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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자

한국신학의 자리매김 - 21세기 한국 사회를 위한 한국 교회의 역사적 사명

(다음은 유럽기독학술회 annual conference에서 발표한 주제발제문의 요약본입니다.)

제2회 유럽기독학술회 (KAFE) annual conference 주제발제문
2001. 8. 29.
독일 Wuppertal

한국신학의 자리매김 - 21세기 한국 사회를 위한 한국 교회의 역사적 사명
: 선교 제3세대로서,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는 성숙한 공동체로서의 한국 교회의 역할

안인섭

들어가는 글
한국 교회가 21세기의 한국 역사와 사회를 책임질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20세기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한 학문적이고 냉정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역사를 철저히, 그리고 반성적으로 연구해야만, 과거를 비추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가지 중요하고도 당연한 것은, 한국 교회가 지난 20세기에 실제로 그 복음의 사역을 펼친 장소가 바로 한국 사회요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특히 한국 교회의 사명을 한국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목회 현장과 괴리된 신학과 목회는, 결국 생명력을 상실하고 만다는 것이 교회사가 주는 한결같은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본 고에서는 한국 교회의 역사적 사명을 찾아내기 위해서 특히 한국의 역사적 분석에 상대적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 하려고 합니다.
역사인식과 역사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국사 연구의 경우를 빌려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국은 20세기 전반기에 일본의 강제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에 일본의 강점하에서도 그들의 도움으로 경제 개발이 이루어져 해방 후 남한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는데 큰 바탕이 되었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역사 분석은, 식민지 사관에 근거한 식민지 개발론일 뿐입니다. 이 입장을 갖게 되면, 일제 시대에 기독교 진영을 비롯해서 각 진영들이 벌여온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반역사적인 것으로 전락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일본의 "신자유주의 사관"도 그렇게 보입니다. 19세기 후반기에 일본이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침략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일본의 그 침략성 자체에 대한 냉철하고 솔찍한 분석과 인정보다는 오히려 일본의 자위책이었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되는 그런 사관에 불과한 것입니다.
위의 예들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한가지 사실은,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라는 문제는, 단지 역사 학자들만의 학술적인 담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역사 인식을 갖는가에 따라서, 본인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건, 반역사적인 태도를 갖게 될 수도 있다는 진지한 교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한국의 1960, 70년대의 경제성장에 대한 해석이 많이 논의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등장했던 논리는 박정희 정권이 비록 독재는 했다고 하더라도 경제개발은 이룩해 내었다는 논리였습니다. 군사정부의 독재정치로 인한 한국 사회와 문화의 전체적인 퇴보와 왜곡을 미화하는 데서 더 나아가서, 심지어, 그래서 한국 민족에게는, 아직도 완전한 민주주의는 이르다는 자의적인 억설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서, 이것은 우리 민족의 잠재력과 문화적 역량을 과소 평가하다 못해 멸시하는 사대주의적 사고라고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대를 보는 우리의 눈을 좀더 멀리 향하고 깊이있게 성찰한다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더 정당해 보일 것입니다. 즉 1960, 70년대에 한국이 경제적으로 놀라운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군사 정부의 개발독재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성장은, 중세 시대부터 축적되어 온 한국 사회의 잠재력이 만들어낸 문화적 경제적 역량의 결과라고 해석하는 분석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후자의 입장을 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 20세기 한국 역사의 평가
역사적으로 평가하면, 20세기는 한민족에게 불행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전반기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시기였습니다. 더구나, 당시 한국 정도의 상당한 문화 수준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 중에서, 근대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식민 지배를 받게 된 민족은 역사적으로 매우 드문 경우였다고 한국 사학계에서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20세기 후반기는, 우리가 목격한 대로, 한국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서로 싸우거나 대립한 시기로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한 세기간 벌어진 이런 상황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게 보입니다. 한국은 큰 나라들로 둘러 싸인 채로 발전해 왔습니다. 크게 보아서, 중국과 러시아라고 하는 대륙 세력이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차 21세기 최고의 강국 1순위라고 하는 최대의 인구를 가진 중국과,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을 모두 걸치고 있는 러시아 입니다. 모두 강력한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체제가 그 국가의 근저를 이루었던 나라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가까이에 섬나라 일본이 있으며, 태평양을 건너 맞은 편에는 현재 세계 유일의 강국으로 행세하기를 원하는 미국이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모두 자본이 넉넉한 나라들로서 해양 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거대한 두 세력인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만나는 ?/font> 
 
