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찬송으로 바른 예배 회복하자(개혁신학회 학술 세미나)
시편찬송으로 바른 예배 회복하자(개혁신학회 학술 세미나)
개혁신학회 학술 세미나…‘칼빈과 한국 교회’⑤끝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오광만 교수…
칼빈의 제네바 시편찬송가 평가·한국 교회 찬송 위해 제안
“16세기 종교개혁의 구호 중 하나는 ‘오직 성경’이다. 개혁자들은 이 구호를 종교개혁 모든 영역에 적용했다. 특히 종교개혁 시대에 예배용 찬송가인 ‘제네바 시편찬송가’는 ‘오직 성경’의 구호를 예배와 찬송에 적용하려 한 대표적인 산물이다. 오늘날 시편찬송만을 부르고, 칼빈주의를 신봉하는 교단과 교회는 그들이 시편찬송을 불러야 하는 정당성을 바로 이 사실에서 찾는다.”
지난 3월 14일 총신대학교에서 열린 개혁신학회 학술 세미나 중에 실천신학분과에서 발표한 오광만 교수(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신학)는 ‘칼빈의 제네바 시편찬송가: 평가와 21세기 한국장로교회 찬송을 위한 제안’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칼빈의 종교개혁의 목표 중 하나는 교회가 찬송다운 찬송을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칼빈은 그렇게 하는 것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 대단히 유익한 일이라면서, 찬송을 교회의 교회됨을 이룩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밝힌다. 이러한 목적에 부합한 찬송이 바로 시편찬송이다.”고 밝혔다.
오광만 교수는 칼빈의 글을 토대로 그의 예배 때 부를 찬송과 그 신학적 근거는 목회적 필요성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시편찬송을 부를 객관적인 이유는 사도(바울)의 증언과 고대 교부들의 제안에 기원을 두고 있다. 당시 예배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미사를 중심한 예배였고,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칸토’라고 불리는 특정한 사람(성직자)만 찬송을 불렀다.
이에 칼빈은 미사를 개혁하여 바른 예배 갱신을 추구했으며, 그 일환으로 교회에서 시편찬송을 부르는 것을 계획했다. 칼빈은 미사에 중점을 둔 예배에서 설교에 중점을 둔 예배로 바꿨다. 이런 면에서 칼빈이 설교 중심의 예배로 전환한 것은 ‘듣는 것’의 중요성을 회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마로(Marot)에 이어 베자(Beza)는 제네바 시편찬송가를 마무리하여 ‘제네바 시편찬송가’의 최종판이면서 장로교의 최초 찬송가이기도 한 Pseaumes odante trois David(1551, 1554)를 만들었으며, 그 최종판은 1562년에 완성됐다. 이 시편찬송가는 시편과 십계명, 시므온의 노래 등 110개의 운율과 125개의 곡이 사용되어 총 152개의 본문으로 구성됐다.
제네바 시편찬송가는 1562년 초판이 제네바에서만 적어도 1만7천부가 출판됐으며, 프랑스와 스위스의 출판사 50군데에서 3만권에서 5만권 사이가 인쇄된 것을 비롯해 불과 몇 년 사이에 9개 언어로 번역되어 거의 10만부가 인쇄된 것으로 Witvliet는 Pierre Pidoux의 글을 인용해서 밝히고 있다.
오 교수는 “제네바 시편찬송가는 넓게는 16세기 종교개혁이라는 분위기에서, 그리고 그 동안 로마 가톨릭에서 수행해 온 미사와 다양한 복음주의를 교정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좁게는 칼빈이 고국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와 독일 일부의 프랑스 난민이라는 독특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에 따르면 음악에 대한 칼빈의 입장과 신학은 그의 ‘제네바 시편찬송가’에 나타나 있다. 칼빈은 예배의 세 요소(설교, 기도, 성례전)를 각각 언급하면서 찬송을 기도와 연관시켰으며, 이런 점에서 찬송은 다른 음악과 구별된다. 칼빈은 시편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바르게 기도하는 참된 방법을 지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께 ‘찬송의 제사를 드리는 바른 방법’과 ‘바른 태도를 완벽하게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시편찬송가의 가사와 운율은 시편의 존엄성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예배용 찬송답게 부르기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특히 칼빈은 거룩한 모임에서 품위와 위엄을 중시했다.
