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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자

제자 훈련에서 간과된 바 몇 가지

제자 훈련에서 간과된 바 몇 가지
http://blog.daum.net/kkho1105/2934

   한국 교회 내에 제자 훈련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뿌리 내리도록 줄기차게 자극한 요인으로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초창기 네비게이토 선교회(Navigators)를 포함한 대학생 선교 단체들의 사역과 자료들이다. 이들의 활동은 이미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둘째, <사랑의 교회>를 현장으로 해서 <평신도를 깨운다> 사역을 한 옥한흠 목사의 공헌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1980년대부터 역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전자가 주로 캠퍼스 현장과 대학생 사역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후자는 지역 교회와 중장년층 교우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제자 훈련이 한국 교회에 기여한 바는 현재까지만 하더라도 (i) 평신도 지도자들의 훈련과 활성화, (ii) 전통적 목회 구조의 보완, (iii) 교회 사역에 대한 목회자들의 의식 변화, (iv) 교회 성장과의 연계 등 다양하다. 동시에 지난 반 세기를 돌아보며 그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미흡하거나 보완되어야 할 바가 무엇인지 공론화하는 것도 현 시점에서 매우 중차대한 과제일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후자와 관련하여 몇 가지 사항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첫째, “제자 훈련”에 관한 개념 정립이 시급히 요구된다. 똑같이 제자 훈련을 말하면서도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지칭하는 것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자 훈련과 연관되어 등장하는 각 가지 개념들 -- 재생산(reproduction), 그리스도인의 성숙/성장(Christian maturity/growth), 개인 양육(1:1 follow-up), 평신도 지도자 훈련(lay leadership training), 예수를 따르는 고난의 삶(cost of discipleship) -- 을 한데 모으고 전체적인 구도를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둘째, “제자” 및 “제자 훈련”과 관련하여 심각한 학문적 연구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우선 성경학(Biblical studies)적 연구가 필요하다. 구약부터 시작해 복음서들을 거쳐 서신 부분에 이르기까지 이 주제를 고찰하되, 특히 복음서를 이러한 시각에서 연구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이 방면에서 Michael J. Wilkins의 탁월한 저술 Following the Master (Zondervan, 1992; 은성, 1995)가 출간되었다.] 뿐만 아니라 목회학, 교회론, 기독교 교육 분과와의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 또한 등한시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제자 훈련 커리큘럼의 계발이다. 지금까지 제자 훈련이 주로 “어떻게”(how)와 “왜”(why)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그들에 못지않게 중요한 영역이 “무엇을”(what)의 문제이다. 물론 혹자는 지금 교회마다 제자 훈련 프로그램이 잘 돌아 가고 있고 제자 훈련 내용에 대한 책자가 이토록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는데, 더 이상 무슨 커리큘럼이 필요하냐고 의구심에 가득 찬 눈길을 던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필자는 특히 이 셋째 사항과 관련하여 응수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문제점 몇 가지 -- 물론 이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데 -- 를 거론하고자 한다.
 

   첫째,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자격 조건으로 종종 재물의 완전한 포기가 언급된다. 이 때 보통 “저희가 …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눅 5:11)나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33)는 내용이 회자되곤 한다. 실제로 과거 어떤 선교 단체에서는 이러한 성구에 기초하여 재물이나 직업의 포기를 요구한 예가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꼭 모든 재물을 포기해야 하는가?
   둘째, “제자”라는 단어는 주로 복음서에만 등장하고 신약의 나머지 부분(사도행전 제외)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성도,” “그리스도인,” “제사장,” “종,” “일군” 등의 다양한 명칭이 등장한다. 이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셋째, 제자 훈련을 강조하는 이들은 너무나 많은 경우 복음서에서만 교훈을 찾아 낸다. (이것은 사실 두 번째에서 지적한 문제점과 연관이 있다.)  따라서 신약의 다른 많은 부분 -- 특히 서신서 -- 을 도외시하든지 그런 것과 무관히 진리의 체계를 구축하기가 십상이다. 이것은 성경의 통일성과 전체성의 교리에 어긋나는 처사이다.
   넷째, 역시 연관된 사안으로서 제자 훈련과 교회 사역의 사이의 간극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복음서에는 “교회”에 대한 언급이 두 번밖에 없고 (그것도 마태복음에만 등장함), 반면 교회의 삶은 주로 사도행전과 서신서에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선교 단체에 투신한 그리스도인이 교회 생활을 중요시하지 않는 신학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양극화적 편중 현상을 어떻게 교정할 수 있을까?
 

