 성령님이 함께 하셨다가 후에 떠나심.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님. 고레스왕에게도 “나의 종”이라고 하심.
3) 구원적 임재: 하나님의 참백성에게 영원히 함께 하신다.
문제: 성령님께 순종하지 하고 근심을 많이 끼쳤을 경우; 회개하지 않으면,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임재가 아니다.
* 이적 신앙의 문제:
- 사람이 이적을 경험하는 경우는 성령님의 직임적 임재이다. 이것은 구원과 관계가 없다. 성령을 받지 않고 은사를 받을 수 있다.
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들의 문제점: 주제 넘음, 잘못된 확신.
진짜 하나님 백성에게는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 이들에게는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을 주심.
* 구속사적 사건
[창조 ? 타락 ? 이스라엘의 부르심] - 1) 성육신 2) 십자가 3) 부활 4) 성령이 오심 5) 예수님의 재림.
- 구약시대는 준비단계로 볼 수 있음.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고,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하심. 구약은 이렇게 후에 이루어질 구속사적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해석을 해야 한다.
- 구약시대에는 민족적 특별은총particularism으로 이스라엘 백성만 택하셔서 성령님이 역사하셨으나, 신약시대 이후로는 믿음이 있는 모든 자들에게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두 시대 사이의 성령님 역사의 강도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없다. 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존속함.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역사가 끊어짐.
- 구속사의 역사 주인공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시다. 구약시대에도 성령의 활동이 있었지만 구속사적인 면에는 없었다. 구속사적인 임재는 단회적이다.
* 창세기 1장의 삼위일체에 관한 해석문제
- 창1:1: 충만의 복수. 동사는 단수를 받음.
- 창1:26 let us create/make …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 '우리'에 대한 해석 가능한 견해들
1) 하나님의 위격의 복수성 시사 점진적 계시. 자체에서는 몇명인지 수는 모르지만, 신약시대에 가서는 삼위일체임을 알 수 있다.
2) 충만의 복수 : 엘로힘이라는 명사는 복수인데, 동사는 단수로 쓰인다.
3) 하나님의 자기 의논의 복수. 중요한 일을 할 때 복수로 자신을 칭하심.
4) royal "we". 왕적인 우리. “우리가 대마도를 치자!”
잘못된 견해들
1) 천상의 어전회의설 - 사람이 천사의 모습으로 되므로 (천상의 어전회의; 하나님이 천사들을 모아놓고 하는 회의.)
2) 헤르만 궁켈: '다신론의 잔재' - 종교의 발생을 진화론적으로 본다.
4. 삼위간의 관계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잘못된 비유; “광열, 광선, 광원”등으로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것.
A. 삼위일체 교리에 있어서의 이단들
1) Arius 파
[4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에서 삼위일체설을 부정하였던 아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 니케아 공의회에서 최초로 기독교의 이단으로 결정되었다]
-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만, 영원 전에는 성부만 계셨다. 성부가 창조계획을 세우실 때에 성자를 만드셨다. 그 다음에 성령이 있다"; 성자는 있지 않았던 때가 있었고, 성부는 영원했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성부가 성자보다 우월하다고 시사한다.
313. 기독교 공인.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 거의 반이 아리우스를 따름.
325. 니케아 종교회의. 황제가 통합을 하고자.
392.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자 공직에 진출하려는 자는 무조건 예수님을 믿어야 했다. 태어나면 유아세례를 받음.
영향: nominal christian. Christentum 기독교권 형성. 유아세례의 의미 변질.
(비교: 이전 상황- 생사의 문제 앞에서도 진실한 신자만이 존재)
- 콘스탄틴의 밀라노 칙령 동기: 콘스탄틴이 막센티우스와의 생명을 건 전투에서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을 믿음. 그는 기독교가 분열되지 않기를 바람.
- 325 니케아 공회; 교회의 교리를 결정하는데 콘스탄틴 황제가 소집함. Homoousios(동질) vs. Homoiousios(유사본질)
- 모인 사람들 1) 아리우스파 2) 아타나시우스파(정통파) 3) 중도파.
