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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자

논평문: 19세기 후반 독일의 기독교 문화

논평문: 19세기 후반 독일의 기독교 문화
http://blog.daum.net/kkho1105/5932
 
논 평 문
안인섭
고재백님(독일 지겐대학, 역사학 박사과정)의 "19세기 후반기의 독일의 독서 문화와 기독교 문화: 가족 화보(畵報) 'Die Gartenlaube' (1853-1903)의 독서화를 중심으로"를 논찬함.
[본 고는, 고재백님의 발표 논문에 대해서  논찬한 논평문입니다.]
유럽기독학술회(KAFE)
2nd annual conference
독일 Wuppertal
2001. 8. 30.
 
저는 교부와 종교개혁의 신학과 역사를 연구하는 교회사가입니다. 오늘 발표된 발제자의 전공인 19세기 후반기의 독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논문을 받고 읽으면서, 발제문은, 독서 문화의 역사라는 매우 세분화된 역사학의 전공 분야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 다행스러운 것은, 제가 대학교 시절 역사학 전공으로, 역사학의 이론과 방법론과 사학사, 그리고 유럽사에 대해서 공부를 해 왔으며, 교부와 종교 개혁을 다루면서, 그 배경적 고찰 속에서, 유럽의 정치와 지성사를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본 발제문에 대한 논평을 흥미를 가지고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시대적인 세분화가 두드러지는 역사학의 특징을 고려해 볼 때, 엄연히 존재할 논평자의 한계를 명백히 시인하면서 논평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 먼저 I. 발제자의 의도와 방법론을 논찬할 것입니다.
II. 다음으로 본 발제문의 전체적 논평과
III. 발제 논문의 의의를 논하고자 합니다.
I. 발제자의 의도와 방법론
1.
발제문의 방법론과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간략한 사학사적 언급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학사적 사전지식이 없으면, 본 논문의 정확한 의도와 방향성, 그리고 그 사적 의의를 밝혀내기가 어렵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역사학계에서는 전통적으로 정치사적인 역사서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 전통적인 정치사적 역사이해가 갖는 한계와 독소적인 요소는, 통치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정착시킨다는 것과, 그럼으로 인간의 삶과 사회와 문화를 상대적으로 간과한다는 것입니다. 양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정치사적 서술을 극복해야 함을 인식하게 됩니다.
한편, 기존의 정치사 일변도를 배격하고, 사회경제사를 주창하면서, 20세기 전반기에 프랑스의 베르 뒤르껭, 시미앙에서 시작되어, 1950년대에 스트라스부르그의 르 페브르와 블로흐에 이르러 아날학파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아날학파는 구조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역사현상을 통시적, 병시적인 관계에서 역사학적 관계를 파악하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독일도 마찬가지로 1950년대부터 사회사적, 구조사적 연구를 수용하면서, 동시에 전통적 방법을 보완하는 역사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영국의 경우는 프랑스와 독일의 구조사나 사회사같은 이론을 내세우지는 않았어도, 사회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즉 세계 역사학계는, 사건들보다는 진행과 구조를 중시하면서, 역사의 모든 영역들을 다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며, 사실을 종적, 횡적 구조 관계속에서, 역사적 연속성과 복합성에서 파악하는 태도를 견지하게된 것입니다.
이런 자세는, 사회사적 의미에서, 50년대와 60년대부터 구조사적 또는 사회사적 연구에서 전체사(Totalgeschichte)적 연구 태도를 형성시켰습니다. 사회 각 영역에 관한 종적, 횡적 분석을 통해 전체사를 지향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각 영역과 집단을, 역사 서술의 대상이 될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사는 해방적 의미를 갖습니다. 동시에, 사회 각 영역과 집단들을 분석함으로 그들의 삶과 의지를 학문에 반영하기 때문에, 민주성을 갖습니다.
게다가 사회사적 연구는, 또 문화사 연구로 발전해 가게 됩니다.
역사학의 이론과 방법론은 일반적으로 사회사적 연구 때에 정립되었다고 봅니다. 즉 귀납적, 통계학적, 비교적 방법들을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것입니다.

2.
그러면, 오늘 발표되는 논문의 방법론을 고찰해 보겠습니다.
