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와 자녀교육
청교도와 자녀교육
오덕교 교수
http://blog.daum.net/kkho1105/5846
청교도들에게 있어서 지상 과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데 있었다. 곧 가정, 교회와 국가와 같은 창조 질서(creation ordinance)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개혁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것이 그들이 추구하던 개혁의 목표였다. 그들은 이러한 개혁 운동이 창조 질서 가운데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의 개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확신하고, 가정을 하나님의 통치 영역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청교도들은 가정의 개혁은 자녀에 대한 교육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믿고, 자녀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쏟았다. 청교도 신학자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는 가정에서 경건을 유지하는 것이 교회개혁의 기초임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이 태초에 “가정을 세운 것은 경건한 자녀를 양육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하면서 자녀의 경건 교육에 힘쓸 것을 역설하였다(Perkins 1631, 3:67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도 가정 제도는 “경건한 자손을 통하여 교회가 번성하고, 부정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제정되었다”(24장 2절)고 지적함으로 자녀의 신앙 양육이 교회 성장과 개혁의 기초임을 밝혔다.
이러한 청교도의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은 그들의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이었고, 신대륙으로 이민한 주된 동기이기도 하였다. 하버드대학교의 학장을 역임한 바 있는 인크리스 매더(Increase Mather)는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이민하게 된 것은 다름아니라 “후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Mather 1679, 31).
1. 가정 교육
청교도들에게 가정 교육의 목적은 자녀를 선량한 시민으로 양육한다거나 이 세상에서 출세하도록 교육하는데 있지 않았다. 자녀 교육의 목적이 법을 잘 지키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도덕 군자를 양성하는 데 둔다면, 이는 하나님과 무관한 위선자를 양성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토마스 후커(Thomas Hooker)는 청교도 가정의 교육 목표가 문화인 양성이 아니라 신앙인 양육에 두어야한다고 주장했다(Hooker 1640, 213).
인크리스 매더(Increase Mather)도 자녀 교육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쏟아야 할 분야는 세상적인 출세나 성공이 아니라 신앙적인 성숙에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Mather 1684, 4-5). 보스턴 교회의 목사였던 존 노턴(John Norton)은 이 세상의 영화가 잠시 잠깐이지만 내세의 삶은 영원하다고 설교하면서 자녀 교육의 목표를 세상적인 성공에 두는 사람은 “신발에만 관심을 갖고 발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신앙 중심으로 교육할 것을 역설하였다(Norton 1658, 7).
같은 맥락에서, 코튼 매더(Cotton Mather)는 “만일 당신 자녀에 대한 관심이 단지 현세적인 부귀와 영화를 얻는 것이고, 그들을 세상적인 것으로만 채워지도록 한다면, 당신과 당신 자녀의 몫은 이 세상 뿐이요, 저 세상에서 기대할 것이 없다”고 경고하면서 신앙 교육의 우위성을 역설하였다(Mather 1721, 9).
청교도들이 교육의 목표를 사회적인 성공보다는 신앙인 양성에 둔 것은 인간의 원죄와 전적인 부패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청교도들은 칼빈주의 전통에 따라 인간이 죄 가운데 태어나며, 거듭나니 않은 자의 영혼은 전적으로 부패한 상태에 있다고 보았다.
앤 브래즈트리트(Anne Bradstreet)는 “인간은 아담의 죄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죄에 오염되어 있고, 나 역시 태어나면서 죄를 짓기 시작하였다”(Edmund 1966, 93)고 고백하였고, 벤자민 워즈워스(Benjamin Wadsworth)는 인간의 마음이 “죄와 악의 보금자리요, 뿌리요, 샘이요, 악의 보고이므로, 온갖 악한 것들, 곧 악한 생각, 살인, 간음 등의 죄악이 생겨난다. … 인간은 본성에서 진노의 자녀이며, 영원한 벌, 곧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에 던져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였다(Ibid.).
청교도들은 이러한 전적인 부패로 인해 인간 속에는 “은혜가 없고, 죄로 기울어지며, 죄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지 않고 원래의 모습으로 그냥 내버려두면 “본래의 악한 의지에 휩쓸려 버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였다(Emerson 1965, 126). 따라서 자녀들을 죄악의 굴레에서 구원하려면, 존 로빈슨(John Robinson)이 말한 것처럼, 신앙 교육을 통해 그들의 죄성을 “용인하지 말고 반드시 꺾어서 … 분쇄해야 한다”(Robinson 1628 in Creven 1973, 13)고 하였다.
청교도들이 자녀 교육에서 신앙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자녀를 은혜 계약의 씨로 이해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청교도들은 신구약의 연속성에 근거하여 아브라함과 그 자녀에게 하신 언약의 내용은 신약 시대에도 적용된다고 보고, 은혜 시대에 모든 믿는 자의 자녀는 은혜 계약 아래 있다고 하였다.
토마스 셰퍼드(Thomas Shepard)는 “구약에서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은 본질상 신약의 언약과 같다”고 주장하면서 은혜 계약의 유효성을 지적하였고(Shepard 1853, 1:29), 존 코튼(John Cotton)도 동일한 입장을 취하면서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고 은혜 계약 안에서 자녀가 자라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Cotton 1641, 91).
은혜 언약의 성격상, 모든 믿는 자의 자녀는 은혜 아래 있지만 그들의 구원은 조건적이다. 비록 하나님이 은혜 계약을 통해 구원을 약속하였더라도, 부모가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하지 않는다면 구원과 무관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마스 코벳(Thomas Cobbett)은 “언약 당사자인 부모가 하나님과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사랑은 그들을 올바로 교육하는 것이다. … 그들로 하여금 언약의 조건을 숙지하게 하고, 모든 언약을 충실하게 이행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부모 안에서, 부모와 더불어 언약 당사자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Cobbet 1656, 128). 피터 버클리(Peter Buckley)는, 언약의 자녀들은 “부모와 교회에 의해 두 배의 은혜가 부여됨으로” 신앙 교육으로 교육받는다면 “그들의 부모보다 더 뛰어나게” 될 수 있으나, 그들이 신앙 교육을 받지 않을 경우 “저주도 두 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신앙을 교육함으로 은혜 계약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Buckley 1651, 160-165).
코튼 매더는, “부모는 자녀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 세상에서 성공하는 데 세상 지식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 없이 우리의 자녀가 영원한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있는 경건한 교리에 대한 지식은 세상 지식보다 수백만 배나 더 필요하다. 그 지식이 없이는 우리의 자녀들은 영원히 비참한 가운데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Mather 1702, 12, 13, 34).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은혜 계약을 통한 구원의 성취를 주장하면서 이를 위한 수단으로 신앙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청교도들은 신앙 교육의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보았다. 존 코튼은 “유아들은 백지와 같은 상태라서 쉽게 영향을 받는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신앙 안에서 효과적으로 양육하기 위해서는 “청년이나 노인이 되기 전에 신앙 훈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고(Cotton 1659, 92), 사무엘 윌라드(Samuel Willard)는 영혼을 죽이기 위한 사탄의 공격이 유아기 때부터 시작한다고 주장하면서 “유아를 규제하려면 지체하지 말라. 그들이 한 마디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때 신앙으로 교훈하라”고 설교함으로(Willard 1673, 38) 조기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청교도들은 신앙 교육이 속성으로 되지 않고 조금씩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자녀들은 어릴 때(우리의 경건 교육이 시작되어야 할 때)에는 조금씩 부어지는 것만 담을 수 있는 좁은 병과 같기” 때문이다(Buckley 1651, 162). 부모는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성경을 가르치고, 조금씩 끈기 있게 신앙을 생활에 실천하도록 함으로 성공적인 신앙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자녀들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면 성경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조금씩 증거함으로 자녀들이 신앙을 갖게 하고,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도록 하였다.