 
 
1. 2001-10-13 08:25:13  
 
 
 
2. 敾?벌여왔던 곳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001-10-13 08:19:42  
 
네덜란드와 한국
이와 관련해서, 역사적 유비로서 저는 네덜란드의 경우를 들고 싶습니다. 네덜란드는 면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 만한 정도의 자그마한 나라입니다. 서,남쪽으로는 독일과 프랑스라는 유럽 대륙의 강대국 세력권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북쪽은 북해라는 바다이며, 동쪽은 바다 건너 해양 세력인 영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해양과 대륙의 세력의 중간에 위치한 매우 작은 나라입니다. 더구나 해수면 보다 낮은 국토로 인해, 수해가 끊이지 않았던 나라입니다. 지정학적, 지형적으로는 매우 불리한 나라이지만, 네덜란드는 유럽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사회가 안정되고 삶의 질이 균등하게 좋은 선진국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불리한 객관적 조건을, 투철한 역사 의식과 절제된 칼빈주의 정신(근검과 절제)으로 극복해 낸 한 예로 평가됩니다. 근대 국가로 독립하던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사회의 정신적 토대를 놓았던 개혁주의 신학과, 정치적, 교회적으로 핍박받던 유럽의 모든 난민에게 안식처를 제공해 주었던 기독교의 자비의 정신은 이 국가 형성에 중요한 사회 정신을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런 네덜란드인들의 개혁주의 신학은, 미국, 호주, 남아공, 인도네시아,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 그리고 한국에 까지 전파되어 영향을 주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네덜란드인들은 불리한 삶의 조건들을, 신앙의 정신과 역사 의식으로 극복하여, 삶의 질이 풍성하며, 세계 역사와 기독교 교회사에 공헌하는 나라를 건설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민족과 교회에게 네덜란드와 그 교회의 역사 모델은 좋은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한국 교회의 역사적 사명
위에서 설명한 바와같이, 20세기 한국 역사를 반성적으로 고찰하고, 21 세기의 비젼을 담아낼 때 성숙한 역량으로 헌신하는 한국 교회의 사명이 찾아지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하여, 몇가지 명제들로 한국 교회의 역사적 사명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 선교 3세대로서 한국 교회와 신학의 정체성을 세우는 작업.
2) 한국의 문화적 역량을 토대로, 세계 신학을 위해 공헌하는 한국 교회
3) 민족사와 세계사의 발전에 공헌하는 한국 교회
4) 평화통일을 위한 학문적인 연구와 실천적 나눔
5) 한국과 세계의 교회들과 동역하는 교회
6) 통전적인 복음 이해 - 삶으로 해석하는 성경
7) 사회(와 생태계)속에서의 복음의 의미와, 사회 복지를 위한 연구
8) 국제적인 디아코니아와 선교의 확대
9) 사회와 교회 내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
10) 교회 교육과 기독교 학교 교육의 활성화
11) 결론적으로, 종말론적 공동체로서의 한국 교회.

나오는 글
21세기에 한국 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으며, 또 감당해야만 하는가라는 오늘의 신학적 담론은, 한국 교회가 놓여있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학문적이고 냉철한 인식에서 찾아질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관이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찌했던 역사를 그 분의 뜻대로 이끌어 가실 것이라는 신앙입니다.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종말론적인 역사 인식입니다. 이 땅(saeculum)에서 한국 교회는 그 사명을 완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각 시대마다 부어주셨던 성령의 능력은 한국 교회에 새 힘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촛대가 한국 교회에서 옮겨지지 않는 한, 한국 교회는 자기 비하(Kenosis)의 정신으로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 실천 과정에서 요구되는 태도는, 탐욕(cupiditas)의 자세가 아니라 자비(caritas)의 자세인 것입니다. (*)