   상기한 의문점과 질문 사항을 옳게 다루려면 결국 우리는 “제자”라는 주제에 관한 성경학적 고찰이 요구된다. 필자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훈련한 내용의 핵심이 (i) 하나님과의 관계 [임재 의식], (ii) 형제 (및 자매) 사이의 관계 [지체 의식], (iii) 세상과의 관계 [선교 의식]의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1)
 

   이러한 세 가지 내용의 파악은 최소 두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도록 해 준다. 첫째, 성경의 중요한 주제를 성경신학적으로 정리한다는 이점이 있다. 구약에서도 이 세 가지 주제는 현저히 부각되어 있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i)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ii) 언약 백성으로서 상호 간의 관계, (iii) 이방에 대한 중보자적 관계가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신약으로 넘어와서 예수께서도 이 세 가지 영역에서 제자들을 훈련시키셨고,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오늘날의 우리 포함) 역시 이러한 세 가지 영역에서 성숙을 해 가야 하는 것이다.
   둘째, 제자 훈련의 내용을 목회 대상의 수준, 특수성, 실정에 따라 융통성 있게 마련할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제자 훈련이 어떤 특수한 사안이나 목표로만 쏠릴 수도 있고, 고착화된 프로그램 안에 갇혀 획일적 모습의 제자들만을 양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라는 커다란 틀만 확보한다면 그러한 편협과 편중성의 소치는 사라질 것이다. 또 이러한 세 가지 영역의 틀만 유지하면, 이에 포함되는 세부적 교육 내용이나 훈련 사항은 얼마든지 적실하고 다양하고 필요에 맞게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 내에 제자 훈련의 활동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무척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 더 큰 도약과 비상을 위해서, 우리 앞에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의 사안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그 가운데 제자 훈련 커리큘럼의 형성은 성경신학적으로나 목회 교육적으로나 매우 시급하고 필수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록: 신약에 나타나는 “제자” 및 “제자 훈련”
 

 (1) “제자”(maqhthv"): 복음서에만 등장 (사도행전 제외하면)
  (i) 의미: follower, learner.
 