은혜의 체험은 수행이나 세상적인 지식의 축적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때에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회심 체험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요 3:3; 벧전 1:23). 청교도들은 할 수만 있으면 자녀들이 구원의 주된 수단인 하나님의 말씀에 접하도록 하였다. 자녀에게 글을 가르치면서도 단순히 문자를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았고 성경을 읽음으로 구원에 대한 교리를 깨닫고 말씀 가운데 자라도록 하려고 하였다.
청교도 지도자 존 코튼은 설교하면서 맹목적으로 자녀들에게 “글을 가르치라”하지 않고,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글을 가르치라”고 하였고(Cotton 1659, 102), 벤자민 워즈워스도 젊은이들에게, “만일 글을 읽을 수 없다면, 배움을 위해 모든 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하며, 모든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읽을 수 있다면, (어떤 특수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말씀의 한 부분을 읽지 않고는 하루가 지나가지 않게 하여야 한다”(Wadsworth 1702, 51)고 훈계하였다. 이와 같이 청교도들에게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녀들이 성경을 통해 구원을 체험하는데 있었다.
청교도들은 자녀에 대한 신앙 교육은 부모의 의무이며, 이를 게을리 할 경우에는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것으로 확신하였다. 앤 어빙톤(Anne Ervington)은 “자녀를 신앙으로 교육하지 않을 때 자녀들이 부모를 저주할 날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였고(Pope 1974, 7), 아더 힐더샴(Arthur Hildersham)은 “만일 하나님이 보살피도록 맡겨주신 자녀의 영혼이 부모의 과오로 인해 멸망하게 된다면 부모의 영혼도 죽게 될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도록 소명을 받은 자가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 내리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하였다(Hildersham, 1993, 109).
리처드 매더(Richard Mather)의 경고는 우리에게 더 큰 경각심을 깨우쳐 준다. 그는 설교를 통해 신앙교육을 게을리 할 때 자녀들이 지옥의 고통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부르짖을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여기서 받는 이 모든 고통은 모두 당신들로 인해서 온 것입니다. 당신들은 내게 하나님에 대한 것을 알려 주어야만 하였지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은 우리를 죄로부터 멀리하게 하고 바로 잡아야할 책임이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부패와 죄책이 당신들로부터 전가되어 왔지만, 당신들은 우리가 그것들로부터 벗어나야 된다는 어떤 경고도 주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의 무관심으로 우리는 죄 가운데 계속하여 살아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죄 때문에 저주 아래 있습니다. 화로다 우리여! 육신적이고 생각이 모자란 부모를 두었었구나! 자신의 영원한 비참함을 막기 위해서 자녀에게 연민과 동정을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화가 있을찌로다”(Mather 1657, 10, 11).
이러한 저주스런 장면을 피하기 위해서, 청교도들은 앉았을 때나 서 있을 때, 길을 걸을 때나 멈추어 있을 때, 옷을 입을 때나 벗을 때, 아침이나 저녁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을 수시로 교육하여야 했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가정 예배 시간을 통하여 정기적으로 신앙 교육을 실시하였고, 주일 예배가 끝나면 집에 와서 자녀들과 함께 주일 설교에 대하여 토론한 후 그것을 생활에 적용하도록 하였고, 매주일에 한번 이상 모든 식구들이 함께 모여 요리문답을 배웠다.
요리 문답 공부는 루터와 칼빈 이후 기독교 교육의 한 방편으로 크게 활용되었는데, 영국에서는 교구 목사와 교사들이 교인을 신앙으로 양육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고, 뉴잉글랜드에서는 가장이 일 주일에 한번 이상 가족들에게 요리 문답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청교도들은 요리 문답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법으로 모든 가정에서 교리문답을 교육할 것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많은 요리문답서를 작성하여 사용하였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존 코튼의 ꡔ어린이를 위한 영적인 우유ꡕ(Spiritual Milk for Babes)였다.
코튼의 요리문답서는 간단하면서도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내포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설명한 후, 인간의 죄성을 지적하였고, 십계명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나타나야 할 것인지를 보여 주었다. 인간의 무능력과 부패에 대하여 다룬 후,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적용, 믿음, 기도, 중생, 성도의 교제, 교회, 은혜 계약, 세례와 성찬 등을 칼빈주의 신학에 기초하여 설명함으로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교육할 수 있게 하였다(Emerson 1965, 125-131).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이러한 코튼의 요리 문답을 통해 어린 자녀들을 신앙으로 지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생활하게 함으로 가정의 경건을 이루고자 하였다.
청교도들은 자녀들을 신앙 가운데서 양육하기 위해 매를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존 노턴은 “교리와 모범만으로는 부족하다. 징계야말로 여호와의 훈계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말하면서 징계의 필요성을 주장하였고, 코튼 매더는 성도들에게 “아이들을 저주 아래 있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매를 대라”고 가르쳤다(Mather 1695, 28). 나다니엘 굳킨(Nathaniel Goodkin)은 자녀들이 “잘못될 때 훈계하고 책망하며, 감정에 따라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 징벌하라. 지나치게 정욕에 빠져 있을 때에 책망하고 훈계하되, 노한 감정으로는 매질하지 말라”고 설교하였다(Goodkin 1687, 48).
‘인디언의 사도’ 존 엘리엇(John Eliot)도 “어머니의 부드러운 매는 뼈나 살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매질을 축복하시고, 지혜를 더해 주셔서, 심령의 부패를 초래하는 굳은 옹이를 부순다”(Elliot 1678, 29)고 하면서, 징계를 통한 신앙 교육의 효과를 높일 것을 주장하였다.
청교도들이 매의 사용을 제안한 것은 인격적인 설득과 사랑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코튼 매더는 자녀를 “미친 듯이 책망하지 마시오. 감정적으로는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지만, 정욕에서 떠날 때 더 나은 결과가 온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 지옥 불에서 나오는 것처럼 격분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책망하고, 책망하는 이유를 밝히시오. 성경에 기초하여 책망하시오. … 성경에 기초한 책망은 일상적인 위엄이나 권위보다 더 큰 효과를 가져옵니다”라고 하였다(Carden 1990, 177). 사랑의 동기가 아닌 징계, 곧 과격한 체벌은 징계가 아니라 폭력이라고 보아 엄격히 규제되었다. 매는 아이의 감정이나 육체를 상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는 데 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가정에서 시간이 나는 대로 성경을 가르치고, 신앙으로 교육함으로 그들의 자녀를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였다.
2. 학교 교육
청교도들은 무지를 성도에 대한 사탄의 가장 큰 공격 수단이라고 보았다. 사탄은 할 수 있는 대로 사람들을 성경 지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게 만들어서 무지와 미신으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게 함으로 적그리스도의 왕국을 확장시킨다. 이러한 사탄의 공략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고 무지로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교육이다.
그래서 1580년 영국 에섹스의 데댐(Dedham)에 있는 노회는 모든 젊은이에게 영어를 가르칠 것을 결의하였고(Morgan 1986, 163), 1642년 매사추세츠 주 정부는 “자녀들이 기독교 신앙의 근본 교리들과 이 나라의 중요한 법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모든 가장은 그에게 속한 자녀들에게 글을 가르쳐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매사추세츠 정부는 1647년 50 가정이 있는 동네에는 초등 학교(Reading School)를 세우고, 100 가정이 넘는 마을에는 중등학교(Grammar School)를 세우도록 하는 등 교육 계획을 구체화하였다. 그리고 1648년에는 가장의 교육적 의무를 강화하여, 가장은 매주 한 번 이상 자녀와 종들에게 요리 문답을 통해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가르칠 것을 법으로 정하기도 하였다(Hall 1989, 34).
뉴잉글랜드 청교도의 학교 교육의 주된 목적은 학생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데 있었다. 뉴잉글랜드 초기의 교육 제도는 초등 학교, 중등학교와 대학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자녀들을 신앙 안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었다. 초등 학교가 세워지기 전에는 가정에서 문자 교육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 가장은 글자판(Hornbook)을 이용하여 알파벳, 자음과 모음의 배합, 주기도문 등을 자녀들에게 가르쳤다. 문맹자 자녀들의 교육을 돕기 위해 유식한 부녀들이 “여인 학교”(Dame School)를 세워서 아이들에게 읽고 쓰는 것을 가르쳤다.
