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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의 선교 - 선교의 언약신학적 이해

오경의 선교 - 선교의 언약신학적 이해
성주진 교수 (합동신학대학원)

서 언
구약에, 그것도 처음 다섯 책인 오경에 선교가 나타나 있는가? 선교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선교적 메시지나 활동을 발견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결국 선교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선교의 전통적인 협의의 정의는 파송받은 선교사가 복음 증거를 통하여 불신자를 회심시켜 교회를 세우는 일을 포함한다. 이러한 좁은 의미의 선교는 오경에 나타나지 않는다. 오경에 나오는 선교적 요소들은 협의의 정의가 제시하는 선교의 구성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선교의 완전한(complete) 기초는 신약이요, 신약의 뿌리는 구약이며, 구약의 기초는 오경이라는 점을 인정할 때, 오경에서 선교의 성경신학적 뿌리와 발전을 찾아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성경 전체의 통일성 내에서 계시와 구속사의 발전을 감안하여 선교를 폭넓게 정의할 때 선교는 구약 전체뿐만 아니라 오경에도 나타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오경에서 선교적 목적과, 선교적 메시지, 그리고 선교적 활동을 발견한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과 모세, 그리고 이스라엘은 선교적 목적과 메시지를 가지고 나름대로 선교적 역할을 감당한 선교사들이다. 보다 중요한 과제는 오경에 나타나는 다양한 선교적 요소들을 어떻게 구별하고 평가하며, 어떤 신학적 구조 안에서 이해할 것인가이다. 필자는 본고에서 오경에 나타난 선교를 언약신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오경에 나타난 선교의 주제는 다른 여러 주제들과 함께 언약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선택과 약속, 그리고 율법과 순종의 요구가 다 언약 안에 포함되어 있다. 선교도 이러한 주제들과 연결되어 있다. 결국 선교는 언약신학의 구조 속에서 가장 폭넓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언약신학적 관점에서 선교를 연구할 때 그 장점이 적지 않다. 창조와 구속을 함께 포괄하는 언약을 통하여 선교를 균형있게 조망할 수 있다. 또한 언약은 구속사의 시행이기 때문에 선교를 구속사의 맥락에서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서 선교의 배타적 성격과 보편적 성격이 언약신학 안에서 조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족장들과 이스라엘의 다양한 이방접촉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J.H. Bavink도 진정한 의미의 선교는 계약(언약)구조에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개종을 목적으로 하는 선교의 진지한 노력은 언약의 하나님에 기초할 때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바빙크는 선교의 언약신학적 이해가 가지는 장점 중의 하나를 지적한 셈이다. 언약이 없다면 선교도 없을 것이다. 오경의 언약들은 선교의 배경, 근거와 목적을 제시한다. 이러한 장점들은 선교의 언약적 이해의 타당성을 보여준다.

필자는 선교를 언약신학적으로 이해함에 있어 정경적 연구방법(Canonical Approach)을 사용하고자 한다. 이 방법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경이 이미 언약중심적으로 정경화되었기 때문이다. 선교의 언약신학적 연구는 정경으로서의 오경의 성격에 부합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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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브라함 이전의 언약과 선교

1) 창조 언약과 선교

오경에 나오는 언약은 많게 보아 다섯 종류이다. 창조 언약, 아담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그리고 모세 언약이 그것이다. 처음 세 언약은 창1-11장에 나온다. 아브라함 언약은 창12-50에서 다루어지며, 모세 언약은 오경의 나머지 네 책의 주제이다.