“칼빈은 시편찬송을 교회에서 부를 때는 제창으로 부르게 하고, 심지어 오르간을 비롯하여 일체의 악기 사용을 금지했다. 이처럼 당시 무반주가 권장된 것은 가사의 바른 전달과 찬송하는 사람이 가사에 집중하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오 교수에 따르면 칼빈은 시편찬송에 최소한의 음악적 특성만 부여하고, 전체를 단순 소박한 음악이 되게 했다. ‘제네바 시편찬송가’에 실린 가사는 몇 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편에서 왔다. 칼빈은 시편의 곡조는 “절제되고, 노랫말에 적합하게 중후하고 위엄스러운 것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빈의 시편찬송은 기본적으로 단성 곡조로 구성됐다. 칼빈이 찬송을 부르는 공간을 확대한 이유는 분명하다. 기독교인들이 어리석고 타락한 기쁨의 수단을 찾지 말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데 있다.
오 교수는 칼빈의 시편찬송의 원칙과 그의 업적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칼빈의 시편찬송가는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원리를 음악적인 용어로 독특하게 표현한 개혁파 찬송가이다.”
둘째, 청교도들이나 재세례파들이 모든 예전 형식을 ‘타파’하려 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칼빈은 예배의 형식과 정신을 ‘개혁’하려고 했다.
오 교수는 “우리는 칼빈에게서 세상과 동화되어서도, 세상과 단절해서도 안 되고, 세상을 개혁하느라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오 교수에 따르면 칼빈은 찬송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와야 하고, 교회 음악은 단순한 여흥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신학에 맞는 찬송을 만들었다. 그는 이해력, 의지, 감정, 영혼, 몸 등 사람들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오염됐다는 그의 신학에 의해 시편을 운율이 있는 가사로 번역하여 노래하되, 악기 없이 무반주(아카펠라)로 부르는 것을 제안했다. 그는 죄의 오염으로 인간이 성경의 인도를 받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칼빈주의 음악의 특징적인 전통을 만든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편만을 예배용 찬송으로 불러야 한다는 정당한 이유라고 하기에는 성경적인 근거가 빈약하며 재론의 소지가 많이 남아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시편만을 찬송으로 부르라고 언급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오 교수는 “신약시대에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최절정인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새)노래를 불러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초기의 교회 찬송들은 시편에서 유래했지만, 교회는 곧바로 기독교적인 새로운 노래를 창작했다.”고 설명했다.
셋째, 칼빈의 시편찬송은 루터가 창작된 가사를 사용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자작된 가사의 찬송을 배제하려 했다. 칼빈이 우리가 예배에서 너무 경박한 찬송을 부르지 말고 ‘중후하고 위엄이 있는’ 찬송을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본적으로 예배용 찬송과 일상적으로 부르는 찬송을 구별한 것은 우리에게 예배의 중요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넷째, 칼빈은 시편찬송을 교회의 예배용 찬송으로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사실 찬송에 대한 그의 이해는 기도에서 출발한다. 칼빈은 기도의 두 종류 가운데 ‘노래로 하는 기도’를 찬송 영역에 적용했다. 이런 견해는 찬송이 예배의 독립된 요소로 작용하기보다는 기도에 종속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제네바 시편찬송가’에 시편의 장르 중에서 순수 찬양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실리지 않았고, 주로 고백과 애가 위주의 노랫말이 차지한 것은 찬송에 대한 칼빈의 생각이 편중됐음을 반영하고 있다.
시편이 독립된 찬송의 요소가 있다면, 찬송으로써 지녀야 할 음악적인 요소를 생각해야 한다. 시편의 곡조 중에서 화려하고 즐거운 분위기의 곡조가 들어가야 하고, 찬송을 부르는 사람 역시 즐겁게 불러야 한다. 그 곡조가 세속적인 음악으로서 예배의 분위기를 흐리게 해서는 안 되겠지만, 공동체의 규모에 맞는 악기 사용과 음악적 효과를 위한 화음은 찬송이 지닌 음악적 요소와 내용을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하고, 찬송의 목소리를 더욱 고양시키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칼빈이 원칙적으로 악기 사용을 반대한 것은 당시의 상황 때문에 취한 극단적인 행동이지, 그 후 교회가 칼빈의 예를 전범으로 삼을 성경적인 원리라고 할 수는 없다.
이와 함께 오 교수는 개혁파 신학을 부르짖거나 개혁파 교회에 속한 사람들에게, 교회에서나 어디서나 시편찬송을 다시 부를 것을 제안했다. 칼빈이 제안한 시편찬송을 부르는 것에 반성할 여지가 있고, 시편찬송만이 예배용 찬송으로 유일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시편찬송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많은 찬송 중에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 예배에서 시편찬송이 도외시되고 점차 현대 신학적 정체성을 확인할 수 없는 작사 작곡자들이 만든 CCM이 불리고 있는 상황에서 개혁파 전통에 속한 교회라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예배와 일상생활에서 시편찬송을 자주 불러야 한다.
