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수신학은 신정통주의 배격
한국 보수신학은 신정통주의 배격
Ⅲ. 보수신학은 방배동에 와 있는 듯 보인다.
① 방배동은 한국 보수신학의 “제2의 야스나야 폴라냐”인가? (계속)
고 죽산 박형룡 박사의 서거 후에 아들인 필자(박아론 교수)가 아버님의 뒤를 이어서 계속 보수신학자로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며 보수신학의 학문적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필자가 35년동안 총신에서 「보수신학」을 가르친 일과 2000년 이후로 서울 방배동에 있는 기독신학교의 학장이요 교수로서 그리고 특히 천안대학교의 석좌교수로서 「보수신학」을 가르쳐온 일이 한국 교계에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인 줄 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아버님 박형룡 박사가 소천한 후에 「한국 보수신학」은 현재 아들인 필자가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기독신학교가 있는 방배동이나 천안대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천안시 안서동에 전적으로 옮겨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고 박형룡 박사가 대표하였던 「한국 보수신학」(청교도적 또는 정통적 개혁주의 신학)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 시대의 한국 교회에서 이어나가며 발전시킬 것을 염원하는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수가 적기는 적으나 결코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존재 안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이 만일 「보수신학」을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강조한다면 자유주의자들과의 치열한 교리적 신학적 논쟁을 야기시켜서 한국 교회의 평안과 안녕을 다시 깨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고 있기 때문인줄로 안다.
이와같이 고 박형룡 박사가 대표하였던 「한국 보수신학」을 애호하면서도 암암리에 조용히 그것을 계승할 망정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 앞에서 떠들석하게 강조하며 부르짖기를 주저하고 있는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한국 교회에는 소수이나마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현금의 한국 교회에서 이렇게 은연 중에 「보수신학」을 애호하며 그것을 전파하고자 하는 신학자와 교회 지도자들의 사역 또는 활동 현장이, 그러니까 “한국 보수신학의 센터”라고 불리울 만한 장소들이 몇군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한국 보수신학의 센터”라고 꼽을 수 있는 장소로서 우리는 제일 먼저 서울 사당동에 있는 총신대학교를 생각할 수 있다. 총신대학교는 1950년대 말에 한국 장로교회 안에서 에큐메니칼 NCC측과 고 박형룡 박사가 벌렸던 “보수신학적 투쟁”의 열매로서 세워진 신학교이다. 그리고 이 학교는 박형룡 부자가 「보수신학」을 가르치는 일에 모두 합쳐서 40여 년의 삶을 바친 신학교이다.
따라서 이제는 고 박형룡 박사가 총신대학교를 은퇴하고 떠난 지가 30년이 되었고 또 그 아들인 박아론 교수가 그 후에 오래동안 남아서 교수로서 가르치다가 정년퇴임한지도 만 2년이 지나가는 이 시점에 와 있다고 할지라도 박형룡 부자가 그렇게 정성들여 가르친 「보수신학」이 총신대학교로부터 하루아침에 그 종족을 감추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총신대학교가 “박형룡 부자 시절”과 같이 “한국 보수신학의 센터”로 남아서 그 역할을 하며 명성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는 전혀 미지수일 뿐더러 필자(박아론 교수)가 총신대학교로부터 영구은퇴하기 5, 6년 전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총신대학교 교수들사이에 불고 있는 “개방주의와 진보주의의 바람” 때문에 총신대학교의 신학적 좌경은 겨우 방지할수 있다손 치더라도 총신대학교가 “한국 보수신학의 대 센터”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보수신학」을 국내외적으로 전파하고 많은 신학적 연구결과를 거두어서 국제 신학계에 발표하는 것 같은 실적을 올리지는 못하리라고 필자는 전망한다.