창조의 절정은 인간창조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히브리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이나 야곱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조상인 아담을 창조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온 인류와 나라와 민족의 하나님이 되신다. 창조 언약적 관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은 여러 민족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창조의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창1:26-27). 이 하나님의 형상은 선교의 목적과 궁극적인 지향점을 보여준다. 선교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형상의 완전한 회복과 창조의 궁극적인 회복을 목적으로 한다. 구속의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소위 문화명령(창1:28)에 잘 나타난다. 이 명령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목적을 밝혀 주고 있는데, 인간이 타락한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명령을 수행해야 할 본분이 타락한 인류에게 타락 이전과 같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열방에도 의를 요구하시는데, 그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열방의 우상 숭배와 타락에 대해서 책임을 추궁하신다. 소돔과 고모라도 예외가 아니다 (창15장). 창조주 하나님이 의의 요구자와 통치자가 되심은 선교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2) 타락, 아담 언약과 선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의 타락은 선교의 절대적 필요성을 보여준다. 죄로 말미암은 인간의 타락은 전인격적인 부패를 가져온다. 부패한 인간들의 공동체인 민족이나 국가도 역시 타락한 모습을 지닌다. 사람만이 아니라 국가도 죄의 영향하에 놓이게 된다 (창11장). 죄로 부패한 사람과 나라는 심판의 대상이 된다. 선교는 바로 이러한 타락과 심판에서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인간의 타락이라는 성경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이상적 인간상을 선교의 기초로 삼는 어떤 선교 이론도 잘못이다. 선교는 타락한 세상을 대상으로 한다. 타락이 없다면 선교도 없다. 타락의 사실과 심판의 필연성을 직시하지 않는 어떤 선교 이론도 허상이라고 할 수 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창조 언약은 구속 언약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첫 구속 언약인 아담 언약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최초의 선교사로서 범죄한 인간을 찾아오신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멸하지 아니하시고 구원을 위해 예비된 '원시 복음'(proto- evangelium; 창3:15)을 제시함으로 구속 언약을 세우신다. 원시복음의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원의 암시는 구속 언약의 시작으로 적합하다. 따라서 원시 복음은 최초의 선교사 하나님의 최초의 선교적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원시복음을 핵심으로 하는 이 아담 언약은 구속 언약의 본격적인 시작인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이어진다.

3) 노아 언약과 선교

노아 언약은 창조 언약의 회복이며 갱신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창조 세계를 보존하실 것이다. 이 언약은 하나님이 노아와만 아니라 세상과도 맺은 언약이다. 창10장은 노아 언약의 성취의 기록으로서, 노아 가족이 홍수 심판에서 살아 남은 후 다시 번성하여 세운 나라들의 명단이다. 이 명단은 여호와 하나님은 각 족속과 방언과 민족의 하나님인 사실을 강조한다.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이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살았다(1, 5, 20, 32절). 이 명단에는 당시의 모든 나라가 포함되어 있다. 가나안 족속도 포함되어 있다. 이 나라들은 다 선교의 대상이 된다. 즉, 창10장의 명단은 아브라함 언약에서 축복의 대상인 '땅의 모든 족속'(창12:3)이 누구인가를 먼저 정의함으로, 선교의 대상과 선교의 목적을 보여주는 "선교 문서"이다. 따라서 노아 언약은 구원받을 열방을 보존함으로써 구속 언약의 시행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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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브라함 언약과 족장 기사에 나타난 선교

1) 아브라함 언약은 땅의 모든 족속이 받을 축복을 포함한다. 잘 알려진대로 아브라함 언약의 주된 세 요소는 자손과 땅과 열방의 축복이다. 열방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세번째 요소는 아브라함 언약의 선교적 성격과 목적을 분명히 보여준다. 하나님은 모든 족속을 축복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택하셨다. 아브라함은 열국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에 부름을 받은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 또는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통하여 복을 얻을 것이다(창12:3, 18:18, 22:18). 아브라함 언약에서 선교는 이처럼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은 이삭에게 반복된다: "네 씨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26:4). 또한 야곱에게도 확인된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28:14) 아브라함 언약이 갱신될 때마다, 이 언약이 오고오는 세대에 이방을 위한 축복의 통로이라는 선교적 사명이 새롭게 확인된다. 아브라함 언약의 최종 목적은 땅의 모든 족속의 축복이다. 이 언약은 온 세상을 위한 구원의 프로그램으로 이방에 대한 하나님의 열망을 나타낸다.

2) 창세기의 전체 구조에서 12장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볼 때, 아브라함의 언약적 부름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선택임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세상을 포기하거나 파괴하지 않고 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처음에는 한 민족을, 다음에는 모든 민족을 자기 소유의 백성으로 부르신다. 결국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다 (창12:3).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가 되고, 사라는 열국의 어미가 될 것이다 (창17:5). 열방의 축복이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언약은 선교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 언약의 한 구성요소로 언약에 참여한 열방은 언젠가 언약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될 것이다.

3) 아브라함의 언약은 할례를 표징으로 가진다(창17:9-14; 23-27). 아브라함 자손은 언약에 참여하기 위하여 할례를 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언약에서 끊어진다. 그러나 아브라함 언약은 혈통적으로 폐쇄된 언약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베푼 대상에는 돈주고 산 이방인이나 집에서 난 이방인이 포함된다. 이들도 언약의 참여자이다. 아브라함 언약에서 외국인은 아브라함의 자손들과 같은 가입조건을 가지며(14절), 이방인도 "영원한 언약"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13절). 이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아브라함 언약의 한 측면이며, 믿음으로만 참여하게 될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표상이다.

