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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자

한국 보수 신학의 거두, 박형룡과 타종교에 대한 이야기

한국 보수 신학의 거두, 박형룡과 타종교에 대한 이야기

1. 한국의 위대한 보수 신학자 박형룡
한국에서 신학 공부를 공부한 한인 목회자 치고 보수 신학의 거두 박형룡 (1913-1978) 박사를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한국에서 신학을 했다면, 한국 교회사를 배웠을 것이고, 한국 개신교 형성의 중심에 있었던 ‘장로교’ (Presbyterianism)의 역사를 간과할 수 없을 것이며, 이 장로교의 신학적 보수성의 뿌리가 된 박형룡은 어느 신학자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사에서 중요한 신학적 논쟁과 분열의 중심에 그가 항상 있었다. 신학자 박형룡은 세기의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 (Billy Graham)까지도 정통 신학적 입장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비난을 했을 정도로 보수/근본주의적인 사람이었다.
 
이렇게 보수적인 신앙인인, 현대적 입장에서 보면 근본주의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이 [비교 종교학]이란 책을 썼다. 놀랍지 않은가? 더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책의 형태로 나오기 40여 년 전에 그가 평양신학교에서 가르칠 교안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신학자 박형룡은 어쩌면 무모하리만치 대담하게 비전문적인 종교학자가 전문적인 “비교종교학”을 가르쳤던 것이다.
 
2. 박형룡과 “비교 종교학”

박형룡이 쓴 책의 목차는 현대 종교학적인 관점에서 봐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종교의 정의와 분류, 원시 종교, 고대종교, 조로아스트교, 유대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유교, 도교는 물론 일본의 신도와 한국의 신종교인 천도교까지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참 종교”로서의 기독교로 책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박형룡의 입장은 여러 종교를 다루면서도 그의 의도가 기독교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의 책의 마지막 장인 제 18장 “참 종교”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우리의 세계 종교들을 고찰해 보면 모든 종교는 참된 종교가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만이 참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377쪽).
 
그러면서도 그는 모든 종교들에 진리의 “소량 (小量)”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가 말하는 “소량”이란 풀어 보면, 다른 종교에서도 약간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들이 전부 그릇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즉 최소한도로라도 다른 종교에서 나름대로의 영성이나 “신적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에게서 타종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박형룡의 타종교에 대한 관심의 목적은 다음의 주장에서 분명해진다.
 
“우리는 모든 종교들 중에 기독교만이 신적 기원을 가지어서 반드시 다른 종교들을 대신하여 세계를 점령하리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기독교가 민족들을 계몽하고 향상시킨 역사는 휘황찬란하다” (387 쪽).
 
그리고 책의 최종 맺음말에서 박형룡은 감격하여 외친다.
 
“복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은 베들레헴에서 비추기 시작한 이 후 항상 광휘 (光輝)로 빛나온 것으로서 완전한 날까지 계속해서 빛날 것이다. 신자여 눈을 들어 하늘의 무수 (無數)한 별을 보라, 임마누엘의 영혼의 수고의 열매가 그렇게 많을 것이다.”
 
3. 박형룡의 비교 종교학의 가치

박형룡의 [비교종교학]이 현대 종교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전혀 비교종교학적이지 않게 보일지라도, 1930년대로 추정되는 그의 비교 종교학에 대한 관심은 놀랍다. 박형룡의 지적 스승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근본주의 신학자이자 기독교 호교론자인 그레샴 메이쳔 (J. Gresham Machen)을 한국적 상황에서 발전시킨 박형룡의 이러한 비교종교론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른바 현대 종교학적 관점에서 박형룡의 책은 전혀 비교종교학적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의도는 다양한 종교를 자기 판단을 배제한 체 할 수 있는 한 그 종교들을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 오히려 그의 ‘호교론적’ (변증론적; apologetic) 관점에서 다른 종교는 오류가 많고 기독교는 참된 진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른바 비교종교론이라는 말을 끌어 들인 것이지, 그는 애초부터 비교 종교론이라는 학문적 목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면 박형룡은 그의 [비교종교론]이 완전히 호교론에 경도된 것일까? 박형룡의 다른 저작을 볼 때, 그가 비교 종교론을 쓸 만큼의 자격을 갖춘 사람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가 책의 서문에서 열거한 몇 가지 비교종교론적 책을 의존해서 썼을 것이고, 각 개별 종교에 대한 교리는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따랐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그가 호교론적 입장을 취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붙인 “비교”라는 말에서 쉽게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다. 그가 각 장의 마지막에 붙인 그의 기독교 신학적인 관점을 빼면, 기존의 비교종교학 책들을 한국적 상황으로 잘 번안한 것으로 간주해도 좋을 것 같다.
 
이것이 필자가 박형룡을 논하는 주요 이유이다. 필자는 박형룡의 비교 종교론이 낡고 낡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신학자가 비교 종교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타종교에 대한 관심의 붐을 반영한 것이다. 그 자신 또한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서 불교, 유교, 그리고 일본의 신도라는 다양한 종교 현상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이제 오늘을 사는 우리는 박형룡의 시대보다 훨씬 더 복잡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필자는 목회자는 물론 평신도들도 최소한 박형룡 류의 책이라도 좋으니 비교 종교학이나 세계 종교에 대한 책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타종교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나의 기존 교리를 다 버리고 무작정 타종교와 대화하라는 말이 아니라, 최소한 설교 강단이나 선교를 할 때 무지에서 오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4 . 박형룡의 ‘불교’에 대한 선교적 전략과 태도

이런 맥락에서 박형룡의 타종교를 알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는 선교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태도다. 예컨대, 박형룡은 불교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시 “우호적 태도”를 기독교인들이 보여야 하며 불교에 대한 철저한 지식을 미리 가져야 된다고 강조한다.
 
“근본적인 태도는 우호적 태도이다…. 불교의 약점들을 거론할 것이 아니라 그것의 장점들을 들어 호의로 표시하고 점차로 그것들의 불충분함을 지적하는 것이 지혜로운 논법일 것이다. 논쟁이 생길 때에는 [담]화를 지혜롭게 끌어서 상대편으로 하여금 자기 종교의 약점을 자백하게 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설교보다는 담화적 접근이 불교도들에게 전도하는 우승한 방법이다” (171).
 
필자가 보기에 박형룡 박사의 이런 선교 지침을 기독교인들이 경청한다면, 한국에서의 기독교 선교 갈등은 완화되지 “않을까 싶다.” 불행히도 박형룡 스스로 개신교 내의 신학적 다양성 조차 수용하지 못한 전력을 고려해 보면, 박형룡의 비교종교학적 주장은 그의 현실적 태도와 자기 배반을 했던 셈이다. 그러나 위에서 논한 박형룡의 타종교에 대한 접근 주장은 기독교인들이 배울 점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그는 최소한 타종교에 대해서 처참하리만큼 무지하지는 않았다.
 
* 참고문헌: 박형룡 지음. [比較宗敎學], in [박형룡 박사 저작 전집] 제 10권. 서울: 한국 기독교교육연구원, 1981.
http://blog.daum.net/kkho1105/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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