164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초등 학교가 세워지면서, 뉴잉글랜드 어린이들은 일곱이나 여덟 살에 초등 학교에 들어가서(17세기 후반에는 여자아이들도 입학이 허락되었다) 글자판이나 철자 책(Speller)을 가지고 읽는 것을 배운 후, 요리 문답과 ꡔ뉴잉글랜드 입문서ꡕ(New England Primer)를 통해 신앙인으로 양육 받았다.
ꡔ뉴잉글랜드 입문서ꡕ는 “미국 교육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이며 영향력 있던 교재”로, 미국인의 신앙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690년 이후 미국의 초등 학교에서 100년 이상 교재로 사용되었으며, 1790년부터 19세기말까지는 참고 교재로 사용되었고, 어린아이들을 위한 아침과 저녁에 할 수 있는 기도문 등 신앙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뉴잉글랜드의 작은 성경책”(Little Bible of New England)이라고 불렸다. 청교도들은 ꡔ입문서ꡕ를 통해서 의미 없는 문자를 배우지 않았고 성경의 말씀을 배웠다.
그들은 알파벳을 배우면서 성경을 배웠는데, 곧 A를 통해 “아담의 타락 안에서 우리는 모두 죄를 범하였다”(In Adams fall, we sinned all)라는 인간의 전적 타락 사상을 배웠고, B를 배우면서 바벨탑 이야기를, C를 배우면서 가인의 시기가 몰고 온 결과를 깨달았고, D를 배우면서 다윗의 용기에 대하여 배웠다.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인 Z를 교육하면서도 “삭개오는 그의 주님이 보시도록 나무에 올라갔다”(Zaccheus he did climb a tree his Lord to see)는 성경 말씀을 가르쳤다. 또한 ꡔ입문서ꡕ에는 주기도, 사도 신경, 소요리 문답과 같은 기독교의 기초적인 교리를 포함하고 있어서 청교도 자녀들은 이를 통해 철저하게 신앙으로 무장되었고, 이러한 신앙 훈련을 거친 후 중등학교에 진학하였다.
1647년 교육 법령 선포 이전에 뉴잉글랜드에는 9개 이상의 중등학교가 존재하였는데, 중등학교의 교육 내용도 주로 성경을 배우고 기독교적 가치관을 심는 것들이었다. 중등 학교의 교실은 가로가 6미터에 세로가 그보다 약간 좁았고, 높이는 1.8미터 정도였다. 창문이 거의 없었으며, 책상을 벽에 붙여 놓아야 했고, 겨울에는 큰 난로 하나로 난방하곤 하는 등 열악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교사들의 대부분이 대학 졸업 후 목회할 사역지를 찾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을 신앙으로 훈련하기에는 아주 적합하였다.
문법학교에서 청교도 자녀들은 성경과 함께 라틴어, 헬라어(어떤 학교에서는 히브리어)를 익혔고, 기독교의 고전 연구를 통해 기독교적 세계관을 정립했다(Bremer 1976, 182). 뉴헤이븐의 합킨스 중등학교(Hopkins Grammar School)의 경우, 교사들은 매일 오전 6시에서 11시, 오후에는 여름의 경우 오후 1시에서 5시까지, 겨울에는 4시까지 수업을 지도하였다. 수업 시작 전에 교사들이 짧게 기도한 후, 학습 수준에 따라 분반하여 수업하였다. 월요일마다 주일에 들은 설교에 대하여 되묻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 설명함으로 학생들의 신앙 성장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고, 매주 토요일 오후 1시에서 3시까지 교리 문답으로 실시함으로 신앙 교육을 강화하였다(Bremer 1976, 182).
중등학교 졸업자 가운데 경제 형편이 나은 경우 대학에 진학하여 기독교 지도자로 훈련을 받았다. 1636년 설립된 하버드 대학(Harvard College)은 헨리 던스터(Henry Dunster)가 학장으로 재직하던 시기(1640-1654)에 대학으로서의 기초를 놓았다. 교과과정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과 유사하였는데, 특히 논리, 수사, 윤리, 물리, 헬라어, 라틴어, 자연 과학 등을 가르치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있는 임마누엘 대학의 교과 과정을 채택하였고, 이에다가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첨가하여 교수하였다. 교육은 교수가 강의를 하면서 교재를 읽거나 학생들 사이에 토론을 통해 이루어졌다. 학교 법을 어기면 유급 되었고, 모든 학생은 기숙사에서 공동 생활을 하면서 공동체에 적응하는 훈련을 받았는데 학교 수업은 종교 훈련과 성경 연구가 주된 내용이었다.
아서 노턴(Arthur O. Norton)의 글에 보면, 하버드 대학의 교과 과정은 “(1) 경건의 실천; (2) 성경 연구와 분석; (3) 신학과 기독교의 원리; (4) 원어로 성경을 읽는데 필요한 언어의 숙달; (5) 보조적인 연구 - 문학, 철학, 역사와 정치학 - 학생에 의한 성경 해석을 교정하는 데 필요한 것들; (6) 효과적인 해석과 자신의 해석을 옹호하는데 필요한 연구와 훈련 - 수사, 연설, 토론, 설교의 반복 등”이었다(Norton 1930-1933, 28:367-68). 이러한 신앙 훈련을 통하여 졸업생의 반 수 이상이 목회자가 되었고, 나머지는 사회의 지도자로 나서 경건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3. 가정 예배
가정 예배는 청교도에게 있어 가정을 경건하게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었다. 영국에서 교회 개혁이 불가능해지자, 청교도들은 교회의 기초가 되는 가정을 개혁함으로 사회 개혁을 성취하기 위해 가정 예배를 드릴 것을 주장하였다.
윌리엄 퍼킨스는 가정을 교회의 한 단위로 간주하면서 가족원들이 신앙 안에서 생활하며 가정 안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소원하면서 하루에 2번 이상 가정 예배를 드릴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가정에서 성도들이 이행해야 할 두 가지 의무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요, 다른 하나는 가정 자체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의무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예배하며 섬기는 것인데, 모든 가정에서 정착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가정 예배의 생활화를 주장하였다(Perkins 1631, 3:699).
루이스 베일리(Lewis Bayly)도 가정 예배를 가정의 경건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가정의 가장들에게 권하기를 가장은 “매일 아침 모든 가족을 함께 모이기 편한 방에 불러모아,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한 장을 읽거나 다른 사람이 읽도록 하여야 한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권하여야 하고, 그들과 함께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Bayly 1842, 145). 이와 같은 교훈에 따라 청교도들은 가정 예배를 중시하였고, 청교도 가정은 점차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개혁되면서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교회화” 되어 갔다(Lovelace 1979, 128).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퍼킨스의 가르침에 따라 아침과 저녁으로 가정 예배를 드렸다. 아침 예배는 주로 아침 식사하기 전에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드려졌는데, 죄에 대한 고백과 사죄를 위한 간구로 시작하였고,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감사가 있은 뒤, 주기도로 마쳤다(Hambrick-Stowe 1982, 145). 저녁 예배는 잠자기 전에 드려졌는데, 하루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었고, 성경 봉독, 시편 찬송, 기도로 이어졌다. 특히 저녁 예배를 통해 하루를 마감한 뒤에는 각자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서 하루 동안 살아 온 것을 돌아봄으로 자기 성찰을 하였고, 매일 철저히 회개하며 죄악을 멀리함으로 성화된 삶을 추구하였고, 이러한 생활을 통해 청교도 가정은 경건의 장으로 변하였다.