- 회의 결정내용: "성부, 성자는 동일한 본질이시다"(이 논란 때문에 모임) = 성부, 성자는 영원하시다. 그러나 아리우스파는 보편교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음.
2) Modalism 양태론(성부 = 성자)
- 한 하나님이 가면만 바꾸어 나타남. 옛날 배우들은 남자가 여자의 가면을 쓰고 나타남.
- 대표자: Noetus. 양태론은 Patripassionism(성부수난설)로 귀착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으므로 하나님 자신이 고난을 당하신 것이다.
- Cleomenes의 반박: 그렇다면 예수님이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 드립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기가 자신에게 영혼을 부탁한 것이 된다.
- 교황들도 초기에는 양태론에 가담함. 교황무오설은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로마의 교황제도에 따르면 베드로가 1대 교황인데, 베드로 본인은 자신이 교황인지 모른다.
B. 과거의 정통파
1) Justin Martyr. 기독교의 변증가
- 당시 기독인이 받은 대표적인 비난:
·무신론자: 로마12신을 믿지 않으므로 무신론자이다.
·피와 살을 먹고 마신다(성찬식을 오해)
·혼음: 교인들끼리 사랑하는 것을 오해했다.
- 저스틴은 이것을 논리적으로 변증함. 기독교는 가장 높은 철학. 플라톤이 모세에게 배웠다고 함.
- 그의 삼위일체에 대한 의견은: 성부 하나님은 안 보이는 하나님이고 성자 하나님은 보이는 하나님.
성부가 성자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시사했다. 동일본질에 어긋남(종속설 잔재)
2) Irenaeus
- 기독교 신학의 좋은 기초를 놓음. 좋은 선생님.
- 성부하나님은 안 보이는데, 두 팔(성자, 성령)을 가지셨다. 성자는 조금 보이심. 종속설이 남아 있지만 성부 중심설로 가는 기초를 만듦.
3) Origen
- 그의 신학은 오류는 많지만 이단은 아니다. 예수님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스스로 고자가 되었으나 나중에 잘못을 인정함. 기독교 교리를 플라톤 주의와 유사하게 만듦.
- 영혼 선재설을 가르침: 우리의 영혼이 하늘에서 이미 타락해서(창3은 이것을 비유) 그 벌로 아기로 하나 하나씩 태어남. 영혼은 육체(감옥)을 떠나는 것이 목표. 빨리 많은 사람을 데리고 하늘에 가는 것.
- 알레고리칼(풍유적) 해석: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기 위해 318명을 데리고 감. 318에서 영적 의미를 찾기 위해 음가를 더하여(고전어는 숫자를 나타낼 때 알파벳을 사용한다) 그리스도라는 말을 찾아냄: “우리를 구원해 내신 분은 그리스도다” 라는 메시지를 끄집어 냄.
4) Tertulian
- 삼위일체 단어 창시. 라틴교부. 이때부터 라틴어가 중심이 됨. 그는 법률가였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위해 일함. 법률가로서 쌓은 지식으로 기독교의 교리를 잘 설명하였다. 나아가서 기독교 신학에도 공헌하였다.
- 그러나 희랍교부들과는 반대로 모든 철학을 버릴 것을 주장: '아테네(희랍철학)과 예루살렘(성경)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반대로 저스틴은 기독교를 최고의 철학으로 봄. 로고스, 합리적 철학.
- 그는 철학을 많이 알고 있었다. Trinitatis라는 말을 만들어 냄(위격은 3분, 존재는 1분). 아테네의 자원을 잘 사용하여 기독교를 잘 설명.
문제점: 성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성자는 아버지의 말씀으로 나오신 성육신의 결과로서 독자적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 불행한 표현. “성육신의 결과”라는 말이 잘못됨.
5) 어거스틴
- 삼위일체론을 거의 완성함. “삼위일체론”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 김광채). 큰 기여를 함.