둘째, 시편 이외에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그리스도 찬송시도 운율을 붙여 찬송하는데 관심을 갖자. 성경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이 땅에서 겪는 희노애락의 정제된 감정을 노랫말로 하는,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노래하는 가사가 개발되고 거기에 맞게 곡조를 붙인 찬송이 많이 나와야 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찬송하는 다양한 찬송이 교회에서 불려야 한다.
셋째, 현대 개혁파 교회가 칼빈이 당시에 시행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여 찬송가에서 음악성을 배제하고, 무미건조하게 찬송하기보다는 찬송의 음악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예배 중 악기를 사용하는 것과 찬송의 음악성에 대해 보인 칼빈의 극단적인 태도는 로마 가톨릭의 미신과 우상숭배적 요소를 겨냥해서 그것을 지양하려고 행해진 극단이었다. 오 교수는 “이것이 그 당시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적용되던 상황적인 것이지, 찬송의 규범으로 받을 만한 내용이 아니다.”며 “찬송을 부를 때 예배 음악에 맞는 곡 선정과 예배 분위기에 맞는 악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여 적합한 악기를 사용하는 문제와 예배에 어울리지 않는 악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오 교수는 또 “음악은 하나님의 말씀의 충분한 효과를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고, 찬송의 음악적 특성은 물론이거니와 예배의 정신마저 흐리게 하여 찬송과 예배 자체를 천박하게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이 음악에는 전혀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음악을 사용하는 데 주의해야 할 것”이라며 “개혁파 교회는 예배용 음악의 질적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아울러 교회는 예배 찬송을 인도하는 사람들의 질적 향상과 예배와 찬송의 정신으로 잘 무장하도록 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빈은 예배 찬송의 형식을 유지하려고 음악적인 요소를 많이 희생하면서까지 예배 찬송을 시편에 한정했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찬송의 원리를 제시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그 목적을 완벽하게 이루지 못했다.
오 교수는 “칼빈은 신약교회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 신약교회의 찬송 역시 구약의 시편에 한정한 것은 초대교회가 일찍이 그리스도 찬송시를 부르면서 새로운 노래를 만들었다는 교회의 실제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평가하면서 “교회는 당대의 삶의 정황과 완전히 단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칼빈이 우리에게 단지 성경에 정박되어 있는 시편을 여전히 교회에게 예배 찬송으로 사용하기를 권하고, 그것을 장려했다는 점에서 칼빈의 ‘제네바 시편찬송가’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오 교수는 “교회가 시편 찬송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고, 그 분의 덕을 칭송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데 목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전제하고, “장로교와 개혁파 신앙을 천명하는 교회라면 시편찬송을 자주 불러 바른 예배를 회복하고, 개혁자들의 바른 신학을 천명해야 할 것”이라며 “종교개혁의 정신을 가진 장로교회는 우리 신앙의 큰 스승이신 칼빈의 찬송의 정신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시편찬송을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서창원 박사(삼양교회 담임목사)는 “오 교수의 칼빈의 시편 찬송가 정신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개혁파 교회의 찬송가로 자리매김한 것에 대한 지적은 옳은 것”이라며 “시편 찬송가가 교파의 난립을 막아주고, 성경적 교단의 연합 운동의 기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 박사는 또 “교회의 공예배에 노래로 영광을 돌리는 일의 회복이 시편찬송가를 통해서 일어날 것이다. 상실된 교회의 거룩성 회복에 가장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시편찬송가다.”며 “시편찬송가를 만들어 부르게 함으로써 개혁파 교회의 특색을 되살리고, 개혁파 교회의 아름다운 신앙 유산을 영구적으로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을 속히 진척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서 박사는 “우리의 찬송시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담은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가사들을 담은 찬송시가 있어야 한다.”며 “교회 예배 음악과 기독교 음악의 구분, 세속 음악과 예배 음악의 구분이 보다 철저하게 성경적으로 규명되어 기독교의 독특한 문화를 세상 속에 심는 일을 되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상 문화로 성경을 이해하려 들지 말고, 성경의 교훈을 갖고 세상을 이해하고 정복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이국희 기자 (기독신문)
[출처] 시편찬송으로 바른 예배 회복하자(개혁신학회 학술 세미나)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 |작성자 주나그네
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620
개혁신학회 학술 세미나…‘칼빈과 한국 교회’⑤끝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오광만 교수…
칼빈의 제네바 시편찬송가 평가·한국 교회 찬송 위해 제안
“16세기 종교개혁의 구호 중 하나는 ‘오직 성경’이다. 개혁자들은 이 구호를 종교개혁 모든 영역에 적용했다. 특히 종교개혁 시대에 예배용 찬송가인 ‘제네바 시편찬송가’는 ‘오직 성경’의 구호를 예배와 찬송에 적용하려 한 대표적인 산물이다. 오늘날 시편찬송만을 부르고, 칼빈주의를 신봉하는 교단과 교회는 그들이 시편찬송을 불러야 하는 정당성을 바로 이 사실에서 찾는다.”