필자의 이와 같은 전망은 필자가 총신대학교로부터 영구은퇴하던 시기를 전후하여 관찰하고 경험한 바에 의하여 어느정도 확실성을 부여받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총신대학교의 교수로서 가르치던 당시에 관찰하고 경험한 것들 중에서 아주 중요한 것은 다수의 총신 교수들(그들은 필자의 제자가 아니면 후배들임)이 신학생들을 가르치거나 학술논문을 써 낼 때에 “개혁신학” 또는 “개혁주의”라는 낱말은 무수히 사용하나 그 앞에 “정통”을 붙여서 “정통개혁신학” 또는 “정통개혁주의”라는 말을 하는 일은 드물며 꺼려하는 듯한 인상을 필자가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은 “정통”이라는 두 글자를 “개혁신학” 또는 “개혁주의”라는 낱말 앞에 붙여서 사용해야만 우리가 현대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의 “신정통 개혁신학” 또는 “신정통개혁주의”와 우리 자신들의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을 명백히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총신대학교의 교수들 중의 다수가 “개혁주의”라는 낱말의 사용은 선호하면서도 “정통”이라는 두 글자를 사용하기를 꺼려했다는 사실은 칼 바르트의 “신정통개혁신학” 또는 “신정통주의”에 대하여 “무방비 상태”를 드로내 보여준 것이었으므로 멀지않아 그들이 “신정통적 개혁신학” 또는 “신정통적 개혁주의”를 수용하게 될 가능성을 필자로 하여금 염려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총신대학교에서 교수로서 가르치던 시절에 관찰하고 경험한 바 총신대학교의 다수의 교수들의 신학적 입장과 태도가 그러했다면 필자가 총신대학교로부터 은퇴한지 2년 남짓한 현금의 상황이 변했으면 얼마나 변했겠는가 하는 것이다.
다만 필자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은 총신대학교에는 아직도 “한국 보수신학의 대표자”였던 박형룡 박사와 “한국 보수신학의 위대한 동사자”였던 박윤선 박사 두 분으로부터 직접 「한국 보수신학」의 전통과 그 깊은 사상을 배운 바 있는 정성구, 서철원 두 교수가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아론(기독교신학교 학장)
http://blog.daum.net/kkho1105/3996
Ⅲ. 보수신학은 방배동에 와 있는 듯 보인다.
① 방배동은 한국 보수신학의 “제2의 야스나야 폴라냐”인가? (계속)
고 죽산 박형룡 박사의 서거 후에 아들인 필자(박아론 교수)가 아버님의 뒤를 이어서 계속 보수신학자로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며 보수신학의 학문적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필자가 35년동안 총신에서 「보수신학」을 가르친 일과 2000년 이후로 서울 방배동에 있는 기독신학교의 학장이요 교수로서 그리고 특히 천안대학교의 석좌교수로서 「보수신학」을 가르쳐온 일이 한국 교계에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인 줄 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아버님 박형룡 박사가 소천한 후에 「한국 보수신학」은 현재 아들인 필자가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기독신학교가 있는 방배동이나 천안대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천안시 안서동에 전적으로 옮겨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고 박형룡 박사가 대표하였던 「한국 보수신학」(청교도적 또는 정통적 개혁주의 신학)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 시대의 한국 교회에서 이어나가며 발전시킬 것을 염원하는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수가 적기는 적으나 결코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존재 안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이 만일 「보수신학」을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강조한다면 자유주의자들과의 치열한 교리적 신학적 논쟁을 야기시켜서 한국 교회의 평안과 안녕을 다시 깨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고 있기 때문인줄로 안다.
이와같이 고 박형룡 박사가 대표하였던 「한국 보수신학」을 애호하면서도 암암리에 조용히 그것을 계승할 망정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 앞에서 떠들석하게 강조하며 부르짖기를 주저하고 있는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한국 교회에는 소수이나마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현금의 한국 교회에서 이렇게 은연 중에 「보수신학」을 애호하며 그것을 전파하고자 하는 신학자와 교회 지도자들의 사역 또는 활동 현장이, 그러니까 “한국 보수신학의 센터”라고 불리울 만한 장소들이 몇군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한국 보수신학의 센터”라고 꼽을 수 있는 장소로서 우리는 제일 먼저 서울 사당동에 있는 총신대학교를 생각할 수 있다. 총신대학교는 1950년대 말에 한국 장로교회 안에서 에큐메니칼 NCC측과 고 박형룡 박사가 벌렸던 “보수신학적 투쟁”의 열매로서 세워진 신학교이다. 그리고 이 학교는 박형룡 부자가 「보수신학」을 가르치는 일에 모두 합쳐서 40여 년의 삶을 바친 신학교이다.