1. Vestigium trinitatis. 삼위일체의 흔적.
예: 나무는 뿌리, 줄기, 잎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삼위일체를 증명하기에 부적절하다.
2. 심리적 유비: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심.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시도도 역시 부적절함)
예: 성부는 love, 성자는 The Beloved 성령은 Love.
알다: 아는 사람, 아는 대상, 사랑.
Knowing God: Understand
Remembering God: Remember
Loving God: Love
- 어거스틴의 기여: 삼위의 관계성을 잘 설명한 점. 아무도 삼위일체를 올바르게 설명한 사람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삼의일체 교리를 정립하는 데에 기여를 했다.
C: 올바른 설명
- 성부와 성자의 관계는 영원한 관계이다. 인간의 부자관계와는 다르다(아들은 아버지 이후에 존재함). 인간의 관계를 적용할 경우에 Arius주의에 빠진다.
1)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독생자의 영광…”
- 모노게네스: 홀로 나아진 자 "독생자" 유일하게 나아진 자, 성육신 하기 전에도 독생자
- 성부; 한번도 나아진 적이 없었다. agennesia(낳아지지 않음)는 성부에게만 해당.
- agenesia: 시작이 없다(영원함)라는 말은 3위 모두에게 해당된다.
- 오리겐은 성자를 Eternal generation(시작이 없는 영원한 출생)이라고 표현함(관계성이 영원하다). 이것은 오리겐의 큰 기여이다. 그러나 그는 항상 낳아지고 있다는 유출설의 의미로 사용함.
2) 시2: 제왕시(Thronbesteigerung. 왕이 등극할 때 사용하는 시편)
-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왕(기름 부음을 받은 자)을 대적함.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 시 2;2 에서는 이스라엘의 왕을 나타냄.
- 시 2;7 해석
·일차적인 성취; 이스라엘 왕의 등극.
·궁극적인 성취; 2;12 아들에게 입맞추라. 사람의 왕에게 적용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 몇몇 유대인들이 그 아들을 장차 오실 메시아라고 생각함. 멀리서 산(왕)이 하나만 보이다가도 가까아 가면 또 하나의 산(메시아)이 보임. 교부들은 이 이야기를 영원 전에 낳아지신 분(요1)으로 여김.
3) 요15:26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 표현의 문제
- 사용할 수 있는 말: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서는: 낳으신다(generation).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성부와 성자의 구별을 구별을 위해.
·발출, 발생은 은 금지된 표현이다. 기독교 영지주의에서 사용. 성부로부터 성자가 유출한다. 가까운 것일수록 선하고 멀수록 악하다.
- 올바른 표현: 성부는 성자를 영원히 낳으신다. 하나님은 영원히 말씀하신다. 성부는 영원히 숨을 쉬신다(성령).
- 다음의 표현도 사용한다:
·metaphysical fatherhood 형이상학적인 아버지 되심.
·ontological fatherhood 본체론적인 아버지 되심.
·official sonship 직무적 아들 되심. 행2:31.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이것을 adoption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adoptional (성부와 성자의 관계와 다름)
- 낳으셨다 라는 말의 의미에 집착하면, 출발점을 찾게 되고 이는 아리우스주의(아버지가 정하신 영원의 시점 존재를 주장)의 생각과 같아진다. 영원의 세계에서는 시작과 끝의 개념이 없다.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부르신 것은 아버지와 자신을 구별하기 위함이고, 아버지가 더 나으시다는 말을 의도하신 바는 없다. 서로 동등한 관계.
구속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고 나라를 모두 아버지께 바치고(경륜상의 순종) 나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 예수님은 겸손을 나타내시고자 우리들을 형제 자매나 벗이라고 하셨으나(감사해야 할일)
우리들이 좋은 의미로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형제라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그의 종이다.
삼위(세분이 아님)의 관계는 영원함!