청교도들은 가정 예배를 통하여 가정을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는 작은 교회요, 성전으로 만들어 나아갔다. 바나디스턴(Nathaniel Barnadiston)이라는 사람은 가족과 함께 “매일 식사를 마친 뒤에 아침과 저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한 후 시편 찬송을 부르는 것을 계속함으로” 그의 가정을 “영적인 교회요, 성전으로” 만들었다(Morgan 1986, 171). 존 카터(John Carter)는 “매일 세 번씩 시편이나 다른 성경을 읽은 후 자녀들과 종들에게 그들이 읽은 말씀 가운데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물었고, 어떤 문장이든지 복습하게 하였고, 교훈과 신앙으로 양육”하곤 하였다(Morgan 1986, 170).
청교도들은 가정 예배의 실시 여부를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척도로 보았다. 리처드 백스터는 목회의 초점을 전 교인이 가정 예배를 드리는데 두었고, 심방하면서 가정 예배를 격려함으로 그의 교구를 복음화하였다. 존 코튼은 “은혜와 기도의 영을 소유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은 “가족과 함께 기도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면서 신자라고 한다면 반드시 가정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였다(Cotton 1641, 144; Mather 1979, 1:277-288). 그는 가정 예배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가족과 함께 예배하여 경건한 가정을 이루었다. 코튼의 신앙은 자손들에게 전수되었는데, 그의 외손자 코튼 매더도 매일 두 번 가정 예배를 드리면서 가정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들어 나갔다고 기록하였다(Mather 1703, 30-38).
청교도들은 이와 같이 가정 예배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언행일치의 모범을 자녀에게 보임으로 신앙 교육을 구체화 하고자 하였다. 엘리어저 매더(Eleazar Mather)는 “모범이 없는 교훈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훈계만 아니라 모범을 통하여 아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먼저 자신을 통해 본을 보이고, 말만이 아니라 생활로 교훈 해야 합니다. 신앙은 말이 아니라 삶에서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E. Mather 1671, 20).
인크리스 매더는 1680년 그의 교회 회원들과 함께 부모가 모범을 보임으로 자녀들을 신앙으로 교육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교회 계약을 맺으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가정에서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도록 노력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도하는 것과 성경을 읽는 것을 계속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풍성히 거하게 되도록 할 것을 약속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그리스도를 위해 양육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엄숙히 바쳐서 주의 이름이 그들 위에 임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필요한대로) 그들을 학습시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만을 섬기도록 교육하고, 그들 앞에 거룩한 모범이 되도록 노력하며, 그들의 회심과 구원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할 것입니다”(Morgan 1966, 140)라고 서약하였다.
또한 로저 클랩(Roger Clap)은 말년에 쓴 「비망록」(Memoir)을 통해 자녀들에게 유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네 가정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는 가족 기도를 경시하지 말라. 매일 너의 가정에서 순서에 따라 성경의 한 부분을 읽어라. 종교의 기초에 관하여 네 가족들을 교훈 하는 것을 잊지 말라. 그리고 네 스스로 거룩하게 살며, 네 자녀들과 대화함으로 본이 되라”(Hambrick-Stowe, 143).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스스로 생활로 모범을 보여서 자녀를 교육함으로 경건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청교도들은 생활 가운데서 경건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성직과 세속적인 일로 구별하던 중세의 직업관을 배척하고, 모든 직업을 신성하게 간주함으로 새로운 노동 문화를 개척하였다.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은 ꡔ악한 맘몬의 비유ꡕ(The Parable of the Wicked Mammon)에서 외적으로 보면 “접시를 닦는 일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 다르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린다는 점에서 결코 차이가 없다”고 하였고, 윌리엄 퍼킨스는 “양을 지키는 목자의 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재판관, 행정 관료, 또는 설교하는 목사의 일만큼 거룩하다”고 주장함으로 (Ryken 1986, 25) 모든 직업의 신성화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청교도들은 세상 가운데서 자신의 직업을 통해 경건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성도는 세상을 등지고 살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직업을 가지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토마스 셰퍼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러분이 세상적인 일을 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음을 쉽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일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여 일하는 것처럼 하십시오. 여러분이 모든 시간을 명상과 기도, 또는 다른 영적인 일들을 하는 것보다, 비록 사소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맡은 바 세상의 일을 함으로 하나님을 더 영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Shepard 1853, 1:308)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직업을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으로 간주하고, 이 세상에서 주어진 직업을 통해 하나님을 섬김으로 그들의 신앙을 삶의 현장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4. 맺는 말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건전한 가정을 통한 경건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중세의 독신 우위 사상에 반대하면서 결혼 제도의 우수성을 주장하였고, 부부 생활이 단순한 생육의 수단이 아니라 상호 협력하여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이루는 장소로 보았으며, 아내를 동역자요 친구로 대해 여성의 권위를 신장하였고, 이로 인해 남존여비 시대를 마감하므로 새로운 가정 문화를 창출해 내었다. 특히 가정을 영적인 요새로 만들기 위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침으로 자녀의 신앙 교육에 힘을 쏟았다. 신앙적 가치관을 최우선으로 하여 학교 교육을 실시하였고, 가정 예배를 통해 매일 자녀의 신앙을 점검하고, 바른 신앙 가운데 서게 하였으며, 그들이 믿고 있는 신앙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함으로 경건한 사회를 만들어 나아갔다.
이러한 노력으로 청교도 사회는 인류 역사상 가장 범죄율이 낮은 경건한 사회를 이루었고, 그들의 자손은 미국 역사를 만들어 낸 주역이 되었다. 조지 마덴(George Marsden)이 지적한 것처럼, 제 1차 세계 대전 이전에 미국의 정치, 문화, 경제계를 이끌어 왔던 인물 가운데 대부분이 청교도의 후손이거나 청교도적인 신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Marsden 1982, 242). 그들은 경건을 실천함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이 누리는 것보다도 많은 축복을 받았다.
팀 라헤이(Tim &Bev LaHaye)는 ꡔ성령이 지배하는 가정 생활ꡕ(Spirit Controlled Family Life)이라는 책에서, 1730년대 같은 지역에서 살았던 막스 쥬크스(Max Jukes)와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가계를 비교하였다. 1,026명이 되는 쥬크스의 후손 가운데 300명이 어려서 죽었고, 100명이 13년 정도 교도소에 생활하였으며, 190명은 창녀였고, 100명은 알코올 중독자여서 아무도 미국 사회에 공헌한 사람이 없었다. 반면에, 청교도적인 신앙을 따라 가정을 이루었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729명의 자손 가운데 300여명의 복음 전도자가 나왔고, 65명의 대학 교수, 13명의 대학 총장, 60명의 작가, 3명의 국회의원과 1명의 부통령이 나왔다(Tim and Bev LaHaye 1978, 19-20).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신앙적 가치관을 중심으로 가정을 운영함으로 경건한 가정을 이루고, 나아가서 그들의 자녀들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국 사회는 1970년대의 경제 개발과 함께 농경 사회에서 벗어나 정보화 사회로 발전하게 되면서, 정보화 사회의 특징인 물질적 가치관을 중시하게 되었다. 물질 중심의 세속주의 사상은 모든 국민의 가치관이 되었고, 심지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다는 교회까지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교육과 선교와 구제를 하기 위해서는 헌금이 필요하고, 많은 물질을 모으려면 대 교회로 성장해야 한다는 소위 교회성장주의의 영향으로 교회의 세속화 작업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물질적 가치관으로 인해 신성한 부부 관계에 틈이 생김으로 가정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IMF 이후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이혼율이 높아가고, 자녀들을 내버리는 가정 파괴 현상이 빈번하다. 한국 사회가 물질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점점 더 큰 혼란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세속주의적 도전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신앙적인 가치관을 회복하는 것이다.