4) 족장들은 이웃 민족들 또는 이방 사람들과 다양한 접촉들을 가진다. 이러한 접촉은 선교적 성격을 가지고, 선교적 기능을 수행한다. 족장들이 이방 가운데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선교의 한 부분이다. 족장들은 이방에서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를 증시하는 선교적 사명을 가진다. 족장들은 때때로 이 선교적 사명을 망각하고 실패하나, 하나님은 이러한 접촉을 놓치지 않고 선교적 기회로 사용하신다.

(1) 족장들은 이방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함으로써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였다. 족장들은 하나님이 나타나신 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세겜 땅에 단을 쌓았다(12:7). 또 벧엘 동편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12:8). 애굽에서 나와서도 이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13:4). 아비멜렉과 불가침 평화조약을 맺은 후에도,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21:33). 이삭도 브엘세바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26:25). 야곱도 하나님이 나타나신 벧엘에 단을 쌓았다(35:6-7). 족장들이 이렇게 이민족 가운데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예배를 드린 일은 살아 계신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를 증거하는 선교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2) 족장들의 공통된 경험 가운데 하나는 기근이다. 족장들은 기근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갈 때마다 그곳 주민들과 긴장된 접촉을 갖는다. 이 접촉은 선교적 의미를 가진다.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은 열방 가운데 족장들을 위하여 개입하심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가) 아브라함은 기근 때문에 아내 사라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갔다. 바로가 사라를 취하자 하나님은 바로와 그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12:10-20). 아브라함의 처신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바로의 아브라함에 대한 태도를 책망하시고 벌을 내리신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은 아브라함에 대한 태도로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평가받는다. 20장에서는 하나님의 개입이 더욱 극적으로 나타난다. 역시 기근 때문에 아브라함은 사라와 함께 그랄로 내려간다.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가자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사라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이 기사에서 특히 주목할 점이 있다. 첫째는 아비멜렉의 항의이다: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이방인 아비멜렉은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 그의 판단은 공의롭다는 것을 인정한다. 둘째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선지자라고 선언하시고 그의 기도를 통하여 이방 왕에게 임한 재앙을 그치게 한다. 셋째로 아비멜렉과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고 심히 두려워한 점이다. 아브라함이 '이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고 한 그곳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심히 두려워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방 접촉을 자기계시의 기회로 삼으셨다.

(나) 이삭도 기근이 닥쳤을 때 아브라함의 예를 따라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으나,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 막으셨다(26:2). 이삭이 하나님의 '지시하신' 땅인 그랄에서 거주할 때(3절), 하나님은 섭리적 방법으로 이방 왕 아비멜렉을 통하여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보호하셨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크게 베푸심을 보고(12-14절) 이방 왕 아비멜렉은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한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28-29절). 앞서 다른 아비멜렉도 아브라함에게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고 증거하였다(창21:22). 하나님의 축복은 선교적 의미를 가진다. 이방은 하나님이 족장들을 축복하시는 것을 주목하고 그 사실을 증거하며 그들도 그 축복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아비멜렉은 여호와가 함께 하는 이삭과 평화조약을 맺음으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려고 하였다.

(다) 야곱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같이 기근을 만난다. 처음에는 아들들을 보내어 식량문제를 해결하려 하나 기근이 심하여지자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신다. 야곱이 만난 기근은 그가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는 계기가 된다. 장차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속하심으로써 그의 권능을 온 천하에 드러내실 것이다.

(라) 요셉은 근동지역에 닥친 극심한 기근을 계기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요셉은 이상적인 선교사요 증인이었다. 바로가 "너는 꿈을 들은즉 능히 푼다더라" 하고 칭찬할 때, 요셉은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라고 대답한다(41:15-16). 요셉은 계속해서 꿈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 것이요(25,28절), 이 기근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고 말한다(32절). 요셉의 증거는 애굽왕 바로로 하여금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게 만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38-39절). 사실 요셉의 선교적 성공은 기근이 닥치기 전에 예비되었다. 요셉의 주인 보디발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과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창39:3)을 보았다. 또한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끈질긴 유혹을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고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의 신앙으로 물리쳤다(9절). 기근을 통한 이방접촉은 족장들에게는 증거의 기회요, 하나님에게는 자기계시의 기회였다.

3. 모세 언약에 나타난 선교

1) 출애굽과 선교

출애굽의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다. 출애굽은 아브라함의 언약의 부분적인 성취이자 모세 언약의 기초이다. 언약의 성취요 기초로서의 출애굽은 이스라엘의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이방을 위한 선교적 의미도 가진다.