5. 삼위일체 교리의 진전사
* 필리오케 논쟁
-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조보다 발전된 Athanasius 신조의 문구: Credimus in Spiritum Sanctum qui a Patre (Filioque는 후대에 삽입) procedit '우리는 아버지로부터 나온 성령님을 믿습니다' (요 15:26: “내가 보내는”: missio, “곧 아버지로 나오는”: processio)
- 톨레도 공의회에서 Filioque(and from the son)를 첨가함. 신조에 무엇을 첨가한 것은 문제가 있으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아들로부터라는 말은 성경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지만 성경적이다.
- 그러나 동방교회(greek orthodox church 희랍 정교회)에서는 Filioque를 거부함.
- 그들은 라틴어로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희랍어를 사용함. 일부가 러시아 정교회가 됨. 결혼한 사제. 머리 속에 성부 우위설이 있다. 성부중심적. 그러나 그렇다고 표현은 안 한다.
- 튀빙엔 교수 Moltmann은 Filioque를 첨가한 것에 반대하고 Eberhard Juengel은 Filioque를 찬성한다.
* 그리스도의 임재
1) Spiritual presence 영적으로 (파루시아). 성령이 보내진 후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고 물리적으로는 우리와 함께 계시지는 않지만, 영적으로는 함께 계신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언급되진 않았으나, 하나님도 같이 계셔야 삼위일체가 성립. 항상 삼위가 함께 하심. 삼위의 교제 속에 우리를 끌여 들여서 우리와 교제하심.
- opera trinitatis ad extra sunt indivisa; 삼위일체의 밖으로의 사역은 나누어 지지 않는다.
2) physical presence: 예수님은 몸과 인성을 가지시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에 올라가심. 영적으로만 세상에 존재하심.
* 본체론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
- ontological trinity: 존재론/본체론적 삼위일체. 영원전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원래 그러시다.
- economic trinity: 경륜/계시적 삼위일체.
- 경륜적 삼위일체 때문에 존재론적 삼위일체를 알게 되었다. 따라서 경륜적 삼위일체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인식근거가 됨. 반대로 존재론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의 존재근거가 된다.
* 현대 신학자들의 삼위일체 논쟁
§ Karl Rahner. 대표적 천주교 신학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큰 역활을 함. 칼 바르트의 영향을 받음.]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교수. 논문집으로는 “신학적 탐구”가 있다. 그 중 1권은 삼위일체에 관한 것: 경륜적 삼위일체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이다. 그 역도 성립한다.
- 그러나 보수신학자들의 입장은: 경륜적 삼위일체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인식근거.
§ Karl Barth는 삼위일체론을 20세기에 부흥시킴. 쉴라이어머하를 비판.
- Schleiermacher는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 인간의 감성을 강조. 그의 신학이 19세기를 석권함. 그의 저서 “Christlicher Glaube”: 신앙은 신학이다. 그 시대 사람이 어떻게 믿는가가 신학이다. 신학학은 시대마다 다르다 주관적 신학. 그는 삼위일체를 부록으로 다룸.
- 바르트는 처음에 이 사상에 동조함. 그 후에는 “우리의 신학은 삼위일체부터 시작한다”라고 역설함. 그 이후 조직신학자들이 삼위일체를 근거로 신학을 하게된다. 그의 신학의 문제는 정통신학과 다르다 Neo-orthodoxy.
- 성부, 성자, 성령은 존재양식이다(Seinsweise). 이 말은 마치 양태론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런 의미가 아니다. 몰트만은 이것을 양태론이라고 비판함.
§ 몰트만: 십자가를 중심으로 삼위일체를 이해함. 십자가에서 삼위일체가 계시될 뿐만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삼위일체가 규정되어진다. 십자가가 없으면, 삼위일체가 의미가 없다.
- Doxological Trinity 주장함: 본체론적 삼위일체를 찬양할 수 있다. 이것을 최소한도로 말해서: 역사가 하나님께 영향을 미친다. 궁극적으로 역사가 끝났을 때 하나님은 다르다 Neohegelianism. 헤겔의 역사전개 과정.