곧 400여 년 전 뉴잉글랜드 황무지에서 신앙 중심적 가정 문화를 이루어 하나님의 말씀이 왕 노릇 하는 사회를 건설하려던 청교도의 신앙을 본 받음으로서 새로운 천년을 여는 21세기를 힘있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건전한 가정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이 땅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오덕교 교수
http://blog.daum.net/kkho1105/5846
청교도들에게 있어서 지상 과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데 있었다. 곧 가정, 교회와 국가와 같은 창조 질서(creation ordinance)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개혁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것이 그들이 추구하던 개혁의 목표였다. 그들은 이러한 개혁 운동이 창조 질서 가운데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의 개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확신하고, 가정을 하나님의 통치 영역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청교도들은 가정의 개혁은 자녀에 대한 교육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믿고, 자녀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쏟았다. 청교도 신학자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는 가정에서 경건을 유지하는 것이 교회개혁의 기초임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이 태초에 “가정을 세운 것은 경건한 자녀를 양육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하면서 자녀의 경건 교육에 힘쓸 것을 역설하였다(Perkins 1631, 3:67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도 가정 제도는 “경건한 자손을 통하여 교회가 번성하고, 부정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제정되었다”(24장 2절)고 지적함으로 자녀의 신앙 양육이 교회 성장과 개혁의 기초임을 밝혔다.
이러한 청교도의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은 그들의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이었고, 신대륙으로 이민한 주된 동기이기도 하였다. 하버드대학교의 학장을 역임한 바 있는 인크리스 매더(Increase Mather)는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이민하게 된 것은 다름아니라 “후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Mather 1679, 31).
1. 가정 교육
청교도들에게 가정 교육의 목적은 자녀를 선량한 시민으로 양육한다거나 이 세상에서 출세하도록 교육하는데 있지 않았다. 자녀 교육의 목적이 법을 잘 지키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도덕 군자를 양성하는 데 둔다면, 이는 하나님과 무관한 위선자를 양성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토마스 후커(Thomas Hooker)는 청교도 가정의 교육 목표가 문화인 양성이 아니라 신앙인 양육에 두어야한다고 주장했다(Hooker 1640, 213).
인크리스 매더(Increase Mather)도 자녀 교육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쏟아야 할 분야는 세상적인 출세나 성공이 아니라 신앙적인 성숙에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Mather 1684, 4-5). 보스턴 교회의 목사였던 존 노턴(John Norton)은 이 세상의 영화가 잠시 잠깐이지만 내세의 삶은 영원하다고 설교하면서 자녀 교육의 목표를 세상적인 성공에 두는 사람은 “신발에만 관심을 갖고 발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신앙 중심으로 교육할 것을 역설하였다(Norton 1658, 7).
같은 맥락에서, 코튼 매더(Cotton Mather)는 “만일 당신 자녀에 대한 관심이 단지 현세적인 부귀와 영화를 얻는 것이고, 그들을 세상적인 것으로만 채워지도록 한다면, 당신과 당신 자녀의 몫은 이 세상 뿐이요, 저 세상에서 기대할 것이 없다”고 경고하면서 신앙 교육의 우위성을 역설하였다(Mather 1721, 9).
청교도들이 교육의 목표를 사회적인 성공보다는 신앙인 양성에 둔 것은 인간의 원죄와 전적인 부패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청교도들은 칼빈주의 전통에 따라 인간이 죄 가운데 태어나며, 거듭나니 않은 자의 영혼은 전적으로 부패한 상태에 있다고 보았다.
앤 브래즈트리트(Anne Bradstreet)는 “인간은 아담의 죄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죄에 오염되어 있고, 나 역시 태어나면서 죄를 짓기 시작하였다”(Edmund 1966, 93)고 고백하였고, 벤자민 워즈워스(Benjamin Wadsworth)는 인간의 마음이 “죄와 악의 보금자리요, 뿌리요, 샘이요, 악의 보고이므로, 온갖 악한 것들, 곧 악한 생각, 살인, 간음 등의 죄악이 생겨난다. … 인간은 본성에서 진노의 자녀이며, 영원한 벌, 곧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에 던져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였다(Ibid.).
청교도들은 이러한 전적인 부패로 인해 인간 속에는 “은혜가 없고, 죄로 기울어지며, 죄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지 않고 원래의 모습으로 그냥 내버려두면 “본래의 악한 의지에 휩쓸려 버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였다(Emerson 1965, 126). 따라서 자녀들을 죄악의 굴레에서 구원하려면, 존 로빈슨(John Robinson)이 말한 것처럼, 신앙 교육을 통해 그들의 죄성을 “용인하지 말고 반드시 꺾어서 … 분쇄해야 한다”(Robinson 1628 in Creven 1973, 13)고 하였다.
청교도들이 자녀 교육에서 신앙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자녀를 은혜 계약의 씨로 이해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청교도들은 신구약의 연속성에 근거하여 아브라함과 그 자녀에게 하신 언약의 내용은 신약 시대에도 적용된다고 보고, 은혜 시대에 모든 믿는 자의 자녀는 은혜 계약 아래 있다고 하였다.
토마스 셰퍼드(Thomas Shepard)는 “구약에서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은 본질상 신약의 언약과 같다”고 주장하면서 은혜 계약의 유효성을 지적하였고(Shepard 1853, 1:29), 존 코튼(John Cotton)도 동일한 입장을 취하면서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고 은혜 계약 안에서 자녀가 자라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Cotton 1641, 91).
은혜 언약의 성격상, 모든 믿는 자의 자녀는 은혜 아래 있지만 그들의 구원은 조건적이다. 비록 하나님이 은혜 계약을 통해 구원을 약속하였더라도, 부모가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하지 않는다면 구원과 무관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마스 코벳(Thomas Cobbett)은 “언약 당사자인 부모가 하나님과 자녀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사랑은 그들을 올바로 교육하는 것이다. … 그들로 하여금 언약의 조건을 숙지하게 하고, 모든 언약을 충실하게 이행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부모 안에서, 부모와 더불어 언약 당사자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Cobbet 1656, 128). 피터 버클리(Peter Buckley)는, 언약의 자녀들은 “부모와 교회에 의해 두 배의 은혜가 부여됨으로” 신앙 교육으로 교육받는다면 “그들의 부모보다 더 뛰어나게” 될 수 있으나, 그들이 신앙 교육을 받지 않을 경우 “저주도 두 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신앙을 교육함으로 은혜 계약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Buckley 1651, 160-165).
코튼 매더는, “부모는 자녀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 세상에서 성공하는 데 세상 지식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 없이 우리의 자녀가 영원한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있는 경건한 교리에 대한 지식은 세상 지식보다 수백만 배나 더 필요하다. 그 지식이 없이는 우리의 자녀들은 영원히 비참한 가운데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Mather 1702, 12, 13, 34).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은혜 계약을 통한 구원의 성취를 주장하면서 이를 위한 수단으로 신앙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청교도들은 신앙 교육의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보았다. 존 코튼은 “유아들은 백지와 같은 상태라서 쉽게 영향을 받는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신앙 안에서 효과적으로 양육하기 위해서는 “청년이나 노인이 되기 전에 신앙 훈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고(Cotton 1659, 92), 사무엘 윌라드(Samuel Willard)는 영혼을 죽이기 위한 사탄의 공격이 유아기 때부터 시작한다고 주장하면서 “유아를 규제하려면 지체하지 말라. 그들이 한 마디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때 신앙으로 교훈하라”고 설교함으로(Willard 1673, 38) 조기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청교도들은 신앙 교육이 속성으로 되지 않고 조금씩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자녀들은 어릴 때(우리의 경건 교육이 시작되어야 할 때)에는 조금씩 부어지는 것만 담을 수 있는 좁은 병과 같기” 때문이다(Buckley 1651, 162). 부모는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성경을 가르치고, 조금씩 끈기 있게 신앙을 생활에 실천하도록 함으로 성공적인 신앙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자녀들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면 성경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 구원에 대하여 조금씩 증거함으로 자녀들이 신앙을 갖게 하고,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도록 하였다.