모세의 노래(출15장)는 출애굽의 하나님이 이방에 어떤 선교적 영향을 끼쳤는가를 보여준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영광을 열방 가운데 선포하는 것이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11절) 또한 열방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듣고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14-16절). 출애굽은 바로와 애굽의 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승리를 세계에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일차적인 수혜자이지만, 열방은 구원역사의 참관자요 증인이자 궁극적인 수혜자이다.

출애굽의 이적과 기사는 먼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다. 열 재앙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그 종 모세를 믿었다. 열조의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의 메시지를 믿고 문설주에 피를 바름으로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출애굽의 이적과 기사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열방을 위해서도 주어진 것이다. Walton은 출애굽의 이적과 기사의 대상과 수혜자를 다음과 나누어 제시한다. 1)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바로 알리는 목적이 있다(출10:2). 2)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열방에게 하나님을 알리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출7:5, 7:17: 9:14: 14:4: 14:18). 3) 애굽에게 베푸신 은혜는 바로에게 여호와가 어떤 분임을 알게 하는 목적이 있다(출8:10; 9:29). 두번째와 세번째 항목이 선교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심판의 대상인 애굽에게 심판자가 누구이며 또 어떤 분인지를 알리신다. 심판만을 행하지 않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열방에게 알리는 것은 심판의 선교적 목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심판을 거두시는 긍휼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방왕 바로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이렇게 열 재앙의 풍부한 선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이스라엘의 선택과 선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열국의 구원을 위하여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 하려는 데 있다. 선택은 특권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다. 이를 위하여 이스라엘은 "열국 중에서 내 소유",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출19:5-6).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열국들 사이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하나님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제사장이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세상을 위해 존재할 것이다. 모세 언약의 제사장 나라 약속은 아브라함 언약에 나오는 모든 족속의 축복에 대응되는 선교적 요소이다. 제사장 나라 약속은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됨과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창12:3)의 구체적인 발전이다. 이는 만민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속적인 관심과 계획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처럼 선교를 목적으로 진행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라 선택되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선택과 이스라엘의 성별은 선교의 필요성을 없이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의 방편이다. 선택된 존재로서의 이스라엘의 언약적 독특성은 이스라엘의 선교적 역할의 기초이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적 역할 가운데 하나는 열방에게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은 그들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이방에 알리시기 위함이다. 한 나라에게 자신을 알림으로써 모든 나라에게 자신이 알려지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계시의 전달자와 도구로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언약 백성을 다루시는 방법에는 크게 은혜와 심판의 두 가지가 있다. 그중 어떤 경우도 이방에는 증거가 된다. 은혜를 통하여 이방 가운데 하나님이 증거된다: 하나님과 같은 자가 없다(출8:10; 9:14; 14:4,18);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다(9:29);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다(출18:11). 이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무슨 일을 어떻게 행하시는가를 끊임없이 주목하고 감시한다. 따라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방 민족이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가운데 모욕을 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요,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 영광을 받으셔야만 한다(출32:12; 민14:16; 신9:28). 그러나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의로운 성품을 증거하신다(신28장). 이렇게 축복뿐만 아니라 저주도 여호와 하나님이 언약의 하나님인 것을 보여준다.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기를 계시하신다.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열방에게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신다.

3) 모세 언약의 율법과 선교

모세 언약의 율법은 이전에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기초한다. 언약의 의무 조항으로서의 율법은 출애굽이라고 하는 선행하는 구원의 은혜에 부응하는 반응으로서 요구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백성이 되어, 그만을 섬기고 그의 언약의 법을 순종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모세 언약의 율법은 선교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먼저 율법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리는 수단이다(신4장). 율법은 하나님의 요구뿐만 아니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열방 가운데서 언약의 율법에 따라서 하나님을 복종하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신 목적이다. 이스라엘이 언약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맡은 그들이 하나님의 계시가 없는 열방에 증거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방에서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모델을 제시하여야 한다. 이방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통하여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를 알고 교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 언약에서 이방민족과 관련있는 율법조항은 선교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1) 이스라엘 공동체 내의 이방인은 고아와 과부와 같이 연약한 구성원으로서 언약적 보살핌의 대상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나그네(외국인)를 위하여 3년에 한번씩 별도의 십일조를 드려 비축해야 한다(신14:28-29). 외국인 또는 이방인 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신24:14). 이러한 관대한 취급은 인간적인 고려뿐만 아니라 신학적 이유에서도 요청된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출23:9);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신24:15). 추수할 때에는 일부러 곡식을 남겨 놓아 나그네도 먹고 살 수 있게 해야 한다(신24:19). 이방인도 약속의 땅의 열매를 같이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모세 언약의 율법은 이방인도 환영받는 열린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 안식일과 절기와 제사 제도도 선교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제도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창조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구속의 하나님임을 기억하고 축하한다(신5:15). 절기도 그러하다. 출애굽과 레위기의 절기는 자연과 추수의 절기만이 아니다. 구속의 절기이다. 자연의 신을 음란하게 섬기는 이방은 이스라엘의 절기를 통하여 역사와 구속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우고 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율법의 제사 제도도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제사는 거룩의 표준을 제시하며, 이 표준에 미달되었을 때의 해결책도 제시해 준다. 제사제도는 이방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준다.

