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장에 관하여
교회 성장에 관하여
송인규 교수(합동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회 성장이라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개교회 구성원의 수 적 증가로 이해합니다. 수 적인 교회 성장에 대해 그리스인들은 찬반으로 팽팽히 맞서 있습니다. 찬성을 하는 이들은 (i) 사도행전의 숫적 표현(행 2: 41, 47; 4: 4; 5: 14; 6: 7; 9: 31; 11: 21, 25; 13: 43; 17: 4, 12)에서 성경적 근거를 찾고, (ii) 현재 한국 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며, (iii) 대(大)교회주의적 경향이나 추세를 정당화하고자 합니다.
반면 숫적인 교회 성장을 반대하는 이들은 (i) 사도행전 이외에는 별로 양적 성장을 언급하는 성경 구절이 없고(오히려 바울 서신의 경우 질적 성숙에 대해서만 강조), (ii) 현재 한국 교회가 양적 성장에만 치우쳐 심한 부작용에 직면했고, (iii)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150~200명 이하의 규모에 머무르고 있음을 감안할 때 외적 규모에만 급급한 우리의 가치체계가 끼치는 해악이 실로 대단함을 보이며, 반대의 기치를 드는 것입니다.
교회 성장: 의미 혼동의 원인
일단 논의의 편의성을 위해 교회 성장을 수 적 증가에 국한하여 정의하겠습니다(사실 진정한 성장이란 양적․질적인 면 모두를 아울러야겠지만). 교회 성장을 단순히 수 적 증가로 파악한다고 해도 이 문제에는 묘한 혼선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 수 적 증가를 개교회의 편에서 파악하느냐 아니면 한 나라 전체의 입장에서 말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하는 바는 사뭇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연 2005년 한 해 동안 교회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졌느냐는 질문에 대해 두 가지 서로 상반된 답변이 가능합니다. 만일 교회 성장을 한국 교회 전체의 편에서 말한다면, 분명 그 대답은 부정적일 것입니다. 대부분이 인정하다시피 한국 교회는 90년대 중반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교회에 따라서는 상황이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의 다소 자랑스러운 의견에 따르면, 그의 교회에는 매주 200명 정도의 새로운 교인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교회 성장이 끊임없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서로 상반된 주장이 나오는 것은 교회 성장을 각자 다른 시각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혼선 원인은 수적 증가의 대상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만일 양적 성장을 회심―비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는 일―과 관련해서 생각한다면, 오늘날 흔히 한국 교회에서 얘기하는 '부흥'이나 '교회 성장'은 사실 부흥도 교회 성장도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인들의 수평 이동이 비일비재한 일임을 알 때, 이것은 결코 회심의 의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의 예처럼 새로운 교인들이 200명씩 찾아와서 그 중 30명 정도가 정착했다고 합시다. 그것은 개교회의 수효 증가에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불신자가 신자로 변화된 회심자의 변화에 기여한 것은 아닙니다. 결코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회 성장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한국 교회의 수 적 증가는 (i) 개교회적 관점과 (ii) 신자의 수평 이동을 위주로 이해되기 때문에, 목회
실정에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 명확한 이해를 위해 또 다른 상황을 보도록 합시다. 지역 주민의 96%가 이슬람 신봉자인 어느 모슬렘 지역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그 교회의 목회자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교회 성장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을 때, 그것은 참으로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i) 기독교 전체의 상황이 너무 미미하고 (ii) 이 곳에서의 수 적 증가는 모슬렘 교도들이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상황에서 주장하는 교회 성장의 문제점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거론되는 교회 성장은 모슬렘 지역의 교회 성장과 전혀 그 맥락을 달리합니다. 그저 개교회적 차원에서의 수평 이동―교인들이 여러 이유로 인해 교회의 적(籍)을 옮김으로써 야기된 현상―을 가리켜 교회 성장이라고 합니다. 이런 교회 성장은 교회 및 목회자 간의 어쩔 수 없는 경쟁만을 조장하고 기독교 전체의 성장에는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 교회 성장이 이런 문제점을 갖게 되었을까요? 크게 세 가지 요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한국 교회는 70-80년대 부흥을 경험하면서 무리한 정도의 개척을 목표하고 실천했습니다. 