§ 에버하르트 융엘
몰트만과 더불어 새로운 십자가의 신학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본질은 고난이며 완전에서 더 완전으로 변한다. 그들의 신학은 오류.
§ Hendrikus Berkhof
- “Christian Faith”: 화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조직신학 교과서. 경륜적 삼위일체만 인정. 그는 삼위일체의 틀 속에서 이야기하지만,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언약관계에 대해서만 거론한다. 그의 생각을 끝까지 좇아가면 예수님은 결국 사람이다. Neoliberalism. 이 세상 역사 전체가 하나님의 역사이다. 삼위일체론이 결국에는 없어짐.
* doxological 삼위일체에 대한 논의
- 몰트만: 십자가에서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하나님은 자신을 예수와 동일시 하면서 구별한다 하나님의 자기소외. 십자가에서 하나님 됨이 드러나심. 하나님으로 규정되심. 그러나 영원 전부터 규정됨. 예배 때에만 송영적으로…
- 융엘: “Gottes Sein ist im Werden”. 유명한 책. 이 책에서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바르트의 동의 여부는 모른다. 바르트는 하나님이 변함이 없다고 했는데 융엘은 바르트가 하나님은 변하는 분이라고 했다고 말함.
신인동형론적인 표현:
Anthropomorphism: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심.
Anthropopathism: 하나님의 후회, 분노. 그분은 감정이 있지만 우리와 같은 류의 감정이 아니다. 그분은 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변하시는 분이다.
* 정리
-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 그 위에 있어서는 셋인데 우열을 가릴 수 없다.
- 성부, 성자, 성령간의 교제가 풍부하셔서 이것에 근거해서 삼위일체적 교제를 반영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는데 가장 첫번째로 교회공동체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교제 속으로 끌어들임.
- 요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를 하되 우리는 창조자인지 피조물인지 구분을 잘해야 한다.
- 독일의 신비주의자: 그들의 목표는 ?물방울이 떨어져 대양 속에 스며들듯이(물이 사라짐) 우리가 하나님으로 들어간다" (하나님의 일부가 된다).
- 하나님은 우리를 끌어올리시지만,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삼위일체의 실천적 의미
- 삼위일체와 교회의 관계성: 요즈음 교회의 큰 테마. 삼위일체(서로가 서로 안에 계심 '페리코레시스")를 모델로 하여 교회 공동체를 만든다. 각자가 성령님과 교제하면서 형제들과 교제함. 이때의 모델이 삼위일체. 구별성이 유지되면서 통일성을 갖춘다.
애매한 이론들
OPEN TRINITY , OPEN HISTORY OF TRINITY(개방된 역사의 삼위일체), SOCIAL TRINITY(사회적 삼위일체). 사용하는 사람마다 의미가 달라진다. 마치 삼위일체의 교제를 사람 셋의 교제와 혼동시킬 수 있다.
하나님과 우리의 구분이 명확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B. 하나님의 속성
- 의미: 하나님에 속하는 성품(Properties, Virtues of God).
-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찾아내려는 시도(잘못된 방법) 철학적 방법.
예) Via causalitatis(인과성의 방도): 원인, 결과를 계속 따져가면 최초의 원인(Prima causa)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 이 최초의 원인이 하나님이다.
* 하나님의 속성을 탐구하는 방법
1) Via negationis(부정의 방도): 제한적인 사람이 갖는 속성의 반대 속성. Aristoteles가 대표.
사람의 속성 하나님의 속성
Mens: immens 연장이 없다. 즉 무한하다.
Corporal: incorporal 몸이 없다.
Mortal: immortal 죽지 않는다. 영원하다.
Comprehensible: incomprehensible. 불가해하다.
Finite: infinite 끝이 없다.
사람이 있는 것을 가지고 부정을 하여 하나님을 정의하게 되는데, 그 하나님은 진짜가 아니다.