* 부록 *
* 다음 글은 우리의 믿음의 선배이신 주기철 목사님의 설교문중 일부입니다.
[ 그래서 모세는 자기의 권력과 학문과 완력으로 동포를 구해 보겠다는 큰 포부를 가졌다.
그러나 "사람은 믿을 수 없다. 내 힘을 의지할 수 없다"고 탄식하게 되었다.
실망의 가슴을 붙안고 망명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으나,
부귀영화는 헌신짝 같다마는
고통하는 애굽의 동포를 버려두고 떠나가지는 차마 못할 일이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임을 두고 나는 간다
임은 나를 버리어도
나는 임을 못놓으리
임을 두고 가는 몸이
간다한들 아주가랴
하나님의 해방날에
임을 찾아 다시 보리

사랑하는 동포를 버리고 떠난 모세는 십리에 눈물이요 백리에 울음이라.
"미디안" 지경에 넘어서니 쓸쓸할사 광야로다.
"이드로"의 데릴사위가 되니 대장부의 수치로다.

처갓집 양떼를 들에 놓고
마음은 "애굽"의 종살이하는 동포에게 있는지라.
물을 찾는 양들은 애굽에서 굶주리는 동포의 정상인가?
생각하면 슬프기 짝이 없다.
늦은 비 휘뿌리는 빗방울은 "나일"강가에서 울부짓는 내 동포의 눈물이 아닐런가?
소슬한 가을 바람이여,
그 소리가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내 동포의 한숨이 아닐런가?
하늘에 사무치는 이스라엘의 부르짓음이여,
"미디안"들에도 내려오는가 하오.
눈을 감으면 "애굽"이요 꿈을 꾸면 "가나안" 복지!
이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이 아닌가? ]

- 주기철, <일사각오> 중에서 -
 
3. 틈째「?고찰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사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는 다음의 나쁜 결과들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01-10-13 08:02:56  
 
네덜란드와 한국
이와 관련해서, 역사적 유비로서 저는 네덜란드의 경우를 들고 싶습니다. 네덜란드는 면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 만한 정도의 자그마한 나라입니다. 서,남쪽으로는 독일과 프랑스라는 유럽 대륙의 강대국 세력권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북쪽은 북해라는 바다이며, 동쪽은 바다 건너 해양 세력인 영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해양과 대륙의 세력의 중간에 위치한 매우 작은 나라입니다. 더구나 해수면 보다 낮은 국토로 인해, 수해가 끊이지 않았던 나라입니다. 지정학적, 지형적으로는 매우 불리한 나라이지만, 네덜란드는 유럽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사회가 안정되고 삶의 질이 균등하게 좋은 선진국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불리한 객관적 조건을, 투철한 역사 의식과 절제된 칼빈주의 정신(근검과 절제)으로 극복해 낸 한 예로 평가됩니다. 근대 국가로 독립하던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사회의 정신적 토대를 놓았던 개혁주의 신학과, 정치적, 교회적으로 핍박받던 유럽의 모든 난민에게 안식처를 제공해 주었던 기독교의 자비의 정신은 이 국가 형성에 중요한 사회 정신을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런 네덜란드인들의 개혁주의 신학은, 미국, 호주, 남아공, 인도네시아,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 그리고 한국에 까지 전파되어 영향을 주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네덜란드인들은 불리한 삶의 조건들을, 신앙의 정신과 역사 의식으로 극복하여, 삶의 질이 풍성하며, 세계 역사와 기독교 교회사에 공헌하는 나라를 건설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민족과 교회에게 네덜란드와 그 교회의 역사 모델은 좋은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한국 교회의 역사적 사명
위에서 설명한 바와같이, 20세기 한국 역사를 반성적으로 고찰하고, 21 세기의 비젼을 담아낼 때 성숙한 역량으로 헌신하는 한국 교회의 사명이 찾아지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하여, 몇가지 명제들로 한국 교회의 역사적 사명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 선교 3세대로서 한국 교회와 신학의 정체성을 세우는 작업.
2) 한국의 문화적 역량을 토대로, 세계 신학을 위해 공헌하는 한국 교회
3) 민족사와 세계사의 발전에 공헌하는 한국 교회
4) 평화통일을 위한 학문적인 연구와 실천적 나눔
5) 한국과 세계의 교회들과 동역하는 교회
6) 통전적인 복음 이해 - 삶으로 해석하는 성경
7) 사회(와 생태계)속에서의 복음의 의미와, 사회 복지를 위한 연구
8) 국제적인 디아코니아와 선교의 확대
9) 사회와 교회 내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
10) 교회 교육과 기독교 학교 교육의 활성화
11) 결론적으로, 종말론적 공동체로서의 한국 교회.