교단별로 경쟁하듯 ‘~ 교회 운동’―1,000 교회 운동, 만 교회 운동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운동은 교회 개척을 유도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신학생의 양산으로 지도자의 질적 저하와 목회자의 과잉 공급이라는 구조적 문제들을 낳았습니다. 그나마 80년대 말까지는 교회 개척이 지금만큼 힘들지 않았지만, 90년대 이후로 마이너스 성장과 맞물리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즉 복음 전도가 힘들어진 지금의 상황에서 교회 개척은 기신자들에 대한 과도한 집중을 야기했고 필연적으로 신자에 대한 경쟁적 분할과 심지어 탈취―어떤 이는 이것을 도양(盜羊, sheep-stealing)이라고 칭했는데―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둘째, 80년대 이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주변에 위성 도시가 앞다투어 들어서면서 자연히 인구가 분산되었고 더불어 그리스도인구 또한 흩어지기도 모이기도 하였습니다. 서울의 경우 강남 지역의 개발 및 확대는 물론 과천, 일산, 분당, 평촌, 하남 등 수없이 많은 신도시들의 세워졌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아파트 단지로 구성된 터라 인구의 밀집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신도시 개발로 인해 불과 10 여 년 사이에 그리스도인의 대이동이 있었고, 신도시에 세워진 일부 교회들은 성도의 수평 이동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았습니다. 이 현상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교회 성장’하면 으레 새로운 지역에서의 수 적 증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목회자들의 심리적 압박 역시 수 적 증가에만 집중하게 된 요인입니다. 교회 개척을 꿈꾸는 목회자들은 최소 두 가지 항목―재정적 독립 및 사역의 확장―에 늘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동료 목회자들과 비교하게 되고, 자존감이 흔들리는가 하면, 보람과 실망 사이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의 성취가 바로 수 적 증가로 이루어지게끔 되어 있어 목회자들이 그토록 ‘교회 성장’에 목숨을 걸게 된 것입니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여전히 교회 성장을 곧 개교회의 숫자 증가 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수 적 증가
그렇다면 일반적 의미에서―교인들의 수평 이동에 의거한 개교회 회중의 수 적 증가―와 성경적 교훈 사이에서의 교회 성장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교회 성장에 어떤 특징이 수반되어야 그것을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가령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 성장만 보더라도, 다음과 같은 필수적 면모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첫째,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교회 성장은 신자의 수평 이동에 따른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비신자의 회심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오순절(행 2: 44)을 시작으로 베뢰아 지역(행 17: 12)에 이르기까지 동일합니다.
둘째, 성경의 교회 성장은 신자의 내면적 변화와 더불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질적 성숙(행 2: 42~47; 6: 7; 9: 31; 고전 3: 6; 엡 4: 13~15; 골 1: 28; 2: 19)이 동반되지 않은 교회 성장이란 성경이 지향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문제투성이 교회 성장―실상은 교회 성장이 아닌―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 성경에서 보여 주는 교회 성장에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대한 외부인―즉 비그리스도인―의 긍정적 반응[칭송, 존경]이 따랐다는 점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수 적 증가와 관련해 두 번씩이나 일반 백성의 칭송을 언급하고 있습니다(행 2: 47; 5: 13~14). 즉, 진정한 교회 성장은 불신 세계에 대한 교회의 아름다운 영향력과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교회 성장’이라는 단어는 이처럼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는데, 과연 그 ‘교회 성장’에 위의 세 양상 또한 함께하고 있을까요?
첫째, 우리의 수 적 성장은 전도의 노력에 의한 열매가 맞나요? 아니면 그저 교인끼리의 수평 이동이나 교회 이적에 따른 것인가요?
둘째, 우리의 수 적 증가는 내면적 성숙 및 변화와 맞물려 일어나고 있나요? 아니면 그런 질적 발전과는 무관하게 그저 외형적 통계에 불과한가요?
끝으로, 우리의 교회 성장은 과연 비그리스도인―타종교인이나 일반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나요? 아니면 우리가 외적 부흥을 자랑하는 뒤안에 여전히(아니면 더 심한) 일반인들의 조소와 비난이 가득 차 있나요?
