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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자

역사의 행간 읽기

역사의 행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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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의 여러 종개혁 운동 중 한 흐름이었던 칼빈의 일생을 읽을 때, 그 행간을 주의해서 읽으면 칼빈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1536년에 칼빈은 간곡한 부탁에 의해 제네바의 종교개혁자로서 부름을 받는다. 그곳에서 그는 의욕적으로 그 나름대로의 개혁안들을 추진해 나간다. 그러나 시의회와의 갈등으로 2년만에, 제네바에서 쫓겨나게 된다. 칼빈의 마음의 고초가 얼마나 컸는지는, 다시는 제네바에 가지 않겠다는 그의 표현을 보면 알 수 있다.
갈 곳 없는 초라한 목회자였던 그를 스트라스부르그의 마틴 부쳐가 불러 프랑스 난민교회 목회를 3년간 감당하게 된다. 이 스크라스부르그 시절이 칼빈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비록 그는 실패자의 쓴 마음으로 그곳에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가 “평생의 동역자”라고 고백했던, 네덜란드 출신(지금은 벨기에)의 아내 이들레뜨 드 뷔르를 만나게 된 것도, 마틴 부쳐와의 깊은 신학적 교감을 갖게 된 것도 이 기간이었다. 그는 많은 교부문헌을 접하면서 사상이 살찌게 되었고, 1540년에 그의 처음 주석인 로마서 주석 초판이 인쇄된 것도 바로 이 곳에서 머물때였다. 그의 목회 경험을 토대로 그가 교회의 신학자로 설 수 있었던 것도, 모두다 실패를 통해서 낮아진 상태에 있을 때였던 것이다. 그는 훗날 이 시절들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고백한다.  
모세 또한 그러하다.
하나님은, 당시 최고의 문화 국가요 경제대국인 이집트의 파라오의 아들로서의 모세를 부르신 것이 아니었다. 그때 모세는 실제로 민족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광야로 떠나는 난민이 되어야만 했다. 이 40년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민족의 지도자로 훈련을 받는 괴로운 연단의 기간이었다.  
모세가 고독하고, 한없이 무기력하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속에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인간이 되었을 때, 그때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위한 사역에 모세를 부르셨다.
“모세야, 모세야.”
모세는 대답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 모세의 대답에서, “여기”라고 하는 것은, 그가 애굽의 왕자로서의 능력있고 권세있던 때가 아니었다. 자기 백성들을 자기 힘으로 구해보겠다고 하다가, 목숨의 위태로움을 당해서, 사막으로 도망와서, 40년이나 나그네로서 생활하고 있는, 바로 그 고독하고 초라한 현장이, 모세가 지금 서있는 “여기”라는 곳이었다.
하나님은, 권세가 있고, 가정 배경이 든든하고, 외모가 빼어나고, 고등학문을 많이 배운 왕족 모세를 불러서 일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연약하고 재산도 없고 능력이 없어서,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의지할 바가 없게 되어버린, 그런 마음이 가난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조용히 부르시는 것이다.  
바로 그때,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내 힘과 능력과 내 건강으로는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 당신의 능력으로 밖에 할 수 없는, 그 연약한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응답했던 것이다. (*)
“요컨대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자신을 보여주심으로 믿음의 여지를 남겨 두신 것이며, 모세는 수많은 공포에 싸여 있었지만, 그는 온 마음과 온 정신을 하나님께로 돌렸던 것이다 …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은 우리의 연약함을 교정하기에 충분하며, 사단의 모든 공격에 대항해서 우리를 반석보다도 더 강력하게 해 주는 것이다.”  
– 칼빈, 히브리서 주석 11장
http://blog.daum.net/kkho1105/5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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