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총회
오덕교 교수
로마 천주교회가 발렌시아 교회회의(Council of Valencia, 1229)를 열어, 모든 신앙과 생활을 성경에 근거하여 살려고 하던 피터 왈도(Peter Waldo)와 그의 사상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사랑하던 100만 명의 성도들을 처형하고, 성경을 금서로 지정하면서, 중세 교회는 무지와 미신이 왕 노릇하게 되었다.
이러한 무지와 미신으로부터 교회를 해방하기 위해, 1517년 마틴 루터가 성경적인 개혁운동을 시작하였고, 그를 이어 쯔빙글리, 부쳐, 칼빈, 베자 등에 의한 개혁 운동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운동을 최종적으로 종합하고 오직 성경에 근거한 신학을 확립한 것이 1643년 7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서 열린 웨스트민스터 총회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교회의 개혁을 추구하던 영국 의회에 의하여 주도되었는데, 의회는 1643년 6월 12일 “영국 교회의 정부 형태와 예배를 정착하고, 그릇된 교훈과 해석으로부터 영국 교회의 교리를 정화하며 옹호하기 위하여” 교회회의로 모일 것을 결의하고, 영국 전역의 경건한 청교도 목사 121명과 상하원에서 파송한 30명의 의원으로 총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뉴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와 하나됨을 나타내기 위해 존 코튼(John Cotton)을 비롯한 3명의 뉴잉글랜드 청교도와 알렉산더 핸더슨(Alexander Henderson)을 비롯한 8명의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를 총회에 초청하였다.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들은 회의에 참석하여 많은 공헌을 하였으나,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당면한 문제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의회는 참석자들에게 매일 4 실링씩 주도록 예산을 책정하고, 사회자와 서기를 선발하여 회의를 인도하게 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1643년 7월 1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헨리 7세 채플(Chapel of Henry VII)에서 개회되었다. 청교도들은 칼빈의 신학 전통에 따라 성경의 권위를 최종적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역사적, 문법적으로 해석하여, 그에 근거한 교리, 예배, 교회 정치 원리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그들은 매 월요일 아침마다 다음과 같이 서약해야 했다. “내가 회원으로 있는 이 회의에서, 나는 교리에 관하여는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합치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주장하지 않고, 또 권징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교회의 화평과 유익을 위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주장하지 않기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며 서약합니다.”
청교도들은 교리와 예배와 교회 정치 사상이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확정되기를 소원하면서 자주 경건회를 가졌다. 그 한 예를 들어보자. 총회에 참석하였던 베일리(Robert Baillie)의 기록에 의하면, 경건회는 기도와 말씀으로 채워졌다. “트윗세 박사(Dr. Twisse)가 간단한 기도로 시작하였다. 마샬(Marshall)이 경건하게 총회 회원들의 죄를 고백하면서 2 시간 기도하였다. 애로우스미스(Arrowsmith)가 1시간 설교하였다. 그리고 찬송이 있었고, 바인즈(Vines)가 2시간 기도하였다. 팔마(Palmer)가 1시간 설교하였고, 씨맨(Seaman)이 2시간 기도하였다. 찬송을 드린 후 트윗세 박사가 간단히 기도한 후 축도로 폐회하였다.”
청교도들은 이와 같은 성경적 신학 원리와 경건 훈련에 기초하여 총회를 운영하였다. 그들은 토요일과 주일에는 모이지 않았고, 그 외의 날들은 매일 9시에 회의를 시작하여 오후 1시나 2시까지 논의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오후에는 소위원회 별로 모여 분과별 토의를 가졌다. 이러한 시간표에 따라 총회는 1649년 2월 22일까지 계속되었다.
5년 6개월에 걸쳐 1,163번의 회의를 가진 결과, 개혁주의 신학의 정수라고 불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대요리문답(Larger Catechism), 소요리문답(Shorter Catechism), 교회 행정 지침서(Form of Church Government), 공예배 지침서(Directory for the Public Worship of God)와 같은 성경적인 문서를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문서들은 영국 국교회의 딘 스탠리(Dean Stanley)가 지적한 것처럼, “어떤 신학적 작품보다도 신학적 통찰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심오한 문서들”로 성경만을 신앙의 표준으로 받아들이는 전 세계 개혁주의 교회들의 신앙적인 표준 문서가 되고 있다.
http://blog.daum.net/kkho1105/5849
오덕교 교수
로마 천주교회가 발렌시아 교회회의(Council of Valencia, 1229)를 열어, 모든 신앙과 생활을 성경에 근거하여 살려고 하던 피터 왈도(Peter Waldo)와 그의 사상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말씀만 사랑하던 100만 명의 성도들을 처형하고, 성경을 금서로 지정하면서, 중세 교회는 무지와 미신이 왕 노릇하게 되었다.