따라서 이제는 고 박형룡 박사가 총신대학교를 은퇴하고 떠난 지가 30년이 되었고 또 그 아들인 박아론 교수가 그 후에 오래동안 남아서 교수로서 가르치다가 정년퇴임한지도 만 2년이 지나가는 이 시점에 와 있다고 할지라도 박형룡 부자가 그렇게 정성들여 가르친 「보수신학」이 총신대학교로부터 하루아침에 그 종족을 감추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총신대학교가 “박형룡 부자 시절”과 같이 “한국 보수신학의 센터”로 남아서 그 역할을 하며 명성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는 전혀 미지수일 뿐더러 필자(박아론 교수)가 총신대학교로부터 영구은퇴하기 5, 6년 전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총신대학교 교수들사이에 불고 있는 “개방주의와 진보주의의 바람” 때문에 총신대학교의 신학적 좌경은 겨우 방지할수 있다손 치더라도 총신대학교가 “한국 보수신학의 대 센터”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보수신학」을 국내외적으로 전파하고 많은 신학적 연구결과를 거두어서 국제 신학계에 발표하는 것 같은 실적을 올리지는 못하리라고 필자는 전망한다.
필자의 이와 같은 전망은 필자가 총신대학교로부터 영구은퇴하던 시기를 전후하여 관찰하고 경험한 바에 의하여 어느정도 확실성을 부여받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총신대학교의 교수로서 가르치던 당시에 관찰하고 경험한 것들 중에서 아주 중요한 것은 다수의 총신 교수들(그들은 필자의 제자가 아니면 후배들임)이 신학생들을 가르치거나 학술논문을 써 낼 때에 “개혁신학” 또는 “개혁주의”라는 낱말은 무수히 사용하나 그 앞에 “정통”을 붙여서 “정통개혁신학” 또는 “정통개혁주의”라는 말을 하는 일은 드물며 꺼려하는 듯한 인상을 필자가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은 “정통”이라는 두 글자를 “개혁신학” 또는 “개혁주의”라는 낱말 앞에 붙여서 사용해야만 우리가 현대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의 “신정통 개혁신학” 또는 “신정통개혁주의”와 우리 자신들의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을 명백히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총신대학교의 교수들 중의 다수가 “개혁주의”라는 낱말의 사용은 선호하면서도 “정통”이라는 두 글자를 사용하기를 꺼려했다는 사실은 칼 바르트의 “신정통개혁신학” 또는 “신정통주의”에 대하여 “무방비 상태”를 드로내 보여준 것이었으므로 멀지않아 그들이 “신정통적 개혁신학” 또는 “신정통적 개혁주의”를 수용하게 될 가능성을 필자로 하여금 염려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총신대학교에서 교수로서 가르치던 시절에 관찰하고 경험한 바 총신대학교의 다수의 교수들의 신학적 입장과 태도가 그러했다면 필자가 총신대학교로부터 은퇴한지 2년 남짓한 현금의 상황이 변했으면 얼마나 변했겠는가 하는 것이다.
다만 필자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은 총신대학교에는 아직도 “한국 보수신학의 대표자”였던 박형룡 박사와 “한국 보수신학의 위대한 동사자”였던 박윤선 박사 두 분으로부터 직접 「한국 보수신학」의 전통과 그 깊은 사상을 배운 바 있는 정성구, 서철원 두 교수가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아론(기독교신학교 학장)
http://blog.daum.net/kkho1105/3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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