발제자가 밝혔듯이, 논문의 근본적 의도는, 19세기 후반기의 독일의 시민계층의 시민의식과 시민사회의 규범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서 발제자는 당시의 근대잡지의 선구자인, 주간지 디 가르텐라우베(Die Gartenlaube)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51년분의 가르텐라우베를 연구하는데, 특별히 상징성을 잘 담아낸다고 볼 수 있는 그림들을 택했습니다. 발제문에 의하면, 총 317점의 그림을 택해서, 독서 대상, 독자층, 독서태도, 독서공간 등을 차례로 분석합니다.
특별히 구체적인 통계적 분석을 토대로 당시의 사회상을 재구성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분석을 토대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입니다.
위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발제문은 역사학의 중요한 방법론과 이론에 매우 충실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II. 발제문의 전체적 논평
1.
발제자는 GL의 1853년부터 1903년까지의 그림들을 분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50여년의 시기는 독일과 유럽 역사 내에서 매우 큰 변화가 진행된 시기입니다.
멀리 유럽 전체를 보면, 14,5 세기에 싹트고, 16세기이래 계속 발전한 유럽의 근대적 발전은,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을 계기로 완성단계로 접어서며, 19세기에는 근대시민사회와 근대국민국가가 확립됩니다.
18세기부터 19세기 초에 유럽은, 혁명의 시대였습니다. 즉 프랑스 혁명으로 유럽에서 전제 절대 왕정을 타도하고, 봉건제의 잔재를 일소함으로써, 자유롭고 평등한 근대시민사회건설의 길을 열었으며, 한편 영국의 산업혁명은, 유럽을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하게 했습니다. 따라서, 19세기 유럽사는 프랑스 혁명이 제기했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산업혁명으로 인한 산업화의 진행에 따른 노동문제와 사회문제가 엉키면서 진행된 시기입니다.
특히 독일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고무되었던 독일의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복고적인 비인체제하에서 질식 상태로 되었다가, 서서이 통일의 길로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배후에, 경제적으로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부르주아의 세력신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848년 프랑스 2월혁명후, 이 부르주아들은, 사회주의자와 노동자의 급진적인 운동에 겁을 먹는 자유주의의 한계를 보이고 있었던 시기로 일반적으로 평가됩니다.
한편 산업혁명으로 고전적 자본주의가 완성되고,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동시에 노동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들이 야기되었으며,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사회주의 사상이 일어나게 되었고, 1840년대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서 급진적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발전을 하게 되는 것이 19세기 후반기의 정황입니다.
이처럼, 자유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등 현대 사상의 큰 조류가 격류하듯이 발전했던 시대가 19세기 특히 후반기라고 크게 본다면, 구체적으로 1853년부터 1903년까지의 50년간의 독일의 사회, 문화, 종교사에 있어서 무엇인가 점진적인 발전, 내지 퇴보의 현상들이 구체적으로 있었을 것이고, 그런 사회상이 분명 가장 대중적이었던 주간지 GL에 반영되어 있을 법한데, 발제된 논문에서는 이런 당시의 사회적 변혁을 반영해 내는 그런 구체적인 분석을 선명하게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 발제자는 세부적인 시대 구분에 따른 분석이, 학위 논문의 다른 부분에서 다루어 지고 있다고 해명함 ]
또 이런 격동기에 50년이라면 매우 긴 기간인데, 그렇다면 각 주제들의 시간적인 흐름에 따른 구체적 분석이 제시될 법도 한데, 본 발제문에서 이런 분석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예를들어, 1850년대의 GL의 그림들을 분석하면, 남녀의 노동분야에 대한 분화 정도가 어느정도인데, 1860년대, 1870년대, 1880년대 1890년대 그리고 1900년대로 가면서는 어떤 비율로 얼마나 그 분화정도가 심화 혹은 완화되었는가 라는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이가 등장하는 그림의 경우도, 년대적 흐름에 따라 어느 비율로 어떻게 발전해 갔는데 제시되었더라면, 보다 명확한 당시 사회상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2.