나오는 글
21세기에 한국 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으며, 또 감당해야만 하는가라는 오늘의 신학적 담론은, 한국 교회가 놓여있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학문적이고 냉철한 인식에서 찾아질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관이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찌했던 역사를 그 분의 뜻대로 이끌어 가실 것이라는 신앙입니다.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종말론적인 역사 인식입니다. 이 땅(saeculum)에서 한국 교회는 그 사명을 완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각 시대마다 부어주셨던 성령의 능력은 한국 교회에 새 힘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촛대가 한국 교회에서 옮겨지지 않는 한, 한국 교회는 자기 비하(Kenosis)의 정신으로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 실천 과정에서 요구되는 태도는, 탐욕(cupiditas)의 자세가 아니라 자비(caritas)의 자세인 것입니다. (*)

* 부록 *
* 다음 글은 우리의 믿음의 선배이신 주기철 목사님의 설교문중 일부입니다.
[ 그래서 모세는 자기의 권력과 학문과 완력으로 동포를 구해 보겠다는 큰 포부를 가졌다.
그러나 "사람은 믿을 수 없다. 내 힘을 의지할 수 없다"고 탄식하게 되었다.
실망의 가슴을 붙안고 망명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으나,
부귀영화는 헌신짝 같다마는
고통하는 애굽의 동포를 버려두고 떠나가지는 차마 못할 일이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임을 두고 나는 간다
임은 나를 버리어도
나는 임을 못놓으리
임을 두고 가는 몸이
간다한들 아주가랴
하나님의 해방날에
임을 찾아 다시 보리

사랑하는 동포를 버리고 떠난 모세는 십리에 눈물이요 백리에 울음이라.
"미디안" 지경에 넘어서니 쓸쓸할사 광야로다.
"이드로"의 데릴사위가 되니 대장부의 수치로다.

처갓집 양떼를 들에 놓고
마음은 "애굽"의 종살이하는 동포에게 있는지라.
물을 찾는 양들은 애굽에서 굶주리는 동포의 정상인가?
생각하면 슬프기 짝이 없다.
늦은 비 휘뿌리는 빗방울은 "나일"강가에서 울부짓는 내 동포의 눈물이 아닐런가?
소슬한 가을 바람이여,
그 소리가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내 동포의 한숨이 아닐런가?
하늘에 사무치는 이스라엘의 부르짓음이여,
"미디안"들에도 내려오는가 하오.
눈을 감으면 "애굽"이요 꿈을 꾸면 "가나안" 복지!
이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이 아닌가? ]

- 주기철, <일사각오> 중에서 -
 
4. 銖?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통찰이 냉철하면 할수록 보다 선명한 미래를 투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20세기의 분석에 근거하면, 이제 21세기 한국 역사의 전망이 보다 구체적으로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2001-10-13 08:19:14  
 