4) 모세 언약과 이방

선교적 측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언약적 선택은 이방이 버림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모세 언약은 이방인이 언약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로 연합될 가능성을 담고 있다: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출12:48). 이는 어떤 이방인에게도 적용이 되는 가입규정이다. 이방인이 일단 할례를 받으면 그에게는 본토인과 동일한 규정이 적용된다(민9:14). 이렇게 모세 언약은 열려 있는 언약이다. 모세 언약이 닫혀 있다면 그것은 언약의 표지인 할례로 상징되는 믿음의 요구에 관하여 닫혀 있는 것이다: 할례를 받은 자만이 언약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언약 참여 자체는 열려 있다: 이방인도 할례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언약에 참여할 수 있다. 할례받은 이방인은 본토인과 같이 안식일의 은혜에도 참여한다: 이방인 남종이나 여종, 외국인 노동자도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출20:10). 이스라엘 백성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본토인과 같이, 자기 같이 사랑해야 한다(레19:33-34). 이 명령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19:18)는 계명의 선교적 적용이라 할 만하다. 할례를 받은 이방인은 이스라엘 사람과 같이 이웃사랑의 대상이 된다. 이방인도 여호와께 번제나 희생을 드릴 수 있다(레17:8-9). 에돔인과 애굽인도 삼대 째부터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다(신23:7-8). 이러한 이방인, 외국인에 대한 율법의 규정은 모세 언약이 얼마나 선교적으로 열려 있는가를 보여준다. 모세 언약의 율법에는 어떤 이방인이라도 언약의 품에 품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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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언

흔히 언약은 개념상 배타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언약에는 확실히 배타적인 면이 있다. 이스라엘의 언약은 여호와만이 유일한 하나님으로 경배하며,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을 강력하게 금한다. 그러나 이것은 선교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교의 근거와 가능성을 제시한다. 참 하나님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선교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구약의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는 이런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오경 내에는 열방이 선교 대상이기보다 신앙적 위협과 유혹의 대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다(신7장). 이것은 어설픈 선교가 참 종교인 여호와 종교고 이방 종교에 정복당하게 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경에 나타난 선교의 언약적 이해는 세상은 여전히 구원의 대상이며, 이스라엘은 이 목적을 위해 선택받았음을 보여준다.

오경에 나타난 선교의 기초가 언약임을 살펴보았다. 언약은 선교적 내용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선교적 목적을 위해 주어지지 때문에, 언약을 맺기 위한 선택은 배타적 특권이 아니라 섬김을 위한 부름이다. 계시의 통로로써의 이스라엘은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이방에 하나님을 드러내어 세상을 섬기도록 선택된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이방 가운데 하나님을 대표하는 존재이다. 열방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열방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된다. 그러나 역사적 이스라엘은 선교적 사명을 매우 희미하게 인식하였다. 언약의 요구에 따라 살지 못할 때가 많았다. 결국 언약적 삶의 실패는 선교의 실패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종종 언약 갱신을 통하여 언약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삶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 하나님과 그의 언약에 새롭게 헌신하는 기회를 가졌다. 세대마다 그 시대의 도전을 받아들여 믿음으로 언약을 지키려 하였다. 선교의 갱신을 위해서는 먼저 언약적 순종의 갱신이 있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이스라엘이 택한 백성으로 이방 가운에 존재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증거이다. 그러나 그냥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선교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믿는 사람들을 통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그런 '선교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모세의 법에 순종함으로 이방 나라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모델을 보여줌으로써 비로소 선교적 사명을 감당한다고 할 수 있다.

언약에의 가입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이는 언약의 보편적 성격과 영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열국 또는 이방은 혈통적인 의미만 갖지 않는다. 신학적 개념으로서의 열국은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함축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믿음의 할례를 통하여 언약에 가입한 이방인은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언약의 축복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신30:6)은 영적으로는 이방인과 같다. 이와 같이 오경의 언약은 언제나 열려 있으며 선교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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