발제자는, 당시 베스트 셀러 주간지인 GL의 창간호부터 즉 1853년부터 1903년까지 연구, 분석을 했습니다. 매우 궁금한 것은 왜 1903년까지만 다루었는가 라는 것입니다. 즉 GL이 1903년에 폐간되었기 때문에 1903년까지 연구했는가? 그렇다면, GL은 왜 인기 잡지에서 문을 닫는 위치로 가게 되었는지를 분석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사회상 연구에 매우 중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해에 폐간된 것이 아니라면, 그럼 왜 1903년까지를 연구했는지 언급되었다면 그 시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독자들이 이 논문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분석 연대를 19세기 후반기로 제한하기 위해서 임의로 그렇게 했다고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GL이 대중적으로 사회상을 반영할 수 있었던 주간지였다면, 1903년 까지 그 주간지의 판매 부수의 증감이라든지, 대중들로부터 어느 정도로 어떻게 어필을 할 수 있었는지 살필 수 있었다면, 19세기 사회상 이해에 보탬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경우 필요한 자료의 획득, 열람이 가능한지가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19세기를 세속화의 시기인지 재기독교화의 시기인지를 논증하는 과정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발제자는, 독서를 통한 종교생활이라는 측면에서, 기독교와 관련된 31점을 분석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발제자는, 전제 366점의 그림 중에서, 기독교와 관련된 그림 31점만을 분석했다는 말인데, 종교생활에 대한 그림이 숫자상으로 10%에 불과하게 됩니다. 만약, 366점의 그림중 종교생활과 관련된 그림이 31점밖에 없었다면, 발제자의 논지와는 반대로, 그야말로 세속화되었던 시기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생활관련 그림이 훨씬 더 있지만 굳이 31점만 택했다면, 거기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면, 독자들이 보다 명확하게 발제자의 논지를 신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논평의 서두에서 언급 했듯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정착시킬 우려가 다분한 정치사적인 연구가, 사회사적, 문화사적 연구에 의해서 극복되면서, 귀납적, 통계학적, 비교적 방법들이 통합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연구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의미와 장점에도 불구하고, 빠지기 쉬운 함정은, 종합적인 연구가, 단순한 통계적인 종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상신, 서양사학사, 서울:청사, 1984), p. 849.
즉 과거 역사를 어떻게 전체적으로, 다시 조명해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분석 결과를, 그 시대의 전반적인 구조속에 접합시키려는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19세기 후반기의 독일 사회의 지배적인 이념이 무엇이었으며, 사고 방식, 정치 체제, 각 집단의 권력분배 정도 등이 하나의 배경적 연구로서 파악되고, 이에 따라서 각 영역들의 역할이 종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발제자가 의도했던 19세기 후반기의 시민계층의 시민의식과 시민사회의 규범들이 더 잘 파악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19세기 후반기의 독일의 사회와 기독교는 어떤 문화상을 보여주었는지는, 19세기의 후반기의 유럽사적인 큰 틀, 사회, 경제사, 문화사적 콘텍스트 속에서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언급이나, 서술이, 논문의 배경으로서 서론속에 간략하게나마 제시되어 있었다면, 독자들은 본 논문이 갖는 뛰어난 분석력의 도움으로 19세기 후반기 독일의 기독교 문화를 창달했던 시대인들의 사회상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5.
발제자의 연구분야는 19세기 후반기의 독일의 시민계층과 시민사회연구이고, 논문의 근본적 의도는 시민계층의 시민의식과 시민사회의 규범들을 구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서론적 진술에서, 한국의 역사학자인 발제자가, 어떤 근원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19세기 후반기의 독일의 시민계층과 시민사회를 연구하는지, 간략하게 밝혔더라면, 매우 전문적이어서 자칫 초점을 놓힐 수 있는 본 논문을 읽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문에 있어서, 특히 기독교 학문에 있어서 근원적 동기는 매우 중요하며, 그 학문을 더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6.
발제자는, 기존의 교회사와 역사 연구가 교회 제도사나, 교리중심의 연구 틀에 함몰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보다 포괄적인 교회사 연구를 위해서, 일상의 역사, 하부 토대의 역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창하셨습니다.