지난 3월 14일 총신대학교에서 열린 개혁신학회 학술 세미나 중에 실천신학분과에서 발표한 오광만 교수(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신학)는 ‘칼빈의 제네바 시편찬송가: 평가와 21세기 한국장로교회 찬송을 위한 제안’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칼빈의 종교개혁의 목표 중 하나는 교회가 찬송다운 찬송을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칼빈은 그렇게 하는 것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 대단히 유익한 일이라면서, 찬송을 교회의 교회됨을 이룩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밝힌다. 이러한 목적에 부합한 찬송이 바로 시편찬송이다.”고 밝혔다.
오광만 교수는 칼빈의 글을 토대로 그의 예배 때 부를 찬송과 그 신학적 근거는 목회적 필요성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시편찬송을 부를 객관적인 이유는 사도(바울)의 증언과 고대 교부들의 제안에 기원을 두고 있다. 당시 예배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미사를 중심한 예배였고,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칸토’라고 불리는 특정한 사람(성직자)만 찬송을 불렀다.
이에 칼빈은 미사를 개혁하여 바른 예배 갱신을 추구했으며, 그 일환으로 교회에서 시편찬송을 부르는 것을 계획했다. 칼빈은 미사에 중점을 둔 예배에서 설교에 중점을 둔 예배로 바꿨다. 이런 면에서 칼빈이 설교 중심의 예배로 전환한 것은 ‘듣는 것’의 중요성을 회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마로(Marot)에 이어 베자(Beza)는 제네바 시편찬송가를 마무리하여 ‘제네바 시편찬송가’의 최종판이면서 장로교의 최초 찬송가이기도 한 Pseaumes odante trois David(1551, 1554)를 만들었으며, 그 최종판은 1562년에 완성됐다. 이 시편찬송가는 시편과 십계명, 시므온의 노래 등 110개의 운율과 125개의 곡이 사용되어 총 152개의 본문으로 구성됐다.
제네바 시편찬송가는 1562년 초판이 제네바에서만 적어도 1만7천부가 출판됐으며, 프랑스와 스위스의 출판사 50군데에서 3만권에서 5만권 사이가 인쇄된 것을 비롯해 불과 몇 년 사이에 9개 언어로 번역되어 거의 10만부가 인쇄된 것으로 Witvliet는 Pierre Pidoux의 글을 인용해서 밝히고 있다.
오 교수는 “제네바 시편찬송가는 넓게는 16세기 종교개혁이라는 분위기에서, 그리고 그 동안 로마 가톨릭에서 수행해 온 미사와 다양한 복음주의를 교정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좁게는 칼빈이 고국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와 독일 일부의 프랑스 난민이라는 독특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에 따르면 음악에 대한 칼빈의 입장과 신학은 그의 ‘제네바 시편찬송가’에 나타나 있다. 칼빈은 예배의 세 요소(설교, 기도, 성례전)를 각각 언급하면서 찬송을 기도와 연관시켰으며, 이런 점에서 찬송은 다른 음악과 구별된다. 칼빈은 시편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바르게 기도하는 참된 방법을 지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께 ‘찬송의 제사를 드리는 바른 방법’과 ‘바른 태도를 완벽하게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시편찬송가의 가사와 운율은 시편의 존엄성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예배용 찬송답게 부르기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특히 칼빈은 거룩한 모임에서 품위와 위엄을 중시했다.