네덜란드와 한국
이와 관련해서, 역사적 유비로서 저는 네덜란드의 경우를 들고 싶습니다. 네덜란드는 면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 만한 정도의 자그마한 나라입니다. 서,남쪽으로는 독일과 프랑스라는 유럽 대륙의 강대국 세력권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북쪽은 북해라는 바다이며, 동쪽은 바다 건너 해양 세력인 영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해양과 대륙의 세력의 중간에 위치한 매우 작은 나라입니다. 더구나 해수면 보다 낮은 국토로 인해, 수해가 끊이지 않았던 나라입니다. 지정학적, 지형적으로는 매우 불리한 나라이지만, 네덜란드는 유럽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사회가 안정되고 삶의 질이 균등하게 좋은 선진국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불리한 객관적 조건을, 투철한 역사 의식과 절제된 칼빈주의 정신(근검과 절제)으로 극복해 낸 한 예로 평가됩니다. 근대 국가로 독립하던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사회의 정신적 토대를 놓았던 개혁주의 신학과, 정치적, 교회적으로 핍박받던 유럽의 모든 난민에게 안식처를 제공해 주었던 기독교의 자비의 정신은 이 국가 형성에 중요한 사회 정신을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런 네덜란드인들의 개혁주의 신학은, 미국, 호주, 남아공, 인도네시아, 헝가리, 체코, 루마니아, 그리고 한국에 까지 전파되어 영향을 주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네덜란드인들은 불리한 삶의 조건들을, 신앙의 정신과 역사 의식으로 극복하여, 삶의 질이 풍성하며, 세계 역사와 기독교 교회사에 공헌하는 나라를 건설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민족과 교회에게 네덜란드와 그 교회의 역사 모델은 좋은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한국 교회의 역사적 사명
위에서 설명한 바와같이, 20세기 한국 역사를 반성적으로 고찰하고, 21 세기의 비젼을 담아낼 때 성숙한 역량으로 헌신하는 한국 교회의 사명이 찾아지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하여, 몇가지 명제들로 한국 교회의 역사적 사명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 선교 3세대로서 한국 교회와 신학의 정체성을 세우는 작업.
2) 한국의 문화적 역량을 토대로, 세계 신학을 위해 공헌하는 한국 교회
3) 민족사와 세계사의 발전에 공헌하는 한국 교회
4) 평화통일을 위한 학문적인 연구와 실천적 나눔
5) 한국과 세계의 교회들과 동역하는 교회
6) 통전적인 복음 이해 - 삶으로 해석하는 성경
7) 사회(와 생태계)속에서의 복음의 의미와, 사회 복지를 위한 연구
8) 국제적인 디아코니아와 선교의 확대
9) 사회와 교회 내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
10) 교회 교육과 기독교 학교 교육의 활성화
11) 결론적으로, 종말론적 공동체로서의 한국 교회.

나오는 글
21세기에 한국 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으며, 또 감당해야만 하는가라는 오늘의 신학적 담론은, 한국 교회가 놓여있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학문적이고 냉철한 인식에서 찾아질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관이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찌했던 역사를 그 분의 뜻대로 이끌어 가실 것이라는 신앙입니다.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종말론적인 역사 인식입니다. 이 땅(saeculum)에서 한국 교회는 그 사명을 완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각 시대마다 부어주셨던 성령의 능력은 한국 교회에 새 힘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촛대가 한국 교회에서 옮겨지지 않는 한, 한국 교회는 자기 비하(Kenosis)의 정신으로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 실천 과정에서 요구되는 태도는, 탐욕(cupiditas)의 자세가 아니라 자비(caritas)의 자세인 것입니다. (*)

* 부록 *
* 다음 글은 우리의 믿음의 선배이신 주기철 목사님의 설교문중 일부입니다.
[ 그래서 모세는 자기의 권력과 학문과 완력으로 동포를 구해 보겠다는 큰 포부를 가졌다.
그러나 "사람은 믿을 수 없다. 내 힘을 의지할 수 없다"고 탄식하게 되었다.
실망의 가슴을 붙안고 망명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으나,
부귀영화는 헌신짝 같다마는
고통하는 애굽의 동포를 버려두고 떠나가지는 차마 못할 일이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임을 두고 나는 간다
임은 나를 버리어도
나는 임을 못놓으리
임을 두고 가는 몸이
간다한들 아주가랴
하나님의 해방날에
임을 찾아 다시 보리

사랑하는 동포를 버리고 떠난 모세는 십리에 눈물이요 백리에 울음이라.
"미디안" 지경에 넘어서니 쓸쓸할사 광야로다.
"이드로"의 데릴사위가 되니 대장부의 수치로다.

처갓집 양떼를 들에 놓고
마음은 "애굽"의 종살이하는 동포에게 있는지라.
물을 찾는 양들은 애굽에서 굶주리는 동포의 정상인가?
생각하면 슬프기 짝이 없다.
늦은 비 휘뿌리는 빗방울은 "나일"강가에서 울부짓는 내 동포의 눈물이 아닐런가?
소슬한 가을 바람이여,
그 소리가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내 동포의 한숨이 아닐런가?
하늘에 사무치는 이스라엘의 부르짓음이여,
"미디안"들에도 내려오는가 하오.
눈을 감으면 "애굽"이요 꿈을 꾸면 "가나안" 복지!
이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이 아닌가? ]

- 주기철, <일사각오> 중에서 
 
http://blog.daum.net/kkho1105/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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