논평자로서 일단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동의를 합니다. 즉 과거 교회사 연구가 기독교의 각 종파별로, 자신의 종파의 교리라고 하는 좁은 바운더리에 담을 높이 쌓고 학문적인 발전을 거부하던때의 상황에서는 지적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교회사 연구는, 반드시 역사 연구 대상의 다변화를 통해서만 담보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많은 연구들이 시도되었던 주제나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그 시대의 역사적, 지성사적 문맥에서 다시 해석해 내며, 그간 진척되어 축적된 교회사 연구의 도움으로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역사적 평가를 다리 내리는 작업은 중단될 수 없고 지속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즉 역사의 심층적 연구는, 역사 연구 대상과 주제의 다변성과 아울러, 기존의 대상과 주제들의 정당한 재학석, 재 의미부여라고 하는 쌍방 작업을 통해서 이루어 져야 한다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III. 발제 논문이 갖는 의의
1.
발제자는 전문적 역사가로서, 역사학의 학문적 방법에 충실하여 역사 자료를 조사 분석해 내었습니다.
역사 연구의 원칙대로, 예상이나, 가정 추측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자료에 근거해서 연구한 점이 중요하는 것인데, 이 점에서 본 발제 논문은 연구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보입니다.
2.
객관적인 자료의 면밀한 조사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해 내는 능력에서, 역사가로서의 역사의 진행에 대한 깊은 방향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통찰력을 엿보게 하는 논문이었습니다.
역사의 객관적 조사가 중요하지만, 결국 더 중요한 것은, 역사가의 역사 해석의 능력이고, 이것은 바로 역사가의 역사의 진행을 통찰하는 방향감각으로부터 발생합니다.
그런점에서 발제자는 역사가 전체적으로 진행되어 왔던 길과 앞으로 진행되어 나가야 할 길을 매우 선명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3.
발제자의 연구가, 생활사의 연구였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여집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정치사 일변도의 종래의 역사연구가 가지는 문제점인,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정착시키고, 그러므로, 사회와 문화와 인간의 삶이 상대적으로 간과되는데, 19세기 후반기의 독일인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종교생활을 영위했는지를 밝히는,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학문적 연구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4.
19세기 사회상의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서, 19세기 후반기가, 산업사회로 발전하면서, 합리적인 인식과 조직이 발전하고, 탈주술화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세속화의 흐름 속에서도, 종교는 여전히 유럽인들의 사회와 삶에서 중요한 삶의 의미였다는 것을 잘 밝혀 주었습니다.
이런 연구를 토대로 한다면, 21세기인 현재에서 마찬가지 문제의식의 분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즉 정보혁명, 인터넷 혁명으로 기존의 시,공간의 개념이 혁명적으로 변화하면서, 인간의 삶의 양식이 또 다른 양상으로 변화해 가므로 현대인들에게 종교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제기되지만, 그렇더라도 현대인들이 인간인 한, 영혼의 갈급함과 영적, 육적 쉼의 필요는 여전할 것입니다. 즉 21세기에도 종교는 여전히 현대인들의 삶의 자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가정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봅니다. 그러나 물론 다시 역사학적인 분석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지만 말입니다.
5.
역사의 분석 자료로서, 그림을 택했다는 방법론의 참신성 및 문화성이 돋보였습니다.
역사는 선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자료를 선택해서 연구할 것인가를 보면 그 역사가의 인식과 문화적 역량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존의 문자적인 문헌 연구에서, 상징성을 담아내는 그림의 분석을 전개함으로 연구자의 문화적 식견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6.
교회사를 연구하는 교회사가로서, 발제문에 대한 마지막으로 논평의 말을 첨가하려고 합니다.
여름철 홍수에 오히려 먹을 물이 귀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좋은 자산인 개혁주의 신앙을 견지하고 있는 많은 학자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신앙과 더불어, 통찰력 있는 역사 의식을 아울러서 겸비하고 있는 학자가 매우 희귀한 것이 현재의 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을 축적한 기회주의적인 학자와 역사가들은 많아도, 역사가 가야할 옳바른 길을 전망하면서, 학문을 전개하는 그런 학자, 그런 역사가가 갈급한 현 한국의 학문계를 고려한다면, 발제자의 연구는 매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믿는다는 신뢰의 마음을 전하면서 논평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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