“칼빈은 시편찬송을 교회에서 부를 때는 제창으로 부르게 하고, 심지어 오르간을 비롯하여 일체의 악기 사용을 금지했다. 이처럼 당시 무반주가 권장된 것은 가사의 바른 전달과 찬송하는 사람이 가사에 집중하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오 교수에 따르면 칼빈은 시편찬송에 최소한의 음악적 특성만 부여하고, 전체를 단순 소박한 음악이 되게 했다. ‘제네바 시편찬송가’에 실린 가사는 몇 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편에서 왔다. 칼빈은 시편의 곡조는 “절제되고, 노랫말에 적합하게 중후하고 위엄스러운 것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빈의 시편찬송은 기본적으로 단성 곡조로 구성됐다. 칼빈이 찬송을 부르는 공간을 확대한 이유는 분명하다. 기독교인들이 어리석고 타락한 기쁨의 수단을 찾지 말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데 있다.
오 교수는 칼빈의 시편찬송의 원칙과 그의 업적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칼빈의 시편찬송가는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원리를 음악적인 용어로 독특하게 표현한 개혁파 찬송가이다.”
둘째, 청교도들이나 재세례파들이 모든 예전 형식을 ‘타파’하려 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칼빈은 예배의 형식과 정신을 ‘개혁’하려고 했다.
오 교수는 “우리는 칼빈에게서 세상과 동화되어서도, 세상과 단절해서도 안 되고, 세상을 개혁하느라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오 교수에 따르면 칼빈은 찬송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와야 하고, 교회 음악은 단순한 여흥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신학에 맞는 찬송을 만들었다. 그는 이해력, 의지, 감정, 영혼, 몸 등 사람들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오염됐다는 그의 신학에 의해 시편을 운율이 있는 가사로 번역하여 노래하되, 악기 없이 무반주(아카펠라)로 부르는 것을 제안했다. 그는 죄의 오염으로 인간이 성경의 인도를 받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칼빈주의 음악의 특징적인 전통을 만든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편만을 예배용 찬송으로 불러야 한다는 정당한 이유라고 하기에는 성경적인 근거가 빈약하며 재론의 소지가 많이 남아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시편만을 찬송으로 부르라고 언급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오 교수는 “신약시대에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최절정인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새)노래를 불러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초기의 교회 찬송들은 시편에서 유래했지만, 교회는 곧바로 기독교적인 새로운 노래를 창작했다.”고 설명했다.
셋째, 칼빈의 시편찬송은 루터가 창작된 가사를 사용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자작된 가사의 찬송을 배제하려 했다. 칼빈이 우리가 예배에서 너무 경박한 찬송을 부르지 말고 ‘중후하고 위엄이 있는’ 찬송을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본적으로 예배용 찬송과 일상적으로 부르는 찬송을 구별한 것은 우리에게 예배의 중요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넷째, 칼빈은 시편찬송을 교회의 예배용 찬송으로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사실 찬송에 대한 그의 이해는 기도에서 출발한다. 칼빈은 기도의 두 종류 가운데 ‘노래로 하는 기도’를 찬송 영역에 적용했다. 이런 견해는 찬송이 예배의 독립된 요소로 작용하기보다는 기도에 종속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제네바 시편찬송가’에 시편의 장르 중에서 순수 찬양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실리지 않았고, 주로 고백과 애가 위주의 노랫말이 차지한 것은 찬송에 대한 칼빈의 생각이 편중됐음을 반영하고 있다.
시편이 독립된 찬송의 요소가 있다면, 찬송으로써 지녀야 할 음악적인 요소를 생각해야 한다. 시편의 곡조 중에서 화려하고 즐거운 분위기의 곡조가 들어가야 하고, 찬송을 부르는 사람 역시 즐겁게 불러야 한다. 그 곡조가 세속적인 음악으로서 예배의 분위기를 흐리게 해서는 안 되겠지만, 공동체의 규모에 맞는 악기 사용과 음악적 효과를 위한 화음은 찬송이 지닌 음악적 요소와 내용을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하고, 찬송의 목소리를 더욱 고양시키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칼빈이 원칙적으로 악기 사용을 반대한 것은 당시의 상황 때문에 취한 극단적인 행동이지, 그 후 교회가 칼빈의 예를 전범으로 삼을 성경적인 원리라고 할 수는 없다.
이와 함께 오 교수는 개혁파 신학을 부르짖거나 개혁파 교회에 속한 사람들에게, 교회에서나 어디서나 시편찬송을 다시 부를 것을 제안했다. 칼빈이 제안한 시편찬송을 부르는 것에 반성할 여지가 있고, 시편찬송만이 예배용 찬송으로 유일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시편찬송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많은 찬송 중에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 예배에서 시편찬송이 도외시되고 점차 현대 신학적 정체성을 확인할 수 없는 작사 작곡자들이 만든 CCM이 불리고 있는 상황에서 개혁파 전통에 속한 교회라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예배와 일상생활에서 시편찬송을 자주 불러야 한다.