  (ii) 방식: 도제(apprenticeship).
  (iii) 핵심적 특징: 신체적 근접성 (physical adjacency).
       “제자”라는 단어에 내재되어 있는 바 신체적 근접성(physical adjacency)이라는 개념은 구체적으로 예수님과 함께한 무리에게도 적용된다. 그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누구이든, 그 대상에 대해 그토록 철저한 요구 사항이 부과된 것은 바로 이 개념 때문이었다. 예수는 떠돌이 선생(itinerant rabbi)으로서 항시 이동 상태에 계셨다. 그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그를 좇는 자가 되어야 했다. (“좇다”(to follow)라는 동사는 복음서에 80회 가량 나타나는데 모두가 다 지상의 예수와 그 동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묘사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이 단어는 제자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제자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그의 직업(막 1:18-19), 그의 부모 (막 10:29), 모든 것 (막 10:28)을 떠나야 했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심지어 죽음에까지 나아가야 (마 10:38) 했다 ‥‥
       놀랍게도 “제자”란 단어는 복음서와 사도행전 이외에는 단 한 번도 신약에 등장하지 않는다. 또 “좇다”라는 동사 -- 제자에 대한 동의어로 복음서에 빈번히 사용된 단어 -- 역시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제외하고는 꼭 두 번만 나타나고 (계 14:4; 19:14), 그것도 부활하신 주님과 그의 신봉자들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만 사용된다는 사실 또한 교훈적이다. 그리하여 서신서의 기자들은 “제자” 및 “좇는다” 라는 단어의 의미에서, 새로운 시대에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사제지간의 관계를 발견했기 때문에, 그 단어들을 그들의 어휘에서 제외시킨 것이었다. 그것은 지상 사역 시 예수의 제자들에 대한 요구 사항들 -- 직업을 버리고 부모를 떠나는 것 --이 일반적 원리로 둔갑해, 이제 승귀하신 하늘의 주님이신 그 분을 믿는 이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처럼 될까봐 두려워 했기 때문이었다 [Gerald F. Hawthorne, "Disciple," The Zondervan Pictorial Encyclopedia of the Bible, Vol. 2: D-F, ed. Merril C. Tenney, (Grand Rapids, Michigan: Zondervan, 1980), p. 130).
  (iv) 변동.
     ① 버림: 마 4:18-22; 눅 5:11; 눅 14:33 [가족, 직업, 재물].
 

     ② 다시 취함: 고전 9:5.
 

 (2) 문화와 성경 해석
  (i) 도식.
 
 
          
         초문화적                         초문화적                          추문화적
         메시지                          메시지                            메시지 
       성경의 문화                                                 우리의 문화
 

  (ii) 몇 가지 예.
     ① 출 3과 모세.
     ② 고전 16:20.
     ③ 요 13:13-15.
 

 (3) △ 찾기 운동
  (i) 세 요소.
                    십자가와 부활                        오순절          
        성구
 요소
 막 3:13-15
 요 20:19-21
 마 28:18-20
 행 2:42-47
 로마서
 골로새서
 
첫 요소
 v.14 자기와 함께 있음.
 
 
 
 v.20 손과 옆구리 [십자가]
v.19 닫힌 문 사이로 오심[부활]
v.19 가운데 서서 [임재]
 v.18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심
v.20 세상 끝날까지 너희가 항상 함께함.
 v.47 찬미
 1-8장
 하나님과의 관계
 [믿음으로 의롭다함 받음].
9-11장
 유대인들의 하나님 관계
 1:13-3:11
그리스도와의 관계
 
둘째 요소
 v.14 (저희가)
 
 
 
 v.21 “너희”
 v.19 “너희”
v.20 "너희“
 vv. 44-46
   성도간 소통
 12:3 자아상
12:4-20
13:8-10
14:1-23  이웃관계
15:1-7
16:1-24
 1:1-12 문안과 중보 기도
3:12-17 공동체 생활
4:7-17 문안
 
셋째 요소
 v.14 보내사
    (ajpostevllw)
 
 
 
 v.21 보내신 것[단회]
  (앞:ajpostevllw)
v.21 보내노라[지속]
  (뒤:pevmpw)
 v.19 “가서”
 v. 47 칭송받음
   구원 받는 일
 13:1-7 정부관계
15:8-29 이방인 선교
 3:18-4:1 가정 공동체
4:2-6 세상 공동체
 
 
  (ii) △의 정체.
                             임재의식(하나님)
 
 

                                 제자도
 
 

                     지체의식(교회)            선교의식(세상)
 

 (4) 사복음서와 행전 및 서신 사이의 연결
  (i) 그리스도 지상 사역: 구속의 실현 --------> 그리스도의 천상 사역: 구속의 적용.
 

  (ii) 성령의 특수 역사 --------> 성령의 보편 역사.
 

  (iii) 지리․문화적 특수성 --------> 사마리아/땅끝 (세계적․이방적).
 

  (iv) 교회의 예고 --------> 교회의 설립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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