여러분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출처] 교회 성장에 관하여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 |작성자 주나그네
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696
송인규 교수(합동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회 성장이라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개교회 구성원의 수 적 증가로 이해합니다. 수 적인 교회 성장에 대해 그리스인들은 찬반으로 팽팽히 맞서 있습니다. 찬성을 하는 이들은 (i) 사도행전의 숫적 표현(행 2: 41, 47; 4: 4; 5: 14; 6: 7; 9: 31; 11: 21, 25; 13: 43; 17: 4, 12)에서 성경적 근거를 찾고, (ii) 현재 한국 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며, (iii) 대(大)교회주의적 경향이나 추세를 정당화하고자 합니다.
반면 숫적인 교회 성장을 반대하는 이들은 (i) 사도행전 이외에는 별로 양적 성장을 언급하는 성경 구절이 없고(오히려 바울 서신의 경우 질적 성숙에 대해서만 강조), (ii) 현재 한국 교회가 양적 성장에만 치우쳐 심한 부작용에 직면했고, (iii)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150~200명 이하의 규모에 머무르고 있음을 감안할 때 외적 규모에만 급급한 우리의 가치체계가 끼치는 해악이 실로 대단함을 보이며, 반대의 기치를 드는 것입니다.
교회 성장: 의미 혼동의 원인
일단 논의의 편의성을 위해 교회 성장을 수 적 증가에 국한하여 정의하겠습니다(사실 진정한 성장이란 양적․질적인 면 모두를 아울러야겠지만). 교회 성장을 단순히 수 적 증가로 파악한다고 해도 이 문제에는 묘한 혼선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 수 적 증가를 개교회의 편에서 파악하느냐 아니면 한 나라 전체의 입장에서 말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하는 바는 사뭇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연 2005년 한 해 동안 교회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졌느냐는 질문에 대해 두 가지 서로 상반된 답변이 가능합니다. 만일 교회 성장을 한국 교회 전체의 편에서 말한다면, 분명 그 대답은 부정적일 것입니다. 대부분이 인정하다시피 한국 교회는 90년대 중반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교회에 따라서는 상황이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의 다소 자랑스러운 의견에 따르면, 그의 교회에는 매주 200명 정도의 새로운 교인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교회 성장이 끊임없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서로 상반된 주장이 나오는 것은 교회 성장을 각자 다른 시각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혼선 원인은 수적 증가의 대상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만일 양적 성장을 회심―비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는 일―과 관련해서 생각한다면, 오늘날 흔히 한국 교회에서 얘기하는 '부흥'이나 '교회 성장'은 사실 부흥도 교회 성장도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인들의 수평 이동이 비일비재한 일임을 알 때, 이것은 결코 회심의 의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의 예처럼 새로운 교인들이 200명씩 찾아와서 그 중 30명 정도가 정착했다고 합시다. 그것은 개교회의 수효 증가에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불신자가 신자로 변화된 회심자의 변화에 기여한 것은 아닙니다. 결코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회 성장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한국 교회의 수 적 증가는 (i) 개교회적 관점과 (ii) 신자의 수평 이동을 위주로 이해되기 때문에, 목회
실정에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 명확한 이해를 위해 또 다른 상황을 보도록 합시다. 지역 주민의 96%가 이슬람 신봉자인 어느 모슬렘 지역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그 교회의 목회자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교회 성장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을 때, 그것은 참으로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i) 기독교 전체의 상황이 너무 미미하고 (ii) 이 곳에서의 수 적 증가는 모슬렘 교도들이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상황에서 주장하는 교회 성장의 문제점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거론되는 교회 성장은 모슬렘 지역의 교회 성장과 전혀 그 맥락을 달리합니다. 그저 개교회적 차원에서의 수평 이동―교인들이 여러 이유로 인해 교회의 적(籍)을 옮김으로써 야기된 현상―을 가리켜 교회 성장이라고 합니다. 이런 교회 성장은 교회 및 목회자 간의 어쩔 수 없는 경쟁만을 조장하고 기독교 전체의 성장에는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 교회 성장이 이런 문제점을 갖게 되었을까요? 크게 세 가지 요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한국 교회는 70-80년대 부흥을 경험하면서 무리한 정도의 개척을 목표하고 실천했습니다. 