2) Via eminentiae(우월의 방도, 우수성의 방도): 최대한으로 우월하게 한다.
omni-scientia 전지
omni-presentia 전재(편재)
omni-potentia 전능
omni-benevolentia 전선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것을 찾아냄. 중세의 신학자들이 이것을 그대로 야훼 하나님에게 그대로 적용. 이런 하나님은 철학자들의 하나님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비슷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일반 은총 가운데 찾아낸 것이지, 성경에 근거해서 찾아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정리할 때는 사용할 수 있으나, 그렇게 찾아어서는 안된다. 야훼 하나님의 속성은 이것과는 다르다.
파스칼: 철학자의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다. (역사를 통하여 계시하시는 하나님, 인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계시의 진전…)
* 하나님의 속성을 올바로 아는 방식
하나님의 속성을 알려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것을 살펴봐야 한다(물론 지금도 행동하시지만, 이것의 해석은 과거의 계시, 즉 성경에 의존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과거 행하신 일을 보여주고 반드시 설명을 해준다. 이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삶 속에서 확증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추상적으로 보이는 말씀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체험 되어야 한다.
시 37: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
이 먹을거리는 살면서 실천해야 한다.
역사, 체험, 경험: 이것을 모두 성경의 가르침에 종속시켜야 한다. 체험에 의존하는 신앙은 위험하다.
사람이 하나님의 속성을 알고 싶은 이유:
1) 하나님을 진짜로 사랑하면 알고 싶다.
구원이 완성이 되어 하늘나라에 있어도 하나님을 알아 나간다.
성 어거스틴: 나는 하나님과 나의 영혼을 아는 것 밖에는 관심이 없다.
세월이 지날수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증진되어야 한다.
2) 배워나갈수록 우리는 피조물의 수준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본 받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완전해 질 수는 없으나 상대적으로 완전해져야 한다.
하나님의 속성
1) 비공유적 속성; 우리하고는 성질이 다르다. 하나님만 가지신 속성.
2) 공유적 속성; 엄밀히 따지면 비교는 안되지만 , 피조물들이 상대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1. 비공유적 속성
1) 하나님의 자존성(스스로 존재하심)
- 인간은 어머니가 낳아야 존재한다. 사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셔야 존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인이 없다. causa sui(철학적 용어):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원인이시다.
-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스스로 있는 자 = (70인역; 나는 그 존재하는 자이다. ?Εγ? ε?μι ? ?ν?=“Ich bin der Seiende”) I am who/what I am. I will be what I will be(미래로도 해석가능).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 나를 규정하려고 하지 말라. 나와 함께 이 구속사건에 참여하면 내가 누군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독립적이다.
-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며, “만물에 대해서 독립적으로, 그러나 만물이 그를 통해서만 존재하며, 모든 것이 자기를 통해 의존하게 하신다3)”. (하나님 사역에 내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은 비성경적이다. 교회에 특정한 사람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 하나님은 스스로 복되신분. 그분은 원칙적으로 인간을 필요로 하시지 않으신다. 그분은 인간의 도움도 받지 않으신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역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나님 모독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을 원하신다.
* 그외 관련 성구(출3:1-14)를 통해 배울 점:
출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인간이 생각하는 불이 아니다.)
출 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여호와의 사자: 성자로 추론됨.
- 네가 선 곳: 하나님 앞에 있는 자리. 사실은 우리는 어디에 있던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디에 있던지 바로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하나님 면전에서 사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 우리는 이제 성지, 성지순례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천주교는 성지가 있으나, 개신교는 신자가 가는 곳이 성지이다. 성지순례는 성경지리 및 문화연수로 바뀌어야 한다. 구약시대에는 성지가 하나님 앞이라 거룩했으나, 신약시대 이후로는 신자가 가는 곳이 성지이다. 청교도는 예배당 뿐만 아니라 상점(속이고 이익을 많이 봐야 함)도 거룩하게 여겼다. 그렇다면 상점에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성직, 성전이라는말도 없다.