은혜의 체험은 수행이나 세상적인 지식의 축적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때에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회심 체험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요 3:3; 벧전 1:23). 청교도들은 할 수만 있으면 자녀들이 구원의 주된 수단인 하나님의 말씀에 접하도록 하였다. 자녀에게 글을 가르치면서도 단순히 문자를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았고 성경을 읽음으로 구원에 대한 교리를 깨닫고 말씀 가운데 자라도록 하려고 하였다.
청교도 지도자 존 코튼은 설교하면서 맹목적으로 자녀들에게 “글을 가르치라”하지 않고,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글을 가르치라”고 하였고(Cotton 1659, 102), 벤자민 워즈워스도 젊은이들에게, “만일 글을 읽을 수 없다면, 배움을 위해 모든 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하며, 모든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읽을 수 있다면, (어떤 특수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말씀의 한 부분을 읽지 않고는 하루가 지나가지 않게 하여야 한다”(Wadsworth 1702, 51)고 훈계하였다. 이와 같이 청교도들에게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녀들이 성경을 통해 구원을 체험하는데 있었다.
청교도들은 자녀에 대한 신앙 교육은 부모의 의무이며, 이를 게을리 할 경우에는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것으로 확신하였다. 앤 어빙톤(Anne Ervington)은 “자녀를 신앙으로 교육하지 않을 때 자녀들이 부모를 저주할 날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였고(Pope 1974, 7), 아더 힐더샴(Arthur Hildersham)은 “만일 하나님이 보살피도록 맡겨주신 자녀의 영혼이 부모의 과오로 인해 멸망하게 된다면 부모의 영혼도 죽게 될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도록 소명을 받은 자가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 내리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하였다(Hildersham, 1993, 109).
리처드 매더(Richard Mather)의 경고는 우리에게 더 큰 경각심을 깨우쳐 준다. 그는 설교를 통해 신앙교육을 게을리 할 때 자녀들이 지옥의 고통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부르짖을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여기서 받는 이 모든 고통은 모두 당신들로 인해서 온 것입니다. 당신들은 내게 하나님에 대한 것을 알려 주어야만 하였지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은 우리를 죄로부터 멀리하게 하고 바로 잡아야할 책임이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부패와 죄책이 당신들로부터 전가되어 왔지만, 당신들은 우리가 그것들로부터 벗어나야 된다는 어떤 경고도 주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의 무관심으로 우리는 죄 가운데 계속하여 살아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죄 때문에 저주 아래 있습니다. 화로다 우리여! 육신적이고 생각이 모자란 부모를 두었었구나! 자신의 영원한 비참함을 막기 위해서 자녀에게 연민과 동정을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화가 있을찌로다”(Mather 1657, 10, 11).
이러한 저주스런 장면을 피하기 위해서, 청교도들은 앉았을 때나 서 있을 때, 길을 걸을 때나 멈추어 있을 때, 옷을 입을 때나 벗을 때, 아침이나 저녁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을 수시로 교육하여야 했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가정 예배 시간을 통하여 정기적으로 신앙 교육을 실시하였고, 주일 예배가 끝나면 집에 와서 자녀들과 함께 주일 설교에 대하여 토론한 후 그것을 생활에 적용하도록 하였고, 매주일에 한번 이상 모든 식구들이 함께 모여 요리문답을 배웠다.
요리 문답 공부는 루터와 칼빈 이후 기독교 교육의 한 방편으로 크게 활용되었는데, 영국에서는 교구 목사와 교사들이 교인을 신앙으로 양육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고, 뉴잉글랜드에서는 가장이 일 주일에 한번 이상 가족들에게 요리 문답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청교도들은 요리 문답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법으로 모든 가정에서 교리문답을 교육할 것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많은 요리문답서를 작성하여 사용하였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존 코튼의 ꡔ어린이를 위한 영적인 우유ꡕ(Spiritual Milk for Babes)였다.
코튼의 요리문답서는 간단하면서도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내포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설명한 후, 인간의 죄성을 지적하였고, 십계명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나타나야 할 것인지를 보여 주었다. 인간의 무능력과 부패에 대하여 다룬 후,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적용, 믿음, 기도, 중생, 성도의 교제, 교회, 은혜 계약, 세례와 성찬 등을 칼빈주의 신학에 기초하여 설명함으로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교육할 수 있게 하였다(Emerson 1965, 125-131).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이러한 코튼의 요리 문답을 통해 어린 자녀들을 신앙으로 지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생활하게 함으로 가정의 경건을 이루고자 하였다.
청교도들은 자녀들을 신앙 가운데서 양육하기 위해 매를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존 노턴은 “교리와 모범만으로는 부족하다. 징계야말로 여호와의 훈계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말하면서 징계의 필요성을 주장하였고, 코튼 매더는 성도들에게 “아이들을 저주 아래 있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매를 대라”고 가르쳤다(Mather 1695, 28). 나다니엘 굳킨(Nathaniel Goodkin)은 자녀들이 “잘못될 때 훈계하고 책망하며, 감정에 따라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 징벌하라. 지나치게 정욕에 빠져 있을 때에 책망하고 훈계하되, 노한 감정으로는 매질하지 말라”고 설교하였다(Goodkin 1687, 48).
‘인디언의 사도’ 존 엘리엇(John Eliot)도 “어머니의 부드러운 매는 뼈나 살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매질을 축복하시고, 지혜를 더해 주셔서, 심령의 부패를 초래하는 굳은 옹이를 부순다”(Elliot 1678, 29)고 하면서, 징계를 통한 신앙 교육의 효과를 높일 것을 주장하였다.
청교도들이 매의 사용을 제안한 것은 인격적인 설득과 사랑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코튼 매더는 자녀를 “미친 듯이 책망하지 마시오. 감정적으로는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지만, 정욕에서 떠날 때 더 나은 결과가 온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 지옥 불에서 나오는 것처럼 격분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책망하고, 책망하는 이유를 밝히시오. 성경에 기초하여 책망하시오. … 성경에 기초한 책망은 일상적인 위엄이나 권위보다 더 큰 효과를 가져옵니다”라고 하였다(Carden 1990, 177). 사랑의 동기가 아닌 징계, 곧 과격한 체벌은 징계가 아니라 폭력이라고 보아 엄격히 규제되었다. 매는 아이의 감정이나 육체를 상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는 데 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가정에서 시간이 나는 대로 성경을 가르치고, 신앙으로 교육함으로 그들의 자녀를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였다.
2. 학교 교육
청교도들은 무지를 성도에 대한 사탄의 가장 큰 공격 수단이라고 보았다. 사탄은 할 수 있는 대로 사람들을 성경 지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게 만들어서 무지와 미신으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게 함으로 적그리스도의 왕국을 확장시킨다. 이러한 사탄의 공략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고 무지로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교육이다.
그래서 1580년 영국 에섹스의 데댐(Dedham)에 있는 노회는 모든 젊은이에게 영어를 가르칠 것을 결의하였고(Morgan 1986, 163), 1642년 매사추세츠 주 정부는 “자녀들이 기독교 신앙의 근본 교리들과 이 나라의 중요한 법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모든 가장은 그에게 속한 자녀들에게 글을 가르쳐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매사추세츠 정부는 1647년 50 가정이 있는 동네에는 초등 학교(Reading School)를 세우고, 100 가정이 넘는 마을에는 중등학교(Grammar School)를 세우도록 하는 등 교육 계획을 구체화하였다. 그리고 1648년에는 가장의 교육적 의무를 강화하여, 가장은 매주 한 번 이상 자녀와 종들에게 요리 문답을 통해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가르칠 것을 법으로 정하기도 하였다(Hall 1989, 34).
뉴잉글랜드 청교도의 학교 교육의 주된 목적은 학생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데 있었다. 뉴잉글랜드 초기의 교육 제도는 초등 학교, 중등학교와 대학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자녀들을 신앙 안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었다. 초등 학교가 세워지기 전에는 가정에서 문자 교육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 가장은 글자판(Hornbook)을 이용하여 알파벳, 자음과 모음의 배합, 주기도문 등을 자녀들에게 가르쳤다. 문맹자 자녀들의 교육을 돕기 위해 유식한 부녀들이 “여인 학교”(Dame School)를 세워서 아이들에게 읽고 쓰는 것을 가르쳤다.
