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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자

역사를 위한 에세이

역사를 위한 에세이
(원제- 역사는 전진한다.)
 
진리는 승리하는가? 선은 반드시 악을 이기는가? 역사는 전진하는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이고 가야만 하는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역사상 그 어느 한 순간도 그 분의 얼굴과 맞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고백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스승인 칼빈도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극장과도 같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서 느끼는 우리의 경험은, 과연 역사가 그렇게 전진하고 있는가?라는 딜레마를 낳게 하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문제를 네덜란드의 한 역사 현장을 통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암스테르담에서, 혹은 캄펜에서 승용차로 1시간 남짓 북쪽으로 달려 올라가면, 프라네꺼라는 도시에 도착하게 됩니다. 화란은 물론이고 유럽권에서 공부하시는 분이라면 금방 기억할 한 프라네꺼 서점(정확한 원 이름은 베이버, wever 서점인데)이 위치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 자그마한 도시에, 이미 1585년에 대학이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적지 않게 놀랄 것입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마지막 판이 나온지 불과 26년후이며, 화란에서 가장 먼저 세워졌던 레이든 대학(1575)의 뒤를 이어 단지 10년 후에 학문의 전당이 선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받아들여서 학문적으로 발전키시던 곳입니다. 이 대학의 설립이 의미하는 것은, 종교 개혁 이후 화란 북쪽인 프리스란트 지역이 자체의 목회자 양성 대학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럽의 북쪽에 위치한 이 옛 대학은, 당시 화란은 물론이거니와 독일, 헝가리, 스칸디나비아 반도, 프랑스, 그리고 영국 등 전 유럽에서 학생들이 모여드는 곳이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종교개혁기에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정치적, 종교적으로 박해를 받던 종교개혁의 후예들입니다. 영육간의 안식을 찾고 지속적인 종교개혁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이곳으로 모여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프라네꺼를 방문해 보면, 대학 건물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단지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 대학은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 시대를 통해서, 1811년에 그 문을 닫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전체주의의 이데올로기에 종교 개혁 사상의 자유가 희생을 당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 시대 이후에도 이 대학은 다시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학교가 위치했던 프리스란트 지역이, 화란 내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것이 중요한 이유중 하나라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프라네꺼 대학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종교개혁적 사상은 완전히 잠들어 버렸는가? 오늘날 프리스란트 지역의 개혁 교회들은 극대화된 정치 권력과 사회적 힘의 논리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는가?
역사는 퇴보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의외로 반대의 대답을 얻게 됩니다.

지금도 화란 전체에서, 가장 많은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가지고 있는 곳은 바로 프리스란트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여전히 왕성한 종교개혁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예는, 화란의 많은 신학 대학에 진학하는 절대 다수의 젊은이들이, 바로 프리스란트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화란의 신학 교수, 목회자,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교제하고 있는 젊은 신학자, 목회자들도 흥미있게도 이 지방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 당장 보이는 현실은, 역사가 전진한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권력의 위력은 어느 순간, 신앙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누르는 듯 할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이 맞았고 어거스틴이 옳았습니다.
역사는 전진합니다.
하나님께서 손수 지으신 창조 세계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우리 인간, 독생자의 생명으로 맞바꾼 인격 하나 하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려는, 그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방법과 인간의 지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그의 자녀들을 품으시고 위로하시며 격려하시는 주님의 팔에 의해서, 인간의 역사는 움직여 지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사가 증언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종교개혁사가 주는 교훈 또한 그렇습니다. 기독 교회는 인간의 눈에는 작고 힘이 없어 보였지만, 결국 국경을 넘고 이념을 초월하여 세계 곳곳에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신학의 사명이 자리매김 된다고 봅니다.
신학은 세속적인 권력의 논리를 뒷받침하고 그것에서 부과되는 그 어떤 것을 얻기 위한 지적 악세사리가 아니라, 세상이 감당할 수 없었던 우리의 선조들의 신앙처럼,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가 환히 보이는 것처럼 믿으며, 자신을 쳐서 복종함으로 묵묵히 그리스도를 따름의 길을 제시하는( Following Christ) 제자도의 신학이어야 할 것입니다.
역사의 전진을 믿는 이 신학은, 21세기의 한국 교회에 희망을 줄 것이며, 세계 교회에 빛을 비추일 것입니다.
국경과 인종, 이념과 계층, 성별과 연령을 초월하여, 막힌 담을 허물게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안에서 자유케 하는 성령의 능력은, 오늘도 여전히 역사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전진합니다. (*)

네덜란드 캄펜에서
안인섭.
(* 이 글은 유럽개혁신학연구소 http://www.krtheology.org 에 게시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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