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그리고 변화
은혜 그리고 변화
사무엘하 9장 1∼13절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가 다스리는 은혜의 왕국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다윗 왕이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자기 왕궁으로 불러들인 사건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불러온 3대 변화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 이름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에 사람의 정체성이 바뀝니다. 시바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므비보셋은 ‘절름발이’에 불과했습니다. 므비보셋 자신도 자신을 ‘죽은 개’로 자처했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임할 때에 다윗은 그에게 ‘므비보셋’이라는 이름을 불러줍니다. 나아가 그를 ‘왕자’로 대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정체성을 회복시킵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더 이상 외적 특징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하여 정해집니다. 외적 자질이 아니라 내면적인 태도로 규정됩니다. 이러한 은혜의 기초는 언약적 사랑입니다. 다윗이 요나단과 맺은 언약 때문에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푼 것처럼,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으로 인하여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 자녀의 복을 주십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가 됩니다.
둘째, 소유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에는 소유가 변화됩니다. 반역자 집안의 자손 므비보셋은 죽음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죽은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것처럼 생명을 보장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은혜로 그를 살려주었고 그의 아들의 생명도 보장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곳에는 생명이 회복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반역죄로 몰수된 기업을 회복하는 것은 므비보셋이 꿈도 꾸지 못할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신분이 회복된 그에게 사울의 기업을 돌려주었습니다. 신약에서 기업의 회복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심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업이 되시고(엡 1:3∼14),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습니다(고전 1:30). 그 누구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업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셋째, 장소의 변화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을 피하여 ‘로드발’이란 곳에 거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베푼 은혜는 그를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이고 왕의 식탁으로 초대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왕을 피해 간 변방에서 왕의 도성으로, 왕궁으로, 왕의 식탁으로 장소가 변하는 것은 분명 은혜가 가져온 변화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외인이었던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두시고 하나님의 기업을 누리며 친밀한 교제를 나누도록 부르셨습니다. 예수님도 자신 안에 있는 우리를 결코 내쫓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 또한 없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구원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은혜입니다.
므비보셋이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 받은 사람의 모델이라면, 다윗은 자신을 은혜의 통로로 드린 사람의 전형입니다. 우리는 먼저 은혜 중심의 삶을 살되, 은혜가 왕 노릇을 하도록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성주진 총장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1783831&cp=nv
사무엘하 9장 1∼13절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가 다스리는 은혜의 왕국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다윗 왕이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자기 왕궁으로 불러들인 사건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불러온 3대 변화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 이름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에 사람의 정체성이 바뀝니다. 시바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므비보셋은 ‘절름발이’에 불과했습니다. 므비보셋 자신도 자신을 ‘죽은 개’로 자처했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임할 때에 다윗은 그에게 ‘므비보셋’이라는 이름을 불러줍니다. 나아가 그를 ‘왕자’로 대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정체성을 회복시킵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더 이상 외적 특징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하여 정해집니다. 외적 자질이 아니라 내면적인 태도로 규정됩니다. 이러한 은혜의 기초는 언약적 사랑입니다. 다윗이 요나단과 맺은 언약 때문에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푼 것처럼,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으로 인하여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 자녀의 복을 주십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가 됩니다.
둘째, 소유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에는 소유가 변화됩니다. 반역자 집안의 자손 므비보셋은 죽음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죽은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것처럼 생명을 보장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은혜로 그를 살려주었고 그의 아들의 생명도 보장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곳에는 생명이 회복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반역죄로 몰수된 기업을 회복하는 것은 므비보셋이 꿈도 꾸지 못할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신분이 회복된 그에게 사울의 기업을 돌려주었습니다. 신약에서 기업의 회복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심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업이 되시고(엡 1:3∼14),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습니다(고전 1:30). 그 누구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업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셋째, 장소의 변화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을 피하여 ‘로드발’이란 곳에 거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베푼 은혜는 그를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이고 왕의 식탁으로 초대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왕을 피해 간 변방에서 왕의 도성으로, 왕궁으로, 왕의 식탁으로 장소가 변하는 것은 분명 은혜가 가져온 변화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외인이었던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두시고 하나님의 기업을 누리며 친밀한 교제를 나누도록 부르셨습니다. 예수님도 자신 안에 있는 우리를 결코 내쫓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 또한 없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구원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은혜입니다.
므비보셋이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 받은 사람의 모델이라면, 다윗은 자신을 은혜의 통로로 드린 사람의 전형입니다. 우리는 먼저 은혜 중심의 삶을 살되, 은혜가 왕 노릇을 하도록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성주진 총장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1783831&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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