164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초등 학교가 세워지면서, 뉴잉글랜드 어린이들은 일곱이나 여덟 살에 초등 학교에 들어가서(17세기 후반에는 여자아이들도 입학이 허락되었다) 글자판이나 철자 책(Speller)을 가지고 읽는 것을 배운 후, 요리 문답과 ꡔ뉴잉글랜드 입문서ꡕ(New England Primer)를 통해 신앙인으로 양육 받았다.
ꡔ뉴잉글랜드 입문서ꡕ는 “미국 교육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이며 영향력 있던 교재”로, 미국인의 신앙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690년 이후 미국의 초등 학교에서 100년 이상 교재로 사용되었으며, 1790년부터 19세기말까지는 참고 교재로 사용되었고, 어린아이들을 위한 아침과 저녁에 할 수 있는 기도문 등 신앙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뉴잉글랜드의 작은 성경책”(Little Bible of New England)이라고 불렸다. 청교도들은 ꡔ입문서ꡕ를 통해서 의미 없는 문자를 배우지 않았고 성경의 말씀을 배웠다.
그들은 알파벳을 배우면서 성경을 배웠는데, 곧 A를 통해 “아담의 타락 안에서 우리는 모두 죄를 범하였다”(In Adams fall, we sinned all)라는 인간의 전적 타락 사상을 배웠고, B를 배우면서 바벨탑 이야기를, C를 배우면서 가인의 시기가 몰고 온 결과를 깨달았고, D를 배우면서 다윗의 용기에 대하여 배웠다.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인 Z를 교육하면서도 “삭개오는 그의 주님이 보시도록 나무에 올라갔다”(Zaccheus he did climb a tree his Lord to see)는 성경 말씀을 가르쳤다. 또한 ꡔ입문서ꡕ에는 주기도, 사도 신경, 소요리 문답과 같은 기독교의 기초적인 교리를 포함하고 있어서 청교도 자녀들은 이를 통해 철저하게 신앙으로 무장되었고, 이러한 신앙 훈련을 거친 후 중등학교에 진학하였다.
1647년 교육 법령 선포 이전에 뉴잉글랜드에는 9개 이상의 중등학교가 존재하였는데, 중등학교의 교육 내용도 주로 성경을 배우고 기독교적 가치관을 심는 것들이었다. 중등 학교의 교실은 가로가 6미터에 세로가 그보다 약간 좁았고, 높이는 1.8미터 정도였다. 창문이 거의 없었으며, 책상을 벽에 붙여 놓아야 했고, 겨울에는 큰 난로 하나로 난방하곤 하는 등 열악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교사들의 대부분이 대학 졸업 후 목회할 사역지를 찾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을 신앙으로 훈련하기에는 아주 적합하였다.
문법학교에서 청교도 자녀들은 성경과 함께 라틴어, 헬라어(어떤 학교에서는 히브리어)를 익혔고, 기독교의 고전 연구를 통해 기독교적 세계관을 정립했다(Bremer 1976, 182). 뉴헤이븐의 합킨스 중등학교(Hopkins Grammar School)의 경우, 교사들은 매일 오전 6시에서 11시, 오후에는 여름의 경우 오후 1시에서 5시까지, 겨울에는 4시까지 수업을 지도하였다. 수업 시작 전에 교사들이 짧게 기도한 후, 학습 수준에 따라 분반하여 수업하였다. 월요일마다 주일에 들은 설교에 대하여 되묻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 설명함으로 학생들의 신앙 성장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고, 매주 토요일 오후 1시에서 3시까지 교리 문답으로 실시함으로 신앙 교육을 강화하였다(Bremer 1976, 182).
중등학교 졸업자 가운데 경제 형편이 나은 경우 대학에 진학하여 기독교 지도자로 훈련을 받았다. 1636년 설립된 하버드 대학(Harvard College)은 헨리 던스터(Henry Dunster)가 학장으로 재직하던 시기(1640-1654)에 대학으로서의 기초를 놓았다. 교과과정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과 유사하였는데, 특히 논리, 수사, 윤리, 물리, 헬라어, 라틴어, 자연 과학 등을 가르치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있는 임마누엘 대학의 교과 과정을 채택하였고, 이에다가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첨가하여 교수하였다. 교육은 교수가 강의를 하면서 교재를 읽거나 학생들 사이에 토론을 통해 이루어졌다. 학교 법을 어기면 유급 되었고, 모든 학생은 기숙사에서 공동 생활을 하면서 공동체에 적응하는 훈련을 받았는데 학교 수업은 종교 훈련과 성경 연구가 주된 내용이었다.
아서 노턴(Arthur O. Norton)의 글에 보면, 하버드 대학의 교과 과정은 “(1) 경건의 실천; (2) 성경 연구와 분석; (3) 신학과 기독교의 원리; (4) 원어로 성경을 읽는데 필요한 언어의 숙달; (5) 보조적인 연구 - 문학, 철학, 역사와 정치학 - 학생에 의한 성경 해석을 교정하는 데 필요한 것들; (6) 효과적인 해석과 자신의 해석을 옹호하는데 필요한 연구와 훈련 - 수사, 연설, 토론, 설교의 반복 등”이었다(Norton 1930-1933, 28:367-68). 이러한 신앙 훈련을 통하여 졸업생의 반 수 이상이 목회자가 되었고, 나머지는 사회의 지도자로 나서 경건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3. 가정 예배
가정 예배는 청교도에게 있어 가정을 경건하게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었다. 영국에서 교회 개혁이 불가능해지자, 청교도들은 교회의 기초가 되는 가정을 개혁함으로 사회 개혁을 성취하기 위해 가정 예배를 드릴 것을 주장하였다.
윌리엄 퍼킨스는 가정을 교회의 한 단위로 간주하면서 가족원들이 신앙 안에서 생활하며 가정 안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소원하면서 하루에 2번 이상 가정 예배를 드릴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가정에서 성도들이 이행해야 할 두 가지 의무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요, 다른 하나는 가정 자체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의무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예배하며 섬기는 것인데, 모든 가정에서 정착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가정 예배의 생활화를 주장하였다(Perkins 1631, 3:699).
루이스 베일리(Lewis Bayly)도 가정 예배를 가정의 경건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가정의 가장들에게 권하기를 가장은 “매일 아침 모든 가족을 함께 모이기 편한 방에 불러모아,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한 장을 읽거나 다른 사람이 읽도록 하여야 한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권하여야 하고, 그들과 함께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Bayly 1842, 145). 이와 같은 교훈에 따라 청교도들은 가정 예배를 중시하였고, 청교도 가정은 점차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개혁되면서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교회화” 되어 갔다(Lovelace 1979, 128).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퍼킨스의 가르침에 따라 아침과 저녁으로 가정 예배를 드렸다. 아침 예배는 주로 아침 식사하기 전에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드려졌는데, 죄에 대한 고백과 사죄를 위한 간구로 시작하였고,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감사가 있은 뒤, 주기도로 마쳤다(Hambrick-Stowe 1982, 145). 저녁 예배는 잠자기 전에 드려졌는데, 하루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었고, 성경 봉독, 시편 찬송, 기도로 이어졌다. 특히 저녁 예배를 통해 하루를 마감한 뒤에는 각자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서 하루 동안 살아 온 것을 돌아봄으로 자기 성찰을 하였고, 매일 철저히 회개하며 죄악을 멀리함으로 성화된 삶을 추구하였고, 이러한 생활을 통해 청교도 가정은 경건의 장으로 변하였다.