둘째, 시편 이외에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그리스도 찬송시도 운율을 붙여 찬송하는데 관심을 갖자. 성경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이 땅에서 겪는 희노애락의 정제된 감정을 노랫말로 하는,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노래하는 가사가 개발되고 거기에 맞게 곡조를 붙인 찬송이 많이 나와야 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찬송하는 다양한 찬송이 교회에서 불려야 한다.
셋째, 현대 개혁파 교회가 칼빈이 당시에 시행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여 찬송가에서 음악성을 배제하고, 무미건조하게 찬송하기보다는 찬송의 음악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예배 중 악기를 사용하는 것과 찬송의 음악성에 대해 보인 칼빈의 극단적인 태도는 로마 가톨릭의 미신과 우상숭배적 요소를 겨냥해서 그것을 지양하려고 행해진 극단이었다. 오 교수는 “이것이 그 당시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적용되던 상황적인 것이지, 찬송의 규범으로 받을 만한 내용이 아니다.”며 “찬송을 부를 때 예배 음악에 맞는 곡 선정과 예배 분위기에 맞는 악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여 적합한 악기를 사용하는 문제와 예배에 어울리지 않는 악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오 교수는 또 “음악은 하나님의 말씀의 충분한 효과를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고, 찬송의 음악적 특성은 물론이거니와 예배의 정신마저 흐리게 하여 찬송과 예배 자체를 천박하게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이 음악에는 전혀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음악을 사용하는 데 주의해야 할 것”이라며 “개혁파 교회는 예배용 음악의 질적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아울러 교회는 예배 찬송을 인도하는 사람들의 질적 향상과 예배와 찬송의 정신으로 잘 무장하도록 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빈은 예배 찬송의 형식을 유지하려고 음악적인 요소를 많이 희생하면서까지 예배 찬송을 시편에 한정했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찬송의 원리를 제시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그 목적을 완벽하게 이루지 못했다.
오 교수는 “칼빈은 신약교회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 신약교회의 찬송 역시 구약의 시편에 한정한 것은 초대교회가 일찍이 그리스도 찬송시를 부르면서 새로운 노래를 만들었다는 교회의 실제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평가하면서 “교회는 당대의 삶의 정황과 완전히 단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칼빈이 우리에게 단지 성경에 정박되어 있는 시편을 여전히 교회에게 예배 찬송으로 사용하기를 권하고, 그것을 장려했다는 점에서 칼빈의 ‘제네바 시편찬송가’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오 교수는 “교회가 시편 찬송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고, 그 분의 덕을 칭송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데 목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전제하고, “장로교와 개혁파 신앙을 천명하는 교회라면 시편찬송을 자주 불러 바른 예배를 회복하고, 개혁자들의 바른 신학을 천명해야 할 것”이라며 “종교개혁의 정신을 가진 장로교회는 우리 신앙의 큰 스승이신 칼빈의 찬송의 정신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시편찬송을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서창원 박사(삼양교회 담임목사)는 “오 교수의 칼빈의 시편 찬송가 정신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개혁파 교회의 찬송가로 자리매김한 것에 대한 지적은 옳은 것”이라며 “시편 찬송가가 교파의 난립을 막아주고, 성경적 교단의 연합 운동의 기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 박사는 또 “교회의 공예배에 노래로 영광을 돌리는 일의 회복이 시편찬송가를 통해서 일어날 것이다. 상실된 교회의 거룩성 회복에 가장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시편찬송가다.”며 “시편찬송가를 만들어 부르게 함으로써 개혁파 교회의 특색을 되살리고, 개혁파 교회의 아름다운 신앙 유산을 영구적으로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을 속히 진척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서 박사는 “우리의 찬송시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담은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가사들을 담은 찬송시가 있어야 한다.”며 “교회 예배 음악과 기독교 음악의 구분, 세속 음악과 예배 음악의 구분이 보다 철저하게 성경적으로 규명되어 기독교의 독특한 문화를 세상 속에 심는 일을 되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상 문화로 성경을 이해하려 들지 말고, 성경의 교훈을 갖고 세상을 이해하고 정복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이국희 기자 (기독신문)
[출처] 시편찬송으로 바른 예배 회복하자(개혁신학회 학술 세미나)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 |작성자 주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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