교단별로 경쟁하듯 ‘~ 교회 운동’―1,000 교회 운동, 만 교회 운동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운동은 교회 개척을 유도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신학생의 양산으로 지도자의 질적 저하와 목회자의 과잉 공급이라는 구조적 문제들을 낳았습니다. 그나마 80년대 말까지는 교회 개척이 지금만큼 힘들지 않았지만, 90년대 이후로 마이너스 성장과 맞물리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즉 복음 전도가 힘들어진 지금의 상황에서 교회 개척은 기신자들에 대한 과도한 집중을 야기했고 필연적으로 신자에 대한 경쟁적 분할과 심지어 탈취―어떤 이는 이것을 도양(盜羊, sheep-stealing)이라고 칭했는데―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둘째, 80년대 이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주변에 위성 도시가 앞다투어 들어서면서 자연히 인구가 분산되었고 더불어 그리스도인구 또한 흩어지기도 모이기도 하였습니다. 서울의 경우 강남 지역의 개발 및 확대는 물론 과천, 일산, 분당, 평촌, 하남 등 수없이 많은 신도시들의 세워졌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아파트 단지로 구성된 터라 인구의 밀집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신도시 개발로 인해 불과 10 여 년 사이에 그리스도인의 대이동이 있었고, 신도시에 세워진 일부 교회들은 성도의 수평 이동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았습니다. 이 현상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교회 성장’하면 으레 새로운 지역에서의 수 적 증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목회자들의 심리적 압박 역시 수 적 증가에만 집중하게 된 요인입니다. 교회 개척을 꿈꾸는 목회자들은 최소 두 가지 항목―재정적 독립 및 사역의 확장―에 늘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동료 목회자들과 비교하게 되고, 자존감이 흔들리는가 하면, 보람과 실망 사이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의 성취가 바로 수 적 증가로 이루어지게끔 되어 있어 목회자들이 그토록 ‘교회 성장’에 목숨을 걸게 된 것입니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여전히 교회 성장을 곧 개교회의 숫자 증가 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수 적 증가
그렇다면 일반적 의미에서―교인들의 수평 이동에 의거한 개교회 회중의 수 적 증가―와 성경적 교훈 사이에서의 교회 성장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교회 성장에 어떤 특징이 수반되어야 그것을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가령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 성장만 보더라도, 다음과 같은 필수적 면모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첫째,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교회 성장은 신자의 수평 이동에 따른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비신자의 회심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오순절(행 2: 44)을 시작으로 베뢰아 지역(행 17: 12)에 이르기까지 동일합니다.
둘째, 성경의 교회 성장은 신자의 내면적 변화와 더불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질적 성숙(행 2: 42~47; 6: 7; 9: 31; 고전 3: 6; 엡 4: 13~15; 골 1: 28; 2: 19)이 동반되지 않은 교회 성장이란 성경이 지향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문제투성이 교회 성장―실상은 교회 성장이 아닌―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 성경에서 보여 주는 교회 성장에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대한 외부인―즉 비그리스도인―의 긍정적 반응[칭송, 존경]이 따랐다는 점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수 적 증가와 관련해 두 번씩이나 일반 백성의 칭송을 언급하고 있습니다(행 2: 47; 5: 13~14). 즉, 진정한 교회 성장은 불신 세계에 대한 교회의 아름다운 영향력과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교회 성장’이라는 단어는 이처럼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는데, 과연 그 ‘교회 성장’에 위의 세 양상 또한 함께하고 있을까요?
첫째, 우리의 수 적 성장은 전도의 노력에 의한 열매가 맞나요? 아니면 그저 교인끼리의 수평 이동이나 교회 이적에 따른 것인가요?
둘째, 우리의 수 적 증가는 내면적 성숙 및 변화와 맞물려 일어나고 있나요? 아니면 그런 질적 발전과는 무관하게 그저 외형적 통계에 불과한가요?
끝으로, 우리의 교회 성장은 과연 비그리스도인―타종교인이나 일반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나요? 아니면 우리가 외적 부흥을 자랑하는 뒤안에 여전히(아니면 더 심한) 일반인들의 조소와 비난이 가득 차 있나요?
여러분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출처] 교회 성장에 관하여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 |작성자 주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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