출 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출 3:11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 3:13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 여기에서 신인동형적 표현을 사용함.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것. 신인동형적 표현이란, 하나님은 형체가 없으시지만 때때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시거나 인간처럼 말을 하시는 것.
- “내가 내려가서”: 하늘에 계서도 모든 것을 아시고 하늘에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지만,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함. 또한 하나님이 그들을 이끌어 내신다고 함.
2) 불변하심 Immutability
- 정의: 부동성(Immobility)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그리고 목적과 행동의 동기, 약속에 있어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4)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정지하신 분이 아니라 시간, 역사속으로 들어오셔서 인간과 함께 일을 하신다. 하나님(예수님)은 감동도 하시고 눈물도 흘리심.
- 일반적으로 변화란 더 좋아진다거나 나빠진다는 뉘앙스가 있다. 하나님은 발전도 퇴보도 없으시다.
- 범신론: 하나님은 영원히 스스로를 생성해 나가는 분. 무의식적인 절대자가 인간의 의식속에서 의식적인 인격성으로 발전한다(헤겔의 정신현상학). 현대신학자(철학자)들중에 하나님은 변화하시는 분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말 3: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언약관계에 있어서는 불변하심
약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림자는 빛에 따라 변하는 속성이 있다.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다는 말은 변하시지 않는 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믿을 만하다.
시편: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의지하는 요새시로다.
- 질문: 하나님은 후회도 하시는가? 인간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심(창6:5). 주의: 이것은 하나님의 감정을 인간의 감정으로 표현한 것이다(anthropopathic)
- 배울점: 하나님의 신실하심. 죄인에게 대한 사랑, 계획은 불변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에 대한 사랑과 보호하심을 끝까지 신뢰하고 살 수 있다. 절대로 마음을 바꾸지 아니하신다.
3) 무한성 Infinity
정의: 하나님은 모든 제한으로부터 자유하시다: 하나님의 존재나 속성에 대해 제한이 없다5).
a) 시간과 관련한 하나님의 무한성: 영원
- 어거스틴: 하나님은 시간 가운데서(in tempore) 창조하신 게 아니라 시간과 함께(cum tempore)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즉 세상과 시간을 동시에 창조하셨다. 시간도 피조물이다. 시간은 창조 때부터 흘러간다. 그 이전에는 시간이 없었다.
- 창조 전; 시간이 없는 상태 timelessness 무 시간성 (플라톤과 거의 모든 철학자는 시간과 영원을 대립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시간과 영원을 대립시키지 않는다)
- 종말 이후; 시간은 끝없이 계속 간다. 모든 피조물이 소멸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시간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endlessness. 인간은 부활후에 시간과 함께 영원히 산다.
- Oscar Cullmann 바젤신학자. “Christus und Zeit” 아주 좋은 책. 완전히 옳지는 않음. 플라톤에 대항하여 endlessness를 주장. 창조 전과 세상 끝 이후의 영원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한 사람. “플라톤은 timelessness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endlessness라고 해야 한다”.
- 하나님은 시간 안에 들어오신다. 모든 시간 내에 계신다. 내재하시면서 시간을 초월하신다. “하나님의 존재는 시간으로 나누어질 수 없는 항상 전체이다6)”
- Eternal Now: 이 순간 안에 영원이 들어있다. 왜? 영원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 영원의 3중적 의미: 하나님과 관계해서 영원은 3중적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간(과거, 현제, 미래)이 동시대적이다. 우리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도. 모든 순간이 영원으로 차 있다.
-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모든 사람이 함께 살아 있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동시대적 이면서도 나와 함께 동시대적이다.
Karl Barth: 시간 안에 하나님이 들어오시면 하나님이 유한적 존재가 되신다. 따라서 하나님은 시간을 스치고 지나가셔야 한다. 시간과 접하지 않으면서 접한다. 탄젠트 point. 하나님이 시간에 들어오시면 검증 가능해진다. 예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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