청교도들은 가정 예배를 통하여 가정을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는 작은 교회요, 성전으로 만들어 나아갔다. 바나디스턴(Nathaniel Barnadiston)이라는 사람은 가족과 함께 “매일 식사를 마친 뒤에 아침과 저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한 후 시편 찬송을 부르는 것을 계속함으로” 그의 가정을 “영적인 교회요, 성전으로” 만들었다(Morgan 1986, 171). 존 카터(John Carter)는 “매일 세 번씩 시편이나 다른 성경을 읽은 후 자녀들과 종들에게 그들이 읽은 말씀 가운데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물었고, 어떤 문장이든지 복습하게 하였고, 교훈과 신앙으로 양육”하곤 하였다(Morgan 1986, 170).
청교도들은 가정 예배의 실시 여부를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척도로 보았다. 리처드 백스터는 목회의 초점을 전 교인이 가정 예배를 드리는데 두었고, 심방하면서 가정 예배를 격려함으로 그의 교구를 복음화하였다. 존 코튼은 “은혜와 기도의 영을 소유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은 “가족과 함께 기도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면서 신자라고 한다면 반드시 가정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였다(Cotton 1641, 144; Mather 1979, 1:277-288). 그는 가정 예배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가족과 함께 예배하여 경건한 가정을 이루었다. 코튼의 신앙은 자손들에게 전수되었는데, 그의 외손자 코튼 매더도 매일 두 번 가정 예배를 드리면서 가정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들어 나갔다고 기록하였다(Mather 1703, 30-38).
청교도들은 이와 같이 가정 예배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언행일치의 모범을 자녀에게 보임으로 신앙 교육을 구체화 하고자 하였다. 엘리어저 매더(Eleazar Mather)는 “모범이 없는 교훈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훈계만 아니라 모범을 통하여 아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먼저 자신을 통해 본을 보이고, 말만이 아니라 생활로 교훈 해야 합니다. 신앙은 말이 아니라 삶에서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E. Mather 1671, 20).
인크리스 매더는 1680년 그의 교회 회원들과 함께 부모가 모범을 보임으로 자녀들을 신앙으로 교육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교회 계약을 맺으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가정에서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도록 노력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도하는 것과 성경을 읽는 것을 계속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풍성히 거하게 되도록 할 것을 약속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그리스도를 위해 양육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엄숙히 바쳐서 주의 이름이 그들 위에 임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필요한대로) 그들을 학습시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만을 섬기도록 교육하고, 그들 앞에 거룩한 모범이 되도록 노력하며, 그들의 회심과 구원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할 것입니다”(Morgan 1966, 140)라고 서약하였다.
또한 로저 클랩(Roger Clap)은 말년에 쓴 「비망록」(Memoir)을 통해 자녀들에게 유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네 가정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는 가족 기도를 경시하지 말라. 매일 너의 가정에서 순서에 따라 성경의 한 부분을 읽어라. 종교의 기초에 관하여 네 가족들을 교훈 하는 것을 잊지 말라. 그리고 네 스스로 거룩하게 살며, 네 자녀들과 대화함으로 본이 되라”(Hambrick-Stowe, 143).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스스로 생활로 모범을 보여서 자녀를 교육함으로 경건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청교도들은 생활 가운데서 경건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성직과 세속적인 일로 구별하던 중세의 직업관을 배척하고, 모든 직업을 신성하게 간주함으로 새로운 노동 문화를 개척하였다.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은 ꡔ악한 맘몬의 비유ꡕ(The Parable of the Wicked Mammon)에서 외적으로 보면 “접시를 닦는 일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 다르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린다는 점에서 결코 차이가 없다”고 하였고, 윌리엄 퍼킨스는 “양을 지키는 목자의 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재판관, 행정 관료, 또는 설교하는 목사의 일만큼 거룩하다”고 주장함으로 (Ryken 1986, 25) 모든 직업의 신성화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청교도들은 세상 가운데서 자신의 직업을 통해 경건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성도는 세상을 등지고 살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직업을 가지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토마스 셰퍼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러분이 세상적인 일을 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음을 쉽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일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여 일하는 것처럼 하십시오. 여러분이 모든 시간을 명상과 기도, 또는 다른 영적인 일들을 하는 것보다, 비록 사소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맡은 바 세상의 일을 함으로 하나님을 더 영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Shepard 1853, 1:308)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직업을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으로 간주하고, 이 세상에서 주어진 직업을 통해 하나님을 섬김으로 그들의 신앙을 삶의 현장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4. 맺는 말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건전한 가정을 통한 경건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중세의 독신 우위 사상에 반대하면서 결혼 제도의 우수성을 주장하였고, 부부 생활이 단순한 생육의 수단이 아니라 상호 협력하여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이루는 장소로 보았으며, 아내를 동역자요 친구로 대해 여성의 권위를 신장하였고, 이로 인해 남존여비 시대를 마감하므로 새로운 가정 문화를 창출해 내었다. 특히 가정을 영적인 요새로 만들기 위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침으로 자녀의 신앙 교육에 힘을 쏟았다. 신앙적 가치관을 최우선으로 하여 학교 교육을 실시하였고, 가정 예배를 통해 매일 자녀의 신앙을 점검하고, 바른 신앙 가운데 서게 하였으며, 그들이 믿고 있는 신앙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함으로 경건한 사회를 만들어 나아갔다.
이러한 노력으로 청교도 사회는 인류 역사상 가장 범죄율이 낮은 경건한 사회를 이루었고, 그들의 자손은 미국 역사를 만들어 낸 주역이 되었다. 조지 마덴(George Marsden)이 지적한 것처럼, 제 1차 세계 대전 이전에 미국의 정치, 문화, 경제계를 이끌어 왔던 인물 가운데 대부분이 청교도의 후손이거나 청교도적인 신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Marsden 1982, 242). 그들은 경건을 실천함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이 누리는 것보다도 많은 축복을 받았다.
팀 라헤이(Tim &Bev LaHaye)는 ꡔ성령이 지배하는 가정 생활ꡕ(Spirit Controlled Family Life)이라는 책에서, 1730년대 같은 지역에서 살았던 막스 쥬크스(Max Jukes)와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가계를 비교하였다. 1,026명이 되는 쥬크스의 후손 가운데 300명이 어려서 죽었고, 100명이 13년 정도 교도소에 생활하였으며, 190명은 창녀였고, 100명은 알코올 중독자여서 아무도 미국 사회에 공헌한 사람이 없었다. 반면에, 청교도적인 신앙을 따라 가정을 이루었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729명의 자손 가운데 300여명의 복음 전도자가 나왔고, 65명의 대학 교수, 13명의 대학 총장, 60명의 작가, 3명의 국회의원과 1명의 부통령이 나왔다(Tim and Bev LaHaye 1978, 19-20). 이와 같이 청교도들은 신앙적 가치관을 중심으로 가정을 운영함으로 경건한 가정을 이루고, 나아가서 그들의 자녀들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국 사회는 1970년대의 경제 개발과 함께 농경 사회에서 벗어나 정보화 사회로 발전하게 되면서, 정보화 사회의 특징인 물질적 가치관을 중시하게 되었다. 물질 중심의 세속주의 사상은 모든 국민의 가치관이 되었고, 심지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다는 교회까지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교육과 선교와 구제를 하기 위해서는 헌금이 필요하고, 많은 물질을 모으려면 대 교회로 성장해야 한다는 소위 교회성장주의의 영향으로 교회의 세속화 작업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물질적 가치관으로 인해 신성한 부부 관계에 틈이 생김으로 가정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IMF 이후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이혼율이 높아가고, 자녀들을 내버리는 가정 파괴 현상이 빈번하다. 한국 사회가 물질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점점 더 큰 혼란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세속주의적 도전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신앙적인 가치관을 회복하는 것이다.
곧 400여 년 전 뉴잉글랜드 황무지에서 신앙 중심적 가정 문화를 이루어 하나님의 말씀이 왕 노릇 하는 사회를 건설하려던 청교도의 신앙을 본 받음으로서 새로운 천년을 여는 21세기를 힘있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건전한 가정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이 땅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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