이러한 무지와 미신으로부터 교회를 해방하기 위해, 1517년 마틴 루터가 성경적인 개혁운동을 시작하였고, 그를 이어 쯔빙글리, 부쳐, 칼빈, 베자 등에 의한 개혁 운동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운동을 최종적으로 종합하고 오직 성경에 근거한 신학을 확립한 것이 1643년 7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에서 열린 웨스트민스터 총회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교회의 개혁을 추구하던 영국 의회에 의하여 주도되었는데, 의회는 1643년 6월 12일 “영국 교회의 정부 형태와 예배를 정착하고, 그릇된 교훈과 해석으로부터 영국 교회의 교리를 정화하며 옹호하기 위하여” 교회회의로 모일 것을 결의하고, 영국 전역의 경건한 청교도 목사 121명과 상하원에서 파송한 30명의 의원으로 총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뉴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와 하나됨을 나타내기 위해 존 코튼(John Cotton)을 비롯한 3명의 뉴잉글랜드 청교도와 알렉산더 핸더슨(Alexander Henderson)을 비롯한 8명의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를 총회에 초청하였다.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들은 회의에 참석하여 많은 공헌을 하였으나,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당면한 문제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의회는 참석자들에게 매일 4 실링씩 주도록 예산을 책정하고, 사회자와 서기를 선발하여 회의를 인도하게 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1643년 7월 1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헨리 7세 채플(Chapel of Henry VII)에서 개회되었다. 청교도들은 칼빈의 신학 전통에 따라 성경의 권위를 최종적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역사적, 문법적으로 해석하여, 그에 근거한 교리, 예배, 교회 정치 원리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그들은 매 월요일 아침마다 다음과 같이 서약해야 했다. “내가 회원으로 있는 이 회의에서, 나는 교리에 관하여는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합치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주장하지 않고, 또 권징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교회의 화평과 유익을 위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주장하지 않기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약속하며 서약합니다.”
청교도들은 교리와 예배와 교회 정치 사상이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확정되기를 소원하면서 자주 경건회를 가졌다. 그 한 예를 들어보자. 총회에 참석하였던 베일리(Robert Baillie)의 기록에 의하면, 경건회는 기도와 말씀으로 채워졌다. “트윗세 박사(Dr. Twisse)가 간단한 기도로 시작하였다. 마샬(Marshall)이 경건하게 총회 회원들의 죄를 고백하면서 2 시간 기도하였다. 애로우스미스(Arrowsmith)가 1시간 설교하였다. 그리고 찬송이 있었고, 바인즈(Vines)가 2시간 기도하였다. 팔마(Palmer)가 1시간 설교하였고, 씨맨(Seaman)이 2시간 기도하였다. 찬송을 드린 후 트윗세 박사가 간단히 기도한 후 축도로 폐회하였다.”
청교도들은 이와 같은 성경적 신학 원리와 경건 훈련에 기초하여 총회를 운영하였다. 그들은 토요일과 주일에는 모이지 않았고, 그 외의 날들은 매일 9시에 회의를 시작하여 오후 1시나 2시까지 논의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오후에는 소위원회 별로 모여 분과별 토의를 가졌다. 이러한 시간표에 따라 총회는 1649년 2월 22일까지 계속되었다.
5년 6개월에 걸쳐 1,163번의 회의를 가진 결과, 개혁주의 신학의 정수라고 불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대요리문답(Larger Catechism), 소요리문답(Shorter Catechism), 교회 행정 지침서(Form of Church Government), 공예배 지침서(Directory for the Public Worship of God)와 같은 성경적인 문서를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문서들은 영국 국교회의 딘 스탠리(Dean Stanley)가 지적한 것처럼, “어떤 신학적 작품보다도 신학적 통찰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심오한 문서들”로 성경만을 신앙의 표준으로 받아들이는 전 세계 개혁주의 교회들의 신앙적인 표준 문서가 되고 있다.
http://blog.daum.net/kkho1105/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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